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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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내것이 안될바엔''' 

#... 5 

입이 삐죽 나와 있는 혜연은 이제 다 포기해버렸다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딸랑 몸만 따라왔으니 혼자는 갈수도 없는데 

계속해서 돌아가자고 졸라도 자유이용권을 끊어 들어온 민혁이 괴씸해 죽겠다 

제법 쌀쌀한 날씨지만 햇빛은 아직 따스한 기운을 품으며 화창하게 빛이 나고 있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단위의 그룹들이 많이 눈에 띈다 

“놀이공원 자주와?” 

“아뇨” 

“난 학교 소풍때 따라다녀서 많이 와봤는데” 

놀이공원 이라면 4년전 윤종일과 함께 롯데월드에 가본게 마지막 이었다 

강유는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휴일에 별다른 약속이나 볼일이 없으면 그녀의 원룸으로 와서 함께 TV를 보거나 

맛있는걸 해달라고 조르며 넓지도 않은 공간 안에서 그녀만 졸졸졸 따라 다닌다 

틀림없이 전화를 할텐데 받지 않아 걱정할 강유가 마음이 쓰이는 혜연이다 

“몇시에 갈거에요?” 

“글쎄.. 본전 뽑을때까지?” 

“무서운거 잘 타요?” 

“대충..” 

“그럼 이왕이면 무서운 거만 몇 가지 골라 타고 빨리 가자구요” 

“난 회전목마 타면서 영화 찍고 싶은데..” 

“꼬맹이들이 많아서 19금 호러는 상영 못해요” 

“크큭..” 

그녀의 말에 민혁의 눈이 웃음으로 반달진다 

입구에서 가까운 바이킹이 있는 곳으로 가니 줄이 기다랗게 서있다 

적어도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타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난다 

그녀를 줄에 세워놓은 민혁이 어딘가로 가더니 커피 두잔을 가지고 돌아온다 

두 손으로 커다란 종이컵을 감싸쥐니 손난로 처럼 몸을 덥혀주는 것 같다 

혜연과 민혁의 앞에는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사내 녀석들 셋과 

여자애 둘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개쉑! 어제도 내 문자 씹었잖아 새끼야!” 

“진짜 안들어 왔다니까!!” 

“뒤진다? 내 문자는 어디 나이트 가서 춤추고 있대냐?” 

“킬킬.. 저 새끼 폰은 블랙홀 이잖냐” 

“븅신 코싸인 같은 새끼” 

“어우야~ 니네 왜 남에 남편가지고 구박이니?” 

“역쉬 우리 마누라밖에 없다니까. 에구 이뻐~” 

고등학생끼리 남편이니 마누라니 해가며 투닥대는게 재밌는 

혜연이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혼자 웃음을 참고 있다 

“아우씹! 둘이 하여튼 조따 쏠려~” 

“야. 옥떨개! 줄맞춰 앞으로 가기나해” 

“너어~ 내가 옥떨개 그거 하지 말랬지!!” 

옥떨개라 불린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염색한 샤기컷을 하고 있는 남자아이를 열심히 째리고 있다 

“왜? 옥상에서 떨어진 눈 튀어나온. 개.구.리. 

니가 딱 그렇게 생긴걸 어쩌라고오~” 

“풉..!” 

여자아이의 눈 아래에 도톰한 애교살이 있는게 

별명과 묘하게 매치가 된다는 생각에 혜연이 푸흡 소리를 내며 

대놓고 웃어버리자 여자아이가 혜연을 매섭게 쳐다보고 있다 

“뭐야~ 저 아줌마 진짜..” 

“진수야. 저 누나가 니 마누라 존나 비웃는다?” 

“씨발.. 아줌마가 우리 희수 비웃었냐?” 

커다란 키에 오렌지색으로 염색한 머리의 남자아이가 

혜연을 내려다보며 위협적으로 말한다 

아차 싶어 곤란한 얼굴로 상황수습을 하려는데 민혁이 나선다 

“너희들 얘기가 재밌어서 웃은건데 뭘 그러냐~” 

“재밌어? 존나 우리가 우습게 보여?” 

어찌나 험하게 인상을 쓰고 민혁을 보는지 혜연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민혁은 입가에 미소를 띄운채 키가 큰 남자아이에게 장난스럽게 말한다 

“떽! 어른한테 그렇게 막 말하면 못쓰지이~” 

“미친... 나이 먹은게 자랑이냐?” 

아무리 화가 나도 어린 학생들이 어른 상대로 말을 너무 험하게 한다 싶어지는데 

그는 여전히 재밌다는 듯 웃으며 장난처럼 남자아이를 상대하고 있다 

불안해진 혜연이 그들 일행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해 얘들아. 우스워서 웃은게 아니라 

니네들이 귀엽고 재밌어서 웃은거야” 

“누가 아줌마더러 귀엽게 봐달래? 

씨발.. 존나 기분 드럽게 저 자식은 왜 실실 쪼개?” 

“이놈들 안되겠네... 너희들 

어느 학교 몇 학년 몇반 몇 번이냐?” 

민혁의 질문에 오렌지 머리를 한 키가 큰 남자아이는 더욱 험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샤기컷의 염색머리가 키득대고 웃는다 

“야. 조따 웃긴다~ 몇 번까지 묻냐? 

아저씨가 뭔데 그걸 물어? 학교에 꼬바르게?” 

“난. 이런 사람이다” 

민혁이 지갑을 꺼내 사내아이들의 눈앞에 휘릭 폈다가 접는다 

무엇을 그리 재빠르게 보여준 건지 혜연도 궁금해진다 

그들 일행 중 아무도 제대로 못봤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들이다 

민혁은 표정도 말투도 재밌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봤지? 짜식들.. 니들 어느 학교야?” 

“뭐야.. 경찰이냐?” 

“겨우 경찰? 난 경찰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다” 

“그.. 그딴게 어딨어요? 

얘들아 그만하자. 저 아저씨 뭔가 있나봐” 

“희수 가만있어봐. 아저씨 지갑 다시 한번 봐요” 

“어느 학교인지 말하면 보여주마” 

“경언공고..” 

“야이 씨발놈아 그걸 말하면 어떻해!” 

“저 병신새끼는 졸라 눈치도 없다니까!” 

일행중 그나마 평범한 머리색의 남자아이 하나가 학교이름을 말하자 

샤기컷과 키가 큰 녀석이 욕을 해가며 사정없이 그 사내아이의 머리통을 날린다 

“음.. 경언공고? 자아... 잘 봐라 

귀한거라 아무나 안보여주는 거니까” 

민혁이 지갑을 펼쳐 그들 일행 쪽으로 쭉 펴자 

혜연이 재빠르게 그쪽으로 쪼르르 뛰어가 같이 지갑을 들여다본다 

지갑 속에 뭐가 있는지 꽤나 궁금했던 것이다 

“뭐야~ 겨우 교사증 아냐?” 

“졸라 쫄았네..” 

“음.. 경언공고면... 독사샘 있겠네?” 

“아오~씨.. 독사하고 아는 선생인가봐” 

“재수 존나 조진 날이다” 

“조지긴 뭘 조져. 이거 재미없으니까 딴거 타러가자” 

의연하게 행동하려 애쓰는 듯하지만 허둥대는게 틀림없는 몸짓으로 

줄에서 5명이 우르르 빠져 나간다 

어이가 없는 혜연이 민혁을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하며 빈 줄을 당겨 선다 

“교사증이 경찰증보다 높은줄 처음 알았네요” 

“저 녀석들은 경찰보다 학교 선생을 더 골치 아파 할걸?” 

“발이 넓은가 봐요? 경언공고가 어디있는 거기에 

어느 학교. 하니까 독사샘. 하고 딱 나와?” 

“그런 사람 몰라” 

“예?” 

“어느 학교든지 독사 별명 가진 선생 하나쯤 있을 확률이 높거든 

대충 때려 찍은건데 저놈들이 제대로 넘어간거지. 아님 말고오~” 

“하..”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혜연과 민혁이 몇줄 안남은 끝까지 다와간다 

강유 같았으면 그 남자아이들이 그녀에게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무작정 주먹을 날려 큰 싸움이 벌어졌을거다 

“민혁씨꺼 전화 오는거 아니에요?” 

“어? 나이 드니까 귀도 잘 안들려요~” 

혜연에게 개구진 웃음을 짓는 민혁이 

쟈켓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더니 그냥 집어넣는다 

주머니 안에서 여전히 벨소리가 울리고 있다 

“안받아요?” 

“모르는 번호야” 

“그렇다고 안받아요?” 

“내 인생에 접수되지 않은 사람 전화는 안받아도 돼” 

몇 번이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혜연의 핸드폰. 

불안해진 강유는 옷을 갈아입고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의 혼다 CB900 바이크에 올라앉은 강유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곧 속력을 내서 달렸다 

혜연은 바이크라면 끔찍하게 싫어해서 강유의 미끈하게 빠진 

애마를 단 한번 타보고는 다시는 안탄다고 손을 내저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바이크를 탔던 강유인지라 운전솜씨가 상당히 좋은편이다 

학교에는 아주 가끔씩만 가져가고 보통은 따로 스피드를 즐기고 싶을때 애용하고 있다 

바이크를 건물 옆에 잘 놓아두고 5층까지 단숨에 올라가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다 

“어디 간거야.. 전화도 안받고..” 

강유가 다시 그녀의 단축버튼을 누르자 문 안쪽에서 희미하게 벨소리가 들리는거 같다 

귀를 바짝 갖다댄 문 안쪽에서는 과연 혜연의 벨소리가 울리고 있다 

그는 가볍게 문을 두드려 대며 그녀를 불러보았다 

“누나!!  정혜연!!” 

아무 응답이 없는 문 앞에 서있던 강유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그녀가 방안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떠오르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강도 같은게 침입해서 그녀를 어떻게 한건 아닐까.. 

현관 레버를 잡고 있는 손이 가늘게 떨리는걸 진정시키며 

가만히 당겨본 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가뿐하게 열리고 있다 

원룸에는 아무도 없다. 식탁위에 그녀의 핸드폰이 보인다 

서랍장 옆에 어제 가지고 다녔던 가방과 가방 속에 지갑도 들어있다 

침대위로 올라가 벽에 기대 앉은채 생각에 잠겨있던 강유가 

식탁에서 그녀의 핸드폰을 가져와 발신을 검색해본다 

어젯밤에 헤어진후 집에 들어왔다고 확인전화 해준 강유의 번호가 마지막이다 

이번엔 수신 검색을 누른 강유는 오전 9시 27분에 

이름 없이 핸드폰 번호만 기록되있는 수신이 마지막인걸 확인했다 

바이킹에서 내리자마자 비틀대고 걸으며 벤치로 간 민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털푸덕 앉는다 

혜연이 그런 민혁을 보며 있는 대로 비웃어주고 있다 

“으아~ 죽는줄 알았다” 

“무서운거 못타죠?” 

“큼..” 

민혁이 주먹쥔 손을 입에 대고 헛기침을 한다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자 어찌나 민망한지 모르겠다 

바이킹이 최고높이에 이르렀다 떨어지기 시작할 때는 머리통에 있는 피가 

발바닥 끝으로 모두 쓸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꽉 감고 이를 악문 민혁이 주먹뼈가 튀어나오게 안전바를 붙잡고는 

그 고통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혜연이 모두 보았나보다 

“무서운거 다 잘타” 

“고짓말” 

“선생님은 거짓말 안해” 

“최상급 거짓말이네” 

“진짜. 어지간한 놀이기구는 다 타는데 

바이킹은 한번 타본 뒤로 안타거든” 

“그럼 말을 하지 미련하게 줄까지 서서 타고 있어요?” 

“무섭다는 말을 어떻게 하냐” 

“남자들은 하여튼... 별거 아닌 거에 

폼 잡느라 손해 본다니까” 

강유는 혜연의 마지막 수신에 있는 번호를 자신의 핸드폰으로 그대로 따라 눌렀다 

느릿한 복고음악을 한참 듣도록 전화를 받지 않아도 

이 전화번호의 주인이 두 번이나 자신과 마주쳤던 그 남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동물적인 본능이 혜연이 그 남자와 함께 있다고 느끼게 하고 있다 

주방으로 간 강유는 주전자에 생수를 조금 부어 가스 불을 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매가 그려진 도자기 커피셋트 뚜껑을 모두 열고 

티스푼으로 커피와 설탕을 넣은후 뜨거운 물을 부어 프림의 양을 조절해 넣어 주었다 

“틀려..” 

이 맛이 아니다. 틀림없이 그녀가 하는 대로 만든 건데도 맛이 틀리다 

그녀는 향 커피도 1회용 커피도 싫어한다 

음식에 양념을 맞추듯 스푼위에 올려지는 커피와 설탕의 양을 조절하며 담아놓고 

뜨거운 물을 부은후 프림을 넣고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휘젖는다 

그녀가 만든 커피는 달치근한게 상당히 맛있다 

커피와 국화차가 그녀가 즐기는 두가지 차 종류인데 

국화차는 방배동의 차 전문점까지 가서 꽤 비싼 돈을 주고 산다 

그녀가 자신의 유일한 사치라고 말하는게 바로 국화차다 

아주 기분이 좋을때. 또는 아주 기분이 저조할 때 그녀는 국화차를 마신다 

시계의 큰 바늘이 2시에 가까워지는걸 보며 강유는 억지로 다 마신 컵을 담가놓는다 

어제 밖으로 나갔던 혜연은 수염이 까칠한 남자와 같이 들어왔었다 

남자가 씽크대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동안 강유가 자신이 깨버렸던 식탁 유리를 치웠다 

강유가 다시 한번 아까의 번호를 재발신한다 

이번엔 받았다.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가 단조로운 말투로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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