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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 송아지를 삼켜버린 아나콘다 처럼... #... 1 (1/34)

                       제 1 장 : 송아지를 삼켜버린 아나콘다 처럼... 

#... 1 

경상남도의 작은 시골마을.... 

[마을회관]이라는 기다란 명판이 붙여진 단층짜리 건물은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다 

회관에서 조금 떨어진 비닐하우스 두개 동 안에서는 

어제 오전 83세의 수를 다하고 돌아가신 건식이네 할머니의 초상손님들로 북적인다 

초상손님이라야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 

수를 다하고 돌아가신 호상이어서 그런지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다 

술에 취해 떠들어대는 어르신들을 피해 

불꺼진 회관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큰대(大)자로 누워있는 여자가 있다 

팔다리를 편하게 쭉 뻗은채 눈을 감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머리카락이 쭈삣서게 움찔하더니 액정을 확인하고는 살풋 웃는다 

“왜 또~” 

<뭐해?> 

“마을회관에 누워있어” 

<혼자?> 

“아니. 남자하나 옆에 누웠지” 

<.......> 

“농담이야” 

<그런 농담... 싫어하는거 알면서> 

정혜연의 작은 웃음소리에 상대방 남자의 긴 한숨소리가 이어진다 

그는 이런식의 농담을 싫어한다 

그녀 주변의 남자라면 어떤 관계이든 경계심과 적의로 대하는 사람이다 

가뜩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불안해하는 그에게 했던 말이 미안해진다 

“잠이 안와?” 

<....어..> 

“맨날 같이 있는것도 아닌데 뭘 그래” 

<맞아.. 누나가 서울에 없는거 뿐인데...> 

“이제 겨우 이틀째야”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거 같다> 

“에휴.. 우리 서문강유를 어쩌니?” 

<삼일장이랬지?> 

“그래” 

<꼭 발인까지 봐야 돼?> 

안되는걸 알면서도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볼멘소리를 하는 강유를 

혜연이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달래듯 말한다 

“강유 기분 좀 풀어 줄까?” 

<어떻게?> 

“음.. 나는... 키스 할때 품어내는 강유 숨 냄새가 좋아” 

<훗..> 

“또 나는... 강유가 내 손 마디마디에 입 맞추는 것도 좋아” 

<그리고?> 

“뒤에서 꼭 끌어안고 있는 기분도 꽤 좋구..” 

<......> 

“사정후에 내 위에 무너지면서 하는 말도 재밌어” 

<내가 뭐라는데?> 

“몰라?” 

<내 정신 아닌 순간이니까..> 

“...미치겠다..” 

혜연이 속삭이듯이 낮게 강유의 음성을 흉내내며 하는 말에 

강유는 갑자기 그녀가 미칠 듯이 그리워졌다 

학교를 빠지더라도 동행하고 싶어했던 그를 단호하게 거절했던 혜연이다 

“거의 늘 그러는데 모른단 말야?” 

<누나 때문에 짜증난다> 

“짜증내. 받아줄게” 

<나... 택시타고 지금 갈까?> 

“서울서 경남까지 말이지?” 

<지금 시간이면 4시간이면 갈껄?> 

“서문강유씨. 우리 강유.. 참을줄도 아는 성인 맞지?” 

혜연의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와 음성을 강유는 싫어한다 

그녀의 25세라는 나이보다 네 살이나 어리다는건 

그가 도무지 어떻게 할수 없는 벽이 되기도 한다 

처음 그녀를 도서관에서 본후 스토커처럼 지독하게도 따라다녀 겨우 교제를 시작했다 

이젠 누구보다 몸과 마음으로 가까워진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혜연은 그를 늘 갈증나게 만드는 특별한 여자다 

“왜 대답이 없어. 성인 아냐?” 

<누나 안고 싶어.. 지금당장> 

“텔레포트 해봐. 여기서라도 안겨줄께” 

<자꾸 약올리면 나 진짜 택시타고 간다?> 

“냉수마찰이라도 하고 주무세요” 

<발인 끝나면 바로 와야 돼> 

“여기 있기 싫은건 내가 더해. 알잖아..” 

<어른들이 듣기 싫은 소리해?> 

“그만 끊자. 우리 모친 잔뜩 취한거 아닌지 보러가야겠어” 

핸드폰 슬립을 내리는 혜연이 낮게 한숨을 내쉰다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마룻바닥에 누운채 다시 눈을 감는 

혜연의 귀에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진다 

벌떡 일어나 앉은 혜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을회관이래야 벽쪽의 철제 캐비넷 몇개와 한쪽 구석에 교탁이 하나 있을뿐이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있는 혜연의 눈동자가 회관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교탁 뒤쪽에서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형체가 스윽 일어선다 

“누.. 누구야!” 

“.......” 

“대답해. 누구야!?” 

“....나..”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려는 혜연의 앞으로 

남자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자 

방어본능이 생긴 혜연이 벌떡 일어나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다 

“나 누군지 알겠니?” 

“아아.. 병원집 막내아들..” 

“집에만 내려오면 다들 그 호칭이라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그렇게 갑자기..” 

“나야말로 그쪽 핸드폰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서 깼는데?” 

“그..럼.. 내 전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겨우 알아볼 정도로 어두운 마을회관. 

아마도 혜연보다 먼저 와서 잠이 들었을 남자가 

강유와의 통화내용을 다 들었다고 생각하니 혜연은 낭패감으로 표정관리가 안된다 

“넌 감나무집 외동딸이지?” 

“체.. 그 감나무 없어진지가 언젠데 다들 감나무집 외동딸이래” 

“여긴 다 그렇잖아” 

“근데 왜 반말이에요? 그쪽이랑 내가 안면만 있지 

편하게 반말할 사이는 아니라고 보는데” 

“애인이니?” 

“뭐가요?” 

“아까 통화한거” 

“그쪽 하고는 상관없지 않나요?” 

“통화 내용이 꽤 재밌었단 말이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기엔 비밀스런 통화였음을 모를리 없을텐데 

남자의 천연덕스러운 말투가 마치 놀리는듯해 그녀의 기분이 언짢아진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돌아서는 혜연의 팔을 남자가 잡아쥔다 

아주 가끔씩 마을에서 마주치던 그는 평범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손을 뿌리치려 팔을 돌려도 놔주지 않던 남자가 

허리를 살짝 굽혀 혜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소곤거리듯 말한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손. 놔요.” 

“배 아파..” 

“손 놓으란 말에요!” 

불쾌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듯 미간에 있는대로 내천(川)자를 그리며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혜연의 팔을 잡아당긴 남자가 

혜연의 뒷 머리통을 감싸쥐고 그대로 입술을 삼켜버린다 

“으,..흡... ㄴ...” 

남자의 키스는 무례하고 거칠었다 

자기것이라도 되는양 혀를 집어넣어 마음껏 혜연의 입속을 자극하고 있는 남자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혜연이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능동적인 혀놀림으로 남자의 혀를 감싸와 부드럽게 빨고 당기며 

입속의 점막을 자극해 나가자 남자가 혜연의 손목을 놓은뒤 

허리를 바스러질 듯 꼭 끌어안으며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뜨거워진 숨을 뿜어내며 남자의 손이 혜연의 니트 속으로 파고들때 

혜연은 두손으로 남자의 가슴을 힘껏 밀어냈다 

무방비 상태로 키스에 몰입하던 남자가 뒤로 몇걸음 밀려나며 중심을 잡고 혜연을 본다 

“재미없네..” 

“뭐?” 

“그렇게 기습키스를 하기에 

특별한 키스테크닉이라도 있나 했더니 

별.거. 아니라구요” 

남자의 눈썹이 꿈틀.. 기분나쁘고 어이없다는 듯 움직인 듯하다 

도전적으로 양손을 허리에 얹고 있는 그녀는 한껏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다 

“충고하겠는데. 그 정도 테크닉으로 

함부로 기습키스 따위 하지 말아요” 

“............” 

“우습지도 않으니까.” 

혜연이 그대로 몸을 돌려 회관을 나올때까지 

남자는 혜연의 뒷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한방 먹었네..” 

회관에서 나온 혜연은 두툼한 니트의 소매 끝으로 

입술을 훔쳐내며 비닐하우스 쪽으로 향했다 

시골은 추위도 더위도 일찍 찾아온다 

10월... 

아직은 추위를 느낄 만큼의 기온은 아니지만 

밤이 되면 시골 특유의 차갑고 청량한 냉기로 인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진다 

비어있는 비닐하우스 두개동 안에는 마을의 상이라는 상은 다 나와 

길게 이어 붙여져 있고 비닐하우스 밖에서는 

커다란 통에 끓고 있는 국과 전 따위를 부쳐내서 나르는 움직임이 바쁘다 

“혜연아. 느그 어매 고만 델고 집에가라이” 

“많이 취하셨어요?” 

“고마 아까부텀 취해서 운다 아이가” 

“못살어 내가..” 

“니 땜에 안그러나... 에미 닮아 팔자가 박복하다꼬 신세한탄이대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밤샘을 하려 술을 마시거나 한쪽에서 

화투를 치는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 혜연의 엄마가 술에 취해 흐느적대며 있다 

엄마라기 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운 혜연의 모친. 

스물에 정씨집에 시집와 20년 가까이 공을 들이고 절에 다니며 지성을 드려 

40이 가까운 나이에 겨우 하나 낳은게 혜연이다 

혜연을 낳고 2년후에 남편이 죽자 

가진거라곤 조그마한 밭떼기 하나뿐인 가난한 과부는 

당신의 밭일뿐 아니라 동네 논일과 과수원 일에 품을 팔아가며 혜연을 키웠다 

“엄마 많이 취했다. 그만 들어가자” 

“와이라노.. 괘안타” 

“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가여븐 내새끼.. 박복한 내 강아지..” 

“일어나자.. 응?” 

“알라 몬난다꼬 소박이나..” 

“엄마. 그만하고 가자구!” 

모친의 겨드랑이 사이에 두손을 끼워 넣어 억지로 일으킨후 

비틀대는 몸을 꽉 붙잡아 비닐하우스를 나오는 혜연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있다 

“연아. 느그 어매 불쌍타 생각허고 자주 내리온나” 

“예..” 

“니도 좋은 남자 만나 새로 시집 가야재” 

“그만 가볼께요” 

건식이네 소 외양간을 지나 약간의 언덕바지 길을 한참 올라간 그녀는

아직도 옛날 한옥 그대로인 집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모친을 눕혔다 

“아가.. 내 강아지.. 가여워 우짜노..” 

짓무른 눈으로 막걸리 냄새가 풍기는 한숨을 내쉬는 모친에게 이불을 덮어준후 

혜연은 마당으로 나와 평상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입에서 뿜어내는 작은 한숨이 마치 담배연기처럼 흩어진다 

차가운 밤공기에 흩어지는 뿌연 입김을 보는 혜연의 시선이 하늘로 오른다 

서울과 달리 별이 총총 떠있는 밤하늘은 공연히 그녀의 마음을 휘집어 놓고있다

25세 밖에 안된 혜연이지만 호적에는 벌써 결혼과 이혼의 기록이 있다 

5년전 동네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서울유학 길에 오른 혜연은 

대학 캠퍼스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만난 남자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더랬다 

“알았다면... 안했을까..?..” 

그녀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입김을 크게 내뿜어 보고는 

모친이 자고있는 방으로 들어가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모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으음.. 내 새끼..” 

“불쌍한 우리 엄마..” 

“음..” 

모친을 꼭 끌어안아 아이를 달래듯 

보잘것없이 마른 등을 토닥이던 혜연도 어느새 잠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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