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 그녀는 그의 성경이고 그의 전존재이다
#... 2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려있는 스카이라운지..
종업원들은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소리 없이 돌아다니고 있고
테이블에 마주앉은 사람들은 남녀 한쌍이 대부분이다
강유도 혜연도 양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제대로 코스 밟아 먹자고 졸라댄 강유의 말에 온 것이다
양만 많은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 혜연에게는 적당하지만
쥐눈꼽 만큼씩 나오는 음식을 먹은 강유는 틀림없이 나중에 무언가 더 먹어야 할 것이다
에피타이저와 메인요리를 와인과 함께 먹고 디저트로 나온 작은 치즈케익 조각을
포크로 떼어먹는 혜연의 옆으로 강유가 자리를 옮긴다
“눈 감아봐 누나”
“또 무슨 짓을 하시려고”
“이상한 짓 안할테니 예쁜 눈 살짝 감아주세요”
살짝 눈을 감는 혜연에게 강유의 양팔이 감싸듯 다가오자
움찔 놀라며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목에 내려앉는 목걸이를 쳐다보았다
백금으로 된 목걸이에는 촘촘히 큐빅이 박힌 하트 모양으로 된 메달이 걸려있다
큐빅도 메달을 감싸고 있는 테두리도 오묘한 빛을 내는게
대충 보기에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값비싸 보인다
“예쁘긴 한데 너무 비싸 보인다... 부담스러워”
“이런 날 아니면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댓글 달지마”
강유는 늘 그녀에게 무언가 사주고 싶어 하지만 혜연은 좀처럼 받아주는 법이 없다
악세사리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고 다니지도 않는 그녀다
혜연이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는 모습을 보며
선물을 받은 그녀보다 강유가 더 좋아하는 표정으로 웃고 있다
“오늘은 나 원룸으로 갈거다?”
“너 있으면 공부 안돼
가서 한참 공부하다 자야한단 말야”
“나쁘다 정혜연.”
“동감이야”
“나 때문에 시험 망쳤다 소리 들을까봐 오늘은 참아준다”
“착하다 서문강유.”
“그거 메달 뒤에 돌려봐”
강유를 따라하는 혜연의 말투에 그가 웃으며 턱짓으로 그녀의 목걸이를 가리킨다
혜연이 고개를 바짝 숙이며 들여다본 하트 메달 뒤에는
[ ? 혜연+강유 ? ]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그들의 이름이 더하기와 함께 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전존재에 관한 글이야”
“강유가 성경도 읽어?”
“누나가 내 성경이야”
“말을 말자”
“누나가 내 성경이고 내 전존재야.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이 내가 새로 태어난 알파이고
누나와 함께 죽을 날이 내 오메가야”
강유의 눈빛은 언제나 솔직하다. 거리낌 없이 모든 감정을 실어 그녀를 응시한다
강유의 감정은 언제나 솔직하다. 주저함 없이 사랑한다고 외치며 그녀를 밀어 붙인다
막힘없는 그의 감정을 담은 눈빛은 조금씩 그녀를 옥죄어온다
그녀 역시 강유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얼만큼 깊이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강유와 혜연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거라는건 확실하다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것 또한 확실하다
그는 언젠간 결혼을 해야 할거고 그 상대가 혜연이 될수없는건 분명하다
만약 그의 가족들이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어 그녀의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상처내며 다그친다면 그녀는 미련 없이 강유를 놓아버릴 것이다
혜연의 자존심은 내세울것 없는 그녀가 스스로를 지키는 소중한 것이다
그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강유의 부모에게 매달릴 만큼 그를 사랑하는건 아닌것같다
결국 그녀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이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도 비겁하다고 느낀다
조금씩 그를 잘라내야 한다
그를 남은 한 조각까지 모두 잘라낸 후 혜연이 얼만큼의 피를 흘리게 될지는 알수없지만
강유만큼 지독하게 그녀를 사랑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유만큼 그녀에게 집착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유만큼 그녀를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 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준비 못했어
미안하게도 네꺼만 고맙게 받아야겠네”
“괜찮아”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고 있지만 강유의 얼굴은 실망감을 감추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건의 종류를 떠나서 의미 있는 날에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혜연의 원룸에는 줘야할지 확신이 없으면서도
틈틈이 뜨개질을 해서 완성해 놓은 진회색 목도리가
내용을 쓰다 말아버린 카드와 함께 있다
보실보실한 털실이 보기만 해도 따뜻해 보이는 그 목도리는
아마도 그의 목을 감싸지 못하고 쇼핑백 안에서 죽은 듯 시간을 보낼 것이다
민혁이 아파트 상가의 생선가게에서 스파게티에 넣을 해물들을 사고 있다
그는 까다롭고 복잡하지 않은 거라면 요리 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때로 1시간 가까이 음악을 들어가며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지만
혼자 식탁에 앉아 5분 만에 먹어버린 후에는 늘 허무해지면서 설거지조차 하기 싫어진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그 허무함을 채워 그의 식탁 맞은편에 평생 앉게 하고 싶은 여자를
찾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봤지만 딱히 결혼까지 하고 싶은 여자는 없었다
“음악은? .....음.. 퀸의 BOHEMIAN RHAPSODY 가 좋겠네...
큭.. 꽤나 난해한 스파게티가 되겠군....”
그는 혼잣말을 잘 하는 편이다
자신이 질문을 하고 스스로 대답을 하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머리에서 손가락을 빙글거리고 돌릴 듯도 하다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진정한 신화로 거듭나게 해주었을 보헤미안 랩소디는
클래식을 즐겨듣는 그가 가끔씩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듣는 곡이다
스파게티를 삶을 물을 불에 올린 후 토마토를 으깨고 있을때 혜연에게 전화가 왔다
액정을 보는 순간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든다
“니옙~”
<정혜연 이에요>
“스파게티 좋아해?”
<마레는 좋아해요>
혜연이 민혁에게 전화를 한 것은 처음이다
틀림없이 무언가 중요한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했을 것이다
민혁의 뜬금없는 질문에 ‘왜요?’ 라며 반문을 보내리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그녀는 알쏭달쏭한 문제의 정답을 가르쳐 주는듯한 말투다
역시 재밌는 여자다. 마을회관에서 그의 기습키스에 대한 반응도
그의 청혼에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보일 반응은 결코 아니었다
“와~ 나랑 취향이 똑같네?
나도 해산물 스파게티를 제일 좋아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데 먹으러 와도 좋아”
<양로원 행사 말이에요>
“하려고?”
<할게요.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의 실력은 분명 아니지만
노인 분들도 완벽한 스텝을 배우긴 힘들 테니까 부담 느끼지 않을래요>
“역시 멋져”
<행사날짜는 언제 할 거에요?>
“30일. 말일엔 다른 행사가 많아서..”
<부탁이 있어요>
“뭐든 오케이”
<강유에게 권민혁씨가 소개한거라는 말 못했어요>
“그 친구도 거기 데리고 다니게?”
<아마 한두번은 와서 구경할거에요>
“그러니까. 나는 얼굴도 비치지 말아 달라 이거지?
혜연씨가 오케이 해서 나도 바빠지게 생겼으니 그건 걱정 말아”
<그쪽 학교는 방학이 언제에요?>
“27일”
<행사에 관한건 시험 끝나는 날
희망의집에 가서 원장님과 얘기 할게요>
“좋아. 우리 할매 할배들 잘 부탁해요~”
<끊을께요>
“진짜 스파게티 먹으러 안 올래? 같이 먹어주면 행복할 텐데”
<그냥. 행복하지 마세요. 끊을께요>
혜연의 장난스런 말투가 재미있어서
토마토를 마저 으깨어 볼에 담아놓는 민혁이 혼자 미소를 짓고 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제 절정부분으로 가기위한 도입부로 들어서며
빠르고 강한 음을 쏟아놓고 있다
l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Scaramouch Scaramouch,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는군 광대 스카라무쉬 스카라무쉬
will you do the Fan-dan-go
판당고 춤을 보여줘
Thunder-bolt and light-ning ve-ry ve-ry Frightening me
천둥 번개는 날 아주 아주 두렵게 하고 있어
Gallileo, Gallileo, Gallileo, Gallileo, Gallileo, fi-gro, Magnifico
다소 충격적이고 난해한 가사내용으로 인해(근친살해 해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초판은 국내에서 정식발매조차 되지 않았던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 특유의 서정적이고 맑은 음색으로 오페라처럼 갈릴레오를 쏟아내고 있다
민혁은 익살스런 표정으로 갈리레오를 반복해서 따라 부르고는
혜연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재밌는 말을 할까 싶어져 혼자 웃어버리고 있다
민혁이 혜연을 제대로 본 것은 그가 고등학생 때였다
그의 부친은 시내의 2층짜리 건물을 사서 1층은 세를 놓고
2층에서는 당신의 소아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은 그의 형들이 공동명의로 물려받은 그 건물은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7층짜리 건물로 신축해서 큰형과 작은형이 모두 거기서 내과와 이비인후과를 하고 있다
민혁의 허영심 많고 사치스러운 어머니와는 달리 부친은
상당히 소박하고 조용한 분이시다
마을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깔끔하게 신축을 한 2층집 이었어도
시내의 아파트가 아닌 시골냄새가 물씬 나는 마을에서 살고있는걸 늘 창피해했던 어머니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프면 꼭 부친의 병원까지 와서
-여기 선생님은 나와 잘 아는 사람이다- 라는걸 대기 중인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말하는 듯 했다
민혁이 무언가를 사달라고 고집을 부렸던 걸로 기억 한다
더 이상 상대해주지 않고 ‘다음 환자’를 진료실로 불렀을 때 혜연이 들어왔다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는 소녀는 부친의 질문에
나이에 맞지 않는 차분하고 분명한 말투로 자신의 증상을 설명했다
소녀의 모친이 그의 부친과 사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는 동안 그녀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총기가 가득한 눈과 반듯한 이마...
곧게 뻗은 코 아래에 묘하게 육감적인 입술이 눈길을 끌었지만
민혁에 비해 젖내 나는 어린 소녀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모녀가 진료실에서 나간 후에 민혁이 부친에게 물었다
“누구에요? 마을사람?”
“감 나무집 아주머니 잖냐”
“건식이네서 쭉 올라가면 있는 집?
아까 그 꼬맹이는 몇 살인데요?”
“5학년. 왜? 여동생 삼고 싶으냐?”
“쬐그만게 야무지게 생겼네..”
나이차로 인해 생활패턴이 다른 민혁과 혜연은 그 후로도 가끔씩
마을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재잘대는 친구들과 있을 때가 많았던 그녀는
그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해 겨울... 서울의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합격한 그는
마을을 떠나 학교 근처에서 친구와 함께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 감나무 집 꼬맹이를 그해 여름방학에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민혁의 의식 속에서 다시금 별다른 의미 없는 사람으로 잊혀져갔던 것이다
강유가 알파와 오메가 이야기를 하던 스카이라운지에서
혜연은 ‘희망의집’ 왈츠 이야기를 했었다
민혁의 권유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녀가 왈츠로 상까지 받았었다는 걸 몰랐던 강유는 매우 재밌어하며
노인 분들께 기꺼이 춤 선생이 되어주라고 했다
혜연을 원룸 앞까지 데려다준 강유는
다정하고 부드럽게 키스를 하고는 아쉬운 얼굴로 돌아갔다
혜연은 망설임 끝에 노인 분들께 왈츠를 가르쳐 주기로 결정하고 민혁에게 전화를 했다
기말시험이 끝나던 날 혜연은 양로원으로 갔다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지 않은 노인 분들에 한해 오후에 1~2시간씩.
의상은 권민혁씨가 담당.
행사 당일의 간단한 먹거리 준비.
원장과 마주앉아 몇 가지 사항을 의논한 후 돌아온 혜연은
혼자 PC방에 들어가 인터넷을 뒤져 왈츠 스텝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여자 스텝은 곧 선명하게 되살아났지만 남자스텝은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강유는 시험이 끝난후 이틀 동안은 수업결손 보강을 듣느라 바빴다
이제 방학만을 남겨둔 가벼운 마음의 강유와 친구들은
학교 근처의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친구 하나는 도중에 여자친구를 만난다며 가버리고
재진은 그의 여자친구와 한참을 핸드폰을 붙들고 통화를 하더니
금새 여자 둘이 주점으로 왔다
재진의 여자친구인 이선애와 한이슬이 오면서 남자들뿐이던 자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가서 신나게 스트레스 풀고 오자구요.. 응?”
“난 스키 잘 못타는데..”
“강유 오빠는요? 운동신경 좋게 생겼는데”
“스키 보다는 보드를 좋아해”
“강유는 보드 끝내주게 타. 포즈도 예술이지 예술”
방학을 하면 다 함께 스키장을 다녀오자는 이슬의 말에
보드와 스키 모두 형편없는 재진이
프로 못지않게 보드를 타는 강유가 부러운 듯 말하고 있다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건 내켜하지 않지만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강유는 보드와 수영만큼은 자신이 있다
작년 시즌에는 혜연을 따라다니는데 바빠 보드도 못타고 지나버렸다
“2박 3일 정도로 다녀올까?
강유 너도 지난해는 누나 때문에 못갔었잖아”
“12월에는 안돼. 누나가 뭐 하는게 있어서 못갈거야”
“뭐하는데요?”
“춤 선생”
강유가 재밌다는 얼굴로 웃음을 띄고 설명을 한다
다른 어떤 말보다 혜연의 이야기를 할때는 표정부터 부드러워진다
이슬이 그런 강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다
“꼭 그 언니 스케줄에 맞춰야하는 거에요?
우리끼리 먼저 다녀오고 다시 또 가면되잖아”
“강유놈. 3일이나 그 누나 못 보면 병 생길걸?”
“빙고”
“대체 그 언니 어디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모르겠네
내 보기엔 평범 그 자체던데...”
“우리 혜연이는 여기가 특별해”
강유가 자신의 심장을 두드리며 하는 말에
그의 친구인 진철이 키득거리며 받아치고 있다
“가슴? 그 누나 보니까 삐쩍 말랐어도 가슴은 크더라?
강유 너 그 누나 가슴에 반했냐? 하긴 나도 가슴 큰 여자가 좋아~”
“다시말해봐”
강유의 딱딱해진 목소리와 굳어진 얼굴에 재진이 진철에게 눈치를 준다
자신의 여자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걸 웃어넘길 강유가 아니다
분위기가 더 이상해지기전에 수습하기 위해 강유에게 잔을 쥐어주고 소주병을 든다
“됐어 임마~ 진철이는 단순한 무뇌청년 이잖냐
심장 말하는 거지? 저 놈이 그 깊은 뜻을 알겠냐?”
“한번만 더 그런 식으로 누나에 대해 말하면...”
“알았다니까 짜식아. 술이나 받어. 팔 떨어지겠다”
받아든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강유는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이다
진철은 괜히 머쓱해져서 자신의 잔을 들어 재진에게 불쑥 내밀어 술을 받는다
친구들 사이에서 혜연의 얘기만 나오면 유난히 예민해지는 강유라는 건 알고 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치지 못하는 미련한 친구라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된다
“우리 혜연이는... 내 심장을 삼켰어
7년 동안 썩어서 쓸모없어 지려는
내 심장을 살려냈기 때문에 내가 줘버렸거든”
“7년? 왜 7년이에요?”
“넌 몰라도 돼 임마”
“오빠! 여자한테 임마가 뭐에요?”
도무지 자신을 여자 취급도 안하는 강유에게 이슬이 툴툴거린다
강유는 그의 생모가 죽은 그때부터 그의 심장이 썩어들어 간다고 느꼈다
빈틈없고 냉철한 부친과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형제들 사이에서
무조건적인 포용력으로 그를 감싸 안았던 어머니였다
별로 숨기려 애쓰지도 않고 유난히 강유를 아끼고 사랑했던 어머니는
어느새 훌쩍 커버려 품에 안기에도 버거운 그를 옆에 앉히고 조용히 소곤거리곤 했다
“강유야.. 산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산은 늘 한자리에 있으면서 변치 않고 모든걸 받아준단다
한결같지만 아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만나도 싫증나지 않고...
속이 깊어서 내 고민도 다 들어주고...
우리 강유도 엄마처럼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던 산이 결국 그녀를 잡아먹었다
그의 가족들이 그녀를 남원의 산에 뿌리고 돌아오던 날
강유는 친척들이 잔뜩 몰려와 있는 집의 어두운 다락방에 들어앉아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만으로 끝내게 되었고 자살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의 보상처럼
중2라는 어린나이에 담배와 술을 배우고 마음에 안드는 녀석이 있으면 폭력을 휘둘러댔다
그 뒤로 강유는 단 한번도 어머니를 뿌렸던 남원에 내려간 적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강유 내부의 그 어딘가가 굴절되 버렸다는걸 그도 알고 있다
그것은 혜연을 만남으로 인해 재활에 들어갔다고 스스로는 생각하지만..
강유는 모른다
절대적으로 특별한 존재는 그를 더욱 굴절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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