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공사의 죽음과 그 경위
세공사 협회의 현장 조사원 바유미, 보석명 터키석이 세공사 일리에 콘스탄티네스쿠의 죽음과 그 경위에 관해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리에 콘스탄티네스쿠라는 세공사의 본명은 엘리아스 룬드보리로, 원래는 스웨덴인이었다. 다른 세공사들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따라 신분을 바꾸긴 했지만 그는 이름과 국적, 직업 같은 신분들을 자주 바꾸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원래 고향은 스웨덴이었다.
본래는 노르웨이 출생이라고 한다. 그는 나치 정권이 노르웨이에 설치한 레벤스보른에 의해 태어난 아이로, 출생 후 몇 년간은 노르웨이에서 자랐지만 이후 스웨덴으로 이주했다. 레벤스보른 출생자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고 따돌림을 당한 것이 그 이유일 것으로 짐작된다.
엘리아스의 친모는 그를 포기했기 때문에 스웨덴으로 이주한 시점부터 엘리아스는 양부모에게 길러지게 되지만 이 양부모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엘리아스가 받은 교육 내용이나 행적으로 볼 때 나치정권의 잔당과 관계가 있는 자들이 아닌가 추측해볼 뿐이다.
양부모에게 거두어진 시점부터 엘리아스는 본래의 성을 버리고 룬드보리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신분은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 그에 관련한 공문서에서 종종 나타난다.
성인이 된 엘리아스는 스웨덴을 떠난다. 26세에 처음으로 세공사 협회와 접촉하지만 이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세공사 협회와 접촉한 후, 엘리아스 룬드보리는 신분을 바꿔가며 세공사로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80년대 중반 즈음부터 차츰 활동이 뜸해지고 이윽고 은거에 들어간다.
1989년도 12월경에 엘리아스는 루마니아의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입양한다. 아이를 입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이 일어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권좌에서 축출되어 총살당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입양했다기보다는 돈을 주고 아이를 사오는 인신매매 형식으로 데려오지 않았나 싶다.
엘리아스는 아이를 입양하면서 또 한 번 신분을 바꾸는데 이 신분이 일리에 콘스탄티네스쿠라는 이름이다. 이하 일리에라고 칭한다.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는 미르체아라는 이름으로, 고아원에서 임시로 붙여준 이름인지 아이를 버린 부모가 지어준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리에는 새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이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며 아이를 키운다. 여기에 일리에의 가명인 성씨, 콘스탄티네스쿠를 붙여 아이의 이름은 미르체아 콘스탄티네스쿠가 된다. 이 이름은 본래 은폐되어 있었으나 일리에 사망 이후 그가 남긴 문서들에서 발견된다.
미르체아 콘스탄티네스쿠는 일리에에게서 사격술, 단검술을 비롯한 암살 기술을 교육받으며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9살 내지 10살 경까지 자랐다. 미르체아가 자란 곳은 오스트리아에 있는 일리에의 저택인데, 이후에 나오는 방화사건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미르체아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홈스쿨링 형식으로 가정교사를 초빙해 각국의 언어, 예절, 수학과 과학, 기타 교양 등을 1:1로 교습 받았는데 상점에서 물건을 산다거나, 경찰서 등 공공기관을 이용하는 방법 같이 사회적인 지식은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근방에 거주하는 아이들과 약간의 접촉이 있었던 걸로 보이지만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9살 내지 10살 경부터 미르체아는 빈에서 장크트푈텐 지역 사이에 있는 농장에서 동물해체쇼를 공연하며 미래의 고객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선보인다. 이 쇼는 일리에가 기획했는데 이때부터 미르체아를 청부업 시장에 내놓을 생각을 한 것 같다.
일리에는 이미 미르체아의 보석명까지 정해두었는데 이 이름이 라피스 라줄리이다. 라피스 라줄리는 바유미의 다른 보고서에서도 몇 번씩 언급되는 이름이다.
이 동물해체쇼 중에 사건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는데, 자칫하면 인명사고가 날 뻔했다. 미르체아가 일리에에게 입양되었을 때 추정나이로 3살가량이었는데 이 때 일리에가 미르체아에게 골든 리트리버 새끼 한 마리를 선물했다. 이 골든 리트리버는 엥겔이라는 이름으로, 미르체아가 10살이 되었을 땐 이미 7살쯤 된 개였는데 이 날의 쇼는 이 개를 미르체아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었다.
미르체아는 일리에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관객에게 칼을 던지며 개를 도망치게 했지만 개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전요원들에게 잡혀 다시 도축장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이 날 참석자의 증언으로는 결국 미르체아가 자기 손으로 개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리에가 미르체아의 손을 잡고 억지로 개를 죽였다고 한다. 미르체아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일리에의 품 안에서 기절했으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참석자 몇몇은 성적인 흥분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이 날의 참석자 중에는 세공사 카를로 에스포시토도 있었는데 그가 왜 이 자리에 있었는지 그 동기를 아는 사람은 없다. 카를로와 일리에는 표면적으로는 불화가 없었지만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공공연히 드러났는데, 아마도 카를로가 일리에에 대한 어떤 불리한 정보를 쥐고 있지 않았나 싶다. 카를로는 소아성애 기호도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모종의 거래를 목적으로 일리에에게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얼마 후에 카를로 에스포시토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시신의 상태는 참혹한 것으로, 훼손된 정도를 보았을 때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가진 계획 살인이 확실하다. 세공사 협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조사원으로 특파한 것 역시 바유미로,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그의 다른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공사 카를로 사망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일리에 콘스탄티네스쿠였기 때문에 바유미는 일리에의 저택에도 방문해 그를 심문한다. 이 때 미르체아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일리에는 의뢰의 형식으로써 자신의 보석인 미르체아가 세공사 카를로를 죽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의뢰인의 존재며 계약 내용 등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아서 일리에의 자작극이었을 거라는 의혹은 남아있다. 실제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몇몇 사람의 추측일 뿐이다.
카를로 사망사건으로 처음 존재를 알린 미르체아는 이후 꾸준히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미성년인 보석이 시장에 나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미르체아는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도 화제성이 있었다.
이 때 미르체아가 암살임무 말고 다른 임무를 수행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미성년 보석들의 사례로 보았을 때 미르체아 역시 성적인 착취를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르체아의 활동 초기에는 세공사인 일리에의 개입이 확실해 보이는 흔적들이 몇 가지 있는데 아마 미르체아에게 암살자로서의 교육을 하기 위해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미르체아는 14살 즈음부터 단독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터진 벨기에 부호 참살사건이 미르체아의 성과라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뱅상 뒤부아는 자신의 별장 지하에 미로 같은 토굴 감옥을 만들어놓고 15세 미만의 소년 소녀들을 감금하고 성폭행을 자행해왔는데, 그가 사망하고 나서야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된다.
뱅상은 그의 별장 앞에서 토막 난 채로 발견되었는데 시신 조각들이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서 숲길을 표시하기 위해 조금씩 뜯어낸 빵조각을 흘린 것처럼 특정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시신의 흔적들을 추적하던 경찰은 별장 안쪽에 숨겨진 비밀 문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토굴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잠금쇠가 달린 5cm두께의 철문이 두 개가 있었고 모두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문이었다. 그것을 넘어서자 피해자들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피해자 중에는 실종신고가 들어와 있던 아이도 있고, 인신매매로 추정되는 국적 불명의 아이도 있었다. 토굴 안쪽에는 시신들을 대충 암매장한 지점이 있었는데 부패된 지 오래된 두 구의 시신과 함께 실종된 저널리스트의 시신도 나왔다. 아마도 뱅상의 뒤를 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감금되어있던 피해자들은 무사히 구출되었고, 피해자 전원의 지목으로 뱅상 뒤부아가 그들을 납치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이 집단 납치 감금 사건은 피고인이 없어진 채로 그대로 공소권이 없어져 종결되었다.
이것은 대내외적으로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언론의 미적지근한 관심을 받고, 곧이어 일어난 정치 스캔들에 묻혀 조용히 사라졌다. 어떤 외압이 작용한 것 같지만 누가 왜 이 사건을 함구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경찰에게 남은 한 가지 의문점은 결국 누가 뱅상을 죽였냐는 것인데 이 또한 많은 추측과 가설을 남긴 채 결국 미제 사건이 되어버렸다.
피해자들은 뱅상을 살해한 범인의 얼굴을 본 것이 분명하지만 감금 폭행을 당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인지 기억을 잘 못하거나 왜곡되어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일선 형사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기억을 하면서도 일부러 범인의 정체에 대해 입을 다물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피해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는 일관되게 “머리가 하얗고 눈이 파란 여자 아이가 토굴 안을 돌아다니며 뱅상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시들해진 후에도 끈질기게 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던 형사는 얼마 안 가서 마약 유통 혐의로 파면되고 만다.
이후로도 미르체아, 보석명 라피스 라줄리는 청부업 시장에서 차근차근 지명도를 쌓아가게 된다. 그러나 미르체아가 16살 내지 17살 경에 세공사 일리에의 저택이 화재로 전소되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일리에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망하고 이 건을 조사하기 위해 세공사 협회의 바유미가 조사원으로서 파견된다.
바유미의 조사에 의하면 그것은 정말 사고로, 미르체아의 실수로 인해 저택에 불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불이 난 시각은 밤이었고, 그날 밤은 강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불은 삽시간에 번져 결국 일리에는 대피하지 못하고 소사했다. 미르체아는 운 좋게 탈출했으나 충격 때문인지 정신적으로 약한 착란증세를 보였다.
현장에서 나온 일리에의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타버렸으나 일리에의 뼈와 그가 가지고 있던 장신구 등이 일치함으로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유해는 이후 경찰이 수거해갔다.
일리에에게 의뢰를 맡겼거나 이전에 맡긴 적이 있던 고관대작들은 세공사와 자신들의 연결고리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불운한 화재 사건으로만 처리되었다. 이후 미르체아의 신원은 세공사 협회로 인도된다.
사고였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인을 죽인 셈이 되기 때문에 미르체아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워낙 특이한 사건이고 전례가 없기 때문에, 또한 보석이라는 입장의 미르체아가 협회에 대해 지는 어떤 의무 같은 게 없기 때문에 특례로써 이번 한번은 용서해주기로 판결이 났다. 단, 일리에의 사유재산은 국가가 모두 환수해갔기 때문에 미르체아에게 남는 것은 없었다.
이것은 분명히 미르체아의 잘못이 있는 실수였다. 처음 일으킨 커다란 사고였기에 미르체아는 앞으로의 행동거지를 조심해야했다.
미르체아로서는 세공사 업계와 완전히 연을 끊고 부랑자의 신세로 살아가거나, 그대로 주인의 위치를 물려받아 세공사가 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미르체아는 후자를 선택하고 세공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미르체아는 이후 성공적으로 의뢰들을 처리해나가며 세공사로서의 명성을 쌓아간다. 이름과 신분을 셀 수 없이 바꾸고 휘하의 보석들도 새로 키웠다가 깨뜨리기를 반복하던 미르체아는 훗날 벤체슬라스라고 이름을 바꾸고, 그의 경력에 있어 최대 수익을 안겨줄 보석인 사파이어를 시장에 선보이게 된다.
이것이 세공사 일리에 콘스탄티네스쿠의 죽음과 그 경위, 그리고 그 후에 흘러가게 된 이야기이다. 보석이 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공사의 죽음도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이기에 일리에의 이야기는 시간에 파묻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그대로 잊혔다.
단, 그 화재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직까지도 의문을 느끼는 점이 있다. 화재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에는 비가 내렸다는 것. 또 하나는 현장에서 발견된 일리에의 유골이 부자연스럽게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는 것이다.
세공사의 죽음은 시시한 음모론을 남긴 채 그렇게 기억의 늪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