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4. 인내 (4/10)

4. 인내

“준아, 준아. 이, 이거.”

“…….”

“커, 커플.”

시준은 구겨지려는 미간을 억지로 펴며 지하에게 물었다.

“…그게 뭐야?”

“며, 명찰.”

“…….”

“커, 커플, 며, 명찰”

“이걸… 설마 달고 다니라는 건 아니지?”

“아, 아니야. 기, 기념으로.”

지하가 보여준 파란색 명찰에는 하얀 글씨로 [시준♥지하]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똑같은 두 개의 명찰 중 하나를 시준에게 건네주며 가방에 달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

시준은 간신히 목 끝까지 올라오려는 잔소리를 참아냈다.

커플. 지하는 요즘 그 ‘커플’이라는 단어에 푹 빠져 있었다. 세상에 있는 온갖 커플 아이템들을 수집할 생각인지 뭐만 하면 커플, 커플거리면서 이상한 것들을 주워 모았다.

어차피 사귀기 전에도 옷이나 신발 등을 똑같은 브랜드와 제품으로 이용했기에 지하가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그저 들떠서 그런 거겠거니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시준에게 잘 쓰지도 않는 휴대폰 케이스를 선물하고, 휴대폰 배경화면을 바꿔달라고 부탁하질 않나, 심지어는 일주일 만에 반지까지 사다 바쳤다.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반지를 시준의 손에 끼워주면서 지하는 급하게 사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맞춤으로 미리 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반지는 시준의 손가락에 무섭도록 잘 들어맞았다. 아무리 참고 넘어가보려 해도 똑같은 반지를 평소에 끼고 다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시준은 좋은 말로 거절하려 했으나, 서로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지하를 보고 나니 그럴 생각도 사라졌다.

대충 우정 반지라고 우기면 되겠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시준은 합리화했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지하는 원래도 똑같았던 가방과 지갑, 양말 등을 보고 우린 커플이라며 노래를 불러댔다.

그렇게 커플 타령을 할 거면 커플짓이나 할 것이지.

하지하는 때와 장소를 가리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처럼 시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왔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집과 방에서는 거리낌이 없었지만 학교나 밖에서는 시준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한 발짝 떨어져서 걸었다. 사귀기 전에는 잔뜩 행했던 성적인 접촉이, 막상 사귀고 난 후에는 키스뿐이었다.

그는 몸부터 들이댄다는 시준의 말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시준이 자연스럽게 그의 아래에 손을 대면 나중에, 라는 말로 몸을 뒤로 뺐다. 처음에야 그 모습이 신선해서 같이 어울려줬지만 벌써 마지막으로 한 지 일주일이 넘어갔다. 굳이 삽입까지 가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가벼운 손장난 정도는 먼저 하고 싶을 만큼, 시준은 지금 욕구불만 상태였다.

시준은 선물해줘서 고맙다는 핑계로 수줍어하는 지하에게 입을 맞췄다. 마치 베이비 키스처럼 쪽쪽, 입술만 빨다가 아예 몸까지 일으켜 상대방 위로 올라탔다. 시준과 똑같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지하는 갑자기 다가오는 무게감을 익숙한 듯 받아내고는 입을 벌렸다.

“침대로 갈까?”

한참 동안 질척하게 서로의 입속을 혀로 오가다가 불편한 자세 때문에 시준이 먼저 물었지만, 역시나 그는 나중에라는 말로 입술을 떼며 시준을 밀어냈다.

“고, 공부하자.”

“…나 오늘 자고 갈 생각으로 왔는데.”

“어…? 자, 자고 가?”

“응.”

지하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시준의 허리를 잡은 손을 슬쩍 떼다가 다시 깊게 휘감아 품에 안았다. 눈동자는 이미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이었다. 시준은 그런 지하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일부러 장난치듯 가볍게 몸을 흔들어 그에게 기댔다.

사귀고 난 뒤로 시준이 지하의 방에서 잔 적은 없었다. 그는 예전과 달리 얼른 집에 가라며 시준의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그리고 집 앞까지 시준을 데려다주고는, 시준이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시준이 정말로 집에 가기 위해 몸을 돌리면 시준을 붙잡고는 이대로 가긴 아쉬우니 산책이나 하자고 말을 꺼내는 것이다. 지하는 한두 시간씩 시준과 아파트 주변 산책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이제 정말로 가보겠다며 아쉬운 듯이 시준을 계속해서 끌어안았다.

시준은 그럴 때마다 이대로라면 주변에 둘이 사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지하와 같이 따라온 운전기사부터가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전부터 워낙에 유별난 행동을 자주 하던 지하 덕분에 갑자기 그런 의심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걱정이 아예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싫어?”

“…아, 아니.”

“그럼 할까?”

시준이 기댄 몸을 더 기울여 지하의 머리에 뺨을 문대며 말하자, 그가 품에 시준을 안은 채로 벌떡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이미 맞닿은 몸에서 잔뜩 성난 성기를 느낀 시준은 혼자 키득키득 웃으며 눈앞에 있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 * *

시준은 누워 있는 지하의 몸 위로 엎드려 숨을 골랐다. 입고 있던 옷이 침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급하게 서로에게 달려드느라 처음에는 둘 다 바지만 벗었지만, 한 번 가고 난 뒤 두 번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몸을 맞대고 비볐다.

지하는 시준의 온몸을 물고 빨았다. 가슴부터 배꼽, 성기를 지나 발가락까지 그의 입술이 모두 차지했다. 유일하게 닿지 않은 곳이 한군데 있긴 했다. 시준은 축 처진 몸으로도 그 사실이 찜찜해서 지하를 쳐다보았다. 지하는 그의 몸을 침대 삼아 누운 시준이 무겁지도 않은지 품 안에 가두고 입술과 볼에 키스를 퍼부었다.

원래 시준도 삽입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나중에야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좋다고 해도, 처음 들어갈 때는 고통이 어마어마했고 후유증도 너무 컸다. 그래서 만약 지하가 뒤를 만지려 하면 바로 멈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준의 엉덩이만 주무를 뿐 그 안으로 손가락을 넣지도 않았고, 입술을 가져다 대지도 않았다.

삽입했을 때 딱 한 번뿐이라고 말한 건 시준이었다. 그래도 전혀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지하가 맞닿은 가슴 사이로 슬금슬금 손을 집어넣어 시준의 유두 쪽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뒤까지 가려워지고 있었다.

“음….”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시준의 입에서 나가자마자 지하가 몸을 일으켰고, 순식간에 자세가 바뀌어 시준이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다. 지하는 누워 있는 시준의 입술에 정신없이 키스하며 두 손으로 유두를 꼬집고 손톱으로 긁어댔다. 숨이 모자라 헐떡이면서도 키스를 받아내던 시준은, 점점 더 간지러워는 느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지하의 손을 잡아 다리 사이를 문지르게 했다.

“흣, 나, 여기… 여기, 손가락으로 해줘….”

시준의 손길에 지하가 멈칫하며 몸을 굳히자 시준은 계속 해달라며 칭얼거렸다. 뱃속이 깃털로 가득 찬 것 마냥 간지러워지고 있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시준의 허리가 저절로 움찔거렸다. 지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눈앞이 흐려서 보이질 않았다. 다만 몽롱한 기분으로도 뒤쪽으로 급하게 와닿는 축축하면서도 말캉한 것이 지하의 혀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허리가 접히고, 다리가 지하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입구를 적시던 혀가 그 안으로 파고들자, 시준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시트만 쥐어뜯었다.

“아으, 읏….”

쭙쭙 빨아대는 소리가 끝나고 딱딱한 무언가가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삽입되었다. 질척한 구멍은 생각보다 쉽게 문을 열어주었고, 시준은 손가락이 금세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걸 알았다.

“아, 좋…아, 아!”

하지하는 푹, 푹 손가락을 시준의 안으로 쑤셔 넣었다 빼는 걸 반복하다가, 곧 깊숙이 파묻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구부려 내벽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시준이 느끼는 지점이었다.

“지하, 읏, 아으!”

시준은 자신이 뭐라고 외치는지도 모르는 채 소리를 질렀다. 허공에 떠 있는 다리는 계속해서 버둥거렸고, 침대 시트를 쥐고 있던 손은 어느새 하지하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안쪽을 헤집던 움직임도 같이 멈추었다.

“하아, 하아.”

하얗게 물들었던 시야가 돌아오고 눈에 보인 건 시준의 성기를 물고 있는 지하였다. 그는 눈을 감고 쪽쪽거리며 시준의 성기를 빨고 있었다. 시준은 몸을 부들거렸다. 흘러나오는 정액을 지하가 입으로 받아 마시는 감각이 몸서리치게 좋았다.

혀로 기둥까지 쓱쓱 핥고 조심스럽게 뒤에서 손가락까지 빼낸 그가 느릿느릿 시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준아…조, 좋았어?”

“…….”

시준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 다행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숙여 코끝으로 시준의 코를 간지럽혔다.

“부, 부드러워.”

아무래도 냄새가 날까 봐 키스를 안 하는 것 같았다. 시준은 지하가 입으로 해줄 때마다 양치를 하고 오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비릿한 향은 기억하기로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시준은 그대로 입술을 내밀어 그에게 키스했다. 잠시 놀라는 듯하던 그는 또다시 잡아먹을 것처럼 응해오기 시작했다. 시준은 문득 배에 찐득한 액체가 흐르는 느낌에 눈을 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짝 서 있는 지하의 것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시준의 가슴에서 배꼽 사이에 고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시준은 뒤가 다시 간지러워졌다. 뒤뿐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휘저었던 안쪽까지 자글자글 끓기 시작했다. 이 느낌을 없애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시준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고 그걸 실천해줄 사람도 눈앞에 있었다. 기억 속 아픔을 잠시 잊은 채로, 시준이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넣자.”

“어?”

“지금, 지금 네 거 넣어줘.”

당연히 말하면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던 시준은 망설이는 지하를 보고 의아해졌다. 그는 키스도 멈춘 채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 손가락, 으로 하, 하면….”

“…네 거 넣으라니까?”

“그, 그건… 준이 아, 아파.”

“안 아파. 아파도 곧 잊을 거야.”

“아, 아, 안 돼.”

“…진심이야?”

시준이 황당함에 되물었다. 떠먹으라고 밥상까지 차려줬는데 그걸 마다하고 있는 그를 보자니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아, 안 돼. 위, 위험해. 다, 다른 걸로 기, 기분 좋게 해, 해줄게.”

“위험하다고?”

“너무, 너무 아파.”

“내가 아프지 네가 아파?”

“그, 그래서 더, 아, 안 돼.”

“내가 괜찮다니까?”

시준은 목소리까지 깔며 단호하게 안 된다고 내뱉는 그 말에 몸을 일으켰다.

“아니, 내가 진짜… 너 정말 싫어?”

“아, 아까처럼 내, 내가 해, 해줄게.”

“…손가락 말고 네 좆 넣으라고.”

“아, 안 돼.”

“안 된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두, 둘 다….”

“웃기고 있네.”

이렇게 세웠으면서 싫긴 뭐가 싫어.

그렇게 말할 생각으로 하지하의 좆을 잡아챈 시준이, 순식간에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래를 노려보았다. 손안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어야 할 지하의 것이 말랑해졌기 때문이다.

“너… 발기부전이야?”

분명 조금 전까지 배 위로 바짝 서서 물까지 흘려대는 걸 봤는데, 잠깐 사이에 지하의 성기는 물렁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새 시들었나 싶어서 시준이 양손으로 열심히 조물딱거리자 또 금방 커졌다.

그럼 그렇지. 시준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 아냐. 그, 그런 거 아냐.”

시준이 그 말을 무시하며 처음처럼 커진 그의 것을 잡고 앞으로 당기자 지하가 힘없이 따라왔다.

내리 두 번을 쌌으니 지칠 만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진 걸지도 몰랐다. 지하는 시준과 사귀고 나서도 여전히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시준이 입었던 옷을 베개에 뒤집어씌우고 끌어안으면 잠이 잘 온다고 했지만 시준이 보기엔 아니었다. 지하는 시준이 그의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들었던 이후부터 혼자서는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수면이 부족하면 몸에 힘이 없고, 발기가 잘 안 될 수도 있었다.

그럴듯한 생각으로 지하 대신 변명을 해주며, 시준은 그의 것이 작아지기 전에 귀두부터 입구에 가져다 대려 했다. 안에 넣으면 지난번처럼 더 커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구멍에 닿자마자 성기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었고, 그걸 본 시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일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시준은 아무리 세워도 다시 작아지는 게 얄미워 지하의 것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내심 이렇게 하면 다시 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쯤은 있었다.

“윽. 아, 아파, 준아….”

“…….”

그러나 그는 두 손을 모아 앞을 가리며 우물쭈물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달콤했던 분위기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시준은 무릎을 꿇고 앉은 지하에게서 몸을 돌려 뒤로 털썩 누워버렸다.

“말해.”

“으, 응?”

“왜 그러는지 말해.”

“나, 나도 모, 몰라….”

성기는 쉽게 발기했지만 구멍에만 닿으면 자꾸 풀이 죽었다. 그건 안으로 들어가기 싫다는 지하의 의사 표현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준은 정말로 인정하기 싫었지만, 뒤로만 갔을 때보다도 더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해졌다. 너무 좋다고 했으면서 왜 삽입이 싫은 건지를. 정말로 아파해서 그렇다기엔 시준은 괜찮다고 말했으며, 그 말에도 그는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싫어?”

“아, 아, 아냐!”

“그럼 왜 그래?”

“그, 그게….”

“넌 내가 싫어진 거야?”

“아, 아냐, 준아, 저, 절대, 그, 그런 게….”

“내가 욕하고, 무시하고, 그래서… 좋다고 고백한 다음에 이렇게 복수하는 거지.”

시준은 천장을 보며 일부러 상처 입은 것처럼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이유를 듣기 위해 되는 대로 지껄인 거였지만 말을 하다 보니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시준의 기분은 더욱 바닥을 쳤다.

“나, 나는….”

지하가 걸려들었는지 슬슬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 무, 무서워서….”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의 내용은, 요즘 계속 그랬듯이 시준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준이가… 준이가 너, 너무 아, 아파서….”

“…….”

“그, 그래서….”

“…말해.”

“그, 그만하자고 하, 할까 봐.”

“…….”

“헤, 헤어지자고 하, 할까 봐.”

“……”

“무, 무서워.”

아.

시준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연한 기분으로 하지하가 더듬더듬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결국은 그의 첫 경험이 그 이유였다. 시준은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씨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섹스를 했고, 시준이 아파했고, 그 뒤에 시준이 그만하자고 그에게 말했다. 시준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유를 모르는 지하는 시준이 아파서 싫었던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씨발, 어떻게 그렇게 확 죽어버릴 수가 있지?

후회는 잠시뿐이었다. 시준은 억울함을 지나 이젠 화까지 나려 했다. 분명 할 때 자지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도 지하가 그딴 생각으로 신체에 변화를 주었다는 게 억울했고, 시준이 다시 넣고 싶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시준은 벌떡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갔다. 뒤에서 지하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 하며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주워들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식어버린 분위기 속에서도 안쪽은 여전히 간지러웠고, 이러다가는 그러지 않을 테니 제발 좀 넣어달라고 그에게 매달릴지도 몰랐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속을 애써 달래며 옷을 입는 중에 갑자기 뒤에서 시준의 팔을 잡아당겨 왔다.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시준은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 왜….”

그러나 불안한 목소리로 왜 그러냐고 묻기만 하는 걸 듣고 있자니 참고 있던 것이 왈칵 튀어나와 버렸다.

“너는, 씨발, 헤어지자고 하면 붙잡을 생각부터 해야지, 뭐?”

말하면서도 속이 홧홧 해지는 기분에 시준은 휙 몸을 돌려 지하를 노려보았다. 지하는 그 특유의 맹한 눈빛으로 눈만 동그랗게 떠서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서워?”

“…어….”

“그만두자고 할까 봐 무섭다고?”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여기서 그만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입을 멈추지 못했다.

“네가 뒷구멍에 다른 사람 좆 쑤셔 넣고 뒤로만 가봤어?”

“…….”

“너무 좋아서 무서운데… 아픈데도 하고 싶어서 하자고 했더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시준은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개새끼. 하지하가 정말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면 그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시준은 눈가로 열이 몰리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여 옷을 마저 입고 빠른 속도로 문을 향해 걸었다. 이름을 부르며 쫓아오려는 지하에게는 옷부터 입으라며 보지도 않고 말한 후 방을 나섰다.

시준은 뛰듯이 계단을 내려가 현관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운전기사는 차를 닦으며 대기 중이었다. 시준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곤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백미러를 통해 지하가 현관문 밖으로 허겁지겁 나오는 것이 보였다. 옷은 잔뜩 구겨진 채로, 맨발로 뛰어오려 하고 있었다.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다행히 그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운전기사는 시준의 말에 속도를 높여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차는 이미 큰길로 들어섰고 더 이상 지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준은 백미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지하가 길가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 * *

“자고 온다더니?”

“몰라.”

“둘이 또 싸웠어?”

“아, 좀! 그런 거 아니라고.”

집에 도착하니 시준의 엄마가 막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잔소리를 내뱉는 엄마를 피해 시준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향했다. 아직도 뱃속이 끓어올라 찬물로 샤워라도 할 생각이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면 머릿속도 시원해질 것 같았다.

“엄마 오늘 늦을 텐데. 아빠랑 모임 있어서. 미리 말 좀 해주지. 너 지하 네서 잔다니까 시운이도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길래 그러라고 했지. 저녁 안 하려구.”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와.”

“챙겨 먹어! 엄마 간다!”

알겠다고 대답하며 시준은 욕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바깥이 조용해졌다. 시준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뿌리며 휴대폰이라도 가져와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연락이 오는 걸 지켜봤어야 했는데. 평소에 휴대폰을 손에 쥐고 사는 타입이 아니라 늘 시준의 휴대폰은 지하가 챙기곤 했었다.

찬물을 맞고 서 있으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평생 그러고 살라지. 무서워하고 눈치나 보면서.

짜증 나.

시준은 샤워기를 끄고 급하게 욕실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았다. 아무리 욕을 해봐도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를 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고 여기면서도 하지하가 맨발로 집까지 뛰어올 것만 같았고, 시준은 어느새 그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신, 멍청이.

하지하는 이번 일로 또다시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몰랐다.

시준은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욕을 내뱉으며 옷을 입으려 했다. 갑자기 울리는 도어록 비밀번호 소리만 아니면 그랬을 것이다. 시준은 그대로 몸을 굳히고 멈춰 섰다.

곧이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준아!”

하고 외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는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시준을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 무렵, 욕실 앞에서 가만히 굳어 있던 시준의 눈앞으로 지하가 나타났다. 그는 그대로 달려와 시준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계속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시준은 이상하게도 지하가 그렇게 말하니까 미안할 만한 짓을 하긴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쓸데없는 일에도 눈치를 보며 사과를 할 땐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좀 더 잘못했다고 빌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마주 안은 몸은 초겨울로 접어드는 날씨에도 얇은 셔츠 한 장만 입은 채 땀을 흘리고 있었고, 흘긋 내려다본 그의 발은 시커멨다.

시준은 그게 보기 싫어 계속 붙어 있으려는 그를 떼어내고 욕실로 밀어 넣었다.

“태, 택시를, 타, 타려고, 해, 했거든.”

그런데 택시가 없어서 결국 다시 돌아온 기사 아저씨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지하가 말했다.

“아저씨가 신발 안 신었다고 말 안 해줬어?”

“그, 그랬, 그랬나….”

못 들었어.

그는 작게 중얼거리고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시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시준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으로 지하가 씻는 걸 지켜보았다. 발에 상처라도 있나 보려 했더니 지하는 괜찮다며 바로 욕조 안으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틀었다. 그리고 말하는 내내 이런 식으로 시준을 훔쳐보는 것이다.

안 보는 척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아래는 옷을 벗을 때부터 완전히 발기한 상태였다. 최대한 들키지 않게 하겠다고 몸을 돌려 씻고 있었으나 시준이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찬물로 인해 몸이 차가웠는데 지하가 뜨거운 물로 씻으며 욕실에 김이 서려서인지 슬슬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시준은 눈앞에 보이는 엉덩이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펼치고 콱 움켜쥐니 움찔하며 손에 잡힌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시준은 손에 감기는 말캉한 살을 주무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늘 집에 아무도 없는데.”

“아….”

“부모님 늦게 오신대.”

“…….”

“김시운은 친구네 놀러 가고.”

“…….”

“그냥, 그렇다고.”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기도 하고 꼬집다가, 손바닥으로 하지하의 엉덩이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상대방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 씻었어?”

“…아, 아니.”

“그럼 마저 씻고 와.”

필사적이기까지 한 그 모습에 시준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하지하는 계속 참고 있었다. 시준이 엉덩이를 만질 때에도 그저 씻기만 했다. 시준은 방에 가서 기다릴 생각으로 몸을 일으켜 욕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보며 입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중에 욕실 문이 다시 열리고 지하가 튀어나왔다.

“준아!”

“왜?”

“가, 가지 마.”

물기도 닦지 않은 몸으로 그는 다시 시준을 끌어안았다.

“자, 잘못했어.”

“나 방에 가려는 건데?”

“미, 미, 미안해.”

“…….”

몸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 수건으로 닦으라고 말하려던 시준은, 생각을 바꾸어 지하의 등 뒤로 두 팔을 두르고 마주 안았다.

“…방으로 갈까?”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시준은 눈앞에 있는 몸을 더욱 깊게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어떻게 방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욕실 앞에서부터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키스를 하다가 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 시준이 자는 침대는 두 명이 굴러다닐 정도로 넓지 않았다. 결국 지하는 시준의 위로 올라타 거친 손길로 시준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유난히 가슴 쪽을 집요하게 꼬집던 그는 곧 얼굴을 내려 뒤를 핥았다. 할짝이는 소리와 함께 입술과 혀로 입구를 축이면서 두 손은 시준의 엉덩이를 받치고 계속해서 주물렀다. 시준은 침대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그런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집어넣었다.

본격적으로 안을 넓히려는 건지 손가락이 하나, 둘씩 늘어났고 중간중간 혀가 파고들기도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쯤 시준이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당겨 위로 올라오게 했다.

마주한 지하의 두 눈이 풀려 있었다. 그래도 시준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도 하지하는 이런 눈을 하고 있었다. 시준은 시선을 돌려 다리 사이에 있는 지하의 성기를 보았다. 배꼽에 닿을 것처럼 앞뒤로 꺼떡이고 있는 것이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참기 힘들어 보였다. 시준이 조심스럽게 허리에 다리를 감자 그의 성기에서 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제 넣으면 안 돼?”

“하아, 하아…아, 아직 더….”

“우선 뒤에 문지르기만 해봐.”

또 작아질지 모르니까.

뒷말을 삼키며 시준이 말하자 지하가 상체를 위로 더 들고 하체를 밀착시켰다. 아래를 흘긋 보니 지하가 한 손으로 그의 성기를 쥐고 구멍에 대고 있었다.

시준은 잠시 고민했다. 작아지기 전에 처음처럼 잡아채어 넣을까 하다가 혹시 몰라서 그만두기로 했다. 잡아채는 순간 쪼그라들지도 몰랐다. 시준은 다리를 올려 아예 그의 어깨에 걸치게 하곤 두터운 몸이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앞에만… 지하야, 앞에 조금만 넣자, 응?”

“으, 응.”

앞부분만 넣으면 아프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개소리 같은 말을 지껄이며 시준은 정신이 없어 보이는 지하를 달랬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맺혀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 부드러우면서도 뭉툭한 것이 와 닿았다. 잠시 주변을 문지르는 그것은 더 이상 크기를 줄이지 않았다.

“지금, 지금!”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시준이 지하의 어깨를 짚으며 급하게 재촉했다. 아주 잠깐 망설이는 듯하던 지하는 잡고 있던 성기 앞부분을 조심스럽게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읏!”

시준의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처음 할 때는 죽을 것만 같았는데, 어쩐지 지금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잔뜩 벌어진 좁은 구멍 안으로 지하의 커다란 귀두가 파고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안쪽을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금방이라도 갈 것 같은 느낌을 겨우 참아내고 시준이 다시 지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나머지 한 손으로 시준의 손을 맞잡아 왔다. 지하의 몸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힘겹게 참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더….”

“괘, 괜찮아?”

“괜찮으니까, 빨리….”

그 말에 지하는 성기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시준의 얼굴 옆에 손바닥을 대고 팔을 세웠다. 그리고 시준의 안으로 푹 한 번에 파고들었다.

“흐으….”

이번에는 조금 버거운 느낌에 시준이 눈을 감았다. 귀두가 제일 두꺼울 줄 알았는데 기둥도 만만치 않게 굵어서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갔다.

“준아, 빼, 뺄까?”

“아냐, 아냐.”

걱정스럽게 묻는 소리에 번쩍 눈을 뜬 시준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반 정도 안으로 사라진 지하의 성기가 시준의 배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안에서 움직이질 않아서 그런지 사라지질 않고 그대로 있었다. 시준은 손을 들어 불룩한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분명 처음 넣었을 때는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다며 무서워했었는데. 지금은 그 불룩한 배를 보고는 작아지지 않았다며 안심하는 제 모습이 웃겼다.

“흣!”

시준이 웃자 배에 힘이 들어갔는지 지하가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조인 듯했다.

지하는 계속 몸을 떨면서도 시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풀려 있던 그의 눈이 이제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왠지 지하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느껴지는 건 시준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기억나?”

시준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매달고 그의 목뒤로 두 팔을 둘렀다.

“네가 여기서 내 거 빨아줬잖아.”

“아….”

“난 네 거 손으로 만져주고.”

“…읏.”

“그런데 지금은 네가 나한테 넣고 있네.”

너무 좋아, 지하야.

지하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단번에 성기를 쑤셔 넣었다.

“아! 읏, 응!”

천천히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시준은 제대로 된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그저 마주 안은 지하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정신없이 소리만 내질렀다. 아래로는 지하가 그동안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내던지고 거칠게 쑤셔 박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안에 한 번 싸서 그런지 정액이 뒤를 타고 흐르는 것까지 예민하게 느껴졌다.

시준은 한 번에 느끼는 지점까지 박아오는 감각을 견디지 못하고 지하의 것을 넣자마자 바로 가버렸다. 그리고 그걸 본 지하가 뒤이어 곧바로 안에 넣은 채로 사정했고, 그 뒤로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그는 시준이 사정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아래를 세우더니 빠른 속도로 구멍 안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지하, 흣, 아, 아!”

연속으로 찾아오는 쾌감에 시준은 눈앞에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낮부터 자글자글 끓고 있던 뱃속이 드디어 원하던 걸 얻었는지 성기를 물고 놔주질 않았다. 지하가 빼려 하면 나가지 못하게 구멍을 조였고, 안으로 들어올 때면 더 깊이 들어오라며 몸에 힘을 풀고 그를 반겼다. 안쪽이 빠듯하게 채워졌지만 퍽퍽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윤활제라도 바른 것처럼 박아올 때마다 아래에서 질퍽이는 소리가 들리며 시준을 자극했다.

“으응! 으, 흑….”

좋아도 너무 좋았다. 첫 경험과는 달리 빠르게 찾아온 쾌감으로 시준은 어느새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지하는 어깨에서 힘없이 덜렁이는 시준의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감게 하고는,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숙인 뒤 시준의 얼굴을 핥으며 흐르는 눈물을 먹어치웠다.

지하가 몸을 세우자 자연스럽게 연결이 더 깊어지며 성기가 안쪽 끝까지 닿아왔다.

“아, 읍!”

견딜 수 없는 감각에 울 것처럼 지하에게 매달리던 시준은 그가 입술을 마주해오자 끌어안으며 입을 벌렸다.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그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맞붙은 하체에서 철퍽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 아!”

“하아, 준아….”

늦은 오후에 시작된 섹스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편안한 잠자리에 지나지 않았던 침대는 이제 지하와 섹스를 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사실이 시준을 더 흥분하게 했다.

시준은 무릎을 세우고 두 팔로 침대를 짚은 채, 네 발로 기듯이 엎드려 뒤에서 박아오는 그를 받아내고 있었다.

“흐윽, 읏! 응!”

지하는 시준의 골반을 두 손으로 잡고 고정시킨 뒤 퍽퍽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구멍 안을 오갔다. 그는 계속해서 시준의 이름을 부르며 마구잡이로 허리를 움직였다. 지하가 그런 식으로 안쪽을 파고들면 시준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지러지듯 울었다. 성기는 빠져나갔다가 다시 깊게 박혀오는 걸 반복했고 시준은 그럴 때마다 도리질을 치며 흐느꼈다.

너무 좋으면 눈앞이 깜깜해질 수도 있다는 걸 시준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 흐으…. 아, 아! 좋아, 응!”

결국 힘이 빠진 시준의 몸이 무너졌다. 가슴을 침대에 붙이고 허리만 붙들려 뒤에서 쑤셔졌다. 이번이 몇 번째 사정인지 세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도 모르게 싸버렸는지 앞이 젖어 있었다.

“나도, 준아…읏!”

뜨거운 것이 몸속으로 퍼지는 감각과 함께 지하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미 안쪽은 그전에 지하가 싸지른 정액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도, 안에 정액이 쏘아지는 느낌이 들 때면 쾌감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준은 투둑투둑 뒤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감각을 견디지 못하고 또 한 번 사정했다.

* * *

저 새끼, 또 안 서면 어떡하지.

열로 몸이 펄펄 끓는 와중에도 시준은 그런 걱정을 했다.

몸은 힘들어도 섹스는 만족스러웠다. 몇 번이나 이어지던 삽입이 끝난 후, 둘은 침대에 찰싹 달라붙어 달달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무, 무서워했는지 모, 몰랐어.”

“그냥 그랬다는 거야.”

“내, 내가 너무 나, 나만 생, 생각했나 봐.”

“…알면 됐고.”

“오, 오늘은, 안, 안 무서웠어? 내, 내가 또….”

시준은 그렇게 묻는 지하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촉 소리가 나게 입술에 뽀뽀했다.

“좋았어.”

“아…다, 다행이다.”

좋았다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입술만 붙고 살짝 떨어진 베이비 키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하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걸 보니 유치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졌다.

“…너는?”

“으, 응?”

“좋았어?”

“…너, 너무, 조, 좋았어.”

“또 하고 싶을 정도로?”

“매, 매일 하, 하고 싶을 정도로.”

“…다행이네.”

이제 완전히 안심해도 되겠지. 지하의 얼굴은 아직 불그스름했지만 한결 편해 보였다.

시준은 씻을까 하다가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조금만 누워 있기로 했다. 옆으로 돌아눕자 지하가 시준의 안에 고인 정액을 손가락으로 긁어서 빼주었다. 손가락은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처럼 정직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계속된 섹스로 한껏 예민해진 내벽에 손가락을 긁는 느낌은 꽤 자극적이었고, 시준은 아슬아슬하게 그 감각을 참아내었다.

물수건을 적셔 시준의 몸을 꼼꼼하게 닦아준 뒤, 지하는 시준이 편히 누울 수 있게 팔베개를 해주며 몸을 바짝 붙여왔다. 연신 입을 맞추려는 그를 피하지 않고 잠깐 잘 생각으로 눈을 감았던 것뿐인데.

“준아, 준아. 벼, 병원에, 가, 가자.”

지하가 울면서 시준에게 부탁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금 자신의 몸은 누가 봐도 섹스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몸 이곳저곳이 얼룩덜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없었다.

“박, 박사님이라도, 부, 부를 테니까.”

“부르기만 해봐.”

입을 열자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침은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주치의를 부르겠다는 걸 시준이 말리자 기어코 지하가 눈물을 흘렸다.

“준아, 벼, 병원, 가자….”

“이리 와.”

“내, 내가 오, 올라가면 부, 불편해….”

“안 불편해. 빨리.”

시준의 재촉에 지하가 침대 아래에 무릎 꿇고 있던 몸을 일으켜 위로 올라왔다.

“나 안아줘.”

싱글침대는 혼자 자기에 좁은 편은 아니었어도 지하가 올라가니 꽉 차버렸다. 그러나 그는 큰 덩치를 침대에 구겨 넣고 시준을 품에 안았다.

“약 먹어서 괜찮아.”

“왜, 왜… 거, 거짓말 해!”

“…….”

“아프, 아프면서….”

“…….”

지하는 시준의 괜찮다는 말을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시준은 이렇게 몸살이 날 때면 아프다고 사방팔방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지하는 시준이 그럴 때마다 같이 엉엉 울면서 시준이 잘못될까 온갖 걱정을 했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 시준이 우는 걸 보고 정말 아프다고 생각했는지 시준의 가족들과 그의 주치의를 닦달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엄살 좀 부리지 말라는 잔소리도 많이 들었었다. 시준은 엄살이 아니라며 아픈 와중에도 화를 냈지만, 사실 엄살이 조금 있긴 했었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섹스의 후유증과 고열로 인한 통증이 섞인 것 같았다. 열이 오르는 건 아마 찬물로 씻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시준은 혼자 추측했다. 바로 옷이라도 입었어야 했는데 하지하를 꼬시겠다며 일부러 한참 동안 알몸으로 알짱거렸으니.

결과적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하필이면 하고 나서 이렇게 아팠다. 시준은 지하가 또다시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아예 안 서는 건 아닐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야.”

“으, 응? 준아, 벼, 병원 갈래?”

“안 가. 하지하, 너….”

“여, 열이 안, 안 내리는데. 무, 물수건이라도, 내, 내가….”

“축축해서 싫어. 아무튼, 너.”

“그, 그럼 해, 해열패치라도, 사, 사 올게.”

“나 혼자 두겠다고?”

시준은 하려던 말도 잊고 따져 물었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하더니 이번엔 본인이 직접 가겠다고 말하는 게 영 의심스러웠다.

“하, 하지만, 여, 열이 너무 시, 심한데.”

“저번이랑 왜 이렇게 달라?”

“내, 내가?”

“그땐 혼자 두기 싫다면서.”

“그, 그건, 준이가….”

“됐어. 이젠 혼자 둬도 괜찮다는 거지.”

“아, 아, 아냐.”

“누군 아파 죽겠는데.”

콜록, 콜록.

시준은 일부러 기침까지 해 보였다. 더 아파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점점 진짜 기침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당황해서 멈추려 해봐도 한 번 시작된 기침은 끊기질 않았다.

“준아, 준아. 괘, 괜찮아? 어, 어떡….”

“괜찮아. 가만히 좀 있어.”

이제 목구멍까지 간질거리고 있었다. 시준은 계속 나오려는 기침을 간신히 참으며 자꾸만 들썩거리는 지하의 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무, 물, 가, 가져올게. 자, 잠깐만, 준아.”

“됐다니까. 그냥 옆에 있어.”

“기, 기침이….”

왜 자꾸 혼자 있게 하려는 거지.

그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했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시준은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어, 일어, 나, 나질 않아요. 주, 죽는, 죽는 거, 준이, 주, 죽으면….”.

“아이고, 지하야. 선생님 왔다 가셨잖아. 그냥 감기라는 거 들었지? 밥 잘 챙겨 먹고 약 잘 먹으면 금방 나아.”

“준이, 준이가, 어, 어떡….”

끅끅거리는 이상한 소리 때문에 정신이 다 사나웠다. 시준은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더 자고 싶었는데 시끄러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지하 형 또 저래?”

“내비둬. 시준이가 열이 나서 많이 놀란 모양이야.”

“계속 우네. 형은? 또 엄살이지?”

“열 다 내려갔어. 우린 나가자.”

엄살은 누가 부렸다고. 가족이라면서 저렇게 무관심해도 되나 싶었다.

익숙한 목소리들은 소곤소곤 대화를 주고받더니 곧 사라졌다.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완전히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불도 켜지 않았는데 왜인지 방안이 환했다. 그리고 시야가 또렷해지자마자 불쑥 무언가가 눈앞으로 튀어들어 왔다.

“준아! 흑, 준아…!”

갑자기 나타난 건 눈물로 범벅이 된 지하였다. 시준은 그 더러운 얼굴을 보자마자 조금 남아 있던 잠기운이 싹 사라지는 걸 느꼈다. 지하의 눈은 팅팅 부어 있었고, 눈가와 코끝은 빨갰으며, 볼에는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흐윽, 준아….”

“으…. 뭐야? 몇 시야?”

“이, 일어나지 마, 누, 누워 있어. 준이 지, 지금 마, 많이 아파.”

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울더니, 시준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지하는 기겁을 하며 말렸다.

“준이가, 계, 계속 저, 정신을 모, 못 차려서, 나, 나는 너, 너무 놀라서….”

“내가? 나 그냥 잔 건데?”

시준은 지하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다. 언제 입었는지 모르는 잠옷은 땀 때문인지 아직 조금 젖어 있었지만 그래도 개운해서 열이 났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시준은 바로 앞에 있는 지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시준이 계속 누우라는 말을 무시하자 이젠 무릎까지 꿇고 빌 기세였다. 시준은 방문을 흘긋 보았다. 문은 꽉 닫혀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시준은 소리 없이 방문을 잠갔다.

침대에서 문까지 그 짧은 거리를 가는 중에도 뒤에서 지하가 쫓아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빌고 있었다.

“준아, 내, 내가 할게. 누, 누워 있어.”

뒤를 돌아 다시 본 지하의 얼굴은 정말 가관도 아니었다. 시준은 그의 팔을 잡아 끌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게 했다.

“앉아봐.”

“제, 제발, 준아. 야, 약을 머, 먹, 읍.”

시준은 고개를 숙여 참새처럼 조잘거리는 입을 그대로 막아버렸다.

어쩐지 오늘따라 달콤하게 느껴지는 입속을 한참 동안 휘저으니 굳어 있던 지하의 몸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시준은 입술을 떼고 그의 눈과 코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잘 잤어?”

지하는 어느새 멍한 표정이 되어서는 눈앞에 있는 시준을 바라보았다.

시준은 그의 두 뺨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눈물자국을 핥고는 다시 키스하려 했지만 갑자기 안겨오는 지하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시준의 가슴에 이마를 비비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 못 잤어. 거, 걱정돼서. 준이가, 준이가….”

“응.”

“어제, 나, 나는 준이가 자, 자는 줄 알았는데, 깨, 깨워도 이, 일어나질 아, 않았어.”

시준은 서럽게 우는 지하를 침대에 눕히고는 그 위로 몸을 겹치듯 누웠다. 그래서 놀랐냐고 그의 가슴을 토닥이며 물으니 고개를 끄덕여왔다.

“이제 괜찮으니까 어서 자자.”

“준이, 야, 약 먹어야 하, 하는데.”

“너 자고 일어나면 밥 먹고 먹을게.”

“그, 그럼 지, 지금….”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키는 그를 시준이 막았다.

“잠이나 자.”

“그, 그치만….”

“빨리.”

“여, 연고라도 바, 발라야…그, 금방, 사, 사 올게.”

“…….”

잊고 있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한 그는 시준을 안은 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시준은 그런 지하를 몸으로 잡아 내리눌렀다. 지난번 자신이 했던 말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그를 보자니 괜히 입맛이 썼다.

“안 아파.”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거기도 안 아프고 허리도 안 아파. 됐지? 자자.”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할 수는 없었어도 확실히 처음 했을 때보다 괜찮긴 했다. 시준은 지하를 재우기 위해 또 한 번 가슴을 토닥였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하는 정말이냐며 자꾸 되묻더니 어느새 쌕쌕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얌전히 품에 안겨 있던 시준은 지하가 푹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씻기 위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하루를 꼬박 앓은 몸은 땀이 식으니 찐득거리며 불편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가는 동안에도 지하는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시준은 그대로 방 밖으로 나와 욕실로 향하려 했으나 거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발걸음을 돌렸다.

“뭐 해요?”

거실에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소파 밑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일어난 지가 언젠데.”

“너 엄마한테 말이 그게 뭐야.”

“됐어요. 큰아들은 아파서 끙끙 앓았는데 다들 재밌다고 웃고 있네.”

시준이 뚱해져서 말했다. 아픈 사람은 나 몰라라 놔두고 한가하게 TV나 보다니. 섭섭하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그 아프다던 아들 옆에서 간호하랴, 우는 지하 달래랴, 나랑 네 아빠 새벽녘에야 잤다.”

“김 박사님 자정 넘어서 집에 오셨어. 지하가 너 아프다고 불러서.”

“수건으로 시준이 너 땀 좀 닦아주려는데 지하가 어찌나 막던지.”

시준의 부모는 번갈아가면서 밤중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지하가 하도 울어서 저러다 탈수 증상이라도 올까 봐 억지로 자게 해보려 했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랬어?”

새벽까지 시준을 간호하고 지하를 돌봤다는 부모의 말에 시준은 뻘쭘해져서 되물었다. 약을 먹어야 한다며 매달리길래 하지하 혼자 아픈 사람 간호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지하 형 괜찮은 거 맞아? 더 심해지는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동생에게 한 소리 해주려고 시준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순식간에 달려온 지하가 시준을 덮치듯 끌어안았다. 그는 우느라고 제대로 된 말도 하지 못했다.

“저 봐. 작년보다 우는 게 더 심해졌어.”

시준은 동생을 노려봐주고는 지하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웬일이래?”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동생을 무시하며 시준은 지하의 팔을 끌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시준은 침대에 누워 씻고 오려 한 것뿐이었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그는 훌쩍훌쩍 울면서도 시준을 품에 가두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든 지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섹스까지 했는데도 왠지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 *

시준의 예상대로 지하는 성적인 접촉을 거부했다.

“준이, 준이 몸에 너무 부, 부담되는 것 가, 같아.”

“…….”

“자, 자주 하지 아, 않는 게 조, 좋겠어.”

두 번의 관계 후 아팠던 건 사실이기에 정색까지 하며 저런 말을 내뱉으니 시준은 할 말이 없어졌다. 지하는 며칠이 지나도록 손을 잡는 것과 키스 이외의 신체 접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 이거 마셔, 준아.”

“또 뭔데?”

“부, 붕어즙.”

“…….”

“매, 매일 머, 먹어야 한대.”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보양식들을 시준에게 사다 바쳤다. 각종 영양제와 즙들은 물론이고 홍삼과 나무뿌리 같은 것들을 내밀기도 했다. 시준은 진즉 챙겨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자책하는 지하를 보며 그것들을 모두 입속으로 삼켰다.

참자. 화내지 말자.

속으로 다짐했지만 붕어즙은 정말 맛이 없었다.

“안 먹어!”

시준이 먹다 남은 붕어즙을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맛없어! 비려!”

퉤퉤거리며 짜증을 내자 지하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래도 먹어야 한다고 자꾸 새 걸 내밀었다.

시준이 한번 싫다고 하면 알겠다며 뒤로 물러서던 지하는 이번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그를 노려보던 시준은 역으로 이게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퍼뜩 떠올렸다.

“먹으면?”

“어, 어?”

“먹으면 뭐 해줄 거야?”

“뭐, 뭐를… 내, 내가 뭐, 뭐 해줄까? 그, 그냥 준이가 원하면 다, 다 해줄 건데.”

“너 이거 마셔봤어?”

“아, 아니….”

“마셔봐.”

“이, 이건 준이가 머, 먹을 거야. 내, 내가 먹으면 안, 안 돼.”

“뭐든 해준다며! 냄새라도 맡아봐!”

시준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붕어즙을 들어 올리곤 지하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댔다.

“윽!”

냄새를 맡은 지하는 손으로 코까지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러면서 나보고 먹으라고?”

그는 시준의 짜증에도 몸에 좋은 거라며 계속 웅얼거렸다.

결국 시준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삽입했을 때만 붕어즙을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하지하는 쩔쩔대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가오는 기말고사 덕분에 시준의 요구는 모두 뒤로 미뤄지고 말았다.

시준은 성적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랬기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말고사 공부에 투자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 하지하와 노닥이느라 지난 학기보다 공부를 많이 못 했기 때문이었다. 지하가 과외를 받는 날을 제외하고는 이번에도 시준의 방에서 공부를 했다. 시준은 공부 외에 다른 짓을 못하도록 방문까지 열어놓았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둘은 몰래몰래 책상 밑으로 손을 잡는다든가 입술만 맞대고 있는다든가 하면서 비밀스러운 장난을 주고받았다.

지하는 서로의 집에서 함께 자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헤어질 때면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건 시준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어줌과 동시에 아주 약간의 걱정을 품게 했다. 지하는 날이 갈수록 눈 밑이 컴컴해지고 있었다. 간혹 밤을 새우는 것도 같아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 그에게 시준이 전처럼 차라리 같이 있을 동안만이라도 잠을 자보라고 권유해보았지만 지하는 싫다며 거절했다.

그는 거절의 말을 이전보다 자주 내뱉게 되었는데, 시준은 의외로 그런 점이 싫지 않았다. 본인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으나 지하는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시준은 그 변화를 그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과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시준 역시 지하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여러 면에서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간혹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간지러울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길게만 느껴지던 기말고사가 끝났다. 그 시간 동안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한겨울로 접어들었다. 시준이 코트를 입고 나타나면 지하는 좀 더 두꺼운 옷을 입으라며 시준의 부모도 하지 않는 잔소리를 입에 달았다.

그는 이제 시준에게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했다. 간혹 눈치를 보기도 했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시준은 짜증 대신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느라 조금 힘이 들었다.

지하를 꼬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말로만 하자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스킨십을 하며 조르면 그는 얼마 안 가 무너지곤 했다.

“자, 잠깐, 준아….”

시준은 소파에 앉은 그의 다리 사이로 올라가 키스를 퍼부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그는 이내 시준의 등허리를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응해오기 시작했다.

벌린 입속을 파고든 혀가 서로 얽혀 있는 동안 시준은 지하의 손을 붙잡아 상의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제 손을 겹친 채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다가 끝내는 가슴 쪽으로 옮겼다. 힘없이 끌려오던 손은 결국 손바닥이 유두에 닿자 더는 못 참겠다는 것처럼 긁어내리고 꼬집기를 반복했다. 시준은 옷 속으로 들어온 그의 손이 더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입을 맞추면서 두 손으로 상의를 끌어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하가 고개를 돌리며 가슴을 만지던 두 손으로 시준을 뒤로 밀었다.

“그, 그만!”

“…….”

“어, 어제 해, 했잖아. 아, 안 돼.”

지하는 눈까지 질끈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시준의 유두 위에 올라가 있었고, 시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시준은 상의를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려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바지를 완전히 벗기 위해 앉은 상태에서 허리를 띄우자 대답이 없는 시준이 의아했는지 지하가 다시 눈을 떴다.

시준은 그 앞에서 속옷과 바지까지 완전히 벗어버렸다. 그리고 지하의 벌려진 다리 사이에 마주 보고 앉아 하체를 밀착시키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나 혼자 할게.”

시준이 말을 끝내자마자 지하가 숨을 들이켰다. 그 얼굴이 보고 싶었으나 시준은 지하의 어깨에 이마를 붙인 채로 천천히 한 손을 자신의 성기 위에 가져다 댔다. 누구 좋으라고 가는 표정을 보여줄까 싶었다.

느릿느릿 성기를 쓸어올리며 시준은 달뜬 숨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혼자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몇 달 동안 지하의 입과 손의 도움을 받았기에 신호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반쯤 서 있던 성기는 금세 몸을 키워 완전히 발기했다.

“으….”

성기를 감싼 손이 위아래로 빠르게 오갈수록 시준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와 동시에 뒤가 서서히 간질거리고 있었다. 지금 그가 손가락을 넣고 쑤셔주면 바로 갈 것 같은데 바짝 굳어 있는 몸은 그럴 생각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시준은 엄지로 귀두 부분을 매만지며 지하의 목덜미에 이마를 비볐다.

“아, 읏.”

허리가 저절로 들썩거렸다. 조금만 더 하면 갈 것 같을 때, 시준의 몸이 돌려졌다.

순식간에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게 된 자세에 시준이 놀라서 위를 보자, 지하가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소파 아래에 서서 시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는 마치 운 것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미 완전히 넘어온 것 같은 모습에 시준은 속으로 한번 웃고는 성기를 잡고 마저 흔들었다. 지하가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고개는 일부러 뒤로 젖혔다. 앞에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았다. 마침내 사정의 순간이 다가올 무렵, 성기를 쥐고 있던 시준의 손이 강제로 떨어지며 성기가 뜨거운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고개를 내려다보니 지하가 어느새 시준의 성기를 입안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가 볼에 힘을 주어 쭙쭙 빨아대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시준은 그대로 그의 입안에 사정했다. 지하가 시준의 정액을 삼킨 후, 곧바로 입술과 손가락을 뒤에 가져다 대며 지분거렸다. 그는 이제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시준은 그 틈을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시준은 아래에 달라붙은 지하의 어깨를 발로 밀어내고는 상의까지 완전히 벗어던지며 말했다.

“빨리 와.”

이번에는 안 된다는 말조차 없었다. 그는 급하게 바지 지퍼만 내려 성기를 꺼낸 채 시준의 위로 올라탔다.

“으응…!”

구멍 안으로 성기가 단숨에 밀고 들어오자 시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지하는 양옆으로 벌어진 시준의 다리를 더욱더 벌려가며 꾹꾹 안을 파고들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열려 있던 몸은 예상보다 쉽게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반겨주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안쪽이 꽉 찬 느낌은 지하가 안에서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도 시준을 금방 절정에 오르게 했다.

“나, 쌀 거, 같아…아!”

“읏, 준아….”

시준이 말을 하자 지하가 무게를 실어오며 이미 끝까지 다 들어온 것을 계속 눌러댔다. 그가 허리를 얕게 쳐올리자 시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그러나 지하는 시준이 싼다고 말을 했는데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으, 나, 싸, 싸고 있, 응!”

오히려 성기를 끝까지 빼고 박아오는 것을 반복하며 시준을 소파에 더 깊이 파묻게 했다. 시준은 안쪽이 쑤셔지면서 휘몰아치는 쾌감으로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아!”

퍽퍽 박아오는 무게를 받아내자 시준의 성기에서는 계속 정액이 튀어 올랐고 곧이어 뱃속을 지릿하게 울리는 감각에 묻혀버렸다. 그는 시준의 허벅지 아래로 손을 밀어 올려 삽입을 더욱 깊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피스톤질을 할 생각인지 탁탁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허리를 쳐올렸다. 시준은 그를 끌어안고 고개를 저으며 소리 내 울었지만 금세 지하의 입속으로 먹혀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준이 몸으로 꼬셔서 섹스를 해도 지하가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만약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욕을 잔뜩 퍼부어줬을 텐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시준은 마음에 들었다.

소파에 이어 침대에서도 납작 엎드린 자세로 또 한 번 하고 난 뒤, 여느 때처럼 시준의 몸을 그의 가슴 위에 올린 채 품에 안고 있던 지하가 물어왔다.

“어, 어땠어?”

“좋았어.”

그는 삽입이 있은 후에는 항상 이런 식으로 시준에게 어땠는지 묻곤 했다. 관계 도중에 그러기도 했다. 그리고 시준이 좋다는 말을 들려주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만족스럽게 웃는 것이다.

지금도 좋았다는 대답을 들은 지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준의 머리 위로 한쪽 뺨을 문댔다. 시준은 그게 귀엽기도 하면서 동시에 얄미운 감정도 들어 일부러 짓궂은 말을 해줄 때도 있었다.

“난 네가 안에 넣고 계속 흔드는 게 좋아.”

“그…그, 그래?”

“응. 조금씩 넣는 것보다 한 번에 넣는 게 더 좋고.”

“그럼 다, 다음에, 내, 내가 꼭 그, 그렇게 할게.”

흘끔 위를 올려다보니 지하가 새빨개진 얼굴로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게 또 웃겨서 시준은 혼자 키득거리며 웃었다.

지난번에 뒤로 하는 것보다 앞으로 하는 게 더 좋다는 말을 하니 한동안 그는 계속 앞에서만 삽입을 했었다. 그 후 뒤로 할 때도 얼굴을 보면서 하면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자세를 바꿨었다.

“오늘도 좋았어.”

“으, 응.”

“너는?”

“으, 응?”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데?”

“나, 나는….”

그리고 시준이 되물으면 지하는 쑥스럽게 얼굴을 숨기며 겨우 대답해왔다. 처음 물었을 때는 다 좋다고 하던 그도 시준이 꼬치꼬치 캐물으니 그제야 하나둘씩 말하기 시작했다.

“준이, 준이가, 키, 키스 해, 해주면….”

“키스? 넣고 있을 때?”

“으, 응.”

“키스는 할 때마다 하잖아.”

의외의 말에 시준은 의아해졌다. 시준이 기억하기로 삽입하면서 키스를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준이, 준이가 머, 먼저….”

“내가?”

“으, 응.”

“아, 내가 먼저 키스 해주면 좋겠다고?”

그 말에 지하는 품에 안은 시준을 더 꽉 끌어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응, 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나도 다음에 꼭 그렇게 해줄게.”

시준은 다음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지하가 안 된다고 할 것 같아서 참았다.

* * *

몸부터 들이댄다고 지하에게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시준은 학교가 끝나면 지하를 끌고 그의 방으로 가기 바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거의 매일 섹스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야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던 그도 시준이 작정하고 다가가니 거부하지 못했다. 계속 아플 것 같던 몸은 자주 관계를 갖자 익숙해졌는지 할 때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섹스 후에 침대에 누워 서로를 품에 안고 평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정작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오늘 날씨는 어땠고, 밥은 맛있었는지, 혹은 기분은 어땠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지하는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시준은 그런 그를 두고 집에 갈 때도 있었고 그의 옆에 누워 같이 잠을 청할 때도 있었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났을 때 시준이 옆에 있으면 지하는 아닌 척해도 무척 좋아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시준이 그의 집에서 자고 가는 날이 많아졌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어도 그런 일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지유가 둘의 사이를 알게 되었다.

“누나가 웬만하면 모른 척해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지유는 평일 대낮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시준과 지하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 뒤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갔다.

처음에는 회사에 있어야 할 그녀가 집에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하던 시준도 점차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유가 둘에게 했던 말이 의미심장했다.

모른 척해주다니, 무얼 모른 척해주려고 했다는 것일까?

앞에서 걷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시준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잡아오는 손길에 고개를 들어 옆을 올려다보았다. 지하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시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준은 맞잡아 오는 손을 힘주어 꽉 잡아준 후 곧바로 손을 풀었다. 지유가 언제 뒤를 돌아볼지 몰랐다.

그녀가 향한 곳은 1층에 있는 그녀의 방이었다.

“앉아.”

방은 심플하면서도 모던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시준이 몇 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달라 보였다. 시준은 일부러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경하는 척하다가 그녀가 안내한 소파 위에 천천히 앉았다. 곧이어 옆자리에 지하가 앉았다.

지유는 소파 스툴을 끌고 와 앞에 앉더니 팔짱을 끼고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 누나도 알아.”

“누, 누나, 그, 그건….”

“지하 넌 조용히 해. 누나가 하려는 말은 그런 게 아니니까.”

지유가 알고 있다는 말에 철렁 내려앉았던 시준의 심장은, 뒤에 이어진 그녀의 말에 쿵쿵 소리가 들릴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지하가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지만, 시준에게는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식은땀이 배어 나왔는지 어느새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둘이서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에 뭐라고 할 생각도 없어. 남자끼리 사귄다고 반대도 하지 않을 거야. 지하가 시준이를 예전부터 좋아해왔다는 건 누나도 잘 알고 있어. 그 감정을 사춘기 시절 호기심 같은 걸로 치부하지 않을 거란 뜻이야.”

시준은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신 그녀의 입술 위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는 중간에 입이 마른지 혀로 입술을 한번 훔치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누나 같지 않아. 그건 둘 다 알고 있어야지. 누나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시준은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건 옆에 있는 지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점점 간절함이 실리고 있었다.

“조심하라는 거야, 얘들아.”

“…네.”

“으, 응.”

시준이 간신히 입을 열자, 옆에 있는 지하가 시준을 따라 대답했다.

“뭘 조심하라는 건지 알아?”

그러나 둘은 뒤이은 그녀의 질문에는 또다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둘이 예쁘게 사귀는 거, 누나 응원해줄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이 혹시라도 알게 되면 누나 너희들에게 방패막도 되어줄 수 있어. 그런데 얘들아. 누나가 꼰대 같은 말 좀 할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한참 동안 뜸을 들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우리 집 모텔 아니야.”

그리고 시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고 미성년자들인 너희가 모텔에 가서도 안 되고.”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도 못한 말이었다. 그녀가 말한 조심이라는 건 둘의 감정과 관계를 숨기라는 뜻인 줄만 알았다.

“누나는 적어도 학생은 학생답게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그런 욕구를 무조건 막고 차단한다는 건 누나도 반대하지만….”

“누, 누나, 그, 그만해. 다, 내, 내가 그, 그런 거야. 그, 그만해, 누, 누나.”

부끄러웠다. 그리고 시준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당당해질 수 없는 걸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시준이 이렇게 창피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준이, 준이가, 왜…누, 누나, 나, 나한테만, 마, 말해도, 되, 되잖아.”

옆에서 울먹이는 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시준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너희가 하는 일에 너희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누나 바람이야. 그런데 너네 지금 너무 어려.”

“누, 누나!”

“몇 달 전부터 지하 방에서 세탁물로 침대시트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말, 일하시는 분들이 돌아가면서 누나한테 얘기해주고 있어. 그뿐이면 누나도 모른 척하겠는데, 방학 시작되고 지하 네 방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어. 누나가 계속 모른 척해야 해?”

지하는 그녀의 말을 막으며 계속해서 자신에게만 말을 하라고 말렸다. 시준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당당해질 수 없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의 말처럼 시준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었다. 이렇게 그녀가 하는 말에도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성인이라면 달랐을까.

지유는 부디 조심해달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지하에게만 이야기하면 듣지 않을 것 같아서 시준까지 불렀다고 말했다. 고용인들에게는 잘 설명했고, 절대로 너희를 떨어트리려는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그녀는 끝까지 조심하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방을 나와 2층까지 올라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준은 지하의 방 한가운데에 서서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너, 너무, 미, 미안해.”

“…네가 뭘.”

“그, 그런 소, 소리, 드, 듣게 해서.”

“누나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

“그, 그래도, 그, 그런 식으로, 마, 말하면, 아, 안 되는 거야.”

지하는 시준에게 미안하다며 끊임없이 사과했다. 그는 품 안에 있는 시준을 놔줄 생각도 못한 채 연신 시준의 등을 쓰다듬고 토닥이며 아기를 달래듯 위로해주었다. 시준은 그 손길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저를 끌어안은 지하의 몸만 떨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의 손끝까지 떨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준은 지하의 등 뒤로 손을 둘러 마주 안아주었다. 그러자 그가 울음이 터지는 것을 참아내는지 끅끅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준은 지하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등을 쓰다듬고, 토닥거려줬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노골적인 말을 덧붙이긴 했어도 지유는 그저 조심하라고 일렀을 뿐이다. 그녀는 둘의 관계를 누군가에게 알리겠다는 말이나 혹은 학생일 때는 공부만 하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시준은 속으로 반성했다. 자신이 안이했던 건 사실이었다.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그저 욕망에 따라 움직였다. 예전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시준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 * *

그 후로 둘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만나기 시작했다. 마치 기말고사 전처럼 성적인 접촉은 일절 하지 않고 간혹 손을 잡거나 가벼운 키스만을 주고받았다. 그것도 아주 몰래.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지하는 손만 잡아도 언제나 수줍게 볼을 붉혔으며 시준은 그게 보기 좋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문득 이번 기회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둘이 사귀고 나서 한 일이라고는 그저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공부를 한 것이 다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지하가 외출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도 데이트까지 그럴까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준의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가고 말았다.

“그, 그냥, 우, 우리 집에서 보면 아, 안 돼?”

“나가기 싫어?”

“시, 싫은 건, 아, 아니고….”

“평일이라 영화관에 사람도 많이 없을 텐데.”

“그, 그게….”

“왜?”

“바, 발작, 하, 하면….”

“내가 옆에 있잖아.”

“그, 그래도. 지, 집에서도 보, 볼 수 있는데….”

“어제 개봉한 건 못 보잖아.”

“준이, 준이 나, 나가고 싶어?”

“…….”

지하는 그렇게 묻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왼손을 입가에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손톱을 깨물고 싶은 눈치였다.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그가 병원에 있을 때 겨우 고쳤는데도 이런 식으로 초조함이 극에 달하면 종종 나타나곤 했다.

“그, 그럼, 사, 산책할까?”

“아파트 산책길?”

“…으, 응.”

방학 동안 시준과 지하가 간 곳이라고는 둘의 집과, 시준의 아파트 산책로. 이 세 군데가 다였다. 섹스에 빠져 있을 때는 한정된 장소에 답답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제 고3이 되니까 본격적으로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아깝기도 했다. 겨울방학은 추억을 남기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 그럼. 나가자.”

“으, 응!”

천천히 넓혀가면 되겠지. 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준이, 준이가 오, 오늘은, 다, 다르네.”

“뭐가?”

슬슬 집에 가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던 참이었다. 시준은 덥석 자신의 손을 붙잡으며 물어오는 지하의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았다. 지하는 두 손으로 시준의 왼손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소파에 앉은 몸은 완전히 시준을 향해 있었다.

그는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말했다.

“오, 오늘은, 뽀, 뽀뽀 아, 안 해주네.”

“뽀뽀?”

“사, 사귀고 나서 준이가, 준이가, 매, 맨날 해줬는데.”

“오늘 했잖아.”

“아, 아닌데. 내, 내가 머, 먼저 했는데.”

“…….”

지하는 농담처럼 가볍게 말을 꺼냈으나 시준은 그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키스라도 시준이 먼저 해주길 바라는 모습이 귀여웠을 뿐이었다. 시준은 그런 줄 몰랐다고 다정하게 속삭이며 지하의 입에 베이비 키스를 남겼다.

시준은 지유의 부탁 이후로 입맞춤이 조금이라도 깊어질 것 같으면 바로 몸을 뒤로 물리곤 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시준은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참아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하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그는 이미 시준보다 먼저 참아냈던 전적이 있었다. 비록 그 이유가 시준과 다르다고는 해도 지유가 그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겨울방학 동안은 자제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지하는 그다음 날에도 시준이 달라졌다는 말을 해왔다.

“저, 전에는, 준이, 준이가, 나, 나한테, 하, 하자고 그, 그랬었는데.”

“뭘 해?”

“너, 넣자고…막, 내, 내가 안, 안 된다고 했는데도 하, 하자고….”

“아, 그거.”

“이, 일주일에 한 번은 꼬, 꼭, 해야 한다고, 그, 그랬는데.”

“…….”

“이, 일주일 훨씬 너, 넘었다. 그, 그치?”

벌써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한 달이나 지났다. 그동안 둘은 2주가 넘도록 손만 잡고 있었다. 시준은 더 말해보라는 식으로 책상 위에 한 손으로 턱을 괴었지만 지하는 이번에도 시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준이가, 준이가, 되게, 되게 좋다고 해, 했었어.”

“내가 뭐가 좋아?”

“내가, 내가 안에, 안에 너, 넣으면, 많이 조, 좋다고.”

“그래, 그랬었지.”

“…….”

지하는 어느새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내리뜬 속눈썹이 떨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시준은 기다란 속눈썹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 그의 자위 장면을 구경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저렇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가느다랬던가.

“그, 그런데, 그런데, 요, 요즘은 그, 그런 말을 잘 아, 안 하네.”

지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파르르 그의 속눈썹이 다시 한번 떨려왔다. 그 모습을 보자 시준은 지하를 울리고 싶다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가학적인 욕구가 피어올랐다. 아니면 빙빙 말을 돌리고 있는 그에게서 속마음을 끌어내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나 요즘 혼자 하고 있거든.”

“…호, 혼자?”

“혼자.”

“호, 혼자, 뭐, 뭘….”

“자위.”

“…왜, 왜? 왜, 왜 호, 혼자 그, 그걸 해?”

불쑥 고개를 든 지하의 얼굴은 곧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내, 내가, 내가 이, 있는데?”

그러나 시준에게 따지는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한가득이었다.

“몰라서 물어?”

“왜, 왜? 서, 설마, 내, 내가… 내가….”

시준이 되묻자 지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얘졌다가 파래졌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시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손을 뻗어 옆에 앉은 그의 턱을 쥐고 입을 맞췄다.

“음…!”

깜짝 놀란 것처럼 몸을 움찔하던 지하는 곧 깊어지는 키스에 눈을 감고 몰두하기 시작했다. 시준은 오늘만큼은 멈추지 않고 질척하게 서로의 입속을 오가는 딥키스를 이어갔다. 꽤 오랜 시간 이어지던 키스는 지하의 손이 시준의 중심부에 닿았을 때 멈춰졌다. 시준은 바지 한가운데에 올라오는 손을 느끼자마자 바로 고개를 뒤로 뺐다.

“어….”

“그만.”

“왜, 왜….”

“누나가 조심하라고 한 말 지켜야지.”

“키, 키스인데, 키, 키스만….”

“키스로 끝낼 수 있겠어?”

“아….”

“넌 가능할지 몰라도 난 안 돼. 그러니까 참아.”

지하는 몸까지 들썩이며 뭐라고 말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 닫는 것을 반복하다가, 다시 시준에게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의자에서 일어나 위에서 덮치듯이 고개를 숙여왔다. 시준이 순간적으로 피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지하가 코끝을 문대며 입을 맞춰왔다. 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마, 많이, 많이 조, 조심했는데….”

그는 입술이 떨어지는 그 잠깐 사이에 투덜거리는 것처럼 말하곤 금방 혀를 얽어왔다. 때문에 시준은 한참 후에 대답을 들려줄 수 있었다.

“더 조심해야지. 소리가 밖에 다 들린다잖아.”

“지금, 지금은, 아, 아무도 어, 없을 텐데.”

“그만해.”

똥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시준이 속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고 말했다. 지하의 얼굴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호, 혼자, 혼자서, 하, 하려고, 그, 그러지?”

“…….”

“지, 집에 가서, 호, 혼자…누, 누굴 보, 보면서 그, 그렇게….”

“…….”

“내, 내, 내가 어, 어, 없을 때, 내, 내가 어, 없는 곳에서, 왜, 왜?”

말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가 싶더니 그는 이내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왼손이 다시 입술로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눈동자 역시 가만두지 못했다. 시준은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미 얇은 트레이닝복 바지 위로 우뚝 솟은 지하의 중심부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터뜨릴 것처럼 힘을 주었다.

“아! 아, 아파!”

“그만 좀 해.”

“놔, 놔줘, 준아, 아, 아파.”

“그만할 거야?”

“흑….”

“대답 안 해?”

봐주지 않고 손안에 든 성기를 더욱 비틀자 지하가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며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시준은 그제야 그의 중심부에서 손을 뗐다. 아프긴 아팠는지 지하의 성기는 금세 수그러들었다.

지하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려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제 질린 거라느니, 싫어진 거라느니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더듬더듬 웅얼거리기도 했다.

“질리긴 누가… 야!”

“흐윽…하, 하고 싶다고도, 아, 아, 안 하고, 나, 나한테….”

“처음엔 네가 안 된다며?”

“나, 나는….”

시준은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그럼 너도 질린 거야? 네가 먼저 하지 말자고 그랬잖아. 그럼 넌 그때부터 나한테 질린 거야? 너 정말 그래? 이미 나한테 질렸는데 내가 조르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아, 아, 아냐! 아, 아니….”

“웃기시네. 내가 아파서 그랬다는 거 다 핑계지?”

“아, 아니….”

“내가 하고 나서 자꾸 아프니까 그게 싫어서 그런 거지? 막상 해보니까 별로였던 거잖아.”

“아….”

“그랬는데도 내가 물으니까 억지로 대답….”

지하는 시준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계속 말을 끊는 게 억울했는지 중간중간 씩씩거리기도 했다.

시준은 그런 지하를 노려보는 척했다. 어렸을 적에는 이런 식으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다. 말을 더듬기에 천천히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시준을 말싸움으로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준이 일부러 쏘아대듯이 몰아붙이면, 지하는 하고 싶은 말을 못 했다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저렇게 크게 울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실컷 웃은 시준이 달래주는 걸로 싸움은 끝이 났었다.

“아니, 아니라는데, 왜, 왜 자꾸, 그, 그렇게, 나, 나쁘게, 말해?”

“그럼 넌 내가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렇게 나쁘게 말해?”

“내, 내가, 어, 언제….”

“아까 전에 질렸다며, 싫어졌다며 중얼거렸잖아. 나 들으라고 한 말 아니야?”

“그, 그건….”

“내가 말했지? 조심하는 거라고. 자위? 내 뒷구멍에 네 거 박아 넣는 상상하면서 했다, 왜. 더 궁금해?”

“…….”

할 말을 잃은 지하의 얼굴이 곧바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제발 좀.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이어서 말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 묻고, 불안한 거 있으면 솔직하게 털어놔. 잘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왜 이래?”

“…….”

지하는 시준의 허리에 두 손을 감고 더욱 품에 안겨왔다. 그가 시준의 배에 얼굴을 문대자 시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배꼽 부분이 축축해졌기 때문이었다. 지하가 또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그럼.”

“말해.”

“…….”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던 지하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한 것은, 소리만 안 들리게 하면 되냐는 물음이었다.

* * *

“우, 우리, 오, 오늘은, 여, 영화 볼까?”

뒷짐을 지고 묻는 지하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비껴간 시선과 크게 움직이는 목울대를 누워서 보고 있자니 어제 일이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어제 지하가 말한 소리가 안 나는 곳은 욕실이었다. 그는 서툰 몸짓으로 시준을 샤워실로 집어넣고 다급히 입을 맞춰왔다. 처음 시준은 적당히 장단이나 맞춰줄 생각이었다. 그러다 지하가 본격적으로 옷까지 벗겨가며 몸을 만져오자 같이 이성을 잃고 말았다. 결국 둘은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의 몸을 붙인 채 물고 빨다가 삽입까지 가버렸다.

서서 하는 섹스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주 동안 하지 않았던 몸은 다시 처음처럼 닫혀 있었고, 충분히 적셔준 뒤에야 겨우 성기의 끄트머리 부분만 들어올 수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시준의 한쪽 다리가 지하의 팔에 걸쳐졌다. 간신히 성기가 다 들어왔을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지하는 조심스럽게 시준의 얼굴을 확인하며 천천히 피스톤질을 했다.

그러다 두 번 정도 넣었다 뺐을 즈음, 시준의 뱃속으로 익숙한 감각이 퍼졌다. 지하가 사정한 것이다.

“미, 미, 미안.”

“…….”

“왜, 왜 이러지…준아, 미, 미안.”

너무 이른 사정에 지하가 시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다시 한번 하자고 말해왔으나 시준은 그대로 거절했다. 생각보다 몸이 힘들었다. 걸쳐진 다리도 슬슬 저려왔고 아프게 벌어진 뒤쪽도 불편했다.

“됐어. 씻고 방으로 가자.”

“하, 한 번만….”

“내가 안 싼 것도 아니고, 나도 좀 전에 쌌잖아. 나 다리 아파.”

“…으, 응.”

조용히 대답하는 목소리가 침울했다. 씻겨주겠다는 것을 거절하면 땅 끝까지 삽질할 기세라 시준은 얌전히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시준은 욕실을 나온 후에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 것 같다며 그를 위로해줬다. 좋았다는 말도 끊임없이 해줬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준은 플레이 중이던 휴대폰 게임을 끄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영화관은 아니지?”

“…으, 응. 저, 저기, 집에 여, 영화 방.”

혹시나 싶었던 물음에 당연한 대답이 들려왔다.

“여기서 안 보고?”

“…으, 응.”

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지하를 살펴보았다. 뒷짐을 진 그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완전히 긴장한 모양새였다.

그게 또 우습기도 하면서 동시에 꼴렸다. 저게 뭐라고 당장 키스하고 싶은 건지.

시준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먼저 방을 나섰다.

“안 오고 뭐 해?”

“가, 갈게.”

복도를 걸으며 시준은 지하에게 무슨 영화를 볼 건지 질문했다.

“그…그게….”

“뭔데?”

“저, 전쟁 영화….”

“전쟁?”

“조, 조금 시, 시끄러울 수도 이, 있대.”

“…….”

왜 그 영화를 골랐는지 알 만한 대답이었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스피커가 스크린 화면 양옆으로 존재하는, 오로지 영화만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방이었다. 침대는 없었지만 누워서 볼 수 있을 만큼 넓은 소파가 스크린 건너편에 있었다. 지하가 자신의 방에 따로 빔프로젝터를 설치하기 전까지 둘은 주로 이곳에서 영화를 봤었다.

시준은 소파에 멀뚱히 앉아 지하가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은 왜 잠갔어?”

“…그, 그냥.”

뻔하디뻔한 대답이었지만 시준은 그냥 봐주기로 했다. 시준에게서 최대한 몸을 돌리고 있었지만 지하의 앞섶은 이미 방에 들어올 때부터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용케도 참았구나 싶었다.

스피커에서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며 화면에는 영화가 재생되었다. 창문 하나 없는 방은 어느새 조명까지 꺼져 스크린 화면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소파에 오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시준에게 입술을 가져다 댔다.

“뭐야, 영화 보자며?”

키스와 함께 커다란 손이 셔츠 안으로 들어오는 노골적인 행동에 시준이 웃으며 물었다.

“하, 하고, 하고 싶어….”

“안 되는데.”

“오, 오늘만…조, 조심할게.”

“정말?”

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허겁지겁 시준의 위로 올라탔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쾅, 쾅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준이 내지르는 울음소리가 묻혔다. 지하는 뒤에서 시준의 몸을 덮은 채로 하체만 움직여 빠르게 구멍 안을 오갔다. 그가 두 팔로 시준의 가슴을 감싸 안자 그의 가슴과 시준의 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붙었다. 지하는 전날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것처럼 시준의 안쪽을 쉴 새 없이 파고들었다.

봐주지 않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그 때문에 시준이 참지 못하고 다리를 버둥거렸다. 지하가 안쪽으로 성기를 쑤셔 넣을 때마다 소파 위를 내리치던 발등은 끝내 바짝 서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영화가 끝나자 지하는 두 번째 영화를 재생시켰다. 첫 번째 영화가 플레이되는 내내 둘은 섹스를 멈추지 않았다. 지하는 조금만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시준을 안으려 했고, 시준은 그런 그를 굳이 막지 않았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관계에 시준이 지친 걸 알았는지 지하는 영화를 켜고 시준의 몸을 품에 안아 자신의 위로 올렸다.

“왜 자꾸 이렇게 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시준이 피식 웃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축 처진 시준을 끌어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꾸 그의 몸 위에 눕게 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시, 심장 소리가, 자, 잘 들려서.”

“내 심장 소리?”

“으, 응. 준이, 준이 심장, 소리.”

시준은 정말 그런가 싶어서 몸을 위쪽으로 더 올려 가슴끼리 더욱 붙게 해봤다. 그러자 두근, 두근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당연히 지하의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점점 자신의 것과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네.”

“그,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나, 나는, 이, 이렇게, 있는 게, 조, 좋아.”

“내가 네 위에 엎드려 있는 거?”

“으, 응. 준이, 안, 안고 있는 거. 다, 다, 부, 붙어 있잖아. 준이랑 하, 한 몸이 되, 된 것 같아.”

지하는 이제 묻지도 않았는데 뭐가 좋으며 왜 좋은지를 말해왔다.

두 번째 영화는 로맨스 영화인지 잔잔한 음악 소리와 주인공들의 말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슬금슬금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밀어내고 시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왜, 왜? 더, 더 누워….”

“일어나야지. 뒷정리도 하고.”

“조, 조금, 이, 이따가 하면 아, 안 돼? 내, 내가 할게.”

“또 누가 올 줄 알고.”

시준의 말에 시무룩하게 있던 그는 곧 안에 있는 걸 빼주겠다며 손을 뻗어왔다. 구멍 안에서 잔뜩 흘러내린 것을 티슈로 닦아내주는 동안 지하가 다시 발기했다. 시준은 그에게 죽이라고 한 소리 해준 후 옷을 챙겨 입었다.

“빨리 입고 나가서 음료수나 커피 좀 가져와.”

“왜, 왜? 모, 목말라? 무, 물 줄까?”

한참을 미적이던 그는 시준의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었다.

“소파에 뿌리게.”

“어…어?”

“이거 안 보여?”

“어어?”

시준은 소파 위에 얼룩진 부분을 가리켰다.

“정액 묻어서 냄새나잖아. 가려야지. 빨리 안 가고 뭐 해?”

“아, 다, 다녀올게.”

지하가 허둥지둥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은 개뿔. 창문이 없는 방 안에는 비릿한 정액 냄새가 가득했다.

시준은 이걸 또 어떻게 빼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벌렁 뒤로 누웠다. 과일 음료수나 커피처럼 향이 강한 액체를 덧씌우면 그래도 좀 냄새가 옅어질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오랜만에 하는 섹스는 만족스러웠다. 전날처럼 힘든 것도 없었다. 아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시준은 누워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만 이러자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지하는 그 다음 날에도 마치 발정이 난 사람처럼 시준에게 치댔다.

“…….”

“왜, 왜?”

“뭐 해?”

“…고, 공부 마, 마저 해, 준아.”

시준은 성적인 접촉을 조심하면서부터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로 보냈다. 그건 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게임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땐 서로 손으로 투닥투닥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

지금 지하는 꼭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 말라니까 더욱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뭔지. 그의 얼굴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순진했지만, 손은 문제를 풀고 있는 시준의 가슴을 향해 있었다.

“거기 왜 만져?”

“나, 나는, 아무것도, 아, 안 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지하는 이제 대놓고 시준의 셔츠 위로 튀어나온 자그만 알갱이를 두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시준은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가슴에서 느껴지는 얕은 쾌감에 신음을 흘렸다.

“준아, 조, 좋아?”

“…….”

시준에게서 아무 대답이 없자 지하는 다시 눈치를 봐왔다.

“벼, 별로야?”

“야.”

“으, 응?”

그만하라고 말하려던 시준은 지하의 웃는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준은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한 손으로 셔츠를 들어 올렸다.

“빨아.”

“어…어?”

“빨라고.”

고갯짓까지 하며 가리키자 지하는 그제야 다급히 시준의 가슴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얇은 긴팔 티셔츠가 순식간에 어깨 위까지 말려 올라갔다. 지하는 시준의 가슴에 달라붙어 쪽쪽 소리를 내며 유두를 핥았다.

기분은 좋았다…. 기분은 좋았는데, 지금 이 상황에 시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지하는 의자에 앉은 채로 허리만 쑥 내밀고 시준의 가슴을 빨고 있었다. 그 자세가 꽤나 불편해 보였는데도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게 웃기기도 했다.

계속되던 애무는 결국 삽입까지 이어졌다. 시준은 책상 유리 위에 한쪽 뺨을 붙이고 윽, 윽 소리를 내며 거칠게 움직이는 지하를 받아냈다. 시준의 바지와 팬티는 이미 발목까지 내려가 있었고, 지하는 뒤에서 그런 시준의 허리를 잡고 퍽퍽 소리가 날 때까지 박아댔다.

그 와중에 그는 시준에게 좋냐고 계속 묻다가 시준이 몰아치는 쾌감을 못 견뎌 대답을 하지 못하자 허리를 숙이며 키스까지 해왔다. 아래는 여전히 성기가 구멍 안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찌걱이는 소리와 가파른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커다란 손이 시준의 등허리와 가슴을 이리저리 쓸며 시준을 자극했지만, 이미 뱃가죽을 울룩불룩하게 만들며 쑤셔대는 그의 성기 때문에 거기까지 느끼진 못했다.

하지하가 이상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콱 하며 시준이 느끼는 지점이 사정없이 문질러졌다. 시준은 소리를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모르게 크게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더는 참기 힘들 때쯤 지하가 다시 입술을 맞춰왔고, 시준은 그제야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요 며칠 계속 하지하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한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 며칠 동안 시준은 그에게 넘어가 섹스를 했던 것이다. 3일 연속 이어진 섹스는 시준의 집중력을 흐리게 만들었으며 자제하자는 마음을 무디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지하에게 정색을 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시준은 오늘까지만 그의 집에 찾아가주었다. 그러나 지하는 오전부터 시준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코, 콘돔.”

“…….”

시준은 할 말을 잃고 그의 두 손 위에 곱게 올려져 있는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대방에게서 대답이 없자 지하는 더듬더듬 설명을 해왔다.

“이, 이거, 끼, 끼면, 아, 안 흐르지 않을까?”

“…뭐가 안 흘러?”

“시, 시트에…저, 저, 정액….”

“…….”

“그, 그리고, 원래 이거, 해, 해야 하는 거래. 내, 내가 자, 잘 몰랐어, 준아. 미, 미안해.”

지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다가 계속 없이 하면 시준이 큰일 날 뻔했다고,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시준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어디서 샀어?”

“펴, 편의점에서, 오, 오늘 아, 아침에.”

“네가 샀어?”

“으, 응.”

“…어떻게?”

“그, 그냥, 가, 가서.”

“신분증 검사 안 해?”

“아, 안 하던데.”

시준은 지하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덩치 때문인지 사복을 입으면 미성년자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도 했다. 아니면 원래 미성년자도 구매 가능한 거였던지.

황당함은 잠시뿐이었다. 시준은 처음 보는 콘돔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둘은 침대 위에 발가벗고 앉아 콘돔 상자를 뜯었다.

“다 뜯어?”

“으, 응. 아, 안에, 세, 세 개밖에, 어, 없대.”

“흐음.”

“그, 그리고, 우, 우리 고, 공부한다고 다 마, 말했어.”

“…잘했네.”

“으, 응.”

시준의 한마디에 지하가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시준은 상대의 눈웃음보다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그의 아래에 더 눈길이 갔다. 뭘 하지도 않고 그저 옷만 벗었을 뿐인데 지하의 성기는 이미 완전히 서 있었다.

시준은 눈길을 거두고 손안에 상자를 열어 안에 든 납작한 물건을 꺼냈다. 불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비닐을 뜯자 툭 하고 무언가가 시준의 손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콘돔을 잡자마자 느껴지는 미끌미끌한 감촉에 시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

“왜, 왜?”

“이상해!”

“어, 어?”

지하는 시준이 내던진 걸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 이상해?”

“뭐 묻은 것 같아. 기름 같은 거?”

“기, 기름?”

“너도 만져봐.”

“으, 응.”

커다란 손가락이 동그란 링을 만지다 투명하게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시준은 지하의 손에 비해 콘돔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되, 되게 야, 얇다. 찌, 찢어질 거 같아.”

“냄새나.”

“내, 냄새?”

“약간 고무 냄새 같은 거.”

“아….”

시준이 인상을 찌푸리자 지하가 냄새를 맡겠다는 듯이 코를 킁킁거렸다.

“넌 안 그래?”

“따, 딸기 향으로, 사, 사 올걸….”

지하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시준은 시무룩해하는 그를 달랠 생각도 못했다. 그의 손바닥 위에 있는 콘돔을 찔러보다가, 시준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말했다.

“나 이거 만지기 싫어.”

몇 번 만져보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벌써 불쾌하게 미끈거렸다. 시준은 더욱더 미간을 구기며 동그란 물체를 노려보았다.

“내가, 내가 해, 해줄까?”

시준의 말에 그새 우울한 표정을 지운 지하는 자신이 해주겠다고 말하곤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그러곤 시준의 대답도 듣지 않고 두 손으로 콘돔 입구의 양 끝부분을 잡았다. 천천히 시준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던 그의 손이 멈칫하는 순간, 시준은 난감한 얼굴로 그런 지하를 내려다보았다.

“어…준이, 준이…안, 안 서, 섰….”

“아, 뭘 해야 서지! 그리고 나 저거 만지고 소름 돋아서 그래.”

“나는, 나는, 지, 지금….”

“됐고, 빨리 세워봐.”

시준은 황급히 상대방의 말을 끊었다. 발기가 좀 늦었을 뿐인데 왠지 그에게 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저를 보는 지하의 눈빛이 째려보는 것도 같았다. 시준은 콘돔을 만지기 전까지는 정말 반쯤 서 있었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지하가 입으로 해줄 것처럼 고개를 숙여왔기 때문이었다.

“안 되지. 침 묻잖아.”

“아, 그, 그러네.”

“자, 손. 여기 올려.”

시준은 그의 손을 잡고 이끈 뒤 성기를 쓰다듬게 했다. 크게 두어 번 훑어주자 이윽고 시준의 성기도 완전히 발기했다.

“으…. 됐다.”

“하, 할게.”

그는 다시 손을 내려 콘돔을 손에 쥔 후, 시준의 벌린 다리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콘돔 입구를 귀두 부분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쉽게 껴지지가 않았다.

“아, 느낌 이상해…. 빨리 좀 해봐.”

“말려, 말려, 있어서, 펴, 펴야….”

“이거 거꾸로 한 거 아냐?”

“어…어?”

“뒤집힌 거 같은데.”

결국 둘은 머리를 맞대고 상자 겉면에 간략하게 적혀 있는 사용법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공기를 빼고, 말린 부분이 바깥쪽으로 오게, 천천히 끝까지 내린다.

지하는 더듬거리면서도 설명서 내용을 계속 중얼거렸다. 그는 그러고 나서야 간신히 시준의 성기에 콘돔을 끼울 수 있었다.

“아…. 이거 좀….”

“이, 이상해?”

“아니, 그게… 장갑 낀 거 같아.”

“장, 장갑?”

“…아냐.”

시준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조금 답답했지만, 콘돔을 쓰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일부러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낯선 감각에 중심부가 자꾸 크기를 줄어들려 했다. 속으로 걱정이 되던 와중에 지하가 신기한 걸 보는 것처럼 시준의 성기를 손가락으로 만져댔다. 다행히도 얇긴 얇은 건지 앞에서 만지는 촉감이 느껴질 정도였기에 시준은 꼿꼿하게 크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도, 나도 끼, 낄게.”

“빨리 해봐. 느낌 이상할걸?”

“으, 응.”

그러나 한 번 해봤기에 수월하게 성공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콘돔을 끼우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아, 왜, 왜 이러지. 자, 잠깐, 준아.”

“…….”

시준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은근슬쩍 자존심이 상해오기 시작했다.

“아, 찌, 찢어졌다. 너무, 너무, 버, 벌렸나.”

“…다시 해. 하나 더 있잖아.”

“으, 응.”

눈치를 보며 시준이 건네는 콘돔을 받아 든 지하는 간신히 콘돔 입구에 귀두 부분을 넣는 것에 성공했으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돌돌 말려 있는 채로 귀두를 터질 것처럼 꽉 조이고 있는 그건 내려갈 것 같지도 않았다.

“조, 조금, 아, 아프네.”

“…빼.”

“그, 그치만….”

“…사이즈 안 맞는 거니까 빼.”

어쩐지 너무 작아 보인다 했지.

지하는 시준의 말을 듣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콘돔을 벗겼다. 그와 동시에 시준 역시 자신의 성기에 씌워져 있던 걸 한 번에 잡아당겨 벗겨버렸다.

“준이, 준이는 왜, 왜?”

“안 해!”

시준은 홧김에 휙 뒤로 누우며 이불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억울했다. 분명 자신은 평균 사이즈보다 큰 게 분명했는데, 하지하 저게 너무 크니까 괜히 비교가 됐다.

그렇다고 이유도 모른 채 옆에서 쩔쩔매는 그를 가만 둘 수는 없었다.

“너 안 되잖아. 그럼 못하는 거지.”

“그럼, 그럼, 입, 입으로, 내가….”

“됐어. 이상한 거 잔뜩 묻었어.”

“안, 안 묻었는데.”

“그냥 여기 들어오기나 해.”

시준은 그렇게 말하곤 이불 한쪽을 들춰 올려 지하가 들어오기 쉽게 만들어줬다. 울상을 지으면서도 꾸물꾸물 이불 안으로 들어와 누운 지하는 품 안 가득 시준을 안았다.

“다음에 하자.”

“내가, 내가, 또 사, 사 올게.”

“사이즈 큰 걸로.”

“으, 응.”

“그건 내가 껴도 될걸?”

“마, 맞아.”

“씻는 건 이따가 하자.”

“으, 응.”

시준은 볼을 비벼오며 기분 좋게 웃는 지하를 확인했다. 그리고 말할 타이밍을 쟀다. 오늘 그의 집에 오면서 했던 결심을 들려줘야 했다.

“허리나 주물러. 어제 많이 했어.”

“아, 아파?”

“조금.”

마사지를 해줄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그를 잡아 누르고, 시준은 마주 보고 안은 채 해달라고 말했다. 지하는 그 말에 몸을 딱 붙이고선 두 손을 시준의 등 뒤로 돌려 열심히 허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뻐근한 감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원했다.

시준은 이때다 싶어 지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겨울방학 끝날 때까지만 하지 말자.”

“…어?”

허리를 만지던 손이 우뚝 멈췄다. 지금 들은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이 놀란 사람처럼 순식간에 굳어졌다.

“누나가 한 말도 신경 쓰이고… 아무튼 좀 참아야 할 것 같아.”

“그, 그래도, 그래도….”

“3일 동안 계속했잖아.”

“조심, 조심하면, 그러면….”

“너 잘 참잖아. 더 참아봐.”

결국 동그랗게 떠진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아니, 울 정도야?”

“누나, 누나한테는, 내가, 내가 잘, 잘 말하면, 안, 안 될까?”

턱도 없는 소리였다. 지하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의 누나가 시준에게 한 말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지유는 그의 동생과 떨어져 있는 것이 좋을 거라 말하곤 시준에게 먼 곳으로의 이사를 권했었다. 전학이나 집 문제는 그녀가 해결해주겠다며. 그리고 그건 시준에게도 나쁘지 않은 권유였고 조언이었다. 그 당시 지하 옆에 시준이 있는 것 자체가 지하뿐만 아니라 시준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걸 그녀만이 인지하고 있었다.

결국 시준의 의사를 더 존중해준 그녀 덕분에 전학까지 가진 않았지만, 시준이 고민 끝에 그러겠다고 말했다면 지금 이렇게 둘이 사귀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사이 시준이 원하지 않던 고등학교에 가게 된 건 별개의 일이었다. 그녀도 그녀의 아버지가 또다시 개입하리란 건 예상치 못했을 터였다.

시준은 훌쩍훌쩍 우는 지하의 등을 토닥여줬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계속해서 속삭여줬다. 나도 정말 하고 싶은데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며, 네가 정 그러면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 가끔씩은 하자고. 나도 너랑 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말을 달콤하게 중얼거렸지만 지하는 끝끝내 알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준이 보기에 지하는 잘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설득한 보람이 있어 보였다.

둘은 다시 서로의 집을 오가며 공부를 했고, 전처럼 간혹 손장난이나 치며 키스를 했다. 몸은 섞지 않은, 담백한 스킨십들만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남은 방학까지 무사히 보내나 했는데.

“준아, 나, 나, 독립, 독립하, 하기로, 해, 했어.”

“…뭐?”

“독…아, 자, 자취.”

“…….”

“혼자, 혼자 사, 사는 거.”

하지하가 폭탄선언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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