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6년 12월, 다뉴브 강변 (20/24)

1986년 12월, 다뉴브 강변

겨울이었다.

그 아이가 태어난 것은 가을이었다.

여자는 자꾸만 초조한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앞서가던 남자가 그 기척을 느꼈는지 여자에게 “그만해.”하고 속삭였다. 도망쳐오는 내내 여자가 계속 그러는 것에 남자도 슬슬 화가 나는지 목소리에 노성이 깃들어 있었다.

여자는 애써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고아원 문 앞에 남겨놓고 온 아이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출산 후에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해서인지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우린 언젠가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냐.”

여자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눈치 챈 남자가 그렇게 속삭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수없이 찬사를 듣게 될 새하얀 백금발과 호수같이 푸른 눈동자는 이 남자를 똑 닮아있었다. 어딜 가나 미남이라는 소리를 듣는 섬세한 외모도 물론 아이와 닮아 있었다. 아이의 장래 모습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 남자의 눈썹 숱이 약간 더 두껍다는 것 정도였다.

여자는 다갈색 머리칼과 그보다 좀 더 어두운 갈색 눈동자로, 고아원에 버리고 온 아이에게 외형적인 유전자는 물려주지 않았지만 그 대신 성격과 지능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 아이는 남들보다 언어적인 재능을 좀 더 가지고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속내를 금방 알아채고 공감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 운명이었다.

“잘못 생각했어. 이름도 지어줘선 안 되는 거였는데.”

남자가 중얼거렸다. 여자를 배려해서 한 말이었지만 도리어 그게 여자의 아픈 마음을 더 자극했다. 남자에게는 정이 붙기도 전에 떼어놓고 온 아이보다 아내가 훨씬 소중했다. 남자라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생존해야만 했다. 살아남아서 후회할 생각이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오게 된다면, 버린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거 안다. 평생 지고가야 할 짐이겠지. 그것도 오늘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살아남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난다.

죽어서 신 앞에 가게 된다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그들이 죗값을 치러야한다면 그들을 이런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역시 죗값을 치러야한다. 그렇게 탄원할 셈이었다.

낙태금지. 생리주기 감시. 한 가정당 의무적으로 4명 이상의 아이를 낳을 것. 불임이든, 장애가 있든 관계없이! 어길시 벌금과 징역. 산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생활고. 그 와중에 애를 더 낳으라고. 더. 더. 계속. 더 낳으라고.

우린 짐승이 아냐. 경제 때문에, 군사 때문에 새끼를 까야하는 가축이 아냐. 너희가 책상에서 펜대 몇 번 휘두르는 대로 짝짓기를 하고 번식해서 인간 동물을 만들어내는 공장 같은 게 아냐!

먹고 살아야했다. 버틸 수가 없었다. 당장 산 사람 입에도 들어갈 게 없는데 아이를 또 낳으라니. 또. 먹여주지도 않으면서 먹일 입을 계속 만들어내라는 거다. 그저 끝없이 생산하라고. 낳고 낳기만 하라고.

원래는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만들 생각도 없었다. 이 여자와 결혼은 했겠지만 자식 계획은 형편에 맞춰 차근차근 만들어나갈 생각이었다. 상황이 뒷받침 되어준다면,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었더라면.

내 인생은 내 것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다. 경찰에게 감시를 받아가며 섹스를 하고, 강제로 아이를 낳고, 짓눌려 죽을 정도의 세금과 벌금을 내야하는 삶이 아니라!

버린 아이의 앞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야. 우리도 살아야 돼. 아기를 데리고 도망갈 수는 없다. 모두 죽게 된다. 아기는 굶주림도 추위도 견디지 못할 거고 무엇보다도 우는 소리를 안 낼 수 없으니까.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죽일 수는 없어서 고아원 앞에 버리고 왔다. 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름만이라도 지어주고 온 게 실수였다. 그러지 말걸. 그러지 말걸……. 그 아이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이름 때문에.

살아남아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곳에 버려두고 와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아라. 너는 우리보다는 나은 운명을 맞길.

남편이 어떤 생각으로 이를 꽉 무는지, 어떤 독한 마음을 품는지도 모른 채 여자는 그의 등에 바싹 붙어서 밤길을 걸었다.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밤에는 잔인할 정도로 추운 것이 숲인데, 길 없는 겨울 숲을 달도 없는 밤에 걷는 건 한층 더 두렵고 절박한 일이었다. 믿고 따라갈 것은 남편의 등 밖에 없었고 이제는 앞에서 길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는 남편조차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야생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썩은 나뭇가지를 밟아 큰 소리가 날수도 있고, 움푹 파인 구멍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들을 찾는 추적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요새는 그런 흉흉한 소문들이 들려오니까.

강까지 갈 수 있을까?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강에는 아무도 없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있을까?

강을 건너고 난 다음까지는 생각할 수 없다. 그 단계는 지금 생각하기엔 사치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여태까지는 도와주지 않으셨지만 신이시여, 오늘 밤만이라도.

끝이 없을 것 같던 숲의 마지막 수풀을 걷어내자 확 트인 강변이 나왔다. 폐쇄되어 있던 시야가 한순간에 넓어지자 부부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지만 곧 무사히 강까지 도달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건너야 한다.

강의 가장자리는 얼어붙어 있었다. 발끝으로 디뎌보니 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얼어 있었고,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걸으면 두 사람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에게 눈짓을 하곤 자신이 앞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남자의 코와 귀 끝은 겨울밤의 강바람 때문에 새빨개졌다. 백지장같이 하얀 피부 때문에 그것이 퍽 도드라져보였다. 겁에 질린 눈동자만 아니라면 우스워 보일지도 몰랐다.

그도 내심 많이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그런 걸 민감하게 알아채니까. 아마도 아내는 그의 숨소리나 뒤돌아선 모습에서조차 변화를 감지할 테지만……. 지금은 공감능력보다 결단력이 필요한 때니까.

가장자리는 단단할지 몰라도 강의 중심은 어떨지 모른다. 얕은 곳은 얼었겠지만 강바닥이 깊은 곳은 살얼음만 살짝 덮여있을지도 모른다. 까딱하면 강 아래로 빠진다. 그리고 얼음판이 뒤덮인 강물 아래에서 나갈 곳을 찾아 헤맨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남자는 애써 생각을 멈추었다.

아내가 뒤에서 그의 경직된 등을 보고 있다. 겁을 줘선 안 된다. 남자가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면 그의 아내는 거리를 두고 남자가 밟았던 대로 두꺼운 부분의 얼음을 밟으면서 조금씩 따라왔다.

3분의 1지점을 건널 때까지는 순조로웠다. 그 때,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함께 손전등의 불빛이 이쪽으로 확 비쳤다. 앞서가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덕분에 손전등 불빛에 그의 얼굴이 비쳤고, 공포로 한껏 벌어진 그의 푸른 눈동자와 뒤에 있던 아내의 눈이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다.

루마니아 쪽의 강변에 몇 사람이 서 있었다. 손전등으로 이쪽을 비추면서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잘 들리진 않았다. 어깨에 기다란 장대 같은 것을 메고 있었는데 손전등의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진 않았다. 다만 윤곽으로 보건데 그것은…….

“뛰어, 뛰어!”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미끄러운 빙판 위를 엎어질 듯 자빠질 듯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쩌억 쩌억하고 심상치 않게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났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강변에 선 사람들이 사납게 소리쳤다. 하지만 부부는 이제 멈출 수 없었다. 여자가 중심을 잃고 거의 넘어질 뻔하자 남자가 힘 있게 여자를 일으켜 세워서 자신의 앞으로 떠밀었다. 여자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빙판 위를 내달렸다. 언제 살얼음을 밟고 강물 아래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확실한 위협보다는 낫다.

더 이상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공기를 찢는 총성이 들려왔다. 첫 발의 충격이 대단해서 아내의 등을 떠밀며 도망가는 남자마저도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강변에 선 사람들은 등에 매고 있던 장대, 아니 장대처럼 보이던 소총을 내리고 정확히 부부를 겨눴다.

강을 건너서 이웃나라로 도망치려는 게 한두 사람이 아니다. 총알을 몇 발씩 낭비하기엔 너무 아깝다. 국민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나라가 국민에게 쏠 총알에는 돈을 쓴다지만 어쨌든 그것도 풍족하게 지급되는 건 아니니까.

몸을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강물 위. 달도 없는 밤에, 손전등의 추적을 받으며 도망치는 두 사람은 허우적 허우적거리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을 도와준 적 없던 신이 오늘밤만큼은 굽어 살펴주는 건지 총알은 단 한발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겁을 주기엔 충분했다. 얼마나 갔을까. 부주의하게 발을 내딛었던 여자가 갑자기 빙판 아래로 쑤욱 빠졌다.

기어코 얇은 부분을 밟은 것이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여자의 손을 잡았지만 균형을 잃은 여자의 몸이 얼음을 더 크게 부수며 물 안으로 첨벙첨벙 빠져 들어갔다.

“안 돼, 안 돼!”

남자는 절박하게 외치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아내 쪽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두려운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표적은 맞추기 쉽다. 여태까지는 달 없는 밤과 이리저리 움직이는 다리와 신의 가호가 그들을 지켜줬다지만 지금은 덫에 걸린 짐승 같은 꼴이 되었다.

아내를 버려두고 갈 순 없다. 무엇보다도 얼음 밑으로 한 번 들어가 버리면 다시 구멍을 찾아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겁에 질린 상태에서라면 산소를 더 빨리 소모하게 될 것이고 차디찬 얼음물 속에서 익사하게 될 것이다.

남자는 손에 쥔 아내의 팔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신이 몸을 지탱하고 있는 얼음 구멍의 가장자리에서 뿌득뿌득 금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내를 얼음 위로 끌어올리려던 남자가 어느 순간 헉하고 숨을 토하더니 온 몸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뒤에서 누군가에게 강한 힘으로 얻어맞은 듯이 앞으로 고꾸라져버렸다. 그의 견갑골에 기어코 총탄 하나가 박혔고, 옷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총알구멍에선 벌써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패닉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남편의 손을 붙잡고 있던 여자가 남편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 때문에 얼음물을 더 많이 마시게 되었고 가뜩이나 부족한 산소가 더 급박하게 떨어졌다.

여자는 앞으로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간신히 얼음구멍 가장자리를 찾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얼음물이 가슴과 목에서 나오는 열까지 급속도로 빼앗았기 때문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며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몸이 떨렸다. 하지만 익사보단 동사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힘이 빠지기 시작한 여자가 얼음 위로 기어 올라오지도 못하고 남편의 몸을 붙잡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강변에 있던 손전등의 불빛이 차츰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하이, 너무 가까이 가지 마. 빠진다고.”

“죽었나?”

“남자는 맞았고 여자는 아직 살아있는데.”

“확실하게 해.”

여자는 턱이 덜덜 떨리면서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 것 말고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살려달라고 빌기는커녕, 숨소리가 조금만 더 커져도 바로 총알이 날아올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위로 올라갈 수도, 아래로 내려가 도망칠 수도.

한 사람이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신중하게 총구를 겨누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다른 도망자가 있는지 어두운 빙판 위를 멀리까지 살펴보고 있었다. 총구가 정확히 여자의 이마에 겨누어지려는 순간, 엎어져 있던 여자의 남편이 갑자기 총 든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

“이런 젠장!”

총 든 사람은 놀라서 총구를 남자 쪽으로 겨눴지만 남자는 온 몸으로 매달리면서 기어코 그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서있기에도 위태로운 빙판이었는데 세 사람, 아니 얼음 가장자리에 매달린 여자까지 합해서 네 사람을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얼음이 깨지면서 총 든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손전등을 비추고 있던 사람은 격노에 차서 남자를 걷어찼다. 발길질에 걷어차일 때마다 남자가 억눌리는 비명을 토해냈고 빙판 위에 피가 번져나갔다.

필사적으로 아내를 보호하려던 남자는 손전등을 비추고 있는 사람이 권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끼릭 하고 권총의 공이를 당기는 섬뜩한 소리가 나더니 곧 파열음이 나면서 총구 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고 쏜 거라 총알은 남자를 단번에 죽이지 못했고 남자는 피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빙판 위를 기었다.

두 번째 총알은 남자의 머리를 꿰뚫었고 끝이 없을 것 같던 그의 고통을 단번에 끝내주었다.

“미하이! 미하이!”

손전등을 든 사람이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강물을 비추었다. 하지만 구멍 가까이에 다가가진 못했다. 얼음이 깨질 것 같았고 자신도 빠질까봐 무서웠으니까. 물에 빠진 남자는 들고 있던 총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얼어 죽어가던 여자가 같이 죽자고 껴안은 것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둘은 물 밑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미 여자 쪽은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는지 물귀신처럼 그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고, 부부에게 총을 쏘던 남자는 겁에 질려서 여자를 떼어내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소총은 물에 빠지면서 떨어뜨려버렸다. 어차피 물속에서라면, 그리고 이렇게 들러붙은 상태라면 쏠 수도 없겠지만. 여자는 남자를 끌어안은 채 손가락으로 단단히 깍지를 꼈다. 어차피 살아남을 가망이 없다면 적어도 눈앞에서 남편을 죽인 원수는 함께 끌고 갈 생각이었다.

당황해서 물을 너무 많이 먹은 남자는 있는 힘껏 여자를 밀치고, 때리고, 목을 졸랐지만 그런다고 결박이 풀어지진 않았다. 남자는 최대한 물 위로 올라가려고 발을 저어대면서 머리맡의 빙판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동료가 비추는 손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이쪽을 비췄다가 멀어졌다. 남자는 주먹을 쥐고 빙판을 두들겼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물 밑에서 얼음을 깨기엔 너무 약했다.

동료가 이쪽을 봐주지 않는 것이,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두들기고 있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국민을 억압하고 감시하기만 할 줄 아는 국가, 그가 믿고 따르던 국가는 얼음물 밑에서 익사하고 있을 땐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남자를 끌어안고 있던 여자가 더 빨리 죽었다. 폐가 가득 찰 정도로 물을 먹어서 끊기듯이 의식을 놓고 강바닥 아래로 스르르 떨어졌다. 여자의 시신을 밀어낸 남자는 이제야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그에게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물을 너무 많이 먹었고 힘은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

그는 얼음 밑을 더듬으며 자신이 빠졌던 구멍을 찾으려고 기었다. 더듬으며 나아갈수록 자신이 빠졌던 곳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만 더 가면 물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숨을 쉴 수 있다면.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호흡을 할 수 있다면!

남자는 그렇게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소원을 품은 채 기력이 빠져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동료가 아직도 빙판 위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지만 그건 이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고 오래 기억되지 않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그 강에서 죽고 몇 년 후에,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 내려졌다. 차우셰스쿠가 총살당한 날은 12월 25일이었고, 그 날은 미르체아라는 고아 아이가 돈 많은 세공사에게 입양되어 난생 처음으로 성대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날이었다.

아이가 살면서 몇 번이고 자신의 진짜 엄마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을 예정이었지만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가을이었다.

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늦가을이었다.

차가운 공기는 벌써부터 겨울을 예고하는 것처럼 싸늘하게 뺨을 훑고 지나갔다. 바람이 한 번 불때마다 누렇게 시든 낙엽이 힘없이 툭툭 떨어져 비처럼 내렸다. 굳게 닫힌 고아원 문 앞에도 그런 낙엽들이 굴러와 쌓였다. 바람의 변덕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던 낙엽들은 재활용품 나무상자라는 장애물에 부딪쳐 이윽고 낙엽더미를 이루게 되었다.

나무상자 안에는 곤히 잠든 아기가 있었는데 아기를 감싼 포대만 정상적인 천이고 나머지는 헝겊인지 뭔지 모를 자투리 천들로 꽉꽉 들어차있었다.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기를 가을서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책이었다.

아기를 버린 사람이 없는 형편에 최대한 짜낸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자연은 아기에게 추가로 낙엽이불을 덮어주었다.

아기의 통통한 볼은 바람이 쓰다듬고 지나갔기 때문인지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다. 울지도 않고 잘 자는 아기였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로.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아기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선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이 세상에 아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고 책임져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자기가 살아가게 될 인생을 미리 보았더라면 아기는 이대로 눈을 뜨지 않고 다시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기는 앞날의 운명을 몰랐고 생물로서의 본능 때문에 죽기를 거부했다. 냉기 때문에 점점 참을 수 없이 몸이 불편해지자 아기는 울기 시작했다. 나약한 울음소리였지만, 작은 몸을 짜내 내지르는 외침이었고 그 간절함을 누가 들은 것인지 고아원 문이 끼익 열렸다.

고아원에서 나온 사람은 이 추운 날씨에 고아원 앞에 내버려진 아기를 보고는 재빨리 나무 상자 안에서 아기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이미 고아원에는 더 이상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버려진 아이들이 가득 들어차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아기를 얼어 죽게 만드는 것은 생명으로서의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아기를 감싼 포대기 안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내렸다. 혹여 바람에 날아갈까 봐 두 번 접어 끼워 넣었던 종이쪽지였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는 우리보다는 나은 운명을 맞길. 미르체아. 사랑을 담아.

마지막 부분은 글씨가 얼룩져있었다. 눈물을 떨어뜨린 모양이다. 이 쪽지에 입맞춤 했으리란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아기를 품에 안은 고아원 직원은 뒷면에 뭔가가 더 적혀있을까 종이를 뒤집어보았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직원은 종이를 다시 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혹시 몰라서 아기를 안은 채 고아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기를 버리고 간 사람이 아직 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가을바람은 어른에게도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아기는 점점 더 심하게 울었기 때문에 고아원 직원은 몸을 부르르 떨며 아기를 안고 들어갔다.

멀리 숨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부부는 아기가 얼어 죽기 전에 발견되자 안도하며 뒤돌아섰다. 아기의 어머니는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남편이 말리지 않았으면 자기도 모르게 고아원 쪽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아기를 버린 부모는 자신들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채로 길을 떠났다.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겨울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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