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 (12/34)

제 3 장 : 그녀는 그의 성경이고 그의 전존재이다 

#... 5 

강유가 일본에 간지 3일째가 되었다 

자신의 핸드폰을 국제 로밍 해서 가지고 간 강유는 

오전에 한번 오후에 두 번쯤 매일 두세번씩 전화를 하고 있다 

혜연은 어제오후 전에 일을 했던 카페에 들렀었다 

A4 용지에 붙은 아르바이트 오전타임 구인 글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카페 여주인도 혜연을 기억하고 며칠 후부터 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말에 

그녀의 마음이 중요한 과제를 마친 것처럼 한결 가벼워졌다 

카페 주인과 약속한 날짜에 일을 시작하려면 

시골집에는 하루밖에 있지 못할거 같아 아쉬워할 모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점에 들러 방학 중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책을 몇권 산후 

기분이 좋아 가볍게 느껴지는 걸음으로 ‘희망의집’에 가고 있을때 강유의 전화가 왔다 

<보고 싶어 죽겠는 강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보고 싶어 미치겠다> 

“어디야?” 

<도쿄 근처에 하코네유모토 온천> 

“좋겠네” 

<누나랑 같이 왔어야 좋지. 지루해 죽겠어 

순 영감쟁이들하고 온천에서도 일 얘기만 한다 

대체 나는 왜 끌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니까> 

“필요하니까 같이 다니는 거겠지” 

<우리 부친께서 순 재미없는 데만 끌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사람만 만나는데 일 얘기밖에 안해 

누나 같으면 재밌겠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어> 

“일본엔 처음 간거야?” 

<아니. 일본은 몇 번 와봤지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친척도 있으니까> 

“또 어디어디 다녔는데?” 

<호주랑 뉴질랜드.. 미국에도 한번 갔었고> 

“좋겠다” 

<어릴때 얘기야. 엄마 살아있었을 때..> 

“아..” 

<지금 어디야?> 

“희망의집에 가고 있어” 

혜연의 말에 강유가 잠시 말이 없다 

아마도 ‘희망의집’하면 민혁이 연관 되서 떠오르는 강유일 것이다 

혜연이 민혁을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그녀와 함께 있거나 

친분이 있는 남자는 모두 적으로 알고 으르렁대며 달려드는 강유이다 

윤종일 에게는 늘 말할 것도 없었고 건식이네 초상이 있기 얼마 전 

그녀와 같은 나이의 수학과 남자선배가 리포트 자료를 도와준게 고마워 

혜연이 저녁을 사는 자리에 쫓아와서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작정 그녀를 끌고 나와 화를 내게 만든 적도 있었다 

혜연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강유에게 되도록이면 휘둘리지 않으려 애쓴다 

강유를 따라 말이 없는 혜연의 핸드폰 너머로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자식... 거기 또 왔었어?> 

“아니” 

<또 오면.. 어떻게 할거야?> 

“강유야.” 

<알아.. 아는데..> 

“국제전화로 길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 

난 네가 정혜연의 인간관계도 인정해 줬으면 해” 

<알아..>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고 다 ‘남녀관계’가 되는건 아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지?” 

<그만 끊어야겠다. 우리 부친이 나 찾는거 같아> 

“그래” 

<돌아갈 때 유카타 하나 사다줄까?> 

“됐어..” 

<누나한테 어울릴 만한거 하나 본게 있거든> 

“그걸 어디서 입으라구” 

<집에서 입으면 되지. 목욕하고 입으면 되게 섹시할거 같아> 

“됐네요. 난 우리 옷이 편해 

아버지가 찾는다며. 그만 끊자” 

강유는 조용히 사랑한다는 말을 한후 전화를 끊었다 

부친이 찾는다는건 거짓말이다 

혜연의 말에 긍정의 대답을 하기 싫었다 

그에게 있어 혜연에게 다가오는 남자는 모두 ‘남녀관계’다 

그것만큼은 아무리 억눌러도 도무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보여지지가 않는다 

‘희망의집’에 그 남자가 또 갔던건 아닌가보다 

혜연은 거짓말을 하느니 대답을 안 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여자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일본을 끌고 와버린 부친이 원망스럽다 

어떻게든 그녀가 행사를 하기 전에 돌아가리라 마음을 먹은 강유는 

내일 오전 일찍부터 잡혀 있다는 골프 스케줄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새로 거래를 트려고 로비에 들어가 있는 기업의 회장을 위한 접대골프다 

격하고 빠르게 온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좋아하는 강유에게 골프는 

재미없는 공놀이일 뿐이다 

일본에 있는 하루하루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혜연의 왈츠 연습이 거의 끝나갈 무렵 

민혁이 커다란 할인마트 봉투를 양손에 쥐고 공연장으로 올라왔다 

커다란 비닐봉투에는 노인 분들의 간식거리가 한가득 담겨있다 

앉아서 먹고 놀다가라는 말에 혜연이 작게 웃으며 농담 몇 마디를 한후 

귤 두어개만을 집어 내려오는데 금새 민혁이 뒤따라 내려온다 

“혜연씨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연습도 순조롭고 알바도 구했거든요” 

“그럼 밥 사” 

“내가 민혁씨한테 밥을 왜사요?” 

“착한일 하게 해줘서 내덕에 천국행 티켓 확보했잖아” 

“봉사 한번 했다고 천국 갈수 있으면 거기 미어터지겠네요 

어디든 인간들 미어터지면 그건 지옥이지 천국이 아니라구요” 

“그래서 안 사준다고? 밥 먹으면서 

행사에 대한 얘기도 좀 할까했는데..” 

“두 가지 대화만 안한다고 약속하면 살께요” 

“뭔데?” 

“결혼에 관계된거, 그리고 강유 이야기” 

“말하자면.. 찍소리 말고 밥이나 얻어먹어라?” 

“네” 

“자알~ 알겠습니다 

혜연씨가 흔쾌히 밥 산다는데 말 들어야지” 

“꽃게탕 좋아해요?” 

“꽃게탕?” 

“난 엄청 좋아하는데.. 별로면 다른거 먹구요” 

“아닙니다. 자아~ 꽃게 잡으러 갑시다~” 

민혁의 차를 타고 강유와 함께 가끔 갔던 방배동의 꽃게탕 집으로 안내했다 

가는 동안 혜연이 희망의집 노인분들 이야기를 하며 재밌어한다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 혜연의 이야기를 

민혁은 내내 미소지어가며 듣고 있다가 우스갯소리를 툭툭 던지며 받아친다 

주문한 꽃게탕 전골냄비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있는 두 사람 외에는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두어 테이블의 손님이 더 있을 뿐이다 

“내 애제자 박윤정이 자꾸 캐물었었는데” 

“과외할때 나한테도 자꾸 묻더라구요” 

“내가 그 녀석을 쪼만한 꼬맹이 라고 부르거든? 

꼬맹이반 수업마치고 나오면 뽀르르 쫓아 나와서 

‘쌤. 쌤. 어디까지 진도 나갔어요? 국수 언제 먹어요 샘? 

중매쟁이한테는 옷 한벌 해줘야는거 알져?’... 

아주 시끄러웠다니까. 방학하니까 꼬맹이 시달림 안받아서 좋다” 

“민혁씨는 성대모사에 꽤 소질 있어요” 

“칭찬 맞지?” 

“편한대로 생각해요 

아..! 의상은 차질 없이 준비되는 거죠?” 

“니옙! 걱정 마십쇼” 

그들이 희망의집 행사 이야기를 조금 더 하는 동안 

전골냄비에 담긴 얼큰해 보이는 국물이 보글거리고 끓고 있다 

혜연이 국물을 떠내 조심스레 불어 식히고는 한입 먹어본다 

“됐어요. 이제 드세요” 

“그런데 혜연씨. 내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이거 먹고 얼른 가야할거 같거든? 

오피스텔 앞까지는 안될거 같고 큰길에 내려줄게 

거기가 좁은 골목이라 한번 꼬이면 대책 없더라고” 

“잘됐네. 소화시킬겸 천천히 걷는게 좋아요” 

“한참 걸어야 하잖아” 

“걷는거 좋아해요” 

“체.. 조금쯤 서운해 해주지 그렇게 내놓고 잘됐다는 얼굴이냐..” 

사실 밥 정도야 가벼운 마음으로 살수 있지만 식사를 한후 혜연이 만든 

커피를 마시고 싶다던가 하며 곤란하게 할까봐 내심 걱정했던 그녀다 

민혁과 혜연은 가위로 먹기 좋게 꽃게를 잘라가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비싸서 자주 먹지 못하지만 꽃게탕은 그녀가 상당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손으로 쥐고 살을 발라내는 과정이 남자 앞에서는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그런건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의 모습을 민혁이 재밌어 하는 것 같다 

보통은 남은 국물에 밥까지 볶아 먹어주곤 하는데 

불안한 듯 자꾸 재촉하는 민혁 때문에 그냥 나오는게 아쉽다 

“잘 먹었습니다~” 

“덕분에 저도요” 

“집 앞까지 못 데려다줘서 미안합니다~” 

빠르게 속력을 낸 민혁의 차가 금새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의 큰길에 도착했다 

혜연을 내려놓은 민혁의 차가 급하게 출발한다 

무슨 볼일인지 몰라도 저리 급하게 움직일거면 밥은 왜 사달라고 한건지 알수가없다 

천천히 걸어 자신의 원룸 앞에 도착한 혜연은 서점에서 구입한 책과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을 민혁의 차에 놓고 내린걸 깨달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민혁의 번호를 누르니 곧바로 받는다 

<받았다 로져.> 

“어디까지 갔어요?” 

<왜?> 

“어떡하죠? 내 책하고 지갑이 들은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 

뒷 자석 발 놓는 공간에 있을거에요” 

<..... 그러네?..> 

“멀리간거 아니면 돌아올래요?” 

<지금... 안되는데..> 

“아니면 내가 택시타고 갈테니까 지갑 들고 기다려 줄래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에요?” 

<안되는데...> 

“책은 나중에 받아도 상관없지만 

저녁때 과외가려면 차비도 없단 말에요” 

<진짜 안되는데...> 

“혹시... 여자랑 같이 있어요?” 

<뭐?> 

“여자랑 같이 있어서 곤란한거면..” 

<멍청이. 생각하는거 하고는..> 

“뭐에요?” 

<집 키는 있어?> 

“큰길에 나가있을께요” 

<원룸 키까지 가방에 있는거야?> 

“키는 주머니에 있는데..” 

<들어가 있어.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지 마요> 

“날씨 많이 풀렸는데요 뭐” 

<말 들어요. 밑에서 전화하면 내려와> 

오늘은 날씨가 제법 풀려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혜연 때문에 번거롭게 하는 거에 미안해지고 

추운데 밖에 있지 말라는 민혁의 당부가 고마워진다 

원룸으로 올라가 커피를 한잔 만들어 마시고 있으니 얼마후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 

건물 앞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서 창문을 반쯤만 열은 민혁이 

그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을 내민다 

그의 행동이 이상해서 혜연이 창문 틈으로 빤히 쳐다보는데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하네?” 

“이상하긴 뭐가~ 이거나 받아요” 

“얼굴이 왜 그래요? 창문 좀 더 내려봐요” 

그의 얼굴이 이상해서 혜연이 창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다 

민혁의 얼굴에는 두드러기가 틀림없는 것들이 잔뜩 올라와있다 

그러고 보니 가방을 들고 있는 손등에도 두드러기가 있고 

그의 입술이 평소보다 두툼한 것이 부은 것 같다 

뒤쪽에서 다가온 차가 정차해 있는 민혁의 차를 재촉하며 클락션을 울린다 

“할수없네.. 일단 타요” 

“차에 타라구요?” 

빵빵~! 성질 급한 운전자가 다시 한번 클락션을 울려대자 

혜연이 빠르게 건너가 조수석으로 들어앉는다 

차를 출발시키며 비상등을 몇 번 깜빡이게 켜주는 민혁을 혜연이 빤히 보고 있다 

“고만 봐. 열라 쪽팔리단 말이다” 

“그거... 알러지에요?” 

“니옙! 권민혁은 꽃게 알러지가 있습니다” 

“하..” 

어이없고 기가 막힌 혜연이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사람이 미련해도 정도가 있지 자신이 알러지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그렇게 맛있게 꽃게탕을 먹고 두드러기가 생겨 버린게 이해가 안가고 있다 

“권민혁씨 바보에요?” 

“그런가봐” 

“알러지 있는걸 알면서 미련 곰팅이처럼 그걸 왜 먹어요?” 

“혜연씨가 엄~청 좋아한다며... 

더구나 처음으로 기분 좋게 밥 산다는데 

이건 싫어해요. 죠건 알러지 생겨요. 어떻게 그래” 

“못살아... 날 생선은 잘만 먹으면서 

그 맛있는 꽃게탕에 왜 알러지가 생겨..” 

“고만 쳐다봐. 흉측한 얼굴로 기억되고 싶지 않으니까” 

민혁의 얼굴과 목은 정말로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두드러기들에 싸여있고 

입술은 점점 더 부어오르는 듯 하다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두드러기인 듯 가끔씩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어내고 있다 

큰길로 나와 한바퀴 돌은 그의 차가 다시 혜연의 원룸으로 가는 좁은 길을 들어서려한다 

혜연은 약국 앞에서 차를 세우게 한 뒤 지갑을 들고 내렸다 

흰 가운을 입은 약사가 무덤덤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꽃게탕 먹고 두드러기가 생겼거든요 

처방전 없이 먹을 수 있는 약 있나요?” 

“있긴 한데.. 처방전 받아 오는게 더 나을텐데” 

“일단 그 약 좀 주시겠어요?” 

“약 먹고도 안 가라앉으면 꼭 병원 가야해요” 

마시는 비타민과 함께 약을 들고 나온 혜연이 차에 오르자 

그대로 앞만 보고 있던 민혁이 차를 출발 시킨다 

건물 앞에 도착한 차에서 그녀가 약사의 말을 전달하며 약봉투를 내미는데 

민혁이 얼굴을 감싸 쥐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심한 알러지는 호흡곤란이 올수도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거 같다 

혜연이 잔뜩 겁먹고 당황한 얼굴이 되버린다 

“왜 그래요!! 숨 못 쉬겠어요? 아파요?!!” 

“으... 혜연씨가 날 위해 직접 약까지 사다줘서 감동의 몸부림이야” 

“정말... 사람 놀라게..” 

“걱정 마. 약 먹으면 금방 가라앉아” 

“다시는 이런 미련한 짓 하지말아요 

못 먹으면 못 먹는다 그래야지 이게 뭐에요?!” 

“알러지야 약 먹으면 금새 가라앉지만 

꽃게탕 못 먹어서 실망할 혜연씨 얼굴은 

마음에 오래 남을거 같았단 말입니다” 

할말을 잃은 혜연이 말없이 약봉투를 건네는데 

민혁은 약 봉투 대신 혜연의 손을 감싸 쥐고 있다 

“알러지만 아니면 혜연씨한테 진~하게 키스라도 해주는 건데...” 

“누가 권민혁씨의 진~한 키스를 받아주기나 한대요?” 

“들어가요. 뒤에 또 차온다” 

혜연은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원룸 쪽으로 건너왔다 

운전석 창을 내리는 민혁은 자신의 두드러기가 민망하긴 한지 

한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가린채 그녀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가려울게 틀림없는 두드러기를 혜연이 미안해 할까봐 제대로 긁지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자꾸만 쓸어내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마음씀이 혜연의 마음에 조그맣게 내려앉는다 

크게 부족한거 없고 선생님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그를 좋아할 여자는 많을 것이다 

살갑게 대하지도 않는 그녀에게 그런 무모한 행동까지 하며 다가서려 애쓰는 민혁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계단을 오르는 혜연의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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