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4 장 : 세상에 미련두는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 7 (21/34)

제 4 장 : 세상에 미련두는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 7 

오전에 나갔던 여주인은 오후 1시쯤 돌아왔다 

카페에는 두 테이블의 손님이 차를 마시고 있고 혜연은 읽고 있던 책을 

엎어 놓고 카페의 통창 밖을 무의미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혜연의 옆쪽에 앉아있는 여주인이 나른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한다 

“오늘은 날씨가 따듯하네..” 

“내일 밤부터 또 추워진대요” 

“내일 어디 좋은데라도 가요?” 

여주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항상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조용하게 늘어지는 음성이다 

어제오후 갑작스런 혜연의 말에도 여주인은 흔쾌히 그녀의 휴일을 허락 했다 

혜연이 그녀를 보며 어설픈 미소를 짓는다 

“죄송해요 갑자기” 

“괜찮아.. 한번도 안 쉬었잖아요” 

“휴일도 아니라 아침엔 바쁠텐데..” 

“하루키 소설 좋아하나 봐요?” 

여주인의 시선이 그녀가 엎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새’ 에 얹혀져있다 

손님이 없을 때의 무료한 시간을 채우려 몇 번을 읽었던 책을 또 가져왔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소설은 별로 지루해 하지도 않고 반복해서 읽곤한다 

“팬이에요” 

혜연의 웃음을 담은 대답에 여주인이 같이 부드럽게 웃고는 

커다란 머그잔에 녹차 티백을 넣어 통창 앞의 가장 안쪽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손님이 많지 않을때 그녀는 꼭 그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곤 한다 

혜연도 머그잔에 녹차를 우려내 뜨거운 열기를 불어내가며 조심스레 마셨다 

어제 새벽... 강유는 끝내 실키테디베어의 목을 완전히 잘라낸 후 

갈기갈기 찢어버린 카드와 함께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었다 

할말을 잃고 쳐다보기만 하는 혜연을 잠깐 쳐다보더니 옷장 속과 

몇 개의 골판지 박스를 뒤지며 민혁이 준 물건이 더 있나 찾으려는 것 같았다 

목에는 그녀가 뜨게질한 목도리를 칭칭 감은채 인형을 잘라내고 

민혁의 흔적을 찾으려는 강유의 모습은 혜연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결국 잠도 제대로 못자고 카페를 나올 때까지 그는 잠시도 그 목도리를 풀지 않았다 

“어이!” 

갑작스런 소리에 혜연이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민혁이 카운터 앞에 작은 미소를 담은 모습으로 서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넋을 놓고 있었을까?” 

“언제 왔어요?” 

“2시간 전에” 

실없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던 민혁이 고개를 돌려 

전에 한번 인사를 나누었던 카페의 여주인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다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민혁은 조금 찌푸린 얼굴이다 

“얼굴이 까칠하네.. 잠 제대로 못 자나봐?” 

“무슨 일이에요?” 

“지나다가 들렸습니다” 

“거짓말” 

“선생님은 거짓말 안한다니까” 

“왜 아니겠어요” 

“점심은 먹었고?” 

“김밥 먹었어요” 

“내일은 내가 점심이나 쏠까하는데.. 

대강 몇 시쯤 점심을 드시는지요?” 

“내일은 카페 안나와요” 

“쉬는 날이야? 잘됐네.. 

여유 있게 점심이나 같이 먹자구” 

“약속 있어요” 

“누구?” 

“......” 

입을 다물어 버리는 혜연을 그는 무언의 압력이라도 주듯이 

계속 쳐다보기만 하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 한쌍이 계산을 하고 나간다 

여주인은 여전히 통창 앞에 그림처럼 앉아있다 

“혹시 그 친구?” 

“...그래요..” 

“이런 이런..” 

“꼭 가야할 데가 있대요” 

“큰일이군..” 

“뭐가요?” 

“경로를 벗어나려 하고 있잖아” 

“........” 

“우회할수 있으면 해봐요” 

“꼭 할말이 있는 듯해요 

피하기만 한다고 될게 아니니까..” 

“피한다고 되는게 아닌건 맞지만...” 

조금 찌푸린 얼굴의 민혁이 말끝을 흐린다 

역시 걱정스런 얼굴로 머그잔을 들어 마시는 그녀를 보던 민혁은 

카운터 위에 티켓 두장을 올려놓는다 

“뭐에요?” 

“영화티켓. 이번 주말에 유정씨랑 가서 봐” 

“유정이가 시간이 되려나..” 

“시간 된답니다. 확인하고 예매한거야” 

“유정이랑 통화했어요?” 

“왜. 질투나?” 

“설마요” 

“둘이 영화도 보고 실컷 수다도 떨고 놀다 들어가라구”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남의 성의를 무시하면 발가락에 무좀이 생기리라. 

우리 마을에 대대로 내려오는 명언이라네”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지 말아라 

깽깽이네를 지나가던 절봉이가 한 말이에요” 

혜연의 재치 있는 대답에 민혁은 작은 소리를 내며 한참을 웃었다 

내일 점심을 먹으며 주려했던 티켓까지 건네주었으니 그만 돌아가야 할텐데 

그 녀석과 혜연이 내일 어디론가 간다는게 조금 불안해진다 

그 불안함은 혜연이 아니라 위험해 보이기만 하는 그 녀석에 대한 불안함이다 

“권민혁. 이제 퇴장합니다” 

“티켓.. 고마워요” 

“보고 재밌으면 말해줘 

비디오 나오면 빌려다보게” 

“예..” 

“그리고.. 내일 그 친구를 만나더라도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지 않게 조심해요” 

그는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흘리고는 여주인과 다시 눈인사를 나누고 돌아갔다 

다행히 여주인은 수다스럽거나 필요이상으로 호기심 많은 사람이 아닌지라 

그녀와 민혁의 관계를 묻거나 해서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 

만약 여주인이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면 그녀는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까 

민혁은 분명하게 그녀를 결혼대상으로 마음에 담고 있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했다 

그 부분에 대해 그녀가 너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진다 

그럼에도 그를 단호하게 밀어내거나 싸늘하게 대해지지가 않는다 

자신이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알수없는 일이다 

민혁이 돌아간 후 통화를 한 유정은 몇년만에 같이 보는 영화인지 모르겠다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시간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 7시까지 온다는 강유가 원룸 초인종을 눌렀을때 

혜연은 먹고 있던 커피 잔을 그대로 쥐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머그잔을 보며 강유의 눈썹이 찌푸러진다 

“빈속에 커피 마시는 거야?” 

“도너츠 하나 먹었어” 

“왜 맨날 빵 쪼가리만 먹어”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가자” 

“그거 안돼. 파커 입어” 

그녀의 옷장에서 두툼한 파커를 꺼낸 강유가 혜연의 골덴 마이를 벗기고 파커를 입혀준다 

서랍장을 뒤져 그녀의 장갑까지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큰길로 나가 택시를 탄 강유는 기사에게 짧게 ‘용산역’을 말했다 

그녀의 눈이 더욱 궁금한 빛을 띄고 그를 보는데 

강유는 옆에 앉은 그녀의 손을 잡아 쥐며 여전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인다 

혜연이 가만히 자신의 손을 빼내려하자 

강유는 오히려 한개 한개의 손가락을 맞물려 깍지를 낀다 

그녀는 그 깍지마저 빼내어 강유의 손을 떼어냈다 

바르게 앞을 보고 앉아 있는 그녀를 보던 강유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직은 출근시간 정체가 시작되기 전.. 

시원스레 달린 택시는 금새 용산역 앞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의 찬 바람에 강유가 몸을 조금 움츠린다 

“목도리 하고 오지 그랬어” 

“누나가 준건데 잃어버릴까봐 못하겠어” 

“목도리가 그거 하나는 아니잖아” 

“다른거 두르면 누나 목도리가 배신감 느낀대” 

“........” 

“시간 빠듯해서 밥은 못 먹겠다 

뭐든 먹을 거라도 사서 탈까?” 

“기차 타려는 거야?” 

“어” 

“이제 말해줘. 어디 가려는 거야?” 

“남원.” 

남원역에는 11시 30분쯤 도착했다 

강유에게서 남원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혜연은 그의 생모가 생각이 났고 

그녀의 짐작대로 산의 입구를 들어서는 강유를 보며 알수없는 두려움이 생겼다 

강유는 별다른 말없이 장갑을 끼고 있는 혜연의 손목을 꼭 쥐고 

드문드문 눈이 녹지 않은 등산로를 조금씩 쉬어가며 한참을 올라가더니 

갑자기 나타난 너른 평지 위 바위에 편하게 앉으며 그녀를 그의 옆에 앉힌다 

숨을 고르며 이마에 조금 솟아오른 땀을 닦아내는 강유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땀이 식으면서 오싹한 한기가 들고 있다 

“바로 여기야..” 

“.......” 

“저 앞에 서서 아버지하고 형제들하고 다같이 

우리엄마를 바람에 모두 날려 보낸거야” 

그녀의 짐작대로 이곳은 강유가 그의 생모를 뿌린곳이다 

너른 평지의 앞쪽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갈만큼의 까마득한 낭떠러지일 것이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녀로서는 쳐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의미가 가득담긴 장소를 찾아온 건지 불안해진다 

“우리 아버지는 늘 여자가 있었어” 

“.......” 

“엄마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거 같아” 

“......” 

“산에만 다녀오면 얼굴이 가벼워 졌던거 보면 

아마도 산이 넋두리 대상이었을 거야 

자신이 죽으면 꼭 고향 산에 뿌려달라는 말을 

가끔 식구들 앞에서 하곤 했어..” 

“.......” 

“어둡고 차가운 땅에 가두지 말고 바람에 날려 

자유롭게 공기 중에 날아다니게 해달라고..” 

강유는 그녀가 아닌 벼랑 끝 허공을 보며 조용히 말하고 있다 

혜연이 그의 옆모습을 보아도 그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다 

강유는 앞모습 보다 옆모습 선이 부드러운 편이다 

그의 유난히 긴 속눈썹을 보며 혜연은 진화가 잘된 부분이라는 농담을 하곤했다 

갓난아기들의 속눈썹이 점점 길게 태어나는건 심해져가는 공해와 

먼지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듣고 했던 말이다 

“누나..” 

“말해” 

“내가 누나를 겁먹게 했을거야.. 그치?” 

“뭐가” 

“누나 목 조른거 말야.. 내가 이성을 잃어버린거.. 

그래서 누나를 다치게 했던거..” 

그녀는 강유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겁을 먹은건 사실이지만 그건 강유의 행동보다는 

의식을 꺼내어 어디엔가 따로 두고 온것같은 공허한 그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을 조른다는 격한 행동을 하면서도 

마치 그녀를 통과해 버리는 것 같았던 의식을 품지 않은 그의 눈빛.. 

“아주 가끔씩... 내 머릿속에서 뭔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 

“........” 

“정신이 돌아와 보면 어떤 놈이 피가 터지고 

팔다리가 부러져 발밑에 있기도 하고... 

한줌도 안되는 생명을 부서뜨려 놓기도 하고...” 

“........” 

“그자식이 누나를 안고 춤을 추고 있는걸 봤을 때는... 

누나를 도난당한 것 같은 드러운 기분에다 

그자식이 내 여자를 더럽힌거 같아서 사고회로가 툭 끊겼던가봐” 

“더럽혀?” 

“맞다을 듯 붙어서 누나를 감싸 안았던 

그 자식 손을 상처내고 싶었던거 같아 

아마 그래서 깨진 유리컵을 쥐었던가봐” 

“강유야.” 

“알아. 그럴땐 나도 내가 미친놈 같으니까” 

“.........” 

“이제 다시는 그런 식으로 누나 다치게 하지 않을거야 

그날... 기절해 버리는 누나 안고 걸으면서 죽고 싶었어 

내 자신보다 소중한 여자를 내가 다치게 해버려서 정말 죽고 싶었어” 

강유는 시선을 바로하고 끝도 없이 펼쳐진 것 같은 벼랑 끝 허공을 보고 있다 

가을 하늘과 달리 겨울 하늘은 심심한 빛을 띄우고 그의 시선을 받고 있다 

한참을 말없이 눈앞의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잠깐 그녀를 돌아보고는 다시 앞을 본다 

“만약에...” 

“.........” 

“내가 같이 죽자고 하면 

누나는 나랑 같이 죽을수 있을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유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수가 없다 

가나다라 순서도 안 맞는 이야기를 하듯 강유의 말이 두서없이 들린다 

그는 묵묵히 벼랑 쪽의 하늘만 쳐다본채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있다 

“죽음을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마..” 

“나하고 같이 죽는다면 억울할까? 

누나는 남겨 둔게 많아서 그건 힘들까?” 

“.........” 

강유는 그제야 얼굴을 돌려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고 있다 

그의 눈은 더 없이 담담하고 차분해보인다 

오히려 그런 그의 눈빛이 그녀의 심장을 덜컹 떨어뜨리고 있다 

혜연이 시선을 돌려 앞을 보자 강유도 다시 벼랑 끝 허공을 보며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누나가 끝내 나를 버려야겠다면” 

“........” 

“난... 여기서 나를 버릴거야” 

그녀의 심장이 차가운 바위 밑으로 쿵 떨어져 버린다 

쿵쿵대며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쳐다본 강유는 

그녀를 외면하듯 바르게 정면을 본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다 

“정말이야.. 난 얼마든지 그럴수 있어.. 

세상에서 미련 두는건 누나밖에 없기 때문에 

조금도 아쉬움 없이 그럴 수 있어” 

“그만해” 

“누나도 알거야... 내가 정말 그럴수 있는 놈이라는거” 

“그만해 제발..” 

“사랑해.. 누나..” 

“........” 

“사랑해..” 

늪... 

제 5 장 : 그의 사랑은 광기(狂氣)를 품고 있다 

#... 1 

강유는 지금 기차 안에서 혜연의 손을 꼭 잡은채 잠이 들어 있다 

8시 조금 전에 남원역을 출발한 기차에 오른 강유는 

잠시후 식당 칸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밥부터 먹었다 

혜연이 카레라이스 한 접시를 다 비우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자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혜연을 나무라듯 툴툴거렸다 

식당 칸에서 커피까지 한잔씩 마신 후 돌아온 자리에서 그는 

어젯밤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혜연의 손을 꼭 쥐고는 금새 잠이든 것이다 

혜연이 화장실에 가기위해 강유의 손을 놓으려하자 갑자기 그가 눈을 번쩍 뜬다 

“어디가” 

“화장실 갔다올께” 

“깜짝 놀랐잖아” 

강유는 혜연이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안심한 듯 눈을 감고는 금새 편안한 숨소리로 잠이 들었다 

높이 오른건 아니지만 산을 다녀와 무거운 몸보다도 그녀의 마음이 더 무겁다 

그는 산에서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머지 선택의 몫은 그녀에게 맡긴다는 듯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누나가 끝내 나를 버려야겠다면.... 

난 여기서 나를 버릴거야” 

다른 사람이 그런말을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리며 반신반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유는 다르다 

혜연은 확신에 가깝게 그가 정말로 자신을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늪이다... 그의 사랑은 헤어나올수 없는 깊은 늪이다 

헤어나올수 없는 늪에 이미 깊이 빠져 있었다는걸 그녀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단호하게 대하면 결국은 포기할거라는 생각은 어리석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유에게는 그녀가 지독한 늪일 것이다 

그녀에게 버림을 받느니 스스로를 버리는게 나을 만큼 

그녀는 그에게 지독한 늪이 되버린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어두워진 창에 비친 강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의 물기 많은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쥐고 있느라 땀이 차고 있다 

강유를 버릴 수는 있어도 

강유가 스스로를 버리게 할 수는 없다 

민혁이 우려했던 대로 그녀와 강유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 버린 것 같다 

비록 앞이 꽉 막혀 있는 막다른 골목이라도 

후진으로 돌아 나오기에는 너무도 위험할 만큼 깊이 들어선 것이다 

수레를 끌고 다니는 홍익회 직원이 다가오는걸 보며 그녀는 강유의 손을 놓고 

지갑에서 천원짜리 두장을 꺼내어 오렌지 쥬스 두개를 샀다 

혜연의 움직임에 눈을 뜬 강유가 어두운 창밖을 본다 

“어디쯤이야?” 

“조금 전에 천안 지났어” 

“거의 다 왔네.. 나도 목마르다” 

그녀에게서 건네받은 오렌지 쥬스 병뚜껑을 돌려 딴 강유는 

목울대를 울리며 시원하게 한병을 모두 마셔버린다 

그녀는 반정도를 마신 쥬스 뚜껑을 다시 닫아 앞좌석 뒤에 붙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던 강유는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 그녀를 보고 있다 

“말해” 

“키스 하고 싶어” 

그녀의 귀에 작게 소곤대는 강유를 피하지 않고 쳐다보는 혜연에게 

곧 그의 입술이 다가와 그녀의 입술을 열고 키스를 하기 시작 한다 

밀어내지 않는 그녀에게서 용기라도 받은 듯 그의 키스가 점점 짙고 집요해진다 

그녀는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밀린채 그의 키스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누나..”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어내는 그의 눈이 뜨거운 열기를 가득 품고 있다 

숨소리마저 조금 거칠어진 강유는 다시 그녀의 귀에 낮게 속삭인다 

“나 오늘 누나 원룸에서 자도 돼?” 

“.......” 

“안돼?” 

“그렇게 해” 

그녀의 차분한 대답을 들은 강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혜연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감싸 안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그녀도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부친을 생각했다 

강유의 부친은 그들이 다시 만나는걸 금새 알게 될것이다 

그의 부친이 정말로 눈살 찌푸릴 흉한 짓을 하기 전에 그를 만나야한다 

어떤 마음으로 그의 부친을 만나야 할지는 어느 정도 생각을 끝냈다 

정혜연이라는 늪에 목까지 잠겨있는 강유를 끄집어 낼수 있는게 그녀뿐이라면 

혜연은 이제 강유를 다르게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녀의 말에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그의 부친과의 만남보다 

움츠림 없이 그의 모든걸 받아주었을 때 

강유가 병적인 집착과 소유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스럽다 

그녀는 생각 끝에 민혁이 떠올라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혜연에게 선물해준 네비게이션은 결국 목적지를 지우게 되었다 

민혁이 입으로 신호음을 내며 찍어 누르던 손가락 끝을 들여다보던 혜연은 

용산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혜연의 원룸에 강유의 거친 숨소리와 그녀의 억누른 신음소리가 떠다니고 있다 

강유는 그녀의 몸 안에 그대로 사정을 하며 정신이 아득해지는걸 느꼈다 

이렇게 그녀 안에서 사정을 할때마다 그는 

자신의 온몸이 그녀의 자궁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미치겠다 진짜..” 

마른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고 있는 그녀의 목덜미에 그가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뿜어내고 있다 

천천히 얼굴을 들어 그녀의 입술에 다시금 가벼운 키스를 하고 

그는 침대 옆 협탁의 스텐드를 켰다 

“꺼..” 

“싫어. 누나 얼굴 잘 안보인단 말야” 

“꺼줘” 

그녀의 원룸은 맞은편에 있는 가로등 때문에 많이 어두운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강유는 자신을 받아냈던 그녀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다 

혜연이 팔을 뻗어 스텐드를 끄고는 조용히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강유는 터치 스텐드를 가장 약한 조명으로 다시 켰다 

혜연이 그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아직도 그의 심장이 저릿거리고 있다 

그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다 

그녀와 헤어졌던 15일 동안은 차라리 죽는게 나은 시간 이었다 

자신의 협박성 짙은 말에 그는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를 돌아오게 할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지독한 말도 얼마든지 했을 것이다 

욕실에서 수건을 두르고 나온 혜연이 등을 돌리고 속옷과 잠옷 상의만을 걸친다 

“안 씻어?” 

“아직 누나 감촉 씻어내고 싶지 않아” 

혜연이 서랍장을 열고 무언가 찾는 모습을 

강유는 비스듬히 누워있는 침대에서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원룸의 스페어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곰곰 생각하다 

찾고 있던 키를 두번째 서랍 안쪽의 작은 바구니에서 찾아냈다 

화장대 위에 올려놓는 열쇠 소리에 강유가 침대에서 내려와 

뒤쪽에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쥔다 

“뭐 좀 입어” 

“한두번도 아닌데 뭘 그렇게 매번 쑥스러워해” 

“시선처리가 곤란하단 말야” 

“그건 뭐야?” 

“원룸 키야” 

“나 하나 주려고?” 

“그래” 

“뭐!?” 

“너 주는 거야” 

“진짜?!” 

“응” 

“진짜 진짜지?!” 

“그래” 

혜연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가뿐하게 그녀를 안고 있던 강유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더니 

빠른 속도로 연신 입맞춤을 해대고 있다 

“고마워.. 고마워..” 

커다란 손으로 혜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던 강유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핥아내며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느라 내뿜는 그녀의 숨소리가 그를 더욱 자극한다 

휘감아 돌린 혀로 가져온 그녀의 혀를 옷을 벗기듯 빨고 당기며 

그들의 타액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또 다시 그의 남성이 꿈틀대고 있다 

혜연의 다리에 닿은채 부풀어 오르는 강유의 남성을 느끼는지 

그녀가 그의 어깨를 살짝 밀어낸다 

“금새 또 이러면 어떡해” 

“누나는 꼭 바닷물 같아” 

“바닷물?”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짠 바닷물..” 

“........” 

“도무지 갈증이 채워지지가 않아” 

그의 입술이 혜연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혀로 핥아낸다 

그녀가 입고 있던 잠옷상의는 너무도 간단히 강유의 손에 의해 벗겨져 날아간다 

손이 큰 강유에게 그녀의 가슴은 딱 알맞게 손에 들어오는 크기이다 

그의 입술이 짓궂게 혜연의 가슴을 간질이듯 자극을 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꼭 들어야겠다는 듯 그는 좀처럼 

들어서지 않고 끈질기게 혜연의 온몸을 애무하고 있다 

마침내 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리는 혜연을 보며 강유는 깊숙이 그녀에게 들어섰다 

그의 몸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든 피가 그녀에게 들어서는 자신의 일부에 몰리는 것 같다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격렬한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오려한다 

다시는 그녀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를 놔주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녀를 놓치지 않고 평생을 그의 곁에 머물게 할 것 이다 

그 어떤 놈도 그녀의 주변에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만지고 느끼고 안을수있는건 서문강유 뿐이다 

그걸 깨뜨리려는 남자가 있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혜연은 오늘 목이 붙는 터들넥을 입고 출근을 해야 했다 

목에 키스마크를 만드는걸 싫어하는 그녀인줄 알면서도 

강유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굵은 함박눈이 오기 시작하던 오후가 다된 시간에 나간 여주인은 

아마도 그녀가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듯 하다 

잠시전에 맑은 종소리와 함께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유자차와 

커피를 주고 온 혜연은 전에 통화했던 번호를 찾아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진영그룹에 찾아 갔을때 보았던 비서실 데스크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있었다 

사무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여비서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계신가요?” 

<통화를 하실 건가요?> 

“아니요. 시간약속을 했으면 합니다 

여쭤봐 주시겠어요?” 

<기다리실 건가요. 아니면..> 

“기다릴게요” 

여비서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진영그룹에 대한 

홍보 멘트가 맑고 차분한 기계음으로 들리고 있다 

잠시후 여비서는 단조롭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시간을 말한다 

<다음주 화요일 2시까지 오라고 하십니다> 

“2시요?” 

2시면 카페 일이 끝나기 전 시간이다 

혜연이 잠시 망설이는 동안 여비서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께 2시까지 찾아뵙는다고 말씀해 주세요” 

혜연이 오피스텔에서 나간 후에 강유는 

그녀가 베고 잤던 베게를 끌어안고 한참을 더 잤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그는 어젯밤 제대로 

잠도 못 자게 해서 내보낸 혜연이 걱정스러워 진다 

그의 끝없는 갈증을 풀어내느라 그녀를 몇 번이나 혹사시켰다 

“좀 참아보지 그랬냐..” 

자신의 애물단지를 내려다보며 한심스럽다는 듯 혼잣말을 하고 

벌떡 일어선 그는 씽크대를 뒤져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는걸 기다리며 서성이던 강유는 화장대 위에 올려진 

원룸 키를 보며 혼자 빙그레 웃는다 

기대 하지도 않았던 원룸 키를 선물 받은 데다 

만족할줄 모르고 끊임없이 덤벼드는 그를 그녀는 모두 받아주었다 

혜연의 변화가 가슴이 뛰게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하다는 걸 그녀는 모를 것이다 

라면 하나를 금새 먹어치운 그는 밥을 떠 넣으려던 주걱을 그냥 수저통에 꽂았다 

그녀가 끝나는 시간쯤에 카페로 가서 뭔가 몸에 좋을만한 음식이라도 먹여야겠다 

할일 없이 서성이던 강유는 조그맣게 나있는 창의 커튼을 열어보고 

눈이 오고 있는걸 알고는 빠르게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눈온다 눈~ 우리 혜연이가 좋아한다는 함박눈” 

펑펑 쏟아지고 있는 눈이 그녀에게 가는 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걷기엔 조금 먼 거리지만 그는 손에 쥔 우산을 펴지 않고 눈을 맞으며 

그녀가 일하고 있는 카페로 갔다 

카운터 안쪽에서 등을 돌리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혜연은 

그가 들어서며 들리는 종소리도 못 듣고 계속 통화를 하고 있다 

“....찾아뵙는다고 말씀해 주세요” 

핸드폰 슬립을 내리는 혜연은 여전히 등을 돌린채있다 

작게 한숨이라도 내쉬는지 터들넥 스웨터를 입은 그녀의 좁은 어깨가 살짝 들썩거린다 

“누나” 

“어? 언제 왔어?” 

“누굴 찾아간다는 거야?” 

“아냐.. 눈 그냥 맞고 온거야?” 

“누나가 좋아하는 함박눈이라 기분 좋아” 

혜연은 카운터 안쪽의 수납장에 있는 마른수건을 꺼내 

강유의 머리위에서 녹아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아내고 어깨를 털어내듯 닦아주었다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채 가만히 그녀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다 

통창 앞에 앉아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일어서 카운터로 온다 

키가 작달막한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계산서와 함께 지폐를 내밀고 있다 

“이집 유자차 맛있네”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거에요” 

“어쩐지.. 다른데 유자차랑 맛이 틀리다 했지” 

“아침에 토스트랑 같이 내는 딸기 쨈도 

사장님이 직접 만드시는 거라 맛있어요” 

“그래요? 단골 되게 생겼네” 

혜연과 남자가 미소 지으며 말을 주고받는걸 보는 강유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 

키가 작달막한 남자는 심하게 키가 큰 강유를 잠깐 올려다보고는 

바로 옆쪽에서 잔뜩 인상을 쓴채 자신을 보고 있는게 뻘쭘한지 

같이 온 남자와 걸어 나가며 한번더 뒤를 돌아본다 

그들의 뒷모습을 쫓고 있는 강유가 눈썹을 찌푸리며 혜연을 쳐다본다 

“웃지마” 

“뭐?” 

“딴 놈들한테 웃지마” 

혜연이 그냥 피식 웃어버리고 마는데도 

강유는 여전히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고 있다 

“농담 아냐. 웃지마” 

“그럼 화내면서 돈 받으라구?” 

“저 자식 누나 좋아하는거 아냐?” 

“뭐?” 

“단골 하겠다잖아” 

“유자차가 맛있다잖아” 

“아냐. 누나 쳐다보는 눈이 응큼했어” 

“말도 안돼..” 

“웃지마” 

“아직 30분정도 더 있어야 끝나는데 왜 이렇게 일찍왔어” 

“대답해!”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강유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진다 

카페 안쪽의 마주앉은 커플 한쌍이 그들을 흘끔 쳐다본다 

“누난 몰라” 

“뭐가” 

“누나 웃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누나는 모른단 말야” 

“보세요 서문강유씨. 강유씨 말고는 

아무도 나 그렇게 이쁘다 생각 안해” 

“하여튼 딴 놈한테 웃지마” 

“알았어” 

“.......” 

“다른 남자한테는 안 웃을께. 됐지?” 

“어..” 

대답은 마지못한 듯하지만 그의 얼굴은 화를 풀고 누그러졌다 

혜연은 조금 전 나간 손님들이 앉았던 테이블의 찻잔을 치우고 닦아냈다 

그녀의 움직임을 강유의 눈이 그대로 쫓고 있다 

혜연이 그를 온전히 받아주기로 마음먹기 전이라면 

이렇게 카페로 일찍부터 찾아와 그녀를 기다리는걸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혜연은 그 부분에 대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운터로 돌아와 찻잔을 씻어 정리하는 등 뒤에서 강유의 목소리가 들린다 

“끝나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강유는 앉지도 않고 카운터 앞에 서서 그녀가 일을 마무리 짓는걸 지켜보았다 

여주인은 그녀가 끝나는 시간이 다되도록 돌아오지 않더니 

어떻게 만난건지 그녀와 교대를 하는 여자 알바생과 함께 눈이 쌓인 우산을 털며 들어왔다 

혜연이 묻지도 않았는데 남자친구가 없다고 한탄스레 말한 적이 있던 

아르바이트 여자는 여주인의 옆쪽에 서서 혜연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그들이 나란히 나가는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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