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 (27/34)

제 5 장 : 그의 사랑은 광기(狂氣)를 품고 있다 

#... 7 

경찰서에서의 조서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강유는 클럽의 책임자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몇 시간전 강유는 소리를 내지르며 그의 팔에 매달리는 혜연 때문에 

이슬에게로 뻗어내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할말이 많은 듯 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악을 쓰고 있는 선애와 함께 이슬을 업은 재진이 나가고 난후 

클럽의 책임자가 몇 명의 남자들과 함께 와서 강유를 붙잡았다 

남자중 한명이 혜연의 팔을 쥐고 끌어당기자 ‘만지지 말라!’는 고함소리를 내며 

거친 발길질을 한대 날리는 강유에게 남자들 몇이 달려들어 겨우 진정시켰다 

파손된 기물에 대한 보상과 영업 방해에 대한 손실로 요구하는 금액을 

강유가 순순히 합의하자 클럽의 책임자 역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곧바로 합의서를 작성해 주고 있다 

강유가 고개를 돌려 긴 의자에 맥없이 앉아있는 혜연을 보더니 

자신의 얼굴을 감싸 쓸어내리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혜연이 복도로 나오며 

들여다본 액정에는 민혁의 이름이 뜨고 있다 

시골집에서 며칠을 있다 돌아온 민혁의 마음이 무겁다 

올해 32세가 된 그에게 결혼을 재촉하는 모친의 잔소리를 묵살해 버렸음에도 

조만간 선을 보러 다시 내려오라는 말을 뒤로하고 돌아온 민혁은 

자꾸 가라앉으려는 마음을 띄워보려 늦은 시간임에도 쿠키를 만들었다 

브라우니 쿠키가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오븐 밖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쿠키를 오븐에서 접시로 담아내며 민혁은 낮에 통화를 했던 혜연이 또 떠올랐다 

혜연과 정식으로 사귄 것도 아니고 그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여자도 아니다 

이렇게 어정쩡한 관계임에도 그는 혜연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했을 때는 

한동안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서운함 때문에 기분이 묘했었다 

그리고 2년여 후에 그녀의 이혼소식과 이혼의 원인이 된 불임에 대해 들었을 때는 

제대로 대화도 한적 없는 그녀를 향한 안쓰러움 또한 생각보다 컸었다 

마을회관에서 혜연을 마주하던 날은 민혁의 존재가 밍밍한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해 기습키스까지 하게 만들어 버렸다 

시골집에 있을때도 두어번 통화를 했지만 그녀는 간단히 전화를 끊으려 애쓰는 듯 했다 

쿠키를 들고 쇼파에 앉은 민혁은 시계를 흘금 보고는 혜연에게 전화를 했다 

금새 받지 않는 그녀의 전화에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은 민혁이 

전화를 끊으려할 때 혜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자?” 

<아니요..> 

“브라우니 쿠키를 만들었는데 

냄새가 너무 고소해서 약 좀 올려주려고” 

<나중에.. 전화할께요> 

어디에 있는 건지 목소리가 울려서 들려오는 혜연의 음성은 

평소보다 심하게 가라앉고 기운 없게 느껴진다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아닌게 아닌거 같아” 

<.........> 

“상담정도는 하게 해줘도 되잖아” 

<그만 끊을께요> 

“잠깐.. 하나만 물을께” 

<........> 

“좀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혜연씨 요즘 편안해? 

에이..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정혜연씨가 지금 행복한가 궁금해서..” 

<.........> 

잠시동안 기다려도 그녀는 대답이 없다 

전화가 끊긴건가 들여다본 액정에는 통화중 초침이 올라가고 있다 

그녀의 침묵은 그의 마음에 또 다시 불안을 안기고 있다 

“혹시 뭐 안좋은 일 있는거야?” 

<끊을께요> 

혜연은 그대로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도 열기를 담고 있는 쿠키를 한개 집어 들어 

건성으로 먹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민혁은 전화부를 검색해 

[그녀석]이라 입력해놓은 서문강유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을 들려주던 컬러링이 기계음을 내는 여자에게로 넘어간다 

시골집에 다녀온 후 한번쯤은 그를 꼭 만나야한다 생각했다 

지금으로서는 누군가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문제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민혁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털어내고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재발신을 누르려던 민혁은 또다시 시계를 보고는 그냥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민혁과의 전화를 끊은 혜연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대로 서있다 

그의 질문에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할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민혁의 뜬금없는 질문을 애써 털어내며 

혜연은 재진과 통화를 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양호해요. 타박상 조금 하고.. 

갈비뼈도 부러진건 아니고 금이 간 정도니까> 

“양호한게 아니네요” 

<다행히 높은 2층은 아닌데다 누나가 말려줘서 그정도인 거에요 

누나 아니었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라구요> 

“이슬씨 부모님은 뭐래요?” 

<이슬이 녀석 강유한테 그렇게 당해놓고도 

놀라서 달려와 물어대는 부모님한테는 놀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우겨대고 있어요> 

“..........” 

<한동안 입원해야 한다는데 늦어도 

개강 전에는 퇴원할 수 있을거에요> 

“선애씨도 화 많이 났죠?” 

<예. 이슬이 보다 그녀석이 더 방방 뛰어서 

지금 내가 아주 죽어나고 있어요> 

“미안해요 재진씨” 

<그 말은 강유놈한테 하라 그래요 

그놈 가끔씩 그렇게 돌아버리는게 문제에요. 문제> 

한탄스런 재진의 말을 듣다가 전화를 끊은 혜연이 다시 들어가자 

합의서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양쪽의 합의서를 가지고 조서를 마친 후에 나올 때는 

경찰서에서 시간이 꽤 많이 걸린 탓에 진즉에 자정을 넘어선 시간이었다 

혜연의 마음은 커다란 납덩이를 달아 놓은 듯 자꾸만 발밑으로 꺼져내려간다 

경찰서를 나와 말없이 택시를 잡는 그녀의 옆에 강유가 바짝 붙어서있다 

“재진이 놈이 누나 부른거야?” 

“그래” 

“쓸데없이..” 

더 이상 말이 없는 그녀를 흘끔 보고는 강유도 입을 다물어 버린다 

택시에서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혜연을 그가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다 

원룸으로 들어선 혜연이 간단히 씻고 나오는 동안 강유는 

그녀의 서랍장에서 자신의 옷을 꺼내 입은후 앉지도 않고 그대로 서있다 

그를 지나쳐 침대에 걸터앉는 그녀에게 강유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한테 할말 있으면 해” 

“실망 했어” 

“.........” 

“실망스러워” 

“취했었어. 누나인줄 알았단 말야” 

“무슨 말을 하는거야” 

“정말 누나인줄 알았어 

취해서 내 정신 아니었단 말야” 

“지금 그 얘기를 하는게 아니잖아 

어떻게 남자도 아니고 여자한테 그런 폭력을 휘둘러 

그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나쁘다고 말했잖아” 

“.........” 

“한참 입원해야 한다던데 어떡할 거야” 

“그 기집애가 또 무슨 얘기 했어” 

“뭐?” 

“만난거 왜 말 안했어 

혼자 무슨 생각을 했던거야?” 

“강유야” 

“이제 나한테 붙지 못할거야 

또다시 누나 찾아와 헛소리 할일도 없을거고” 

강유의 덤덤한 말투에 혜연은 암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강유는 지금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혜연이 긴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도 혜연이 원인 이었다 

강유의 폭력성을 드러나게 하는 원인은 늘 그녀가 되고 있다 

그녀는 도무지 강유를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할지 막막해진다 

혜연의 앞에 바르게 서있는 강유는 

그녀의 긴 한숨소리에 덩달아 작은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 하면 돼” 

“뭐를” 

“누나 화났잖아” 

“그래. 많이 화나” 

“내가 어떻게 하면 누나가 화 풀거냐 말야” 

“약속해” 

“무슨 약속?” 

“다시는 어떤 이유로든 폭력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 

“알았어” 

“쉽게 대답하지마” 

“약속해. 약속하면 되잖아” 

침대에 걸터앉은 혜연의 앞에서 마치 벌을 받는 아이처럼 

바르게 서있던 강유는 새끼손가락을 펴고 손을 쭉 내밀고 있다 

바로 몇시간 전에 클럽에서 난동을 부리던 강유와 

지금처럼 어린아이 같이 새끼손가락 약속을 걸려는 강유의 모습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약속하라며.. 안해?” 

“새끼손가락 약속의 의미를 알아?” 

“대충..” 

“그건 육체와 육체의 연결이 아냐 

서로의 마음 중심끼리의 서약을 상징해” 

“알아. 그리고 약속을 어기면 새끼손가락을 

잘라도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끔찍한 소리.” 

“누나가 한이슬 때문에 나한테 등돌릴까봐 겁났었어 

이제 안그럴께.. 누나가 화내는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그녀와의 이별을 치러낸 후로 강유는 성격조차 조금 변한 듯 하다 

늘 무언가 불안해하고 이렇듯 갑작스런 감정변화의 폭이 커졌다 

강유는 여전히 그녀 앞에 손가락을 내밀고 있다 

혜연은 그의 눈을 곧게 쳐다보며 손가락을 걸었다 

그녀 앞으로 다가와 무릎걸음을 하듯 방바닥에 내려앉는 강유는 

손가락 끝을 구부려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도장 찍어야지” 

혜연이 엄지 손가락을 강유의 엄지에 맞추려 하자 

그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뒤로 빼며 고개를 흔든다 

“그 도장 말고” 

혜연의 앞으로 바짝 다가온 강유는 손가락을 걸고 있는 

손을 당겨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곧 떨어졌던 그의 입술이 다시 혜연의 입술을 덮으며 그녀를 침대로 넘어뜨린다 

혜연의 허리를 들어 침대 안쪽으로 옮기는 강유의 키스가 깊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혀가 혜연의 혀를 감아 돌리며 엉켜들고 있다 

그녀의 아랫입술을 물어가며 가볍게 빨아 당기고 핥아내는 

그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강유의 손은 이미 그녀의 스웨터 속으로 들어와 밀어올린 

브래지어 밑으로 드러난 가슴을 움켜쥐고 손가락 끝으로 돌기를 감아 돌리고 있다 

혜연은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에서 벗어나며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만해..” 

“왜 또” 

혜연의 거부가 아직도 화를 품고 있는 이유인지 쳐다보는 강유는 

갈증을 가득 담은 눈과 뜨거운 숨을 그녀에게 뿜어내고 있다 

“오늘은 안돼” 

“왜?” 

“마법” 

두달에 한번정도씩 짧게 하는 매직이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혜연의 심플한 대답에 강유의 눈썹이 찌푸러지며 그녀의 목에 얼굴을 떨군다 

그의 무게가 혜연의 가슴을 짓누르며 묵직하게 실려 있다 

“무거워..” 

“잔인해” 

“비켜봐 강유야” 

“젠장맞을 마법.. 

빌어먹을 해리포터” 

“해리포터가 왜” 

“그녀석이 마법을 잘못써서 여자들이 그렇게 된거야” 

“강유야..” 

여전히 그녀의 위에서 팔꿈치를 받쳐 내려다보고 있는 강유는 

그의 농담기가 담긴 어이없는 말에도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혜연을 불안스레 쳐다보고 있다 

“왜 또 그런 목소리로 불러” 

“이슬씨한테 사과할거지?” 

“.........” 

“그쪽 부모님들 펄쩍 뛰는데도 

강유 감싸느라 혼자 다친거라고 하고 있대” 

“.........” 

“싫어?” 

그녀에게서 떨어져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강유는 

뒷모습이라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강유는 대답 없이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후 샤워를 하고 나온 강유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를 한컵 가득 따라 마신다 

“핸드폰 잃어버렸어” 

“........” 

“아까 클럽 어딘가에다 흘렸나봐” 

“강유야..” 

“내일 오후에 새로 살때까지 내일은 연락 안될거야” 

“이슬씨..” 

“그만 자자 누나. 금새 수영갈 시간 되겠다” 

강유는 혜연의 말을 잘라내며 더 이상 한이슬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했다 

끝내 사과를 거부하는 그를 보며 혜연은 한계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녀가 강유를 변화 시킬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그녀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니 그녀가 변화시킬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건 

어쩌면 그녀의 교만스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누워버린 강유를 보며 불을 끄고 

침대 안쪽에 눕는 혜연을 그가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강유는 볼멘소리로 해리포터의 흉을 보는 소리를 툴툴거리다가 금새 잠이든다 

몸은 피로로 인해 침대 밑으로 꺼져들어 가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한 혜연은 한참이나 그의 고른 숨소리를 귓가에 듣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카페로 찾아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던 민혁이지만 어제 통화를 할때의 

혜연의 음성이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서문강유는 오전에 두어번 걸은 민혁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그는 키친타올 한 장을 잘 접어 작은 통에 깔아놓은후 

어제 만든 브라우니 쿠키를 담았다 

일식집에서 스시를 포장한 민혁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러 

비프 퀘사딜라를 포장주문 했다 

점심시간 전에 일찌감치 카페에 도착해 들어서자 혜연의 눈이 조금 커진다 

“혼자있어?” 

“손님 있잖아요” 

“동문서답이군. 여기 사장님 말야” 

“오전에 나가셨어요”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혜연은 조금 더 마른듯하다 

민혁의 갑작스런 방문에 조금 당황스러워 보이는 혜연을 보는 

그의 얼굴이 살짝 찌푸러 지고 있다 

“설마 그 꼬챙이 같은 몸매로 

다이어트라도 시작한건 아니겠지?” 

“무슨 일이에요?” 

“점심 배달 왔습니다” 

카운터 위에 줄줄이 올려지는 박스와 작은 쇼핑백들을 쳐다보던 

혜연이 시선을 돌려 민혁의 얼굴을 마주한다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는 민혁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회는 별로라 했으니까 혜연씨는 퀘사딜라 먹고 

초밥은 여기 사장님 좋아할지 몰라 사온 거니까 

나중에 들어오면 간식으로 드시라고 해요” 

“고맙긴 한데요..” 

“알아. 궁금해서 와봤어 

어제 목소리가 영 시원찮아서..” 

차를 마시고 있던 여자 두명이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나가자 

카페에는 손님도 없이 혜연과 민혁만 남았다 

찻잔을 쟁반에 담아와 정리를 하는 혜연을 보며 

민혁은 박스 포장을 풀고 퀘사딜라를 살짝 만져보았다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는 퀘사딜라는 아직도 따듯한 온기를 품고 있다 

“여기 이렇게 손님 없으면 안되는거 아냐?” 

“돈이 궁해서 하는 카페는 아닌거 같으니까 

적자 나는거만 아니면 괜찮을 거에요” 

“그래?” 

“그래도 저녁엔 손님이 꽤 많아요” 

“대충 정리하고 따듯할 때 먹지?” 

컵을 씻어 정리하고 돌아서는 혜연에게 

퀘사딜라 한 조각을 집어든 민혁이 건네주고 있다 

“알아서 먹을께요” 

“그러니 그만 가달라?” 

“민혁씨 여기 있으면 내가 불안해요” 

“한 조각 먹는 거만 보고 갈게” 

“.........” 

“아직도 그래?” 

“뭐가요?” 

“그 친구” 

얼굴빛이 조금 어두워지는 혜연은 민혁에게서 받아든 

퀘사딜라 조각을 한입 베어 물었다 

쇼핑백에 함께 들어 있던 캔 음료를 꺼낸 민혁이 꼭지를 따서 건네준다 

“맛있네요” 

“그거 먹고 이 쿠키도 시식해 보라구” 

“쿠키요?” 

“어제 브라우니 쿠키 구웠다고 했잖아” 

퀘사딜라를 먹다말고 민혁이 열어놓은 통에서 쿠키를 하나 집어먹은 혜연은 

생각보다 상당히 맛있는 쿠키에 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긴다 

“이거 진짜 민혁씨가 한거에요?” 

“네에~” 

“꽤 맛있네요” 

“많이 드십시요” 

이 시간에는 오지 않는 강유이지만 혹시라도 그가 카페로 올까 

조바심이 나고 있는 혜연과 달리 민혁은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그녀가 궤사딜라 한 조각을 다 먹고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난... 결혼하면 아파트 생활 안할거야” 

마시던 캔을 손에 쥐고 있는 그녀는 뜬금없는 민혁의 말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려는 듯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마당 있는 집에다 진돗개 한 마리 키우면서 

여름밤에는 평상에 누워 별보기도 해주고..” 

“절봉이 말이죠?” 

“그래. 절봉이” 

“개랑 같이 마당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들 모습까지 그려보지 그래요?” 

“아이는 세명쯤 입양 해야겠다 생각 했었어 

딸 둘에다 내편 들어줄 아들 하나..” 

“민혁씨” 

“혜연씨라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라도 아낌없이 사랑하며 

바른 아이들로 키울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만해줘요” 

“대책 없이 더운 여름의 열기가 식는 밤쯤이면 

다섯 식구가 커다란 평상에 쪼르르 누워 밤하늘을 보는거야 

저기 꼬마별은 니별이고 왕별은 내별이다 투닥거려가며..” 

“..........” 

“이름까지 생각해 놓았었는데 말야 

하늘, 강, 호수, 노을, 바다, 별, 우주, 태양.. 

이중에서 맘에 드는 걸로 고르게 하려고 했었지” 

“.......”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가 모르겠다 

내가 원래 이렇게 어정쩡한 남자가 아닌데” 

“그만.. 가줘요” 

“어제 대답 안했잖아” 

“뭐를요” 

“그 친구하고 행복하다면 

이제 혜연씨 털어낼까 하고..” 

“.......” 

“노총각으로 늙어죽을 생각은 없단 말이죠” 

“.....행복해요..”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민혁은 혜연의 대답에 별다른 말이 없다 

눈싸움을 하듯 서로 피하지 않고 있던 시선에서 

혜연이 먼저 눈을 떨구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입은 행복하다는데 눈이 아니래” 

“민혁씨” 

“행복해서 행복해요가 아니라 

행복하고 싶다고 외치는 행복해요 같아” 

“........” 

“혜연씨는 잘 모르나본데... 

행복한 사람은 해피 페로몬을 뿜어내 

티내려 하지 않아도 누구든 눈치챈다구”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 혜연을 들여다보던 민혁은 

들릴 듯 말듯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밝은 인사를 하며 카페를 나갔다 

혜연은 그가 그려내던 풍경을 생각하며 그 그림 속에 자신을 넣어보았다 

민혁이 말했던 따듯함과 평온함이 있는 그림 속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자신을 책망하듯이 

그녀는 머리까지 저어가며 민혁의 말을 털어내 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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