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알렉세이 막시모비치의 조금 야하고 조금 자극적이고 조금 버거운 아침 (21/24)

알렉세이 막시모비치의 조금 야하고 조금 자극적이고 조금 버거운 아침

아침이 되었다. 사파이어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영국에서 벤체슬라스와의 일을 매듭짓고 난 후에 사파이어는 알료샤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대문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으니 집을 나갔던 사람이 스스로 돌아온 것이다. 사파이어를 믿어준 알료샤의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물론 사파이어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애꾸눈으로 만든 옛 주인을 전리품처럼 걸쳐 매고 돌아오긴 했지만…….

돌아왔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사실 사파이어는 벤체슬라스를 족치자마자, 흠흠, 쓰러뜨리자마자 바로 알료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알료샤는 이미 반쯤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대로 사파이어가 사라질까봐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도와달라는 사파이어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역시 우리 자기야! 나한테 돌아올 줄 알았다고!”하고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아니다. 사실 그것도 거짓말이다. 사파이어는 담담하게 교통편을 요구했다. 마치 자동차가 있는 애인에게 전화해서 픽업 서비스를 부탁한 것처럼. 알료샤는 반쯤 정신승리를 하면서 바로 사파이어를 그 아수라장에서 건져내왔다. 그리고 세공사 협회까지 데려다주면서 핑크빛 미래를 그려갔다.

비록 사파이어가 벤체슬라스라는 꼬질꼬질한 유기동물을 기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어도.

어차피 정신도 못 차리는 애꾸눈 따위야 꽁꽁 묶어다가 어디 구석진 골방에라도 밀어 넣고 감시하면 될 일이고, 알료샤에게는 사파이어가 무언가를 부탁하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무인도에 떨어뜨려놔도 혼자서 잘 살아갈 것 같은 저런 완전무결한 남자가.

그렇게 세공사 협회까지 가서 매사 근엄하고 진지한 매부리코 아저씨에게 으름장을 놓은 다음에, 둘은 정말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영원히. 오래토록. 그런 동화 같은 엔딩이 알료샤의 머릿속에선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따지자면 별다른 변화점 없이 사파이어는 알료샤와 같이 살게 되었고 벤체슬라스는 포로가 되었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사파이어는 곤히 잠들어 있었고 알료샤는 잠든 사파이어의 얼굴을 질리지도 않고 흐뭇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든 연인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지고의 행복이다.

알료샤는 살짝 짓궂게 장난을 쳐보고 싶은 욕구를 꾹 억눌렀다. 마치 대형견이 잠든 아기와 놀고 싶어서 앞발을 살짝 대볼까, 코를 살짝 대볼까 고민하지만 아기가 너무 연약한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파이어가 투정부리는 모습은 꼭 보고 싶긴 하다. 알료샤와 함께 지내는 동안 인간적인 감정을 표출하는데 익숙해지긴 했지만 예전의 사파이어에 비하면 나아졌다는 것이고 아직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인형 수준이었다.

좋다 싫다 하는 정도의 표현은 하지만 질투를 한다던가, 들떴다던가 하는 귀여운 감정표현은 아직 보지 못했다. 세뇌와 억압으로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린 건 줄 알았는데 어쩌면 원래부터 감정기복이 한없이 일직선에 가까운 남자인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것대로 귀엽긴 하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이기 때문에 알료샤는 사파이어의 다른 면들을 보려고 자꾸만 되도 않는 개수작, 흠흠, 작업을 걸곤 했다.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파이어를 당황시키는 것은 알료샤에게만 허락된 재밌는 특권이다. 어째서인지 사파이어는 알료샤의 수작질을 뻔히 알고서도 그저 많이 용서해주는 것 같다. 가끔 그런 느낌이 든다.

맨 처음 만났을 때는 알료샤의 얼굴을 보자마자 질겁하며 도망가던 게 사파이어였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지만 옛 기억을 떠올리자 알료샤가 자부심에 차서 콧김을 내뿜었다. 그 미약한 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힌 건지 사파이어가 꼭 감은 눈을 파르르 떨면서 돌아누웠다.

키와 타고난 뼈대는 작을지 몰라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만큼의 몸을 만들어낸 게 사파이어다. 아니 사실 딱히 작은지도 모르겠다. 알료샤는 스스로 자기가 큰 편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인종 같은 건 크게 상관이 없다. 백인 중에서도 알료샤보다 작은 놈들은 발에 걷어차일 정도로 많다.

알료샤와 비슷한 체격과 키라면 딱 벤체슬라스 정도가 있는데, 어차피 이제 그 놈은 적수가 못 되니까…….

스피넬에 비하면 사파이어는 확실히 큰 편이다. 동양인들만 모아놓고 보면 사파이어의 키도 작은 편은 아닐 거다. 몸의 두께라든지 근육의 크기라든지 하는 체격은 확실히 클 거고. 그 신체적인 조건들이 타고난 게 아니라는 점이 귀엽다.

열심히 노력하는 건강한 병아리 같달까! 스테로이드 없이 이렇게 예쁜 몸을 만든 것도 놀랍다. 딱히 미적인 가치를 노리고 단련한 게 아닌데도.

이따금씩 스트레칭할 때 두드러져 보이는 전완근도 섹시하고, 지금같이 무방비하게 풀어져 있을 때조차 잠든 사자 같다는 인상을 주는 단단한 어깨모양도 섹시하고, 대흉근은 그냥 예술작품이다. 알료샤의 인생동안 남자 가슴에 이렇게 환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남자 몸에 이렇게 환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전부 알료샤도 똑같이 가지고 있고, 더 크고, 더 단단하다. 알료샤가 원래 남자 몸에 발정했는가 묻는다면, 천만에. 사내새끼들은 알료샤의 부하거나, 적이거나, 잠재적인 통치 대상일 뿐이었다.

물론 남자 몸임에도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감탄하게 되는 몸들은 있었다. 예를 들면 돈 밖에 모르는 백금발의 걸레라던가, 사파이어가 애꾸눈으로 만든 병신이라던가, 뒷방에 감금되어 있는 백금발 애꾸눈 병신이라던가.

벤체슬라스의 아름다움은 신경을 곤두서고 짜증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었고 그것을 알료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사내새끼가 곱상하게 생겨서 한 대 쥐어박고 싶게 만든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질투라고도 한다. 알료샤는 인정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머리는 또 왜 그 모양인가? 왜 기르지 못해 안달인가? 머리채 잡아달라고?

벤체슬라스와 처음부터 이렇게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일이 다른 방향으로 풀려갔다면 벤체슬라스도 지금쯤 알료샤의 친구가 되어있을……리는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근본부터 정반대의 인간들이다. 그들이 적대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 그럼 사파이어의 존재도 몰랐겠군. 그건 안 된다. 그럴 수는 없지.

벤체슬라스 때문에 잠깐 기분이 나빠졌던 알료샤는 잠든 사파이어를 살살 굴려가며 마음을 달랬다.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가자면, 똑같은 남자 몸임에도 왜 사파이어는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는가. 그것은 사파이어가 예외이기 때문이다.

“으응…….”

아까부터 자꾸만 못된 손가락이 몸 위를 기어 다니자 사파이어가 누적된 자극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막 정신이 들어서 몽롱한 건지 풀린 눈으로 알료샤의 얼굴을 확인한 사파이어는 알료샤의 손가락을 붙잡아 떼어내고는 다시 잠들었다. 알료샤는 자기 손가락을 아기 손가락처럼 꽉 붙잡은 사파이어의 손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귀여워! 미칠 듯이 귀여워!

이 남자의 치명적인 점은 흉폭한 몸과 날카로운 인상에 안 맞게 백치 같은 행동을 한다는 건데 그게 환장하게 귀엽다는 거다. 자기가 남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그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 같다. 자각한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알료샤보다 모든 게 한 사이즈 작은 것도 귀엽다. 씩씩한 병아리…….

물론 알료샤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 알료샤가 사파이어에게 반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맹목적인 헌신성 때문이다. 비록 그게 세뇌 때문이었다고 해도, 그 모습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탐났다. 가지고 싶었다. 그가 자기 목숨을 내다버릴 정도로 헌신하는 대상의 자리를.

물론 씩씩한 병아리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맹견들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사파이어는 용맹한 병아리였고, 호전적인 병아리였으며,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생물이었다.

알료샤에겐 별다른 게 필요 없었다. 정직하게 자신을 믿어주고, 따라주고, 배반하지 않는 것, 그 단순한 진리 하나만이 필요했다. 단순했지만 여태까지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신뢰.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놈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이 바닥에서는. 이렇게 죽고 죽이고 등에 칼을 꽂아야 살아남는 바닥에서는.

그게 이 남자의 매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알료샤의 것이 되었고. 기분 째진다. 확성기 들고 산 위에 올라가서 전 세계에 이렇게 자랑하고 싶다.

잠시만 주목해주십시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남자는 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 되지만 전 마음대로 만질 수 있죠. 물론 섹스도 합니다. 키스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남자의 자는 얼굴도 오직 나만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안 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알료샤는 잠든 사파이어의 가슴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뽀얀 피부다. 감촉은 탱글탱글하고. 백인의 피부와는 다른 느낌으로 하얀 편인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차이가 나는 건진 모르겠다. 약간 노란 빛이 도는 건가?

얼굴이나 손 등 햇빛에 자주 노출되는 부위는 확실히 알료샤와 차이가 나는데, 옷으로 꽁꽁 숨긴 속살은 알료샤의 피부색과 비교해서 크게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몇 군데의 색소가 다르긴 하다. 그걸 멜라닌이라고 하던가…….

분명히 군살 없이 관리한 몸인데도 어딘가 동글동글한 느낌이 있는 것도 이질적이다. 묘하게 곡선이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사소한 요소들 때문에 순간순간 어리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확실하게 성인 남자의 냄새가 난다.

사파이어는 몇 살쯤 됐을까? 대충 알료샤와 비슷한 나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동양인은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경향이 있으니까 사파이어도 눈으로 보이는 나이보다 몇 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알료샤는 두 손 가득 사파이어의 가슴을 쥐어보았다. 설익은 계란을 쥐어보듯이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부피와 질감만 느껴보려고 했는데 손끝에 유두가 걸리자 그것마저도 자극이었는지 사파이어가 순간적으로 콧소리를 냈다.

아……. 정말 모험심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그런 신음소리를 듣고 손을 멈출 남자는 없다. 알료샤는 자제력을 잃은 개처럼 남자 가슴에 미쳐서 잠든 사파이어를 만지고, 주무르고, 슬쩍 핥아보았다. 힘이 들어가면 돌덩이같이 단단해지는 게 가슴 근육이지만 이렇게 힘이 풀어져 있을 땐 조금 탄탄한 살덩어리다. 분명히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달려있는 것인데 이렇게 발정하는 이유는, 발정하는 이유가,

귀엽잖아! 작고! 동글동글하고! 만지면 귀여운 소리 내고!

무의식중에 도망치려고 몸을 뒤틀면서 더 골이 깊어 보이는 쇄골도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이대로 막 여기저기 뽀뽀하고 싶다. 뽀뽀를 퍼부어서 깨우고 싶다. 알료샤는 자기 숨결이 사파이어를 완전히 깨울 만큼 거칠어졌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사파이어가 눈을 팍 떴다.

“뭐야.”

알료샤는 사파이어의 가슴 근육을 움켜쥔 채 현장 검거됐다. 사파이어는 자신의 가슴을 부담스럽게 주무르고 있는 못된 손과 알료샤의 해맑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알료샤의 손목을 붙잡고 떼어내려고 했다. 떼어지지 않았다. 미친놈은 힘이 세다더니.

“뭐하는 거야…….”

“깼어요?”

“뭐하는……. 하아앙.”

알료샤의 손가락은 사파이어의 유두를 꾸준하게 지분거렸고 사파이어는 자기도 모르게 무방비한 신음을 흘렸다. 자기가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것에 충격 받았는지 사파이어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당황한 얼굴을 보고 알료샤가 입이 찢어질듯이 웃었다.

“더 들려줘요.”

“놔, 잠깐, 뭐하는 거야!”

“아이잉, 더 들려줘요.”

“자, 잠깐. 자, 잠깐만. 잠깐! 알료샤! 잠깐!”

알료샤가 되도 않는 아양을 부리며 매달리자 사파이어는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그 거대한 덩치를 밀어낼 수 없어서 그 밑에서 버둥거렸다. 잠에서 막 깬 상태라 몸에 가해지는 자극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인데 딱 사파이어가 성감을 느낄만한 부분에만 무차별적인 애무가 가해졌다. 아니 말 그대로 퍼부어졌다. 사파이어의 다급한 애원도 신음소리로 묻혀버렸다.

알료샤가 버거운 점은 이거다. 사파이어에게 자아 속으로 침잠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완전히 상극이었다. 벤체슬라스는 사파이어에게서 자아를 빼앗은 후 주인인 자신의 안으로 푹 빠지게 만들었다면 알료샤는 사파이어의 손을 잡고 강제로 심해에서 끌어내 한없이 한없이 대기권 위로 솟구치는 느낌이랄까.

정말 묘한 느낌이었지만, 알료샤와 함께 있으면 사파이어는 어쩐지 자신이 정상인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저거에 비하면 내가 더 상식적이다 하는 느낌이랄까.

어째 자신의 존재가 알료샤의 광기를 한층 더 나락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서 기묘한 부채감을 느끼기도 했다. 왜 알료샤가 점점 더 미쳐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워하지 말고 소리 더 내줘요. 듣고 싶단 말이야.”

“잠깐, 헉, 떨어지, 하응, 읏, 떨어지라고. 잠깐, 흣, 기다려봐. 잠깐만.”

“싫은데 싫은데. 놔주면 도망갈 거잖아. 아, 섰다.”

알료샤는 기어코 사파이어를 세우고 말았다. 아침부터. 눈 뜨자마자.

“원래 아침엔 서잖, 아. 흣.”

“아닌데 아닌데! 내가 세운 건데! 아침 텐트 아닌데!”

“만지지, 마!”

“왜요. 뭐가. 뭘? 어디를? 어딘데? 말해 봐요. 어딜 만지고 있는데?”

알료샤가 구체적으로 질문해오자 계속 밀어내기만 하던 사파이어가 일순 정지했다. 사파이어의 저항이 귀찮아진 알료샤가 잠깐 입을 틀어막으려고 아무거나 던진 건데 사파이어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을 하려 해도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것을 눈치 챈 알료샤가 교활하게 웃었다.

“어딘데요. 어딜 만지고 있는데. 어딜 만지지 말라는 건데?”

“그, 그…….”

“그, 그?”

사파이어가 대답 없이 알료샤의 손을 붙잡아 떼어내려고 하자 알료샤가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을 불허하고 빙글빙글 웃는 낯을 들이대며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새가 부리로 쪼듯이 콕콕 쪼아대며 사파이어의 얼굴과 목, 쇄골 여기저기에 입맞춤을 했다.

“말을 안 해주면 나는 뭘 말하는 건지 몰라서 계속 만질 수밖에 없는데.”

“일단 가슴에서 손 떼 봐…….”

“응응, 가슴에서. 가슴에서만 손 떼면 되죠?”

“아니 그…….”

사파이어가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숨?! 터미네이터랑 별로 차이 없던 이 남자가?! 알료샤가 사파이어의 목덜미에 뽀뽀를 마구 퍼붓자, 사파이어가 이제는 가슴을 포기하고 아랫도리만 집중 공략하고 있는 알료샤의 양 손목을 콱 붙잡았다.

“만지지 마.”

“정확히 어떤 부위인지 모르겠는걸! 말해줘요!”

“당신이 지금 만지고 있는 거 말이야.”

“부끄러워요? 응? 응? 부끄러워? 우리 자기 부끄러워서 말 못하겠어요?”

“자지 만지지 마.”

아, 말해버렸다. 사파이어의 귀여운 점 또 다른 한 가지는 살살 꼬드겨서 궁지로 몰아넣으면 아무렇지 않게 대담한 짓을 턱턱 저질러버리곤 하는데, 가끔은 자기가 한 선택인데도 뒷감당을 못한다는 거다. 벤체슬라스를 두들겨 패면서 살짝 폭발적인 분노조절장애가 생긴 것 같은데 그 때문인지 이 경향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사파이어는 자기 입으로 내뱉고서도 동공이 살짝 커지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부끄러운가보다.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 알료샤를 더 미치게 하는 건데 뭐 하여튼 간에……. 눈치가 없는 점이 상당히 귀엽다.

인터폴의 지명수배를 받는 테러리스트이자 업계 탑을 찍는 전문 킬러를 병아리마냥 귀엽다고 하는 존재도 드물 것이다.

“싫은데, 싫은데! 만질 건데! 만지고 싶은데!”

“내가, 자는 동안에는, 하지, 말라고, 흐윽, 읏, 하아앙, 하지 마, 하지, 안 돼! 자, 잠깐, 비비지 마!”

감정이 둔한만큼 몸은 예민한 남자. 그거야 어떤 남자라도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지분거리고 있으면 비명을 터뜨리겠지만 사파이어는 확실히 예민함의 강도가 달랐다. 시각이 없는 사람은 그만큼 청각이 발달한다던데 사파이어는 딱 인간 심리에 무심한 대신 본인에게 가해지는 자극은 남보다 배는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주제에 통증은 어느 정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요컨대 성감에 약한 몸이라는 거다.

“너무 부끄러우면 내 꺼 만져도 되요.”

“아니 싫어.”

“만져줘요.”

알료샤는 투정부리는 말투였지만 행동은 반 협박이었기 때문에 사파이어는 그를 밀어내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그만두고 손을 아래로 내려 알료샤의 두툼한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옷 위로 가늠해보기만 해도 자기보다 훨씬 큰 것이 느껴진다.

이런 게 몸 안으로 무식하게 쑤시고 들어와서 전립선을 뭉개고 있었다는 거다. 사파이어는 순간적으로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괴감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것에 작게 기뻐했고, 곧바로 다시 이유를 짐작하기 힘든 한숨이 나왔다.

알료샤는 그 한숨을 헐떡임으로 착각했는지 아랫도리를 단단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세우지마.”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걸!”

“거짓말 하지 마.”

“우리 자기야도 이렇게 단단하게 섰잖아요. 응? 응?”

“그건 당신이, 일부러, 하고 있는…….”

알료샤는 사파이어가 논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하게 손에 쥔 성기를 격렬하게 흔들어 여유를 뺏었다. 사파이어는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고개를 움츠렸다. 알료샤가 입술을 겹쳐오자 받아주긴 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털어내 키스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이런 걸 한도 끝도 없이 받아주다 보면 아침부터 거친 섹스로 질펀하게 뒹굴 텐데 사파이어에겐 아직 망아지 같은 알료샤를 받아줄만한 체력이 없다. 회복중이란 말이다.

“아침부터 섹스하기 싫어. 힘들어.”

사파이어가 단호하게 속삭였다. 웬만한 것은 능글능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밀어붙이는 알료샤도 사파이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한 발 물러나긴 한다. 한 발 물러나는 대신 다른 거래를 제안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후퇴방법이 교활해서 문제지.

“섹스는 안 해도 뺄 건 빼야죠?”

“하…….”

“이거 어떻게 할 건데요, 이거. 손 뗄까요? 직접 할래요? 난 그것도 좋은데. 혼자서 자위하는 거 보여줘요. 아니면 나랑 같이 샤워하던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던 사파이어는 그냥 알료샤에게 잠시간 몸을 맡겨놓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파이어가 “알아서 해.”하고 허락하자 알료샤가 대뜸 키스를 퍼부으면서 가슴부터 뱃골 아래까지 내려갔다. 이제 좀 베개에 뒷머리를 누이려던 사파이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 우리 자기야는 참 관대하기도 하지. 아침 우유 잘 마실게요.”

“알료샤, 알료샤!”

“이름 더 불러줘요. 꼴려서 쌀 것 같아.”

단숨에 아래까지 내려간 알료샤가 사파이어의 음낭에 가볍게 입맞춤하더니 그대로 성기를 빨아올렸다. 예고 없는 펠라치오에 사파이어가 알료샤의 머리칼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비교하고 싶진 않았지만, 벤체슬라스는 사파이어의 몸 상태와 컨디션을 봐가면서 쾌락과 고통의 강도를 조절해가는 식으로 상벌을 줬는데 알료샤는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식대로 밀고 들어왔다.

정말이지 버거운 사랑이다.

알료샤는 기어코 사파이어가 자신의 입 안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토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싹싹 핥으며 고개를 들었다. 사파이어는 이미 베개를 꽉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아랫배가 가쁜 숨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아직 좀 더 나올 거 같은데?”

“그만해…….”

“얼굴 보여줘요.”

알료샤가 베개를 잡고 내리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시선이 풀어진 사파이어의 얼굴이 나왔다. 귀 끝마저 붉게 물들었다.

“화났어요?”

“아니…….”

알료샤가 가끔은 자제력을 잃고 강압적으로 달려드는 것처럼 보여도 대부분은 상당히 신사적이다. 그건 사파이어도 느끼고 있다. 알료샤는 그렇게 머리가 좋아보이진 않아도 성범죄 피해자에게 어떤 짓이 상처가 될 진 잘 구분하니까. 아니, 그건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다. 사파이어에 한해서만.

사파이어가 알료샤의 막무가내를 많이 용서해주는 이유 중에는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비록 수단이 약아빠지긴 했어도 그의 의도는 악하지 않으니까.

잠시간 숨을 고르고 있던 사파이어가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알료샤가 그를 찍어 누르며 떼를 썼다.

“나도 풀고 싶어요. 발기 했는걸.”

“섹스는 싫다고 했잖아.”

“가슴 빌려줘요.”

“뭐?”

“당신 예쁜 가슴 빌려줘요.”

알료샤가 콧소리를 내며 아양을 떨었다. 대단히 부담스러운 애교였다.

“빨아봤자 난 젖 안 나와.”

툭 내뱉은 사파이어는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알료샤의 이상한 오기를 건드려서 끝이 좋았던 적이 없다. 어쩌면 알료샤는 젖이 나올 때까지 유두에 매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뒷덜미가 섬뜩해지는 상상이었다.

알료샤도 동일한 걸 생각했는지 헤벌쭉 웃었다. 그러나 고개를 흔들어 즐거운 상상을 떨쳐내곤 말했다.

“괜찮아요. 비비기만 할 거니까.”

“비빈다고?”

알료샤는 사파이어가 더 반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재빨리 사파이어의 배 위에 올라탄 알료샤는 흉기같이 우람한 성기를 사파이어의 가슴골 위에 올려놓고 양 손으로 가슴 근육을 감싸 쥐었다. 사파이어는 항상 그렇듯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자한테 왜 이렇게 미쳐있는 거야. 당신도 나랑 똑같은 몸이잖아.”

“당신한테 미쳐있는 거니까요.”

사파이어는 가슴 위에 묵직하게 올려져 있는 알료샤의 성기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삽입할 때 몸으로 체감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눈앞에 들이대는 것은 위압감이 남다르다. 남자들 세계의 서열이라는 것도 암기식으로 학습한 사파이어에게 성기 크기가 주는 자신감 같은 건 별로 의미가 없었지만, 확실히 알료샤와 비교하면 자기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껴졌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성기 크기를 자신감이라고 인식한다는 건 결국 성관계를 맺었을 때 상대방을, 특히 여성을 만족시킬 능력을 궁극적인 목표로 본다는 건데 사파이어는 이미 성적 만족감은 충분히 얻고 있다. 좋든 싫든 간에.

그가 요청하면 몸을 열어줄 사람이 눈앞에 있고 그가 거부해도 그를 지배하려고 드는 통제광이 뒷방에 감금되어 있다.

여성의 선택을 받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쾌감이지만 굳이 여성과의 관계에 목매지 않아도 사파이어는 크게 부족함을 느끼진 않는다. 본인이 성범죄의 피해자라서 굳이 싫다는 여자를 강탈할 생각도 없고. 자기 자신이 겪은 것들이 떠올라서 기분 좆같아지니까.

아, 어쩌면 이게……. 공감이라는 건가?

“나 말고 무슨 생각해요? 질투 나네.”

알료샤가 성기를 가슴에 비벼 올리자 사파이어가 나직하게 신음을 터뜨렸다.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가 가슴에 마찰되면서 쿠퍼액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가슴 조금만 더 모아봐요. 옳지.”

대체 남자 가슴에 비벼 대서 뭐가 그렇게 즐겁다는 걸까. 알료샤가 원래 이상해서 그런 건가.

사파이어는 알료샤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가슴을 모아주었다. 하지만 상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남자에게라도 파렴치한 짓이었는지 알료샤와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바람에 쇄골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서 알료샤가 더욱 거칠게 사파이어를 흔들어댔다.

그 청량음료 같은 목소리로 상큼하게 신음을 흘려대면서.

“하아아앙, 자기야! 좋아! 자기 젖가슴 좋아앗!”

“그거, 그거 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알료샤는 사파이어에게 수치를 느끼게 했다는 기적을 일으켜놓고서도 흥분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정신이 없는지 사파이어의 유두를 양 손으로 지분거리며 허리를 더 격렬하게 흔들었다. 한 번 사정해서 조금 진정된 사파이어도 그 바람에 다시 흥분해서 벅찬 신음을 흘렸다.

원래부터 알료샤보다 한 사이즈 작은 사파이어다. 말 그대로 덜컥덜컥 뒤흔들리면서 가랑이 사이에 다시 꼿꼿하게 서기 시작한 성기도 덜렁덜렁 흔들렸다. 하……. 버거운 아침이다.

삽입섹스는 안된다고 막아놨더니 이런 식으로 사파이어의 몸을 축낼 생각인가보다. 알료샤는 절륜하다. 기다려줬다간 언제 사정할지 모른다.

사파이어는 자신의 가슴 위에 올라타서 흔들고 있는 알료샤의 허벅지에 손을 대더니 그대로 골반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알료샤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사파이어가 알료샤의 귀두를 입에 물었다.

놀란 알료샤가 허리를 뒤로 빼려고 하자 사파이어가 한 손으로는 알료샤의 골반을 잡은 그대로, 또 다른 한손으로는 잠시 알료샤와 투닥거리면서 실랑이를 벌였다.

작은 남자에다가 용감한 병아리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도 수컷은 맞는지 한 번 힘이 들어가니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파이어도 자기와 비슷한 체급이거나 그보다 더 작은 사람에겐 위압감 있는 상남자겠지. 하지만 알료샤에게는 뭐……. 힘센 병아리…….

알료샤는 결국 힘센 병아리에게 잡아먹혔다. 고맙게도 사파이어가 자기 것을 빨아주겠다고 하는데다가 여기서 더 힘을 주면 그를 상처 입힐 것 같았다. 정신 말고 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사파이어와 함께 도피생활을 할 때 그가 입으로 빨아준다는 것을 거절하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리스에서 사파이어를 잃고 나서는 정말 밤마다 뒤척였다. 알료샤가 하도 징징거리며 하소연을 하고 늘어졌기 때문에 그의 부하들은 가벼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아니 뭐 딱히 사파이어가 입으로 빨아주겠다고 제안한 기회를 놓쳐서 그런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섭섭했다.

물론 입으로 해주는 것도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밤마다 끌어안을 사람이 없어서 허전했고, 입으로 하는 거에 굳이 집착하진 않았지만 사파이어와 투닥투닥 주고받는 정담도 그리웠고, 내 남자가 나를 입으로 빨아준다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지만……. 흠, 흠흠.

그것들은 전부 지나간 이야기다. 왕자님은 백발마왕의 눈알을 뽑았고 그를 기다려주던 알료샤 공주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매일 아침 밤낮으로 침대에서 뒹굴며 온갖 대담한 플레이를 시도해보고 있다고 한다.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야기 끝. 해피엔딩.

알료샤는 아랫도리를 사파이어에게 내맡긴 채 그가 자신을 빨아먹는 광경을 황홀하게 감상했다. 일단 자세와 구도에서 오는 만족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알료샤야 뭐 사파이어 밑에 깔려서 펠라치오 당해도 껌벅 죽겠지만,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내 다리 사이에 깐다는 정복감과 달성감이 있달까.

무엇보다 사파이어는 잘 했다. 몇 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한 사람은 당연히 그걸 잘할 수밖에 없다. 이빨이 닿지 않게 하다가 돌연 입에서 빼고 기둥을 핥아 올린다든가, 다시 입에 물고는 예고 없이 격렬하게 흔든다던가, 그러다 갑자기 얌전해진다던가, 시각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귀두로 자신의 볼 안쪽을 밀어 볼이 불룩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그는 잘했다. 요부였다. 몇 년 전만해도 남자와 성관계 한다는 걸 상상도 못했을 백지 같던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잘했다.

알료샤를 반쯤 무장해제 시킨 사파이어는 밑에 깔려있던 자세가 불편했는지 몸을 일으켜서 그대로 알료샤를 쓰러뜨리고 덮쳤다. 알료샤는 수줍은 듯이 얼굴을 가렸지만 손가락을 잔뜩 벌려서 그 사이로 사파이어가 하는 짓을 관음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

“꺄아, 부끄러워!”

글쎄, 알료샤의 커다란 성기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알료샤를 물고 빨던 사파이어가 잠깐 그 흉기를 입에서 빼내더니 인상을 팍 찡그리며 성기를 찰싹 때렸다.

“너무 크잖아. 짜증나게.”

“미안해요! 미안해요!”

“적당히 하고 싸란 말이야. 당신 지금 일부러 참고 있는 거지.”

아, 들켜버렸나. 알료샤가 얼굴을 가린 채로 큭큭 웃자 어깨가 들썩거렸다. 알료샤에겐 남들보다 경고카드 기회를 더 주는 사파이어도 그 수작질에는 짜증이 났는지 알료샤의 굵은 밑동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아응, 아아앙! 자기야! 잠깐만!”

“빨리 싸.”

“아앙, 그렇게 흔들면, 하앙, 싫어엇! 자기 손에 싸버릴 거 같아앗!”

중간까지는 반 농담식으로 사파이어를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정말 알료샤도 한계에 달했는지 뒷부분은 다급해졌다. 사파이어가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쥐어짜자 알료샤가 더 참지 못하고 커다란 신음을 흘리며 사정했다. 오래 참고 있었던 것이 역력하게 정액은 배와 가슴까지 튈 정도로 양이 많았다. 사파이어는 잔여감이 남지 않도록 묵묵하게 나머지를 짜냈다.

그 순간, 알료샤의 손이 사파이어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진 힘이었다.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던 알료샤가 벌떡 일어나 덮쳐오자 사파이어는 흠칫 놀랐다. 알료샤가 그대로 입술을 벌리고 키스해오며 사파이어에게 속삭였다.

“나 아직 부족해요. 당신은?”

“삽입은 싫다고 했잖아…….”

“Хорошо.(알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알료샤는 사파이어와 있을 땐 최대한 영어를 써주는데 어지간히 급했는지 러시아어가 한 마디 툭 튀어나왔다. 동의하지 않으면 동의할 때까지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기에, 그리고 어차피 이 자세로는 다시 발기한 아랫도리를 숨길수도 없기 때문에 사파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듣자마자 알료샤는 사파이어를 침대 위에 거칠게 눕히곤 무릎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확 들어 올렸다. 무릎이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허리가 접힌 사파이어는 졸지에 알료샤에게 치부를 훤하게 드러냈다.

“삽입은 싫다고 했잖……!”

“쉿, 쉬이.”

알료샤가 다급하게 사파이어를 달래며 벌려진 가랑이 사이에 자신의 몸을 끼워 넣었다. 성기 위에 성기가 놓이는가 싶더니 돌연 격렬하게 허릿짓이 시작됐다. 알료샤는 사파이어의 다리를 한데 모아 자신의 한쪽 어깨 옆으로 걸어 메고는 고개를 숙여 입 맞추고 속삭였다.

“더 조여 줘요. 꽉 조여 봐요.”

“앗! 아! 아앗!”

“허벅지 더 조여 봐요, 내 사랑.”

알료샤가 채근하지 않아도 사파이어는 자연스럽게 다리를 꽉 오므렸다. 너무 강한 자극이었다. 예고 없이 비벼 올려지는 성기의 감각이 머릿속을 찌릿찌릿 울린다.

이 상태에선 오히려 다리를 벌릴 수가 없다. 알료샤가 한층 더 거칠게 허리를 부딪쳐올 테니까. 그래서 자연적으로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고, 알료샤는 잔뜩 오므려진 탄탄한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문질러대면서 짐승같이 목이 긁히는 소리를 냈다.

아찔하게 터져 나오는 사파이어의 비명 비슷한 신음소리는 뒷머리를 오싹하게 만드는 색기가 있었다. 감정 없고 묵직한 저음의 남자 목소리인데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어린아이같이 연약해진다. 잔뜩 발기한 것들끼리 비비고 뭉개고 문질러대면 그 형태도 크기도 한층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자극이 너무 과했는지 사파이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가쁜 숨을 토해내며 파르르 떨던 사파이어는 잔뜩 맺힌 눈물방울을 주르륵 흘리며 동시에 사정했다. 사정하면서 하반신에 너무 힘이 들어갔기 때문에 잠시간 알료샤도 움직이지 못했다.

알료샤는 사파이어가 사정의 여운에서 빠져나오고 호흡을 고르도록 기다려 준 후, 한쪽 어깨에 들쳐 멨던 양 다리를 활짝 벌렸다. 그리고 막 사정해서 까딱까딱 떨리고 있는 성기 대신에 엉덩이골 사이에 기둥을 묻고 격하게 마찰했다.

“하……. 하아……. 하……!”

알료샤는 이성을 놓을 뻔 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악! 아파!”

자는 애인의 가슴 만지기로 시작했다가 스마타로 발전한 유사 섹스는 사파이어의 발차기에 알료샤가 뒤로 나동그라지면서 끝났다. 그렇다. 사고가 일어났다.

엉덩이골 사이에 성기를 쑤셔 넣고 비비다가 결국 귀두 부분이 푹하고 삽입된 것이다. 젤이나 윤활제를 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당히 쓰라린 고통이었고 막 사정 후의 나른함에 젖어있던 사파이어에게 그것은 눈이 번쩍 뜨이는 고문이었다.

“하지 말라고 했잖아!”

“힝, 히잉…….”

알료샤같은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대포 같은 크기의 발기한 성기를 가리지도 못하고 구석에서 낑낑거리며 우는 모습은 무척 애잔했다. 사파이어는 침대 위에 흐트러진 베개를 마저 집어던질까 하다가 참았다.

알료샤는 짝짓기 도중에 암컷에게 거부당한 수컷 개처럼 불쌍한 몰골이 되서 사파이어에게 다시 달려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처박은 채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 그렇긴 해도 아직까지 가라앉지 못하고 잔뜩 성이 난 성기는 보기 딱했다.

사파이어는 신경질이 나서 알료샤를 버려두고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는지, 단순히 알료샤가 불쌍했는지 다시 한 번 알료샤를 슬쩍 돌아보았다.

알료샤는 자기 성기에 대고 중얼중얼 나무라면서 손으로 남은 욕정을 풀려고 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정확히는, 자기 자신이 겪은 장면이다. 사파이어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려는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알료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알료샤가 잔뜩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들자 사파이어가 알료샤를 욕실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알료샤의 벅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앗, 아앗! 자기야! 자기 손 너무 빨라! 아팟, 하앙, 아파욧!”

“닥치고 싸!”

“앗, 아앙, 부드럽게 해줘! 앗! 앙!”

그렇게 광란의 아침이 지나갔다.

그리고 뒷방에 감금 상태인 벤체슬라스는 하나밖에 안 남은 눈을 놀란 닭마냥 동그랗게 뜨고 깜박거리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단히 충격 받은 눈치였다. 하긴, 막 잠에서 깬 중환자에게 벽이 울리도록 들려오는 요란한 신음소리는 어떤 자명종보다도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망할 놈들…….”

벤체슬라스는 붕대 감은 눈 쪽이 쑤셔 와서 손을 갖다 대려고 했다가 자신이 결박된 상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최소한 몸을 뒤척일 자유는 있기 때문에 벤체슬라스는 돌아누우면서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물론 실패했다.

벤체슬라스는 다시 한 번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가 욕설을 내뱉으면서 하나 남은 눈을 부릅떴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한 때 내 것이었던 보물이 남의 손에 들어가 알콩달콩 사는 꼴을 귀로 생생하게 듣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행운을 믿을 수가 없어서 계속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내가 가장 아꼈던 것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같은 공간 안에서 섹스 중계를 해오면 참을 수가 없다.

벤체슬라스는 결박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고함에 관심이 없었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욕실 안에서 알료샤의 욕구를 풀어준 사파이어는 문득 어떤 소리를 들은 듯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질척질척하게 들러붙어오는 알료샤를 떼어내기 위해서 다시 신경이 앞 쪽으로 쏠렸다.

정말이지 버거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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