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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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드려요?” 

“..아니.. 라이터요” 

그는 재진에게 건네받은 라이터로 강유의 편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세찬 바람에 몇 번씩이나 다시 라이터를 켜서야 

겨우 제대로 불이 붙기 시작한 편지는 곧 재로 변해 공중에 흩뿌려 진다 

“보면.. 안돼요” 

“예?” 

“혜연씨가 이거 보면..” 

재진은 편지에 담긴 내용을 읽지는 않았지만 짐작 할수 있었다 

그의 잔인한 친구는 그녀를 갖게 될 민혁에게 결코 지울수 없는 짐을 주었을 것이다 

“강유가 산 밑에서 준 가방에는 세 개의 편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내 앞으로, 하나는 권민혁씨, 나머지는 부친에게.. 

부친에게 쓴건 편지가 아니라 메모정도 에요 

엄마를 뿌린 곳에 강유도 뿌려달라는 말과 

[ 아버지는 ‘정리라는건 빠를수록 좋은거다’ 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겁니다 ] 그 말만 써있었어요” 

“.........” 

“강유를 여기에 뿌릴때 나도 같이 왔었는데.. 

난 봤어요. 강유 아버지 눈에 눈물 맺힌거.. 

강유놈 메모처럼 후회해도 늦었겠지만...” 

“.........” 

“내게 준 편지에는 권민혁씨 연착처와 학교 이름... 

그리고 자신이 죽은지 1년이 됐을때 혜연누나가 

권민혁씨와 교제중이거나 결혼을 했다면 

여기로 와서 그 편지를 전해달라는 내용하고 

두 번의 여행에 대한 부탁이 써있었어요” 

“여행이요?” 

“5월에는 로마에... 8월쯤에는 파리에 가서 

내용 한글자 없는 엽서를 혜연누나의 원룸으로 보내달라는 

얘기와 함께 누나 주소하고 통장을 남겼어요” 

“.........”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두 번의 여행경비를 하고도 

지나치게 남을 만큼의 액수더군요 

여행경비를 제하고 나머지는 강유놈 이름으로 

고아원에 기부해 버렸어요” 

“.........” 

“아마 엽서는 누나에게 무언가 미리 약속해 놓은게 있었을거에요 

내 생각일 뿐이지만 두 번의 엽서로 누나를 털어냈다거나 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재진의 옆에 앉아있는 권민혁의 얼굴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재진을 보더니 그도 담배하나를 꺼내든다 

그의 입에서 기다란 한숨을 내뿜듯 담배 연기가 뱉어져 공중에 흩어진다 

재진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어냈다 

“내려가죠? 더 늦으면 도착시간이 너무 늦을텐데..”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두 사람 모두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용산역이 가까워 졌을 무렵 권민혁은 재진에게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가 산 밑으로 비상(飛上) 할때.... 

......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특별히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재진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역에 가까워지고 있는 도심의 밤거리를 내다보았다 

강유가 그 짧았을 순간에 본게 어쩌면 다르게 만들수도 있었을 그의 미래였을지.. 

혹은 정혜연과 함께 했던때중 가장 순수하게 행복했을 순간이었을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 이었을지는 누구도 알수가 없다 

하지만 재진은 그가 슬프고 비참한 마음으로 비상(飛上)을 한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진과 민혁은 용산역에서 각자 헤어졌다 

그후로 그들은 딱히 약속을 한 것이 아님에도 

강유가 자신을 버렸던 장소에서 해마다 비슷한 시간에 마주쳤다 

각자의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온 소주 한병씩을 

반 정도는 허공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뒤쪽의 바위에 걸터앉아 마셔버린다 

정혜연과 권민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입양해 가면서 

따듯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있는 듯 하다 

그와 함께 바위에 걸터앉아 남은 소주를 마시는 재진은 

강유가 비상(飛上)해 버린 허공에 대고 해마다 같은 질문을 혼자 속으로 묻는다 

‘서문강유... 이걸로 넌.. 

.......괜찮은거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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