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 (19/34)

제 4 장 : 세상에 미련두는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 5 

상당히 취해버린 강유를 데리고 힘겹게 오피스텔로 돌아온 이슬은 

옷을 입은채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는 강유를 눈으로 쫓았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욕실 부스를 열고 들어간 그가 

벽에 걸린 샤워기의 물을 틀어놓더니 

그대로 타일 바닥에 주저앉으며 벽에 기대어 마냥 물을 맞고 있다 

“오빠.. 뭐하는 거에요?” 

이슬이 샤워기의 물을 끄러 들어가 보니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은 

냉기가 흐르는 찬물 이었다 

황급히 물을 잠그는 이슬에게 강유의 지독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둬..”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미온수 방향으로 수도꼭지를 옮겨 틀어주고 

주방으로 가서 시원한 냉수 한잔을 마셨다 

냉장고를 뒤져봤지만 꿀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씽크대 까지 뒤지며 한참을 찾아도 없는 꿀은 포기하고 

그녀는 유리컵에 찬물만을 따라 침실로 돌아 왔다 

알몸으로 불쑥 욕실에서 나온 그가 물기도 닦지 않은채 

흐트러진 걸음으로 침대에 눕더니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스치듯 지나간 그의 몸은 적당히 잡힌 근육이 

큰 키와 어우러져 상당히 근사한 몸매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물컵을 다시 주방에 가져다 놓고 돌아왔다 

그는 목까지 끌어올린 시트 끝을 잡고 잠이 든 것 같다 

“후회 안하면 되..” 

혼잣말을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는 속옷만을 남겨두고 천천히 옷을 벗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그녀의 손끝에서 딸칵 소리를 내며 침실 등이 꺼진다 

강유의 침대 안쪽으로 들어가 바르게 누워있던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돌아누워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강유가 팔을 뻗어 그녀를 꼭 끌어안는다 

“누나..” 

강유의 입술이 더듬거리듯 그녀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조금씩 이슬의 몸 위로 겹쳐지는 강유의 단단한 팔과 

그의 까칠한 수염이 그녀의 피부를 자극 한다 

마침내 맞다은 입술을 열어 독한 양주기운이 남아있는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이슬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키스 까지는 몇 명의 남자와 경험이 있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그녀의 내부를 자극하는 뜨겁고 깊은 키스는 받아본 적이 없다 

강유의 혀는 환각제처럼 이슬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며 

까칠한 수염까지도 오히려 자극적 이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간질이며 입맞춤할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듯 그를 불렀다 

“강유 오빠..”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멈춘 그가 어둠 속에서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몸을 움직여 침대 옆 협탁의 스텐드를 켜는 그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이슬이라는게 믿기지 않는 듯 쳐다보던 그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천정을 향해 바르게 눕는다 

“나가” 

“싫어요” 

“당장 나가” 

“오빠..” 

“죽여버리기 전에 나가” 

이슬은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있었다 

키가 좀 작긴 해도 그녀의 몸은 완벽한 S곡선을 띄며 

남자라면 누구든 안고 싶어 할 몸매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강유에게로 바짝 다가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은 강유가 침대 옆 협탁에 있던 

묵직한 자명종을 들어 맞은편 벽에 걸린 거울을 향해 거칠게 집어던진다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유리 테두리의 고급스런 자명종에 얻어맞은 거울이 

조용하던 공간에 커다란 소음을 내며 시계를 뱉어 낸다 

“나가!!!” 

그의 갑작스런 흉폭함에 이슬은 움츠렸던 몸을 풀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강한 거부를 당해본적이 없던 그녀였다 

알 수 없는 오기와 강유라는 남자를 향한 도전적인 감정까지 생겨버린다 

침대 옆에 벗어두었던 옷을 집어들어 어두운 거실로 나온 그녀는 

빠르게 옷을 입고 쇼파에 두었던 자신의 가방과 코트를 들었다 

현관 쪽으로 잰 걸음을 걸으며 이슬이 흘끗 들여다본 침실에서는 

침대 머리에 기대앉은채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강유가 

작게 웅얼거리는 ‘누나..’라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슬이 나가고 난후 강유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아직은 취기가 많이 남아 있지만 술은 확 깨버렸다 

아무리 취했다고는 해도 잠시라도 이슬을 혜연으로 착각한 자신에게 너무도 화가 난다 

그는 샤워기를 냉수 쪽으로 돌려 물을 틀고 거칠게 양치질을 했다 

이슬을 빨아들이고 자신의 혀를 나누었던 입술이 

너무도 더럽게 느껴져서 구역질이 날것같다 

열기를 담고 있는 그의 몸에 부딪히는 차가운 물은 소름이 돋을 만큼 냉기가 흐른다 

그는 자신에게 벌을 주듯이 얼음처럼 찬물을 맞으며 

이슬의 벗은 몸이 닿았던 자신의 몸을 씻고 또 씻어냈다 

강유가 카페 맞은편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지 이틀째 되는날 

혜연은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진영그룹 회장실의 비서라고 신분을 밝힌 여자는 

간단한 메시지만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강유의 생각은 알수가 없지만 그는 이틀 동안 카페 앞에 오지 않았다 

카페일이 끝난후 지하철을 타고 진영그룹 본사 앞에 도착한 혜연은 

고개를 들어 높기만한 빌딩의 끝을 쳐다보았다 

주늑들 것 없다. 강유의 부친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강유는 그녀의 남자가 아니다 

“전화 받았던 정혜연입니다” 

“아 예.. 잠시만요” 

회장실의 둔탁한 문을 가볍게 노크를 하고 들어갔던 여비서가 

조용히 나와서 그녀에게 들어가라는 듯 문을 열어준다 

쇼파 상석에 앉아 서류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의 부친이 

그대로 서류철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말한다 

“앉아요” 

자리에 앉는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부친은 강유와 조금도 닮은데가 없다 

강유는 아마도 외탁을 한듯 부친의 이목구비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없는듯하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고운 아가씨로군” 

노크를 하고 들어온 여비서가 묻지도 않았던 허브티를 그녀 앞에 놓고 다시 나간다 

그의 부친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못박혀있다 

혜연은 동요함 없는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 아들놈하고 헤어졌다구요” 

“예” 

헤어졌다는걸 알면 사귀고 있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던 거다 

사진이 어쩌고 하는거 보니 그녀에 대해 뒷조사라도 한듯해 불쾌해진다 

“머리가 좋은 아가씨로군” 

그의 부친의 눈은 빈틈없고 냉철해 보인다 

입가에는 작은 미소를 띄우고 있지만 조금의 호감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강유는 독점욕이나 소유욕이 강한 편이지”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물건은 형제들조차 

건들지도 못하게 했으니까” 

“........” 

“우리 아들이 아가씨한테 푹 빠져 있었던거 알아요 

아가씨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 두 발짝 성큼 다가서 잡을 놈이지” 

“저녁에 과외를 가르치는 학생이 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밀고 당기기 전술을 쓰는 거라면 소용없어요 

내 아들놈이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 집안에서는 아가씨를 받아줄 생각이 없으니까” 

“.........” 

“뭐 하나 볼게 있어야 말이지..” 

“정정해 주십시오” 

“음?” 

“강유와의 사이를 허락받고자 온게 아닙니다 

어르신께 그런 표현 들을 이유 없다고 생각 합니다” 

“당돌한 아가씨로군..” 

“........”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받아주지 말아요” 

그의 부친의 음성은 이제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바뀌어있다 

그녀는 속에서 헛웃음이 터지려는걸 참아 눌렀다 

지금껏 사귀는걸 알면서도 지켜보기만 하다가 

헤어지고 난 후에야 불러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꼿꼿하고 바른 성격 같은데 굳이 돈 봉투나 쥐어주며 

자존심까지 상처주지는 않으리다” 

“........” 

“하지만.. 다시 만난다는 말이 들리면 

아가씨뿐 아니라 나이 많은 모친까지도 

마을에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지” 

노기를 띈 그녀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의 부친은 

조용히 그만 가보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서류철로 시선을 돌렸다 

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만을 한후 그곳을 나왔다 

원룸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핸드폰의 전화부를 검색했다 

좀처럼 술은 마시지 않는 그녀지만 

오늘은 알콜에 의지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유정의 이름을 본 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쳤다 

과외가 끝나고 유정에게 가기엔 너무 멀다 

내일 일찍 카페에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이다 

한칸씩 내려가고 있는 이름 중에서 

그녀는 민혁의 이름을 보고 잠시 망설였으나 역시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잠시의 망설임 끝에 그녀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다하고.. 무슨 일이야?>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널널해. 왜?> 

“나 술좀 사주라” 

<술? 정말 무슨일 있구나?> 

“아냐.. 그냥 술이 땡기는 날이 있잖아” 

<그러자. 나도 너한테 할 얘기 있는데 잘됐네> 

“할 얘기?” 

<나... 여자친구 생겼거든> 

“잘됐네.. 진심인거 알지?” 

<그래> 

“근데 과외 끝나고 만나려면 좀 늦을텐데 괜찮아?” 

<물론~> 

윤종일과의 전화를 마치고 혜연은 혼자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성실하고 진지한 남자이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을 정도의 여자라면 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여자이리라 

지금의 혜연에게 있어 종일은 보이지 않는 적과 함께 싸웠던 전우애적인 감정이 크다 

그를 털어내고 그 상처를 털어내는데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에게 그는 아련한 아픔이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사람이기도하다 

윤종일은 지금 자신이 실수를 한건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다 

모처럼 만난 혜연은 처음엔 아무 일도 없는 듯 

미소를 지어가며 노인 분들께 왈츠를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종일이 사귀게 된 여자와의 이야기를 듣고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술도 약한 사람이 과음을 한다 싶더니 

서문강유와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다 

잠시전 종일의 전화를 받은 서문강유는 금방 오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의 유난스런 독점욕이라든가 소유욕을 알고 있는 종일인지라 

그녀의 원룸에 있을지 모를 그에게 

혜연을 부둥켜안고 데려다주는 모습을 보이기가 망설여졌던 것이다 

“누나” 

“아.. 왔어요?” 

혜연에게서 눈을 돌려 종일을 쳐다보는 강유의 눈빛이 매섭다 

그녀를 취하도록 마시게 내버려둔 그에게 화가 난건지 

그녀가 술을 마시고 있는 상대가 그인게 화가 난건지 알수가 없다 

“둘이 무슨 일 있어요? 

오늘 혜연이가 유난히 마시던데..” 

종일의 말에는 대답도 없이 혜연을 가볍게 업은 강유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호프를 나갔다 

종일은 그의 입에서 나온 고맙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말끔하게 정장을 빼입고는 있어도 어딘가 초췌해 보이던 그는 

지금의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왠지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