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67화
제367화
한편, 그때쯤 강재성과 일행들은 함께 유니온 본사 옥상에 자리한 헬기 착륙장에 발을 딛는 중이었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이석준과 간단히 악수와 인사를 마친 그는 곧장 지하 모니터링 실로 향했다.
때마침 그곳에선 아틀란티스의 대군들이 마왕군의 옆구리를 강타하며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재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이 아주 잘해주고 있구나.'
비록 피로 이어진 혈연관계는 아니었지만, 아직 미혼이었던 그와 인연을 맺게 된 그들에게 강재성이 느끼는 감정은 가족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때쯤 세 여신들이 되살아났다며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고, 바로 옆에 있던 이석준과 유민석도 만면에 희색을 띠며, 불리했던 형세가 점차 균형을 찾아가자 대치 상태를 이루는 것에 희망을 느꼈다.
"잘하면 이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하지만 강재성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아틀란티스와 세 여신이 합류했어도,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이기에 그들의 힘은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세 여신들 또한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력을 끌어내지 못할 것이구요."
그 말에 두 사람의 낯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석준이 무언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세 여신이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것은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건 제가 얘기해드리겠습니다."
그때 유민석이 나섰고, 강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하자면 무척 깁니다. 우선 전 지하 연구소에 있는 통제실로 먼저 가야겠습니다. 두 분도 같이 절 따라오시죠. 이야기는 가면서 하십시다. 그리고 미성아, 너도 같이 가자."
"네? 저도, 저두요?"
"내 옆에 딱 붙어 있겠다고 하지 않았어? 불안하다면서."
"아, 당연히 가야죠!"
그렇게 네 사람은 지하 3층 깊은 곳에 자리한 통제실로 들어섰고, 강재성은 들어오자마자 감회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눈앞에 있는 키보드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런 그의 양쪽엔 놀란 얼굴을 한 연구진들이 있었다.
그들은 식물인간이 된 줄 알았던 강재성 박사가 멀쩡히 돌아온 모습에 무척이나 놀란 모습이었다.
몇몇 연구진들은 그런 강재성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먼저 강재성이 손바닥을 들어 그들을 막고는 시선은 슈퍼컴퓨터의 에러 상황을 파악하며 눈알을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원인을 파악했는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그랬군. 하긴 이런 일이 가능한 건 그밖에 없지."
"무언가 알아내신 겁니까?"
이석준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강재성에게 물었다.
강재성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장인한 박사를 아십니까?"
"장인한 박사님이라면 초창기 아크스타를 공동 개발하셨던 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은 모종의 이유로 해고되셨다고…."
강재성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유민석의 얼굴을 살폈다.
유민석도 강재성과 눈을 마주치자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이석준에겐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겠지.'
장인한 박사는 언젠가 이건명이 자행했던 불법 실험을 부추기며 실행에 옮긴 핵심인물이었다.
그는 비틀어진 욕망으로 인해 그런 천인공노할 실험들을 시행했고, 장인한은 자신과 같은 희대의 천재였지만 그 끝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강재성은 그의 눈앞에서 죽은 장인한을 보았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건명은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해고된 그 장인한 박사가 아무래도 복제된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 복제 키요? 그럼 큰일 아닙니까!"
이석준의 표정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창백해졌고, 그것은 유민석과 다른 연구진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재성은 약간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복제 키는 온전하지 않은 것이라 제가 가진 마스터키로 시간만 주어진다면 천천히 에러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우선 시도해봐야 알겠지만요."
그 말에 무겁게 내려앉았던 분위기가 금세 활기차졌다.
주변엔 희망이 가득찬 얼굴로 웃고 있는 이들이 다분했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마스터키를 가동해야겠어요."
강재성이 천천히 연구실 어딘가로 가더니, 어딘가를 누르자 작은 스캐너가 나왔다.
그리고는 뻣뻣하게 서 있는 여동생 강미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미성아, 이쪽으로 와서 서 봐."
"네?"
"얼른."
강미성이 곧장 기계 앞에 섰고, 기계는 강미성의 눈동자에 빛을 쬐더니 무언가를 인식한 것처럼 알 수 없는 소음을 내었다.
그리고 커다란 화면에 '관리자 권한 로그인 완료'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연구진들이 "됐다!"라고 소리치며 좋아했고, 놀란 이석준과 유민석의 얼굴을 보며 강재성이 빙긋 웃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원래 마스터키의 사용법은 제 홍채를 인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전 쓰러지기 직전 혹시나 일어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마스터키의 권한을 여동생에게 넘겼죠. 그래서 지금 미성이의 홍채를 인식한 마스터키가 관리자로 로그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석준과 유민석이 놀라는 한편, 강미성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처럼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강재성은 그런 여동생의 어깨를 툭 치며 이제 끝났으니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강재성이 슈퍼컴퓨터 앞에 앉았다.
바로 건너편에 있는 방탄 유리창의 너머엔 마치 태양과도 같은 새하얀 에너지원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슈퍼컴퓨터 가이아의 정체인 코어 에너지였다.
* * *
백마의 형상을 띤 쓰나미가 마왕군의 옆구리를 강타하자마자, 무지막지한 물살 속에서 아틀란티스 인어들의 공세가 퍼부어졌다.
그 속엔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이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의 부근에 있는 익숙한 기운을 느낀 나는 꽤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건 내 포크 숟가락?"
그것은 언젠가 강재성이 자신에게서 빌려갔던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 포크 숟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예전에 내가 알던 그 포크 숟가락이 아니었다.
땅을 찍으면 작은 지진이 일었고, 바다를 찌르면 살아있는 형상이 되어 적들을 휩쓸었다.
그 엄청난 공세에 마족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바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계 장군 하나가 소리쳤다.
"막아라! 한낱 물고기들 따위보다 우리 마족들이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마계 장군 하나가 거대한 쓰나미를 향해 뛰어들었다.
들이닥친 마계 장군은 데우칼리온과 몇 번 공격을 주고받더니, 너무도 손쉽게 포크 숟가락에 무기가 부러져 즉사하고 말았다.
그런 아틀란티스의 기세가 폭풍과도 같았다.
휘오오오!
생각과 동시에 정말로 하늘에서 비와 눈이 동반된 폭풍이 불어닥치며 적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곧장 허공을 바라보았고,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의 세 여신을 보고는 화색을 띠었다.
"살아 있었구만."
세 여신들의 합공에 마족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며, 급기야 지켜보던 대장군급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전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아직 두 세력은 간신히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고, 마족들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거기다 언데드들이 끝없이 살아나고 있으니 무척이나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근처를 서성이며 적들을 도륙하던 아리에스를 불렀다.
"이보게!"
[……?]
마침 그녀도 여신들과 아틀란티스의 대군이 합류하자, 화색을 띠고는 이때다 싶어 기세를 끌어 올리는 중이었는데, 내가 부르자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며 다가왔다.
그녀는 마족 하나의 머리를 터트리며 말했다.
[왜 부른 거지?]
"나와 함께 루시퍼를 치러 가세."
[루시퍼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언데드는 전부 루시퍼가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네. 루시퍼를 쓰러트리면 자연히 승기가 우리가 쪽으로 쏟아질 터."
[과연, 이해했다. 그대를 돕도록 하지.]
아리에스는 큰소리로 주위에서 싸우던 성좌들을 중 몇몇을 불러모아 뜻을 전했다.
그렇게 모여든 성좌들의 수는 약 절반가량이었다.
나머지는 키론에게 인솔을 부탁했고, 그렇게 조직된 성좌들은 일종의 별동대와 같은 성격을 띠었다.
나는 가장 먼저 루시퍼를 향해 돌진하듯 전방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쾅!
뒤이어 아리에스와 몇몇 성좌들의 공격이 하늘을 수놓았다.
발끝에서 발현된 태양룡이 괴성과 함께 마족들을 돌파했다.
콰오오!
"막, 막아!"
"무리야! 도망쳐라!"
대부분의 마족들은 우리들의 앞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시 일어나는 언데드의 반격이 매서워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마족들은 아직도 절반 이상이 남아있었고, 대장군급의 마족들이 속속들이 가세하기 시작하자 차츰 우리가 불리해지는 형국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루시퍼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마족들의 공세를 피하고 막아내며, 나는 천천히 의식으로 풍희와 춘자를 불렀다.
잠시 뒤, 내 양옆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두 인영이 나타났다.
한 명은 하얀 머릿결에 장발을 가진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었고, 반대편의 여인은 검은 단발의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소녀였다.
검은 머리의 춘자가 꺄르르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아빠, 나 불렀어?"
"그래. 상황은 보면 알겠지?"
"못생긴 애들을 없애면 되는 거야?"
"그래."
그리고는 곧장 왼쪽에 있는 하얀 머릿결의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풍희가 어느새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풍희?"
"저 맞아요."
"모습이 많이 변했구나."
"모습만 변한 게 아니에요."
풍희의 모습이 천천히 새하얀 안개에 휩싸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안에서 모습이 변형되더니, 안개 속에서 무시무시한 노란 안광을 뿜어대는 짐승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크허엉!
그 엄청난 포효에 마족들의 기세가 잠시지만 주춤할 정도였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돌풍이 주변으로 불어닥치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주변 마족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풍희의 힘은 이미 삭풍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케레노스가 어딨는지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이 풍희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져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춘자도 질 수 없다는 듯 허공에 뜬 채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곧장 손을 활짝 펼치더니, 여러 고대 문자들이 떠오르고는 춘자가 바라보는 곳에 블랙홀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까만 블랙홀은 주변 마족들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빨아들이며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보내버렸다.
그녀가 다시 수결을 맺자 하늘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틈새 사이로 불타오르는 운석이 떨어져 내리며 재앙을 일으켰다.
마족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 *
쾅! 쾅! 콰콰쾅!
기상천외한 천재지변에 대번에 성좌들의 사기가 끝까지 부풀어 올랐다.
아리에스의 얼굴엔 한 줄기 희망이 내비쳤고, 어쩌면 정말로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바로 그때.
우웅!
갑자기 아리에스의 소맷자락 안에 잠들어 있던 별의 정령 스텔라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스텔라는 아까보다 더 큰 진동을 보였고, 아리에스는 그런 스텔라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스텔라는 차마 아리에스가 말릴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튀어나갔다.
'설마, 새로운 별의 왕이 탄생하려는 것인가!'
별의 잔재를 일으키며 뻗어 나간 스텔라가 순식간에 누군가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별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주변으로 웅장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