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제 4 장 : 세상에 미련두는건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 1
아침 일찍 눈을 뜬 혜연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헛웃음을 쳤다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올라 옅은 쌍커풀은 아예 사라져버리고 붉게
충혈된 것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혜연은 냉동실에서 얼음을 몇개 꺼내 손수건으로 감싼후
양쪽 눈두덩을 차례로 가라앉히며 유정에게 전화를 했다
<시골집 가자고?>
“알바 하기 전에 다녀오려고... 같이 안 갈래?”
<그럴까? 나도 시골집 갔다 온지 꽤 됐는데...
건식이네 초상 때도 안내려왔다고 우리엄마 얼마나 잔소리하던지>
“바빴다며.. 조모도 아니고 마을 할머니 초상에 결근까지 할수있니?”
<내말이.. 노인네들은 얘기가 통해야 말이지>
“터미널에서 2시쯤 만나자”
<알았어. 우리 어무이 좋~아 하겠다>
눈치 빠른 유정이가 혜연의 몰골을 보면 뭐라 할지 걱정이된다
냉찜질로 인해 어느 정도 붓기가 가라앉자 그녀는 배낭 하나에 간단한 옷을 담았다
반가운 음성으로 전화를 받은 모친은 장에 나가
혜연이 좋아하는 닭백숙을 저녁으로 준비 하겠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모친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민혁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 먹었어요?>
“노인네 노인네 하더니 진짜 노인네 됐어요?
우리 엄마처럼 받자마자 밥 먹었냐 묻게..”
별로 재밌는 말도 아니건만 민혁의 작은 웃음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린다
혜연은 고속버스에서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작은 책장 앞으로 갔다
<뭐 하고 있는데?>
“시골집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어? 나도 시골집 가려고 했는데 잘됐네
내가 혜연씨한테 갈테니 같이 갑시다>
“친구하고 같이 갈거에요”
<우리마을 친구?>
민혁의 입에서 나오는 ‘우리마을’ 이라는 말은 혜연에게 작은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유정이 처럼 민혁도 ‘우리마을’에서 자란 사람인 것이다
나이차로 인해 함께 유년기를 보낸건 아니지만
그녀가 아는 마을 뒷산 앞의 작은 저수지를 그도 알고
개를 20마리도 넘게 키워 늘 시끄러운 탓에 ‘깽깽이네’라 부르던 집을 그도 알것이다
“누구 말대로 예쁘장한 남자 같은 친구하고 갈거에요”
<왈츠 파트너? 그 친구 집은 어디야?>
“승식이네 뒷집이요”
<승식이는 어디 사는데?>
“유정이네 앞집이요”
<뭐가 그리 복잡해?
얼굴 보면 다 아는데 이름으로는 잘 모르겠단 말야..
어쨌든 그 친구도 같이 내 차로 갑시다>
“그냥 고속버스 타고 갈래요”
<오늘 표 없을걸? 연말에 연휴잖아요>
미처 그 생각은 못했던 혜연은 민혁의 말처럼
터미널을 나가도 쉽게 표를 구할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혁의 차를 타고 몇 시간을 함께 가야하는건 조금 부담스럽지만
혼자가 아니라 유정이 동행한다는 생각에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로 시골집에 내려가려던 건지 그녀의 말에 빠르게 대응을 한건지는 알수가 없지만
혜연은 그녀의 원룸으로 오겠다는 민혁이 도착하기 전에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만 두어쪽 먹고 간단한 읽을거리를 챙겼다
아침도 거르고 토스트 두쪽으로 점심을 때우는걸 강유가 봤다면
그 굵은 눈썹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을거다
자신의 행동에 습관처럼 강유를 떠올리는 스스로를 질책하려 했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상태가 궁금해진다
강유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어제 그 전화를 끝으로 오피스텔에 바로 돌아갔을까..
그렇게 비를 맞았으니 감기가 든건 아닐까...
이것저것 궁금한거 투성이지만 스스로를 자책하며 강유의 생각을 떨쳐버렸다
<집 앞 입니다>
“빨리 왔네요?”
<집에 시원한 음료수 같은거 있어?>
“2% 캔 몇개 있어요”
<차비로 접수할테니 가지고 내려오도록.>
민혁의 차에 오르는 혜연을 보며 그가 가만히 그녀의 눈을 쳐다본다
차의 운전석 시트에는 여전히 그녀의 분홍색 티셔츠가 씌워져 그의 등을 받히고 있다
아직도 붓기가 남아있는 혜연의 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가 내민 음료수를 받아 작은 소리를 내며 꼭지를 따서는
시원하게 몇 모금을 마신후 차를 출발 시킨다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오늘 오전에야 그쳤다
민혁의 코는 얼만큼 부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붓기가
많이 가라앉았는지 보기 흉할 정도로 부풀어 있지는 않다
다만 그의 볼에 앉아있는 멍자국이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터미널 앞에서 만난 유정이는 맨 처음 혜연의 부은 눈을 궁금해 했고
병원집 막내아들 권민혁이 혜연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가 정차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차로 가는 짧은 시간에 정신없이 질문을 해댄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수상해.. 뭔가 냄새가 나~”
민혁의 차에 먼저 오르는 유정과 그가 밝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유정의 옆에 나란히 앉은 혜연은
금새 쿵짝이 맞아 대화를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권민혁씨 직업이 격투기 선수에요?
얼굴에 멍자국 화장한거 아니죠?”
“어릴적 꿈은 무술소년이 맞습니다
멍자국은 화장이 아니고 변장입니다”
“여고 선생님이야”
“오마갓! 학교에서 인기 쥐~기겠네”
“끝내주지. 내 팬클럽도 있다니까”
“근데 혜연이는 뭐에요?”
“뭐~ 말씀입니까?”
“둘이 무슨 사이 냐구요”
“음... 청혼했더니 1번부터 4번까지 미친놈 취급한 사이?”
“오마갓! 청혼 했다구요? 혜연이 한테요?”
“니옙!”
“혜연이 남자 있는거 몰라요?”
“잘 압니다~”
“멋져 멋져!”
더 이상 둘의 대화를 들어주기만 하기엔 불편해진 혜연은
유정의 다리를 툭 건드리며 인상을 찌푸려주었다
유정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며 큰 눈을 굴려 민혁의 뒷모습과 혜연을 번갈아 보고있다
얼마후 차는 고속도로로 진입했지만 크게 속도를 못 내고 정체되고 있다
민혁이 버스전용차선을 타는 승합차와 버스들을 내내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이럴땐 승합차가 부럽다니까”
“어차피 세 사람이라 못들어가지 않아요?”
“요령껏. 그 단어는 버스전용차선을 위해 생겨난거야”
“범법자.”
단호하게 민혁을 범법자로 만들어 버리는 혜연의 말에
그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차선을 옮기고 있다
민혁은 꽤나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틀림없이 사회성 좋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융통성 있는 남자일 것이다
아주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것에만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는 강유와는 참으로 많이 다르다
민혁의 둥글둥글함을 반 정도만 떼어 강유에게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마음이 들어 혜연이 혼자 피식 웃는다
“난 배가 좀 고픈데...
휴게실에서 뭐 간단한거라도 먹고 갈까?”
배가 고프긴해도 별로 무언가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던 혜연이지만
민혁이 받아들고온 뜨거운 우동 국물을 몇 모금 마시자 마음까지 가라앉는 느낌이다
셋이 우동 한 그릇씩을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하자
유정은 식곤증이 왔는지 뒷좌석에 기대어 금새 잠이 들었다
혜연도 가만히 뒷좌석에 기대어 눈만 감고 듣고 있자니
가끔씩 무작정 끼어드는 운전자들에게 웅얼웅얼 저주의 말을 하고 있는 민혁이 우습다
작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흘러간 가요 한곡이 끝나고
고속도로의 정체 부분을 알려주는 빠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벗어놓은 혜연의 골덴 마이에서 핸드폰 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강유가 아닐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유정의 옆쪽으로 손을 뻗어 꺼내온 핸드폰 액정에는 낯선 핸드폰 번호가 뜨고 있다
“네..”
<구재진 입니다>
“아.. 재진씨..”
<지금 강유놈 오피스텔 인데요
누나가 와야 할 것 같아요>
“........”
<강유 자식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 고집부리고 약도 안 먹어요
휴일이라 병원 문 연데도 없고 걱정 되서...
누나가 와서 이자식 혼 내켜 약좀 먹게 해주세요>
“....나.. 못가요 재진씨..”
<혹시 둘이 무슨 일 있어요?>
“......”
<와보니까 침대 옆에 흠뻑 젖은 옷 그대로 있고
강유놈은 헛소리처럼 가지 말라는 말만 가끔씩 하고..>
“몇 시쯤 거기 갔는데요?”
<오전에 강유한테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다 죽어 가더라구요
일본에서 오늘 올줄 알았는데 어제 왔다면서요?
11시쯤 와봤더니 이 모양 이에요.. 둘이 무슨 일 있어요?>
강유의 오피스텔은 난방이 상당히 잘되는 곳이다
어제 저녁 곧바로 돌아가 옷을 벗어놨다면
아무리 흠뻑 젖어있던 옷이라도 어느 정도 말라있었을 거다
그 비를 맞아가며 거리를 방황이라도 하고 다닌건 아닌지 한숨이 나온다
“재진씨가 돌봐줘요”
<혹시... 강유랑 헤어진거에요?>
“...그래요..”
<어쩐지... 누나만 찾으면서
가지 마라는 헛소리만 한다 했더니..>
“열 많이 나요?”
<이제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있어요
누나 말은 들을 것 같아 전화한거에요>
어쩌면 강유는 재진이 혜연을 불러 주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이 그렇게 올라있다면 너무 위험하다
미련스레 약까지 거부하며 고집부리고 있을 강유에게 화가나버린다
“정신 차리고 약 먹으라 그래요.
아무리 기다려도 난 거기 안갈거라구요
이제 나와 상관없다 했다고 말해줘요”
<....알았어요.. 억지로 쑤셔 넣어서라도 내가 알아서 할게요>
재진은 전화를 끊으며 어쩔수없이 긴 한숨이 나온다
강유의 오른손에 감겨있는 붕대는 흙물이 묻은 것처럼 얼룩져 말라있고
실밥이 아무렇게나 뜯어져 강유만큼이나 너덜너덜해 보인다
열 때문에 숨조차 뜨거운 강유는 가끔씩 잠꼬대라도 하듯 가지 말라느니
잘못했다느니 하는 말을 웅얼거리며 그녀만 찾고 있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일로 헤어진게 틀림없다
“..누나..”
“서문강유! 정신 좀 차려봐 짜식아!
일어나 약 좀 먹자! 쫌!!”
재진의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는지 감고 있던 눈을 뜬 강유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보더니 몸을 동그랗게 말며 옆으로 돌아눕는다
강유의 뒤쪽에서 팔을 뻗어 이마를 짚어본 재진은
또 다시 긴 한숨을 내쉬며 약을 꺼내어 주방으로 갔다
수저로 눌러 가루를 만들어서라도 해열제를 먹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강유의 몸은 뜨거운 열을 내뿜고 있다
재진이 식탁위에 종이를 깔고 수저 뒷머리로 알약을 꾹 누르는데
약이 총알처럼 튕겨져 나가버린다
“이런 젠장..”
강유뿐 아니라 약도 강유를 거부하는가보다
튕겨져 나간 쪽을 아무리 찾아도 약이 안보이자 재진이 또 혼자 궁시렁댄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약은 포기하고 다시 꺼내온 알약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눌러가며 가루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약간의 물을 받은 컵에 가루를 쏟아 부은 뒤 수저로 휘휘 저으면서
거실을 지나 강유의 침실로 간 재진은 열려있는 문 앞에서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누..나..”
그가 울고 있다.. 커다란 몸을 아이처럼 동그랗게 말고 울고 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알아오면서 강유라는 친구와 눈물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해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감정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듣는 사람이 더 안타까울 정도로 서럽게 흐느껴 울고 있다
물컵을 들고 있는 재진은 도무지 이 약을 어떻게 먹여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강유의 친구인 재진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긴 한숨을 들려준후 전화를 끊었다
혜연이 쇼핑센터에서 택시를 타고 희망의집에 들러 원룸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그리고 혜연과 헤어진 후에도 강유는 그 차가운 비를 맞으며
어딘가를 방황하고 다닌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마음이 속상함으로 어두워진다
그가 제대로 혜연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흐릿해지는 눈에서 눈물이라도 떨어질까봐
혜연은 창밖의 흐린 하늘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이제 제법 속도가 붙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민혁이 뒤를 돌아 혜연을 잠깐 보고는 다시 앞을 본채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던 평소보다 오히려 2시간쯤이 더 걸렸다
저녁식사 시간이 빠른 시골에서는 밥때가 지난 시간에야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연아! 와 이리 늦노?”
“차가 좀 막혔다 아이가”
“배고프재? 니 지둘리니라 내도 굶고 있다 아이가”
“먼저 먹지 뭐러 기둘리노”
“와 그리 말랐노? 밥 안묵고 다닌나?”
“왜 안묵나. 배고프다 밥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모친과 대화를 할때는 되도록이면 사투리를 쓰는편이다
혜연이 또박거리고 서울말을 쓰는 것 보다
투박한 경상도 억양을 담아 대화 하는걸 좋아하시는 이유다
모친과 전화통화 하는걸 처음 들었을 때의 강유는 한참을 소리를 눌러가며 웃더니
사투리를 쓰던 혜연의 말투를 흉내 내며 꽤나 재밌어했었다
모친은 닭백숙을 데워와 마주앉아서 뼈를 발라가며 혜연의 그릇에 쌓아놓기 바쁘다
나름대로 열심히 먹는데도 그녀가 먹는게 시원찮다며 나무라고 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혜연은 모친이 잠든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유정에게 가서 강유와의 일을 말하며 답답한 마음이나 풀자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은후 그녀의 집으로 가겠다고 한것이다
성격 화끈한 유정이라면 충고건 격려이건 시원시원하게 혜연을 받아줄 것이다
하지만 혜연이 미처 마당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할말이 있으니 건식이네 비닐하우스로 오라는 민혁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거지?”
몇 년 전부터 과채류 재배를 하지 않고 비워둔 건식이네 비닐하우스에 들어간 혜연이
기다리고 있던 민혁의 앞에 서자마자 불쑥 묻는 말이다
차에서부터 묻고 싶었던걸 참았다는 얼굴이다
혜연이 찌푸린 얼굴로 대답을 하지 않는데도 그녀를 재촉한다
“그 친구 하고 헤어진 거야?”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잖아요”
“대답하기 싫어요”
“말하기 싫으면 듣기만 해
그 친구 너무 위험해. 어제 그 눈은 분명 살기 였어
혜연씨가 부르지 않았다면 그 깨진 유리컵 조각으로
뭘 어떻게 하려던 건지 모르겠지만...
감정처리가 너무 극단적이야. 정말 위험해 보인다구”
강유는 그 깨진 유리컵 조각을 쥐고 있는 것조차 의식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의 손에 감겨져 있던 붕대 안쪽으로 얼만큼의 상처가 있던건지 알수는 없지만
혜연의 목에 그렇게 흠뻑 피를 묻혔을 정도니 틀림없이 많이 찢어져 있었을거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이성을 잃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남자와 왈츠를 추는 혜연의 모습이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그 장소에서 강유가 보인 반응은 확실히 지나쳤다
“끝내기로 했다면 흔들리지 말아
나 좋자고 하는 말 아니야
나한테 안와도 좋으니까 그 친구 다시
받아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혜연은 하루 종일 애써 눌러 놓았던 마음을 휘집는 그가 원망스럽다
쇼핑센터 앞에서 사형을 내리듯 그에게 이별을 말하던 그녀를
심하게 일렁이는 눈으로 쳐다보던 강유의 모습..
놀이터에서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구걸하듯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던 그의 모습이
또 다시 그녀의 마음을 들쑤셔 놓고 있다
막혀있던 혈관이 터진 듯 이제 걸핏하면 쏟아지려는 눈물을 힘겹게 누르며
혜연은 억눌린 목소리를 작게 뱉어냈다
“..내가... 알아서 해요”
“그렇게 울음을 참으면서 뭘 어떻게 알아서 할건데?”
“민혁씨가 간섭할..”
“원래 정리하려고 했다며 그렇게 아파?
그 녀석 쳐내고 아파 죽겠어서 그런 모습인거야?”
“하지 말아요”
“혼자 얼마나 울었길래 눈이 그 모양이야?
그렇게 다 죽어가는 꼴을 보면 그녀석이 놔줄 것 같아?”
“하지 말라구요!”
“차라리 더 울어요. 실컷 울어버리고 냉정한 모습으로 있어
그녀석이 언제 어디서 혜연씨를 보게 되더라도
손톱만큼의 미련조차 남아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으라구”
“그래요. 어떻게 안 아파요?!
유난히 외로움을 타는 아이에요!
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온몸을 의지해오던 사람을 잘라내고 어떻게 안 아파요?!
나보다 몇 배는 더 아파할 강유를... 그 아이를...”
혜연은 울음이 터져버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울음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흘러넘치고 있다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안으며 민혁은 자신의 두툼한 점퍼로 감싸 안았다
여전히 소리를 눌러가며 울고 있는 혜연의 몸을 자신의 점퍼로 감싸 안고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안아주기만 하고 있다
그녀가 그 녀석으로 인해 아파 우는건 이걸로 끝이면 좋겠다
혜연은 어린 나이에 큰 아픔을 겪어낸 여자이다
사랑만으로는 지켜낼수 없었던 결혼은 결국 이혼을 경험하게 했고
이혼의 원인이 되었던 그 결함은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양으로 그녀를 아프게 할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녀 주변을 적으로 돌리는 강유와 같은 남자는
결코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꼭 민혁이 아니더라도 그녀에게는 한없이 자유로운 사랑과 더불어
언제든 포용해주며 기대게 할수있는 안식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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