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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71화 (37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71화

제371화

샛노랗고 아름다운 별의 궤적이 부유성 안을 날아다녔다.

부유성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튼튼해 보이는 수정으로 만든 기둥들이 좌우로 연이어 보였고, 드물지만 돌로 만든 석상들이 나란히 일렬로 서 있었다.

특별히 좌우를 경계를 하며 갔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였다.

나는 그저 안쪽에 보이는 커다란 빛을 향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갈 뿐이었다.

잠시 후.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터져 나온 눈부신 빛에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

돌연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왔구나. 최춘택.]

나는 곧장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변은 익숙한 헤스페리데스의 언덕들과 나무들이 곳곳에 떠 있었다.

허공엔 작은 섬과 샘물이 통째로 솟구쳐서 황금 사과나무에 물을 대고 있었다.

그런 나무의 옆엔 유피테르의 몸을 차지한 남자가 있었다.

[이건명.]

나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일정 거리를 두고 그와 마주 섰다.

지난번에는 몰랐기에 당했지만, 이젠 그의 정체를 알기에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란 계산이 섞인 행동이었다.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거늘. 이렇게 나의 대업에 훼방을 놓다니 이런 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 그래, 여긴 어쩐 일인가. 설마 나를 죽이러 왔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겠지? 보아하니 신격을 갖춘 지 얼마 안 된 듯한데 말이야. 태초 신의 격을 가진 내게 덤빌 정도로 무모하지 않다고 보는데 착각이었나?]

이건명이 코웃음을 치며 가소롭다는 듯 말하자, 나는 그런 이건명의 말을 무시하며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바람 같은 속도로 횡으로 다리를 휘둘러 수백 개의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들과 송곳 폭풍들을 날려 보냈다.

사방에서 들이닥친 바람을 보며 이건명이 놀라운 얼굴을 했다.

[바람의 힘! 분명 내가 빼앗았거늘. 어떻게 저번보다 강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일단 맞아보면서 생각하지. 그리고 그 가면도 좀 벗으면 좋겠군.]

콰콰콰쾅!

연달아 터지는 폭음이 공간을 찢을 듯한 굉음이 되어 들려왔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한 격류에 휩쓸린 이건명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그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괘씸한….]

먼지가 비산하며 흩어지자 드러난 구슬 같은 보호막 안에 몸을 감싼 이건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노기 어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가리던 위엄의 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마침내 이건명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떻게 바람의 힘을 되찾았는지는 모르겠다만, 네놈의 명줄이 참으로 질기구나. 그때 취하지 못한 목숨을 오늘 가져가겠다.]

이건명이 냉랭한 눈으로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며 열 갈래의 얼음 송곳들을 분출했다.

날아간 얼음송곳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당 수십 개로 분열하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채워 줄을 지어 내게 쇄도했다.

마치 얼음의 용이 내게로 들이닥치는 듯한 무시무시한 한기였다.

[……!]

나는 재빨리 솔라 피닉스를 소환해 들이닥치는 얼음 용을 향해 날려 보냈다.

두 거체가 맞부딪히며 어마어마한 수증기가 안개가 되어 시야를 가렸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새파란 얼음 용과 주홍빛 불새가 치열한 격전을 벌이며 빛과 굉음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두 괴물들은 서로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호오. 내가 부리는 눈의 힘으로 만들어낸 용과 대등하다니. 태양의 정령이 피닉스와 한 몸이 되어 저런 힘을 내는 것인가? 흥미롭군.]

곧이어 이번엔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빗방울 하나하나에 어마어마한 위력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비의 비각술을 펼쳤고, 떨어져 내리던 비가 도리어 여우의 형상을 갖추며 나를 보호하기 시작하자 이건명이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비의 힘까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하지만 저 불새는 내가 제압해야겠네.]

[……!]

얼음 용과 치열하게 싸우던 솔라 피닉스가 하늘에서 퍼부어지는 빗방울 공격에 차츰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모여든 비는 물의 용이 되어 솔라피닉스를 옥죄었다.

저대로 간다면 분명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할뿐더러, 다시 사라질 것이 뻔했다.

[저 하찮은 뱀들은 내가 맡아주지.]

[프로메테우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내 몸에서 탈력감이 느껴지며 등 뒤로 신격이 깃든 불의 형상이 솔라 피닉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을 흡수한 솔라 피닉스의 눈이 이지를 얻은 것처럼 뜨거운 눈빛을 뿜어대며 크게 울었다.

끼오오오!

솔라 피닉스의 등 뒤로 금빛 태양이 맺히며 순식간에 주변 온도를 급상승시켰다.

신격을 갖추게 된 나조차도 가까이 가기 두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열기였다.

근처에 있던 얼음 용과 물의 용이 순식간에 녹아버린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프로메테우스. 네놈이 또…!]

이건명이 참을 수 없는 노기를 터트리며 손가락을 뻗어 벼락을 방출하려는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와 다시 한번 탈력감이 들었다.

[또 형을 괴롭히게 둘 순 없지.]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지니가 커다란 원숭이의 형상을 맺더니 푸른 눈을 빛냈다.

나는 한눈에 그것이 아틀라스임을 알 수 있었다.

[아틀라스! 네놈이 여긴 어떻게…! 분명 하늘을 지게 하는 형벌 때문에 강림할 여력 따윈 없을 텐데!]

이건명이 정말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틀라스는 코웃음을 치며 손짓하자, 내 인벤토리가 갑자기 열리더니 여의초가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그가 여의초를 입에 물며 말했다.

[흥. 내가 이깟 빌어먹을 형벌에서 잠시 벗어나려고 이 여의초를 두 개나 만들었다. 얼마나 튼튼하냐면 지금 나 대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중이지. 물론, 나머지 하나는 유피테르 너를 두들겨 패기 위해 만든 거고 말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우선 한 방 맞고 느껴봐!]

아틀라스가 피고 있던 여의초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려 보냈다.

쿠구궁!

커다란 폭음과 함께 커진 여의초가 이건명의 정면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놀란 이건명은 당황을 금치 못하며 두 손을 교차해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여의초의 짓누르는 힘은 그런 이건명의 예상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었다.

[날 잊으면 섭하지.]

끼오오오!

프로메테우스가 깃든 솔라 피닉스의 신형이 그 무엇이라도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이건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눈부신 불새는 태양을 등지고 날아들었다.

이건명이 재빨리 빗물로 이루어진 보호막으로 자신을 감싸는 더니 눈, 비, 벼락의 세 가지 힘을 섞어 만든 방패를 날아드는 불새를 향해 날려 보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목적은 애초에 이건명이 아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깃든 불새가 아틀라스가 날린 여의초의 끝부분에 닿더니 화르륵 타올랐고, 그것은 언젠가 내가 월드 대항전에서 응용했었던 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심장을 파 먹힐 때마다 네놈에게 복수할 날만을 떠올렸다.]

[감히 날 원숭이로 바꾸는 것도 모자라서 하늘을 들게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가 차례대로 말했고, 이어서 두 형제가 동시에 입을 맞춘 것처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게 우리 형제를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쿠우웅!

처음엔 작은 파동이 퍼져나가더니 뒤이어 터지는 눈부신 빛살과 연기가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동시에 가공할만한 진동음과 패도적인 신격의 폭발은 나조차도 허공에서 주춤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과 함께 오색 빛을 뿜어내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어서 한 차례 버섯구름이 솟구쳐 올랐다가 내려앉았고, 천지가 뒤집히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쿠아아앙!

새하얀 빛이 자취를 감추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 나는 폭발의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는 가진 신격을 단번에 쏟아 부었는지 크기가 절반 이상 작아져 있었다.

[…….]

나는 말없이 아래에 있는 이건명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직경이 무려 수십 킬로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구덩이가 보였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이건명도 분명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콰릉! 콰르릉!

먼지 속에서 날아든 두 개의 벼락 창이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를 각각 기습했다.

[이런!]

[……!]

프로메테우스는 날개가 꿰뚫려 제대로 비행을 하지 못했고, 정면으로 얻어맞은 아틀라스는 팔로 막으려다가 오히려 한쪽 팔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곧장 바람으로 시야를 가리는 먼지를 걷어버렸다.

그러자 흉흉한 기세를 뿜어대며 노려보는 이건명이 천천히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는 벼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고, 그런 벼락의 갑옷엔 약간의 실금이 가 있었다.

양손엔 당연히 아까 던졌던 것과 비슷한 벼락이 들려져 있었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무척이나 패도적이었다.

[갑옷이 아니었다면 정말 중상을 입을 뻔했군. 네놈들이 이런 한 수를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감히 이 몸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을 각오는 하고 있겠지?]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의 얼굴에 낭패가 어렸다.

두 사람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들도 설마 이번 일격을 막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신격을 얻은 나조차도 버티기 두려울 정도로 살이 떨리는 공격이었는데, 두 사람이 저렇게 자신만만했던 것도 당연했다.

[자, 어디 네놈들을 어떻게… 이런!]

나는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재빨리 가이아가 있다는 황금 사과나무로 신형을 쏘았다.

그러나 이건명은 그것을 눈치채고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처럼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그런 이건명을 향해 멀리서 주먹을 내질렀다.

쩌엉!

당연히 튕겨 나온 것은 나였다.

[크하하! 웃기는구나. 이제 막 신격을 각성한 네놈 따위가 태초 신인 내게 힘으로 될 성 싶었더냐!]

하지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몸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던 무두르의 기운을 일으켰다.

크허엉!

등 뒤로 블러디 오크의 형상이 맺혔다가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내 오른손이 무두르처럼 붉게 물들며 커다란 주먹 형상을 만들어냈다.

놀란 이건명의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나는 바람처럼 신형을 가속해 그의 얼굴을 냅다 후려쳤다.

쩌엉!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음이 들리며 이번엔 이건명의 거체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런 그에게 빈틈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양손을 세게 거머쥐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공격을 번갈아 가며 실금이 어려있는 벼락의 갑옷을 연속으로 때렸다.

쩡쩡! 쩌정! 쩡! 쩡!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는 이건명에게 나는 씩 웃어보였다.

[힘들어서 할 말이 없으신가?]

사실 신격을 얻게 되면서 나는 몸속에 있던 무두르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의 힘을 온전히 빌려와 이렇게 부분 변신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크기 조절도 가능하기에 나는 내 몸을 약간 붉게 물들이는 정도로 무두르의 힘을 빌려올 수 있었다.

[이 무지막지한 힘은 무두르구나. 네놈이 어떻게 이 힘을…!]

[그건 알 것 없고.]

쩌엉!

[커억!]

내가 내지른 주먹이 또 한 번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벼락 갑옷에 있던 실금이 한층 더 균열이 가더니 살짝 부서졌다.

[안 돼!]

나는 씩 웃으며 양발 또한 무두르의 힘을 빌려와서는 바람의 힘을 운용해 이건명의 복부를 후려 찼다.

쾅!

마침내 완전히 부서진 벼락 갑옷이 적나라하게 이건명의 육신을 드러내자, 나는 미리 펼쳐놓은 달의 비각술로 만들어진 그림자들을 움직여 그의 동서남북을 점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바람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동시에 모든 비각술을 차례대로 운용해 무시무시한 발차기 연격을 퍼부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날씨의 힘들을 총동원한 것이었다.

쿠쾅! 콰쾅! 콰콰쾅!

또 한 번의 천재지변이 이건명을 사방에서 휩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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