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 세상에 미련두는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 6
오피스텔 앞에 세운 택시에서 혜연을 품에 안고 내린 강유는
그녀를 등 뒤로 돌려 업었다
혜연은 작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깊이 잠이드는거 같다
그녀를 업고 오피스텔 로비를 지나는 강유에게
데스크의 제복을 입은 경비가 가볍게 인사를 한다
오늘은 그 여자의 생일 이었다
그의 생모가 죽은후 1년도 되지 않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들어앉은 여자이다
무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늦게라도 들른 본가에서
오피스텔로 돌아가던 중에 종일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이렇게 만나지 않았어도 내일 그녀에게 찾아가려 했던 그였다
강유는 32개의 숫자가 쓰여진 버튼 중에 27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통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등에서 얼굴을 옆으로 하고 깊이 잠이든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듯 하다
한손으로 그녀를 업은채 뚜껑을 올리고 누른 번호키 에서는
올바른 답을 입력했다는 신호음을 내며 잠금장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선 강유는 작은 구두 하나를 보고 얼굴이 굳어진다
“강유오빠~ 저 주방에 있어요~”
꺽어져 있는 주방 쪽에서 들리는 한이슬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유의 눈이 화를 잔뜩 품고 성큼 들어선다
“짠~! 내가..”
기다란 오이 하나를 들고 강유의 앞에 폴짝 뛰어들던 이슬이
그가 업고 있는 여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누가 네 멋대로 들어오래”
“깜짝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돌아가”
“그 언니랑 끝난거 아니었어요?”
“입 다물고 꺼져”
“왜 그렇게 나한테는 말을 막 해요?”
강유는 그의 침대에 혜연을 조심스레 눕혔다
여전히 오이 한개를 쥐고 있는 이슬이 문틀에 기댄채 혜연을 보고 있다
혜연이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을 작게 흘리며 옆으로 돌아눕는다
그는 이슬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 하듯 눈길한번 주지 않고
침대 옆에 걸터앉아 혜연의 헝클어진 머리를 부드럽게 정리해주고 있다
“설마 다시 시작한건 아니겠죠?”
“나가”
“그 언니랑 다시 시작한거 냐구요”
“네가 알바 아냐”
“난 알아야 겠는데요
내가 오빠 좋아한다 그랬잖아요”
“입 다물어. 누나가 들어”
“진짜 그러기에요?”
“우리 혜연이 깨면 너.”
혹시라도 혜연이 깨버려 그대로 돌아가 버릴까 걱정이 되는 강유가
벌떡 일어나 이슬의 팔뚝을 쥐고 빠른 걸음으로 현관 쪽으로 간다
“가”
얼굴에 짜증을 가득 담고 그녀를 밀어내는 강유를 노려보던 이슬은
쇼파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 핸드백과 코트를 집어 나와 버렸다
그와 헤어졌다는 혜연이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강유의 등에 업혀있는지 화가 난다
그젯밤 그렇게 모욕적인 취급을 당했지만 그녀는 어제 오후
재진과 함께 강유의 오피스텔에 또 찾아갔었다
험상궂게 생긴 고릴라 인형을 끌어안고 방에서 꼼짝도 않던 그는
어제도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듯 무시하며 상대도 안했었다
“두고 봐.. 갖나 못 갖나”
말에 힘을 줘 혼잣말을 내뱉는 이슬이 오피스텔 앞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트롯트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택시 기사의 뒤에서 그녀는 다시금 강유를 생각하고 있다
학교가 떠들썩했다던 강유와 고양이의 이야기를 선애에게 들었을 때는
작은 전율을 느꼈을 정도로 그녀는 소유욕이나 독점욕 강한 남자가 좋았다
그의 배경도, 외모도, 크고 다부진 몸도 모든게 그녀의 기준에 적합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키스는 너무도 강하게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는 틀림없이 뜨겁고 정열적으로 여자를 안는 남자일 것이다
강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혜연이라는 여자만 떨어낸다면
그는 그녀에게 최상의 남자가 되리라
이슬이 돌아가고 난후 강유는 매우 조심스럽게 혜연의 코트를 벗겼다
코트 속에 입고 있던 흰색 스웨터도 혜연의 등을 받히며 조심스레 벗겨내고
바지와 양말까지 모두 벗기는 동안 그녀는 귀찮다는 듯
그의 손을 쳐내면서도 눈도 뜨지 못하고 잠에 취해있었다
강유는 자신의 옷을 벗고 스텐드를 켜놓은채 그녀의 옆에 엎드려 누웠다
쌔근거리고 평소보다 큰 숨소리를 내며 잠이든 그녀의 얼굴을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렇게 옆에 누워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날것같다
그가 어떻게 그녀를 놓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강유는 알수가없다
그는 혜연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 조심스레 끌어당겨 꼭 안았다
안고 싶다. 그녀에게 들어가 여전히 그녀가 그의 여자라는걸 온몸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녀의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입을 맞추며 그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끓어오르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강유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타는듯한 갈증에 눈을 뜬 혜연은 차츰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곳이
강유의 오피스텔 이라는 것과 자신이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벌떡 일어나 앉는 그녀의 움직임에 강유가 눈을 뜬다
“머리아파? 물 줄까?”
“어떻게 된거야”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신거야”
“내가 왜 여기 있어”
“윤종일한테 전화 받고 누나 데리러 갔었어”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채 생각을 정리하느라 머리가 아파왔다
종일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를 하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 어떻게 취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종일이 그녀의 핸드폰으로 강유에게 전화를 했나보다
그렇게 완전히 잠들어 버릴 정도로
스스로를 콘트롤하지 못하고 술을 마신 적이 없던 그녀였다
낭패감과 당혹스러움으로 혜연의 얼굴이 잔뜩 찌푸러진다
“오렌지 쥬스 줄까? 누나는 술 마신 다음날은
하루 종일 오렌지 쥬스만 잔뜩 먹잖아”
“아무거나 시원한거 한잔만 갖다 줘”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오는 강유의 손에 들려있는 오렌지 쥬스를
혜연은 컵 바닥이 보일만큼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셨다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가리고 앉아 쥬스를 마시는 그녀를
강유가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다
“괜찮아? 한잔 더 줄까?”
“됐어”
“머리 안 아파?”
“내 옷 어딨어”
“더 자”
“내 옷 줘봐”
“할 얘기 있어. 조금 더 자고 아침에 얘기하자”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강유를
낭패감 가득한 얼굴로 보고 있는 혜연에게 그는 꼭 할말이 있다는 얼굴이다
그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려 하자
혜연은 그의 손을 잡아 내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지금 새벽 4시를 넘기고 있다
벽시계 밑에 있던 거울은 어떻게 한건지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서 내려서려는 혜연을 그가 팔로 막아버린다
“꼭 할말 있다니까”
“해”
“내일모레”
“뭐?”
“내일모레 내 생일날 카페 하루만 쉬어”
“안돼”
“나랑 갈데가 있어”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강유는 담담한 얼굴로 받아내고 있다
그의 생일이 가까워지고 있는건 알고 있었다
작년 그의 생일은 그들이 사귀기 전이라 챙겨주지 못했었다
무슨 얘기를 어디로 가서 하겠다는 건지 알수가없다
“할 얘기 있으면 지금 해”
“갈데가 있다고 했잖아”
“지금 안할거면 하지마”
강유를 밀어내며 침대에서 내려서려는 그녀를
다시금 팔을 뻗어 제지하던 그가 혜연의 어깨를 밀어 침대로 넘어뜨린다
찌푸린 얼굴로 일어서려는 그녀에게 강유의 크고 단단한 몸이 겹쳐 오른다
그의 양쪽 손이 혜연의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와 감싸 쥐고는
뜨거운 입술을 벌려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있다
사정없이 밀고 들어와 휘집고 다니는 그의 혀를 그녀가 결국 깨물어 버린다
혀를 물리는게 얼만큼 아픈 건지는 경험이 없어 모르겠지만
입술을 떼고 그녀를 쳐다보는 강유의 표정은 화가났다기 보다는 비장한 표정이다
“잘라버려”
“.......”
“누나한테 키스도 할 수 없고
말도 할수없는 혀라면 무의미한 살덩어리야
제대로 깨물어서 잘라버려”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열고 혀를 들여보낸다
정말로 잘라내라는 듯 움직임 없이 그녀의 혀 위에 얹혀져 있던 그의 혀가
다시금 그녀의 입속 점막을 자극하며 돌아다닌다
그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다
그녀의 목덜미에 깊이 얼굴을 묻고
미끄러지듯 혜연의 피부를 쓸어내리는 손가락 끝이 그녀의 속옷에 닿았을때
혜연은 그의 손을 잡아 떼어내며 몸을 비틀어 그의 입술에서 벗어났다
“얘기 들을테니까 그만해”
“내일 모레”
갈증을 가득 담은 그의 눈빛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중간에 멈춰야 하는게
강유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강유는 주먹까지 꾹 움켜쥔 채로 무언가 참아 누르는 듯
억지로 그녀를 안으려하지는 않았다
“어디를 가려는 건데 카페까지 쉬어야해”
“가보면 알아”
“나 놓겠다고 약속하면 갈게”
“내 얘기부터 듣고”
고집스러운 얼굴로 혜연을 내려다보는 강유는 그녀와의 이별후
10여일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10년의 세월을 담은 것처럼 지친얼굴이다
강유를 옆으로 밀어낸 혜연이 침대에서 내려서 협탁 위에 곱게 접어놓은
그녀의 옷을 집어들자 그가 낚아채 뺏어버린다
“이 시간에 어딜가”
“줘”
“여기서 카페로 바로 가면되잖아”
“갈래”
“나도 같이가 그럼”
“강유야.”
“혼자는 절대 못 보내”
“따라와도 너 원룸에 들이지 않을거야”
“누나 데려다 주고 돌아올게”
한번 고집부리기 시작하면 좀처럼 지지 않는 강유라는걸 혜연은 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든 야심한 시각에
그들은 나란히 택시를 타고 그녀의 원룸을 향했다
혜연도 그도 말 한마디 없이 도착한 원룸 앞에서
그대로 타고 돌아가라는 그녀의 말을 눌러버리고 강유가 따라내린다
“뭐하러 내려”
“오줌 마려”
“뭐?”
“화장실 갈래”
그녀의 의심스런 눈빛을 받아내던 강유가 먼저 계단을 올라간다
혜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따라 올라가 문을 열자
강유가 먼저 재빠르게 원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정말로 소변을 보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욕실로 들어갔던 강유는 곧바로 다시나와 화를 품은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다
“내꺼 다 어디갔어”
“뭐가”
“내 칫솔! 내 면도기! 면도크림!”
강유의 시선이 빠르게 그녀의 화장대 위를 훑어보더니 서랍장을 하나씩 열어본다
그의 욕실용품은 모두 버렸지만 스킨로션과 옷은 그대로 서랍장에 들어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원룸 여기저기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
자신의 옷들을 확인했는지 그의 굳어있던 얼굴이 조금 풀어지고 있다
“내가 준 목걸이는 어딨어”
“몰라”
“목걸이 버렸어?”
“........”
“목걸이도 나처럼 버렸냐구!”
“...있어..”
목걸이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버리지 못하고
작은 종이박스에 담아 보관해두었다
혜연의 마지못한 대답에도 강유는 안심한 얼굴이 되어 그녀를 보고 있다
“화장실 간다며”
“이제 내꺼 버리지마”
“얼른 돌아가. 씻고 자고 싶어”
“씻고 자”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강유가 욕실로 다시 들어간다
집에서 입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고 있다
잠시후 욕실에서 나온 강유는 침대 옆에 기대어 방바닥에 털푸덕 앉아버린다
“안가?”
“금방 아침이야. 누나 자는거 지켜보다가
카페 나갈 때 같이 나갈게”
“서문강유.”
“안 들려”
입술을 꾹 다물고 자신의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막아버리는 강유를 보며
혜연은 도무지 짐작조차 할수 없는 그의 행동패턴에 한숨이 난다
일주일가량을 숨어서 지켜보기만 하더니 잠시의 공백 후에
이제는 갑자기 막무가내로 나오고 있다
강유의 그런 행동패턴에 대책 없이 휘둘리는 듯해 그녀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말없이 욕실로 들어간 혜연이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나왔을때
강유는 옷장 문을 열어놓은채 두개의 쇼핑백을 앞에 놓고 있었다
“나쁘다 정혜연”
“이리줘”
“싫어. 내꺼잖아”
무엇을 찾으려던 건지 옷장 속에서 발견했을 쇼핑백 하나에는
그녀가 강유에게 주지 않았던 진회색 목도리가 카드와 함께 들어있었다
카드에 뭐라고 쓰다 말아 버렸던 건지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혜연의 앞에서 강유는 목도리를 자신의 목에 칭칭 감고 있다
“니꺼 아냐”
“강유에게. 항상 추워 보이는 너의 목을...
그 다음에 뭐라고 쓰려던 거야?”
그제야 자신이 쓰다 말았던 내용이 그의 입을 통해 되살아난다
강유는 이제 목도리가 들어있던 쇼핑백 옆에 있는
또 다른 쇼핑백에서 실키테디베어 인형을 꺼내들고 있다
“이건 뭐야? 이것도 내꺼야?”
“.......”
민혁이 미리 크리스마스라며 주었던 인형과 카드역시
그녀의 원룸에 있던 쇼핑백에 담아 옷장에 넣어두었었다
강유는 이미 붉은색 카드봉투에서 카드를 꺼내 내용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점점 얼굴이 굳어지던 그가 화를 가득 담은 눈으로 낮게 중얼거린다
“개자식..”
벌떡 일어선 강유는 몇걸음 만으로 씽크대 앞에 서더니
거칠게 씽크대 서랍을 열고 주방가위를 꺼낸다
그리고 혜연이 미처 뭐라 말도 하기 전에 가위로 테디베어의 목을 자르고 있다
부드러운 실키테디베어의 목이 뻑뻑한 가위질에 조금씩 잘라져 나간다
입에 힘을 꽉 주고 가위질을 하는 강유의 목에는
여전히 진회색 목도리가 칭칭 감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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