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 (22/34)

제 5 장 : 그의 사랑은 광기(狂氣)를 품고 있다 

#... 2 

카페를 나와 고깃집에 들어간 혜연과 강유의 앞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진 

소고기 안창살이 불판에서 먹음직스럽게 익고 있다 

점심과 저녁 중간의 어정쩡한 시간대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작업복을 입은 서너명의 남자들이 낮술을 곁들여 고기를 먹고 있을 뿐이다 

강유가 혜연의 개인접시에 적당히 익은 고기를 놓아준다 

“소고기가 여자한테 좋대. 많이 먹어” 

“여자한테만 좋겠어?” 

“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여자한테 좋은 

12가지 음식에 소고기도 있더라구” 

“그래?” 

“또 뭐더라.. 김, 알로에, 자주색 양배추.. 키위.. 

그래.. 밥 먹고 들어갈때 키위 사갈까?” 

“오피스텔로 안돌아가?” 

“갔으면 좋겠어?” 

“오늘 나 과외 가야해” 

“알아.. 나도 오늘은 오피스텔로 갈거야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그래” 

“내일은 영화나 볼까?” 

“내일은 유정이랑 영화보기로 했어” 

“둘이?” 

“그래” 

“몇시꺼?” 

“6시쯤” 

“누나 친구도 우리 헤어졌던거 알아?” 

“알고 있어.. 왜?” 

“남자 데리고 나오는거 아냐?” 

“남자?” 

“우리 다시 만난다는건 얘기했어? 

위로 한답시고 사내놈 하나 달고 나오는거 아니냐구” 

혜연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에도 그는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다 

유정이 함부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걸 모른다 해도 

유정을 만난다는 말에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는지 한숨이 나려한다 

“유정이 그렇게 생각없는애 아냐” 

“우리 끝난거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해” 

“알았어” 

“한심해..” 

“응?” 

“나 말야.. 너무 한심해” 

“뭐가?” 

“누나가 원룸 키까지 준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이렇게 불안해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 

“맞아. 서문강유 한심과목은 거뜬히 A+ 받겠다” 

강유가 멋쩍은 듯이 웃으며 그녀의 입에 고기 한점을 넣어준다 

그들은 저녁이라기엔 이른 시간에 밥을 먹고 

강유의 말대로 키위 몇 개와 귤을 조금 사서 함께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자그마한 2인용 식탁에 앉아 작게 잘라놓은 키위를 먹으며 

과외를 가르칠 부분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는 그녀의 입술을 들여다보고 있다 

“누나 귀여워 죽겠다” 

“고마워” 

“오물짝 오물짝 과일 먹는 입술이 얄미울 정도로 귀여워” 

식탁 맞은편에서 몸을 조금 일으킨 강유가 키위를 오물거리고 있는 그녀의 입술을 

단물을 빨듯 입술과 혀로 덮어 촉 소리가 나게 빨아들이고는 

싱글거리고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는다 

입맛을 다시듯 과장되게 쩝쩝거리는 강유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입술에 있다 

“얄밉게 맛있는 누나 입술” 

“얄미운 입술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강유도 친구도 만나고 그래” 

“개강하면 징글맞게 볼 놈들을 뭐 하러” 

“보드 타는거 좋아한다며 친구들이랑 스키장에도 가고” 

“누나랑 같이 가는거 아니면 싫어” 

“난 카페 때문에 안되잖아” 

“다음주쯤 하루 쉰다고 하고 같이 가자” 

“친구들 모두 모아서 다녀와. 재진씨 고생 많이 시켰다며.. 

재진씨 여자친구랑 그 친구도 같이 가던지” 

“그 친구?” 

“한이슬인가 하는 재진씨 여자친구 친구말야” 

혜연이 끄적거리고 있던 노트에서 눈을 들어 보니 

강유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고는 잔뜩 굳은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다 

갑자기 선명하게 달라진 그의 표정 때문에 혜연이 의아한 얼굴이 된다 

“왜?” 

“친구들 놀러 가는데 한이슬이 왜 나와” 

“재진씨 여자친구..” 

“이선애.” 

“그래. 선애씨 친구니까 같이..” 

“혹시 한이슬 만났어?” 

강유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쏘듯이 혜연을 보고 있다 

혜연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버리는 강유가 무언가 복잡한 표정이 되자 

그녀의 얼굴도 조금 굳어지고 있다 

“그때 호프에서 보고는 못 봤는데.. 왜?” 

“근데. 이선애 이름은 기억도 못하면서 

한이슬은 어떻게 기억하는 건데” 

“그냥.. 그 친구가 강유한테 관심있는거 같던데? 

그래서 이름이 기억에 남았나?” 

“관심이 있건 말건 나하고는 상관없어” 

표정이 조금 풀리는 강유는 과일포크로 키위 한 조각을 콕 찍어 먹고 있다 

혜연은 알수없는 강유의 표정변화에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나 

노트와 문제집 등을 가방에 넣고 한조각 남은 키위를 강유의 입에 넣어주었다 

여전히 의자에 앉아 무언가 언짢은 생각을 하는 듯 

찌푸린 얼굴의 강유를 보며 그녀는 접시를 물에 헹구어 엎고 나갈 준비를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만 나가자” 

“어..” 

강유는 원룸을 나서기 전 그녀에게 진득한 키스를 한참이나 했다 

어젯밤 그렇게나 모든걸 쏟아내듯이 사랑을 나누었으면서 

그의 눈은 또 다시 갈증을 담고 그녀를 보며 아쉬워한다 

혜연을 과외 학생의 집 앞까지 데려다준 강유는 

빠르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고는 돌아갔다 

그날 밤 혜연은 화요일에 만나기로한 그의 부친을 생각하며 

다시금 머릿속으로 그녀가 해야 할 말을 정리해 보았다 

그녀의 말에 그의 부친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수가 없지만 

혜연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비록 그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말일지라도... 

다음날 오후 여주인과 아침에 받아오는 식빵의 분량을 조절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을때 민혁의 검정색 차가 카페 통창 앞에 보였다 

보도블록을 반쯤 걸치고 올라와 주차를 해놓은 차에서 민혁이 내리는게 보인다 

그가 카페로 들어오며 통창 밖으로 보이는 자신의 차를 흘끔 쳐다본다 

“뒤로 좀 뺄까? 카페를 가려버리네” 

“금방 갈거잖아요” 

“당장 가라는 말보다 더 무섭네” 

민혁은 카운터 맞은편에 마주서서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강유와 만난 후 어떤 변화라도 있는 건지 궁금해 하는 얼굴이다 

애꿎은 커피 잔을 다시 정리하는 그녀를 보며 

민혁이 카운터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주문 안받아요?” 

“........”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하니까 따듯한 레몬티 한잔.” 

그녀는 투명한 찻잔에 빛깔고운 레몬티를 한잔 만들어 그의 앞에 놓았다 

민혁과 작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나눈 여주인은 

자리를 피해주듯 녹차 한잔을 만들어 통창 앞으로 가 앉는다 

민혁이 마시는 레몬티의 계산서를 적는 혜연을 지켜보며 

레몬티를 한입 가득 마신 민혁은 너무 뜨겁다는 얼굴이다 

“미우면 말로하지.. 혓바닥 데이겠다” 

“민혁씨..” 

“예에~” 

“이제.. 여기 찾아오지 말아요” 

“또 또 야박하게 군다” 

“강유가 보면 화낼거에요” 

“........” 

“곤란한 상황 만들기 싫어요” 

“무슨 뜻이야” 

“.......” 

“그 친구 다시 만나기로 한거야?” 

“예” 

민혁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다 

무언가 할말은 잔뜩 있는데 말문이 막혀버렸다는 얼굴이다 

민혁에게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려는 혜연의 얼굴을 

그의 손이 가볍게 건드려 다시 돌려놓는다 

“시선 피하지 마요” 

“더 이상 할말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된거야” 

“........” 

“말하기 싫어?” 

“예” 

“화나려고 한다..” 

그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레몬티를 한입 마신다 

혜연은 더 정리할 것도 없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민혁의 마음을 갈곳없게 만들어 버린데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 동안 말이 없는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있는게 느껴진다 

“하나도 안 좋네” 

“뭐가요”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혜연씨 표정이 

조금도 기쁜 얼굴이 아니잖아” 

“그런거 아니에요” 

“내가..” 

민혁이 무언가 말을 하려 할때 카페 통창 앞에 있던 테이블의 

여자 손님이 큰소리로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저 남자봐!! 왜 저러는 거야?!” 

여자의 큰 말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민혁의 차에서 시끄러운 경보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깜짝 놀라 내다보는 통창 밖에서는 강유가 붉은색 소화기를 들고 

민혁의 차를 향해 휘두르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의 길 가던 사람들까지 멈춰 서서 강유를 보고 있다 

심하게 뛰어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카운터 밖으로 나온 혜연은 

걸음을 떼려는 민혁의 앞을 빠르게 막아섰다 

“내가 나갈거에요. 민혁씨는 나오지 말아요” 

“비켜봐” 

“제발요. 나가지 말아요” 

간절한 그녀의 눈빛을 보는 민혁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다 

그녀는 급하게 뒤를 한번 돌아보고 민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말아요” 

“........” 

“부탁이에요” 

급하게 카페 밖으로 뛰어 나간 혜연이 도로에 내려와 보니 

민혁의 차 운전석쪽 창은 박살이 나서 깨져있고 

강유가 깨진 유리창으로 팔을 넣어 무언가 잡아 뜯고 있다 

그리 넓지도 않은 편도 1차선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가볍게 클락션을 울리며 그들을 지나간다 

어제 혜연에게 분명한 대답을 들었으면서도 강유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혜연이 일하는 카페에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데려다 준다는 핑계로 

그녀가 친구와 만나는걸 확인만 하고 돌아오자 마음먹었다 

카페 앞에 검정색 무쏘스포츠를 왠지 석연찮은 기분으로 

지나쳐 보던 그는 한 발짝 뒤로 걸음을 해서 차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운전석 시트로 바뀌어버린 혜연의 분홍색 티셔츠를 

보는 순간 그는 격렬한 분노 때문에 사고가 마비되는 듯 느껴졌다 

강유는 성큼 거리고 카페 맞은편 건물입구로 들어섰다 

그가 그녀를 몰래 지켜볼때 보았던 붉은색의 작은 소화기는 

경비실로 보이는 2평 정도의 조그마한 박스 옆쪽에 그대로 있다 

먼지가 잔뜩 앉은 소화기 손잡이를 한손에 움켜쥔 그는 

망설임 없이 민혁의 차로 다가가 운전석 창을 향해 소화기를 휘둘렀다 

소화기는 그가 마음먹은 타깃을 때리지 못하고 창문 위쪽의 천정 모서리에 

부딪혀 튕겨나와 버리면서 갑자기 경보기 소리가 온 거리를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다 

그는 다시 한번 소화기를 휘둘러 운전석 유리창을 부셔버렸다 

금이 가며 깨어진 유리창의 나머지 유리를 되는대로 주먹으로 쳐낸 강유는 

운전석 의자의 목받이를 떼어내는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그의 손등에 긁힌 핏자국과 함께 굵은 힘줄이 솟아오른다 

겨우 떼어낸 운전석 목받이를 뒷 자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후 

그녀의 티셔츠를 거칠게 잡아 벗겼을때 혜연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유야!” 

“개자식..” 

그녀의 분홍색 티셔츠를 움켜쥐고 카페 안쪽을 보는 그의 눈은 

너무도 무서울 만큼 살기를 띄고 있다 

뒤를 돌아 카페를 쳐다본 그녀는 다시 한번 민혁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빠르게 고개를 젓고는 강유를 올려다보았다 

“강유야.” 

“비켜” 

“서문강유!” 

“죽여버릴거야” 

혜연이 강유의 이름을 부르는건 들리지도 않는지 그는 그녀를 비껴 걸음을 떼려하고 있다 

그의 눈은 민혁을 향한 살기를 품은채 흉폭한 빛을 띄고 있다 

혜연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찰싹 소리가 나게 한대 쳐주었을 때야 

강유의 눈이 그녀와 마주쳐 시선이 맞물린다 

카페 안쪽에서 그들을 보고 있던 민혁이 

주먹을 꾹 쥐고 걸음을 떼려할때 뒤돌아보는 혜연의 눈과 마주쳤다 

강유의 앞을 막아선채 뒤돌아보는 그녀는 

너무도 간절한 눈으로 그가 밖으로 나가는걸 제지하고 있다 

그의 차에서 울리는 경보기는 여전히 시끄럽게 카페 안까지 진동하고 있다 

통창 앞 테이블의 여자 셋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 

“왠일이니! 저 남자 미친거 아냐?” 

“왜 저렇게 다 부셔버리는 거지?” 

“여자가 따귀 때린다 야” 

“저 언니 여기서 일하는 언니잖아” 

“남자를 끌고 가는데?” 

“시끄러워 죽겠다. 경보기 좀 어떻게 하지” 

평소보다 빨라진 심장에 심호흡을 한번 내뱉은 민혁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지금 민혁이 강유와 마주하면 큰 싸움이 나게 될 것이다 

육체적인 폭력 따위는 그리 두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주먹다짐을 하게 되면 중간에 끼어있는 혜연이 다치게 될지도 모른다 

서문강유가 혜연의 손에 팔을 잡힌채 억지스레 끌려가는게 보인다 

그와 부딪혀야 한다면 혜연이 없는 자리가 더 나을 것이다 

결국 그는 마음을 정리하고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는 경보기부터 해제했다 

카페의 여주인이 그의 옆으로 와서 걱정스런 듯 밖을 내다보고 있다 

“복잡한가 보네요” 

여주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듯 하는 말에 

민혁이 그녀를 쳐다보자 잠깐 마주보고는 쓴 웃음을 짓는다 

“셋이 말에요” 

“.......” 

여주인은 들릴락 말락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간다 

민혁은 카페 밖으로 나와 그들이 걸어간 쪽을 보았다 

어디로 간건지 길에서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 민혁은 그제야 서문강유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았다 

목받이가 떨어져 나간 그의 운전석 의자는 

감싸고 있던 티셔츠를 잃어버린채 깨진 유리 조각을 흉물스럽게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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