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1. 시작 (1/10)

1. 시작

시작은 단순했다.

“이, 이거 받아, 준아.”

“…….”

시준은 지하가 건네주는 종이상자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신발상자로 보이는 그 안에는 필시 며칠 전 저가 갖고 싶다고 한 운동화가 들어 있을 터였다. 시준은 지하의 손처럼 위아래로 살짝 떨리고 있는 상자를 무시한 채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왜 그래?”

“…….”

“어, 얼른 받아. 서, 선물이야.”

언제부터였지?

말더듬이 하지하는 시준의 이름을 더듬어 부르지 않았다. 시준은 새삼스레 깨달았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수업이 끝나고 지하의 집에 들러 공부를 했다. 열심히 공부한 후에는 비싼 게임기로 한바탕 게임을 즐긴 다음에 저녁시간을 기다리며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는 그런 시준의 옆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정확히는 시준을 가르쳤다- 게임 상대가 되어준 뒤, 저녁 준비를 한다며 주방으로 내려갔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생각났다는 것처럼 다시 2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왔다. 한 손에는 누가 봐도 선물로 보이는 종이상자를 들고서.

“선물? 갑자기?”

시준은 일부러 모른 척 되물었다. 그러나 한결 나긋해진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지하는 그 목소리에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수줍게 말을 이었다.

“누, 누나가 나, 나랑 준이 시, 신으라면서 사, 사다 줬어.”

“누나가?”

“으, 응.”

“안 그러셔도 되는데.”

자신이 듣기에도 가증스러웠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앞에 있는 멍청이는 이런 반응을 좋아했다.

“고마워.”

“아, 아니야.”

고맙다는 말에 누가 봐도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시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몸짓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달리 보였다.

“나, 나 얼른 저녁 주, 준비하러 가, 갈게.”

“그래. 기대할게.”

“으, 응.”

평소라면 저 멍청이는 우물쭈물거리면서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을 봐주었으면 하는 뜻을 조심스레 내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시준에게 기대된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수줍게 웃으면서 사라졌을 뿐이다.

시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신발상자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버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렇게 갖고 싶었던 브랜드 신상 운동화였는데 막상 손안에 들어오게 되니 흥이 식었다.

아마 같이 신으라면서 누나가 사다 줬다는 말 때문이겠지.

그 말은 똑같은 운동화 두 개를 샀다는 뜻이었다. 지하는 시준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모두 사주었지만 그냥 주지는 않았다. 적어도 시준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지하가 시준에게 준 모든 것은 똑같은 것으로 그의 손에 들어가야만 했다. 지금 시준이 입고 있는 교복 역시 그가 사준 것이었고, 그밖에 평소에 입는 옷, 신발, 양말, 속옷까지 전부 지하가 알아서 사다 바친 것들이었다. 그러나 분명 선물해준 것들과 똑같은 제품들이 이 집 방 한 구석에 모여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 개씩만 사들였을 리 없었다.

시준에게 남들보다 과한 집착을 보이는 그는, 시준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이 사준 것으로만 몸에 걸치길 바랐다. 그리고 시준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조차 자신이 사준 것이길 바랐다. 그저 바람으로만 끝났으면 모르겠지만 그는 돈이 넘쳐나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초반에야 공짜로 사다 주고 먹여준다는 것에 좋아했던 시준이었지만 끝을 모르는 집착에는 넌덜머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어수룩한 얼굴 뒤로 숨어 돈을 무기로 삼아 휘두르는 지하는 솔직히 시준이 보기에 저보다도 쓰레기 같았다.

그래서 시준은 종종 지하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곤 했다. 가령 저녁으로 10첩 반상을 준비한 지하 앞에서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며 치킨을 주문한다던지, 역시 밥보다는 치킨이라며 그 앞에서 한 마리를 다 먹어치운다던지 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지하는 그럴 때면 약간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만 시준이 하는 일들을 말리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치킨은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원래는 지하도 요리까지 하지는 않았었다. 그의 집은 부유했으며, 집에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고용인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을 기점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시준은 그때만 떠올리면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몇 년 전, 시준은 누군가 선물해준 새 옷을 입고 지하의 집에 놀러 갔었다. 사실 지금은 무슨 옷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하는 선물해준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저 부모님 중 한 분이 집에 사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계절은 여름이었고 무더운 날씨에 집에 있던 아무 티셔츠나 주워 입었을 뿐이었다.

몇십 년 만에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는 기록적인 더위를 뚫고 지하의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 못마땅한 상태였기에 불만스러운 날이었다. 물론 지하가 항상 개인 운전기사와 같이 데리러 오기에 편하게 갈 수 있었지만, 밖에 있는 그 짧은 시간 겪었던 더위는 시준에게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그 옷은 누, 누가 사, 산 거야?”

그러나 그런 불쾌감을 누르고 평소처럼 지하의 비위나 맞춰주면서 원하는 걸 받아먹을 셈이었던 시준은 그가 얼굴을 굳히며 정색을 하자 황당해졌다.

“내, 내가 주, 준 옷이 아, 아냐. 주, 준이가 사, 산 거야?”

이리저리 눈동자를 정신없이 굴리며 손톱을 깨물고 혼잣말을 할 때도 지하는 말을 더듬었다. 초조해하는 그 모습은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시준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도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이거 엄마가 나 입으라고 사준 것 같아.”

“버, 벗어.”

“뭐?”

“버, 벗어, 주, 준아.”

그리고 정말로 벗겨줄 것처럼 다가오는 지하를 보며 시준은 폭발했다.

“야, 씨발. 내가 왜 벗어? 이거 우리 엄마가 사준 거라고 말했잖아, 병신아.”

“그, 그래도. 내, 내가 주, 준 것만 이, 입어야….”

“너 개야? 개소리 존나 잘 낸다.”

“아, 아닌, 아닌데….”

“뭘 네가 준 것만 입어야 해? 씨발, 어이가 없어서.”

“주, 준아…. 사, 상냥하게…마, 말 해, 해줘….”

시준은 그 와중에 지하가 상냥하게 말해달라는 둥, 친절하게 대해달라는 둥 조르는 걸 보며 더는 안 되겠다 싶어졌다.

“야.”

“으, 응?”

“내가 다른 사람이 준 옷 입는 게 그렇게 싫어?”

“시, 싫어. 너, 너무 시, 싫어. 여, 역겨워.”

“아, 그래. 그럼 네가 옷을 만들지그래?”

“…어, 어?”

“다른 사람이 사준 건 싫으면서 다른 사람이 만든 건 괜찮다는 거 좀 웃기지 않아?”

목화꽃이라도 심어서 네가 실 뽑고 천 짜서 옷 만들면 되겠네.

네가 사주면 뭐 해, 그거 다 네가 싫어하는 다른 사람 손 탄 건데.

결벽증 있는 거 티 내려면 일관성 있게 좀 해줄래?

시준은 진심을 담아 비꼬며 말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는 지하를 보고 속은 시원해졌지만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벗으면 뭘 줄 거냐는 핑계로 새 옷이나 다른 물건을 받아낼 수도 있었는데.

치미는 짜증을 참는 일이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 그 일은 지하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오며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한 달 후.

오랜만에 어른들까지 모여서 먹는 저녁식사 시간에 지하는 밥을 먹다 울어버리고 말았다.

“준, 미, 미안해…. 목, 목화가…주, 죽어버렸어. 계, 계속, 주, 죽어서…오, 옷을 모, 못 만들 거 가, 같아….”

시준은 당황했다. 갑자기 목화 타령을 하며 울길래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한 달 전 일을 퍼뜩 떠올리고는 울고 있는 지하를 급하게 달랬다. 의아해하는 어른들에게 지하는 떠듬떠듬 설명을 했고, 시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아, 그게 농담이었는데…. 지하가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네요. 제 잘못이에요. 괜찮아, 지하야. 나 그거 농담이었어. 네가 너무 신경 쓰길래….”

지하는 간신히 울음을 그쳤지만 밥을 먹는 내내 시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만 좀 하라고 평소처럼 성질을 부리고 싶어도 어른들이 계셔서 차마 그러질 못했다. 시준의 부모님과 지하의 아버지, 누나까지 있는 자리였다. 모두 지하와 시준이 사이좋은 친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시준은 그에게 자신의 말이 너무 과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시준을 엿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면 좋았을 텐데, 지하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목화로 실을 뽑아 내지 못했다며 슬퍼했고 시준에게 그가 직접 지은 옷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임시방편이라며 천과 재봉틀까지 직접 구매했던 그는 생각보다 옷을 만드는 게 어려웠다고 사과를 해왔다.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었지만 지하가 끝끝내 땅을 파고들 것처럼 우울해하자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명령으로 그를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뜨개질이라도 하든가.”

그 말을 들은 그가 놀라워했던가, 좋아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옷을 만들기 위해 목화를 재배했다는, 누가 들으면 웃음조차 나오질 않을 농담으로 생각할 그 말을 지하는 실제로 해냈고, 그래서 시준이 말한 위로를 그대로 실천했다. 시준은 겨울마다 하지하가 뜨개질로 만들어주는 니트와, 목도리, 장갑 등을 그 계절 내내 입고 다녀야 했다.

지하는 시준이 알려준 사고방식을 음식에까지 확장시켰다. 그전까지 자신이 사주는 밥을 먹는 시준을 보며 뿌듯해하던 그는, 이제는 시준이 그가 직접 만든 요리만 먹기를 바랐다. 지하의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와 과일들,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 같은 것을 재료로 삼았고 고기나 그밖에 필요한 것들은 그가 직접 구매했다.

새로 배운 요리라며 내밀어지는 식탁 위 접시를 볼 때마다 시준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집어삼켰다. 말 한마디의 파장이 커도 너무 컸다. 이 미친놈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준이 한 말이 자승자박이 되었음은 틀림없었다.

결과적으로 시준이 지하가 만든 음식만 먹고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둘은 같이 살지 않았을뿐더러 그가 만든 음식은 먹을 만했으나 시준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맛은 내질 못했다. 시준은 지하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었지만 그의 우울로 인해 받을 눈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하루 동안은 온전히 그가 만든 요리만을 먹기로 했다. 이게 모두 중학교 때 일이었다.

그 후 지하가 병원에 한 번 입원한 적이 있었다.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시준에 대한 과도한 집착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퇴원 후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별로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18살이 되었어도 지하는 여전히 시준을 신처럼 숭배했고, 시준은 이미 그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쩔 땐 그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준아, 마, 맛있어?”

“아, 응. 맛있네. 이거 네가 다 한 거야?”

“으, 응. 어, 어제부터 주, 준비했어.”

지하와 약속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날이 아니어도 시준은 그의 집에서 공부를 할 때면 저녁에 지하가 만든 밥을 먹곤 했다.

식탁 위에는 둘이서 먹지도 못할 많은 양의 반찬들이 올라가 있었다.

힐끔힐끔.

대놓고 훔쳐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시준은 먹고 싶은 것만을 골라 입에 넣었다. 시준이 무얼 먹는지 지하는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시준이 손 한번 대지 않은 반찬은 그대로 사라져 다음번 식탁 위에 올라오지 않을 터였다.

이 새끼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며 시준은 식사를 마쳤다.

“아직 다 안 먹었네? 난 다 먹었는데. 먼저 일어날게, 천천히 먹고 와.”

“아, 아냐, 나, 나도 이, 이제 다, 다 먹, 먹었어!”

다 먹었다는 지하의 밥그릇에는 밥이 거의 그대로 있었지만 시준은 모른 척 그러냐고 대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허둥지둥 시준을 따라 일어나느라 급하게 의자를 밀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반응이었다. 아무리 무시하고 욕을 해도 지하는 늘 한결같았다. 한결같이 시준에게 달라붙어 그만을 보기를 강요했고,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은 그의 강요를 시준이 어느 정도쯤은 부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시준은 그가 휘두르는 무기에 굴복한 것이었으나 그것이 지하에게 온전한 굴복으로 여겨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지하는 늘 시준에게 구걸하고 있었고, 시준은 오늘에서야 그가 구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기도 했다.

“오늘 거기 가볼까?”

“거, 거기?”

“내 방.”

“아, 아아! 으, 으응. 가, 가자! 내, 내가 새, 새로운 거 많, 많이 준, 준비해 놨어.”

시준은 어느새 자신을 앞서가고 있는 지하의 등을 바라보았다. 한창 예민한 중학교 때는 자신보다 키가 큰 그가 못마땅해 키가 너무 크니 보기 싫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그 말을 들은 지하는 중학교 내내 몸을 움츠리고 굽은 등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해도 큰 키는 가려지지 않았기에 시준은 항상 불쾌한 표정으로 지하를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곧게 펴진 저 등이 다시 움츠러드는 일은 없었다.

그나저나 이 미친놈은 아직도 성장판이 닫히질 않은 것인지 전보다 키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런 의심을 담아 시준은 지하에게 물었다.

“지하야, 너 키 몇이야?”

“나, 나?”

“그래, 너.”

아 좀. 한 번에 알아들어라.

속으로 치미는 짜증을 숨기며 시준은 나름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내었다.

“그, 그게…여, 여름 방학 저, 전에 잰 건데….”

“응.”

“배, 백구, 구십….”

“190?”

“이….”

“192?”

“으, 응….”

아, 씨발 좆같네. 누구는 180을 못 넘고 억지로 올림 해서 말하고 있는데.

지하의 키는 작년보다 2센티 더 자라 있었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지하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 해, 안 가고.”

“으, 응.”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니 왜 갑자기 기분이 상했는지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시준은 그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지하네 집은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주택이라기보다는 저택에 더 가까웠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담장에 둘러진 집은 안에서 길을 잃어도 모를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그 집안의 많은 방들 중에는 오로지 시준만을 위해 꾸며진 방이 하나 있었다.

“…오랜만이네.”

“준이는 자, 작년에 오, 오고 안, 안 왔었어.”

“그런가?”

지하가 또렷하게 발음하는 자신의 애칭을 들으며 시준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말해보라고 시켜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시준이 입을 다물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 듣기로는 방 안 습도와 온도를 조절한다고 했는데 그런 기계 소음 하나 들리질 않았다. 시준은 문 앞에 서서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았다. 만들어진 지 이제 1년 된 이 방은 지하의 방보다 더 컸으며 대부분 시준과 관련된 물건들로 꾸며져 있었다.

새하얀 벽에 걸린 액자에는 시준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사진이 있었다. 유리로 덧씌워진 책장 안에는 시준이 받았던 상장부터 시작해 어린 시절 사용했던 장난감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었다. 간혹 낡아 보이는 가방과 필기도구들도 보였다. 모두 시준이 사용한 것들이었다. 보통 집이라면 버려졌거나 창고에 있었을 물건들은 시준이 사용했었다는 이유로 마치 박물관에 있는 유물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지독하네.

그리고 그걸 보며 만족하고 있는 자신은 더 지독했다.

시준은 아무렇지 않게 평가를 내렸다.

선반 위, 작은 액자들에 끼워져 있는 사진들을-모두 시준의 독사진이었다- 오랜만에 하나하나 구경하는 동안 지하는 그런 시준의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이건 못 보던 거 같은데?”

“아, 이, 이거 어, 어머님이 주, 주셨어.”

커다란 책장이 끝난 한쪽 벽면에는 드레스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옷장이 있었다. 시준이 옷장 문을 열자 굉장히 많은 양의 옷들이 얇은 비닐 안에 들어간 채 셔츠부터 바지, 외투 순서로 구분되어 걸려 있었다.

“우리 엄마가 이걸 다 줬다고?”

“으, 응.”

“언제?”

“어, 어제도 주시고. 지, 집에 노, 놀러 갈 때마다 주, 주셨어.”

“참 나….”

뒤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만 했다. 지하가 시준에게 집착한다는 건 시준의 가족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돕겠다며 알아서 옷을 가져다 바쳤겠지. 도대체가 집착 성향을 고치는 것과 시준의 물건을 주는 것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준의 가족들은 유독 지하에게 약했다. 돈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싸가지 없는 시준의 동생마저 그러는 걸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준은 눈앞에 있는 옷들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것도 있었고, 아닌 것들도 있었다. 대부분 중학교 때나 작년까지 입었던 옷들 같았다. 매년 시즌마다 명품 브랜드의 옷들을 고르고 골라 선물해주는 지하 때문에 시준은 옷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신발은 예외였지만. 그래서 입지 않는 옷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관심도 없었는데 이곳으로 다시 올 줄이야. 시준은 고개를 돌려가며 구경하다가 옷장 안의 서랍이 눈에 띄어 열어보았다.

그러자 뒤에서 다급하게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 준아 잠, 잠깐…!”

서랍 안에는 분명 어제 입었던 것이 분명한 팬티 한 장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 * *

시준이 어제 입었던 팬티를 기억하는 이유는 색깔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아무 무늬가 없는 짙은 빨간색. 입을 때 서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고른 것이었으나 색깔을 보자마자 멈칫했던 기억이 났다. 그나마 새빨간 것이 아닌 채도가 낮은 색이라서 입었던 것인데. 시준은 보여줄 사람도 없는 팬티에 그리 많은 신경을 쏟는 타입은 아니었다.

“…이거 뭐야?”

시준은 엄지와 검지로 서랍 안에 있던 팬티를 들어 올렸다.

“그, 그게, 그게….”

“말해봐.”

몸을 돌리자 앞에는 안절부절못하며 시선을 피하는 지하가 보였다.

“이거 내 팬티지.”

“그, 그건…그거는, 그게….”

“똑바로 말해.”

지하는 계속 똑같은 말만 어지럽게 반복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사방으로 굴려댔다. 대답하기 싫을 때 나오는 정신 사나운 버릇 중 하나였다.

“지하야, 내가 싫어하는 게 뭔지 알지.”

시준은 일부러 말끝을 내리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으, 응.”

“그럼 말해.”

“…준이 거, 거야….”

지하는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양손까지 앞으로 모아 맞잡은 채로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아마 시준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하가 속옷까지 모으고 있다는 것은 사실 시준에게 그리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을 생각해보면 시준이 입지 않는 팬티까지 수집한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서랍 속 팬티가 분명 어제까지 시준이 입었던 팬티라는 것이다.

시준은 별다른 감흥 없이 지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쳐본 팬티에 하얗게 말라붙어 있는 이물질을 발견하고 표정을 달리했다.

“어떻게 가져왔어? 이거 내가 어제 입었던 건데.”

흥미로운 시선으로 손에 든 빨간 천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묻자 지하는 말을 더듬으며 천천히 설명했다. 어제 잠깐 들렀던 시준의 집에서 시준이 씻은 뒤 빨래통에 속옷을 넣는 것을 보고 홀린 듯 훔쳐 왔다고.

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어제 분명 시준을 데려다주면서 엄마의 권유로 지하가 집에 잠깐 들르긴 했었다. 초가을인데도 불구하고 여름처럼 느껴지는 날씨에 시준은 땀을 흘렸고, 그 땀이 식자 찝찝해져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으러 간 것도 맞았다.

“그럼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라는 거네.”

“…처, 처음은… 아닌데…. 자, 자주 있지는 않, 않았어…. 어, 어머님이…빠, 빨래를 바, 바로 하, 하셔서….”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고 있는 지하는 마치 벌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시준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치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이걸로 뭐 했어?”

“…어?”

“뭐 했길래 여기 이렇게 하얀 게 덕지덕지 붙어 있냐고.”

뭘 했는지는 팬티 한 장만 보더라도 빤히 나오는 답이었으나 시준은 그가 어떻게 반응해올지 궁금했다.

궁금이라니. 시준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시준에게 지하는 더 이상 궁금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는 그 머리통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한 적도 있었는데, 반복되는 상황들을 겪으며 이젠 그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 나 다리 아프다.”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를 지으며 시준이 허리를 숙이자 지하가 급하게 방 한구석에 있던 의자를 들고 왔다.

“여, 여기 앉아, 준아.”

“고마워.”

커다란 등받이가 있는 의자는 생긴 것부터 중세 시대 의자처럼 고풍스러웠고, 꽤 비싸 보였다. 의외로 화려한 취향을 가진 그가 직접 골랐을 만한 의자였다. 의자 위에 앉자 푹신한 쿠션감이 시준을 반겼다. 꼭 소파에 앉은 것만 같았다.

시준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뒤 다리를 꼬며 지하를 쳐다보았다.

“지하야.”

“으, 응.”

“화 안 낼게.”

“어, 어?”

저 거지 같은 어, 어 소리 좀 안 낼 수 없나.

시준은 지하에게 되묻지 말고 한 번에 좀 알아들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자신의 흥미를 채워줄 다른 것이 더 궁금했다.

“해봐.”

시준은 아직까지 손가락에 들려 있던 빨간색 팬티를 앞으로 던지며 말했다.

“…어?”

지하가 얼떨결에 몸을 숙여 그 팬티를 받고는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해보라고.”

“뭐, 뭘….”

“네가 내 팬티로 했던 거.”

“…….”

저도 모르게 삐죽 올라간 입꼬리가 느껴졌다. 그것은 필시 명백한 비웃음으로 보였을 테지만 시준은 굳이 웃음을 감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비웃음 속에 들어 있는 경멸을 지하가 눈치채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결국은 이런 식이다.

지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바로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변태 새끼.

시준은 속옷 안에 있는 성기까지 망설이지 않고 한 번에 꺼내는 지하를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단숨에 모습을 보이게 할 줄은 시준도 몰랐다.

성기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팅, 하는 소리가 날 것처럼 튕겨 오르더니 지하의 배꼽까지 닿을 정도로 꺼떡였다. 이미 꺼낼 때부터 한껏 발기한 상태였다. 완전히 서버린 지하의 아래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성기는 유난히 크고 굵었으며, 그래서 징그러웠다. 핏줄이 투둑투둑 튀어나와 하늘 높이 치솟은 모양새도 보기 싫었다.

씨발, 좆대가리까지 클 줄은 몰랐지.

내심 지하의 성기가 작길 바랐던 시준의 기대가 처참히 부서졌다.

지하는 손에 든 시준의 팬티 안에 그대로 자신의 성기를 넣고 얼마 남지 않은 팬티의 나머지 천을 돌돌 말아 성기에 감쌌다. 한 손으로 그 위를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자 이번에는 시준이 되물었다.

“넌 하란다고 진짜로 해?”

“…아, 아…그, 그게….”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기다 힐끔힐끔 아래에 있는 시준의 얼굴을 훔쳐보며 성기뿐만 아니라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는 것까지 다 보였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그 모습은 시준이 멈추라고 해도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위 준비를 하는 지하를 보며 시준은 속으로 늦어도 너무 늦게 알았다고 한탄했다. 지하가 시준을 생각하며 자위를 한 건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존나 입지 않은 게 어디야, 씨발.”

“…찌, 찢어질 거 가, 같아서…. 요, 요즘은 자, 잘 아, 안 해.”

저 새끼가?

그는 지금 시준의 사이즈가 작다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야, 꿇어.”

화는 나지만 지금 네 입으로 내가 작다고 말하는 거냐고 멍청하게 물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에 시준은 지하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가 바닥에 앉으면 그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키만 징그럽게 큰 새끼라 그런지 시야가 그렇게 낮아지진 않았다. 그래도 고개를 위로 올리는 것보단 나았기에 시준은 정면으로 보이는 지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나 볼 생각 하지 마.”

소름 돋으니까.

“으, 응.”

달뜬 숨소리를 감출 생각도 않고, 눈을 내리뜬 지하가 대답했다.

“해봐, 어디.”

방 안의 온도가 높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눈앞의 미친놈은 마치 이 공간에 저 혼자 있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탁, 탁, 탁, 살끼리 맞부딪치는 소리와 성기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찌걱이는 소리까지. 그 사이사이로 그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고개를 숙일 거라는 시준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하는 그저 눈만 내리깔았다. 시선은 그의 성기를 반만 감싼 빨간색 팬티에 둔 채, 한 손으로는 드러난 성기의 표면을 위아래로 계속 움직였다. 귀두 끝에선 쉴 새 없이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굴욕적이게도 시준의 팬티는 지하의 성기를 다 가리지 못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시선을 위로 올리면 살짝 벌린 입으로 밭은 숨을 내쉬고 있는 지하의 얼굴이 보였다.

속눈썹이 저렇게 길었던가.

시준과 지하의 거리는 고작해야 한 걸음 정도였고, 그래서 시준은 지하의 표정 하나하나를 자세히 뜯어볼 수 있었다.

온몸의 열이란 열이 그의 얼굴로 몰린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눈가가 좀 더 빨갰는데, 성기를 문지르는 소리가 커질 때마다 빨개진 눈가 주변에 있는 기다란 속눈썹이 같이 떨려왔다. 그는 간간이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지하의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건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두 시준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낯설었다. 그리고 야했다.

시준은 지하가 자위할 동안 모욕 섞인 말을 내뱉으며 수치를 주려던 것도 잊고 집중해서 앞을 바라봤다. 이따금씩 눈두덩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아 내리뜬 눈동자가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같았다.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한 걸까.

지하의 성기는 그가 처음 꺼냈을 때보다 더 커져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손을 흔드는 그의 속도도 빨라져갔다. 끝이 다가오는 것인지 입 밖으로 읏, 읏거리는 신음 소리도 새어 나왔다. 시준은 예상보다 이르게 오는 것 같은 지하의 절정에 이 새끼 이거 조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는 기둥 중간에 감싸인 천 위로도 손을 움직였다. 맨손보다는 느껴지는 감촉이 덜할 텐데도 끝끝내 그 팬티를 버리지 않았다. 살갗이 비벼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준은 다시 한번 지하의 내리뜬 눈을 바라봤다. 묘하게 빗겨간 그 눈은 좀 전과 다르게 시선이 한군데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간 시준은 그가 무얼 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발, 그것도 실내용 슬리퍼 윗부분에 튀어나온 시준의 발가락이었다.

시준은 일부러 양말 속에 있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읏…!”

그리고 꼼지락거리자마자 지하가 사정했다. 정액은 정확하게 시준의 발가락 위로 쏘아졌다.

“…….”

“하아, 하아….”

양말 위로 퍼지는 축축한 느낌에 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 * *

시준은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쌍욕까지 퍼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당황한 지하가 아래를 정리할 생각도 못하고 덜렁거리며 쫓아오길래 시준이 기겁해서 말렸다. 뒤처리나 하라고 그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 시준은 복도에 서서 가만히 숨을 골랐다.

미친 새끼가 어디다 대고.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면서도 시준은 마지막에 우연히 보았던 지하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그 표정은 평소 그가 지었던 우는 얼굴과는 달랐다.

더… 좀 더, 뭐라고 할까.

홀린 듯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던 시준은 갑자기 열리는 방문에 흠칫 놀라 옆을 돌아봤다.

“준아, 여, 여기 야, 양말….”

덜렁거리던 성기를 바지 안으로 치우고 나온 지하가 새 양말을 건네줬다. 시준은 지하의 손바닥 위에 있는 양말을 노려보다 휙 하고 뒤를 돌아 계단을 내려갔다. 방에서 정액이 묻은 양말과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왔기 때문에 지금 시준은 맨발이었다. 그러나 복도에서 쭈그리고 앉아 다시 새 양말을 신을 생각은 없었다.

“어, 어디….”

“집 갈 거야.”

“버, 벌써? 더, 더 있다가 가면 안, 안 돼?”

시준은 급하게 매달려오는 목소리에 대꾸도 않고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에 타자마자 바로 문이 열리고 지하가 따라 들어왔지만 시준은 창밖만 쳐다본 채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 아저씨 지, 지금 오신대.”

“…….”

“나, 나도, 가, 같이….”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도 마.”

시준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옆자리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얌전하게 떠난 지하를 의아해할 새도 없었다. 시준은 벌써 왔냐는 가족들의 물음을 뒤로하고 집에 도착하마자 샤워를 했다. 이상하게도 지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 찡그린 듯한 눈과 힘준 턱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지하가 나타났다.

꿈속에서 지하는 사정하는 순간의 표정을 지으며 긴 손가락으로 시준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손가락이 이렇게 생겼던가.

막상 구경할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 꿈에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길고 부드러웠다. 한 손으로 시준의 성기를 감싼 지하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시준의 기둥을 붙잡고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준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갔다.

꿈이야, 이건 꿈이야.

되뇌면서도 허리가 자꾸만 움직였다. 지하의 손가락은 소름이 돋을 만큼 매끈거렸다. 그는 뒤로 갈수록 위아래로 움직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엄지로 시준의 귀두 부분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아, 아.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감촉에 시준은 비명을 내질렀다. 더 이상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준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지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시준은 그대로 사정했다.

“…준아, 준아!”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시준의 눈앞에 보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 보였다.

“이, 일어나.”

“…네가 왜 여기 있어?”

“오, 오늘 토, 토요일이야. 어, 얼른 이, 일어나.”

시준은 지하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꿨던 꿈이 아직도 선명했던 탓이다. 현실과 구분되지 않았던 꿈속. 시준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물었다.

“너 언제 왔어?”

“하, 한 시간 전에.”

“뭐?”

그럼 여태까지 자는 모습을 구경했다는 말인가 싶어 시준에게서 절로 날카로운 소리가 나갔다. 혹시나 꿈에서 느꼈던 그 감촉이 현실이었던 걸까 봐 소름이 돋았다. 시준이 어제 봤던 지하의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바, 방에는 조, 조금 전에 드, 들어왔어.”

노려보는 눈빛에 지레 움츠러든 지하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대답해왔다. 시준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지금 몇 신데?”

“여, 여덟 시.”

“…….”

어쩐지 어제 쉽게 돌아간다 했다.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시준이 지하의 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요즘은 아침은 안 먹어도 되는 것처럼 굴더니 다시 도돌이표였다. 과거에는 시준도 그의 지긋지긋한 밥 타령에 지쳐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발작하는 지하 때문에 어른들 눈치가 보여 이제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알겠으니까 나가.”

지하를 이대로 자신의 방에 두기에는 찝찝했다. 어제처럼 팬티를 훔쳐 갈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그는 시준의 방 안에 카메라와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한 전적이 있었다.

멍청한 하지하는 카메라와 녹음기를 설치해도 되냐고 시준에게 대놓고 물어왔었고, 시준은 싫다고 대답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미쳐도 이상하게 미친 그는 시준의 대답에 쉽게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하가 병원에 가기 전이었기에 그의 이상한 행동들을 어른들에게 알릴 생각도 못 했었다. 결국 시준은 카메라와 도청은 해킹이 많다며 내 모습을 다른 나라에 퍼뜨릴 생각이냐는 말로 그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지하는 시준이 찾아준 뉴스 기사까지 보더니 기겁하며 그 후로 카메라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이게 모두 중학교 때 일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돈 많은 놈이 미치면 저럴 수도 있구나 싶었는데, 하지하는 진짜였다.

“…저, 저기….”

“또 왜? 나 지금 일어나서… 뭐 해?”

침대 옆에 서 있던 지하가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직 누워서 좀 더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던 시준은 너 혼자 나가라고 할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하가 시준이 덮고 있던 이불 끄트머리를 잡고 조금씩 끌어내리고 있었다. 시준은 이상한 그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곧 소리 없이 경악하고 말았다.

“이, 이거….”

좀 전에 누웠다 일어나면서 덮고 있던 이불이 허리 밑으로 내려간 듯했다. 시준은 재빠르게 튀어 올라 허벅지 아래로 내려가버린 이불을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누가 볼세라 급하게 허리 위로 덮어버렸다.

씨발, 씨발.

속으로는 연신 욕이 튀어나왔다. 지하를 보고 너무 놀라서 바지 안이 젖어버린 것도 잊고 있었다.

꿈속에서 했던 사정은 현실에선 몽정이 되었다. 얇은 잠옷 바지 가운데는 젖어 있었고, 자다 일어나서 힘을 받은 시준의 아래쪽은 살짝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있는 힘껏 놀라도 시들지 않은 자신의 건강함에 만족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순간 고민이 들었지만, 우선 지하가 지금 이 모습을 봤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어제처럼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도, 도와, 주, 줄….”

“입 다물어라.”

“…으, 응….”

거기서 멈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악문 대답에 시무룩해하던 그는 어디서 이상한 용기를 얻었는지 시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준아, 나, 나 그럼…. 어, 어제처럼…한, 한 번만….”

어제처럼, 이라는 그 한마디에 시준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지하를 쳐다봤다.

“하, 하면…여, 여기서….”

“…….”

안, 안 될까.

지하는 시준의 얼굴을 힐끔힐끔대며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로 웅얼댔다. 그 꼴을 보니 그가 하는 말이 시준을 열받게 했다는 걸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는 끝끝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마치고 양손을 모아 터질 것처럼 커다래진 바지 앞을 가렸다.

“이, 씹…!”

큰 소리로 욕을 내뱉으려던 시준은 순간 집에 부모님과 동생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시준은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낮췄다.

“너, 그거, 죽여. 알아들어? 좆… 씨발, 좆 세우지 말라고…!”

“그, 그게….”

바로 어제였다. 하지하가 시준을 반찬 삼아 자위한다는 것을 들킨 것이.

그랬는데도 지하는 바로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시준의 앞에서 자위를 하고 싶다며 조르고 있었다. 시준은 어제의 자신을 후회했다. 그렇게 해보라며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 미친놈은 어제 그 일을 일종의 허락으로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시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만히 서 있는 지하를 옆으로 밀쳤다.

“너 그거 가라앉히기 전에 밖으로 나올 생각 마.”

“으, 응.”

“내 방에서 하면 뒤진다, 진짜.”

“…으, 응.”

“나 씻고 올 때까지 원상태로 만들어 놔.”

“…….”

“대답 안 해?”

“으, 응.”

“…애국가라도 불러.”

“으, 응…. 동해물과… 백두산이….”

아, 돌겠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침대 옆에 서서 애국가를 부르는 지하를 뒤로하고 시준은 방을 나왔다.

“흑…. 준아…. 너, 너무 아, 아파….”

그러나 씻고 돌아온 시준을 반겨주는 것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배를 감싸 쥐고 있는 지하였다.

* * *

시준은 혹시나 부모님이 지하에게 간식이라도 가져다주겠다고 들어올까 걱정했으나, 알고 보니 두 분은 방에서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지하는 누가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집에 들어온 것이다.

비밀번호를 바꾸든가 해야지.

그래도 가족 중 누군가가 방 안에 들어갈 일은 없어 보여서 시준은 천천히 씻고 나온 참이었다. 이 정도 됐으면 지하의 그것도 작아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하는 계속해서 앞을 부풀리고 있었고, 이제는 배가 너무 아프다며 소리 내서 울고 있었다.

시준은 당황했다. 지하가 이렇게 아프다고 우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야, 너 왜 이래?”

“모, 흑, 모르, 겠어.”

시준이 급하게 몸을 숙여 그를 일으켜보려 했지만 지하는 윽, 소리를 내며 다시 무너졌다. 그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보였다. 시준은 이 거구를 혼자서는 도저히 짊어지고 갈 수 없다 판단하고 부모님을 깨우기 위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발작과도 비슷한 종류가 온 것 같아서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준아….”

그러나 지하가 그런 시준의 손목을 잡아채며 말렸다.

“가만히 좀 있어봐! 아빠 데리고 올 테니까 기다….”

“아, 아니, 아니…!”

“뭐가 아냐!”

“나, 나…. 마, 만지면, 안, 안 돼?”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 급히 거실로 나가려던 시준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흑….”

지하는 어느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앞을 움켜쥐고 있었다.

“씨발, 너 앞으로 나 보면서 좆 세우기만 해봐.”

시준은 지하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성기가 있을 법한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눈을 질끈 감은 상태였기에 손이 자꾸 허공을 헤맸다. 결국 짜증이 난 시준은 다시 눈을 뜨고 지하의 성기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내가 이 짓까지 해야 하다니.

순간적으로 자괴감이 몰려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그는 아프다는 소리를 내뱉으며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둘까.

시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제와 똑같이 징그럽게 일어나 있는 지하의 성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문밖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시준의 손길이 다급해졌다. 뭐가 됐든 지금 하지하와 자신의 모습은 누가 보면 안 될 만큼 변태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아프다고 울면서도 끝까지 시준을 나가지 못하게 하던 지하는 사정을 하면 아픈 게 덜할 것 같다고 말해왔다.

“너 일부러 그래?”

“흐으…아, 아냐.”

“배 아프다면서. 그게 좆이랑 무슨 상관인데.”

“거, 거기도 아, 아파…. 배, 배도 아픈…데….”

그러고 보니 지하는 정말 아프긴 아픈지 상체를 앞으로 숙여가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바닥을 짚고 있는 주먹 쥔 손은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코를 훌쩍이며 말하는 사이사이에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검은색 바지 앞은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이 상태로는 부모님을 불러와도 못 볼 꼴만 보여드릴 것 같았다. 남의 집 아들이 발기한 모습을 도대체 누가 보고 싶어 할까 싶었다. 결국 시준은 들으라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네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거실에 있을 테니 끝나면 창문 열고 환기 시키라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안, 안 나가면, 안, 안 돼?”

“뭐, 나보고 여기 있으라고?”

“으, 응…. 어, 어제처럼….”

“무슨 개소리야. 어제는 내가… 아니다. 끝나면 나와.”

하지만 시준은 지하의 옆에 앉아 그의 자위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나가려는 순간 지하가 울면서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거짓말일 리는 없었다. 그는 시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정말로 혼자서는 자기 위로도 못할 만큼 아프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아래는 세우고 있다니.

시준은 지하의 성향이 의심됐지만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갈 여유는 없었다. 누군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끝내야 했다.

시준은 지하의 성기를 휙 소리가 나도록 잡아챘다.

“아윽!”

그러자 지하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안 그래도 굽혀진 허리를 더 숙여왔다. 그렇게 숙이면 움직이질 못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야 했는데, 시준은 지하의 성기를 손안에 쥔 채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성기가 시준의 한 손에 다 잡히지 않을 만큼 크다는 것보다도, 그 보드라운 느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시준을 만지던 그의 손가락보다도 더했다. 시준은 뚫어져라 지하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분명 생긴 것은 저렇게 징그러운데. 핏줄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고 성기 끄트머리에 있는 귀두는 무식하게 크기만 했다. 크기는 몰라도 모양새만은 자신의 것이 훨씬 나아 보였다.

그랬는데도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는 솜털 같은 감촉에, 시준은 아주 잠시 동안 손에 쥐고 있는 이 흉흉한 물건이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연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보기와는 다르게 소름이 돋을 만큼 보드라웠고, 또 뜨거웠다.

“흐윽, 준아…. 아…준아, 읏.”

시준이 손안의 감촉에 놀라 굳어 있는 동안 지하가 참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여댔다. 고통에 고개도 들지 못하던 그는 아픈 것도 잊은 사람처럼 몸을 곧게 세우고 시준의 손바닥에 성기를 마찰시켰다.

신음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시준이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았다. 아픈 거 맞냐는 소리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넋이 나간 듯한 그의 표정에 시준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지하의 눈이 풀려 있었다. 붉게 물든 눈가는 어제와 똑같았지만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어제와는 다르게 흐리멍덩한 눈은 어딜 보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벌어진 입에서는 밭은 숨이 아닌 낮은 신음 소리만 쏟아져 나왔다.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시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하의 좆은 이제 처음 느꼈던 것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성기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기둥을 타고 시준의 손바닥 안까지 미끈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허리를 쳐올리며 지하는 시준의 손바닥까지 간지럽게 만들었다. 쿠퍼액이 손바닥과 성기에 마찰되자 쯥, 쯥 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시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헐떡이는 숨을 내뱉었다.

“윽… 으… 흣!”

울음 섞인 목소리에 시준이 다시 한번 손안에 있는 성기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신음 소리가 더 커진 것도 같았다. 시준은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손을 슬쩍 아래에서 위로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지하의 눈이 놀란 것처럼 커지더니 곧바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손바닥으로 감싼 그의 것도 같이 떨려오고 있었다. 아래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정이었다.

지하는 한차례 몸을 떨고선 힘이 빠진 사람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하아, 하아….”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지하가 내는 소리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를 보며 그 숨소리가 본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하가 아직도 몽롱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눈이 마주친 채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지하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던 시준은 그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시선을 따라 내려간 시준의 눈에 보이는 건 일어났을 때보다 더 부풀어 오른 자신의 잠옷 바지였다. 이상하게도 시준은 좀 전처럼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뻗어오는 그의 손을 막지도 않았다.

시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새벽의 꿈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 꿈처럼 기분이 좋을지도 몰랐다.

“준아, 준아….”

지하는 네 발로 기듯이 시준에게 다가왔다.

시준은 앉아서 두 손을 뒤로하고 바닥을 짚었다.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오는 것을 밀어내지 않으니 지하가 슬며시 시준을 올려다봤다.

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하가 떨리는 손으로 바지 위를 만질 때에도 한숨 같은 신음 소리를 참지 않았다. 얇은 바지 위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손길은 맨살에 닿지 못했음에도 간지러움을 느끼게 했다. 시준은 자신이 완전히 발기했음을 알았다.

“바지, 바지 좀, 준아, 바지….”

지하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며 시준의 잠옷 바지만 붙잡았다. 지하가 입은 외출복과는 다르게 시준의 잠옷은 허리가 고무줄로 되어 있었고, 시준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 안에서 성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시준이 엉덩이를 들어 속옷과 바지를 한꺼번에 내리자 아래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준은 앉은 채로 자신의 성기에 코가 닿을 만큼 얼굴을 숙이고 있는 그를 내려다봤다. 지하는 또다시 위를 쳐다보며 시준과 눈을 마주하더니 곧바로 성기를 입에 담았다.

“아흑…!”

놀랄 새도 없었다. 시준의 고개가 저절로 뒤로 꺾였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따뜻하면서도 축축한 곳으로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뱃속까지 간지러운 기분에 자꾸만 허리가 움직였다.

“읏, 아읏….”

말캉한 것이 시준의 귀두와 기둥을 핥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갔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귀두 부분을 힘주어 빨아댈 때는 울음이 튀어나갈 뻔한 것을 겨우겨우 참아내었다. 온몸의 감각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시준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하가 성기를 잡아먹을 듯이 입속으로 쑤셔 넣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약간은 까끌까끌한 입술이 기둥에 닿는 느낌마저도 자극적이었다. 시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뒤로했던 한 손을 앞으로 뻗어 지하의 머리카락을 감싸 쥐었다. 그의 성기만큼은 아니었어도 나름 부드러운 머리칼을 한 손에 쥐고 시준은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지하의 입속에 성기를 박아 넣었다.

“읍, 큭…!”

지하가 거친 움직임에 당황하며 고개를 뒤로 빼려 했지만 시준은 가만히 있던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그의 목구멍 안쪽 깊숙이 성기를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했다.

“아, 지하야, 하지하…. 좋아…읏.”

시준이 이름을 부르자 잠시 멈칫하던 지하는 이윽고 시준이 입속에 넣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계속해서 덜그럭거리며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혹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랬는데도 시준은 허릿짓을 멈추지 못했다. 빠르게 입속을 들락거리는 성기에도 어떻게든 닿아보고자 서툴게 움직이는 지하의 혀를 느끼며 시준은 그대로 사정했다.

지하는 시준의 정액을 남김없이 삼켜버렸다. 마지막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쭙쭙 소리를 내가며 성기를 빨아댔다. 시준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힘 있게 흡입하는 지하의 입속은 사정으로 예민해진 시준의 성기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또 설 것 같은데.

위기감을 느낀 시준은 아직도 아래쪽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지하의 어깨를 한쪽 발을 들어 밀어냈다. 할짝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만큼 혀까지 내밀어 시준의 성기를 핥아대던 그가 멍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눈앞의 지하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두 볼은 아프다고 엉엉 운 것 때문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고 입가는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단정한 셔츠 위로는 군데군데 젖은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바지는… 바지 앞섶은 풀어헤쳐진 채로 그 안에서 튀어나온 성기가 반쯤 발기해 있었다.

아프다는 새끼가.

눈을 찡그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준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지하의 귀두 쪽에서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흥분하면 나오는 맑은 액체가 아닌, 탁한 색의 그것은 분명 정액이었다.

“너 쌌어?”

시준이 황당한 얼굴로 지하에게 물었다. 지하는 입속에 시준의 성기를 넣고 또 한 번 사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그가 앉은 다리 사이 바닥에 이리저리 튀어 오른 정액이 보였다. 그걸 보니 갑자기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맡아지는 것 같았다.

시준은 대답이 없는 지하가 의아해서 시선을 다시 위로 올렸다. 지하는 아직도 눈이 풀려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완전히 커진 성기가 곧게 서서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아프단 거 다 거짓말 아니냐고 소리 내서 따지려던 시준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서둘러 잠옷 바지를 추켜올렸다.

“시준아, 김시준!”

“엄마, 잠깐만! 지하 왔어! 문 열지 마, 내가 나갈게!”

침으로 범벅이 된 건 시준의 성기도 마찬가지였지만 차마 휴지로 닦을 생각도 못 했다. 시준은 팬티 안에 성기를 밀어 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지하도 정신을 차렸는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아프진 않은 건지 몸을 자유롭게 움직였다.

“야, 하지하.”

“으, 응. 준아, 나, 나 여, 여기….”

“네가 알아서 잘 치워. 창문 열어서 냄새 빠지게 하고.”

비린내 나.

그는 뭐에 기분이 좋은지 들뜬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까지 꿇고 앉은 자세였다. 찝찝한 기분에 뭐라 한 마디 더 날리려던 시준은 밖에서 부르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그대로 방을 나왔다.

* * *

“읍, 웃…!”

“아, 씨발. 입 좀 더 벌려봐.”

책상 의자에 앉은 시준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숙여 다리 사이에 앉은 지하의 입속에 성기가 더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지하는 이제 시준이 허리를 쳐올리지 않아도 혼자서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목젖까지 닿는 느낌에 시준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지하는 입술을 모으고 이가 시준의 성기에 닿지 않도록 하며 입 안 깊숙이 성기를 머금었다. 시준은 지하의 내리깐 속눈썹을 바라보며 후회를 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느꼈던 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축축하면서도 따뜻한 입속은 마치 시준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시준은 계속해서 되뇌었다. 정말 일부러 이렇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시준은 없던 일로 만들려 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서로를 돕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실수일 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래서 지하의 집까지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시준을 지하는 내내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차 안에서는 아닌 척 시준의 옷 끄트머리를 잡고 준아, 하고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왜, 하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대답도 하지 않고 수줍은 표정만 지었다. 그 모습에 괜시리 짜증이 난 시준이 탁 소리가 나도록 손을 쳐내면,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잡아왔다.

도착해서도 은근한 손짓은 반복되었다. 계속 무시하던 시준은 결국 지하의 방에 와서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냈다. 할 말 없으면 말도 걸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가서 밥이나 하라고 지하의 등을 떠밀었다. 그랬는데도 지하는 방 안에서 계속 미적거리며 움직이질 않았다.

“준아, 여, 여기 아, 앉아.”

그러더니 그는 시준에게 앉으라며 책상 앞에 있던 의자를 방 한가운데로 가지고 왔다. 시준이 서 있는 바로 앞이었다. 뭘 하려는지 몰라 짜증을 내려는 시준의 어깨를 얼른 앉으라고 밀기까지 했다. 어이가 없어서 도대체 왜 이러나 보기 위해 의자에 앉자마자, 지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또…해, 해줄까?”

그러면서 시준의 성기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묻더니 코를 문질렀다.

지하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걸 보며 시준은 문득 지금 지하가 내뱉은 숨이 맨살에 닿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솔직히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았다. 아무리 빨아주면 기분이 좋아도 그렇지, 같은 남자, 그것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변태 새끼의 입에 좆을 쑤셔 넣고 싶다니. 아무래도 이런 쪽으로는 나름 순진했던 자신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이 성적으로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어 보였다.

개소리하지 말라며 내보냈어야 했는데.

시준은 또다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지하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시준의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그때쯤 시준의 성기는 이미 완전히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었다. 시준은 입고 있던 바지와 속옷까지 벗어 던지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선 채로 지하의 입안에 성기를 쑤셔 넣으며 그의 뒷머리를 잡고 깊숙이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했다. 지하가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면서 시준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하는 아침처럼 눈이 풀려 있었다. 성기에 입이 막혀 웁, 웁 억눌린 신음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시준이 말한 대로 입을 더 벌리고 좆을 빨아댔다. 그렇게 잘 빠는 것도 아니었다. 입속은 강약 조절을 하지 못하고 힘만 주고 있었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혀는 오히려 성기가 드나드는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준은 눈앞의 광경에 흥분해서 움직였다.

어렸을 적에는 정말로 그림 속 공주님이 튀어나온 것처럼 예뻤던 얼굴은 이제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로 조금씩 변해 있었다. 늘 달고 있는 비굴한 웃음을 지운, 몸이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르며 한 손은 시준의 허벅지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위를 하는 그 얼굴에 시준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두 번을 쌌는지, 세 번을 쌌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성기가 따갑고 지하의 입술이 부르텄을 때쯤 둘 다 지쳐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지하는 그날 처음으로 시준을 굶겼다.

주말 내내 그런 일이 반복됐다. 지하의 집은 넓었고, 방이 많았으며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외 출장을 가 있었다. 누나는 일 때문에 바빠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그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주말은 그 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 운전기사 역시 별채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고용인들을 위한 장소에서 쉬고 있었다. 그건 둘이서 아무리 야한 짓을 해도 알아차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지하가 어눌한 말투로 유혹을 해오면 시준은 모른 척 넘어가주었다.

잠시, 아주 잠시만. 아니면 이 짓에 질릴 때까지만이라도.

시준은 하지하에게 금방 질리는 편이었고 이번에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 생각으로 지하의 입에 성기를 물리던 시준은 어쩌면 이런 식으로 점점 중독되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멈칫하기도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어느새 시준이 지하의 집에 머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 * *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준은 시험 직전 주말 동안 지하의 집에 머물기로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부였으나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은 둘만이 알았다.

시준은 갑작스러운 외박에 양쪽 집안 어른들이 이상하게 볼까 걱정했지만 기우로 그치고 말았다. 그들은 오히려 평일에도 자고 오라며, 혹은 자고 가라며 권유해왔고 시준은 거절했다. 지하의 누나인 하지유를 보는 것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방 출장을 가지 않았다면 주말 동안만이라도 집에 머물라는 부탁 역시 거절했을 터였다.

시준은 지하와 있으면서 물고 빠는 일에도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격한 움직임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몇 번 내보내고 나면 탈력감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심지어는 집에 가기 위해 차를 타러 가는 일조차 귀찮았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지하가 자고 가라며 말해온 것이다. 예전에는 그도 징징거리며 한 번만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잘도 졸라댔었는데, 진심으로 정색하는 시준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꺼내지 않고 눈치만 보았다.

그런 지하가 달라졌다. 정확하게는 야한 짓을 할 때만 달라졌다. 평소 시준의 거절에 무조건 알겠다고 하던 그는, 야한 짓을 할 땐 시준의 대답을 듣지 않고 움직였다. 가령 소파 위에 앉아서 게임을 하는 시준의 고간 위로 대담하게 손을 뻗는다던지. 혹은 그 안에서 멋대로 성기를 꺼내어 손으로 쓰다듬거나 입에 넣는다던지. 그렇다고 시준이 그런 행동들을 마냥 반긴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은 거부도 해봤다. 안 돼, 에서 결국 돼, 로 바뀌는 결과였지만.

시준은 이상하게도 지하의 달라진 모습이 싫지 않았다. 지하는 그의 욕구를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으나 마냥 미안하다고 대답하며 비굴하게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그 태도가 신선했다. 지긋지긋하던 하지하는 조금씩 시준의 안에서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변화의 이유는 단순할 수도 있겠다고 시준은 혼자 생각했다.

하지하가 그의 좆을 빨았기 때문에. 성욕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그에 대한 관대함의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지하가 원했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시준에게 아주 유용한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애초에 이런 넌덜머리 나는 집착을 받아주는 것 역시 자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준은 넓은 책상 앞에 앉아 옆에서 열심히 문제집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설명하고 있는 지하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지금 지하에게 과외를 받고 있었다.

시준은 어느 정도 학벌에 대한 욕심이 있는 편이었고 공부도 곧잘 신경 써서 하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다니고 있는 비싼 사립학교처럼 내신이 높은 고등학교에는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사립학교 역시 학벌 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할 테지만 시준에게는 유명 대학교 간판이면 충분했다.

중학교 역시 그런 사립학교를 다녔다. 둘 다 시준의 의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추첨제로 학교를 뽑는다고 하여도 자신이 신청서에 적지도 않은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분명 누군가의 뒷공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면 그때쯤 있었던 갑작스러운 이사를 의심하던가.

두 번이나 원하지 않은 학교를 다니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중학교는 그렇다 쳐도 내신이 중요한 고등학교까지 그런 식으로 되어버리자 아무리 시준이라도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부모님의 대답은 좋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니 잘되었다는 반응뿐이었다. 그에 시준은 돈에 아들을 팔아먹으니 좋으냐고 길길이 날뛰며 가족들을 무시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눈물로 호소하는 부모님의 부탁을 이기지 못했다. 어찌 됐건 지금의 풍족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부친의 사업이 투자금 걱정 없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하지하 때문이었던 것이다.

시준은 계산이 빨랐고, 그래서 포기도 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착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시준의 성격이었다.

할 수 없이 입학하게 된 고등학교는 중학교 때처럼 기득권층 부모를 둔 자녀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새끼들은 공부를 잘했다. 이미 중학교 때 그들의 차별을 몸소 겪었던 시준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공부해야만 했다. 그러나 중간에 뜻밖의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늘 그랬듯 하지하였다.

하지하의 기준은 무엇일까. 과거 시준은 그게 궁금했었다. 도대체 학교 선생님은 되고, 학원과 과외 선생님은 안 되는 것의 차이 같은 것을.

지하는 시준이 학원에 등록하고 다니려 하면 벌벌 떨었다. 그걸 보고 같이 다니면 괜찮겠거니 하고 간 학원에서 그는 발작을 일으키고 기절해버렸다. 결국 어른들은 시준에게 과외를 받아보라고 추천해 줬으나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지하가 과외를 받는 두 시간 내내 울어댔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저러다 숨이 넘어가서 또 쓰러질까 봐 시준이 먼저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다, 다른 사, 사람이 준이를 보, 보는 게 싫, 싫어.”

시준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널리고 널린 게 학교였으나 학교에서 지하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어쩔 수 없이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니 남은 것은 짜증이었다. 왜 내가 이 새끼 때문에, 라는 생각은 모든 것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사교육을 포기한다는 것은 시준에게 대학입시를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인터넷 강의로는 도저히 집중하지 못했던 시준은, 결국 지하에게 네가 나를 가르치라며 한 달에 몇백에서 몇천까지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과외 선생님들의 명단을 알려주었다.

“이 사람들이 과외시간에 하는 말 다 기억해놨다가 나에게 다시 설명해.”

지하는 고민도 않고 알겠다 대답했고, 그래서 결국 지금처럼 된 것이다. 고액의 과외를 받은 지하가 배운 내용을 다시 시준에게 알려주는.

시준은 보통 지하가 공부를 가르치는 날이면 일부러 더 꼬치꼬치 캐묻곤 했다. 별거 없는 복수 중 하나였다. 이건 이게 맞지 않아? 왜 틀린 건데? 저번에 알려준 거랑 다르잖아. 설명을 그렇게밖에 못해? 등등. 그럴 때마다 쩔쩔매며 대답하는 지하를 구경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별로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준은 더듬더듬 설명하는 지하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지하의 아랫도리는 잠잠했다. 요 근래 항상 둘이 있을 때면 바짝 서 있던 것이 가만히 있는 모양새를 보니 괜히 심술이 났다. 자신을 성욕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놨으면서 변태 새끼는 모른 척하고 있다는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시준이 은근슬쩍 하지하의 바지 가운데로 손을 뻗은 것은. 거부감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최근 들어 지하의 입 말고 서로 손으로 해주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하는 얇은 면으로 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시준과 똑같은 바지였다. 아무렇지 않게 올라간 손에 그가 설명하던 것을 멈추고 시준을 쳐다봤다. 동그랗게 커진 눈은 누가 봐도 깜짝 놀란 사람의 것이었다.

“계속해.”

시준은 이제 손바닥 전체로 바지 위를 천천히 문지르며 말했다. 지하의 중심부는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며 딱딱해졌다. 마치 텐트를 친 것처럼 불룩 튀어나온 앞을 시준이 힘을 주어 잡자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설명해야지, 지하야.”

“…으, 응…. 여, 여기서 가, 갑의 시, 실질 이, 이자율….”

이제는 확연히 모양을 갖춘 기둥을 잡고 시준이 위아래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자, 얌전히 문제집을 보며 설명을 이어갈 것처럼 대답하던 지하는 말하는 것을 멈추고 갑작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저거 아프다고 또 난리치는 건 아니겠지.

처음 배가 아프다고 한 이후로 그런 일이 없어지자 시준은 지하를 의심했다. 그러나 드물게도 지하는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둘은 검색을 통해 사정감을 참느라 배까지 아파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는 보기도 싫어서 눈까지 감았는데. 이제는 저가 먼저 좆을 손에 쥐고 흔들기까지 했다. 시준은 손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은 것을 꾸역꾸역 바지 천으로 감싸 쥐며 일부러 거칠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흐… 준아, 아, 준아….”

그러자 그는 몸을 덜덜 떨면서 신음 소리를 흘렸다. 흘긋 쳐다본 지하의 두툼한 팔 근육 역시 힘이 들어간 듯 움찔움찔거리고 있었다.

“엉덩이 들어봐.”

손을 떼고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지하는 혼자서 엉덩이를 들고 바지와 팬티까지 내려버렸다. 완전히 벗어 던지지 않은 바지는 치골 위에 살짝 걸쳐져 있었다. 시준은 바깥으로 모습을 내민 지하의 성기를 다시 손안에 넣었다. 두 손으로 감쌀까 고민하다가 그러기는 또 싫어서 한 손만 열심히 움직였다.

솔직히 시준의 손짓도 그렇게 썩 부드럽다고 할 만한 것은 못 되었다. 조심스럽고 간지럽게 문질러대는 지하와 다르게 시준은 거친 손길로 지하의 아래를 쥐어 짜내는 편이었다. 처음 만졌을 때 연약하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빳빳한 강직도를 보이는 지하의 성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묽은 액체를 쉼 없이 흘려댔다.

“읏…. 하으….”

지하는 책상 유리 위에 한쪽 뺨을 비벼댔다. 두 손은 아래를 만지고 싶은지 커다란 몸처럼 연신 움찔거렸지만 책상 모서리만 집고 있었다. 아마 시준이 만져도 된다고 할 때까지 그가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준은 입을 벌리고 있는 지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점점 속도를 올렸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숨죽인 비명 소리와 함께 지하가 사정했다. 퓻, 퓻 쏘아진 정액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시준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그러면서 달달 떨리고 있는 지하의 입술을 눈으로 훑었다. 벌린 입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붉은 혀가 시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실은 얼마 전부터 저 혀를 빨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성기를 핥을 때마다 언뜻 보이던 혀는 말캉했고 부드러웠다. 입속에 넣어도 그런 느낌이 날지 시준은 궁금해졌고, 오늘은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서로 딸까지 쳐주는 사이에, 한쪽은 좆을 입에 물기까지 하는데 키스라고 별다를까 싶었다.

아직도 크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힘 있게 쥐자 지하의 입술이 더 크게 벌어졌고 시준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지하의 입속에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입술도 마주하기 전에 무작정 파고 들어가자 깜짝 놀란 지하가 시준의 혀를 깨물었기 때문이다.

“악!”

시준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외치며 혀를 빼고 급하게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물이 찔끔할 만큼 아팠다. 반쯤 발기했던 성기까지 순식간에 가라앉을 정도였다.

“헉, 준아, 준아, 괜, 괜찮, 괜찮아?”

“…너…!”

시준은 허둥지둥대며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나는 지하를 노려보았다. 다행히도 입안에서 피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날 만큼 세게 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혀가 계속 얼얼했다. 시준은 저 새끼가 일부러 그랬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너, 이, 개새끼, 너…! 일부러…!”

“아, 아, 아냐, 아냐!”

지하는 땀까지 뻘뻘 흘리며 부정하느라 필사적이었다. 그걸 본 시준은 씩씩대다가 입을 가린 손을 내리고 몸을 휙 돌렸다.

씨발, 그깟 혓바닥 내가 다신 쳐다보나 봐라.

그렇게 생각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혼자 거울을 보며 혀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하가 그런 시준의 어깨를 급하게 잡아 돌려세웠고, 눈앞을 덮친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시준은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와 이가 부딪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에 있는 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동시에 윽, 소리를 냈다.

시준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멍청이가,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지하가 시준의 몸을 돌리던 속도까지 더해져 이에 금이 간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 한 번만, 한, 한 번만, 준아….”

아직 입을 가리고 있는 시준에게로 지하가 한 발짝 다가오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준은 욱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고 뭐가 한 번만이냐고 쏘아대려 했으나 코앞까지 다가온 지하의 얼굴 때문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는 곧바로 입을 맞추기라도 할 것처럼 시준에게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준은 갑자기 그가 두 손으로 잡고 있는 어깨가 맨살도 아닌데 델듯이 뜨거워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안에 넣고 굴려보고 싶다고 생각한 빨간 혀가 마른 입술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시선을 조금 위로 올리니 지하의 얼굴이 있었다. 지하는 시준과 함께 자위를 할 때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곤 했으나, 이런 얼굴을 한 채로 시준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니, 처음이었다.

시준은 다시 홀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또 깨물면 죽여버릴 거야.”

“으, 응.”

느리게 깜빡이는 속눈썹 사이로 새까만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지하의 손이 시준의 두 볼을 감싸 쥐었다.

“이 부딪치지 말고.”

마지막 말의 대답은 지하가 입을 벌리며 시준의 입술을 삼켜버렸기에 듣지 못했다.

* * *

“으음, 응….”

질척이는 소리에 섞인 야한 콧소리가 자신이 내는 건지도 모른 채, 시준은 어느샌가 눈을 감고 행위에 몰두하고 있었다. 벌린 입 사이로는 혀와 혀가 오가며 서로의 것을 매만졌다. 허리까지 끌어안으며 몸을 밀착하여 밀어붙이는 지하 때문에 시준의 목은 허리와 함께 점점 뒤로 꺾였다. 그나마 지하가 한 손으로 받치고 있어주었기에 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지하의 혀는 마치 살아 있는 다른 생명체처럼 시준의 입속 여기저기를 오갔다. 부드럽게 입천장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뒤로 도망가는 시준의 혀를 잡아채어 서로 비벼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침이 흐르며 축축한 소리를 내었다.

목젖까지 닿을 기세로 뻗어대던 혀는 순식간에 빠져나가 시준의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가며 빨아대기도 했다. 시준의 아래를 쥐어올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서툴렀고, 그래서 거칠었다. 정신없이 입을 벌리며 느끼고 있던 시준은 살며시 눈을 떴다. 코로만 숨 쉬는 것이 힘들어서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는 거대한 몸을 밀어내고 싶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며 어떻게든 파고들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 하지하였다. 그 때문에 자신의 몸이 점점 더 기우는 것을 느끼고 시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러다간 몸이 반으로 접힐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혀가 위에서 아래로 계속 들어오는 통에 숨을 어떻게 쉬는지도 까먹을 판이었다.

시준은 할 수 없이 지하의 허리춤을 붙잡고 있던 손을 위로 올려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키 차이 때문에 까치발을 들어볼까도 했지만 그건 또 싫었다. 뭔가 지는 기분이 들어서 차라리 시준은 지하의 발등 위로 올라가는 것을 택했다.

한 발 한 발, 입을 벌려 지하의 말캉한 혀를 품은 채로 시준이 지하의 발등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어깨 위의 두 팔을 다시 올려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시야가 비슷해지며 두 사람의 몸이 기울기를 되찾고 가슴과 가슴이 맞닿을 정도로 밀착되었다. 시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이제 지하가 자신에게 했던 것들을 똑같이 돌려주려 했다. 자신의 혀로 그의 입속을 희롱한다던가 하는.

그러나 그 순간 지하가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야하게 빨고 있던 입술도 놓아버렸다. 갑자기 멈춰버린 지하에게 먼저 다가가 입을 맞추려던 시준은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준은 눈물만 뚝뚝 흘려대는 그 모습에 또 아픈 줄 알고 물었다.

“뭐야, 아파?”

“…….”

“그렇게 아파? 말도 못할 정도로?”

그러고 보니 하지하는 아직 바지를 살짝 내리고 있어 밖으로 성기가 튀어나온 상태였다. 딱 달라붙은 몸 때문에 시준의 배 근처에 짓눌린 그것은 아까부터 계속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시준은 두 팔을 풀어 지하의 사정을 도울 생각이었다. 끊겨버린 흐름이 아쉽긴 했으나 또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지하가 그런 시준을 막았다.

“아니, 아니, 아니야…. 안, 안아줘…. 안아줘, 준아….”

안아달라고 말하며 시준의 목덜미에 머리카락을 비벼온 것이다.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한 손은 그새 시준의 허리로 내려와 빠져나가지 못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아프지 않단 소리에 시준은 그가 원하는 대로 두 팔에 힘을 주어 두꺼운 몸을 마주 안았다. 그러자 지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시준에게 키스해 왔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렇게 좋은가.

시준은 피식 웃으며 입을 벌리고 상대방의 입속을 파고들었다.

입맞춤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중간중간 숨을 몰아쉬기 위해 입술을 떼어내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입을 맞추는 것의 반복이었다. 지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두 사람의 입술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 반질반질하게 빛났고 잠깐잠깐 떨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붉은 혀는 곧바로 서로의 입속을 오갔다.

집중하고 있던 시준은 슬슬 다리가 아파와서 눈을 떴다. 다리뿐만 아니라 다시 발기한 가운데도 만져달라며 끈적한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시준은 입술을 떼고 지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 다리 아파.”

침대든 소파든 어딘가에 앉자는 뜻이었으나 그는 되려 한 손으로 시준의 바지와 속옷을 벗겼다. 아직 그를 끌어안고 있던 시준이 너 뭐 하냐는 눈으로 쳐다봐주자 지하가 급하게 말했다.

“다리, 준아, 다리….”

“다리 뭐?”

시준은 어차피 지하의 입속에 넣을 생각이었기에 바지를 벗기는 손을 굳이 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아듣지 못할 말만 했다.

“감, 감아…. 감아, 다리. 여기, 여기에….”

도대체 어디에 다리를 감으라는지 의아해하는 시준에게, 결국 지하가 바지를 벗긴 한 손으로 시준의 허벅지를 들어 올려 그의 허리에 감게 했다.

“우왓!”

시준이 깜짝 놀라 지하를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을 줬다. 그러자 지하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시준의 나머지 다리도 들어 올렸다.

“야, 나 넘어져!”

“아, 아냐. 내, 내가 자, 잘 받치고 있어.”

그러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 시준의 엉덩이를 만졌다.

“읏! 뭐 하는…!”

“받, 받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며 따지려던 시준은, 지하가 자신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몸을 추켜올리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때문이었다.

삐걱이는 고갯짓으로 내려다본 그곳에는 지하의 것에 비벼지고 있는 시준의 성기가 있었다.

* * *

아, 다 귀찮다.

시준은 침대 위에 늘어졌다. 아래가 침과 정액으로 질척였으나 씻는 것조차 귀찮았다. 엉덩이까지 주물대던 변태 새끼가 씻기면서 무슨 짓을 해올지 몰라 싫다고 했는데, 그냥 씻겨준다고 할 때 그러자고 할 걸 그랬나 싶어 후회가 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 가기 싫어하는 그를 시준이 억지로 들이밀며 씻고 오라던 참이었다.

푹신한 침대에 누우니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한 시간이 넘게 하지하와 몸을 맞대고 연속으로 사정했다. 지치는 것도 당연하다며 시준은 좀 전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손과 입을 사용하던 전과는 다르게 오늘 시준은 지하와 성기를 마주 비비며 계속해서 절정에 올랐다.

지하의 단단한 허리에 다리를 감고 몸을 끌어안자 아래쪽에 있는 성기가 부딪치기 좋은 자세가 되었다. 하지하는 필시 그걸 노렸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환장을 하고 달려들었겠지. 그는 시준의 입술을 정신없이 물고 빨았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시준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둘의 성기를 맞잡고 위아래로 계속 흔들었다. 방 한가운데서 선 채로 시작한 행위는 자리를 옮겨 침대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시준은… 지하의 위에 올라타 성기가 더 잘 비벼질 수 있도록 열심히 허리를 움직였다. 하지하의 좆은 너무 보드라웠다. 손에 잡을 때도 그랬지만 자신의 것에 닿을 때도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고, 그래서 이성을 잃었다.

시준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질 만큼 좋았다고. 위로는 입속에서 지하의 혀가 시준을 옭아매고 있었고, 아래로는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내며 성기가 자극받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미쳐버리는 것도 당연했다.

분명 엉덩이가 빨개졌을 거야.

정작 지하가 주무르면서 움직일 때는 말할 생각도 못하다가 끝나고 나니까 시준은 괘씸해졌다. 물론 한창 몰두하고 있을 때는 그것조차 쾌감이 되긴 했지만.

나도 하지하의 엉덩이를 만져볼까.

잠시 생각했던 시준은 이내 고개를 젓고 포기했다. 그 새끼는 엉덩이도 딱딱할 것 같았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몸을 키우는 지하에게 말랑한 부분은 입속 혀밖에 없어 보였다.

자고 싶은데 아래가 찝찝해서 잘 수가 없었다. 휴지로라도 대충 닦을 생각으로 밍기적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키자 욕실에서 나오는 지하가 보였다.

“준아, 준아. 나, 나 다 씨, 씻었어.”

지하는 곧바로 시준이 있는 침대로 다가오며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몸을 들이밀었다. 당연한 듯이 스킨십을 바라며 움직이는 몸짓에 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지하는 이제 침대에 앉은 시준의 앞에 자리를 잡고 커다란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머리까지 감았는지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 같았지만 시준은 무시하고 방금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야, 나 좀 씻겨봐.”

“…어?”

그러자 지하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시준을 쳐다봤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물 받아놨어?”

“아, 아니….”

“씻겨준다면서 욕조에 물도 안 받고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틀어놔.”

“으, 응.”

지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시준은 그 모습을 보며 침대에 누웠다. 욕조에 물이 찰 때까지만 이러고 있을 생각이었다. 씻겨준다고 했을 때 싫다고 말했지만, 뭐. 먼저 해주고 싶다고 말해온 녀석이니 말 좀 바꾼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가 욕실에서 나왔다.

“왜 벌써 나와?”

“씨, 씻겨 주, 줄게, 준아.”

그리고 의아해하는 시준의 허리와 다리 사이에 손을 넣더니 번쩍 들어 안았다.

“뭐야, 왜 이래? 너 뭐 해?”

“내, 내가 데, 데려다줄게.”

공주님 안기로 안겨 있던 시준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몸이 붕 뜬 것보다도 시준의 허락 없이 아무렇지 않게 먼저 만져오는 하지하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이제는 그런 것도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오늘 처음 키스할 때도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준은 새삼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많이 물렁해졌다고 느꼈다.

그렇게 시준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지하는 착실히 발을 움직여 욕실로 향했다. 시준은 힘 하나 들어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조금 거슬렸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하는 시준을 샤워부스 안으로 넣으며 씻겨주겠다고 했다. 편하게 욕조에 기대앉고 싶었던 시준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미리 물 받아 놓으라고 하지 말걸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들어갈까도 생각해보았으나 정액이 섞인 물에서 반신욕을 하고 싶진 않았다.

지하는 열심히 시준을 씻겼다. 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지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지만, 그는 시준의 머리를 감기고 거품을 내어 몸을 닦아주었다. 시준의 성기에 손이 가긴 했어도 성적인 의미 없이 정말 씻는 것에만 몰두한 손짓이었다. 그래도 시준은 안심하지 않았다. 위아래로 옷을 모두 챙겨 입은 지하의 성기는 여전히 발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알아서 몸이 깨끗해지는 건 편한 일이었다. 시준은 지하가 또다시 자신을 안아 들고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넣어주었을 때도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안에 들어오려 하진 않을까 유심히 관찰했다.

“이, 입욕제, 푸, 풀까?”

“…아니, 됐어.”

지하는 욕조 위에 걸터앉아 그런 시준을 웃으며 바라봤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한 미소였다. 시준이 느끼기엔 그랬다.

너무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에 시준의 몸이 서서히 녹아들 것처럼 풀어졌다.

그러다 문득 지하가 여전히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준을 씻겨주느라 그의 옷은 이미 모두 젖어 있었다.

언제 벗을지는 모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던 시준은 여태껏 야한 짓을 할 때 지하가 한 번도 바지를 벗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땀에 절어 상의를 벗은 적은 있어도 시준처럼 하의를 완전히 내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성기를 꺼낼 수 있을 만큼만 바지를 내리곤 했었다.

아.

시준은 탄식처럼 내뱉었다.

“왜, 왜? 너, 너무 뜨, 뜨거워?”

“…….”

지하는 그런 시준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가락을 물속에 넣으며 온도를 쟀다.

하지하는 바지를 벗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안에 들어올 일도 없었다.

안심이 되어야 마땅한데 시준은 어쩐 일인지 점점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지하에게 들키기 싫어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는 앞으로도 시준이 먼저 요구하지 않는 이상 바지를 벗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지하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빼곡한 흉터로 남아 있을 칼자국들은 시준의 시간을 그날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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