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66화
제366화
드드드드!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죽음의 군단을 바라보던 루시퍼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플루토가 개입해 인간들의 편을 들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라그나로크를 겪어보았던 루시퍼는 그들의 무서움과 잔혹함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되살아나는 그들은 마치 악몽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죽음의 군단이라니! 이거 아주 재밌게 되었구나! 크하하!]
바로 옆에 있던 아슈타르의 첫 번째 머리가 광소를 터트리며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런 아슈타르의 곁엔 천둥검이 두둥실 떠 있었다.
새삼 루시퍼는 저 검을 받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것이 없었다면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했을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루시퍼가 천천히 네크론에게서 얻은 죽음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것은 판도라가 흡수하려 했던 것을 중간에 가로채 루시퍼가 흡수한 힘이었다.
그의 전신을 검은 불길이 휘감았고, 루시퍼가 손을 뻗자 각종 언데드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슈타르의 두 번째 얼굴이 눈을 빛냈다.
[더 강해졌군.]
[네크론을 죽이고 얻은 것이다. 쓸 만하더군.]
[역시 그랬나.]
아슈타르의 두 번째 얼굴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다시 전방을 예의 주시했다.
그들의 앞에 각기 다른 언데드들이 괴성을 질렀다.
하위급 언데드를 비롯해 고위급인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들도 있었고, 끝없는 바다와 같은 마력을 지닌 지금의 루시퍼에게 그들은 꽤 쓸만한 전력이었다.
[가라.]
루시퍼의 손짓과 동시에 언데드 대군들이 마족들을 지나치며 최전방에서 달려오는 죽음의 군단들을 막기 위해 달려갔다.
이어서 아슈타르가 들고 있는 쌍검을 부딪치며 우렁차게 소리 질렀다.
[죽여라!]
마족들 사이에서 뿔피리 소리가 퍼져나가며 기괴한 마족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개미 떼가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은 코뿔소 마수를 타고 돌격하는 기병 마족들이었다.
언데드와 뒤섞여 달려드는 그들의 기세는 무척이나 굉장했다.
비록 죽음의 군단이 인간들의 편에 있지만, 루시퍼와 아슈타르를 비롯한 마왕군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간들보다 압도적인 숫자와 힘을 지니고 있고, 인간들 중에서 마족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수가 수만밖에 이르지 않았고, 마족들은 수십만에 이르렀다. 루시퍼는 낮게 웃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번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최전방에서 거친 괴성과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각종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최전방에 있는 마족들을 향해 선제공격을 개시했다.
명계에서 아이올로스에게서 전수받은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바람의 비각술을 펼치며 허공에 모여든 회오리들을 송곳처럼 날카롭게 벼려내, 전방의 마족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콰콰콰콰콰!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송곳 폭풍이 마족들을 분쇄하며 파공음을 터트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마왕군과 연합군이 부딪히며 병장기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첫 시작은 우리가 약간 우세했지만, 연합군은 금세 마왕군에 둘러싸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성좌들은 모두 나를 따라라!]
하늘 위를 수놓으며 별자리들이 지나가자, 그 아래에 있던 마족들이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반격을 퍼부었다.
하늘에서 퍼부어지는 성좌들의 공격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아리에스는 성좌들을 이끌며 포위망을 뚫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마왕군에서도 장군급들이 나서서 그런 성좌들을 에워쌌다.
그 숫자가 성좌들보다도 한참이나 월등했기에, 아리에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 걱정하지 말라 말하고는 피닉스를 보내주었다.
솔라 피닉스로 화한 주홍빛 불새가 마계 장군들을 향해 날아오르며 울었다.
끼오오!
솔라 피닉스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떨어지는 멸마의 불꽃의 잔재가 마족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아리에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표시를 하고는 마계 장군들에게 맹공을 펼쳤다.
성좌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늘에서 박막순을 중심으로 한 각종 마법진이 수놓아지며 아래에 자리한 마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마법이 퍼부어졌다.
쿠콰콰콰쾅!
마족들은 괴성을 질러댔고, 급기야 비행을 할 수 있는 마족들이 나서자 벌떼처럼 모여든 비행 마족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계에서 키운 벌레들인지 이름 모를 괴충들이 박막순을 비롯한 오즈의 마법사와 마녀들에게 달려들며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도 나는 정신없이 각종 비각술을 펼치며 마족들을 휩쓸었다.
옆에선 백무열이 거대한 몽둥이로 몇몇 마족들을 상대하며 손쉽게 짓뭉개버렸고, 견소룡이 백색의 뇌전으로 전장을 종횡무진 누볐다.
마이클의 검술은 전장의 중심에서 꽃을 피우더니 가히 압도적인 기세를 선보였다.
미도는 잉크 드래곤 위에서 이카루스 길드를 중심으로 모인 다른 길드들과 거센 폭풍을 닮은 공격을 퍼부어댔다.
잉크 브레스가 마족들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어마 무시한 위력을 선보였다.
아래쪽에선 죽음의 군단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적들을 도륙했고, 죽었던 유저와 NPC들도 다시 원래대로 되살아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드니 마족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전장을 훑으며 이대로만 간다면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쿠쿵!
"……!"
바로 그때. 저 멀리 마족들을 가로지르며 광포한 웃음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인영이 있었다.
[하하하! 반격이 제법이구나! 너희 인간들도 살아날 줄이야! 까다롭긴 하지만 어디 나와도 한번 싸워보자꾸나!]
그 인영은 바로 아슈타르였다.
때마침 마족들의 비행용 드레이크 하나를 빼앗아 다가온 백무열이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저놈은 내가 맡으마. 이의는 없겠지?"
"좋을 대로 해라. 난 다른 이들을 살펴야 해서 바쁘니까."
"저놈은 반드시 내가 죽일 거다."
그때. 백무열이 품에서 차원의 가위를 꺼내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놀라서 살짝 눈을 떴다.
아마 견소룡이 백무열에게 빌려준 게 틀림없겠지.
하긴 이런 상황에 누가 저런 위험천만한 물건을 갖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다시 되살아나는데.
"금방 갔다 오마."
"잠깐만, 헤라클레스는?"
"거의 다 왔다더군."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열이 올라탄 드레이크가 괴성을 지르며 전방의 아슈타르를 향해 날아갔다.
때마침 아슈타르도 백무열을 발견하고는 희색을 띠며 광소를 터트렸다.
[네놈이구나! 다시 한번 자웅을 겨뤄보자!]
"고얀 놈-!"
백무열의 기합과 동시에 둘 사이에서 거친 파공음이 퍼져나갔고, 나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비각술을 펼쳤다.
허공의 먹구름이 몰려들며 마족들에게 산성비를 퍼부어졌다.
이어서 눈 폭풍을 불러내 주변을 휩쓸었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벼락은 순식간에 마족들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지니기도 했다.
내 주위에 몰려있던 장군급 마족들이 점차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는 점차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려 하자, 나는 재빨리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천벌을 그들에게 내렸다.
콰릉! 콰르릉!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마족들이 두려움에 떨며 사라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
스스슷. 재로 흩어졌던 마족들이 모여 형체를 이루더니, 순식간에 언데드가 되었다.
동시에 주변에서 놀란 음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모두가 되살아난 마족 언데드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플루토의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언데드들의 머리 위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죽음의 기운이 실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고, 마족 언데드를 일으킨 장본인을 찾을 수 있었다.
"루시퍼…."
죽은 마족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다시 일으킨 것은 루시퍼였다.
설마 저 녀석에게 저런 능력이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이 정도의 죽음의 힘을 다룰 수 있었다니.
"성가시군."
죽은 마족들이 천천히 언데드로 만들어져 다시 연합군을 향해 달려들자, 전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데,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나 끝없는 싸움을 반복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이대로라면 연합군은 필패할 것이 자명하리라.
"쓰, 쓰나미가 몰려온다!"
그때 누군가 크게 소리쳤고, 나는 재빨리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쓰나미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희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왔구나."
* * *
[가라! 마족들에게 아틀란티스의 저력을 보여주어라!]
클리메네의 우렁찬 외침이 아틀란티스의 인어들에게 닿자, 수많은 인어들이 쓰나미에 올라타 전장으로 돌진했다.
거대한 쓰나미의 정체는 바로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이 합동해서 일으킨 파도였다.
[안색이 창백한데 괜찮느냐.]
[전 아직 괜찮습니다. 어머니.]
걱정하는 클리메네를 향해 데우칼리온이 창백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트라이던트에 들어가 있는 할아버님의 신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단숨에 가진 영성과 신력이 절반이나 줄어들었어요.]
[그러니 아버님이 대단하신 것 아니겠느냐. 태초신의 핏줄이라는 것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은 넵튠의 권능이 담긴 트라이던트를 건네받았다.
자신의 남은 신력 절반을 소모해 여신들을 되살린 강재성은 남아있던 모든 신력을 트라이던트에 쏟아 부어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에게 넘겼다.
그 뒤 그는 스스로 잠에 빠져들었고, 두 사람은 넵튠이 남긴 의지에 따라 아틀란티스의 전 병력을 이끌고 출정을 했던 것이었다.
[그럼 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길 안내를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클리메네의 맞은편에 있던 거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식간에 구름 위에서 점프해 전장의 한복판에 들이닥쳤다.
그는 바로 백무열의 성좌인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 또한 지난번에 시간 회귀 현상을 겪었고, 때마침 백무열을 통해 마왕군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헤스페리데스 쪽으로 다시 방향을 잡은 그는 중간에 아틀란티스의 대군을 만나 길 안내를 자처한 것이었다.
[우리들도 손을 보태야겠단다.]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의 뒤에서 자애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재빨리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그녀들은 넵튠이 되살린 후에라, 카디야, 마야였다.
[전장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아무래도 인간들이 밀리는 모양이다. 우리가 도와야겠어.]
마야와 카디야가 재빨리 전장으로 날아올랐고, 후에라도 눈앞의 두 사람에게 싱긋 웃으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클리메네와 데우칼리온도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저희도 가시죠. 어머니.]
[그러자꾸나.]
두 사람의 신형이 쓰나미 속으로 스며들었다.
쓰나미에서 다시 커다란 용울음 소리가 들리며 거칠게 움직이더니, 거대한 백마의 형상을 맺었다.
수십의 백마들이 거친 말발굽을 움직이며 만들어낸 거친 쓰나미가 외곽에서부터 천천히 마족들을 휩쓸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