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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64화 (36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64화

제364화

유민석은 천천히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뒤편에서 찬찬히 강재성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몇 년 만에 깨어나서 그런지 안색은 창백했지만, 이상하게도 눈빛만은 번뜩이며 살아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큰 이상이 없음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유민석은 면회증이 있었기에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는 면했고, 그렇게 의사와 간호사들이 물러나자 유민석은 그제야 강재성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마침 강재성도 그런 유민석을 알아보고는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유니온에서 나오신 분입니까? 하도 오랜만에 현실 세계에 왔더니 적응이 안 되네요. 하하."

"맞습니다. 그런데 현실이라 하심은…."

"미성아 잠시 자리 좀 비켜줄래?"

그런 강재성의 말에 강미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곧장 조셉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곧이어 그녀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강재성이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얼핏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제가 강연할 때 사무실에 계셨던 분인가요?"

"기억하시는군요. 유민석이라고 합니다."

유민석과 강재성은 간단히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유민석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 눈앞의 강재성에게 전 인류의 10분의 1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그를 설득해 마스터키의 행방을 알아내야 했다.

지금은 그것만이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재성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마스터키를 찾으러 오신 겁니까?"

"그걸 어떻게…?"

강재성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군요. 매제에게 들은 것처럼 상황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매제라면…."

"조셉에게 들었습니다. 그동안 동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구요."

"그걸 어떻게…. 아니, 그동안 식물인간 상태셨던 것 아니셨습니까?"

"맞습니다. 제 육신은 식물인간 상태였지요. 다행히 미성이가 절 병원에서 오랫동안 간호하고 있었다는 사실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식물인간이 된 것은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개발했던 어플을 통해 저의 의식을 강제로 게임 속에 있는 NPC로 보냈으니깐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유민석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살짝 벌렸다.

가상현실 방면으로는 희대의 천재라고 불렸던 인물이 비범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한 탓이었다.

그저 오래된 지병으로 쓰러진 줄 알았던 그가 스스로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게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히 어느 누가 상상했겠는가.

강재성은 그런 유민석의 표정에 아무렇지 않은 듯 살짝 웃더니 다시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턱을 매만졌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죠. 말씀하셨던 마스터키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찾아드리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예. 아주 큰 문제지요."

"어떤…?"

유민석이 긴장 어린 낯빛으로 강재성의 안색을 살폈다.

강재성은 한숨을 크게 푹 내쉬더니 맑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우선 그 전에 헬기부터 부릅시다. 가면서 얘기하죠."

* * *

메테우스의 광장에 이른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유저와 NPC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 대부분이 아까 전 있었던 시간 회귀 현상을 직접 겪은 탓이었다.

그중엔 싸움 도중에 죽어버려서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도 못하는 이도 있었지만, 살아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몇몇 중요 인사와 간부들에게 해당 세계의 시간을 되돌려 모두를 살려냈음을 알렸고, 그들은 그런 내 힘에 감탄과 두려움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아났음에 감사를 표했다.

몇몇은 내가 그런 놀라운 일을 벌였단 사실을 믿지 못하자 의혹을 내비쳤는데, 얼마지 않아 아크스타그램에 내가 시간을 되돌려 그들을 살려내는 영상이 속속들이 올라오자 단숨에 그 의혹을 떨칠 수 있었다.

"역시 우리 할아버지. 완전 멋있어요!"

미도가 쌍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폐하!"라고 외치며 엎드려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NPC들이었고, 아틀란의 백성들이었다.

"모두 고개를 들거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그들에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왕의 명령이다."

그제야 백성들과 기사들이 차츰 고개를 들었고, 그들의 얼굴엔 끝없는 존경심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을 다시 사지로 내몰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이런 과분한 환대와 인사는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받아도 늦지 않았다.

"아직 적들이 코앞에 있다. 난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나와 함께 저 마족들을 몰아내고 이 세계를 구하지 않겠는가!"

모여든 군중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분명 마족들을 몰아내기는 해야겠지만 다짜고짜 목숨을 걸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들 사이엔 유저들도 있었기에, 더더욱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때. 곁에선 미도가 다가왔다.

"유저들은 목숨을 걸기 어려울 거예요. 지금 여기서 죽었다가는 실제로 죽는 것과 같으니까요. 다행히 할아버지가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살아났지만, 아까 말씀하시길 그 힘은 한 번밖에 쓰지 못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더더욱 따르긴 힘들 거예요."

미도가 안타까운 기색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자신감 있는 얼굴로 미도에게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죽지 않으면 될 일이지."

나는 눈을 빛내며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일장연설을 하며 꽤 오랜 시간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잠시 후. 출격을 앞둔 병사들과 기사들이 일렬로 정렬했다.

그리고 유저들이 비장한 눈빛으로 열리기 시작하는 성문을 바라보며 웃었다.

쿠구궁!

마침내 성문이 활짝 열리자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쏟아져 나오며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법 도시 오즈 출신인 마법사와 마녀들은 박막순을 중심으로 빗자루를 타며 하늘을 날아올랐고, 고르바와 오크들은 땅을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녔다.

몇몇 성좌들은 허공에 별빛을 수놓으며 날아올랐고, 몇몇 랭커들은 비행에 관련된 마법 물품이 있는지 뛰지 않고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구름의 정령 지니의 등에는 나를 비롯한 미도와 백무열이 자리해 있었다.

때마침 미도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전하자, 미도가 놀라움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할머니가 살아…있다구요?"

미도는 목이 메는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런 내 말에 백무열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유선영이 사실 플루토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었고, 두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플루토로 살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미도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자, 나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미도는 머릿결을 정리하며 얼굴을 붉혔고,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함께 할머니를 만나러 가자꾸나."

"네, 좋아요…!"

생긋 웃는 미도의 얼굴에서 나는 아내 유선영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보다.

그때. 백무열이 입을 열었다.

"아까는 구해줘서 고마웠다."

"뭘, 이 정도 갖고."

"하마터면 하늘에서 성찬이 애비와 며느리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뻔했다. 아이스크림인지 아슈크림인지 그놈이 그렇게 배신할 줄은…."

백무열은 자신이 죽고 나서 있었던 일을 아크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슈타르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꼭 자신의 손으로 아슈타르를 죽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복수도 복수지만 이건명을 막는 게 먼저다."

"큼. 나도 알아."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가까워지고 있는 언덕을 보았다.

이제 저 언덕만 넘어가면 마왕군이 있다고 알려진 헤스페리데스가 나올 것이었다.

* * *

재성 병원 옥상에 자리한 헬기 착륙장.

두두두두!

응급 의료 헬기가 소음을 일으키며 퍼부어대는 광풍에 유민석은 살짝 눈이 찌푸려졌다.

그런 그의 옆에는 휠체어에 타고 있는 강재성과 그런 휠체어를 붙잡고 선 강미성이 함께 있었다.

강재성은 오랜 시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었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강재성은 강미성에게 함께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망설이던 그녀는 주치의와 함께 헬기를 탄다는 전제하에 동행할 것을 승낙했다.

잠시 후. 헬기가 조심스럽게 착륙하자, 세 사람이 올라탔다. 주치의까지 모두 오르자 헬기가 천천히 상공으로 떠올랐다.

유민석과 강재성은 헬기 내에 마련된 헬멧을 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 내용은 강재성이 게임 속에서 어떤 일을 하며 지냈는지와 어떤 NPC로 살며 어떤 세월을 보냈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모든 얘기를 듣고 난 유민석은 어안이 벙벙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그 상황에 있었다고 해도 그 오랜 세월을 게임 속에서 지내야 했다면 정신이 붕괴되며 자살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대단한 사람이야.'

유민석이 소리친 건 그때였다.

"유니온에 헬기 착륙장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민석이 헬기의 소음 속에서도 큰 소리로 강재성에게 물었다.

"언젠가 이건명 회장이 쓰러졌을 때 급하게 응급 의료 헬기 착륙장을 본사 옥상에 지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 남아 있었네요!"

"그렇네요! 아마 제가 왔던 것처럼 차를 타고 갔다면 길이 막혀서 4시간이 넘게 걸렸을 겁니다! 정말 하늘이 도왔어요!"

"제가 원래 좀 운이 좋습니다! 이렇게 운이 좋아서 식물인간 상태에서도 살아남았잖아요! 하하하!"

그 얘기를 들으며 유민석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다시 강재성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마스터키를 찾아서 유니온으로 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마스터키는 이미 제 게 있거든요!"

유민석이 조금 놀란 얼굴을 했지만, 일부러 드러내진 않고 희미하게 미소만 지었다.

어쨌든 강재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빨리 유니온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아까 전 이석준에게 전화로 강재성이 깨어났고, 마스터키를 가지고 그와 함께 돌아갈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이석준은 지체하지 말고 오라는 말을 했었다.

두두두두두!

헬기의 소음 속에서 강재성의 외침 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저는 잠시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아직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서요! 이따 집중을 하려면 미리 쉬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도착하면 제가 깨워드리겠습니다!"

강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유민석은 저물어가는 노을에 비친 새털구름을 보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두두두두두!

헬기의 소음이 폭풍 전야가 일어나기 전 고요한 심장의 박동처럼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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