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폭발 (5/10)

5. 폭발

지하가 이사를 온다고 했다.

시준의 앞집으로.

시준은 자취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설마했었다. 그는 아직 학생이었고, 특히나 수험이 코앞이었으니 더욱 공부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아무리 그의 누나와 아버지가 바쁘다고 해도 집에 어른이 있는 것과 혼자 사는 것은 아예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분명 지유가 반대할 거라고 여겼기에 시준은 독립하기로 했다는 그의 말에 한숨 대신 그러냐고 대꾸했을 뿐이었다.

“앞집 신혼부부 이사 갔더라.”

“…….”

그러나 그날 저녁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음을 시준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1년 좀 안 되긴 했지.”

“뭐 그런 일까지 신경 쓰고 그래. 사정이 있어서 간 거겠지.”

시준을 흘긋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가족들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은 부친이 그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늦게 조용히 시준을 불러낸 그는, 지하가 다음 주 중으로 앞집에 이사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스리슬쩍 꺼냈다. 한창 예민할 시기인데 지하의 아버지와 누나가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니 우리가 좀 더 옆에서 돌봐줘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시준은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던 지하를 떠올려봤다. 이러려고 그렇게 입을 다물었었나 싶었다.

다음 날 다시 그를 마주했을 때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시준도 모르게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아, 아, 아니….”

“이사를 해?”

“…….”

“왜?”

“…그, 그….”

“내 눈 똑바로 안 봐?”

“으, 응.”

지하는 책상 의자에 앉은 몸을 움찔거리다가, 시준의 말에 눈치를 보면서 힐끔힐끔 앞에 서 있는 시준을 올려다보았다.

“같이, 같이…이, 있, 있고 싶어서….”

“지금도 같이 있잖아.”

“그래도, 그래도, 우리, 우리, 두, 둘이서만….”

“지금도 둘이서만 있잖아.”

“…만, 만지고 시, 싶단 말야.”

그럼 그렇지.

잔뜩 울상을 짓고 있는 지하의 얼굴은 무척이나 억울해 보였다. 그렇게 안 된다고 외쳐대더니, 정말로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 저렇게 초조해했다. 시준은 그에게 그의 누나가 허락을 해줬는지 물었다. 제일 궁금한 일이기도 했다.

“으, 응. 누나, 누나도 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 그랬어.”

“누나가? 우리 앞집으로 가라고?”

“아니, 아니, 나는, 그냥, 그냥 아, 아무 데서나 지, 지내면, 됐, 됐는데….”

“솔직하게 말해.”

“…무, 물어만, 보, 본 건데…아, 아빠가….”

“됐다. 안 봐도 뻔하네.”

“으, 응….”

하지하가 눈물로 호소한 부탁에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대답했을 중년 남성의 모습이 시준의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다. 가을과 겨울에 걸쳐 지하의 집을 매일같이 오갔어도 그의 아버지와 시준이 마주쳤던 적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집에 자주 들르지 못했을 것이고 아들에 대한 죄책감도 커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유는 달랐다. 쉽게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아저씨는 그렇고 누나는 왜?”

지하는 시준이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자 앉은 채로 슬그머니 두 손을 들어 시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누, 누나는, 내가, 내가…외, 외롭다고, 하, 하니까….”

“…….”

“지, 집에 호, 혼자 있어서 외롭, 외롭다고 그, 그래서….”

아주 영악한 부탁이었다. 적어도 시준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평소 시준과 함께 있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내는 막내아들, 혹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이용한.

“이사, 이사하면, 안, 안 그럴 것 같다고, 해, 했어.”

“…….”

“지, 진짜야.”

“우리 고3이잖아.”

“어, 어차피, 지, 집에 있는 거랑, 자, 자취하는 거랑, 또, 똑같아서, 괘, 괜찮아.”

대신 지하는 그의 아버지와 누나가 모두 집에 있는 날에 잠깐이라도 들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했다.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시준은 이제 초조한 기색을 지우고 배에 얼굴을 비비며 말하는 지하에게 물었다. 느닷없이 폭탄 발표를 해버리는 것보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이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을 터였다.

“시, 싫어, 싫어할 거 같아서….”

“내가?”

“으, 응….”

“그런데 했잖아.”

“그, 그래도, 그래도….”

“내가 무작정 반대만 할 줄 알았어?”

잠깐 멈칫하던 지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시준의 배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시준은 그 작은 고갯짓을 본 후 피식 웃었다. 처음에야 당황스러웠지만 무사히 허락까지 받아냈다는데,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스토커냐며 화를 냈을 것 같긴 했어도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시준은 한 손으로 지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공부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긴 했다. 하루 종일 붙어 있을 테니. 야한 짓도 눈치 보는 일 없이 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할 텐데,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점점 더 진해지고 있는 지하의 다크서클이 이제 옅어지겠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해주면 나도 미리 준비하잖아.”

“주, 준비?”

“짐 옮겨야지. 아, 책상이나 침대 같은 건 새로 살 테니 필요 없나?”

그래도 옷이나 당장 필요한 물건들은 챙겨두는 게 낫겠네.

시준은 혼잣말처럼 앞으로 할 일을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는 지하 때문이었다.

“왜?”

“준이, 준이, 나, 나랑, 나랑, 가, 같이, 사, 살려고?”

“…….”

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나가! 반지 뺄 거야!”

“아, 아, 안 돼!”

“안 나가?!”

“미, 미, 미안해!”

시준은 무릎까지 꿇으며 매달리는 지하에게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며 화를 내었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자주 놀러 오란 말이나 하려 했다니.

심지어 어제 시준의 부친은 시준에게 지하가 이사를 오면 아예 방을 그곳으로 옮겨도 된다는 말까지 했었고, 시준은 당연하다는 듯 그러겠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나는, 나는, 준이가, 시, 싫어하, 할 줄, 아, 알고…!”

“다 필요 없어! 짐 안 옮길 거야!”

“미, 미안, 미안해….”

한참을 황소처럼 씩씩대던 시준은 결국 지하가 눈물을 보이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눈물만 흘리며 제발 같이 살아달라고 말해오는 그의 부탁이 시준을 다시 차분하게 만들었다.

시준에게는 그 말이 마치 청혼처럼 들려왔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으며 부탁해오는 지하의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다.

“다시 말해봐.”

“가, 같이, 같이 사, 살자…. 나, 나랑, 준이랑….”

둘은 아직 학생이었으며, 어차피 부모님 집이 바로 앞에 있는, 실질적인 독립도 아니었다. 많은 것들을 가족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시준은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지하를 마주 안아주었다.

* * *

그러나 별일 없을 것 같았던 이사는 초반부터 막히고 말았다. 시준이 지하의 취향을 잠시 잊은 탓이었다.

“빼.”

“어, 어…이, 이거, 내, 내가 겨우, 겨우 주문한, 한 건데….”

“당장 빼.”

시준은 노란 금박으로 장식된, 현란한 무늬의 침대 프레임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하의 취향은 중세 시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것들이었다.

“원래 네 방에는 이런 거 없었잖아!”

“그, 그건, 누나가 사, 사준 거고, 이건 내, 내가….”

“난 싫어.”

“그, 그치만….”

거실과 드레스룸 같은 다른 방들은 멀쩡한데 유독 침실만이 지하의 취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준은 차례차례 방으로 들어오는 가구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시준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얇은 레이스처럼 보이는 하얀 천은 도통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뭐야? 커튼?”

“…캐, 캐노피….”

“…….”

“치, 침대랑 잘, 잘 어, 어울리는데….”

“…….”

“빼, 뺄게….”

시준은 그 현란한 침대가 얼마인지 전해 듣고 순간 그대로 둘까 망설였으나, 도저히 시각적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내보내고 말았다. 캐노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 침대뿐만 아니라 침대 옆에 놓여 있던 협탁, 서랍, 소파 등 지하의 취향이 반영된 가구들이 전부 교체되었다. 교체된 가구들은 다행히도 무난해 보였다.

침울해하나 싶던 지하는 다시 짝으로 된 물건들을 구하느라 신이 나 있었다. 그는 집에서 신을 슬리퍼부터 시작해 주방에서 사용할 식기까지 전부 커플이라는 이름으로 사들였다.

“지, 집이 좁아서 조금 아, 아쉽네. 준이, 준이 방에 있는 거, 가, 가져오고 시, 싶었거든.”

“…….”

“드, 드레스룸도 우, 우리 집보다 작아서, 준이 옷이 다 안, 안 들어갔어.”

“…….”

“아, 이제, 이제 우리, 우리 집은, 여, 여기지. 미, 미안.”

50평이 넘는 집이 좁다는 말에 울컥하려던 시준은 우리 집 타령을 하며 헤실헤실 웃는 지하를 보고는 금세 체념했다. 평생을 그 큰 집에서 자라왔으니 좁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단 며칠 사이에 텅 비었던 공간이 새로운 가구들과 물건들로 가득 찼다. 신혼부부가 살았던 집이라서 그런지 이미 리모델링도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다.

시준은 등 뒤에 지하를 매달고 천천히 걸으며 집구경을 했다. 둘은 내일부터 새로운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오늘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해야 해서 집에 가야 한다던 지하는 시준을 뒤에서 끌어안고 애처럼 칭얼거렸다.

“가, 가기 싫다.”

“내일 오잖아.”

“오늘, 오늘부터, 이, 있고 싶어.”

“…손이 왜 거기로 가?”

“…하, 할까?”

시준의 배에 둘러져 있던 큰 손은 어느새 옷 속을 파고들며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 문지르는 게 아주 작정하고 꼬시는 것 같았다. 시준은 기가 막혀서 따졌다.

“아까는 콘돔 없어서 안 된다며?”

둘은 낮부터 짐 정리를 위해 새 집에 와 있었고, 아무도 없는 둘만 있는 상황에 꼴린 시준이 넣자며 지하를 꼬셨으나 그는 콘돔이 없다며 꺼리는 기색을 보인 것이다. 언제부터 콘돔을 썼다고 저랬는지 솔직히 시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수긍하고 바로 물러났더니만 또 이렇게 혼자 초조해져서는 달라붙어왔다.

“이, 입으로, 해, 해줄까?”

“싫어.”

“그, 그럼, 그럼 손으로, 손으로 해, 해줄까?”

검지와 엄지로 가슴에 있던 유두를 살살 돌려가며 꼬집던 지하는 슬슬 다른 한 손을 내려 시준의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안 해.”

“왜, 왜….”

“안 넣을 거면 안 해.”

“그, 그치만, 코, 콘돔이….”

그 말에 짜증이 난 시준이 지하의 두 팔을 휙 떨쳐내고 뒤로 돌았다. 그리고 그의 목을 단숨에 끌어안아 얼굴끼리 마주 보게 했다.

“언제 살 건데?”

“그, 그건….”

“저번에도 구해온다면서 못 구해왔잖아!”

“편, 편의점에는, 사, 사이즈가 없어서, 그, 그래서….”

“그래서 뭐? 어디서 살 건데?”

시준의 물음에 눈을 마주치고 차근차근 변명처럼 대답하던 지하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무, 무인, 판, 판매기나….”

“거기도 안 팔면?”

“서, 성인, 성인용품점이나….”

시준은 이어지는 지하의 말이 황당해서 그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지도 모른 채 큰 소리로 되물었다.

“뭐? 성인용품점?”

“사, 사복 입고 가, 가면…되, 되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음…!”

갑작스러운 키스였다. 입술을 마주하자마자 혀로 시준의 입안을 탐색하듯 헤집던 지하는 곧 시준의 혀를 얽어매다가 입천장과 안쪽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불리하니까 아주 입으로 막아버리네.

시준은 속으로 생각하며 못 이기는 척 키스에 응했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언제 구매에 성공할지도 모르는 콘돔을 기다리는 건 너무 오래 걸렸다.

“나 그럼 입으로 빨아줘.”

“으, 응!”

입술을 떼고 말하자 지하가 신나서 시준을 데리고 침실로 가려 했고, 시준이 그런 그를 말렸다.

“그냥 여기서 해.”

“여, 여기서?”

“방까지 멀잖아. 우리 둘만 있는데 뭐 어때.”

지하는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시준은 얼른 다시 입을 맞추며 그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침실은 지금 있는 곳과 반대편이었고 한시가 급한 이때에 거기까지 걸어가는 건 위험했다. 그동안 하지하의 생각이 바뀔지도 몰랐다.

둘은 거실과 현관으로 이어지는 복도 사이에 옷을 벗고 누웠다. 시준의 위에 올라타 몸 곳곳을 집요하게 애무하던 지하는 점점 얼굴을 내려 시준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으…. 나, 뒤에, 뒤에 해줘.”

보채는 말에 지하가 입에서 크기를 키워가던 시준의 성기를 빼고 바로 뒤로 입술을 옮겼다. 납작 엎드려 핥아오는 게 불편해 보여서 시준은 지하에게 앉아서 하라며 허리를 뒤로 뺐다. 그는 시준의 말대로 엉덩이를 두 손으로 받쳐 그의 얼굴까지 올라가게 했다. 그러고는 허리를 세우고 앉아 어깨에 시준의 벌린 다리를 걸치고 뒤를 빨았다.

“으앗, 아!”

입술이 입구를 힘주어 빨고, 혀가 구멍을 뚫을 때마다 시준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바둥거렸다. 허리가 들린 자세 때문에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너무 잘 보였다. 시준의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 한참을 입술로 문대던 지하가 고개를 들어 손가락을 넣는 것까지 다 보였다.

“읏!”

“하아, 하아….”

쑤셔지고 있는 건 저인데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지하가 웃겨서 시준은 속으로만 웃었다. 지하의 손가락이 한 개에서 두 개, 세 개로 늘어날 때마다 입 밖으로 웃음소리조차 나오질 못한 탓이었다.

시준은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했다.

“넣어줘…. 넣자, 지하야, 응?”

“흐으, 잠, 잠깐….”

애타는 시준의 말에 지하가 손가락을 늘려 네 개를 넣으려 하자 시준이 화가 나서 외쳤다.

“손가락 말고! 네 거 넣으라고!”

“그, 그치만….”

“아, 씨발. 나 안 해.”

“어, 어?”

결국 속으로 외쳐대던 욕이 튀어나왔다. 뒷구멍이 계속해서 벌름거리고 있었지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 덕분에 성욕이 가라앉을 판이었다. 시준은 그대로 위에 있는 지하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콘돔 사 올 때까지 내 몸에 손끝 하나 댈 생각 하지 마.”

“어, 왜, 왜….”

“만지지도 마.”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들고 시준이 성큼성큼 욕실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다급히 몸을 일으켜 자신을 따라오는 지하를 눈치챘지만 무시해줬다. 이러다간 싫다는 사람 붙잡고 덮쳐서 강제로 넣을 것 같았다.

솔직히 억울하기도 했다. 저는 지가 해오는 어설픈 유혹에도 모르는 척 넘어가 줬더니만 상대방은 끝의 끝까지 가서도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 않는 게 화를 넘어서 슬프기까지 했다. 만지고 싶다며 집까지 따로 얻어놓고서는.

하다가 멈춘 찝찝함에 샤워라도 할 생각으로 욕실 문을 열었지만 곧 시준의 몸이 돌려세워졌다. 만지지 말랬더니 왜 만지냐고 한소리 해주려던 시준은 당황해서 위를 올려다봤다.

“준아, 준아….”

“아니, 왜 울어?”

지하는 얼굴 전체가 눈물범벅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우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라리 전처럼 소리 내서 터트리기라도 하지, 그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시준의 어깨만 잡았다 놓았다 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야…. 미치겠네.”

시준은 할 수 없이 까치발을 들어 지하를 품에 안았다. 몇 분 전에 말했던 만지지 말라는 말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미, 미, 미안….”

“뭐가 미안한지나 알아?”

“으….”

“왜 자꾸 울어?”

그는 시준의 말을 듣고는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었다.

“좀 그쳐! 눈 팅팅 부어서 집에 가려고 그래?”

“준이, 준이가….”

“내가 뭐?”

“요, 요, 욕을, 나, 나한테, 욕을….”

그제야 서러운 소리를 낸 그는 운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욕? 내가? 아, 씨발이라고 한 거?”

“흑….”

“안 되겠다, 이리 와봐.”

욕실 문 앞에 서서 대화하는 걸로는 쉽사리 진정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러다 다시 발작이라도 올까 봐 시준은 서둘러 그를 데리고 침실로 갔다.

계속해서 우는 지하를 침대에 눕힌 시준이 그의 옆에 같이 누웠다. 옆에 누워 어르고 달래며 가슴을 토닥이자 지하가 몸을 돌려 시준을 끌어안았다.

“내가 욕 한두 번 해? 그게 왜?”

“사, 사귀, 사귀고 나서는, 안, 안 했어. 사, 사귀고는….”

“했는데?”

“아, 안 했어…나, 나한테, 아, 안 그랬어.”

참 나….

시준은 할 말을 잃었다. 욕을 한 번도 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하가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확실히 사귀고 나서부터는 험한 말을 내뱉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긴 했었다. 시준은 그 말에 지하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병신이라던가, 미친놈, 미친 새끼 같은, 그를 지칭하는 욕은 되도록이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씨발이라는 욕에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해올 줄은 몰랐다.

“그, 그리고, 그리고 왜, 왜 만, 만지지, 말라고 해?”

“만지면 하고 싶으니까.”

“하, 하면 되, 되잖아.”

“네가 안 해주잖아!”

“아….”

“그래서 안 한 건데, 왜?”

“그, 그건….”

지하가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울음을 그쳤다. 그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처럼 잠시 머뭇대는 사이 시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 할 거면 아예 만지질 말아야지. 만지면 자꾸 넣고 싶잖아.”

“이, 입으로 하면….”

“그럼 뭐 해. 그래도 넣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난 너 하고 싶을 때 다 해줬는데 넌 안 그러는 것 같아. 불공평하지 않아?

시준이 투덜거렸다.

“…코, 콘돔 안 쓰면, 배, 배탈이 난대. 내가, 내가 전에는 모, 몰라서….”

“내가 배탈 난 적 있어?”

“아, 아, 아니…그, 그래도, 준이, 아, 아팠잖아….”

“너 내 안에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싼 거 잊었어?”

“아, 그, 그게….”

“하도 많이 싸서 밖으로 줄줄 흘렀는데.”

“으….”

“너 그거 보면서 좋아했잖아.”

“내, 내가 어, 언제?”

마주 보고 있는 자세여서 그런지 지하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는 게 다 보였다. 그는 그대로 시준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그, 그런데, 정말, 정말 안 돼. 코, 콘돔 써야 해.”

“알겠다고. 그러니까 그만 좀 만지라고.”

“…마, 만지는, 건….”

“그럼 오늘까지만 콘돔 없이 하든가!”

“아, 안 되는데….”

“그럼 만지지 마!”

둘은 침대에 누워 하네, 마네 투닥이면서도 입을 맞추고 서로를 쓰다듬었지만 그게 다였다. 결국 지하가 또다시 집에 가기 싫다며 울기 시작하자 시준이 억지로 그런 그를 일으켰다. 집에 안 가면 우리 집은커녕 키스도 못한다고 엄포를 놓고서야 시준은 겨우 지하를 배웅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 * *

시준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무시하고 마저 짐을 챙겼다. 필요한 것들은 다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문제집과 필기도구들을 가져가지 않았다. 책장에 있던 책들까지 모두 옮길 생각으로 바닥에 내려놓으니 책상이 휑했다.

한 번에 옮길 생각으로 가방에 문제집을 쑤셔 넣었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앞집으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가 눈앞의 낯선 광경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앞집 문 옆으로 작업복을 입은 어떤 남자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 한쪽에 있는 구석진 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시준은 남자가 무얼 하는지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벽에 달린 물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물체의 정체를 파악한 시준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남자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남자에게 시준이 다가갔다.

“뭐 하세요?”

시준이 묻자 남자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내렸다.

“거기서 뭐 하세요?”

“아~ 앞집에 살아요?”

시준이 나온 현관문과 시준을 번갈아보던 남자는 이내 안심했다는 것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이거, 씨씨티비 설치하는 사람인데, 별건 아니고. 다 됐어요.”

“씨씨티비요?”

“그저께 설치 좀 해달라고 해서 하고 갔거든. 근데 뭐 하나를 안 하고 가서. 안 해도 되는 거긴 한데 혹시 몰라서 와봤지. 집에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남자가 사라지니 카메라가 유독 잘 보였다. 오늘 설치한 게 아니라면 이틀 전에도 저 자리에 카메라가 있었다는 건데 시준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위치를 봐도 사람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저기, 학생. 이거 진짜 내가 그냥 좀 찝찝해서 와본 거야. 설치도 이미 다 했고. 이 집 고객이 까다로워서 시간 맞추느라 고생하느라고 제대로 보질 못했거든.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여기, 명함.”

남자는 명함을 꺼내 시준에게 건네주었다.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명함에는 설치‧A/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명함을 받아 들고 가만히 살펴보던 시준이 남자에게 물었다.

“…이런 거 불법 아니에요?”

“불법이라니, 학생. 관리사무소랑 얘기도 잘 했고, 불법 아니야. 요즘 이런 고객들 많아요. 이상한 사람 들락날락할까 봐. 아파트 들어와서 벨 누르고 튀는 이상한 놈들도 있고, 하여튼 불법 아니야.”

“…앞집 내일 이사 온다던데.”

“그래요? 저기, 학생. 내가 이런 말 하긴 미안한데, 나 정말 뭐 실수한 건 없는지 보러 온 거거든. 이게 원래 설치가 더 오래 걸리는 건데 하도 뭐라 그래서 급하게 하느라고. 혹시 여기 주인 오면 나 온 거….”

“말하지 말라고요?”

“그래주면 나야 좋지. 말해도 상관은 없는데….”

“안 할게요.”

시준은 앞에 있는 남자를 힐끔 올려다본 후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가방을 던져놓고 비디오폰으로 문밖을 확인했다. 남자는 사다리와 도구들을 정리하더니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시준은 방 안으로 들어와 남자가 준 명함을 휴대폰으로 검색하려다 말았다. 휴대폰에 검색 기록이 남을 수도 있었다.

시준은 책상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화면은 이미 지하가 보낸 메신저 알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메신저 내용들은 뭐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같은 사소한 물음들이었지만 그 안에 답장을 보채는 말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입꼬리를 올리며 삐죽 웃던 시준은 문득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려 봤다. 남자의 말처럼 카메라는 보안을 목적으로 설치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시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자신에게 여전히 사람이 붙어 있는지, 혹은 휴대폰은 자유로운지 같은 것들.

시준은 손가락으로 의자 손잡이를 천천히 두드렸다.

요 몇 달 사이 하지하는 굉장히 많이 변했다. 시준이 겪었던 변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시준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매해 겨울마다 시준에게 주겠다며 손에서 놓질 않았던 뜨개바늘과 털실이 이번 겨울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직접 요리해주겠다며 토요일마다 주방을 떠나지 않던 그는 이제 시준이 봐줘야지만, 혹은 시준이 먹고 싶다고 해야지만 음식을 만들었다.

멀리는 아니지만 둘이서라면 집 근처 산책도 가능했고, 성인용품점에 가겠다는 걸 보아 혼자서 외출도 자주 하는 것 같았다. 원래 그는 시준의 외출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 그 역시 밖으로 잘 나가질 않았다.

이런 것들을 굉장한 변화라고 일컫는 것 자체가 자신이 이미 하지하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부탁으로 받아들인 건 시준이었고, 강요를 부탁으로 만든 건 지하였다.

시준은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짜증이 났다. 이걸 또 들켜서는 알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시준을 짜증 나게 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지하였다. 벌써 이렇게 쌓인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어서 자신이 욕을 했다며 눈물을 쏟아내던 하지하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웃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준은 이번 일 역시 모른 척하기로 정했다. 이유는 마찬가지였다. 지하가 피해자로 바뀔지 모를 나중을 위해. 그는 이미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시준은 그 안에서 둘을 철저히 분리했다.

그러나 사귀는 동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시준은 지하에게 빨리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 * *

지하는 울적한 얼굴로 한껏 쪼그라든 천을 꺼내 들었다. 건조기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건 지하가 작년에 직접 손으로 뜬 평범한 니트였다.

“그걸 건조기에 왜 넣어?”

“모, 몰랐어….”

“이걸 세탁기에는 또 왜 넣어!”

“미, 미안….”

시준은 켜켜이 쌓인 한숨을 집어삼켰다.

둘은 지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따로 고용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준은 지하가 꺼낸 말에 다급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또, 또 들킬까 봐, 내가, 내가 호, 혼자, 다, 다 한다고 했어….”

“그래도 그렇지, 고3인데?”

“누, 누나도, 나 호, 혼자, 해, 해보라고 해서….”

“…….”

지유 이야기까지 나오자 시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로서는 많이 양보했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그의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는지 시준의 부모에게 말을 흘린 것 같았다. 시준은 집 청소를 해주겠다는 모친을 말렸다. 이유는 지하와 같았다. 사내자식 둘이 뭘 하겠냐는 눈빛으로 시준을 쳐다보던 모친은 시준이 평소 깔끔했음을 꿋꿋하게 주장하자 알아서 하라며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양이었다.

지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아니, 할 줄 아는 게 있긴 했다. 요리. 그게 다였다. 그는 세탁기 사용법도 몰랐으며 쓰레기 분리수거 개념조차 없었다. 청소기도 처음 사용하는지 쩔쩔매길래 옆에서 시준이 대신 작동시켜줬다.

아직 방학이 남았다고 좋아했더니만 할 일이 산더미였다. 거기에 공부까지 더하니 쉴 틈이 없었다.

“조심해!”

“으, 응.”

“아냐, 줘봐. 내가 할게.”

“내가, 준아, 내, 내가….”

“넌 소파에 앉아서 빨래나 개.”

“그, 그치만….”

“…난 빨래 개는 거 싫으니까 네가 해.”

“으, 응.”

시준은 지하에게서 청소기를 빼앗았다. 어째 움직이는 게 아슬아슬해 보여서 그에게 맡기느니 자신이 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시준은 침실과 드레스룸, 그리고 남은 방들까지 청소기로 밀었다. 어느새 얼굴에는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집 안은 반팔,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따뜻했다.

거실로 돌아오니 소파에 얌전히 앉은 지하가 열심히 빨래를 개고 있었다. 느려도 너무 느린 속도였다. 잔소리를 하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간 시준은 소파 한편에 쌓인 옷가지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옷들이 이상하게 개켜져 있었다. 수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 다 했어? 준이, 준이, 여, 여기서, 쉬어.”

“쉬긴 뭘 쉬어! 이리 와. 내가 하는 거 잘 봐. 알았어?”

시준은 앉아서 한참을 설명했다. 팬티는 이렇게 접어야 하며, 바지는 이렇게, 양말은 이렇게. 지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경청했고, 그는 더 이상 집이 좁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 * *

결국 지하는 콘돔을 구해오지 못했다.

“쪼, 쫓겨났어….”

규모가 큰 상점에서는 신분증 검사 때문에 사 오지 못했고, 반대로 작고 직원도 없을 때가 많은 곳에서는 사이즈에 맞는 상품이 없었다고 했다. 같이 가자는 시준을 거절까지 해가면서 택시를 타고 힘겹게 돌아다닌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주, 주문을 하고 오긴 해, 했는데….”

목소리에 실망이 섞인 것을 보아하니 확실한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으, 응….”

“내년에 하자.”

“어…어?”

“콘돔 없이 안 한다며.”

애초에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시준은 일부러 떠보듯 말했다. 소파에 앉은 시준의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있던 지하가 놀라서 시준을 올려다봤다.

“다음 주가 개학인데 잘됐네. 너 과외도 안 하니까 공부 시간이나 늘려.”

“그, 그래도, 그래도….”

“안 넣으면 되지.”

머리카락에 손을 집어넣고 살살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가 순간적으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시준은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으며 아닌 척 지하를 꼬셨고, 그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시준은 짐승처럼 붙어먹는단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둘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몸을 섞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지하의 얄팍한 고집을 던져버리니 남은 건 서로를 향한 욕구였다.

“아, 아, 아흑…!”

시준은 까치발을 들고 식탁 위에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쉼 없이 흔들렸다. 뒤에서는 지하가 시준의 허리를 잡고 더 깊게 박아오고 있었다. 강하게 쳐올릴 때마다 시준의 몸이 식탁 앞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니 아예 고정시키는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하체만 움직여 성기를 구멍 안으로 쑤셔 넣었다. 아침까지 벌어져 있던 입구는 몇 번 적셔주자 수월하게 삽입이 가능했다.

요 며칠 동안 몸이 다시 익숙해지고 있는지 시준은 지하가 넣기만 해도 쉽게 절정에 올랐다. 질퍽이는 소리에 섞여 푹푹 파고드는 커다란 성기가 빠져나갈 때면 못내 아쉽기까지 했다. 그러다가도 그 속도가 빨라지면 눈앞이 하얘졌다가 까매졌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늘 큰 소리로 울고 있는 것이다.

원래라면 한창 식사를 해야 할 시간에 이렇게 밥상 위에서 몸을 섞고 있는 건 순전히 시준 때문이었다. 살뜰히 식탁 위로 반찬을 나르는 지하를 보자, 시준은 그가 고생해서 만든 음식들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을 원해올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답을 지하는 아주 쉽게 몸으로 보여주었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시준이 키스를 하며 그의 아래를 움켜쥐니 망설임 없이 삽입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하가 빠른 속도로 밀어 넣자 시준이 지탱하고 있는 식탁이 같이 흔들리며 그 위에 있던 음식들 중 몇 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시준은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는 앓는 소리를 막지 않았다.

“응, 윽….”

“하아, 준아, 읏.”

지하는 움직이면서도 시준의 귓바퀴를 핧고 두 손으로 가슴과 몸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간지러운 걸로 그쳤을 스킨십이 몸이 예민해지면서부터는 삽입을 더 흥분되게 만들었다.

“윽, 빨, 리, 빨리, 흑….”

시준은 끝내 몰아치는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지하에게 어서 사정하라며 재촉했다. 흔들리는 몸 때문에 말을 할 때마다 뚝뚝 끊겨서 나왔다.

뱃속이 간질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상대방이 조금만 더 하겠다고 말하면서 끝을 향해 거칠게 움직이자 시준은 더 이상 우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침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아아, 아!”

계속 빠르게 움직이던 성기가 한 번 크게 넣었다 빼며 안쪽 깊숙한 곳을 쳐올렸다. 고통과도 닮은 쾌락이 시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준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애원하듯 말했다.

“아윽, 윽, 안, 에, 안에, 싸, 아!”

뒤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시준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지하와 눈을 마주했다.

잔뜩 찌푸린 상대방의 얼굴이 보임과 동시에, 안쪽에서 익숙하면서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 시준의 몸 전체를 사로잡았다.

“아윽, 좋…아…. 흑….”

“준아, 준아….”

지하는 사정하는 중에도 쉼 없이 푹푹 안쪽을 쑤셔왔고 뒤에서는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났다.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시준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식탁 위에 한쪽 빰을 대고 있었고 뒤에서 지하가 커다란 몸으로 시준을 덮고 있었다.

“방에, 방에, 갈까?”

그가 조심스럽게 시준을 감싸며 묻자, 시준은 치우자는 말 대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 뒤로 치우는 것이 귀찮아 주방에서는 하지 않았지만 둘은 눈이 마주치면 거실 바닥이든 화장실이든 신경 쓰지 않고 서로를 탐했다. 그러나 장소와 달리 시간은 보통 정해져 있었다. 주로 아침과 낮, 혹은 저녁. 둘은 밤을 제외한 시간에 섹스를 했다.

“자, 잘 자, 준아.”

“…그래, 너도.”

“으, 응.”

처음 침대에 누울 때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못 잘 것 같다고 말했던 지하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1분도 안 되어 곯아떨어졌다. 대충 밀린 잠을 자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 후로도 눕기만 하면 잠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시준을 꽉 끌어안고 잠이 들어서 시준은 옴짝달싹도 못하고 같이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심술이 돋은 시준이 맞닿은 하체에 손을 뻗어 성기를 조몰락거려도 깨지 않았다. 웃긴 것은 말랑거리는 걸 장난치듯 가지고 놀면 은근히 잠이 잘 온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쩌다 보니 시준은 지하의 성기를 손에 쥐고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하는 그런 시준을 위해 자기 전에 아예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고, 시준 역시 맨살의 느낌이 좋아 알몸으로 몸을 겹쳤다.

지하는 일찍 잠이 드는 만큼 일어나는 시간도 빨랐다. 시준은 일어날 때마다 손안에 있던 말캉한 것이 어느새 딱딱하게 변해 있는 걸 느끼곤 아쉬워했다. 물렁하면서도 부피가 큰 그것은 감촉이 퍽 좋았던 것이다. 낮에 지하가 깨어 있을 때 만지면 금세 발기하곤 해서 쉽게 느낄 수가 없는 말랑함이었다.

시준은 아침에 흥분해서 달려드는 지하를 몇 번 받아주다가 나중에는 잠이 더 고파 그런 그를 운동이나 하라며 밀어냈다. 집에는 운동 기구만 있는 방이 따로 있었고 지하는 잠을 청하려는 시준을 더 건드리지 못할 때면 그 방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그는 잠든 시준을 보고 있으면 자고 있는데도 덮칠 것 같아 힘을 빼기 위해 갔다며, 자는 동안 옆에 있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다.

시준은 마치 자신과 지하가 신혼부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건 지하도 마찬가지였는지 결혼한 것 같아서 좋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실제로는 소꿉놀이에 가까운 생활들이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떨어져 있지 않고 붙어 있다는 사실이 그를 만족시킨 것처럼 보였다.

지하는 집에 있는 내내 시준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도 시준이 곁에 있길 원했고, 그래서 시준은 일부러 음식을 만드느라 주방에서 분주한 그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붙어 다녔다. 지하는 시준이 그럴 때마다 소리 내어 웃을 정도로 좋아했다.

지하의 말처럼 꿈같은 방학이었다. 짧은 둘만의 방학이 지나고 학교에 가게 되자, 지하는 드물게도 가기 싫다며 매일 아침 투정을 부려왔다.

“아, 아프다고, 할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죠? 안 일어나?”

“조, 조금만, 이, 이렇게 있자….”

“딱 십분 만이야.”

“으, 응.”

침대 위에서 십분은 삼십분으로 바뀌기 일쑤였기에 시준은 그를 매일 아침마다 어르고 달래야 했다. 화를 내보기도 했으나 이젠 화를 낼 때마다 울 것 같은 표정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지하는 얼른 방학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다고 평일을 방학처럼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찍 일어난 지하에게 넘어가 아침에 섹스를 하게 되면 시준은 복수를 하겠답시고 학교에서 그를 자극했다.

[아직도 욱신거려]

[벌어져 있는 것 같아]

[집에서 빨리 확인해줘]

처음에는 지하의 귓가에 몰래몰래 속삭였으나 너무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오는 그 때문에 나중에는 노트 한구석에 메모를 하며 놀려댔다.

그러면 그는 집에 가는 차에서부터 안절부절못하며 시준의 왼손만 만지작거렸다. 시준은 지하가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가락을 유독 자주 쓰다듬는 걸 알았지만 굳이 만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시준을 품에 가뒀다 떼냈다 하다가 집에 들어가면 지하는 정말 발정 난 짐승처럼 시준을 덮쳐왔다. 콘돔 없이 넣지 않겠다던 그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시준이 입고 있는 상의를 벗기지도 못하고 다급히 위로 끌어올리며 가슴부터 빨아오는 그 때문에 현관 입구에서 관계를 갖는 횟수가 많았다. 그런 날은 아침까지 열려 있던 구멍이 쉽게 풀어지곤 해서 삽입도 평소보다 더 수월했다.

섹스는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침실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하는 시준이 조르는 것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서너 번이 넘는 관계에도 시준의 안쪽에 사정을 했고 그러면 뒤가 넘치도록 흘러내려 삽입을 할 때마다 쿨쩍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마주 보면서 몸이 반으로 접히는 섹스를 할 때면 그런 구멍이 시준의 눈에도 더욱 잘 보였다. 하얀 액체를 묻힌 채로 자신의 뱃가죽을 뚫을 것처럼 박아오는 성기와 입구 주변에 거품처럼 새어 나온 정액을 볼 때마다 시준은 더욱더 흥분해 상대방에게 매달렸다.

끝났나 싶었던 관계는 시준의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을 빼주면서 흥분한 지하가 다시 박아오며 이어지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었고 둘은 저녁을 먹은 후에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평일에 하지 못한 공부를 할 때도 있었고, 방학 때처럼 하루 종일 몸을 맞대고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지하는 가끔씩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왔다.

“대, 대학교, 가, 가지 말까?”

“왜?”

“굳이… 굳이 안 가도, 되, 될 것 같은데…나, 나 돈 많아.”

“그게 네 돈이야?”

“내, 내 돈인데. 다, 내, 내 이름으로, 된, 된 건데….”

대학에 안 가면 안 되냐며,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안 되냐고 묻는 지하는 진심이 가득해 보였지만, 시준은 그에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내거나 비웃지 않았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할 때면 시준은 지하를 데리고 아파트 근처 산책로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손을 잡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하던 그도 시준이 답답하다는 말을 꺼내면 매번 흠칫 놀라면서도 어서 나가자고 시준을 이끌었다.

시준은 익숙한 길을 지나 상대방이 모르게 아주 조금씩 멀리까지 걷곤 했다. 그는 이제 산책로를 벗어나 아파트 밖의 상가까지 시준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하는 탁 트인 곳보다는 사방이 막힌 아무도 없는 곳에 둘만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매일, 매일, 비, 비가 내리면, 조, 좋겠다.”

“왜?”

“이, 이렇게 준이랑, 집, 집에 있게. 비, 비 오면, 준이, 안, 안 나가잖아.”

“뭐야, 나랑 나가는 거 싫었어?”

“아니, 아니. 조, 좋은데, 그, 그것도 조, 좋은데.”

집에 있으면 준이가 나만 보니까.

시준은 그 말에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보지 않으면 허튼 짓거리를 해서라도 보게 만드는 주제에 어이가 없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시준은 그랬냐면서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 * *

그는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매일같이 시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시준의 가족들은 방문할 때마다 그런 지하보다도 시준에게 새삼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너무 친절해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말한 시준의 동생은 시준에게 다리를 걷어차이고 말았지만 어쨌든 주변 사람들은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지하의 아버지와 누나는 막내가 사는 곳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로 시준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 저녁 식사라도 함께해야 한다던 지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딱 한 번 그 집에 다녀왔을 뿐이었다.

그의 아버지라면 몰라도 누나인 지유는 한 번쯤 살펴보러 오기라도 할 것 같았는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지하가 오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아한 한편 잘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시준은 여전히 그녀가 거북했다. 올곧은 그녀 앞에 서면 시준은 언제나 그 자신이 먼지처럼 작아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녀는 몇 년 전 상담을 거부하는 시준에게 지하의 주치의와 함께 찾아와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점을 물었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준은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하나하나 설명함으로써 잘못을 고백했다.

모든 것이 까발려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비겁하게도 그제야 죄책감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지하에 대한 죄책감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으나 그녀에게는 그러지를 못했다.

“다 풀었어?”

“으, 응. 다, 다 풀었어. 정답, 정답 볼게.”

“몇 번이래?”

“4, 4번.”

“아, 뭐야. 틀렸네.”

“나, 나도.”

“너 일부러 틀린 거 아냐?”

시준은 고개를 뒤로 돌려 지하를 노려보았다. 혹시라도 정말 그런 거라면 가만 안 두겠다는 눈빛이었지만 지하는 당황하며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럼 됐고. 다음.”

“으, 응. 넘, 넘길게.”

시준은 지하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책상 위에 있는 문제집을 풀었다. 책상 의자에 앉은 채 시준을 뒤에서 끌어안은 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정해진 시간 안에 같은 문제를 풀고 정답 맞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시준은 이런 자세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고 있는 시준 앞으로 지하가 기어코 끼어 들어왔고, 상대방의 큰 덩치에 앞이 보이질 않게 된 시준이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 대신 자리를 바꾼 것이다.

지하는 문제를 푸는 내내 시준의 허리를 쓰다듬고 귓바퀴에 입을 맞추거나 볼을 비벼왔지만 시준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만 쳐다보았다. 지하의 손길을 집중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지하가 투덜거리려 할 때 시준은 문제를 다 풀었다며 그에게 채점하라고 일렀다. 지하는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집중한 시준과 비슷한 정답률을 보였다. 시준이 혼자서 속으로 둘만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맞으면 좋다고 웃고, 틀리면 그래도 상관없다고 웃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시준은 평소보다 배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작년보다 성적이 좋게 나오질 않은 탓이었다. 집에 있으면 붙어먹느라 바빴으니 그럴 만도 하다며 수긍했지만 오기가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즈음에 마침 지하가 따로 주문한 콘돔을 구해왔고 둘은 시준의 성적을 위해 콘돔의 개수만큼 관계 횟수를 조절하기로 계획했다. 아쉬워할 것이라고 생각한 지하는 의외로 알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몇 달 사이 익숙해진 집안일로 바빠 보였음에도 높은 성적이 나왔고 시준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사실에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제는 같이 살기까지 하는 그가 시준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방, 방학하면, 내가, 내가 맛있는 거, 마, 많이 해줄게.”

“공부해야지.”

“고, 공부도 하고.”

“지금도 다 맛있어.”

“…으, 응.”

“…갑자기 왜 세워?”

“모, 몰라….”

시준은 손만 잡아도 서던 지하의 성기가 같이 살면서 키스하면 서는 정도로 바뀐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엉덩이 아래로 갑자기 뭉툭한 것이 느껴졌다. 시준이 앉을 때까지만 해도 얌전하던 것이 칭찬 한 번 해줬다고 발기한 것이다.

“나 이거 다 풀어야 하는 거 알지?”

“으, 응.”

“참아. 못 참겠으면 네 의자로 가서 다시 앉고.”

“참, 참을 수, 이, 있어.”

시준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를 흘겨보았다. 저렇게 말하고서 끙끙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끌리긴 했으나 시준은 처참했던 중간고사 성적을 떠올리곤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할 때였다.

똑같은 매일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새로웠던 날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준은 만족할 만한 시험 성적을 얻었고, 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여름 방학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준은 학교에서 고3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보충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다. 지하가 수업 신청서가 내려온 날부터 은근히 대놓고 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를 보여온 것이다.

“난, 난 지, 집에서 공부가 더, 더 잘 되던데.”

“그래?”

“으, 응. 준이, 준이도 학교에서, 공, 공부 많이 아, 안 하잖아.”

“…….”

“준이도 내, 내가 서, 설명해주는 게, 더, 더, 조, 좋다고….”

“내가 언제 그랬어?”

“조…좋을…걸?”

시준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대놓고 쳐다보지 못하고 옆에서 힐끔힐끔거리며 시준의 옷자락만 잡아오는 지하가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커다란 손이 조금만 힘을 주어도 지금 잡고 있는 옷을 찢을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그렇게 보이는 게 점점 당연해지고 있었다.

어차피 겨울방학이 끝날 때부터 여름방학 타령을 하던 지하 때문에 처음부터 보충 수업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지만, 시준은 그렇게 원하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생색을 냈다. 그리고 예상대로 지하는 시준을 끌어안고 고맙다며 키스를 퍼부었다. 할 때마다 간질거리던 스킨십 역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어느 날이었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질 때면 으레 그랬듯이 시준은 지하를 끌고 아파트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약간은 쌀쌀했던, 벚꽃잎 흩날리는 계절이 지나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초여름이었다. 분홍빛이었던 나무들이 초록 빛깔을 띠며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지만 유독 더운 날이었다. 목덜미를 흐르는 땀방울에 시준은 내심 괜히 나왔다고 후회했으나 이제 와서 돌아가자고 하기가 뭐했다. 싫은 티를 내는 지하를 억지로 데리고 나온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도 둘이 나란히 걷다 보니 조금씩 더위로 불쾌한 감각이 사라지고 기분 좋은 들뜸만 남았다. 둘은 장난처럼 손을 잡았다가 다른 사람이 보이면 놓기를 반복했다. 처음 손을 놓지 않으려던 지하는 반대로 시준이 잡아오는 것이 좋았는지 가끔씩 손을 먼저 놔주기도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시준은 이왕 나온 거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자며 지하를 졸랐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자, 지하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며 얼른 사주겠다고 시준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지만 그는 아이스크림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 신경도 못 쓰는 것 같았다. 시준은 그런 그를 보며 즐거워졌고, 그래서 마주 잡은 손을 일부러 놓지 않은 채 뒤따라 걸었다.

문제는 지하가 주위를 살피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며 걸었다는 것이다. 시준은 그가 보지 않는 방향에서 지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시준은 잡은 손을 힘껏 뿌리치며 지하를 온몸으로 밀쳐냈다.

* * *

오토바이는 시준의 왼쪽 발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도로 위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준도 길바닥으로 쓰러졌다. 달려오던 오토바이와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발목이 욱신거려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시야 안에 넘어진 오토바이를 겨우 일으킨 운전자가 시준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외마디 비명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갑작스러운 소음에 시준의 시선이 돌아갔다. 시준은 그제야 자신이 왜 이렇게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시준이 세게 밀쳤는지 그 역시 바닥으로 넘어진 것 같았다. 지하는 시준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다.

“야, 너 괜찮….”

시준은 괜찮냐고 물으려던 입을 다물고 급하게 코앞까지 다가온 지하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챘다.

“아…으….”

“숨! 숨 쉬어, 하지하! 야!”

지하는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며 길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시준은 지하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으로 무너지려는 그를 일으켜 세워보려 했으나 앉은 자세로는 무리가 있었다.

시준은 당황스러웠다. 지하는 이제 헛구역질까지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발작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발작을 일으킨 지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기에 집에 있어도 약을 제대로 챙기질 않았었다.

지하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기만 했다. 시준의 옷 끝자락을 잡고 있던 손이 점점 약해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를 위해 시준은 응급조치로 손을 들어 그의 입가에 대려 했으나 고통스럽게 몸을 굽힌 그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지금 보험회사 불….”

“봉투! 봉투 없어요?”

다리를 절룩이며 다가오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시준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난데없는 봉투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상대방은 바닥에 엎드린 지하를 보더니 사색이 되어 바지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냈다.

억지로 지하의 몸을 뒤집으려던 시준의 눈에 가느다란 실금이 여러 줄 가 있는 휴대폰 액정 위로 찍힌 번호가 보였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119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라고 짜증을 내려다가 욱, 욱 소리를 내며 헛구역질을 계속하는 지하를 서둘러 다독였다. 그는 지금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올라오려는 구토감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다행히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참지 마, 토해. 토하라고!”

끝끝내 고개를 젓던 지하가 결국 정신을 잃었다. 시준은 아연해져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옆에서 힘을 잃고 바닥으로 툭 떨어진 지하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란 운전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죽었냐고 물어왔다.

“죽긴 뭐가 죽어요? 운전 개같이 했으면서 지금 저주 내려? 씨발, 폰이나 내놔봐.”

시준은 상대방에게서 갈취하듯 빼앗은 휴대폰으로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그사이 구급차가 도착했고, 시준은 쓰러진 지하와 함께 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병원 의료진에게도, 그리고 시준의 부모와 지유가 도착하고 나서도 시준은 계속해서 설명해야 했다. 지하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쓰러진 게 아니며, 사고를 당한 것은 저라고. 그 상황을 목격한 지하가 놀라 발작을 일으켰다고 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둘 다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시준은 발목에 작은 실금이 갔을 뿐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유의 말에 전체적인 검사를 다시 받기로 한 것이다.

지하는 시준의 부모가 입원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주고 다시 돌아갈 때까지도 눈을 뜨지 않았다. 처음에는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던 어른들도 그리 크지 않은 사고 규모에 안심하며 다행이라고 말해왔다. 그래도 아들이 입원해 있으니 병원에 있겠다는 가족들을 시준은 억지로 돌려보냈다.

반대로 지하가 깨어 날 때까지만이라도 그의 누나는 남아 있어주길 바랐지만 지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회사에서 나왔다고 저녁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병실은 2인실이었다. 시준은 병원복을 입고 옆 침대에 누워 있는 지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깁스를 한 다리는 조금 무거웠지만 별로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픈 것은 넘어지면서 까진 손바닥과 무릎이었다.

지하는 발작을 일으키면 꼬박 두 시간이 넘게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곤 했었다. 사실 얼마나 있어야 깨어나는지는 시준도 몰랐다. 시준은 지하가 발작을 일으킬 때만 같이 있어주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렇게 끝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드물었다.

시준은 문득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롭던 일상들이 순식간에 부서진 것처럼 느껴졌다. 위태롭게 쌓여가던 시간이 작은 빗방울에도 쉽게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제 더는 없을 것 같던 그의 발작이 다시 살아났다. 마치 잊은 듯 굴고 있던 그의 집착과 함께.

시준은 별다를 것 없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는 시준에게 지하가 물었었다.

“어디, 어디 집?”

“우리 집. 책 안 가져온 거 있어. 금방 다녀….”

“준이, 준이 집은 여, 여긴데.”

“…그래, 부모님 집 다녀올게.”

“가, 같이, 같이 가.”

결국 조르는 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짧은 거리를 둘이 손잡고 다녀왔었다. 바로 앞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시준은 ‘우리 집’이라고 강조하던 지하와 그 ‘우리 집’ 앞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를 번갈아가며 생각했다.

둘은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실상 그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시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변화들은 한쪽이 포기하면 언제라도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시준은 일부러 모른 척 지내오던 것들을 꺼내보여야 할 때가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지하는 시준이 검사를 받기 위해 한차례 병원을 도는 동안 깨어난 것 같았다. 병실에 다시 돌아왔을 땐 간호사가 침대에 앉아 있는 그의 왼손을 치료해주고 있었다. 시준이 흘긋 보니 손톱이 엉망이었다.

시준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지하를 간호사가 꾸짖었다. 그는 그에 굴하지 않고 한달음에 시준에게 달려왔다.

“준아, 준아!”

“어. 손톱 왜 그래?”

“바, 발이, 발이….”

목발을 짚은 시준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은 그는 시준 앞에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만 들이켰다. 그사이 간호사가 지하에게 주의사항을 이야기해주며 병실을 나갔다.

“너 검사받으래.”

시준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곤 그의 침대로 향했다. 목발을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올리려 하자 지하는 그제야 허둥지둥 시준을 따라왔다.

“괘, 괜찮, 괜찮아? 너, 너무, 노, 놀라서, 내, 내가….”

“참 빨리도 묻는다.”

“미, 미안…이, 일어나, 났는데, 어, 없어서, 준이가, 준이가, 어, 없….”

“이건 왜 이래?”

“아….”

앉아서 옆을 보니 침대 옆 협탁 위가 엉망이었다. 컵과 물병 같은 것들이 올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휴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내가, 내가….”

지하는 시준의 말에 허겁지겁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올렸다.

시준은 가만히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두 침대 사이에 있는 공간은 넓었지만 덩치가 덩치다 보니 지하가 웅크려 앉았을 뿐인데도 꽉 차 보였다. 저 큰 몸을 들어 올리느라 구급대원들이 많이 힘들어 보였었는데. 반대로 시준은 본인이 직접 아픈 다리를 이끌고 구급차에 올라탔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시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숨 소리를 듣자마자 지하는 벌떡 상체만 일으키고는 정신없이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 미안, 미안, 준아. 이게, 이게….”

“…….”

정리할 것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그가 만지는 물건들이 계속해서 옆으로 쓰러졌다. 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펴보았다. 지하의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시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협탁 위만 보던 그가 겨우 고개를 돌렸다.

“내, 내가, 내가….”

지하의 눈에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시준의 발을 쓰다듬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 미안…모, 못 봐, 봤어, 내, 내가… 내가….”

“…….”

지하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심하게 더듬거리면서도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시준은 위로의 말 없이 그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 검사를, 준이, 준이, 호, 혼자….”

“내가 엄마, 아빠한테 나 혼자 받아도 된다고 했어.”

“내, 내가, 가, 갔어야…미, 미안, 미안….”

“빨리 검사나 받지?”

“아, 안, 안 받….”

“누나랑 아저씨가 받으라잖아.”

저도 모르게 말끝에 짜증이 묻어났는지 지하가 흠칫 놀라며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 나선 또다시 횡설수설하며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시준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검, 검사…저, 전화, 전화, 내, 내가….”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 안 일어나?”

결국 지하는 시준의 재촉에 억지로 일어나 검사를 받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시준이 간호사에게 물어보라고 했으니 아마 바로 검사실로 향할 것이었다. 지하는 끝까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금방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병실은 2인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호화스러웠다. 입원 자체가 처음인 시준은 한동안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 시준이 이렇게 좋은 곳에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지하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그를 걱정하는 그의 가족 때문이었지만.

그 생각을 하니 시준은 지금 상황이 퍽 우스워졌다. 뭐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준도, 지하도, 멀리서 보면 어른들 손 안이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지하도 이걸 알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상냥하게 대해야 그가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시준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잘만 지었을 표정과 말투가 아니라 속마음이 그대로 나와버렸다. 내일 퇴원해서 집에 돌아가면 진지하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벌써부터 이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자는 척을 했다. 아직 이른 초저녁이었지만 지하가 돌아오는 소리에도 눈을 감고 무시했다. 침대 옆에서 한동안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와, 느린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이마에 와 닿는 머뭇거리는 손길을 느끼며 시준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퇴원 수속은 지하가 부르는 호칭대로라면, 비서 아저씨라는 사람이 도와줬다. 시준도 그의 집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지하는 깁스 때문에 걷는 것이 불편한 시준을 보고 이동하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시준의 뒤를 따랐다. 그는 시준에게 업히라며 등을 내밀기도 했으나 시준은 됐다며 일축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날카롭고 예민했다. 어쩌면 시준의 기분이 그와 같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준은 사고가 났으니 각자의 집에서 쉬라는 가족들의 말에 괜찮다며 거절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지하의 집은 휴식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았다.

“누나, 누나가, 사고, 사고 잘, 잘 처, 처리했대.”

“그래?”

“으, 응. 거, 걱정할 거 어, 없다고.”

“…….”

“마, 많이, 많이 노, 놀랐지.”

지하가 옆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들어댔지만 시준은 단답형의 대답만 들려주었다. 입을 여는 것조차 피곤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집에 가서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 혼자 고민하는 것으로 바빴다.

지하가 말을 멈추자 차 안이 조용해졌다. 시준은 말없이 손을 잡아오는 지하를 무시하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대화의 물꼬는 생각보다 쉽게 트였다. 시준을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선 지하가 시준이 소파에 앉자마자 무릎을 꿇어온 것이다.

그는 시준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듯 매달렸다.

“화, 화, 화를 내주면, 안, 안 될까? 차, 차라리 화를, 화를….”

“무슨 소리야?”

“내가, 내가 잘, 잘못, 잘못했어. 내가….”

시준의 무릎에 이마를 비비며 지하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렇게, 보지 말고, 날, 날 그, 그렇게….”

그렇게 봤다는 것이 어떻게 봤다는 것인지 시준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고개 들어봐.”

시준이 명령처럼 말하자 지하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목소리처럼 눈물이 고여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시준은 지하가 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어느 날처럼 삐죽 올라간 자신의 입꼬리가 느껴졌다. 이번에도 비웃음처럼 보일까. 그러나 그것은 경멸이 섞인 비웃음이 아니었다. 여태 속여왔다는 사실을 숨긴 상대방에 대한 조롱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어디까지 말을 할지 궁금했다.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지, 시준은 그것이 궁금했다.

“내 이름 불러봐.”

“…어?”

“이름.”

“…준이?”

갑자기 이름을 불러보라는 소리에 지하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시준이 왜 그런 요청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원래 이름으로.”

“…김, 시준?”

“성 떼고.”

“시, 준.”

“안 더듬네.”

마지막 말에 그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어떻게 내 이름만 더듬지 않을 수 있지?”

“…….”

“말해봐, 지하야.”

눈앞에 있는 예쁜 얼굴이 마구잡이로 구겨졌다. 화를 내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지하는 갑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고개를 숙이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시준이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뒤이어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면 여기서 토하라고 덧붙였으나 지하는 고개를 급하게 내저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약을 먹은 지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그리 큰 발작은 아닐 거라고 여겼지만 허리까지 숙여가며 저렇게 힘겹게 화장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자니 시준의 마음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손까지 내저어가며 시준이 따라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말리는 지하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시준은 그가 처음 발작을 일으켰을 때를 떠올렸다. 정확한 시기와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쓰러지던 지하의 모습은 선명했다. 그는 처음에 어지럽다는 말을 하다가 속이 울렁거린다고 시준을 붙잡고 매달렸다. 여느 때처럼 관심을 받기 위한 수작으로 알고 그를 내치던 시준은, 이어서 지하가 헛구역질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그가 정말 구토를 했다. 토사물은 시준의 옷으로 쏟아졌고 시준은 질색하며 지하를 밀쳐냈다. 놀라서 욕을 내뱉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지하가 몸을 경련하며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옷에 묻은 역겨운 냄새에 시준은 인상만 잔뜩 찌푸렸었다.

그 후로 지하는 학교에서도 종종 발작을 일으켰다. 화장실까지 미처 가지 못하고 교실에서 토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준은 처음처럼 몸에 더러운 것이 닿을까 봐 그를 밀쳐냈었다.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다가가는 것을 저렇게 격렬하게 거부하는 지하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시준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목발을 손에 쥐고 화장실 근처까지 걸음을 옮겼다. 안에서는 물 내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시준은 세면대에 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서 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하는 시준이 다시 한번 화장실로 가서 살펴보는 것을 고민해볼 때쯤 문밖으로 나왔다. 앞머리가 잔뜩 젖어 있었고 얼굴에 물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시준은 그런 지하를 향해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이리 와.”

“나, 나는, 나는, 준아…아….”

지하가 두서없이 말을 시작하며 상대방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부른 호칭을 깨달았는지 안 그래도 창백했던 얼굴이 핏기 없이 하얘졌다. 그러나 그는 커다란 몸을 덜덜 떨며 도통 움직이질 못했다.

“안 와?”

“아니, 아니…,”

시준이 따지듯 말하자 지하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그 짧은 거리에도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시준이 지켜보았다.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시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대답해야지.”

“나는, 나는, 자, 잘, 모, 몰라…모, 몰라….”

지하는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내젓고는 어느새 오른손을 입가로 옮겨 계속해서 손톱을 깨물었다. 어제의 치료로 손가락에 밴드를 감은 것도 잊은 것 같았다. 시준을 보지 못하는 눈동자는 그가 흔드는 고갯짓처럼 정신없이 흔들렸다.

“모른다고?”

“몰라, 몰라…나, 나는, 모, 모르는…모, 몰라.”

“거짓말하네?”

시준이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묻자 정신없이 움직이던 머리와 눈동자가 한순간에 멈췄다.

지하는 비명처럼 외치며 시준의 무릎에 매달렸다.

“아냐, 아, 아, 아냐, 아냐…!”

울음 섞인 외침은 금세 통곡 소리로 바뀌었다. 그는 꺽꺽대며 시준에게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으….”

“나 그냥 듣지 말고 갈까? 그럴까, 지하야?”

“아…으….”

“여태 연속으로 발작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너 진정되면 다시 올게.”

지하는 시준의 무릎에 이마를 비비며 고개만 내저었다.

“사람이면 입으로 말을 해야지.”

“흐…미, 미안…. 으….”

“일분 안에 그쳐. 듣기 싫어.”

거칠었던 지하의 숨소리가 시준의 말을 끝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숨을 참으라는 게 아니잖아.”

시준은 그가 걱정이 되면서 동시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울음을 그쳐야지 제대로 된 대화라도 할 텐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아서 강수를 뒀더니, 아예 숨 쉴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로 다시 발작이 올까 봐 시준은 억지로 지하의 고개를 들게 하고 손가락을 그의 입안에 집어넣어 입을 벌리게 했다.

“숨 쉬어.”

“윽…. 하으….”

검지 하나만 들어갔던 손가락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나는 동안 지하의 들썩거리던 가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됐어?”

그렇게 말하며 시준이 자신의 손가락을 뺐고, 그 손가락을 지하가 갑자기 낚아챘다.

“뭐야?”

“자, 잡고, 잡고….”

낚아챈 손과 낮은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어서 시준은 네 마음대로 하라며 손가락에 이어 손 전체를 내줬다. 지하는 그게 뭐라고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 연습, 연습을…여, 연습… 이름, 이, 이름, 부, 불러…여, 연습, 했, 했어….”

“연습?”

“준이, 준이 이름, 이, 이름… 이름만…계, 계속, 계속, 벼, 병원에서, 이, 입원….”

“그래서 안 더듬는다고? 말이 돼?”

시준이 황당해서 되물었다.

연습으로 고쳐질 것이었다면 진즉 고쳐졌어야 할 증상이었다. 어렸을 때 지하는 말 더듬는 것을 고치겠다며 매일매일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연습했었다.

“처, 처, 천천히, 천, 천히…마, 말, 말하, 하면, 아, 아주, 처, 처, 천히….”

“지금도 천천히 말하고 있잖아. 나 속이는 거야?”

“아, 아, 아니, 아니….”

또다시 울음이 튀어나오려는지 입술을 꾹 한번 깨문 그는, 잠시 후에 이전보다 더욱 더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기, 긴장…준이, 준이, 아, 앞에, 앞에서는, 자, 잘….”

“봐. 지금도 내 이름만 제대로 말하잖아.”

시준은 의아했다. 그리고 동시에 지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생의 이름은 더듬었으면서, 아무리 이름 끝에 있는 한 글자라고 해도 제 이름만 이런 식으로 멀쩡히 말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준의 말에 지하는 정말 모른다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이제는 잘못했다는 말까지 더듬더듬 내뱉었다. 그 모습에 시준은 그가 말하지 않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한테는 제대로 말할 수 있나 보네.”

“아… 어….”

“그래서 이렇게 비는 거야. 맞아?”

결국 지하는 울음을 터뜨렸다. 흐느끼는 사이사이로 모른다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준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재촉하는 말도 다그치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비는 그를 구경했다. 지하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전처럼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볼을 따라 흐르는 눈물 자국과 콧물 자국은 빈말로도 예쁘다고 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속눈썹 끝에 매달린 눈물방울은 그렇지 않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펄럭일 때마다 방울방울 맺혀 있던 눈물이 똑 하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만 보던 시준은 갑자기 깨달았다. 자신은 정말로, 진심으로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지하의 모든 게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곁을 떠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도 이렇게 붙어 있는 거겠지. 정말로 싫었더라면 가족이든 돈이든 상관 않고 지유의 제안을 덥석 물고 사라졌을 것이다. 애초에 싫은 녀석이 예뻐 보일 까닭이 없었다.

시준이 말이 없을수록 지하의 울음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어느새 몸 전체가 경련하듯 떨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목 끝까지 만족감이 차올랐다. 처음은 아니었다. 이것은 언젠가 느껴보았던 감정이었다. 아주 오래전이었지만 그때도 시준은 진심을 다해 비는 그를 보며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지하는 엎드려 빌고 있었으나 시준에게는 그 모습이 비굴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보라고 해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다 진짜로 발작이 올지도 몰랐기에, 시준은 몸을 더욱 앞으로 내밀며 다른 한 손을 그의 머리 위로 뻗었다.

손끝에 와 닿는 부드러움에 시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 이제 천천히 말해봐.”

* * *

“해, 해본 적이, 그런, 그런 적이, 어, 없어….”

간신히 울음을 그친 지하가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면서도 시준의 왼손을 계속해서 만지작대던 그는, 곧이어 진짜라는 말을 덧붙인 뒤 몸을 숙여 시준의 품에 안겨왔다.

“할 수는 있어?”

“아마, 아마도…천천, 천천히 마, 말하면….”

“지금 해봐.”

“아, 아, 안 돼, 안 돼. 지, 지금은, 자, 잘 아, 안 돼. 저, 정말이야….”

시준이 미심쩍은 눈길로 옆에 앉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하는 더듬으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혼자, 혼자서는, 혼, 혼자 이, 있을 때에는…자, 잘, 잘, 하, 하는….”

“장난해?”

얌전히 들어주자니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지하와 대화하는 상대가 한정되어 있다고는 해도 타인과 전혀 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타인 앞에서 긴장하지 않았다. 시준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 혹은 시준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어떻게든 감추려 하는 지하를 보며 시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소리에 그가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시준은 이번엔 커다랗게 들리도록 다시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그의 등에 손을 둘러 토닥여주었다.

“내일부터 연습해.”

“으, 응.”

“나한테도 똑바로 말해.”

“…으, 응.”

지금도 한 번에 대답하라고 말하고픈 심정이었으나, 시준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었다.

“지하야.”

“으, 응….”

더듬으면서도 대답은 꼬박꼬박 해오는 것이 웃겨서 시준은 피식 웃고 말았다.

“미안.”

그리고 시준은 오랜 시간 하지 못했던 말을 어렵게 꺼내 보였다. 하기 싫어서이기도 했고, 어쩌면 부끄러워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묵은 사과의 말은 생각보다 쉽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너 하나도 안 징그러워.”

시준은 놀라 고개를 드는 지하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크긴 한데 둔하지도 않고.”

“…어….”

“오히려 눈치가 빠르지. 커서 듬직하기도 하고… 그리고….”

귀엽고, 얼굴도 예뻐. 솔직히 내 취향이야.

시준은 지하의 등을 토닥이던 손길을 점점 올려 그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요리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고.”

“아….”

기껏 그친 울음이 다시 터져 나오려 하는지 벌써부터 지하의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놀란 표정을 짓던 얼굴은 어느새 잔뜩 일그러져선 시준이 말을 할 때마다 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준은 그가 그러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듯 그를 칭찬했다.

“똑똑하면 똑똑했지 멍청하지도 않아.”

“나, 나는, 나, 아, 안 작은데… 안, 안 작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가 다시 울먹이는 목소리를 해왔다.

“…그래, 안 작아.”

시준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가 키뿐만 아니라 성기까지 무식하게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안 작은데… 귀, 귀여, 귀여워?”

“귀여워.”

“예, 예뻐?”

“예뻐.”

“고, 공주님, 공주, 공주님, 같아?”

“…….”

하지만 아무리 시준이라도 마지막 물음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공주 소리가 왜 나오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채워서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으…아, 아직, 고, 공주, 공주님….”

“공주…?”

“‘나, 나, 공주, 공주님, 공주님 가, 같다고….”

“뭐?”

지하는 시준이 도통 이해 못할 말만 웅얼거렸다. 중간중간 흐느낌이 섞여 있어서 쉽게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대충 공주 같다고 하길 원하는 것 같아서 시준은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시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번에도 더듬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지하에게 놀리듯 말을 걸었다.

“나보고 이제 씹준이라고 안 하겠네.”

어렸을 적 지금보다 심하게 말을 더듬던 지하는 시준의 이름 중 앞글자만 반복하여 더듬다가 결국 된소리로 ‘씨준’이라고 부르는 일이 빈번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준에게는 그 이름이 마치 욕처럼 들려왔었다.

한창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일부러 그러냐며 싸우기도 했는데.

결국 나중에는 속상해하는 지하가 일부러 시준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자 선심 쓰는 척 이름 끝 자만 부르게 했었다.

“내가, 내가, 어, 언제!”

“너 일부러 그렇게 불렀었잖아.”

“아니, 아니, 아닌데…!”

지하가 눈물까지 그치며 억울하다는 듯이 대꾸해왔지만 시준은 기분 좋게 웃으며 품 안에 있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아, 아니…!”

“그건 그렇고, 지하야.”

시준이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묵혀둔 사과의 말은 자신 역시 받아야 했다.

“넌 뭐 없어?”

“나…?”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지.”

“어…미, 미안….”

“뭐가 미안한데?”

“그냥, 그냥, 다… 다….”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시준은 또다시 비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밖에 카메라 왜 설치했어?”

“아….”

커다란 몸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내 폰 아직도 몰래 보고 있어?”

“…….”

“나한테 사람도 붙였던데. 지금은 같이 사는데도 붙어 있나?”

“…….”

“지하야. 대답해야지.”

물끄러미 웅크린 몸을 내려다본 시준이 혹시나 싶어 그의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는 울 것 같은 그 얼굴 그대로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숨 쉬어, 빨리. 안 쉬어?”

“하, 아….”

마치 숨 쉬는 방법을 지금 기억해낸 사람처럼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들썩거리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해.”

“아….”

“울 생각 말고.”

안 봐줄 거야. 알아들어?

덧붙인 시준의 말에 지하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는지 닫힌 입 안쪽에서 끅끅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시준은 무시한 채 대답을 재촉했다.

“어, 없… 흐… 없어.”

“뭐가 없어?”

“사람, 사람….”

“전엔 있었어?”

망설이는 모습에 시준이 인상을 찌푸리자 지하가 또다시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폰은?”

“안 해, 안, 안 해. 윽… 정말, 정말….”

“이것도 했었고?”

“으….”

“똑바로 대답 안 해?”

대답 대신 다급한 손길로 시준의 허리를 끌어안으려는 그를 시준이 냉정하게 밀쳐냈다.

“예, 옛날, 옛날에….”

“작년이야?”

같이 살고 나서부터 지하는 시준의 휴대폰을 몰래 들여다보는 일이 잦았다. 휴대폰 속 화면을 보느라 시준이 근처에 서서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몰랐다.

지하의 몸이 처음처럼 크게 떨려오고 있었다. 시준이 그런 그를 계속해서 밀어냈지만 그럴 때마다 지하는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시준에게 달라붙어왔다.

“다른 건?”

“없, 없….”

“정말 없어?”

“…….”

“마지막이야.”

“…….”

“지금 말 안 하고 나중에 들키면….”

“하, 할게, 말할게… 으… 제발, 제발…안, 안아, 안아줘…”

“안긴 뭘 안아? 말 안 해?”

시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숨기고 있던 지하를 잘 알았기에 마지막이라는 말까지 하며 그를 몰아붙였다.

간신히 시준의 옷자락을 쥔 지하의 입술이 빨갰다. 자꾸 깨문 탓에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입술에 묻은 피를 발견한 시준이 혀를 찼지만 그뿐이었다.

지하는 꾸역꾸역 울음을 집어삼키고 떠듬떠듬 말했다.

“위치, 추, 적….”

“휴대폰에 깔았잖아.”

“다른, 다른 곳에….”

예상치 못한 말에 시준이 벙찐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휴대폰을 사줄 때마다 위치추적 어플을 설치해놓은 것은 알고 있었어도 그 외에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탓이었다.

“어디?”

황당해하는 시준의 물음에 지하가 머뭇거리며 신발이라고 답해 왔다.

“신발? 무슨 신발?”

“운, 운동화….”

시준이 신고 다니는 신발들은 모두 지하에게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옷보다는 신발에 관심이 더 많은 시준은 그중 하나만 골라서 신고 다니지 않았고, 그래서 매일 신는 신발이 바뀌었다. 그 모든 신발들에 위치추적기가 달려 있느냐고 물으려던 시준은 그 질문 역시 다음날로 미뤄두었다. 집에 있는 신발들을 모두 꺼내 확인해보면 될 일이었다.

“또?”

“없어, 없어… 없어, 지, 진짜야, 어, 없어.”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미, 미안… 미안해…. 믿어, 믿어줘….”

겨우 참아내던 흐느낌이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눈물은 이미 잔뜩 고여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이러는 거 누나도 알아?”

“몰라, 몰라. 누, 누나는 모, 몰라.”

“너네 아빠는?”

지하는 말을 하는 대신 또다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준에게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잠시 눈치를 보던 그가 시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시준을 끌어안았다. 시준은 그런 그를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절박하게 매달려오는 지하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정말로 맞는 건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하지유에게 알려야겠다고 결론을 내리며 시준이 입을 열었다.

“하지하.”

“으, 응.”

“약 다시 먹어.”

“어…?”

“상담도 다시 받고. 필요하면 약을 더 늘리든가.”

언제까지 도돌이표처럼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순 없었다. 시준은 진작에 이래야 했음을 후회했으나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둘은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이었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적어도 시준은 그렇게 여겼다.

그리고 그에 앞서 지하의 도가 넘은 행동은 치료를 통해서라도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시준의 생각이었다.

* * *

‘그냥… 저 좋다는 애들 때린 적은 있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때린 건 아니고요. 뒤에서 미는 정도로… 어렸을 때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제 옆에 오는 애들한테 욕하고 그랬어요. 말을 걸면 갑자기 소리 지르고 그래서… 애들이 깜짝 놀라서 피한 것 같아요.’

‘일부러 아픈 척을 한 적은 있는데, 심하진 않았거든요. 지하가 손톱 자주 깨무니까… 피가 나면 아프다고 보여주고… 계단에서 미끄러진 척하고, 뭐…. 제가 다 알고 혼내니까 안 그러겠다고 했었어요. 진짜 그 이후로는 안 했고요.’

‘제 방에 카메라였나? 설치해도 되냐고 그런 식으로 묻긴 했는데… 제가 잘 말해서 지하가 저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그리고… 좀, 혼잣말을 자주 하고… 제가 없을 때도…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하고…. 그때는 소름이 돋아서… 지하한테 심한 말을 하긴 했어요. 그래도 제가 나중에 놀라서 그랬다고 사과도 했고, 지하도 다신 그런 거 안 하겠다고도 했어요.’

생각보다 심각했던 자해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그는 보호자인 그의 아버지와 누나의 의견대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자해가 아닌 영양실조가 그 이유였다.

다리에 난 상처를 치료하며 알게 된 큰 키에 터무니없이 마른 몸은 그의 가족을 충격에 빠트렸고, 그건 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짝 마른 그의 몸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시준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변화를 매일같이 만나는 시준이 몰랐다는 것과 가족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그동안 아주 작은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된 후 급격하게 살이 빠진 듯했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받았던 신체검사 결과뿐만이 아니었다. 시준은 그 해에 지하의 덩치를 문제 삼는 말들을 유독 자주 입에 올리기 시작했었다.

‘비교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성장기가 늦게 와서… 지하는 반대로 너무 빨리 왔고. 붙어 다니면 키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걸 보고 반 애들이 놀리기도 했거든요.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계속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게 옆에 서 있지 말라고도 하고요….’

시준은 실제로 자신이 했던 말들을 지유에게 전하진 않았다. 차마 그러질 못했다. 비난받을 일인 줄 알았기에 최대한 돌려 말하면서 피하기에 급급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런 시준의 말 하나하나를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으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그녀의 눈빛은 시준을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나중에 듣기로 지하는 섭식장애와 공황장애 비슷한 것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밖에도 다른 병명이 많은 것 같았지만 어른들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지하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력한 끝에 겨우 정상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발작은 시준의 도움 없이는 쉽게 그치질 못했다. 결국 그는 시준이 생활 반경을 최대한 줄이고 나서야 발작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약을 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시준이 그에게 맞춰준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있어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뿐인데, 결과는 이렇듯 엉망이었다.

“이번에도 봐. 너 사고 났을 때 또 발작했잖아.”

“그건, 그건….”

“놀라서 그랬다는 말 하지 마. 넌 내 보호자 역할도 제대로 못한 거야.”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그저 울기만 하는 사람은 시준에게 필요 없었다. 시준이 원하는 것은 그 고통을 없애주거나 혹은 고통의 원인을 해결해주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시준은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고, 또한 애정을 느낀 상대에게 그만큼의 믿음을 주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여겼다.

“나 사고 나면 또 그렇게 쓰러질래?”

“그, 그런 일은… 없….”

“어떻게 확신해? 어제처럼 같이 있다가 나 차에 치여서 목숨 위험해지면? 또 정신 놓을 거야?”

가끔씩 시준은 지하가 둘이 처음 만난 그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애초에 시준과 만나게 된 계기가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 했던 그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지하는 다른 사람을 비롯하여 가족들 역시 둘 사이에서 배제하고 싶어 했다.

시준은 자신의 허리춤을 붙들고 덜덜 떨기만 하고 있는 지하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너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지하가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시준은 그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처럼 울기만 하지,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것 같아. 나랑 사귀는 사이라며? 그럼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서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한테 보여줘야 하는 거 아냐? 넌 나한테 숨기는 것밖에 못해?”

“나, 나는….”

“이번 한 번만 믿어줄게. 두 번은 없어.”

시준은 손가락을 들어 엉망으로 일그러진 지하의 얼굴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나 대학 가면 지금이랑은 많이 다를 거야.”

공부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준의 노력이었으며, 좋은 대학은 남들 사이에서 뛰어나 보이기 위한 시준의 욕심이었다. 어쩌면 허영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 역시 모두 타인이 존재해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시준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대학 가서도 내가 다른 사람이랑 말했다고 울래?”

시준은 그렇게 말하곤 눈물로 잔뜩 번진 얼굴을 품에 안고 토닥여줬다. 그러자 그가 시준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몸을 밀착해왔다. 밀쳐오는 힘이 워낙 세서 시준은 자연스레 소파 위에 누운 자세가 되었다.

“야, 발, 내 발!”

“아, 미, 미안. 미안.”

시준의 위로 올라타 어깨에 얼굴을 비비던 지하가 깜짝 놀라 소파 아래로 내려갔다. 밀쳐지면서 시준의 다친 발이 불편한 자세로 소파에 걸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 다친 거 안 보여?”

“으…. 미안….”

어깨를 움츠리며 잔뜩 기죽은 모양을 한 지하가 느리게 사과를 해왔다. 여태 자신이 한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건지 의심이 갔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불러 가까이 오게 했다.

“이리 와.”

시준이 불편한 다리를 바닥에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친 발만 아니었다면 계속 누워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시준은 말을 하는 것에도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소파에 기대앉은 시준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주저앉았다. 그는 시준의 한쪽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는 흐느껴 울었다. 뭐라고 중얼대며 말하는 것 같았는데 발음이 뭉개져서 제대로 들리질 않았다.

“아, 축축하잖아.”

계속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시준의 바지 한쪽이 젖어 들어갔다. 시준은 짜증을 내며 지하의 턱을 쥐고 고개를 들게 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참 간단했다.

시준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고정시킨 뒤 곧바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눈을 감지 않고 하는 키스는 평소와 달랐다. 얼떨떨하게 시준을 바라보던 지하가 결국 동공이 풀어지며 눈을 감고 키스에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시준은 혀로 피 맛이 느껴지는 입술을 할짝대다가 천천히 그의 입속을 오가며 입천장을 달래듯 쓸어내렸다. 그러는 동안 지하의 들썩거림이 멈추었다.

시준은 잠시 입술을 떼고 지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멈춘 키스에 지하가 눈물방울이 매달린 속눈썹을 깜빡이며 눈을 떴다.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울지?”

“무, 무슨, 무슨….”

그러고 보니 지하는 표정도 꽤나 다양해졌다. 어쩔 땐 놀라다가도 수줍게 웃었고, 이렇게 충격을 받은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하다가 아예 표정을 없애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시준은 늘 비굴한 웃음을 짓던 그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역시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 있을 텐데 너무 무시한 건가 싶다가도 자신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준은 혼자 투덜대는 것처럼 지하에게 중얼거렸다.

“넌 이제 내가 헤어지자고 할 때만 울어.”

“헤, 헤어지자니, 어, 어떻게…그, 그런 마, 말을….”

“…울지 말란 소리 아냐. 너 나랑 헤어지고 싶어? 그래서 그래?”

시준은 지하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쑥 그에게 다가가 키스했다. 까칠해 보이는 입술이 안타까웠다. 그냥 아까 깨물지 말라고 말릴 걸 그랬다고, 시준은 유일하게 그것 하나만을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

“카, 카메라는, 내가, 내가, 어, 없을 때…보, 보려고.”

“뭘 봐?”

“준이, 준이… 밖에 나가, 나가는지….”

“세우지 말랬지?”

“미, 미안….”

시준은 거실 소파에 푹 파묻힌 채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지하가 하는 말을 들었다. 변명과도 같은 말들은 모두 그의 집착과 연결되었다.

지하는 시준의 요청대로 옷을 모두 벗고 그 옆에 앉아 시준의 손에 성기를 내주고 있었다. 말캉한 게 만지고 싶어서 벗으랬는데 자꾸 세워대는 지하 때문에 시준이 짜증을 내며 잔소리를 했다.

“왜 자꾸 세워?”

“만… 만지니까….”

그가 억울한 목소리로 대꾸해왔지만 시준은 무시하고 손에 힘을 주었다.

“윽…!”

“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뭐야?”

“미, 미, 미안….”

“미안! 따라 해, 미, 안!”

“미이…아안….”

“잘했어.”

시준은 그의 등을 토닥이며 칭찬하는 대신 성기를 붙잡고 위아래로 문질러주었다.

“아…준아, 그만, 그, 그만….”

“그, 만!”

“그, 그…마…나, 나중에, 하면, 하면 안, 안 돼?”

“나중은 무슨. 사진은?”

“사, 사진?”

“나한테 사람 붙였다며.”

“아…. 그…게… 같이, 같이 사, 살기 전에는… 으…궁, 궁금해서….”

“뭐가?”

“나, 나랑…내, 내가 어, 없을 때, 어, 어떻게…지, 지내는지….”

“흐음.”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대답에 시준이 콱 하고 손에 든 물건을 쥐어짜듯 비틀었다.

“아파, 아, 아파!”

“아프라고 한 건데? 아프다면서 줄어들지도 않네.”

손바닥에 끈적한 액체를 묻히고 상대방의 성기를 조물딱거리는 게 자신이 보기에도 변태 같았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섹스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섹스를 하고 나니 침대 위에선 이 정도쯤이야 변태 수준에 끼지도 않았다.

“또 그럴 거야?”

“아니, 아니…안 그래, 아….”

“내가 믿어도 되겠어?”

“으…미, 믿어. 자,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

“…….”

“몰라?”

“아, 아냐, 알아, 알아….”

대답을 제때 못하는 걸 보고 있자니 시준은 아직 갈 길이 먼 것을 느꼈다. 사생활 침해라는 말을 알기나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준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들을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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