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읏.”
무명이 열심히 일하는 사이, 배뇨감을 느낀 서인이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대던 그는 무명의 부재를 확인하고는 족쇄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또 어딜 기어나간 거야?”
서인은 일찍 돌아오지도 않을 거면서 묶어놓고 가버린 무명을 험담했다. 비척비척 걸음을 옮긴 그는 열쇠를 숨겨둔 서랍 밑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윽….”
재수 없게도 열쇠가 서랍 다리 사이에 꽉 낀 탓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서랍을 들어보려 했지만, 사슬로 단단히 고정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씨발! 하….”
어쩔 수 없이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열쇠가 뚝 부러졌다. 반으로 부러진 열쇠로 풀어보려 해도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헛돌 뿐 족쇄의 잠금은 풀리지 않았다.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소변이 급한데, 방에는 요강은커녕 페트병 하나도 없었다.
“개 같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머리맡에 놓인 붉은 주스를 발견한 그는 잔을 집어 던지며 신경질을 냈다.
배변 활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술과 고기도 취향껏 꺼내 먹을 수 없다. 마시라고 두고 간 음료마저 붉은색이라니.
서인은 당연히 누려야 할 의식주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맞춰주지 않는 이 환경에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지루한 납치 놀이에 어울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읏….”
배가 쿡쿡 쑤셨다. 태어나서 소변을 참는 건 처음인 서인은 불쾌한 통증에 인상을 쓰고 몸에 힘을 주었다. 긴장을 늦췄다가는 당장에라도 실수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낯짝이 두껍다고 한들 그가 아무 데서나 소변을 보는 인간성이 바닥 난 사람은 아니었기에 입술을 깨물고 배뇨감을 꾹 참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일을 끝낸 무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행복한 얼굴로 차에서 내린 무명은 서인을 만나기 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예쁜 척을 했다.
“형아가 예쁘다고 해주면 좋겠다….”
서인을 볼 생각에 신나 지하실 문을 열어젖힌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방긋 웃었다. 밥은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 소감을 들을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았다.
“형아, 저 왔…. 악!”
“그래, 우리 개새끼. 이제 기어들어 와?”
그러나 환영은커녕 문을 열자마자 유리잔이 날아들었다. 유리만큼 뾰족한 호칭도 함께였다. 이마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무명이 눈을 질끈 감고 신음했다.
“왜, 왜 그러세요…. 형아?”
“오냐오냐해주니까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지. 이 씨발 새끼가.”
그렇게 예뻐하던 얼굴을 다치게 한 서인은 당황도 하지 않고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었다. 조곤조곤 책을 읽듯 말하니 더 무섭게 느껴졌다. 차라리 윽박지르는 편이 몇 배는 더 나았다.
“왜, 왜….”
무명은 깨진 유리잔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서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무섭기도 했지만,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이런 대우를 받아 억울하기도 했다.
“왜라는 말이 나와?”
“잘 모르겠는데….”
무명의 불안한 시선이 담요를 구명줄처럼 붙들고 있는 서인의 손으로 향했다. 손가락이 희게 질릴 정도로 꼭 붙잡고 있는 탓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형아, 담요는 왜 그렇게 잡고 있어요? 혹시 담요에서 냄새가 났나요? 그래서 화가 났….”
“손 치워, 죽여버리기 전에 치워.”
무명의 시선이 담요로 향하자 서인의 손에 다시금 힘이 실렸다. 그 변화를 눈치챈 무명은 담요가 문제였음을 확신하고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새것으로 바꿔드릴게요, 형아 죄송해요. 더러운지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무명이 용서를 빌며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고 울먹였다. 서인이 깔끔한 타입임은 알고 있지만, 고작 담요 때문에 불같이 화를 내다니. 사과는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바꿔드릴게요. 주세요.”
“됐으니까 이거나 풀어.”
“싫어요. 제가 해드릴 거예요. 챙겨드리고 시, 싶단 말이에요!”
무명과 서인은 서로 이상한 고집을 피웠다. 쓸데없는 의견 충돌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무명이 담요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풀라고. 어차피 씻을 거니까.”
“제가 모셔다드린다니까요, 악!”
의미 없는 힘겨루기를 하던 서인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예고도 없이 손에 힘을 풀었다. 그 덕에 열심히 잡아당기던 무명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아야, 아프잖아요! 너무해! 미워!”
무명이 부딪힌 엉덩이를 문지르며 투덜댔다. 아프기도 했지만, 서인이 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다칠 수도 있는 상황임을 그가 모를 리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손잡아주세요, 일으켜 주세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담요나 치워.”
그러나 서인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차갑게 반응했다.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무명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줄줄 흘렀다.
“흐, 흑…. 형아는, 형아는 무명이를 정말 좋아하기는 해요?”
“그 애새끼 같은 화법 좀 관둘 수 없어?”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서인은 무명의 호소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화법을 지적했다. 무명은 끝까지 손을 잡아주지도 않는 서인에게 화가 나서 눈을 마구 비비며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저, 저도 반항할 거예요!”
“어디 한번 해 봐.”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려던 무명은 서인의 눈빛 하나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칭얼거려도 통하지 않고 나름 호통쳐봐도 통하지 않자 그는 서인을 껴안고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저는 조, 좋아하니까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형아는 왜 맨날, 흐, 맨날….”
“네가 잘못을 하잖아.”
“그래도, 그래도! 무명이 예쁘다면서요! 어, 어?”
담요에 눈물을 닦으려던 무명이 축축함을 느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젖었나 싶어 담요를 넓게 펼쳐본 그는 표면을 손으로 더듬으며 냄새를 맡았다.
“어, 어? 이거? 이거 소변이에요?!”
익숙한 냄새에 놀란 무명이 서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다시 한번 냄새를 맡아 본 그는 그제야 서인이 왜 화가 났는지를 깨닫고 날아갈 듯 기뻐했다.
서인이야 이런 경험이 처음이겠지만, 직업 특성상 무명은 지겨울 만큼 익숙했다. 두려움에 실변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 정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하하, 형아, 뭐 이런 거로 그러세요! 소변 좀 쌀 수도 있는 거죠! 제가 너무 늦게 알아챘네요, 죄송…. 악!”
하지만 서인은 그렇지 않았다. 바지에 실수한 것도 모자라 타인에게 이런 수치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 괜찮을 리 없었다. 화가 난 그는 실실 웃는 무명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주먹으로 뺨을 내리쳤다.
“아, 아악! 흐아, 하, 왜, 왜 그러세요, 왜….”
예상치 못한 폭력에 혀를 씹은 무명이 뺨을 부여잡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손바닥도 아니고 주먹으로 얻어맞아서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씨발…. 하.”
“그, 금방 치워드릴게요!”
그는 아프고 서러웠지만, 시간을 끌면 서인이 더 싫어할 것 같았기에 벌떡 일어나 애써 미소를 지었다.
“소, 속옷이랑 바지 가지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더럽혀진 옷 주세요.”
무명은 서인이 꾹 쥐고 있는 바지와 속옷부터 건네받으려 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화났으니 요인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럽혀져?”
그러나 더럽다는 말에 꽂힌 서인이 무명의 멱살을 붙잡고 위협했다. 소변으로 범벅되었으니 더러운 게 맞는데 그는 괜한 트집을 잡으며 화풀이를 해댔다.
“으, 싫어!”
또 맞을까 봐 겁이 난 무명은 서인의 옷과 담요를 빼앗아 들고 계단을 뛰어올라 도망쳤다.
“많이도 싸셨네….”
서인의 소변으로 젖은 담요를 바라보던 그는 심장이 콩콩 뛰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성기가 욱신댔다. 애써 외면해봤지만 얼마 못 가 고개를 푹 숙이고 신음했다.
“어, 흐, 으읏….”
성기에 맥이 펄떡펄떡 뛰고 아랫도리가 묵직했다. 발기한 것을 발견한 무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발딱 서는 것이 정말로 발정 난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쥐고, 쥐고 흔들어야 해.”
무명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바지를 내렸다. 서인이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성기를 쥐고 흔들어야 했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내려가면 그가 경멸할 것 같아 무서웠다.
“악!”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다.
옅은 분홍빛 성기에서 투명한 액이 흐르는 모습을 본 무명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지나치게 크고 흉흉해서 보고 싶지 않았다. 벗긴 벗었지만, 만지지는 못하는 한심한 신세였다.
꾹꾹 짓눌러봐도 빳빳이 고개를 쳐든 성기는 배꼽 위로 찰싹 달라붙을 뿐 수그러들지 않았다.
“왜 또 선 거야!”
발기의 개념을 알게 된 무명은 흥분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서인의 소변이 묻은 담요를 보고 심장이 뛰고 열이 오른 건 인지했지만, 소변을 보고 흥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서 확신하지 못했다.
“…형아한테 물어봐야겠다.”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선 서인이 필요하다. 그는 어떻게 해야 그의 화를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창고에서 맑은 술을 꺼내 들었다. 맨입으로 도움을 청해봤자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술과 수건을 품에 안고 지하실 계단으로 쪼르르 달려온 무명은 문 사이로 얼굴만 쏙 내밀었다. 서인이 또 때릴까 봐 무서워 바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더 있다가는 서인이 평생 저를 보지 않을 것 같아서 차가운 술을 뺨에 비비며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형아….”
“빨리 기어 내려와.”
역시나 날이 선 말투다. 좋은 분위기여도 모자랄 판에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흥분한 이유를 찾아달라 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형아가 다정하게 말 안 해주면 안 갈 거예요.”
그런 이유로 무명은 나름대로 반항을 해보았다. 그는 서인을 향해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과 마른 수건을 던져놓고 멀찌감치 서서 반응을 살폈다.
“잘못은 네가 했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란 말이에요.”
서인은 저보다 열 살은 더 어린 무명을 상대로 기 싸움을 했다. 어리다고 봐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따지고 보면 원인제공은 무명이 했고 대든 것도 무명이었으니 말이다.
“잘못했다고 빌어.”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안 때리면 갈게요.”
“하아, 씹…. 그래, 알았으니까 내려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과였지만, 한시라도 빨리 족쇄를 풀고 몸을 씻고 싶은 마음에 대충 사과를 받아주며 그를 불렀다.
“정말요?”
“그래.”
화가 나서 때리긴 때렸지만, 부은 얼굴을 보자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있었다. 서인은 쭈뼛쭈뼛 다가온 무명을 잡아당겨 퉁퉁 부은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무명도 그제야 경계를 풀고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배시시 웃었다.
“맞을 짓 하지 마. 알았어? 내가 널 때리는 건 다 네 잘못이야.”
“네에…. 그런데요, 형아.”
“왜.”
서인의 손길을 느끼던 무명이 눈치를 슬슬 살피며 술을 내밀었다. 흥분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해야 하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뇌물을 주며 마음부터 풀어보려 했지만,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 서인은 술을 받지 않았다.
“왜 주는 건데.”
“그, 그, 그냥요.”
“세상에 그냥이란 건 없어.”
쉽게 넘어가지 않자 무명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온갖 변명을 늘어놓아도 믿지 않을 분위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저질렀다.
“발기했는데, 이유가 궁금해서요. 혀, 형아가 그 이유를 찾아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혹시나 맞을까 싶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발기한 이유를 찾아달라는 말이 얼마나 생뚱맞은지 본인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지는 못했다.
“발기?”
“네, 사실은 형아 담요를 보고 나서부터 몸이 뜨겁고 서, 성기가 간지러웠어요. 그런데 제가 소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요.”
무명은 소변 자체에 흥분한 건지 아니면 평소와 달리 수치스러워하는 서인의 모습에 흥분한 건지 궁금했다.
“도와주세요!”
발기한 이유를 찾아달라는 요구에 서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꼴렸으니까 섰겠지 그런 걸 찾아달라고 징징대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 그걸 내가 어떻게 도와? 네가 아는 거지.”
“그, 그게….”
간단했다. 무명은 서인이 침묵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해둔 방법을 읊기 시작했다. 여전히 맞을까 봐 잔뜩 움츠러든 채였다.
“제가, 제가 소변에 흥분한 건지 형아의 색다른 모습에 흥분한 건지 잘 모르니까….”
“어.”
“소, 소변 한 번만 싸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보는 앞에서요!”
정말이지 저질스러운 요구였다. 서인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무명을 벌레 보듯 보았다. 싸구려 취급하지 말라는 말을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다.
“너, 내가 맞춰주니 만만하게 보이나 본데.”
“그런 게 아니라! 알고 싶단 말이에요! 왜, 왜 발기했는지!”
서인은 미친 소리에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자위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소변 누는 모습을 보여달라는데 무슨 반응이 더 필요할까.
입 다물고 족쇄나 풀라고 눈짓하자 무명이 입을 삐죽 내밀고 무시했다.
“하, 무시해?”
갓 성에 눈을 뜬 무명의 호기심은 엄청났다. 자위하는 방법을 다시 알려달라, 흥분하면 성기가 단단해지는 이유가 궁금하다 등 쉬지 않고 질문 공세를 해댔다.
“제 성기는 너무 징그러워요. 형아가, 형아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책임지세요.”
제법 뻔뻔하기도 했다. 서인은 다른 것도 아니고 눈앞에서 소변을 봐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래야 할 이유 역시도 없고 말이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는 벽에 딱 달라붙어 시선을 피하는 무명을 향해 반쯤 깨진 그릇을 집어 던졌다. 먹지 않아 기름이 엉긴 고기가 무명의 발치에 떨어졌다.
서인은 당장 씻고 싶어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지린내는 기본이고 다리 사이가 끈적하기까지 했다.
“더는 못 참아!”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서인은 당장 대욱을 불러 무명을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예쁜 얼굴을 봐서 더러운 환경에서의 생활도 꾹 참아냈는데, 이젠 한계였다.
벽 뒤에 숨은 무명을 뒤로하고 베갯잇을 쥐어뜯은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려 했다.
“소, 소변 싸주시면 형아네 집에 갈게요!”
“…….”
꽤 파격적인 제안에 서인의 손이 우뚝 멈췄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던 그는 반쯤 삐져나온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넣고 화를 삭였다.
“가, 가슴 만지세요!”
서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무명이 쭈뼛쭈뼛 다가와 가슴을 들이밀었다. 순진한 건지 아니면 똑똑한 건지 만져도 된다며 제 손으로 주물거리기도 했다.
“형아를 기분 나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자고 일어나면 바, 발기하는 건 알았지만, 이런 걸 자세히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단 말이에요….”
무명의 얼굴이 붉었다. 평소 서인과 대화할 때도 대체로 붉었지만, 지금은 묘하게 달랐다. 치욕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잔뜩 굳어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저, 저는 멍청해서 형아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 못해요. 지금처럼 말을 더듬기도 한단 말이에요.”
“…….”
서인이 마주한 그는 애써 숨겨온 치부를 드러낸 사람처럼 보였다. 구겨진 미간과 다물린 입술, 고인 눈물이 무명의 기분을 대변했다. 어쩐지 분에 찬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왜 그러는데.”
“말하고 싶은 게 많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요….”
“알았어.”
안 그래도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 차자 더는 보기 힘들 정도였다. 서인은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징징대는 무명의 어깨를 감싸고 등을 토닥였다.
“형아한테 잘 보이고 싶어요. 소변 싸달라고 한 것도 형아를 화나게 하려던 게 아니었….”
“아, 알았어! 싸줄게, 싸주면 되잖아!”
“정말요?! 약속한 거죠?!”
홧김에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무명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으며 방방 뛰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던 모습은 연기였나 싶을 정도였다. 서인은 어쩐지 속아 넘어간 듯한 기분에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어디 가?”
“물 가지러요!”
무명은 대답을 듣기 무섭게 지하 계단을 뛰어올랐다. 소변을 보는 데 필요한 재료를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서인은 그가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미쳤다고…. 하여간 저 면상이 문제지.”
저지르긴 저질렀는데, 물을 마시고 무명에게 소변을 누는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 생각만 해도 수치스럽고 이가 갈렸다.
“형아!”
그런 서인의 마음을 모르는 무명은 페트병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안고 해맑게 웃으며 달려왔다. 얼핏 봐도 열 병은 족히 넘었다.
“그 전에 나 좀 씻을게. 영 찝찝해서.”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또 쌀 거잖아요?”
무명이 이 상황을 벗어나려 하는 서인에게 방긋 웃는 얼굴로 바구니를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든 서인은 그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무명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숨을 거칠게 내쉬며 입술을 짓씹었다. 하의를 입지 않은 서인의 다리를 길게 훑은 그는 바구니 속에 담긴 물을 꺼냈다.
“왜, 너도 싸주게?”
서인은 여유 따위는 전혀 없는 주제에 킬킬 웃으며 무명을 놀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흥분한 무명은 병뚜껑을 열고 그의 다리 사이에 물을 흘려 부었다. 다 젖은 모습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헐떡이던 그는 방방 뛰며 좋아했다.
“혀, 형아. 젖었어요!”
이쯤 되면 소변과는 관계없이 서인이라는 사람 자체에 흥분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헉! 죄송해요!”
서인에게 아예 보이지 않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되도록 숨기려 했던 면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무명이 입을 틀어막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했다.
“됐고, 그냥 소변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
“네?”
“이걸 다 어떻게 마셔? 그리고 난 아무거나 안 마시거든.”
여태까지 잘만 받아먹었기에 무명에게는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 서인은 이 많은 걸 다 먹을 수도 없다며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삐딱하게 앉았다.
“그리고 너, 벌써 헉헉대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아, 아직 발기는 안 했잖아요!”
축축이 젖은 서인의 가랑이를 흘끔대던 무명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의 말대로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발기한다면, 애써 물을 마시는 의미가 없다.
무명은 최대한 서인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그는 다시금 서인의 가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킬킬 웃으며 소리쳤다.
“가랑이를 적셔놓으니 오줌인지 물인지 모르겠어요!”
“…명이, 이리 와.”
“네?”
서인의 부름에 무명이 의심 없이 다가가 몸을 비볐다.
한동안 예쁜 짓을 하는 그를 가만히 받아주던 서인이 난데없이 다리를 벌렸다.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무명의 눈에 커다란 성기가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헉!”
그는 저와 비슷한 크기의 성기를 흘끔흘끔 보다가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똑같이 징그럽기는 했지만, 남의 것이라 그런지 조금은 신기했다. 제 성기보다 색이 조금 더 짙고 미세하게 휘어 있었다.
“휘, 휘었….”
“왜, 빨고 싶어?”
“네?”
다시금 서인의 성기를 훔쳐보던 무명이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왜 휘어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성기를 쳐다본 것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됐다.
“형아가 소변 싸줬으면 좋겠어?”
“네, 네….”
무명의 시선은 자꾸만 아래로 향했다. 그가 제 성기를 의식하고 있음을 아는 서인이 일부러 다리를 더 넓게 벌렸다.
“그래, 좋아. 그럼 물 좀 줘봐.”
“네!”
목덜미까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무명은 물을 달라는 말에 겨우 고개를 돌렸다. 바구니에 든 물을 꺼내 들자 서인이 옅게 미소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와, 좋아요….”
“좋아?”
무명은 평상시의 서인 역시 좋아하지만, 이렇게 다정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다. 떨리는 손으로 물을 건네고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짓눌렀다.
“드세요.”
어찌나 손이 떨리는지 물이 팔을 타고 줄줄 흘렀다. 당황한 무명이 이번에는 뚜껑을 따지 않은 물을 건넸다. 그러자 서인이 인상을 썼다.
“왜, 왜요?”
“열어서 줘야지. 이걸 내가 하나하나 말해줘야 하나?”
“죄송해요!”
그의 짜증에 무명이 황급히 뚜껑을 열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괜히 부려먹고 못살게 굴었다. 그것도 모자라 비교까지 해댔다.
“너, 내 옆자리 꿰차고 싶으면 분발해야 할걸. 나랑 같이 있던 키 큰 놈 알지? 걔 만큼.”
“…….”
대욱과의 비교에 방긋방긋 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연구소에서 서인이 언제 오느냐고 그렇게 물어도 무시하고 밀어내기까지 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대표님께서 당신 같은 싸구려에 마음을 둘 리가 없습니다. 냄새나고 모자란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분이니까요.’
상처 주려는 의도가 가득한 잔인한 말 역시도 잊지 못했다. 그는 서인이 좋으니 억울한 일도 참아내고 화도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 사람이랑 저를 왜 비교하시는데요.”
“뭐? 말투가 왜 그따위야, 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서인이 눈썹을 까딱였다. 무명은 화내야 할 건 제 쪽인데 그가 인상을 쓰며 위협하자 버럭 소리쳤다.
“그럼 그 사람한테 예쁘다고 하세요. 그 사람한테 자지 빨라고 하라고요!”
“…하여간. 분위기 잡치는 데 뭐 있지.”
서인은 반성은커녕 감정 제어에 익숙하지 못한 무명이 또 지랄을 시작했구나 싶었다. 불필요한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아 대화 주제를 돌리려고 하자 그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다.
“다 마셔요! 지금 당장 마시라고요! 마시고 싸요! 그 사람도 알아요? 형아가 바지에 소, 소변을 지리는 지저분한 사람인 거!”
마음에도 없는 말로 서인을 깎아내린 무명은 직후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눈치를 살펴댔다. 서인이 침묵하자 입술만 우물대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그, 그게 죄송해요. 저는, 화가 나서…. 형아를 지, 지저분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 사람은 알아.”
“네?”
“나 갓난쟁이부터 보필해 온 놈이라. 별꼴을 다 봤거든. 소변 정도야 뭐, 기본이지.”
“아, 아니야….”
무명은 아직도 서인이 제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도발하기 위한 말이 무참히 짓밟히자 그가 복슬복슬한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 앓았다.
“우리 명이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나 보다. 때려치우고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갑자기 무, 무슨 밥이에요. 형아, 물 마셔주기로 했….”
“소변은 무슨. 어차피 지저분해서 못 보잖아, 너. 그 사람 앞에서나 싸야지.”
서인의 말에 꾹꾹 눌러 담은 무명의 분노가 폭발했다. 놀리고 괴롭히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남을 옹호하고 편드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아, 씨….”
“이게 버릇없게 어딜 기어올라.”
“형아는 나, 나한테 버릇 있어요? 여, 열 받네. 나, 나는 나쁜 말 못 하는 줄 알아요?”
국어책을 읽듯 어색하고 전혀 위협감이 없을 뿐이지 무명도 욕을 할 줄 알기는 했다. 서인이 고개를 젖히고 비웃자 그가 물이 든 바구니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시, 시발!”
“…아, 닥치고 밥이나 해 와. 재미없고 짜증 나니까.”
한계치에 몰린 무명이 페트병의 뚜껑을 열고 서인의 몸 위에 올라탔다.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한 서인은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하면서 왜 이러냐며 그를 놀려대기 바빴다.
“왜 올라타. 형 자지에 박혀주게? 으, 읍!”
무명이 실핏줄이 선 눈으로 서인을 노려보며 페트병 주둥이를 입에 쑤셔 넣었다. 그를 비웃던 서인은 물이 예고도 없이 흘러들어오자 인상을 쓰고 바르작댔다.
“윽, 큭! 읍….”
“소, 소변 쌀 때까지 형아 밥은 이거예요! 배고프다면서? 그럼 먹어! 마셔! 마시고 소변 싸질러봐요! 입 더 벌리세요! 하아, 하아….”
무명은 누가 와도 말리기 힘들 정도로 성이 나 있었다. 그가 제게 반격할 가능성을 두지 않았던 서인은 괴롭게 물을 받아마셨다.
“우, 윽…. 씹!”
발은 족쇄에 묶여있고 팔 역시 무명에게 짓눌려 자유롭지 못했다.
좀처럼 벗어날 틈이 없었다. 평소 몸 쓰는 일에 익숙한 무명의 힘은 정말 무식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서인도 결코 왜소하거나 약하지 않았지만, 기습을 당한 터라 주도권을 되찾지 못했다.
“큭! 미친….”
“흐, 하아, 하아…. 빨리, 빨리 더 마셔요!”
무명은 서인을 다신 안 볼 것도 아니면서 다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큰 덩치로 몸을 짓누르는 것도 모자라 입을 억지로 벌리고 물을 마구 밀어 넣었다.
“윽!”
힘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방심한 순간을 노려야 했는데, 무명의 시선이 오로지 서인에게만 쏠려 있었기에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윽…. 큭! 씨발!”
서인은 지금처럼 사지가 결박된 채로 누군가를 올려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슴, 얼굴, 탄탄한 몸뚱이와 귀여운 성격 빼면 봐줄 것도 없는 놈에게 깔리다니.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수치였다.
“하아, 형아, 형아….”
그런 와중에도 흥분해서 끙끙대는 모습에 아랫도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올려다보는 위치는 불쾌했다. 서인은 불같은 자존심을 죽이지 못하고 무릎으로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하, 씨발….”
꽤 강하게 내리쳤음에도 흥분한 무명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기만 했다. 정확히는 공격한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헤, 헤! 하하! 형아, 물 아직 많이 남았어요!”
서인은 괴로워하긴커녕 바보처럼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에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무력한 상황에 부닥치자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호신술을 배워두라던 대욱의 말이 떠올랐다. 그 당시 서인은 딱히 호신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욱이 내내 붙어 다닐뿐더러 제게 맞서려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싸움을 못 하는 편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랬다.
“윽, 놔!”
그러나 지금은 그 호신술이 간절했다. 서인은 무명을 데리고 집에 돌아감과 동시에 호신술을 배우리라 다짐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짓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싫어! 빠, 빨리 마셔요! 마시란 말이에요!”
“씨발,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개짓거리를….”
이런 협박이 무명에게 통할 리 없었다. 그는 서인을 약 만드는 회사의 성격 나쁜 대표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권위나 소문에 관해서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하…. 컥!”
무명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서인이 고통에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고 헐떡대며 웃다가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댔다.
서인은 정상이 아닌 무명을 상대로 난리를 쳐 봐야 그리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안다.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자존심이 굴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명이 실실 웃는 얼굴로 물에 알 수 없는 약을 타는 모습을 보니 더 열이 올랐다.
“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런 제압은 성적인 긴장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모멸감만 가득했다. 결국, 참지 못한 서인이 뒤통수를 바닥에 내리찧으며 발악했다.
“혀, 형아 다쳐요!”
반쯤 맛이 가 있던 무명의 눈빛도 그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분노한 서인은 그가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팔뚝을 물어뜯고 밀어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고통에 무명이 신음하며 앓았다.
“아파요, 흐아, 형아, 호 불어 주세요! 아, 악!”
그는 제 만행을 잊어버린 것처럼 서인에게 물린 부위를 보여주며 울었다. 입김을 불어 달라는 말에 서인이 무명의 목덜미를 짓누르고 무릎으로 등을 눌러 제압했다.
“하아, 씨발…. 네가 미쳤지.”
“혀, 형아가 잘못했, 컥! 잖아요! 왜, 왜 그런 이야기를! 왜, 저, 저랑 그 사람을 비교해요!”
“입 닥쳐.”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무명은 억울해 죽겠다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칭얼거렸다. 징징 짜는 목소리에 짜증이 난 서인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으, 읍! 으!”
“후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성을 잃고 뵈는 것 없이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인이 숨통을 틀어막자 무명의 어깨가 바쁘게 들썩였다.
“뭘 잘했다고 질질 짜.”
“형아가, 형아가….”
그는 혼자만 물을 마시고 배설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으니 자위를 시키려 했던 서인의 계획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런 주제에 시끄럽게 울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옷 벗어.”
서인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벌과 상을 동시에 주기로 했다.
자세를 풀고 꿇어앉은 채로 벗으라고 명령하자 무명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거부했다. 두 팔을 교차하여 가슴 앞을 가린 꼴이 우스웠다.
“싫어요, 못해요! 흑….”
그는 바닥에 꿇어앉아 빽 소리를 질렀다. 무명이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으니 최대한 참아보려 했던 서인은 계속된 거역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꼭 손을 올려야 말을 듣지.”
어떻게든 참아보려 이를 악물고 있던 그는 결국, 그렇게 좋아하던 얼굴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한 번 불이 붙은 폭력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이성을 잃은 서인은 얼굴뿐만 아니라 발로 배를 걷어차고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윽!”
“내가, 후, 씨발, 하라면 하는 거야. 넌, 알았어?”
무식한 주먹질은 벽에 몰려 퇴로가 막히고 나서야 간신히 멈췄다. 골이 울릴 정도의 충격에 무명이 몸을 둥글게 말고 흐느꼈다.
“어, 아, 어….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일어나.”
서인은 그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을 빌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폭력은 사람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서인은 재차 명령했다.
“흐, 흑….”
예상치 못한 폭력이긴 했지만, 무명도 아주 많이 맞아봤기에 어떻게 맞아야 덜 아픈지를 알고 나름 몸을 보호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흐윽, 흐, 아파….”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던 그는 빌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윗옷을 벗자 서인의 눈이 큰 가슴으로 향했다.
“흣, 버, 벗었어요….”
순식간에 나체가 된 무명은 제 몸을 훑는 시선을 피하고자 눈을 감았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평가하는 듯한 오만한 시선에 성기가 자꾸만 당겼다.
흥분하기 시작한 건 서인도 마찬가지였다. 얻어터져 눈물이 고인 얼굴이 자극적이었다. 예쁜 얼굴과 달리 탄탄한 몸도 마음에 들었다.
“야, 손 치워.”
꿇어앉은 무명은 성기를 내보일 자신이 없어 손으로 가렸다. 크면 클수록 좋다고는 했지만, 아직은 부끄럽고 징그러웠다. 서인의 것처럼 휘지 않은 것도 신경이 쓰였다.
“혀, 형아, 죄송해요…. 자, 잘못했어요….”
그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올려다보자 서인의 턱에 힘이 실리고 이마에 핏줄이 섰다. 역시 무명은 비굴한 게 어울린다. 그는 정상적으로 돌아온 눈높이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네 좆 쥐어 봐.”
“지, 징그러워서 싫어요….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안 그럴게요!”
무명은 성기를 쥐라는 말에 사색이 되었다. 그때는 분위기를 타서 만져봤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 서인에게 얻어맞고 혼이 나고 있는 상태에서 만질 수 있을 리가 없다.
“혀, 형아….”
서인이 애원을 무시하고 벽에 기대어 앉아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목울대가 울렁이자 무명의 성기에도 피가 몰렸다. 이 상황에서도 배설 장면을 보게 될 생각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 변태 새끼.”
“으, 읏….”
“손 내려.”
물을 마시던 서인이 바들바들 떨며 흥분한 무명을 비웃었다. 걷어차이고 온갖 수치를 당하면서 아래를 세운 그는 수치심에 애꿎은 엉덩이만 들썩였다.
“아주 발딱 세웠네.”
무명이 직접 만지지 않자 서인이 발끝으로 기둥을 툭툭 건드리며 짓밟았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거친 자극에 무명이 입을 틀어막고 신음을 삼켰다.
“하, 하지 마세요…. 으응!”
예쁘게 뻗은 발가락이 열이 오른 성기를 문질렀다. 아직 한 것도 없는데 축축이 젖어 액이 뚝뚝 떨어졌다. 만지면 만지는 대로 반응하는 게 꽤 재밌다고 생각한 서인이 이제는 두 발로 덥석 움켜쥐었다.
“흐아, 읏!”
“하, 안 되겠다. 무릎 세우고 앉아.”
“흐, 흐으, 응…. 무, 무슨 말인지….”
무릎을 세우고 앉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무명이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헤맸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내가 직접 벌려줘야겠어?”
“모, 몰라서요….”
무명은 안 그래도 무슨 자세인지 몰라 창피한데, 강제로 벌리겠다는 말에 다리를 벌벌 떨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서인이 한숨을 쉬며 두꺼운 허벅지를 강제로 붙잡아 벌렸다.
“엉덩이랑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다리를 벌리라고.”
“후, 응….”
큼지막한 손이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자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샜다.
그는 숨이 막힐 정도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참았다. 서인은 침착해 보였는데, 혼자만 흥분하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처맞으면서 세웠어?”
무명은 다리를 한계까지 벌린 민망한 자세로 성기와 항문을 속절없이 내보이게 되었다. 가리지도 못하게 하니 땅을 파고 숨어들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아, 아니야…. 아니에요!”
“그럼 왜 세웠어.”
“그게, 그게….”
“질질 싸네, 아주. 좆 빠는 상상이라도 했어?”
서인은 천천히 물을 마시며 드러난 무명의 항문과 회음부를 발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그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그 반응에 서인은 부드럽게 쓸다가 쑤셔 넣기라도 하듯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읍…. 흐, 아아…. 아니야. 아니….”
“뭐가 아닌데.”
왼발은 구멍을 문지르고 오른발은 귀두 끝을 사정없이 비볐다.
분주한 발놀림에 무명은 눈을 까뒤집고 파르르 떨며 신음했다.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한계까지 벌린 다리가 후들거리고 흥분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두 발이 성기를 붙잡고 자위하듯 흔들자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절로 들썩이는 허리를 짓눌렀다.
“흐, 아 …. 아, 우, 응….”
“좋아?”
“시, 싫어요, 흐, 혀, 형은 아무렇지, 읏! 않은데, 나만, 나만….”
무명의 시선에서나 여유롭게 보였지 서인도 간신히 이성을 붙잡은 정도였다. 평소에 잘 내지도 낮은 신음을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아으, 흐…. 흣….”
발이 움직일 때마다 무명의 성기가 사정할 것처럼 움찔댔다. 발가락이 부드러운 고환을 스치고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항문을 문지르던 왼발도 어느새 성기를 탐했다.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다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자 성기가 움푹 팬 발바닥 아치에 미끄러졌다.
“흐아, 아아! 아, 응, 흐읏….”
서인은 그의 성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가끔 몸이 튀어 오르면 발은 좀 더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부러뜨리기라도 하듯 거칠게 움직였다.
“하, 씨발…. 허리 움직여서 네가 박아 봐.”
“시, 싫…. 흐으응….”
무명은 혼란스러웠다.
사람의 발은 많이 쓰여서 닳기도 하고 그리 깨끗한 부위가 아닌데 그런 곳에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또 서인의 발이 지나치게 예뻐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외면하고 싶었다.
“아, 앗….”
조금만 더 하면 그때처럼 사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허리가 벌벌 떨리고 아래가 뜨거운 것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흐, 아아, 아….”
귀두를 한 번 쓸어내리자 무명의 몸이 경직되었다. 더 재미를 보고 싶은 서인은 곧바로 성기에서 발을 뗐다.
“아….”
자극이 멎자 눈꺼풀을 경련하며 침을 뚝뚝 흘리던 그가 아쉬운 듯 신음했다. 물론 아쉬워하고 있다는 자각은 없었다.
사정하기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만져주지 않는 것이 괴롭다는 건 서인도 잘 알았다.
“박아보라고.”
“흐, 읏…. 제, 바…. 헉!”
억지로 움직이게도 할 수 있지만, 안달 나서 미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무명은 애원하는 말을 뱉어낸 제 입을 틀어막고 도리질 쳤다.
“뭘 제발.”
“히, 윽…. 흐으, 우, 으, 흐으….”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성기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흘러나온 액이 서인의 발등을 타고 내려가 뚝 떨어지자 무명이 아예 눈을 감고 그 광경을 외면했다.
“꼴에 참네? 역시 어린 게 좋긴 한가보다.”
서인은 욕구를 눌러 참는 그를 비웃었다. 보란 듯이 물을 마셔가며 몸을 구석구석 훑자 무명이 침을 흘렸다. 눈빛만으로도 사정할 수 있을 정도로 한계였다.
“아아, 흐으…. 아으, 아….”
서인이 다시 성기를 붙잡자 그의 눈이 흔들렸다. 여전히 성기는 징그럽고 발은 깨끗하지 않은 부위라는 생각 때문에 무명은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더 큰 자극을 주기 위해 물병을 내려놓던 서인의 손에 자그마한 알약이 걸렸다.
“뭐야.”
옅은 살굿빛의 알약이었다. 뭔가 싶어 한참 살펴보던 그는 약의 정체가 이뇨제임을 알게 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뇨제까지 쓸 일인가?”
서인은 저 역시도 성격이 배배 꼬인 사람이었지만, 무명도 마냥 순진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유흥에 이뇨제까지 써가며 집착하는 놈을 순진하다고 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실컷 준비했는데, 안 쓰면 서운하겠지?”
그는 선심 쓰는 척 무명의 혀를 잡아당겨 약을 쑤셔 넣었다. 무명은 약이 뭔지 모르지 않으면서 흥분한 탓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었다. 열심히 씹어 넘기는 모습에 서인도 착실히 물병을 비웠다.
“혀, 형아아…. 자, 잘 모했어요…. 그마안, 흐우, 으….”
무명이 어눌한 발음으로 애원했다. 입은 그만하라면서 은근슬쩍 서인의 발 사이에 성기를 비비고 있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쾌감을 뒤좇은 것뿐이지만, 서인의 눈에는 발라당 까진 음란한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걸레 새끼.”
“흐, 읏….”
자극적인 욕설에 무명이 몸이 들썩였다.
결국, 자제력이 무너진 그는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신음을 흘렸다. 발 허리에 성기가 박혀 들고 뒤로 무를 때마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발바닥이 기둥을 정성껏 애무했다.
무명이 허리를 바르르 떨며 속도를 붙였다.
“아…. 하아! 흐, 흐읏…. 아! 이상해, 싫어! 이상해, 흐, 으으!”
이상하다는 말이 서인에게는 미치도록 좋다는 뜻으로 들렸다. 신체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발에 발정한 그의 모습은 이제껏 느낀 쾌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 싫어, 으, 으응, 시, 싫어, 하아, 으….”
“싫기는, 씨발. 후….”
박아넣을 때마다 더 조이도록 발에 힘을 주는 서인 덕에 성기가 아플 정도였다. 무명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세우고 앉아 두 발을 움켜쥐었다.
“박으니까 좋아 죽겠지? 좆 뜨거운 거 봐.”
징그럽니, 이런 건 이상하니 마니 떠들던 무명의 또 다른 모습에 서인은 웃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충동은 계속 차오르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지러웠다. 목을 조르라고 할까, 아니면 목을 졸라서 죽기 직전까지 몰아갈까. 머릿속에서 가학과 피학이 사납게 충돌했다.
“…!”
번들거리는 성기에 손이 닿자 무명이 정액을 토해내며 끅끅댔다. 그는 고통과도 비슷한 쾌감에 젖어있는 무명의 성기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아으, 흐…. 아! 흐으, 아…. 아으!”
사정 직후 온몸이 예민해진 상태라 무명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서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성기를 쥐어짰다.
“하지, 마! 아, 흐, 으으!”
이번에는 발이 아닌 더 자극적으로 더 섬세하게 애무할 수 있는 손이었다. 무명은 사정하기 무섭게 힘을 받기 시작한 성기를 빼내려 몸을 물렀다.
“하지 마! 아, 아아아, 나, 이, 이상해요, 혀, 형아아!”
역시 서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들을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성기를 짓뭉개버리기라도 할 듯 거칠게 움켜쥐고 붙잡고 허리를 움직이는 탓에 무명은 도망칠 수 없었다.
“우, 윽…. 에….”
그는 배설할 것 같은 두려움에 급하게 서인의 머리를 밀어내며 헐떡였다. 서인도 무명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이런 흥분과 쾌감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다.
“흐, 우우으! 시, 어! 싫어, 싸! 이상해! 나와! 하지 마! 하지 마!”
아래가 뜨겁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쾌감인지 고통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무명은 잘못했다, 살려달라는 말들을 정신없이 내뱉었다.
“사, 살려주세요, 혀, 형아, 형아, 대표님, 하아, 아, 아아아!”
“하, 큭! 씨발…. 돌겠네.”
서인의 욕설을 끝으로 무명은 투명한 액을 철철 쏟아냈다. 그는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며 다리를 활짝 벌린 채로 경련했다.
이제 그만할 법도 한데, 서인은 대자로 뻗어 다리를 활짝 벌린 모습에 또 흥분하고 말았다.
“형은 아직 못 쌌는데.”
“흐으…. 흑, 흐으…. 으, 흑, 끅….”
서인은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그에게 다가가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를 들이밀었다. 사정하지 못했다는 말을 소변으로 착각한 무명이 힘 빠진 팔을 간신히 들어 올려 거부했다.
“흐윽, 흐, 소, 소변 안 싸도, 대, 에요…. 잘못했….”
말을 내뱉기도 힘들었다. 발음도 안 되고 숨이 찼다. 그는 배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제발 용서만 해달라고 말했다.
“…혼자 즐기는 건 예의 없는 짓이지.”
하지만 서인이 누구인가.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다는데, 남이 함부로 끝내게 둘 사람이 아니었다. 이 미칠듯한 흥분을 해소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흐으으, 흐아….”
서인의 말투와 목소리에서 그만둘 생각이 없음을 읽어낸 무명은 누운 채로 목놓아 울었다. 거의 오열하는 수준이었다.
“형 좋아한다며.”
“흑, 그렇지만, 그렇지만….”
“너만 좋으면 다야? 형 좋아한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무명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좋아한다고 흥분을 해소해주어야 한다는 법도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지만, 서인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명이는 받을 줄만 아는 놈이구나.”
“그게 아니라, 아니에요…. 흑….”
“됐어. 형 좆이 더럽다 이거지, 뭐.”
서인이 좋은데, 너무 힘들어서 할 자신이 없을 뿐인 무명은 가슴을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힘들어서, 힘들어서 못 하는 거예요….”
“…형이 알아서 할 테니까, 응? 명이는 가만히 있으면 돼.”
“…….”
“알겠지?”
서인이 다정한 척 연기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무명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을 좋아하니 힘들지만 않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악!”
다정했던 서인은 무명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머리채를 움켜쥐고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짓눌렀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무명이 고통에 신음하며 비명을 질렀다.
흥분한 서인은 배로 더 거칠었다.
“컥! 으읍, 웁….”
그는 벌어진 입술에 귀두를 비볐다. 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에 무명이 구역질하며 발버둥 쳤다.
눈물을 흘리며 벗어나려 하는 모습에 머리채를 쥔 서인의 손에 힘이 실렸다. 어지간히도 흥분한 모양인지 자꾸 실없이 웃기도 했다.
무명은 언젠가 의뢰받았던 마약 중독자를 떠올리며 약에 취한 것 같이 행동하는 서인을 걱정했다. 물론 귀두를 입에 머금은 채였다.
“아….”
서인이 혀끝에 성기를 비비며 낮게 앓았다. 무명의 입안은 습기 가득하고 뜨거웠다. 천천히 빨아보라고 자세를 잡아줘도 경험이 없어 서툴렀는데, 그게 이상하게 더 야해 보였다.
“욱!”
성기가 입에 들어오는 건 또 처음 겪어본 무명은 괴롭고 무서웠다. 익숙할 리 없는 데다가 서인의 것이 무식하게 크기까지 했기에 턱이 아팠다. 이를 세우고 기둥을 마구 긁자 그가 몸을 움찔거렸다.
“아아, 좋아….”
생리적인 눈물이 맺힐 정도의 고통에도 서인은 긍정적인 표현을 해주었다. 제가 반응을 보이고 신음할 때마다 무명이 따라 흥분하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명아, 너 밥 안 먹어서 다행이다, 후…. 그렇지?”
“우욱! 욱! 컥…….”
서인은 무명의 입에 삽입하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무명은 혀를 짓누르는 단단한 성기와 귀밑을 매만져주는 손길에 그저 넋을 놓고 사용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안 그래? 먹었으면, 윽…. 다 토했을 거 아니야….”
대답하지 않자 서인이 힘주어 내리박으며 되물었다. 무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하려 했으나 성기를 물고 있는 탓에 어눌하게 웅얼거리는 게 전부였다.
“무, 은 소리…. 으, 윽! 흐…….”
“형이 질문하면 이해 못 해도 그냥, 읏…. 고분고분 네, 네 해야 하는 거야. 알았어?”
“에, 에….”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혀를 움직이자 서인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쾌감을 느꼈다. 뜨겁고 부드러운 혀가 귀두를 문지르고 기둥을 어설프게 핥았다. 물론 무명은 구강성교의 개념을 전혀 모르니 애무가 아닌 엉겁결에 나온 행동이었다.
“잘 빠네, 하…. 처음이 아닌가?”
서툴기 짝이 없는 혀 놀림인데, 서인은 그를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이런 모습을 봤을까? 순진한 척하면서 사실은 걸레가 아닌가?
남자 좆을 물고 있는 게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처음이라고?
“지랄….”
서인은 무명이 자위도 해본 적 없을 정도로 성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은 또 달랐다. 그가 양손에 성기를 붙잡고 입으로는 빨며 여러 남자를 상대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급격히 기분이 더러워졌다.
“짜증 나네….”
그는 이게 다 저따위로 생겨 먹은 무명 탓이라며 제가 의심하고 괴롭히는 건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다.
뻔뻔한 서인은 타락한 자신의 머리를 탓하는 대신 모든 것을 무명이 야해 빠진 탓이라고 결론 지었다.
“욱! 하아, 아파, 아파요!”
서인이 이를 갈며 격하게 쑤셔 박았다. 뼈가 뺨을 아프게 내리치자 무명이 성기를 간신히 뱉어내고 소리쳤다.
붉은 뺨과 큰 가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이 서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유희였지만, 무명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목이 터질 것 같고 입 주변이 찢어져 욱신욱신 아프기만 했다. 게다가 입안이 비릿하고 쓴맛이 나서 역겨웠다.
“그럼 세우지나 말든지, 씨발, 읏!”
“우욱! 윽! 크윽, 흐…. 아!”
서인은 아프다면서 발기한 그를 힐난하며 머리채를 강하게 붙잡고 성기를 사정없이 욱여넣었다. 무식하게 두껍고 긴 성기가 목구멍을 사정없이 짓누르고 찌르니 무명은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명은 머리를 흔들며 벗어나려 했고, 서인은 목덜미를 짓누르며 좀 더 깊게 삽입했다. 억지로 벌어진 입가가 찢어졌다.
“예쁘다….”
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무명의 눈가를 문지르며 웃었다. 구역질하며 목구멍을 바싹 조이자 사정을 늦추려 허리를 뒤로 물렀다가 다시 깊숙이 박아넣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우, 윽….”
서인의 사정은 먹은 것 없는 무명이 위액을 토해내고 난 후였다. 입속에 역한 정액이 터져 나오는 순간 무명이 반사적으로 밀어내며 구역질했다.
“아…. 하, 삼켜….”
“으욱, 욱…. 싫, 싫어요, 큭!”
서인은 좋고 싫음 따윈 제가 정한다는 듯 입속에 다시 자리 잡고 몸이 나른해질 때까지 토정했다.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움켜잡고 있어 무명은 달아날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액을 삼켜냈다.
“잘했어….”
“우웩! 욱! 흐으, 아, 욱!”
서인이 느릿한 목소리로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무명이 배를 움켜쥐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울기만 하던 그가 짧은 신음을 지르며 제 성기를 덥석 붙잡았다. 잡자마자 놀라 다시 놓아버렸지만 말이다.
“으으….”
무명은 제 성기에서 맥이 뛰던 것을 느끼고 바닥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사정의 여운에 젖은 서인은 무명이 배뇨감을 느끼고 있음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맛있었어?”
“…맛없어요!”
지하실은 두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비릿한 정액 냄새가 가득했다. 나른함에 눈을 감고 있던 서인이 복부에 손을 올리고 인상을 썼다. 무명과 동시에 찾아온 배뇨감이었다.
“명아, 형. 급한데.”
“헉! 네, 네….”
서인이 당연히 숨기고 버틸 줄 알았던 무명이 솔직한 말에 화들짝 놀랐다. 배설하지 않아도 되니까 용서만 해달라고 빌었던 것이 순식간에 잊혔다.
소변이라니, 서인이 배설한다니. 곧 죽는다고 해도 꼭 봐야만 하는 장면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 서인의 허리를 받쳐 들었다.
“모, 모, 목에 팔 감으세요….”
무명의 얼굴이 희열과 흥분으로 물들었다. 서인을 안정적인 자세로 안아 든 그가 지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
무명은 서인을 욕조에 앉히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인의 성기에서 소변이 뿜어져 나올 것을 생각하니 몸을 지탱하고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하아….”
이미 쌀 거 다 싸고 느낄 건 다 느꼈기에 색다른 모습에 흥분한 건지, 소변에 흥분한 건지 찾기로 했던 본래의 목적은 벌써 퇴색된 지 오래였다.
“변태 새끼야, 그게 그렇게 좋아?”
“…흐으, 네….”
“…뭐?”
헐떡이기에 놀려주려고 했던 예상과 다른 솔직한 대답에 당황했다. 무명은 멍하니 제 얼굴만 보고 있는 서인을 따라 욕조 안으로 발을 들였다.
“뭐 해.”
“제가 도와드리려고요….”
그는 고민 끝에 서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서인은 추운 것처럼 몸을 달달 떠는 무명을 제 다리 위에 앉히고 등을 토닥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명이 구강성교의 충격으로 잘못됐을까 봐 우려하는 행동이었다. 뒤늦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서 신경이 쓰였다.
“윽, 욕조 좀 큰 거로 바꿔.”
“네, 네….”
무명은 서인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대충 네네, 대답하고 조심스레 팔을 뻗었다. 그는 동그랗게 주먹을 쥐고서 서인의 배를 마사지하듯 밀며 꾹꾹 눌렀다.
“읏, 씨발….”
주먹이 아랫배를 압박하자 서인이 불쾌함에 욕을 뱉었다. 짐승이 되어 어미에게 배변 유도를 받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혀, 형아. 배가 엄청 단단해요…. 부풀었어요!”
흘끔 내려다본 아랫배는 무명의 말대로 조금 볼록했다. 그 모습을 보니 배설에 더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윽!”
“혀, 형. 나와요? 나와요? 하아, 아아….”
이미 무명이 모든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흥분하는 몸뚱이라는 것이 판명됐는데, 배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안 하겠다고 우기고 밀어내려던 서인은 이어진 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혀, 형아…. 저, 저 지금 흥분한 거 같아요….”
“…….”
“너무, 너무 좋아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별거 아닌 말인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다가오는지 몰라 서인도 황당했다. 그는 반쯤 풀린 눈으로 제 성기를 바라보는 무명의 모습에 천천히 다리를 벌려주었다.
“하, 하아, 형아, 형아….”
서인이 별말 없이 협조하자 배를 문지르는 무명의 힘이 거세졌다. 그는 서인의 사소한 행동에도 격하게 반응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좋고, 한편으로는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윽 …. 됐어, 손 치워….”
서인은 무명을 떼어내기 위해 그의 손을 움켜쥐고는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손등뼈를 문질렀다. 그러나 그 행동이 오히려 그를 부추긴 꼴이 되었다. 무명은 서인의 손길에 달아오른 숨을 뱉었다.
“윽, 좋아?”
“네, 하아, 아, 좋아요…. 싸, 싸주세요….”
좋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말이길래 서인은 어리광을 받아주고만 있다. 거의 평생을 명령하는 위치에서 살아왔던, 제게 수치를 준 사람을 가만히 둔 적 없던 그가 나체로 다리를 벌린 채 배설 준비를 하고 있다.
“윽!”
무명은 서인이 쉽게 배설하지 못하자 배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세 번쯤 눌렀을까 성기에서 소변이 튀어 올랐다. 서인은 이 이상 참는 것도, 무명의 저런 얼굴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한계였다.
“그래, 윽…. 마음껏 봐. 읏!”
예쁜 얼굴로 울 정도로 소변을 맞고 싶다는데, 까짓것 한 번 배설해주기로 했다. 서인이 다리를 활짝 벌리고 몸에 힘을 풀었다.
“혀, 형아….”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소변을 본 무명의 눈이 커다래졌다. 단순 소변 때문은 아니다. 서인이 고개를 반쯤 돌린 채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고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 부끄러우세요?!”
얼핏 보면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붉어진 귀와 목덜미, 짓이겨진 입술과 구겨진 미간이 수치를 담고 있었다.
그의 반응에 흥분한 무명이 벌떡 일어나 야단법석을 떨다가 그대로 엎어졌다. 덕분에 서인의 배가 짓눌리고 소변이 뿜어져 나왔다.
“으윽!”
“더, 더 싸주세요, 헉, 흐….”
엎어져 있던 무명은 서인의 얼굴과 배설하는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가 손바닥으로 배를 아프게 누르며 조금은 강압적으로 굴었다.
상황에 따라 휙휙 변하는 모습에 서인도 흥분했다. 압박 속에 감춰진 묘한 흥분을 읽자 아랫도리가 당겼다.
“아….”
“혀, 형아. 아, 아기 같아요!”
“씨발, 닥쳐….”
서인이 비스듬히 앉자 무명의 헐떡거림이 더 심해졌다. 물을 과하게 마시고 오랫동안 참은 탓인지 소변의 양이 꽤 많았다. 그는 저를 아이 취급하는 무명을 잡아당겨 다시금 다리 위에 앉혔다.
“흐읏!”
성기와 성기가 맞닿아 무명이 자극을 받았다. 그는 제 성기에 뜨거운 서인의 소변이 닿자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이내 경직되었다. 서인은 정액으로 범벅이 된 무명의 입가를 매만지다가 영역표시라도 하듯 얼굴 전체에 펴 발랐다.
“우, 읍…. 윽!”
그는 제 배설이 끝나기도 전에 무명의 배설을 도왔다. 배를 살살 문지르다가 장난스럽게 내리치자 무명이 급박해졌다.
“나, 나와요! 벼, 변기, 변기!”
“하아, 그냥 여기서 해.”
서인은 이 상황에 희열을 느꼈다. 도망치는 몸을 세게 껴안고 맞닿은 성기를 비비자 무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르작댔다.
“자, 쉬이. 쉬….”
“아, 아아, 아! 아…. 안 돼, 안 돼…. 흐으, 흐, 흐윽, 흐으으….”
서인이 소변을 보기 전 제 배와 다를 것 없는 무명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볼록 올라온 흰 배에 손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충동이 차올랐다.
“명아, 몸에 힘 풀어.”
아무리 그래도 좀 과하지 않나 잠시 고민은 해봤지만, 어디까지나 고민일 뿐이었다. 서인은 짧은 경고와 함께 무명의 배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컥! 히, 윽!”
욕실에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큰 충격에 무명이 몸을 뒤로 젖히고 소변을 쏟아냈다. 몸이 뒤로 넘어갈 듯 흐느적대자 서인이 단단히 붙잡고 눈을 까뒤집은 채로 떠는 얼굴을 구경했다.
“하아, 씨발…. 좋아?”
성기와 배가 무명이 배출한 소변으로 인해 따뜻해졌다. 무명의 구멍에 삽입이라도 할 기세로 허리를 흔들던 서인은 손등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고 뒤늦게 상태를 살폈다.
흥분 탓에 힘 조절에 실패한 그는 무명이 움직이지 않자 당황했다.
“명아! 이런, 씨발….”
급히 확인한 무명은 눈을 까뒤집고 침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서인은 늘어진 몸을 바르게 뉘어주고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괜찮아?”
그러자 충격에 잠시 기절했던 무명이 기침 토해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서인은 엉망이 된 제 다리 사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 고기 냄새가 배는 게 싫어서, 사람들의 손이 몸에 닿는 게 싫어서 하루에 몇 번을 씻는 사람의 몸이 소변과 침 범벅인 말도 안 되는 꼴이 되어버렸다.
“하….”
흥분이 가시기 시작하자 비로소 주변이 보였다. 서인은 자제력을 잃고 이상한 쪽으로 끌려다니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이곳에 계속 남아있다가는 지금보다 더한 상황이 찾아올 것만 같아 눈앞이 캄캄했다.
“…콜록, 컥! 혀, 형아 화났어요?”
심각해진 서인이 손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자 뺨과 배에 손자국을 매단 무명이 말을 붙였다. 서인은 바보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는 욕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니.”
“혀, 형아랑 저랑 둘이, 동시에 소변 쌌어요!”
“그래, 알아.”
무명은 갑자기 쌀쌀맞게 변한 그의 태도에 당황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러나 싶어 불안했다. 서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무명은 괜히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욕조가 좁아.”
“네, 네…. 큰 거로 바꿀게요!”
“또 환기 안 돼서 냄새나.”
“아, 할게요!”
“샴푸가 싸구려라 쓰기 싫어.”
서인은 가구에 트집을 잡는 것을 시작으로 돌아가고 싶은 티를 냈다. 전부 바꾸겠다고 대답하던 무명은 이어진 서인의 말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명아.”
“네?”
“집에 가자.”
“…….”
그는 배설을 요구하기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심각해졌다. 배설을 해주면 서인의 집으로 가기로 했던 그 약속이 무명을 불안하게 했다.
“그, 그냥 계속 여기에서 살면 안 될까요? 제가 다 바꾸고 노력하고….”
“그건 아니지.”
약물의 상용화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 밖에도 서인은 길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권위와 욕망을 저버릴 수 없는 남자였기에 무명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형아….”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그리고 따지고 보면….”
“혀, 형아. 엉덩이 만져주세요!”
무명은 그가 더 말하지 못하게 몸에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귀엽고 예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서인이 모르는 척 눈감아 줄 위인은 못됐다.
“드, 등만 좀 씻겨주세요.”
“그래.”
또 가자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서인은 어차피 그래 봐야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약간은 측은한 마음이 들기는 해서 묵묵히 샤워기로 무명의 몸을 씻겨주기는 했다.
“씻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명이 욕조 밖으로 나와 상체를 반으로 접어가며 인사했다. 깍듯한 인사에 서인이 아리송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가 실수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무명은 당황한 채로 욕조를 깨끗이 소독한 뒤 서인을 씻기는 데에 집중했다.
“잠시만요!”
씻고 나온 무명은 빠릿빠릿했다. 서인을 부엌 소파에 앉혀두고 지하실을 열심히 청소했다. 박박 닦고 탈취제를 뿌려도 창문 하나 없는 지하실인지라 정액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형아, 죄송해요…. 냄새가 나서 오늘은 소파에서 주무셔야 할 거 같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형 집에 가면 되잖아.”
서인이 다시 한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만, 무명이 못 들은 척 애꿎은 바닥만 닦았다. 미안한 말이었지만, 무명은 함께 갈 수 없었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지 않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서인과 비슷한 뷰류였다.
“이리 와.”
서인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무명을 끌어당겼다. 그는 무명을 감싸 안고 눈두덩과 콧잔등에 여러 번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좋아서 그냥 이대로 따라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맞다. 형아 배고프다고 하셨죠? 제가 금방 가서 고, 고기 구워올게요!”
정신이 번쩍 든 무명은 제 할 말만 하고 부엌으로 도망쳤다. 팬과 고기를 꺼내든 그는 서인이 또 집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낼까 싶어서 불안했다.
갈 수 없다. 이곳을 떠난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다. 그냥 가기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총관리자 이상의 직함도 가져보지 못했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돈도 없다.
서인을 따라 나가면 더는 의뢰도 받을 수 없고 고기도 도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런 삶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건 무슨 고기야?”
“아, 소, 소고기예요. 조금만 쉬고 계시면 그, 금방 가져갈게요.”
서인은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히 움직이는 무명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허리를 껴안고 어깨에 턱을 붙이자 그가 말을 더듬으며 눈에 띄게 긴장했다.
“음, 소고기라.”
서인은 별거 아닌 접촉에 잔뜩 긴장한 무명을 놀리듯 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몸이 굳고 눈동자가 정신없이 굴러다니는 것을 본 그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기는.”
서인은 무명을 강아지 다루듯 다뤘다. 씻은 후라 많이 부푼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턱을 긁어주었다.
“기분 좋아요….”
“네가 개야?”
“개는 아닌데….”
눈을 감고 손길을 느끼던 무명이 휙 돌아보며 해맑게 웃었다. 한 번 쓰다듬어줬다고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형아가 웃으니까 저도 기뻐요!”
방긋 웃는 얼굴을 마주한 서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뒤이어진 꾸밈 없는 솔직한 대답에는 고장 난 사람처럼 굳었다.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배회하고 인상이 사납게 구겨졌다. 욕실에서 느꼈던 감정과 같았다. 이유는 몰라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수작 부리지 마.”
“네?”
“너 그런다고 안 데려갈 거 아니니까 그만 지랄하라고.”
서인은 죄 없는 무명에게 괜히 화를 냈다. 열심히 고기 굽던 무명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이다가 결국, 침묵을 택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인은 대답하지 않는 무명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금세 피로를 느끼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뭐야, 왜 아무 말도 안 하시지….”
욕하거나 강제로 끌고 갈 줄 알았던 무명은 서인이 그냥 가버리자 흘끔흘끔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버티겠는지 먼저 가서 말을 걸었다.
“형아, 혹시 찌개 좋아하세요?”
“어떤 거.”
무명은 요리에 꽤 자신이 있다. 재료만 있다면 끝내주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는 서인의 기분을 풀어주고 제 요리실력을 뽐내기 위해 찌개를 끓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김치찌개도 잘하고 된장찌개도 잘하고! 매운 콩나물국도 잘 끓여요!”
“됐어, 고기나 구워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무명은 붉고 매운 국들만 잔뜩 늘어놓았다. 술이야 그렇다 쳐도 국을 무명의 손바닥에 놓고 먹을 수는 없었으니 아예 도전도 못 해볼 일이었다.
“그럼, 나물은요? 콩나물이 있는데요. 아, 토마토도 있….”
“됐다고 몇 번 말해?”
“아직 한 번 밖에 말 안 했는데….”
서인이 짜증을 내자 무명이 입을 삐쭉 내밀고 조용히 중얼댔다.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고기만 구워오라고 하니 속이 상했다.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거부당하자 마음이 울적했다.
“고기는 그냥 구우면 되지만, 국에는 정성이 들어간단 말이에요….”
“내 말에 토 달지 마.”
서인은 그런 무명의 마음도 모르고 기분 나쁠 정도로 딱 잘라 거절한 뒤 눈을 감아버렸다. 애교를 부려도 굳건했다.
“됐어요.”
그 덕에 풀어주려고 노력하던 무명도 토라져 버렸다. 그는 서인에게서 등을 돌리고 부엌으로 가 신경질적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일부러 큰소리를 내도 서인이 쳐다보지 않자 보란 듯이 바닥으로 포크를 집어 던졌다.
“너무해….”
얼른 나를 봐달라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는데, 서인은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혼자서 화를 내던 무명은 포크를 다시 주워들고 말없이 음식을 만들었다.
“다 됐어요, 드세요.”
고기를 잔뜩 구워온 무명은 서인의 옆에 앉아 맨밥에 얼핏 봐도 맛없게 보이는 된장찌개를 퍼먹었다.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그에게 반찬이라곤 없었다.
“된장찌개 잘한다며.”
무명이 끓인 된장찌개는 그냥 뜨거운 물에 된장만 푼 수준이었다. 두부도 없고 색도 희멀겠다.
무명은 비웃는 듯한 서인의 말투에 속이 상했다. 요리를 할 만한 재료가 부족했을 뿐 잘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안 먹는다고 하길 잘했네.”
열심히 일해 사 둔 두부와 호박 등 재료가 있긴 했지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니 서인이 먹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게 옳았다. 아끼기 위해 대충 끓여 먹는 건데, 무명의 사정을 모르는 서인은 비웃기 바빴다.
“고기 먹어.”
“싫어요.”
“왜.”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고 직접 손질하니 딱히 먹고 싶지 않아요.”
“그럼 넌 평소에 이딴 것만 먹고 살아?”
서인이 형편없는 된장찌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도저히 못 봐주겠다며 무명의 된장찌개를 싱크대에 버려버렸다.
“아, 어, 어? 뭐 하는 거예요! 뭐 하는 거야! 왜! 왜! 왜! 왜! 왜!”
괜히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했기에 한 행동이었다. 사람 먹을 게 못 되는 음식을 퍼먹는 모습이 서인에게 좋게 비칠 리가 없었다. 무명은 떠내려간 된장찌개를 손으로 쓸어 담으며 입에 마구 쑤셔 넣기 시작했다.
“씨발,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인은 서슴지 않고 더러운 짓을 하는 그를 밀어내고 된장찌개를 모두 흘려보냈다. 사람 좋은 척 눈감아 주니 만만하게 보였나 생각할 정도로 무명은 이상한 행동을 해댔다.
“제가 할 말이에요.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대표님?”
화나게 할 의도로 호칭을 바꿔 불렀음을 알아챈 서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별것도 아닌 일로 고집을 부리고 자존심 세우길래 싹을 잘라냈을 뿐인데, 무명은 눈을 부라리며 분노했다.
“잘못은 네가 해놓고 왜 나한테 지랄인데.”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음식을 막 버리는 게 잘못 아닌가요? 제가 만들어 둔 주스도 이런 식으로 버리셨잖아요.”
서인은 제법 화를 낼 줄 아는 무명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스쳤다. 열 받은 그는 고기까지 하수구에 처넣었다.
“왜, 고기는 버려도 되는 음식이야? 주워 먹지 그래.”
“…….”
“너 지금 나 따라가기 싫어서 대드는 거잖아. 음식 핑계 대지 마.”
서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서인은 무명이 울먹이며 사과하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테이블에 놓인 맨밥을 손으로 퍼먹으며 서인을 무시했다.
“그래, 네 좆대로 해. 나도 더는 못 해 먹겠다.”
서인이 소파로 가버리자 억지로 밥을 퍼먹은 무명이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말도 없이 나가버리자 서인도 더는 참지 않았다.
“하.”
그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도 없이 바로 대욱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더 기다려주고 뭐고 할 것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답장이 도착했다.
[오늘 새벽 4시에 나갈 거니까 시간 맞춰서 와.]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서인은 쌓여있는 옷 중 가장 멀쩡한 것으로 갈아입다가 발목이 묶여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제 입으로 먼저 따라가겠다고 제안한 주제에 겁을 먹고 음식 핑계 대는 모습이 눈 뜨고 봐주기 힘을 정도로 추했다.
“씨발!”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담배는커녕 보푸라기만 잔뜩 나왔다.
서인은 버릇없는 무명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만나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무명의 중요한 서류를 찢어 본인의 집 주소를 끼적였다. 그리고 그냥 놓고 가는 것도 아니고 테이블 밑에 쪽지를 밀어 넣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유치한 행동이었다.
“어디 혼자서 잘살아보시지.”
서인은 쪽지를 찾기 전까지 저를 만날 수 없게 만들었다. 상품을 제작하는 일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버지께 죽도록 맞아봐야 정신 차릴 놈이라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주인한테 대드는 개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예의가 형편없는 놈인 건 알았지만, 더는 참아 줄 이유가 없었다.
♦ ♢ ♦
서인을 묶어두지 않은 것을 모르는 무명은 새벽 4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대욱이 먼저 도착했고 그는 반가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어. 미쳤나?”
서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예민했다. 죄 없는 대욱에게 괜한 시비를 걸며 어깨를 밀쳤다. 미는 대로 밀려주던 대욱은 밖으로 나가버린 그에게 코트를 건넸다.
“날이 춥습니다.”
대욱이 차 문을 열어도 서인은 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집 앞을 서성이며 대욱이 챙겨온 담배를 피웠다.
“이런 씨발….”
부아가 치밀었다. 서인은 도대체 뭘 위해 이런 개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에 악을 질렀다. 담배를 반 갑이나 피우고 나서 차에 오른 그는 운전석을 걷어차며 패악질을 부렸다.
“병원부터 가겠습니다.”
“닥치고 집으로 가. 입 열지 마. 닥쳐.”
예고 없이 튄 불똥에 대욱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런 날의 서인은 사소한 일에도 극도로 화를 냈기 때문에 긴장하고 운전해야 했다.
그는 무명을 폭행하느라 까진 손등과 야윈 서인의 몸 상태에 심기가 불편했다. 무명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아채고 잘라냈다면 서인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야, 도착하면 깨워.”
“예, 주무시겠습니까? 약 드리겠습….”
“내가 입 닥치라고 안 했나?”
억지 트집이었다. 서인은 엄한 곳에서 맞고 와서는 괜히 대욱에게 화풀이했다.
서인이 집어던진 간이 재떨이에 손등을 맞은 대욱이 신음을 참았다. 그는 평소에도 잘 자지 못하고 차에서는 더더욱 잠들지 못하는 서인에게 수면제를 주려고 했던 것뿐이다.
“…….”
“무시해?”
입을 다물라고 할 때
는 언제고 이제는 무시하냐고 역정을 낸다. 뭘 어떻게 하든 뒤틀린 상태이니 아니꼽게 보일 터. 대욱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무명과 있을 때 많이 누그러들었던 본 성질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남이 보기엔 전혀 다정하지 않았지만, 무명의 앞에서 연기하느라 지쳤던 서인은 약을 삼키고 바로 눈을 감았다.
“…하.”
그러나 그는 약을 먹고 30분이 지나도 이리저리 뒤척일 뿐 잠들지 못했다. 잠자리도 무명의 지하실에 비하면 훨씬 좋고 약까지 먹었는데,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씨발 놈이, 고기에 뭐라도 탔나.”
서인은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제가 있어야 마땅한 곳에 복귀했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