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 (30/34)

제 6 장 : 늪. 그리고... 

#... 2 

일찌감치 퇴근을 하고 돌아온 유정과 교대를 하고 돌아온 민혁은 

오늘 오전에 우연히 만났던 구재진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혜연의 담당간호사에게 그녀의 상태를 묻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묻고있는게 혜연이라는걸 알고 민혁은 구재진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문강유의 친구라는 구재진은 민혁에게서 혜연의 상처나 

다친 정도를 자세히 들은 후 곤란한 얼굴로 조금 망설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민혁과 얼마동안 이야기를 했다 

“무슨 생각인건지 모르겠어요 

액정나간 전화는 아예 꺼버리고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3일째 꼼짝도 안해요” 

“.........” 

“그제 강유네 아버님이 찾아와서는 

둘이 방에서 한참 얘기하던데.. 

오피스텔도 처분하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의식은 바로 돌아왔었나요?” 

“병원 옮기면서 바로 깨났다는거 같아요” 

“언제 퇴원한겁니까?” 

“병원에는 이틀 밖에 안있었어요 

사고나던날 강유네 아버님이 남동생을 부르는게 싫었는지 

나더러 와달라는 전화가 왔더라구요” 

“...........” 

“강유가 퇴원하던 날에도 내가 여기 와서 

혜연누나 상태 알아보고 갔어요 

오늘에야 제대로 깨어났다더라 얘기하니까 

나더러 누나 전화는 받지 말라더군요” 

“왜요?” 

“모르죠.. 도무지 알수 없는 놈이니까” 

“그 친구는 괜찮은 겁니까?” 

“사고나면서 머리를 좀 부딪혔는지 

이마가 꽤 긁히고 팔목 뼈 금간거 말고는 괜찮아요” 

“.........” 

“고딩때부터 그렇게 쏘고 다녀도 큰 사고한번 없었는데 

순간적으로 실수라도 했던가봐요” 

“나한테 전화 좀 하라고 전해줄래요?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민혁이 혜연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하는듯한 구재진은 

알았다는 말을 하며 병원을 나갔다 

구재진은 서문강유가 일부러 사고를 낸거라는건 모르고 있는듯하다 

구급차를 불러 함께 왔던 남자의 말을 들었던 유정은 

분노를 터트릴 대상조차 다쳐 의식이 없으니 화가나서 안절부절 못했지만 

혜연에게 모르는 척 하자는 민혁의 말을 결국은 따라주기로 했었다 

혜연은 민혁과 유정이 그 사실을 아는걸 원치 않을 것이다 

민혁은 사고가 나던 날 서문강유와의 전화통화중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신이 계속 주변에 기웃거리면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할수도 있다는거. 

더 심하면 당신 때문에 정혜연까지 내가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거.” 

민혁이 서문강유를 자극해 그런 무서운 짓을 한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민혁의 마음이 다시 어둡게 가라앉는다 

틀림없이 전달이 되었을텐데 서문강유에게서는 전화가 없다 

혹시 돌아올지 모를 강유를 한참이나 기다리다 잠이 든 혜연이 

눈을 떴을때는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녀의 손을 감싸쥐고 있던 민혁이 

빠르게 손을 놓으며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일어선다 

“아침 먹으라고 깨우려다가 

너무 곤히 자길래 못깨웠어” 

“밥 생각 없어요” 

“밥을 먹어야 약을 먹지” 

걱정스런 얼굴로 침대 식탁을 세워놓은 민혁이 

식판을 올려놓은 후 물을 받아다 준다 

“조금이라도 먹고 약이랑 홍화씨 먹자구” 

“........” 

혜연은 내키지 않는 아침을 조금씩 떠먹었다 

모두들 잠든 야심한 시간에 강유가 다녀간게 마치 꿈을 꾼듯하다 

하지만 강유의 이마에 붙어있던 흰색 거즈가 선명히 떠오르고 있고 

옆 끈이 풀어져 있는 그녀의 병원복 바지가 꿈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소독할 시간입니다” 

자그마한 은쟁반에 소독용품과 거즈 뭉치를 가지고 온 

간호사가 생긋 웃으며 밥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본다 

“이제 아침 먹어요?” 

“보기보다 잠꾸러기라니까요” 

끈이 풀어진 바지를 걷어내며 간호사의 얼굴이 조금 찌푸러진다 

느슨해진 거즈를 떼어내던 간호사가 혜연을 본다 

“상처 만졌어요? 거즈가 엉망이네?” 

“...조금요..” 

“아직까지는 상처 만지지 말아요 

벌써 간지럽기 시작해요?” 

“아니요..” 

“언제쯤 퇴원하는 겁니까?” 

“다리는 2주정도면 통원치료 해도 될 것 같은데 

어깨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담당 선생님 회진돌때 여쭤보도록 하세요” 

“일찍 나가고 싶어요” 

“어깨뼈 탈골은 처음 치료가 중요해요 

잘못하면 습관성 탈골이 되서 평생 고생한단 말에요” 

“들었지 혜연씨?” 

“홍화씨는 구했어요?” 

“구했죠.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남자친구가 자상해서 좋겠어요 

뼈 다친데 좋은게 뭐냐.. 

상처 아무는데 좋은 음식이 따로 있냐.. 

매일매일 궁금한 것도 많아요” 

“남자친구가 아니라 고향오빠 입니다” 

작게 웃으며 대답하는 민혁의 말에 애매한 미소를 띄며 

그들을 보던 간호사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혜연이 먹고 있던 식판 그릇의 뚜껑을 덮는걸 보며 

민혁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고 식판을 치워주었다 

“아직도 며칠이나 더 있어야 한다면 

다인실로 옮기고 싶은데...” 

“그냥 있지 왜?” 

“무료하기도 하구요... 다인실로 옮기면 

민혁씨가 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응답해 줄수 없는 그의 마음이라는 사실은 달라진게 없으면서도 

그녀의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것 같아 미안함이 큰 이유이다 

아직은 걸음을 걸을때 통증과 부자연스런 어깨 때문에 혼자 움직이기는 힘들지만 

다인실 이라면 누군가 다른이의 도움을 받기가 수월할 것이다 

“일단 내가 간호사한테 말해놓을께 

보니까 6인실은 너무 복잡하던데 4인실도 괜찮지?” 

“예” 

병실을 옮기는 것에 대해 아직은 이르다는 말로 반대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민혁은 별다른 말이 없다 

“뭐 또 원하는거 없으십니까?” 

“병원 마당에라도 나가고 싶은데..” 

“답답해?” 

“아주 많이요” 

“휠체어 가져올게” 

휠체어를 가져온 민혁은 옷장에서 자신의 쟈켓을 꺼내어 혜연에게 입혀주었다 

그의 쟈켓에서 전에 비닐하우스 에서 맡았던 향이 희미하게 베어나온다 

병원 앞마당으로 나가며 깊이 숨을 들이쉬는 바깥공기는 

차갑고 상쾌하게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그녀의 숨을 트이게 하고 있다 

기다란 벤치 옆에 휠체어를 놓은 민혁이 옆에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을 꺼낸다 

“혜연씨가 중 3때쯤인가?... 내가 군대에서 휴가 나와 

시골집 갔을때 경태네로 인사를 드리러 갔거든.. 

근데 혜연씨가 경태네 마당 평상에서 친구들한테 

뭔가 노래를 가르쳐 주고 있더라구” 

“경미네 말이에요?” 

“그래. 경미네라고 치자구 

친구들 몇 명한테 무슨 노래인가를 가르쳐 주는데 

한 친구가 지독한 음치인지 너무 엉망인거야” 

“유정인가 보네요.. 노래 엄청 못하거든요” 

“방안까지 들리는 혜연씨 목소리가 굉장히 맑은 음색이라 

경태네 부모님들 얘기는 하나도 안들리고 그것만 들었지” 

“...........” 

“인사 드리고 경태랑 나와서 툇마루에 앉아 군화를 신는데... 

그때는 수리하기 전이라 경태네가 완전 구옥이었잖아” 

“수리한지 5년 정도밖에 안됐으니까..” 

“평상에서는 여전히 노래 강습이 한창인데 

혜연씨가 아무리 반복해서 불러줘도 

음치걸이 너무 생뚱맞은 음을 계속 내는거야 

나중엔 하다하다 화가 나는지 혜연씨가 뭐랬는지 생각나?” 

“뭐랬는데요?” 

“벌떡 일어서서 속상해 죽겠다는 얼굴로 음치걸을 째리더니” 

“...........” 

“‘양동이 뒤집어쓰고 혼자 연습해!’ 그러더라구 

그게 얼마나 웃기던지 계속 혼자 키득대고 웃으니까  

경태놈이 역시 군대는 갈데가 못된다는 둥 그랬던게 생각나네..” 

노래를 제법 잘했던 혜연은 인기 있는 가요들의 

가사를 외워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곤 했었다 

심각할 만큼 노래를 못하는 유정은 다른 친구들에게 ‘시끄럽다’ 라든지 

‘헷갈리니까 조용해라’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같이 배우려 따라 부르곤 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생각이 나는지 민혁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걸려있다 

병실로 돌아온 혜연은 강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그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있었다 

유정과 교대를 하고 집으로 운전을 하는 민혁에게 서문강유의 전화가 왔다 

민혁의 아파트 위치를 물은 서문강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놀이터로 내려오라는 전화를 다시 걸어왔다 

놀이터 벤치 끝에 앉아 희뿌연 담배연기를 내뱉고 있던 서문강유는 

다른쪽 벤치 끝에 걸터앉는 민혁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구재진이라는 친구에게 전달받은 거죠?” 

“..........” 

“꼭 할말이 있어서 봤으면 했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는 서문강유는 비어있는 그네를 초점 없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의 이마 한쪽에는 흰색 거즈가 얹혀져 있고 

목에 거는 것도 없이 손등까지 깁스가 되어있는 손은 

기다란 손가락 마디들이 그대로 나와 있다 

민혁은 그를 만나면 하고자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떼었다 

“내일 혜연씨 병실을 4인실로 옮길거에요 

일단 내일 까지만 내가 병원에 가서 짐 옮겨주면서 

혜연씨 만나기 힘들게 됐다고 적당한 구실을 붙여 말할게요” 

“..........” 

“이제 내가 혜연씨 앞에 나설 일 없을겁니다 

물론 내 핸드폰에서도 혜연씨 번호 삭제시키고 

다시는 만나지도 통화하지도 않을거구요” 

서문강유가 작은 바람소리를 내며 픽 웃어버리고 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민혁에게 그가 낮은 음성으로 묻는다 

“...왜..” 

“........” 

“....갑자기 왜요..” 

“내가 서문강유씨를 자극했다는거 알겠어요 

그때 했던말 진심이라는 것도 알겠구요” 

“.........” 

“둘 사이에 끼어들어 주제넘게 굴은거 인정 합니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내일 병실만 옮겨주면 더 이상 나는 혜연씨 몰라요 

서문강유씨 몸이 좀 불편해도 낮에는 

혜연씨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가능하면 가있는게 좋겠네요” 

민혁의 말을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는 서문강유는 

표정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그가 혜연을 데리고 일부러 사고를 낸게 민혁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민혁은 이제 서문강유가 얼마나 

위험할수도 있는 남자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민혁의 말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던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정혜연 번호를 삭제시키고 더 이상 안만난다구요..” 

“그래요” 

“마음에 담겨있는 건 어떡할 겁니까?” 

“........” 

“그쪽 마음속에 이미 담아 놓은 정혜연은 

어떻게 지워버릴 건지 말해봐요” 

“시간이 지나면 지워질 겁니다” 

“그래요? 시간만 지나면 지워지는가요? 

“........” 

서문강유는 그만 돌아가려는 듯 발걸음을 떼다가는 

걸음을 멈추고 민혁에게로 얼굴만 조금 돌린다 

그의 옆 모습 선이 의외로 부드럽다는 생각을 하는 민혁에게 

서문강유의 높낮이 없는 단조로운 말이 들려왔다 

“나를..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말아요” 

노크도 없이 갑자기 혜연의 병실로 들어서는 강유를 

유정이 노골적으로 찌푸린 얼굴을 하고 쳐다본다 

침대머리를 올려 비스듬히 기댄채 성의 없이 드라마를 

보고 있던 혜연의 앞으로 다가온 강유는 

등 뒤에 있는 유정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가 있어줄래요?” 

유정은 잠시 강유의 뒷모습을 언짢은 표정으로 보다가 나갔다 

며칠 만에야 제대로 얼굴을 볼수있게된 강유는 

가만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는 

손바닥으로 스치듯 혜연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의 이마에 붙어있는 흰색 거즈가 유난히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이마.. 많이 긁혔어?” 

“별로” 

“얼굴에 흉 남는거 아냐?” 

“상관없어” 

강유의 왼쪽 손은 손가락 마디들만 나와 있고 손등까지 깁스가 되어있다 

입고 있던 쟈켓을 벗어 쇼파에 던져둔 강유가 의자를 당겨 침대 옆으로 앉는다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거야” 

“일주일만 더 있다가 퇴원하려구 

손목 깁스는 목에 거는거 안해도 돼?” 

“팔 아래쪽만 깁스한거라 상관없어” 

“새학기 수강신청 준비해야 할텐데... 

이번엔 되도록이면 오전수강을 많이 잡으려구” 

“.........” 

“그래도 과외는 지장 없어 다행이야 

학생들 집에 전화해서 2~3주 수업 못한대도 

그만두라는 말은 안하는거 보니까 

내가 생각보다는 인정을 받고 있었나봐” 

“.........” 

“강유는 수강시간표 짰어?” 

“왜 바로 안뿌리쳤어..” 

“응?” 

“내 손..” 

“.........” 

“빼내려고 애쓰지도 않더라?”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어” 

“.........” 

“전화는 왜 꺼놨어?” 

“생각할게 많아서” 

“무슨 생각?” 

“여러가지” 

“새벽에는 왜 그냥 가버렸어?” 

“별로 할말이 없어서” 

“강유야..” 

“........” 

“정말... 죽으려고 했어?” 

강유는 대답 없이 혜연의 눈을 들여다 보고 있다 

될 수 있으면 묻고 싶지 않아 가벼운 대화를 하려던 그녀였지만 

결국은 이렇게 묻게 되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듯 하던 그의 눈동자에 희미한 동요가 보인다 

“정말로 나를 데리고 죽으려 했던거야?” 

“...그랬을거야..” 

“그럼 속도는 왜 떨어뜨렸어?” 

“누나가 죽을까봐”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강유의 생각을 알수가없다 

강유는 담요위에 놓여있던 그녀의 손을 하나 가져가 

엄지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손등을 가만가만히 쓰다듬고 있다 

닿아 움직이고 있는건 엄지손가락 하나뿐인데 

마치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애무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움직임이다 

말없이 그를 보고 있는 혜연을 향한 강유의 눈은 짙은 번민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왜 이렇게 되버렸을까?”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하는 강유의 말이 

혜연은 그들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말은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난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 

“왜 누나가 아니면 안되는걸까?” 

“.........” 

“난 왜.. 정혜연이 아니면 안되는걸까? 

세상에 셀수도 없이 많은 여자들 중에 

왜 반드시 정혜연 이어야만 하는걸까..” 

“..........” 

“하나하나씩 되돌아가 지워버리는게 나을지도 몰라 

처음으로 누나를 안던날까지를 지우고..” 

“...........” 

“처음으로 누나에게 키스하던날 까지를 지우고..” 

“...........”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누나를 보게 되던날까지로 

되돌아가면서 하나하나 모두 지워버리는 거야..“ 

“강유야..” 

“그렇게 다시 빈껍데기뿐인 심장으로 되돌아 가는게 

이렇게 누나를 가득 채운 심장으로 

미쳐가는 거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어“ 

혜연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째서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최악의 생각까지 해서 누나를 다치게 했으면서 

여전히 누나를 향한 소유욕이 내 스스로도 감당이 안돼 

지금도 누군가 누나를 만지기라도 할까 조바심이 나고 

누나가 그자식이건 다른 남자건 눈에 담게 될까 초조해” 

“...강유야..” 

“짜증나는 일이지?”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래?” 

“.........” 

“말해봐..” 

“..........” 

“네 말대로 모든걸 버리고 우리 둘이 

어딘가로 숨어버리면... 

그러면 너랑 나.. 행복할수 있을까?” 

“가둬두고 싶을 거야..” 

“나를?” 

“방안에서 한발짝도 못나가게 가둬두고 싶을 거야 

다른 남자가 누나와 말을 섞는 것조차 참지 못할거고 

누나가 나한테 지쳐 도망가 버릴까봐 늘 불안할거야” 

“.........” 

강유는 애써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혜연의 눈속 깊은곳을 들여다 보는듯한 시선을 던진다 

그의 눈동자는 알 수 없는 일렁임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붙잡고 있다 

조용한 병실에 그들의 눈빛이 얽혀 무거운 공기가 떠돌아다닌다 

마침내 입술을 움직이는 강유의 목소리는 지독히 낮게 가라앉아 있다 

“....할수.. 있을까?..” 

여전히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고 있던 강유의 손이 차츰 멈춘다 

강유가 하는말이 무슨 의미인지 복잡하게만 들린다 

“내가 이대로 누나를 붙잡고 있으면 

우린 결국 서로를 죽이게 될지도 몰라” 

“무슨 뜻이야..”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놓아지지가 않아” 

“..........” 

“내 옆에서 웃지 못하고 점점 시들어가는 

정혜연을 계속 모른척할수 있을까? 

매발톱꽃을 말라 죽였던 것처럼... 

끝까지 누나의 소리 없는 비명을 무시할수 있을까?” 

깊은 눈동자로 혜연을 보고 있던 강유는 

병원복 밖으로 훤히 드러난 그녀의 목을 손끝으로 쓰다듬는다 

“목걸이... 어쨌어?” 

“사고나던날 검사 때문에 풀렀던가봐 

내 소지품들하고 같이 담아줘서 넣어놨어” 

“어디?” 

“옷장안 쇼핑백에..” 

옷장앞으로 걸어간 강유는 쇼핑백을 뒤적거려 

그가 선물했던 목걸이를 찾아낸후 혜연의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용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혜연에게 

강유의 팔이 감싸듯 목 뒤로 오더니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찬 금속의 느낌이 그녀의 목에 사뿐히 내려앉아 살짝 몸이 움츠러든다 

그의 얼굴을 따라 고개가 들어 올려져 있는 혜연을 보던 강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쇼파로 걸어가 그의 쟈켓을 집어 들고 있다 

강유가 오늘 쏟아놓은 말들이 소리 없이 그녀의 머릿속을 휘집고 있는데 

그는 조용히 병실문 앞으로가서 손잡이 레버를 잡고는 뒤를 돌아 혜연을 본다 

“병원으로는 이제 오지 않을거야” 

그는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오늘 강유는 그녀의 다리 상처를 보려 하지도 않았고 

손등과 목을 가벼이 쓰다듬은 외에는 간단한 키스조차 하려하지 않았다 

강유와 그녀의 관계에 대한 앞으로의 이야기 역시 하지 않았다 

강유역시 혜연처럼 아무것도 정리된게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이제 강유를 어찌 하면 좋을지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것처럼 

그 역시 그녀를 어쩌면 좋을지 알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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