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 (23/34)

제 5 장 : 그의 사랑은 광기(狂氣)를 품고 있다 

#... 3 

강유는 눈에 힘을 풀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팔을 잡아 끌린채 순순히 걸음을 떼었다 

그를 데리고 몇 걸음 걷던 그녀가 지나던 건물 안쪽으로 강유를 데리고 들어간다 

여전히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듯한 강유를 그녀가 두팔 가득 안아 토닥여 주자 

강유는 티셔츠를 움켜쥐고 있는 팔을 늘어뜨린채 흐트러진 숨을 가다듬고 있다 

“왜 그랬어 강유야” 

“열 받어..” 

“네가 이런 행동 할때마다 겁먹는 나는 왜 생각 안해” 

“........” 

“권민혁씨 깨끗이 정리하려고 부른거야 

내가 강유의 여자라는 얘기 하려고 했던거야” 

혜연의 토닥임에 숨소리가 차분히 가라앉고 있던 강유가 얼굴을 들어 그녀를 본다 

그의 눈은 기쁨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이다 

“이 티셔츠..” 

“알아. 뭐 때문에 강유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 

“아무리 그래도 그런 폭력은 나빠 

널 망치고 날 겁먹게 만드는 폭력은..” 

“누나한테는 미안해” 

“조금만 더 너를 눌러봐.. 자제해봐” 

“그 자식이 자꾸 내 여자를 탐내잖아...” 

강유는 애가 닳아 흐트러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흘리고 있다 

강유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소유욕과 

독점욕을 드러내기 시작한건 작년 여름이 지난후부터 였다 

운동화를 빨고 있던 그녀를 처음으로 안던 날 후부터 

그는 다른 남자가 그녀를 만지는 것조차 무심히 넘기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혁이 나타난 후로 그의 적대감과 경계심은 극에 달한 듯 

이렇듯 광폭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아까와 같은 폭력은 나빠.. 

강유가 사랑하는 정혜연이 너무 놀란단 말야”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는 혜연 앞에서 만큼은 금새 무장해제를 하듯 유순해지기도 한다 

강유가 어이없는 경계심과 적대감을 보이거나 

지금처럼 사고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는건 그녀 주변에 남자가 있을때 뿐이다 

혜연은 품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강유를 끌어안고 조금 더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뿌루퉁한 얼굴이긴 해도 혜연이 유정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원룸으로 바로 가겠다는 말에 강유는 마지못해 그녀가 잡아준 택시에 올랐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페로 오면서 보니 민혁의 차는 경보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있다 

카페로 들어서는 그녀를 카운터 안쪽의 여주인과 

카운터 밖에 서있는 민혁이 복잡한 얼굴로 보고 있다 

“죄송해요 사장님” 

“괜찮아.. 혜연씨가 놀랐겠네” 

“........” 

“끝날 시간 거의 다 됐으니까 그만 가봐요” 

여주인은 자상한 얼굴로 혜연을 위한 배려를 해주었다 

혜연은 작은 가방을 챙겨 민혁과 함께 카페를 나온후 차 앞으로 갔다 

부서진 유리를 품고 있는 민혁의 차를 보자 

그녀의 입에서 어쩔수 없이 한숨이 비집고 나오려한다 

“미안해요 정말” 

“어디 가서 얘기 좀 해” 

“일단 카센터에 맡기고...” 

“따라와 봐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민혁은 성큼 거리고 걸어 

‘아테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층의 카페로 먼저 올라갔다 

어차피 민혁에게 제대로 그녀의 의사를 전달해야한다 

혜연은 자리에 앉아 민혁과 같은 오렌지주스를 주문하고 

유정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혜연의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한다는 말에 유정은 알겠다는 말만으로 전화를 끊어주었다 

잠시후 카페의 종업원이 가지고 온 음료는 두사람 모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정상이 아냐” 

민혁은 마치 풀고 있던 문제의 정답을 알려주듯 분명한 말투이다 

혜연은 전혀 생각도 없는 오렌지주스를 한입 마시고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알아? 그 친구 정상이 아니라구” 

“알아요” 

혜연의 분명한 대답에 오히려 그의 눈이 더욱 복잡해진다 

마음이 답답하게 죄어오는 듯 민혁은 입고 있는 폴로셔츠의 윗단추를 풀러낸다 

“앓고 있어요” 

“뭐?” 

“강유는 사랑의 병을 앓고 있다구요” 

“사랑? 그게 사랑이라구?!” 

“........”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되는대로 폭발 시키는게 사랑이라는 거야?” 

“강유에게는요” 

“하..” 

민혁은 어이가 없는 듯 헛바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은 여전히 부드럽고 고와 보인다 

이 상황에 눈에 들어오는게 어째서 그의 손인지 모르겠다 

혜연은 그의 손에서 눈을 들어 그녀를 보고있는 민혁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민혁은 굳어있는 얼굴만큼이나 굳어진 목소리로 단호히 말한다 

“그만둬” 

“뭐를요” 

“그 친구 만나는거” 

“.........” 

“이유가 뭐야. 그 친구가 뭐랬기에 다시 만나는 거야?” 

“........” 

“단호하게 쳐낸 듯 하더니 왜 그렇게 됐냐말야” 

“......죽겠대요..” 

“뭐?” 

“그를 버리면.... 강유도 자신을 버리겠대요” 

“........” 

“자신의 생모를 뿌렸던 산에서 뛰어내리겠대요” 

“그래서.” 

“강유는 해요” 

“그 말 때문에 돌아갔다?” 

“민혁씨는 몰라요. 강유는 정말로 그럴수 있을거에요” 

“기가 막히는군” 

“강유를 버릴수는 있어도... 

강유가 스스로를 버리게 할순 없어요” 

“..........” 

“아까 봐서 알겠지만 민혁씨는 강유를 자극해요 

강유를 자극하는 상황 만들고 싶지 않아요” 

“..........” 

“이제 서로 얼굴 보는일 없었으면 해요” 

“틀렸어” 

“뭐가요” 

“혜연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그 친구처럼 빈틈없이 소유하려 하는거?” 

“........” 

“난 적어도 평생을 함께할 사랑은 신뢰라고 생각해 

서로를 알아가면서 그 사람의 감정까지도 신뢰하게 되는거. 

내가 이렇게 혜연씨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쌓고자 했던거.” 

“강유에게는 강유 방식의 사랑이에요 

지독한 열병과도 같은 사랑이라구요” 

“대답해봐 그럼. 노력하는거 빼고 

혜연씨는 그 친구 사랑해?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혜연씨가 진심으로 그 친구를 사랑하는거 같았으면 

나도 미련하게 내 감정 전하려 애쓰지도 않았어” 

혜연의 대답을 기다리는 민혁의 얼굴은 그녀보다도 더 복잡해 보인다 

그것만큼은 그녀도 정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강유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되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분명한 말투로 대답을 했다 

“사랑해요” 

“거짓말” 

“난 거짓말 안해요” 

“내가 하는 거짓말 보다 더 확실한 거짓말이야” 

“수리비 꼭 주고 싶어요” 

“말 돌리지마” 

“민혁씨한테 빚진거 있는 마음 남기고 싶지 않아요” 

“.........” 

“강유한테 집중하고 싶어요 

강유를 자극하는일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내가 아니면 그런 일 없을거라 장담해?” 

“........” 

“다른 남자는 봐줄 거라고 생각해?” 

“그건 민혁씨가 상관할바 아니에요” 

“혜연씨 주변에 남자만 있으면 그때마다 그 친구는 미치고 

혜연씨는 혼자 고스란히 떠안겠다는 거야?” 

“나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니까 

내가 변화시킬 거에요” 

“뭘 모르네..” 

“........” 

그녀가 무얼 모른다는 건지 민혁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꾹 다문 입술로 더 이상 아무말도 않는 혜연을 보던 민혁은 

다시금 작은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일단 알았어요. 혜연씨 생각 알았으니까 

카페로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을께 

대신 전화까지 피하지는 말아 

유정씨와 비슷한 마음으로 걱정되서 그런다 생각해” 

그녀 만큼이나 복잡하고 심난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민혁은 카페에서 나와 그의 차로 걸어갔다 

민혁이 운전석에 떨어진 유리들을 차량용 걸레로 대충 털어낸다 

다시 한번 수리비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할말이 잔뜩 남은 얼굴로 보던 민혁은 

휑하니 뚫린 운적석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혜연이 원룸으로 들어가자 침대머리에 기대 앉아 눈을 감고 있던 

강유가 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서 그녀의 찬 손을 두 손으로 감싼다 

“춥지?” 

“괜찮어” 

“누나 친구한테 전화했어?” 

“어” 

“화내지는 않고?” 

“별로” 

“그 자식은?” 

“뭘?” 

“다시 만났어?” 

“하던 말 마무리 짓느라 잠깐 얘기했어” 

그녀가 코트를 벗고 가방을 서랍장 옆에 내리며 움직이는 걸음을 

강유는 한걸음 뒤에서 서성이듯 따라다니고 있다 

“그래서?” 

“안심해. 이제 그 사람 만날 일 없어” 

“별로야..” 

“응?” 

“누나 표정이 별로 안좋다구 

그 자식 못 만나게 되서 그런건 아니지?” 

“강유야.” 

“알았어. 그만할게” 

“손 줘봐” 

순순히 그녀에게 내미는 강유의 손은 깨진 유리에 긁힌 자국이 

말라붙은 붉은 피로 선명한 선을 몇 가닥 만들고 있다 

혜연이 손바닥을 뒤집어 14바늘을 꿰멨다는 상처를 들여다보자 

강유가 살짝 주먹을 쥐어 상처를 가린다 

“아직도 아파?” 

“상처는 이제 안 아파 

그런데 볼때마다 심장이 아파” 

“.......” 

“그날 생각나서 심장이 막 욱씬거려” 

혜연은 강유의 손바닥을 들어 부드럽게 입맞춤해 주었다 

약간 움찍거리던 강유가 손을 떼어내고 

그녀에게 두어번 입맞춤을 하더니 제대로 키스를 하려는 듯 머리를 감싸쥔다 

혜연은 강유의 손을 떼어내며 팔을 잡아끌었다 

“일단 씻고 손등에 약 바르자” 

강유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간 혜연은 그의 손을 씻어주고 수건으로 닦아냈다 

연고를 꺼내 그의 손등에 바르며 강유가 식탁을 깨버리던 날이 생각난다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의 손끝을 쳐다보던 강유가 덤덤하게 말한다 

“수리비 청구하라 그래 

만나지 말고 전화통화해” 

“사과할 생각은 없어?” 

강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자신이 잘못했다 생각한대도 민혁에게 사과할 강유가 아니다 

그녀는 더 이상 권유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자는 말에 강유의 얼굴이 금새 밝아진다 

그녀는 조금 전 광기어린 강유의 모습과 민혁을 털어내려 애쓰며 원룸을 나왔다 

주말이라 마트에는 사람이 꽤 많았지만 

강유는 그녀의 한쪽 손을 카트 손잡이에 포개 얹어놓고 

카트를 밀고 다니며 앞과 그녀를 번갈아 보느라 시선이 바쁘다 

“누나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가자” 

“아이스크림은 나가기 바로 전에 사야해 

안그럼 금새 녹는단 말야” 

“맞어. 우리 똑똑이” 

“저녁에 회덮밥 해줄까?” 

“어!” 

“회 코너 가보자” 

“누나는 회 싫어하잖아” 

“난 계란찜 조금 만들어 먹지 뭐” 

“신난다. 누나가 한 계란찜 맛있는데” 

“또 먹고 싶은거 없어?” 

“누나 말고는 없어” 

“그런 농담하면 재밌니?” 

“어” 

딱부러지게 ‘어’라고 하는 대답에 혜연이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어버리자 

강유도 따라 웃으며 계속 그녀를 자신의 옆으로 바짝 당긴다 

“사람 많아서 자꾸 부딪힌다 

빨리 사고 나가자 누나” 

“괜찮어” 

“안 괜찮아. 아까도 어떤 자식이 

어깨로 누나 가슴 치고 지나갔어” 

“가슴이 아니라 어깨겠지” 

“팔꿈치가 누나 가슴 옆에 닿는거 같았단 말야” 

사람 많은 주말 저녁이니 서로가 오가며 부딪히는건 다반사다 

그럼에도 강유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에 그녀는 막막해진다 

그녀가 어떻게 하면 그가 그런걸 담담하게 받아들일수 있을지 모르겠다 

강유는 마트를 나올 때까지 경계심을 풀지 않고 그녀에게 

바짝 붙을 듯 다가오는 남자들을 보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거나 

마주 오는 사람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밀어냈다 

다행히 마트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지라 상대방은 

별다른 문제없이 그냥 지나쳐 갔지만 그녀는 긴장감을 풀지 못했다 

저녁을 먹은 강유는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욕실에 들어가 씻고 나왔다 

혜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씻고나와 그가 준 목걸이를 들고 강유의 앞으로 갔다 

“해줘” 

“목걸이 하게?” 

“계속 하고 있을께” 

“세수할 때 걸리적 거린다고 싫어하잖아” 

“습관 되면 괜찮을 거야” 

강유는 환한 얼굴로 혜연의 목에 알파와 오메가가 새겨져있는 

목걸이를 해주고 버드키스를 몇 번이나 했다 

마트에서 사온 조그만 아이스크림 컵을 하나씩 들고 침대에 나란히 앉아 

주말에 하는 영화를 보는 강유는 시선만 TV에 놓은채 딴생각을 하는 듯 보인다 

혜연이 그의 얼굴에서 다시 영화화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무성의한 눈을 TV에 두고 있는 강유가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중얼거린다 

“.....누나.. 알아?..” 

“응?”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사람은 그리움을 남긴 사람이고 

눈을 뜨고도 생각나는 사람은 아픔을 남긴 사람이래” 

“그래?” 

“난 그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 

“누나랑 떨어져 있을때 정말 그랬어 

눈을 감아도.. 뜨고 있어도.. 

지독하게 그립고 죽을거 같이 아프고..” 

강유는 헤어졌었다는 단어를 쓰기 싫은 듯 다른 표현으로 

그때의 마음을 조용히 말하다가는 말끝을 흐린다 

혜연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던 강유가 그녀를 잡아끌어 

그의 허벅지 위에 마주보게 앉힌다 

말없이 혜연의 시선을 잡고 있던 강유는 그녀의 이마와 코끝에 입맞춤을 한후 

삼키듯 입술을 빨아들이며 짧게 키스를 하고는 그녀를 두팔로 꼭 끌어안는다 

“어느날 갑자기 누나가 없어져 버릴까봐 무서워.. 

느닷없이 누나가 나를 모른체 할까봐 너무 두려워.. 

누나가 나한테 싫증나서 미워하게 될까봐 걱정돼..” 

혜연을 안고 있는 그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금새 어딘가로 사라지기라도 할까 불안한 듯 

갈비뼈가 눌려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강한 힘을 실어 

그녀를 빈틈없이..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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