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오늘 애들 새로 들어온다고 했었나?”
“어어. 곧 도착할걸.”
온갖 비린내와 피 냄새가 나는 공장, 레드 마켓은 오늘도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기계음이 울리자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달려와 상품을 척척 쌓아 올렸다.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삼엄한 분위기였다.
“어, 온다.”
열두 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겁에 질린 아이들이 몰려 들어왔다. 성인들도 몇몇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어린아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뭣 모르는 아이들은 옷소매를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요놈이 제일 어리니까 값은 더 쳐주는 게 맞겠지요?”
마켓에 아이들을 데려온 사내는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의 팔뚝을 무식하게 잡아 끌어당기며 말했다. 힘없이 끌려온 아이는 언뜻 봐도 관리가 되지 않은 티가 났다. 머리가 길고 몸은 꼬질꼬질했으며 침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럼요, 아버지. 한 여덟 살 되나?”
“여덟 살은 무슨 여섯이야, 여섯!”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내에게서 아이들을 건네받게 된 관계자는 그들을 탐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정한 척 이름을 묻자 아이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만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이름이 뭐니?”
“이름이 없는데. 아무렇게나 불러.”
“말은 할 줄 알겠죠?”
사내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게 마치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곤란하다는 말에도 그의 당당함은 꺾이지 않았다.
“안 가르쳤어. 그런 건 알아서 가르치면 되지! 어린 애들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는 해? 그래, 무명이라고 하면 되겠네!”
이름이 없다는 뜻을 이름이라고 지은 사내는 아이를 힐끔 쳐다보며 제 말을 따라 할 것을 강요했다.
6년 만에 이름을 갖게 된 무명은 죽어, 울어, 기어 같은 부정적이고 강압적인 말은 하도 들어 눈치껏 반응할 수 있었지만, 그 밖에는 알아듣지 못하는지라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따라 해, 네 이름이 뭐라고?”
6년간 개자식, 쓰레기로 불렸던 아이는 한순간에 무명이 되었다. 그는 말끝을 올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제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아비 말이 안 들리는 거야!?”
명백한 화풀이였다. 사내는 기본적인 의사 표현도 가르쳐주지 않고 학대하기 바빴던 주제에 무명이 제 말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내에게 머리채를 잡힌 그는 눈물을 삼키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이 또한 본능에 따라 익힌 행동이었다. 두 손바닥을 맞대고 비비면 한두 번쯤은 눈감아 준 기억이 있었기에 필사적이었다.
“악!”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사내는 무명의 뺨을 후려치며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이 개자식이 감히 나를 무시해! 나를!”
바닥으로 나뒹군 무명이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또 한 번 손이 날아들었다. 피하면 더 맞는다는 것을 아는 그는 눈을 질끈 감고 팔을 내렸다.
“…?”
평소였다면 바로 고통이 퍼지기 시작했을 시간인데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자 무명이 눈을 뜨고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에헤이, 아버님. 거기까지만 하시죠. 당장 일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애 팔 부러지겠다.”
“그래요, 그리고 이번에는 좀 실망입니다. 어느 정도 관리가 되어있어야 일하기 쉽죠. 말도 안 가르쳐 놓으시면 어떡합니까? 참.”
아동학대 현장을 구경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사내를 저지했다. 그마저도 학대를 말리는 목적이 아닌 무명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애, 애가 멍청해서 말을 못 하는 거야. 몇 번을 가르쳐 봤어.”
“안 가르친 거 다 압니다. 이번에는 그냥 눈감아 드리겠지만, 다음 아이부턴 기본적인 의사 표현은 가르쳐서 보내주십시오.”
“아, 알겠어. 그럴게! 그러면 되잖아! 돈은 바로 줘! 아, 알았어?”
사내는 질이 낮고 변변치 못한 인간이다. 말도 못 하는 작고 어린아이인 무명에게는 야차처럼 굴면서 저보다 덩치가 큰 관계자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했다.
“어쨌거나 이만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한 아이당 700장씩 쳐 드렸는데, 이번에는 관리상태가 불량하니 500장 드리죠.”
“…….”
“불만 있으시면 다음부터 잘하십시오.”
알파벳 R이 각인된 작업복을 입은 관계자들은 무명을 번쩍 들어 어깨에 얹고는 또 다른 학대의 현장으로 향했다. 무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입을 꾹 다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늘부터 네가 여기서 일하게 될 거야. 알겠니, 무명아?”
무명은 역시 이해하지 못했지만,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자들이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무명이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고깃덩이를 포장하고 있는 직원들이었다. 그들의 뒤로는 붉은 피가 가득 찬 커다란 기계가 굳건히 서 있었다.
직원들은 무언가 단단한 것을 열심히 자르고 깎으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잠시 쉬거나 속도가 늦어지면 채찍을 휘두르며 닦달하는 모습도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신입 들어갑니다!”
커다란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진 무명은 사내에게 의지하며 벌벌 떨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붙잡은 작은 무명을 내려다보다가 등을 떠밀었다.
“뭐야, 더럽게. 얼른 꺼져!”
전혀 의지할 사람이 아닌 상대를 의지하고 있던 무명은 작업장을 지나 또 다른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운 방에는 그보다는 큰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자, 너희들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면서? 나는 교육 담당자 이공일이라고 한다.”
자신을 공일이라 소개한 남자는 얻어터진 얼굴을 하고서도 방긋방긋 웃었다. 영문 모르고 잡혀 오게 된 무명은 상처가 가득한 얼굴을 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제가 아버지에게 맞았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라 더 경계심이 들었다.
“네가 제일 어린놈이라며?”
공일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무명에게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공일이 움직일 때마다 말꼬리 같은 긴 머리가 찰랑대며 좋은 냄새 풍겼다.
무명은 저와 다른 냄새가 나는 그를 거칠게 밀어내고 울먹였다. 나를 만지지 말라고 거부 표현을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줄 몰라서 고개를 저으며 발을 쾅쾅 찧어댈 뿐이었다.
“씩씩해서 좋네.”
무명은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는 공일을 피하고자 두려움이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을 살폈다. 뒤이어 귀를 찢을 듯한 울음소리와 대변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아, 씨팔! 이 새끼 똥 쌌어!”
아이들은 모두 기절할 정도로 울거나 몸을 떨며 소변을 보는 등 불안증세를 보였다. 무명은 소리를 내서 울면 아버지에게 더 많이 맞았던 경험이 있기에 유일하게 울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야, 네가 무슨 고양이냐? 여기서 개기면 너만 힘들어. 잘하면 잘할수록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야.”
무명이 눈을 부라린다고 생각했는지 공일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저 아버지가 울지 못하게 교육한 탓에 괴로운 상황에서도 눈물을 꾹 참을 뿐인데 그 사실을 공일이 알 리 없었다.
“오늘부터 니들이 할 일을 가르쳐 줄게.”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구석진 곳으로 끌어당겼다.
무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일은 무명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를 사체 더미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간혹 아버지에게 가혹한 폭행을 당한 아이들이 죽은 모습을 본 적이 있는 무명은 이를 악물고 구역질을 참아냈다.
“어라, 이거 봐라?”
그 모습에 공일이 코웃음을 쳤다.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는 가장 처음 익혀야 할 구역질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필요도 없겠다며 직원들과 깔깔 웃었다.
“야, 천직이네. 천직? 너 나랑 같이 갈까?”
“…….”
“대답해.”
말을 배운 적이 없는 무명은 기본적인 표현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무어라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유일하게 아는 단어를 꺼내려 했다. 그런데 자꾸만 뺨을 때리니 말을 할 틈이 없었다.
“대답하라고.”
“야, 걔 말 못 해.”
강압적이고 거친 폭력이 이어지자 아이들을 건네받았던 관계자가 다가와 무명이 말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렀다.
“야, 그럼 진작 말하지 그랬어.”
공일은 뺨을 내리치던 손을 멈추고 배시시 웃었다. 특이 사항을 전해 들은 그는 그제야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것도 모르고 때려버렸네. 아이고, 미안해라.”
“말 나온 김에 한글 좀 가르쳐라.”
“…내가? 그럼 얘네들 교육은?”
공일은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들 교육 전담은 대부분 공일이긴 하지만, 말을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라 그는 눈에 띄게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하지, 뭐. 말만 가르치고 복귀하면 되잖아.”
“…….”
“난 애새끼 말 가르치는 거 못 한다. 때려 패면 팼지.”
관계자들은 갓 성인이 된 노동자들을 가시 박힌 채찍으로 후려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명은 아버지와 비슷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을 떨며 공일에게 안겨들었다.
“어어? 나한테 이래봤자 떨어지는 거 없는데?”
역겨운 자비를 베푸는 건지 뭔지 그들은 아이들을 채찍으로 때리지는 않았다. 그래 봐야 손으로 뺨을 때리고 짓밟았기에 도덕적이라곤 볼 수 없었다.
“자, 성인들은 얼른 기어 나와서 여기에 서라. 앞으로 내가 하는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처맞는 거다. 알았나? 니들은 채찍으로 처맞고 아가들은 손으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답하라고 마구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뒤로한 무명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대답할 수 없었다.
“명이, 넌 나 따라와.”
그런 안타까운 모습에도 공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명에게 따라오라 명령했다.
바로 옆방으로 가 그를 의자에 앉힌 공일은 정식적인 방법으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책도 종이도 없는 상태로 필요한 말만 반복하게 했으며 무명이 어눌하게 발음하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내리치며 체벌했다.
“흐으, 흐….”
“자, 따라 해. 이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이렇게 엉터리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공일 역시 성인이었기에 그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는 무식하게 따라 하라고만 했다.
따라 한다는 개념을 모르는 무명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죄, 죄소하, 니다. 자모, 잘모, 했습니다.”
“…….”
무명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끝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아버지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제 멱살을 부여잡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목을 조를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죄소, 죄……”
무명이 차라리 우는 게 나을 법한 얼굴로 끙끙대고 있을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공일은 쉽게 깨지지 않는 동그란 사탕을 가지고 와 입안에 넣어주었다. 당연히 맞으리라 생각했던 무명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살 굴리면서 먹어봐. 아, 어차피 못 알아듣지.”
공일은 당이 부족하면 두뇌 회전이 늦어진다며 사탕을 먹고 배워보자고 말했다.
♦ ♢ ♦
“이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오늘도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려한 유니폼을 입은 무명은 입구에 서서 레드 마켓으로 발을 들이는 손님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처음 팔려 온 이후로 4년간 한글과 잡일을 배웠다. 열 살인 지금도 어려운 말은 서툴렀지만, 세뇌하듯 주입한 말은 훌륭하게 구사해낼 수 있었다.
“일 잘하네, 우리 명이?”
“…고, 고맙습니다.”
무명이 맡은 일은 손님을 안내하는 것과 절단된 고기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어린아이가 하기엔 난도가 꽤 높은 일인지라 실수가 잦았다.
“…으윽, 으….”
배우지 못해서 그렇지 머리가 나쁘지 않은 무명은 주어진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편이었는데 이 작업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열 살 어린아이에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보여주는 것도 옳지 못한 일이었는데, 무명은 속을 열어 확인까지 해야 했다.
“괘,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독된 펜을 집어 들었다. 구역질하지 말라는 경고를 몇 번이고 상기한 무명은 혀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어떻게든 참아내려 애를 썼다.
그러나 코끝이 시큰거릴 만큼 극심한 구역감에 생리적인 눈물을 글썽이다가 얼굴을 다 가리고도 남는 마스크를 벗어내고 그대로 게워냈다. 먹은 것이 없어 시큼한 위액만이 가득 쏟아졌다.
“허, 헉….”
무명은 손에 맞지 않는 큰 장갑을 벗어내며 입을 닦아냈다. 다행히도 유통될 상품에 오물을 쏟지 않았다.
상품을 더럽히지 않았으니 혼이 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불시에 점검하러 온 매니저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무명은 그나마 다정하게 대해주던 공일을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자, 잘못했어요, 아, 안 그럴게요, 자, 잘못했어요….”
무명은 매니저들에게 뒷덜미를 붙잡혀 질질 끌려갔다. 일명 체벌 방이라고 불리는 곳에 갇히게 된 그는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성인 남성이 들어가면 두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방에는 초보자들의 작업 실수로 사망한 사체가 가득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한창 부패하기 시작해 지켜보기 힘든 꼴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것도 아니고 겹겹이 쌓여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아, 안 그럴게요, 제발! 제발!”
무명은 고깃덩이가 가득 쌓인 방 안에 갇히기 싫었다. 차라리 죽도록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괴로웠다.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아닌 이틀간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명은 바지에 소변을 줄줄 싸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싫어요! 시, 싫어요, 흑, 그, 그냥 맞을게요. 맞을게요! 제발, 제발!”
그는 빌고 또 빌었다. 무엇이든 다 할 테니 제발 꺼내 달라고 목이 쉴 정도로 애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거친 폭력과 폭언뿐이었다.
“싫어…. 싫어, 싫어….”
무명은 괴로웠다. 말은 의사소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던 공일의 주장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저를 가둔 매니저도 싫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텐데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으니 말이다. 제 의견이 무시될 뿐이라면 도대체 왜 힘들게 말을 배웠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으윽, 흑….”
그는 가장 최근에 버려진 고기가 철퍽 소리를 내며 나뒹굴자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악취도 악취였지만 캄캄한 방에 혼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고 두려웠다.
“사, 살려주세요….”
무명은 차라리 말을 할 줄 몰랐을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의사 표현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흐… 우, 울고 싶어….”
그는 말을 배우게 된 이후로는 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울고 싶고 아프고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도 무명은 소리 내 울 수 없다. 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걸 알아도 자유롭지 못했다.
[울어 봐. 죽여버릴 테니까!]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명은 제가 평생 아버지의 지배하에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등을 잘근잘근 깨물며 앓았다.
“…하아, 하….”
그는 공일에게 배웠던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겨움을 뒤로하고 가장 깨끗한 고기를 골라 잡아당긴 무명은 입을 쩍 벌린 채 새파랗게 질려 죽은 얼굴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펴, 편해 보인다.”
그는 툭툭 건드리고 정신없이 흔들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고깃덩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토, 토를 해도 호, 혼나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맞지 않잖아…. 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지? 나, 나도…. 이, 이렇게 되고 싶어.”
작고 여린 열 살의 무명은 죽음이라는 개념은 알지만, 죽는 방법은 모른다. 아니, 사실은 죽음이 뭔지 완전하게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숨이 끊긴 몸을 마구 흔들며 혼나지 않고 맞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무명은 자유와 행복 등등 제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단어를 모두 끌어모았다.
“자유, 자, 자유 할래요….”
자유를 누려본 적도 없고 행복 또한 누려본 적이 없는 그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갈망하며 허덕였다.
“…….”
그렇게 혼잣말하며 바닥을 벅벅 긁자 금방 지치고 말았다. 인기척에 몸을 일으켜보니 매니저가 음식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빵 반 쪼가리와 무엇인지 모를 붉은 액체였다.
무명은 혹시나 빼앗아갈까 봐 급히 입에 처넣은 채로 씹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빨리빨리 안 움직일래!?”
예상보다 하루 더 갇혀 있던 무명은 몸과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일해야 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근무지가 변경된 그는 고기 파티를 벌이고 있는 재벌들의 방으로 향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 저는 무명이라고 합니다. 펴,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무명이 이 커다랗고 화려한 물건들로 장식된 방에서 할 일은 엽기적이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바른 자세로 서서 손님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방긋 웃는 그런 일. 가끔 춤을 춰보라고 하면 몸을 흔들어야 했고 분위기를 살려보라고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무명은 살아오면서 재미를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랬기에 손님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요구할 때 곤란하고 두려웠다. 열심히 할 테니 다시 마켓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제, 제가 몇 시간 전까지 고깃덩이가 쌓인 방에 갇혀 있었어요.”
“오호, 포상이군! 즐거웠겠어, 그래?”
무명은 괴로웠는데, 손님은 그 정도면 벌이 아닌 상이라는 헛소리를 했다, 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손님의 말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구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 그 방에 노, 놀러 갔었어요.”
“하하하! 또 무슨 잘못을 한 모양이지?”
“이, 일하다가 실수를 좀 해서 놀러 가게 됐어요!”
무명은 끔찍한 기분을 뒤로하고 매니저가 가르쳐 준 말들을 줄줄 읊었다. 다행히 손님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식기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 무명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설명하며 손뼉까지 쳐야 했다.
“저, 저는 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요! 살아생전에 쓸모없었던 지, 짐승이 죽어서는 사, 사용되는 거잖아요? 아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 있을 거예요.”
그저 시키는 대로 중얼대고 있는 그는 제가 내뱉은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널려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무명은 손님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밝게 웃으며 서 있었다.
일과를 끝마친 새벽 4시, 노동자들은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음식을 배분받는다. 주어진 일을 해낸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식사가 주어지지만, 무명같이 실수를 저지르면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
노동자들의 특식인 따뜻한 쌀밥과 생선, 김치를 기대했던 무명은 빈 그릇을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린아이에게 내려진 벌은 가혹했다. 단 한 번의 실수였는데, 쌀 한 톨조차 먹을 수 없었다.
“저, 저기 한 입만 주, 주면 안 돼?”
돌고 돌아 얼굴이 익숙한 노동자를 만나게 된 무명은 식판을 내밀며 조금이라도 좋으니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특식을 받은 무명은 먹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제 몫을 나눠주곤 했는데, 오늘 혼자가 된 그에게는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머, 먹고 남은 가시라도 좋, 좋아.”
식단은 역시 어린아이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아이들은 서툰 젓가락질로 가시를 발라내고 있었다. 무명은 가시에 붙은 살점이라도 좋으니 조금만 나눠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저리 꺼져!”
“악!”
매니저도 공일도 아니고 같은 노동자에게 뺨을 얻어맞은 무명은 바닥에 주저앉아 멀뚱멀뚱 눈만 굴렸다. 저와 같은 어린아이도 사람을 때릴 수 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람을 때리기는커녕 나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명은 바닥에 나뒹군 식판과 식기를 들고 구석에 처박혔다.
“나는 나눠줬는데…. 줬는데….”
무명은 보상을 바라고 음식을 나눠준 게 아니다. 제가 괴로운 만큼 다른 아이들 역시 괴로울 것으로 생각해 베푼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 생각과 다른 아이들의 생각이 같으리라 믿었던 그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가, 가시라도 괘, 괜찮은데….”
무명은 또 뺨을 맞을까 봐 무서워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못했다. 녹슨 식판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이렇게라도 하면 배가 차지 않을까 싶어 혀로 식기를 핥으며 울먹였다.
“야.”
“아, 안 울었어요. 안 울었어요, 아, 아버지!”
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무명이 식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자지러졌다. 드디어 아버지가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 그는 긴 머리카락을 넘겨 묶으며 저를 기다리고 있는 공일을 마주하지 못했다.
“악!”
공일은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무명의 머리채를 붙잡아 일으킨 뒤 식판을 빼앗아 들었다. 그제야 저를 부른 것이 아버지가 아닌 그였다는 것을 알게 된 무명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
“됐으니까 따라와.”
“네, 네….”
공일이 무명을 데려간 지하실은 작업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방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무명은 장난감과 젤리, 사탕이 가득 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잔인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한 상황이 끔찍해도 아이는 어쩔 수 없는 아이였기에 장난감에 관심을 보였다.
“식판 줘.”
“네, 네….”
무명이 장난감에 정신이 팔린 동안 공일은 새 식판을 꺼내 들고 밥과 반찬을 담았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치즈케이크까지 함께였다. 무명은 공일이 이곳에서 제게 가장 다정하게 대해주는 어른임을 알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긴장을 늦췄다.
“먹어.”
“…네?”
무명은 살면서 처음 보는 치즈케이크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함부로 질문했다간 혼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밥을 입에 처넣고 허겁지겁 먹었다.
“젓가락질…. 아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여기서 젓가락질 잘 해봐야 이상한 취급 받으니.”
“컥, 컥!”
굶고 또 굶었던 무명은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식사라고 생각해 맨손으로 국을 담아 마시며 급하게 먹기 시작했다. 그 덕에 목에 걸려 먹었던 것을 바닥에 뱉어내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그는 기침이 멎기도 전에 넙죽 엎드려 뱉었던 것을 다시 주워 먹고 무릎을 꿇었다.
“내 앞에서는 안 그래도 돼. 자, 물.”
공일이 원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정한 편이기는 했다만 그래도 가끔 손찌검하고 고함을 치긴 했기에 무명은 당황스러웠다.
“맛있어? 천천히 먹어. 안 뺏어 먹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래 봐야 언제 빼앗길지 몰라 급하게 먹는 건 고쳐지지 않았다.
무명은 밥을 다 먹고 난 뒤 윤기가 흐르는 치즈케이크를 애원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밥은 먹으라고 했지만, 치즈케이크는 먹으라고 한 적이 없었기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
“먹어, 저거.”
“…그, 그, 그래도 되나요?”
“응. 저거 이름은 알아?”
“아, 아니요….”
“치즈케이크야. 앞으로 네가 말 잘 들으면 한 조각씩 줄….”
무명은 공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케이크를 손으로 주물러 한입에 집어넣었다. 공일은 설명해봐야 뭐 하겠냐며 말을 멈추고 커피를 홀짝였다.
그는 무명이 음식을 다 먹어 치우자 어린이용 소화제까지 먹여주며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밥도 배불리 먹고 싶고 케이크도 계속 먹고 싶지?”
“…네, 네.”
“그럼 한 가지 방법이 있어.”
공일은 물티슈로 무명의 입가와 손가락을 닦아주며 명단을 내밀었다. 말은 할 수 있지만, 글자를 읽는 것은 서툰 무명은 작은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열심히 뜻을 이해하려 애썼다.
“내가 왜 여기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지 알아?”
“아, 아니요….”
“알려줄게. 최대한 맞지 않고 돈도 버는 법을.”
돈의 가치를 모르는 무명은 돈이고 뭐고 하루빨리 고깃덩이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공일은 제멋대로 기대를 걸고 제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일지를 하나하나 읊어주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중요하다며 큰 글씨로 강조된 문장은 사람 죽이는 일을 눈감고도 해야 한다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명이 맞는 거 좋아?”
“아, 아니요….”
“그럼 밥 굶는 건.”
“시, 싫어요! 좋지 않아요!”
“그래, 그걸로 됐어. 그럼 내일 나랑 사냥 나가는 거야.”
무명은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고 공일이 말하는 사냥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기분이 평소보다 더 좋아 보였기에 실실 웃으며 비위를 맞춰 줄 뿐이었다.
무섭든 뭐든 덜 맞고 덜 혼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을 믿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무명아, 얼른 일어나.”
“…으, 응….”
밥과 치즈케이크를 먹고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던 무명은 2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일어나 공일을 따랐다. 잠결에 일으켜 세워 놀랄 법도 한데 빠릿빠릿했다.
“춥나? 목도리 해줘?”
“아, 아니에요. 괘, 괜찮아요.”
그는 목도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거절부터 하고 봤다. 무언가를 해달라 요구하면 혼이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 얼굴엔 왜 멍이 들었지? 밥 먹을 때만 해도 괜찮았잖아.”
무명은 두 시간 전 아이들에게 맞았던 것을 떠올리며 울상을 지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뼈를 갈아 버리는 구석에 자리 잡았는데, 아이들은 그가 공일에게 특별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해 담요를 빼앗아가 뼈를 태우는 불구덩이에 쑤셔 넣었다.
몸집이 가장 작고 어린 무명이 열심히 발악해봐야 다치기만 할 뿐 별다른 승산은 없었다.
“아이, 아이들이요.”
“왜?”
“제 담요를 빼, 빼앗아갔어요. 다, 다시 가져오려고 했는데 때렸어요…. 저, 저는 도와줬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대답했다. 이 또한 대답이 늦어지면 주먹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행동 탓에 생긴 습관이었다. 무명은 멍이 든 뺨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뭐, 뻔한 서열 질이네.”
“그,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죄, 죄송해요.”
“됐다. 일단 나가자.”
“네에….”
공일은 필요 없다고 거절한 그의 얇은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고는 손을 잡았다. 어쩐지 다정하고 따뜻한 공일에게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 무명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발을 굴렀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다정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공일. 어딜 그리 급하게 가냐?”
“사냥.”
급히 걸어 나가던 공일이 날이 선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무명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공일이 잘해주건 뭐건 지금껏 당해 온 학대가 있기에 당연히 집어 던지리라 생각한 무명은 최대한 충격을 덜 받기 위해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 아가를 데리고 사냥에 간다고? 며칠 전에 토한 놈 아니야? 눈물만 짜게 생겼구먼.”
“내가 정한 일이니 신경꺼라.”
“…니 잊었나? 아가들은 상품 체크, 손님 안내, 청소만 담당하는데. 사냥은 나중이다.”
언젠가 한 번 본 적 있는 덩치가 산만한 관계자는 공일을 쉽게 보내주지 않으려 했다. 무명은 분위기가 좋지 못함을 감지하고 공일의 목을 세게 껴안았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노동자가 코웃음 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니 얘 도망치게 해주려고 하는 거가? 고깃덩이 보고 토악질해서 근신 받은 놈을 데리고 사냥?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헛소리 마.”
얼굴을 어찌나 가까이 들이대는지 혼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있던 무명이 화들짝 놀라 딸꾹질했다. 작은 머리통이 덜덜 떨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공일은 그의 턱을 우악스럽게 붙잡고는 뺨을 내리쳤다.
“으윽, 악!”
“입 닥쳐. 소리 내면 더 맞는다.”
공일 딴에야 의심을 덜기 위한 행동이지만, 무명은 밥도 주고 치즈케이크라는 것도 주고 옷도 입혀주고 안아주기까지 했으면서 갑자기 폭력적으로 돌변한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아, 하…. 흐.”
“이제 됐나? 내가 미쳤다고 얘를 풀어 줘? 나도 내 목숨은 아깝다.”
“그럼 왜 데려가는데? 똑바로 말해라.”
“내 조수로 키울 거다. 참견하지 마라.”
숨쉬기 힘들 때까지 얻어맞은 무명이 축 늘어지고 나서야 공일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관계자도 그제야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터주었다.
“…알았다. 난 또 풀어주려는 줄 알았지. 가라.”
공일은 무자비한 폭력에 바지에 실례한 무명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데리고 나가 차에 태웠다.
때릴 때는 언제고 또 다정하게 얼굴을 살피고 바지를 벗겨주는 손길에 무명은 공포에 질려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명아, 숨 쉬어.”
“흐, 으…. 하….”
그는 공일의 손가락이 입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공일은 젖은 수건으로 무명의 허벅지와 다리 사이를 닦아주고 차 안에 정리되어있던 여분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멀리 갈 예정이니까 눈 좀 붙여. 아니면 혹시 배고프….”
“아, 아, 아니요, 아니에요, 하, 배고프지 않아요….”
무명은 경직된 몸과 불안한 말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일은 공황상태에 빠진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달래는 건 자신이 없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조수석을 뒤로 젖혀주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도착하면 깨울게.”
“네, 네….”
무명은 잠이 모자라고 힘들긴 했지만 언제 저를 때릴지 모르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으므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있어도 무서웠고 얻어맞은 얼굴이 아팠다.
공일을 신뢰한 것은 아니지만, 다정하다고는 생각했기에 이번 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 자니?”
다정한 목소리에 무명은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자는 척해야 하나 아니면 도저히 잘 수 없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도 대답은 꼭 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제대로 못 잤잖아.”
“모, 모르겠어요.”
무명은 공일이 무서워서 그렇다고는 죽어도 말하지 않았다. 공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의 눈을 안대로 가려주고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야, 머리가 어떻게 이렇게 곱슬곱슬하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라고 한 말 아닌데. 예뻐해 준 거야.”
“네?”
예뻐해 준다는 게 뭔지 모르니 무명은 바보같이 되물었다. 말을 배워 예쁘다의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역시 실생활에 적용하기엔 무리였다.
“네가 일만 잘하면 이렇게 차도 탈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어. 그러니 내 말 잘 들어야겠지?”
“…네!”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단어에 무명이 방긋 웃었다. 작은 방 안에 갇혀서 그렇게 바라던 행복을 주겠다니 공일이 조금 때린다고 해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얼른 자. 일하려면 피곤해.”
“네….”
“못 한다고 나가떨어지면 혼날 줄 알아.”
“네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무명은 온 힘을 다 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는 다친 뺨과 이리저리 까치집이 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꽤 오랜 시간 달려 눈이 가득 쌓인 산에 도착한 무명은 눈치를 살피며 구조물을 구경했다. 졸려서 늘어지고 싶었지만, 막상 눈이 쌓인 산을 보자 가슴이 콩닥였다.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해진 그가 공일을 올려다보며 먼저 질문했다.
“저….”
“응, 왜.”
“사냥이라는 게 뭘까요?”
“보여줄게, 따라와.”
강하게 키우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공일은 눈이 가득 쌓인 산을 오르는 무명을 잡아주거나 안아주지 않았다.
“하아, 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고 더는 못 걷겠다 싶을 때쯤 규모가 꽤 큰 별장이 모습을 보였다.
공일은 소파에 잠시 무명을 앉혀두고 어딘가에서 칼을 가져왔다.
“자.”
“이, 이걸요?”
그는 커다란 칼을 무명의 손에 쥐여주며 고개를 까딱였다. 무명은 날카롭고 무서운 물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직접 손에 쥐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니 두려웠다.
“먹어.”
공일은 곧 잡아 먹힐 것처럼 떨고 있는 무명의 입에 사탕을 넣어주고 무언가를 열심히 꺼내냈다.
피비린내가 가득하고 땔감이 이리저리 놓여있는 별장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눈 덮인 바깥 바닥에는 녹슨 쇠사슬이 가득 쌓여있었고 못이 박힌 몽둥이도 놓여있었다.
쫄래쫄래 돌아다니며 쇠사슬을 만지려던 그는 공일이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자. 이렇게 해.”
“…으, 으으….”
안 그래도 겁에 질려 있던 무명은 공일이 고깃덩이를 마구 내리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고깃덩이는 축 늘어져 더 내리칠 필요도 없는 상태였다. 가죽을 타고 흐르는 피가 그토록 붉어 보일 수가 없었다. 무명은 혼날까 봐 멀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한 발자국 멀어져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얼른 따라 해. 맞기도 싫고 맛있는 밥도 먹고 싶다면서, 내 말 듣겠다면서?”
공일은 조곤조곤하게 무명을 협박했다.
“고, 고기는 함, 함부로 훼, 훼손? 하면 안 되는데….”
궁지에 몰린 그는 망가진 고깃덩어리를 곁눈질로 살피며 고개 저었다. 고기를 함부로 훼손하는 행위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무명은 제 손으로 고기를 망가뜨리라고 협박하는 공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 이공일 다, 담장자님께서는….”
“그냥 형이라고 해. 우리 사이에.”
“형께서는…. 저, 저를 호, 혼나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뭐?”
무명의 말에 공일은 배를 붙잡고 실성한 듯 웃었다. 조수로 키우겠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혼나게 하려고 하냐니. 공일은 혼자 진지한 그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설명했다.
“훼손하지 말라는 건 상품으로 팔려나갈 고기고. 이건 손질 연습용 고기라서 괜찮아.”
“소, 손질 연습이요?”
“응. 너희가 펜으로 표시하던 고기 있지?”
“아, 네….”
무명은 끔찍했던 그것을 떠올리고도 구역질을 하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토를 하면 또 그 방에 갇혀야 함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야. 네가 손질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일터에서 가장 우위에 설 수 있을 거야.”
“우, 우위요?”
“응, 가장 높은 사람. 밥을 굶지 않아도 돼. 맞는 횟수도 줄어들 거야. 그리고 너를 때렸던 그 아이들 있지? 그 아이들도 모두 네 밑에 둘 수 있어. 때려도 돼.”
무명은 제 담요를 태우고 음식도 주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던 아이를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밉고 속이 상하기는 했지만, 때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제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처럼 맞고 싶니?
“…아, 아니요.”
또 맞고 싶지도 않았다. 때리고 싶지도 맞고 싶지도 않은 무명은 둘 다 가질 수 없느냐 질문했다.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부정적인 말이었다.
“뭐, 안 할 거면 말아. 다른 애 데리고 와서 해도 돼. 아, 너 괴롭히던 아이도 괜찮겠네. 그 살찌고 덩치 큰 애. 그래서 명이 너 매일 때리고 밥도 빼앗으라고 해야겠다.”
“…….”
“명이를 죽이라고 해도 되겠네.”
“…네?”
공일은 무명을 어르고 달래지 않았다. 네가 하지 않겠다면 다른 아이를 시킬 테고 네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에 무명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렸다.
“아니면 내가 여기서 널 확 먹어버려도 되겠다. 넌 손질도 못 하는 구더기니까.”
“혀, 형….”
“누가 네 형이야!”
무명이 끝까지 하지 않겠다고 하자 공일은 순식간에 돌변해 그에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명이 겁에 질려 미처 피하지 못하자 얼굴에서 피가 터졌다. 공일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서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했다.
“하, 하, 할게요, 제가, 제가 하, 할게요….”
“안 되겠다. 너 이리 와.”
입가에서 피가 흐르자 무명이 황급히 칼을 잡았다. 자그마한 손으로 서툴게 고깃덩이를 내리쳤을 때, 공일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아 다른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악!”
무명을 집어던지듯 놓아버린 공일은 조금 더 큰 칼을 내밀었다.
그의 고갯짓을 따라 시선을 옮긴 무명은 조금 전과는 달리 아직 살아있는 재료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쇠사슬에 묶인 재료는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헐떡였다.
“사, 살아있는데, 살아있는데!”
“나중에는 살아있는 것만 손질할 거야. 미리 해 봐.”
“흐으, 싫….”
“싫어? 그래서, 안 한다고?”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싫다고 대답한 무명은 저를 노려보며 협박하는 공일을 보며 벌벌 떨었다.
“목부터 그으면 재미없어, 명아. 먼저 가장 맛있는 다리부터 손질해볼까?”
“네, 흐…. 네에, 네….”
무명은 정말 하기 싫었지만, 공일과 앞으로의 취급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칼을 쥐었다. 그는 고기가 흘린 피를 닦아내고 공일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손질하기 시작했다. 칼을 기울여서 포를 뜨듯 움직이자 재료가 비명을 질러댔다.
“흐으, 윽, 꽥꽥 거려요, 흐으, 흐….”
“울지 말고. 거 참 시끄럽네, 그치?”
손질용 칼이기는 했지만, 어린아이의 힘인지라 살은 깔끔하게 잘려나가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속살과 새빨간 피로 범벅된 재료를 내려보는 무명의 눈은 두려움과 칭찬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찼다.
“괘, 괜찮은가요?”
“음, 아직은 형편없지. 손질이 그리 쉬운 줄 알았니?”
“…죄, 죄송합니다.”
칭찬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눈을 무시한 공일은 무명의 작은 손등을 제 손으로 덮고 힘주어 썰어내기 시작했다.
“깩, 끽! 끼익!”
마취도 없이 허벅지 살이 갈려 나가기 시작한 재료는 끽끽 비명 지르며 온몸을 경련했다. 사슬이 벽에 부딪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흔들리자 무명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 반응을 빼놓지 않고 관찰한 공일은 칼질의 권한을 무명에게 맡겼다.
“잘 발라내면 칭찬해줄게.”
“…….”
“할 수 있지? 그건 즐거운 일이야. 손질은 즐거운 일이야, 명아. 그렇지?”
“…네.”
공일은 손질은 즐거운 일이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하고 등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재료는 공일이 자리를 비우기 무섭게 무명을 바라보며 몸을 비틀었다.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고통스러워 보였다.
“살려줘!”
“헉!”
재료를 열심히 손질하던 무명은 고기가 살려달라고 말하는 환청을 들었다. 잠시 놀랐던 그는 잘못들은 게 틀림 없다며 자신을 세뇌했다.
칼질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무명의 눈에는 공포가 조금씩 사라지고 묘한 흥미가 서서히 차올랐다.
“끽 끼약!”
“…저, 저기, 조, 조금만 조용히 해 줘. 나, 나 치, 칭찬받을래…. 고, 고기가 되는 건, 서, 서로 좋은 거야. 가, 가치 있는 삶이야!”
오직 칭찬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 하나에 빠진 무명은 제 밑에서 죽어라 소리치는 재료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맞지 않고 굶지 않아도 된다면 그 누구보다 더 잘 손질할 자신이 있었다.
“…….”
조금 주저하던 무명의 칼날이 재료의 입으로 향했다. 시끄러우니 조금 조용히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은 조금 전 공일이 제 입을 그었던 것과 같이 재료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가 그랬듯 고기도 금방 조용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와, 이제 조, 조용하다….”
재료가 죽은 것처럼 조용해지고 나서야 무명은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무명이 모든 작업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자 공일이 천천히 다가왔다.
“혀, 형아! 저, 저 다 했어요. 소, 손질은 즐거운 일이야, 그, 그렇지, 며, 명아?”
다친 무명을 치료해줄 약과 음식을 가지고 오던 그는 제 눈 앞에 펼쳐진 참담한 광경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힘 빠진 손을 움직여 고깃덩이를 내리찍던 무명은 공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더 강하게 쑤셨다.
“손질은 즈, 즐거운 일이야….”
그는 공일의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마치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불안하고 무서워서 자신을 세뇌하는 모습이었다.
공일은 피범벅이 된 무명을 껴안아 쓰다듬어주며 연신 칭찬을 해주었다.
“손질은 즐거운 일이야. 이제 알겠지. 명아?”
“네, 네에….”
무명은 처음 받아보는 칭찬에 녹아내려 한참을 웃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한 상태로 제 몸에 몇 배는 더 큰 고기를 손질까지 했으니 체력이 바닥날 만도 했다.
재료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있었으며 흰 눈밭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다리만 어떻게 좀 하라고 했더니 무명은 이곳저곳 보이는 대로 다 쑤셔 넣고 찢어놓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열 살의 무명은 도축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첫 작업을 마쳤다.
“그래, 자라 자.”
공일은 피에 절은 무명의 몸을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수면 부족과 도축으로 인해 지친 무명은 제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질렀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려가며 잠들어 있었다. 그 별거 아닌 칭찬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주변을 대충 정리한 공일은 사람을 불러 뒤처리를 맡기고 헐렁한 옷을 입은 무명을 안아 들었다. 그의 자질은 모두 확인했으니 다시 본거지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 ♢ ♦
“…왜, 왜 여기지?”
잠시 잠든 사이 마켓으로 돌아오게 된 무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공일이 치즈케이크와 밥을 주었던 그 방이었다.
왜 여기에서 자고 있나 싶어 시계를 살핀 그는 제가 일해야 할 시간이 10분이나 지났음을 인지하고 벌떡 일어나 옷과 장갑을 찾기 시작했다.
“없어, 없어….”
일터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은 밖에서 잠겨 있지, 옷은 안 보이지,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지. 어린 무명은 미칠 지경이었다.
일할 시간에 늦거나 아프다고 빠지는 날에는 끔찍한 벌이 내려진다. 그는 배고픈 고기들이 저를 물어뜯는 상상을 하며 두려워했다. 시곗바늘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일 때마다 무명도 함께 분주해졌다.
“어,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시곗바늘 소리보다 무명이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온몸을 땀으로 적신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도축용 칼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공일이 익숙해지라고 놓아둔 흉기인데 무명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 다리를 썰고 이, 입안을 찌르고 가, 가슴을 내리찍었더니 움직이지 않았는데, 무언가 길쭉하고 푸른 끄, 끈을 잘라냈었는데…. 음….”
그는 소리치고 발악하다가 결국 움직임이 잦아들었던 재료를 떠올리고는 제 손목에 칼을 가져다 댔다. 똑같이 팔다리를 잘라내려 했는데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높이 팔을 들 수가 없었다.
“으, 읏….”
무명은 공일이 가르쳐줬던 대로 손에 힘을 풀고 칼끝을 세워 피부를 긁어내렸다. 날카로운 칼끝은 여린 피부 위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생각보다 쓰라린 고통에 무명이 손목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붉은 피가 새하얀 팔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애원하던 재료의 목소리를 떠올리고는 입을 틀어막고 구역질을 해댔다. 그 재료 역시 아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명의 머리를 마구 뒤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고기가 될 재료야. 재료라고 했잖아. 고기야! 고기야! 고기야! 헉! 사람이 아니야, 사람 말 못 해! 아니야!”
믿을 수 없는 고통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는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열리자마자 공일에게 매달려 엉엉 울었다. 울면 아버지가 온다는 생각을 망각할 만큼 고기가 저와 같은 고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무슨 일이야?”
“…흐, 윽…. 으.”
“팔은 왜 또 이 모양이야?”
공일은 아직 자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무명이 피를 질질 흘리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공일은 그가 연약하지 않았으면 했다. 고기를 거래하고 하루만 해도 몇백 구의 사체가 오가는 곳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건 잡아먹어달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공일은 주저앉은 무명을 일으켜 세우고 상처를 치료해주며 물었다.
“뭐가 문제야, 울지 말고 말을 해 봐.”
“…….”
제 팔에 감겨 있는 붕대를 바라보던 무명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고기가 아팠으면 어떡하냐고 물으면 혼이 날 것 같아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저, 전에, 나쁜 짓을 하면 누, 누가 자, 잡으러 온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공일은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무명은 제게 못되게 굴었던 아이들을 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착하고 순한 아이였기에 고기를 손질한 게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어 했다.
“제, 제가 소, 손질한 것이 고, 고기인가요, 사람인가요?”
또, 사람말을 들은 게 정말로 환청인지 아닌지 알아야 했다.
“고기가 될 재료였어.”
공일은 무명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재빠르게 대답했지만, 그 한 마디로 무명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부족했다.
게다가 사람인지 아닌지 확실히 말해주는 대답도 아니었다. 그는 마치 공일을 심문하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재, 재료는 으, 음식이 될 가장 중요한 요, 요소잖아요.”
“어.”
“머, 먹는 거요. 그, 그런데 어제 고기가 아, 아파했어요. 으, 음식이 될 재료가 어, 어떻게 고통을 느낄 수 있죠? 그, 그리고 뭔가 이상해요.”
“뭐가?”
“지금 생각해보면 제, 제발 사,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던 거 같아요. 이게 바로 전에 가르쳐주신 차, 착란이라는 건가요? 저, 정신착란을 일으킨 거라고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런데 왜 제, 제가 이런 즈, 증상을 보이죠? 제게 차, 착란이 생긴 건가요? 그럼 저는 고, 고기예요? 저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니라 고기였다는 건가요?”
무명은 말을 다 배우고 난 뒤, 정신착란, 거짓말, 환청, 환시에 관해 일주일 내내 듣고 또 들었다.
말이 좋아 교육이지 실상은 세뇌였다. 대부분 마켓에 잡혀 있는 재료들을 마음 놓고 손질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도축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갑자기 왜 이래?”
다른 나라에서 유괴된 아이들이나, 팔려 온 아이들, 길거리에서 떠도는 집 없는 아이들은 머리가 굵어 그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 덕에 잘못했으면 맞아야 한다는 말에 익숙해진 무명은 그 터무니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한번 고기라고 정의 내린 것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공일이 무명을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리고 아버지의 세뇌 및 학대로 인해 주눅이 들어있는 상태에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이다.
“무명아, 그건 아마 네가 재료가 처한 상황에 과하게 몰입해서 그런 거 아닐까?”
“…네?”
말로 세뇌하는 건 쉬웠지만, 실전은 그렇지 않았다.
무명은 조금 불안해하긴 했지만, 잘만 손질해놓고서, 뒤늦게 반쯤 미치려 했다. 마켓에서 세뇌된 어려운 단어까지 꺼내며 손을 벌벌 떨었다.
“고기의 가죽을 자를 때 어땠어? 분명 신나고 기분이 좋았잖아?”
“그건….”
무명은 혼란스러웠다. 제가 손질한 고기는 좋은 상품이 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갈 테니 그건 분명히 좋은 일이며 고기에게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제가 정말로 미쳐버린 건지 너무나도 애절하게 들려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말이라면 차라리 배우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던 제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넌 웃고 있었어, 명아. 기분이 좋았던 거야. 고기를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 되어버린 거라고. 다른 사람이 너를 좋아하게 돼!”
“…저, 저는 그 고기가 왜 아파했는지가 궁금….”
“고기는 아파하지 않았어. 네가 긴장해서 그래. 환청을 들은 거야 명아, 고기가 어떻게 말을 하겠어? 넌 인간들의 식량으로 만드는 신이야!”
공일은 무명의 작은 손을 붙잡고 얼굴을 들이밀며 열변을 토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탓에 무명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했다.
“아, 그리고 일은 안 해도 돼. 내일부터 넌 여기서 칼질을 배울 거야. 침대랑 옷, 간식과 장난감도 들여줄게. 오늘은 편하게 쉬어.”
“…네.”
공일은 그가 나오지 못하게 문을 밖에서 잠가버리고 가버렸다.
분명히 이 방은 원래 머물던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깨끗한데 무명은 더러운 오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불편하고 괴로웠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가득했고 도축을 이뤄낸 손은 잘게 떨렸다.
“…왜?”
무명은 스스로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벽에 찧으며 괴로워하던 그는 먹은 것을 게워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혼란스러웠다. 고기는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그렇게 들어왔는데, 어제 손질했던 고기는 분명 고통을 느꼈다. 또 회개니 신이니 뭐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성이라 제정신으로 잠들 수가 없었다.
“하아, 하….”
한참을 울고 괴로워하던 무명은 토사물을 닦아내고 멍하니 허공만 응시했다. 이제는 고기가 사람이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보다는 큰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기가 죽었다.
“명아?”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자마자 무명은 소스라치게 놀라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반응이 없음을 수상하게 여긴 공일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무명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거기서 뭐 해? 밥 먹으라니까.”
“…무,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응, 해.”
공일은 고급스러운 그릇을 가지고 와 무명 앞에 놓아주고 영양제와 비타민까지 먹여준 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마쳤다. 무명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마나 고민하다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명이는 아, 아가잖아요.”
“그렇지?”
무명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한 뒤 나름 제 마음이 편할 정도의 결론을 내렸다. 이제 그 결론을 확인받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인지라 그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공일을 이용했다.
“아가는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아, 안 잡혀가죠? 버, 벌 안 받죠?”
“응.”
죄를 저지르는 것보단 죗값을 받는 쪽이 더 무서운 무명은 제 나이가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받으려 했다. 아이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괜찮아요. 고, 고기가, 고기가 고통을 느낀다고 해도…. 고, 고기는 그래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맞죠?”
“응.”
“이제 다 괜찮아요. 명이는 아가니까 아가는 안 잡, 잡혀가요! 아가니까요! 그렇죠? 명이는 무슨 짓을 해도 아, 안 잡혀가요!”
무명은 본인이 저지른 죄를 외면하기 위해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방긋방긋 웃으며 무서운 소리를 하는 무명의 모습에 공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무명은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미역국과 밥을 급히 씹어 넘겼다.
♦ ♢ ♦
그렇게 그는 칼 기술을 배우고 또 배웠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 할수록 공일과의 사이도 돈독해졌다.
마냥 순수한 어린아이였던 무명은 권력을 한 번 맛보고 나서부터는 점점 악에 물들어갔다. 맨 처음은 제 담요를 빼앗고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던 아이의 뺨을 후려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 오늘은 그 애가 저한테 음식을 나눠줬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 얼굴에 비벼줬죠. 주제를 모르는 아이는 맞아야 해요.”
무명은 무서운 소리를 하며 까르르 웃었다.
여태껏 고기를 손질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쁘다고 생각했기에 손을 올리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고, 한 번 폭력의 달콤함을 알게 된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밟고 때렸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도 순전히 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폭행했다.
“하하하! 잘했어, 무명아.”
무명은 공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를 가장 좋아했다. 곱슬곱슬한 게 기분 좋다며 만져주면 일부러 머리를 문질러 더 부풀리고는 했다.
“명이 성인 되면 성인식 해줄게.”
“그, 그게 뭐예요?”
그는 성인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공일이 가르쳐주는 것은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대하는 얼굴로 질문하는 무명을 앉히고 코코아를 내준 공일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무명이가 어른 되는 날 잔치하는 거야. 우리 마켓에서 매번 하는 행사거든.”
“야, 약속해요!”
“그래, 약속하자. 아, 맞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네 작업실 완성됐어.”
“작업실이요?! 드디어?!”
내일이면 무명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실이 생긴다. 그가 일하기 쉽게 공일이 직접 제작해준 장소였다. 도축용 나이프와 술을 만들 수 있는 기계까지 함께 있었다.
레드 마켓의 허가를 받았다고는 하나 매니저는 그리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최근 무명과 함께 지내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려져 둘은 화장실이나 담배를 태우는 구석진 곳에서 몰래 만나곤 했다.
“그럼 내일 봬요!”
“응, 잘 자.”
공일과 헤어지고 침대에 누운 무명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잘 맞는 동료가 생겼으며 그 동료가 저를 위해 작업실을 만들어줬다는 것이 벅찼다.
공일은 무명에게 칼질의 비법을 전수해주고 제 옷과 도축 도구들을 물려주는 등, 마치 정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나눠주었다. 무명은 이대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불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복은 하룻밤에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자. 받아.”
“뭐, 뭐예요?”
아침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온 무명은 공일과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다른 관계자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무명이 인사를 하자 관계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를 내밀었다.
“네 작업장 주소다.”
함께 가기로 한 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보던 무명은 공일에게 무슨 사정이 있겠구나 싶어 관계자의 차를 얻어타 작업장으로 향했다. 화려하고 큰 규모에 감탄하기도 전, 그는 어쩐지 이상한 불안이 엄습해 문을 벌컥벌컥 열며 공일을 찾아다녔다.
“이공일 담당자님은요?”
“없어, 이제 안 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무명은 제게 권력을 쥐여준 공일이 작업장 주소만 남겨두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다.
그는 유일한 동료인 공일이 제게 말도 없이 사라질 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기에 다시 마켓으로 돌아가 행방을 찾았다.
“그만 좀 찾아. 너한텐 이제 쓸모없는 놈이라니까?”
“어, 어째서죠? 아직 저는 더, 덜 배웠어요. 더 배워야 해요!”
무명은 맞는 한이 있어도 공일을 돌려받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상급자에게 대들며 날을 세웠다. 분명히 성인식도 해준다고 했는데, 하루아침 사이에 사라질 리가 없다.
그는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며 얼른 공일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동료를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생이별을 경험한 무명이 일하지 않겠다고 시위하자 손질되는 고기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너, 죽고 싶어?”
지시 불이행으로 몇 년 만에 사체가 가득한 방에 갇힌 그는 죽고 싶냐고 묻는 매니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공일을 만나기 전까지는 죽을 수가 없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만 알려준다면 다시 일할 수 있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이, 이공일 담당자님 내놔!”
무명은 이제 죽어버린 고기들이 부럽지 않았고 그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무섭지도 않았다.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파악한 그는 얻어맞고 굶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먹어, 먹고 일하라고! 잘못했다고 빌어!”
무명이 사흘째 음식을 먹지 않자 상급자와 매니저들이 공일의 소식을 전했다. 그는 잠시 다른 나라에 일을 하러 갔으며 작업량을 채우면 다시 돌아올 테니, 열심히 일하는 게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못 기다려요. 저는 담, 담당자님 없인 아, 아무것도 못 해요.”
“…하, 좋아, 그래. 네 할 일을 다 끝내놓으면 이공일이 있는 쪽으로 보내줄게. 어때? 너만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면 더 일찍 만날 수 있어. 그런 멍청한 놈을 도대체 왜….”
“다, 담당자님은 멍청하지 아, 않아요!”
“아, 그래그래, 알았어. 알겠어!”
무명은 열심히 하면 공일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에 죽을힘을 다해 일했다. 도축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 하나로 힘든 일이 있어도 꾹 참을 수 있었다.
“꼬,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평생이 가도 채우지 못할 작업량임을 꿈에도 모르는 무명은 다시 만날 수 없는 공일만의 만남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