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 (18/34)

제 4 장 : 세상에 미련두는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 4 

단호하게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혜연이 가버린 뒤에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미동도 없이 앉아있던 강유는 마침내 결심을 했다 

며칠 후면 자신의 생일이다 

그 생일날 혜연을 데리고 그곳에 가서 그가 어떤 마음인지 말해줄 것이다 

그녀는 돌아올 것이다. 그녀를 놓을 바에는 자신을 죽이는게 더 쉽다  

오피스텔에 도착한 그가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니 

재진이 혼자 식탁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다 

“먹을래? 하나 끓여줄까?” 

“술이나 마시러 가자” 

“또? 술 좀 작작 처먹어 짜식아! 

술이나 쎄면 말을 안해 내가” 

“따라오기 싫으면 관둬” 

남자치고는 유난히 씻는걸 좋아하는 강유가 샤워를 하고 나와 

옷장에서 되는대로 옷을 끄집어내 입는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강유를 따라 나온 재진은 

택시를 잡아타고 강남의 나이트클럽 이름을 내뱉는 그를 쳐다본다 

이왕 씻는거 수염이나 깍으라고 말해줄걸 덥수룩한 그의 턱이 눈에 거슬린다 

규모가 크고 호화스런 나이트클럽으로 들어서는 그들에게 웨이터 한명이 붙어 따라온다 

“조용한 쪽으로 룸 안내해” 

이른 시간에 들어온 키가 크고 강인한 인상의 손님은 스카치블루 양주를 주문했다 

오랜 밤 직업 생활로 눈치가 빠삭한 웨이터는 

아무렇게나 수염을 방치해놓고 조금은 초췌한 모습이지만 

그가 돈푼 꽤나 있는 집 자식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볼수 있었다 

부킹이나 제대로 해주고 단골로 잡아야겠다 마음먹은 것과 달리 

그 손님은 쇼파에 깊숙이 들어앉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여자 들여보내지 마” 

“일행분 더 오십니까?” 

대답할 가치도 못 느낀다는 듯 무시해버리는 그에게 

웨이터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조용히 나간다 

잠시후 다시 돌아온 웨이터가 과일안주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양주 셋팅을 끝내자마자 강유는 스트레이트 잔에 따른 양주를 연거푸 몇잔 마시고 있다 

재진은 언더락 잔에 얼음을 넣고 스카치블루를 조금 따라서 홀짝이듯 마셨다 

강유는 오늘도 완전히 뻗어버릴 때까지 마실 것이다 

그러고도 아침 일찍 일어나 그녀가 일하는 카페로 가는게 대단하다 생각한다 

다행히 오늘은 조용한 룸으로 들어왔으니 적어도 

싸움은 안하리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된다 

재진은 룸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간후 자신의 여자친구인 이선애에게 전화를 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그들은 고교 때는 그저 친한 선후배로 지냈었다 

7개월 전쯤 재진이 그녀에게 했던 교제신청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무난하게 사귀고 있는 중이다 

“어디?” 

“이슬이 같이 있냐?” 

<응. 왜 오빠?> 

“둘이 같이 여기로 와라” 

재진은 위치를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쉽게 혜연을 놓지도..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지도 못할 강유이지만 

그는 한이슬이 강유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다 

곱게 자란 외동딸 티를 내듯 새침스럽긴 해도 

누구든 강유를 조금이라도 받아줄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부른것이다 

그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들어왔다 

강유는 그들을 보고는 재진을 흘기듯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린 맥주 시켜줘. 양주는 독해서 싫단 말야” 

이슬이 강유의 옆쪽에 앉으며 투정부리듯 말한다 

얼마나 마신건지 강유는 벌써 취기가 도는 듯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움이 가득한 그녀와 달리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양주만 스트레이트로 들이키고 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킨 선애가 춤을 추고 싶다며 재진을 끌고 밖으로 나간다 

“오빠 얼굴 많이 상했네요?” 

“........” 

“술만 먹지 말고 과일이라도 집어먹어요” 

“귀찮으니까 붙지마” 

그의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에도 생글거리고 웃고 있는 이슬이 

먹기 좋게 잘라진 키위 한 조각을 집어 먹는다 

“그 언니랑 깨졌다면서요?” 

강유의 매서운 눈빛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이슬은 다시 딸기 하나를 들고 조금씩 베어 먹고 있다 

언더락 잔에 담긴 냉수를 집어든 강유는 말없이 물 한잔을 모두 마신다 

“내가 오빠 좋아하는거 모르죠?” 

“내 알바 아냐” 

“나랑 사겨볼래요? 오빠한테 잘할 자신 있는데” 

“넌 아니잖아” 

“뭐가요?” 

“정혜연이 아니잖아” 

조금 흐트러진 발음으로 정혜연이라는 이름을 내뱉으면서 

강유의 눈빛이 짙은 괴로움으로 어두워진다 

별로 볼 것도 없어 보이던 그녀가 

강유를 어떻게 저렇게 빠지게 만든 건지 이슬은 도무지 알수가 없다 

그는 이제 쇼파에 꼿꼿이 기댄채 눈을 감고 있다 

취해도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지 않는게 습관인 듯 

지난번 호프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르게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볼에 이슬이 입맞춤을 한다 

천천히 눈을 뜨며 이슬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불쾌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씨발..” 

낮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나갔던 강유는 머리에 물기를 묻히고 돌아왔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온듯하다 

그 모습이 그녀의 자존심을 강하게 상처내버린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닿았던양 세수까지 하고 온 강유에게 오기가 생겨버린다 

“나랑 잘래요?” 

“니가 정혜연이면” 

“오빠한테 기꺼이 로스트 어 버진 할 의향이 있는데” 

“개나 줘버려” 

“오빠!” 

그녀의 쇳소리 나는 외침에도 

강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얼음물 한잔을 쭉 들이킨다 

잠시후 들어온 재진과 선애가 그들의 눈치를 본다 

뚱한 얼굴의 이슬이 맥주를 조금 마시며 그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강유는 꽤 마셔버린 양주에 상당히 취해버렸다 

“진짜 괜찮겠냐?” 

“맡기라니까 오빠” 

“비번 가르쳐줄게” 

“03060115” 

“이슬이 너 강유 스토커였냐?” 

걸음이 비틀리는 강유를 부축해 나오는 재진을 향해 

오피스텔 비번을 읊어대는 이슬을 그가 놀라운 듯 보고 있다 

이슬은 지금 자신이 강유를 책임지고 데려다 주겠다며 따로 택시를 잡고 있다 

“지난번 갔을때 오빠가 누르는거 봤단 말야” 

“내 빠른 손놀림을 머릿속에 저장하다니 대단해” 

“번호가 좀 길긴 했어” 

“그 누나 생일하고 강유놈 생일이야” 

“강유오빠가 1월생이야? 빠른 생일이네?” 

“학교는 그냥 8살에 들어갔다더라” 

그들의 앞에 선 택시에 강유를 먼저 앉히고 이슬이 따라 탄다 

창밖에서 손을 흔드는 두 사람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 

이슬은 택시 기사에게 그의 오피스텔을 불러주었다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강유를 보며 이슬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민혁은 지금 혜연의 원룸 밑에 차를 정차해놓고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 과외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라는 그녀와 통화를 할때 

일어를 전공했다는 유정에게 번역을 부탁할 자료가 있다는 핑계를 댔다 

오늘 저녁 셋이 뭉치자는 말에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유정과 통화를 해보고는 원룸 앞으로 와달라했다 

카페 앞으로 가겠다는 민혁에게 거듭 원룸 앞으로 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이 조금 들뜬다 

청바지에 빨간색 후드코트를 입고 나온 그녀가 차에 오르자 그가 싱긋 웃는다 

“빨간색 잘 어울리네?” 

“너무 애들꺼 같아서 잘 안입는 옷인데” 

“노인네 앞에서 나이 많은 것처럼 말하지 말아줘” 

“유정이 회사 근처로 가기로 했어요” 

“안국동 맞지?” 

“무슨 번역인지 몰라도 유정이가 바빠서 금방 못할텐데..” 

“급한거 아니니까 상관없어” 

민혁은 자신의 핑계를 그대로 믿고 

조금 걱정스런 얼굴이 되는 그녀에게 미안해진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몸을 움츠리는 그녀와 더욱 가까워져서 

이런 잡다한 명분을 만들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광화문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유정은 깔끔한 바지 정장을 입고 

큰 키로 성큼 거리고 들어와 앉자마자 같은 부서 차장이라는 사람의 

흉을 보느라 한참을 혼자 흥분해서 떠들고 있다 

“꼭 선미네 아버지처럼 만사가 다 불평불만 이라니까 

증말 지겨워 죽겠어. 내가 지 밥이냐고~” 

“선미는 또 누구야?” 

“깽깽이네서 쭉 내려오면 마당에 토종오리 키우던 집 있잖아요 

지금도 키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아..” 

그들의 화제가 자연스레 마을 이야기로 돌려져 

모처럼 혜연이 밝게 웃으며 유정의 걸걸한 입담을 재밌게 듣고 있다 

최근 며칠동안 좀처럼 웃지 않았던 그녀였다 

지금 그녀는 잠시나마 강유를 잊고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식사 후에도 장소를 옮기지 않고 커피와 디저트를 따로 주문해 먹었다 

“근데 말예요. 우리 혜연이는 

언제부터 눈에 담게 된 거에요?” 

“저수지의 나비실험” 

“무슨 다큐 프로 제목같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불편할 대화 주제 같지만 혜연도 그가 무얼 말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민혁이 빙그레 웃으며 따듯한 눈으로 그녀를 보자 

조금 멋쩍어진 혜연이 고개를 돌려 초콜릿 케익을 포크로 작게 떼어 먹는다 

“내가 1학년 여름 방학에 시골집 내려갔을때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거든...” 

시골집에 내려와 할일 없이 빈둥거리던 그가 

낚시도구를 간단히 챙겨 저수지로 갔을 때의 일이다 

저수지 둘레의 잡풀들 사이에서 

몇 명의 소년 소녀들이 잠자리와 나비를 쫓고 있었다 

금새 알아볼수 있었던 혜연은 조금 더 자라 제법 여자티가 나고 있었다 

친구들과 곤충잡기 놀이를 하던 혜연이 갑자기 

잡풀들 사이에 우뚝 서서는 검지손가락 하나만을 올리고 가만히 있는다 

이미 낚시에는 흥미를 잃은 그가 가만히 혜연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채 

그녀는 한참을 그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더운 기를 품은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어깨 밑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가 가볍게 날린다 

친구들의 소란스런 몸동작과 너무도 상반된 혜연의 모습에 

민혁은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친구들이 어딘가로 우르르 장소를 옮기며 그녀를 부르자 

혜연이 먼저 가라는 듯 손짓을 해보인다 

그러고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서있는 그녀의 주변에 있던 나비 하나가 

혜연이 곧게 세우고 있는 검지손가락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미동도 없이 서있던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 위에 앉은 노란색 나비를 

조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다 

그건... 참으로 묘한 광경이었다 

마치 그녀의 주변만 시간이 멈춘 듯 색이 고운 수채화 같은 모습이었다 

작은 미소를 짓고 있는 혜연의 입술을 보며 

민혁은 뜬금없게도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도 꽤나 당황스럽더라니까 

지금이야 성인대 성인이지만 스무살 청년이 

14살 소녀에게 품기엔 참으로 민망한 감정이잖습니까 

내가 로리콤 경향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했지” 

“혜연이 너도 생각나? 나도 거기 있었니?” 

“희미하게 생각은 나는거 같아.. 

너야 맨날 같이 놀았으니까 있었겠지” 

혜연이 조금 곤란한 얼굴로 작게 대답을 한다 

여고에서 만났을때 민혁이 했던 말이 무얼 말했던 건지 알 것 같다 

혜연의 기억에는 없지만 민혁이 그녀에게 뭐라 말을 시켰던가 보다 

“내가 다가가서 나비가 날아가 버리니까 

혜연씨가 잔뜩 골난 얼굴로 나를 보더라구” 

“재밌당~ 그래서요?” 

조금 더 가까이 그녀를 보고 싶었던 민혁이 잡풀들 사이로 들어가자 

나비는 곧바로 날아가 버렸다 

어린 혜연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어떻게 한거니?” 

“뭐가요?” 

“손가락에 꿀 발랐어?” 

“그런거 안발랐어요 

아저씨 땜에 날아가 버렸잖아요” 

“나 아저씨 아냐 임마” 

“나도 임마 아니에요” 

민혁이 어린 혜연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하는 말의 내용이 재밌는지 

유정이 큰 소리로 허리를 젖혀가며 웃어버린다 

그들은 조금 더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민혁이 들고온 

자료를 건네받고 자신의 명함을 민혁에게 건네주는 유정을 먼저 

그녀의 원룸 앞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민혁이 틀어놓은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들으며 혜연의 원룸으로 향했다 

빠르게 스쳐가는 창밖을 내다보는 그녀를 보며 민혁도 조용히 말이 없다 

차에서는 ‘Everybody Knows’를 부르는 레너드 코헨의 

굵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차안에 가득 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없어도 편한 여자는 드물다 

그점에서 그녀는 말없이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여자다 

민혁은 그녀의 원룸 옆쪽 공간에 차를 바짝 붙여 

다른 차량이 지나는데 지장이 없게 주차를 해놓고 그녀를 따라 내렸다 

“왜 따라 내려요?” 

“쫓아 올라가지 않을테니 걱정마” 

“그런데 왜..” 

“혜연씨한테 선물할게 있는데 

차에서 보여주기엔 불편하거든” 

“선물이요?” 

“네비게이션” 

찬바람이 불고 있는 건물 앞에서 1층 현관 유리문 안쪽으로 혜연을 데리고 

들어간 민혁이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자신의 앞으로 가져온다 

혜연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손을 빼내려 하자 민혁이 조금 더 힘을 준다 

“잘 들어요. 일단 경로설정.. 띵♬” 

입으로 신호음을 내며 그의 검지손가락이 

손바닥을 펴고 있는 그녀의 검지손가락 끝을 콕 찍어 누른다 

“시설분류로 들어가서.. 남자.. 띵♬” 

그의 손가락이 다시 그녀의 가운데 손가락 끝을 누르며 

입으로 신호음을 내고 있다 

혜연은 도무지 그가 무얼 하는지 알수가 없다 

“뭐하는 거에요..” 

“다음엔 위치설정.. 멋진남 민혁.. 띵♬” 

“대체..” 

“목적지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예~! 띵♬ 

그리고 안내시작.. 에이.. 손가락이 모지라네 

그냥 엄지 손가락으로 간다. 띵♬.. 끝~” 

새끼손가락까지 갔던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엄지손가락으로 돌아와 

띵 소리를 내며 누르고는 미소를 짓는다 

“그거 네비게이션이 좋은거라 

목적지 설정만 제대로 하면 잘 찾아 올거야” 

“.......” 

“안내시작 켜놨으니까 턴 하라면 턴하고 

경로를 벗어나지 않게 조심해” 

“.........” 

“그냥 찾아오라면 헤메느라 언제 올지 알아야 말이지” 

“권민혁씨..” 

“왜. 감동이야?” 

“민혁씨 선수죠” 

“헉.. 이 미련한 양반 보게..” 

“아무래도 선수 같아” 

“지금 방금 권민혁이 두 번째 프러포즈를 한겁니다 

내 생애 두 번의 프러포즈를 모두 혜연씨가 받아놓고는 

처음엔 내리 미친놈 취급에 두 번째는 선수취급이네..” 

혜연이 그를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장난스럽던 그의 네비게이션 조작과 달리 

그는 지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민혁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로 내려온다 

“키스.. 해도 돼?” 

대답을 바랐던 질문이 아니라는 듯 천천히 그녀에게 

고개를 틀며 다가오는 민혁에게서 

혜연은 얼굴을 돌려 외면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그대로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 한다 

민혁은 자신이 성급했다는걸 인정했다 

그녀에게는 아직 그녀석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급하게 다가설 생각이 아니었다 

충분히 시간을 주며 그녀의 어떤 모습이라도 모두 받아주려 했던 그였다 

“깜빡했는데.. 그거 네비게이션이 속도감지기 겸용이야 

미련하게 오늘처럼 속도초과 한다 싶으면 삐삐 신호음 보내줘” 

그는 밝은 목소리로 잘자라는 말을 한후 돌아갔다 

민혁처럼 유쾌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남자는 

사랑에서도 거침없이 주연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누르며 그녀가 마음을 열고 받아주기를 기다리는 듯 하다 

그가 가볍게 입맞춤 했던 볼을 만지며 원룸으로 올라온 그녀는 

국화차를 만들 준비를 하며 자신의 가슴언저리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그녀 안에 희미하게 작은 파장이 느껴지는 듯해 혜연은 당혹스런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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