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362화 (36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62화

제362화

아슈타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땅에 떨어진 백무열의 수급을 들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갑자기 성벽에서 폭음이 들려오더니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검기를 날려대는 인영이 있었다.

허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군급 마족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날카로운 핏빛 기운을 그곳으로 쏘아 보냈다.

콰릉!

그러나 정체불명의 인영은 검은 뇌전을 발산해 핏빛 기운을 가볍게 튕겨내었다.

"뭣!"

화들짝 놀란 마계 장군이 이번엔 제대로 인영을 공격하려는 순간이었다.

쿠르릉!

백색의 뇌전을 휘감은 또 다른 인영이 나타나 천둥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그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

당황한 마계 장군의 눈앞에 있는 것은 순식간에 전력을 끌어올려 6개의 팔을 드러낸 견소룡이었다.

견소룡은 천둥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눈앞의 마계 장군에게 연격을 퍼부었다.

이어서 아리에스와 다른 성좌들도 각기 다른 장군급 마족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갑작스레 시작된 전쟁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늘 위로 수십의 마법들이 수놓아졌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몸을 사리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살기 위해 마족들을 향해 다양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사이, 검은 뇌전을 뿜어내 장군급 마족의 공격을 튕겨냈던 백성찬은 백무열의 시신 곁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백무열의 시신을 부여잡고는 눈물을 쏟아내었다.

이어서 옆에 있는 할아버지의 수급을 보는 순간.

백성찬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충격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흐흐. 이렇게 나오면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고. 안 그래?]

[하긴 먼저 공격한 건 저들이었으니까.]

아슈타르의 두 얼굴이 각기 다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들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지만,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시끄러."

[흠?]

"시끄럽다고!"

백성찬의 검이 수평으로 베어지더니 날카로운 검은 뇌전 검기가 날아올라 아슈타르의 얼굴로 직행했다.

콰앙!

웃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한 아슈타르의 얼굴이 흉신악살의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얼굴엔 검은 뇌전의 가닥이 아른거렸다.

[놈…!]

시뻘건 눈빛을 부라린 아슈타르의 첫 번째 얼굴이 백성찬에게 향하는 그때.

난데없이 하늘에서 용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콰오오!

갑작스러운 드래곤 피어는 마족들의 기세를 한순간이지만 누그러트렸다.

아슈타르도 잠깐이지만 멈칫거렸고, 그런 아슈타르에게 검은 광선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며 땅을 가르고 뒤편에 자리한 산조차도 무너트리는 기세로 뻗어 나갔다.

쿠콰콰쾅!

[큭!]

간신히 양손을 교차한 검으로 검은 빛기둥의 궤도를 빗겨낸 아슈타르가 자신을 공격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검은 용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자신을 오시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엔 다빈치가 있었다.

[다빈치…!]

자신을 공격한 것이 다빈치의 잉크 드래곤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슈타르가 눈살을 찌푸렸고, 백성찬의 곁엔 어느새 미도가 다가와 있었다.

미도는 백무열의 시신을 보고는 놀라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던 미도는 곧장 아슈타르를 노려보며 의식을 방출해 릴리스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슈타르를 공격할 것을 명했다.

[릴리스.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살다니. 꼴이 말이 아니구나!]

[흥, 난 옛날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쿠콰쾅! 콰콰콰쾅!

아슈타르와 릴리스의 싸움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런 릴리스의 곁에는 아스모데우스가 가세했다.

하지만 마족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숫자에서부터 불리한 싸움이었고, 거의 백만에 이르는 마왕군과 십만조차 되지 않는 연합군의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전황이 불리해졌다.

* * *

이석준과 유니온의 전 직원들은 대형 모니터 앞에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백무열의 죽음은 모든 이들의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었고, 그만큼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거룩한 희생조차 지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난데없이 시작된 전투는 처절했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유니온의 직원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방송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운전을 하다말고 도로 한복판에서 건물 위에 자리한 대형스크린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종교인은 기도를 하면서 지켜보기도 했다.

"…신이시여. 제발 저들을 구원해주소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화면에 있는 연합군을 응원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치열하게 밀어붙이던 연합군의 기세는 점점 수적 공세에 밀려났고, 마왕군이 택한 인해전술은 무지막지하게 그들을 밀어붙였다.

결국 연합군들 사이에서 희생되는 유저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인들은 물론 유니온의 직원들도 안타깝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생방송으로 특보를 보도하던 앵커들은 침음을 삼키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모든 게 끝이구나.'

이석준은 창백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유니온은 이제 전 세계인들에게 대역죄인이 된 셈이었다.

자신은 이제부터 내리막길을 걸어 종국에는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이석준은 착잡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런 일이 터져버린단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강제로 모든 서버를 닫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안에 있는 유저들의 목숨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당장에 슈퍼컴퓨터 가이아가 통제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이렇든 저렇든 난관에 봉착하자 이석준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길!"

이석준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욕설을 뱉어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강재성 박사가 있는 병원으로 향한 유민석에게 희망을 걸어보았지만, 이젠 그것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절망뿐이었다.

"아버지…."

이석준은 문득 아버지인 이건명이 보고 싶었다.

항상 그는 아버지를 닮고 싶어했기에,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그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던 바로 그때.

"어어?"

"설마 저 사람은…!"

바로 앞에 있던 직원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모든 직원이 화면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영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석준도 두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화면에 나타난 이는 칠흑 같은 어둠을 찢어 입은 듯했고, 검은 망토를 두른 백발의 노인은 허공에서 아래쪽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 *

몇 시간 전.

나는 전송진을 통해 메테우스와는 꽤 멀리 떨어진 송화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동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꽤 깊숙이 숨겨져 있어서 어느 누구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곳을 나오자마자 나는 곧장 메테우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반나절을 가로지르자 어느 평원에 도달했고, 그렇게 평원에 도착한 나는 곧장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숫자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 더욱 속력을 높여 하늘을 가로질렀다.

좀 더 지나 마왕군의 허리쯤을 지났을 땐 어마어마한 파공성과 함께 싸우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헤라클레스와 루시퍼였고, 나는 시력을 강화해 저 멀리 드넓은 전방을 주시했다.

성 앞은 아비규환이었다.

인간과 마족들의 시체가 겹겹이 쌓여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피가 강을 이루었다.

그것은 또 다른 지옥을 보는 기분이었다.

"…너무 늦은 것인가."

나는 통탄을 금치 못하며 메테우스의 상공에서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제일 먼저 미도가 어디 있는지 찾았다.

얼마지 않아 그녀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곁엔 백무열의 손자인 백성찬과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설마."

나는 천천히 시체의 곁에 떨어져 내렸다.

미도는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나를 보며 무척이나 놀란 기색이었지만, 일부러 티를 내진 않으려했다.

미도는 갑자기 울먹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무열이 할아버지가…."

"……."

나는 간신히 얼굴이 부들거리는 것을 참으며 천천히 시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백성찬의 품에 안겨있는 백무열의 수급을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간신히 짓눌렀다.

나는 천천히 백무열의 뺨을 쓸며 중얼거렸다.

"이 친구야.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게 어딨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40년 지기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

"저 녀석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서 싸우고 있는 세 인영을 주시했다.

그들은 아슈타르, 릴리스, 아스모데우스였다.

아슈타르는 릴리스와 아스모데우스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보였고, 마왕들 사이에도 급이 있는지 둘이 힘을 합쳐도 아슈타르 하나를 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이를 으득거리며 깨물고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

몇몇 성좌들은 빛을 잃고 주검이 되어 있었다.

기괴하게 생긴 마족들은 NPC와 유저를 가리지 않고 살육을 벌이기 바빴다.

나는 천천히 눈을 검게 물들였고, 그것은 죽은 영혼을 선명히 볼 수 있는 플루토의 눈이었다.

이것은 아내가 내게 넘겨준 권능 중 하나였다.

주변을 둘러본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과연 선영이의 말대로구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아슈타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래에선 어디로 가냐고 외치는 미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일부러 무시한 채 아슈타르가 있는 허공에 도착했다.

때마침 나를 발견한 아슈타르가 차가운 눈을 빛냈다.

[으하하! 너도 싸우러 온 것이더냐!]

"……."

나는 냉랭한 시선으로 말없이 아슈타르를 응시했다.

검게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압도당하는 듯한 기운을 느낀 아슈타르가 순간 멈칫했다.

눈앞에 나타난 이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녔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릴리스와 아스모데우스도 화들짝 놀라서는 아슈타르와 내게서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네가 저렇게 만들었더냐."

[하?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걸.]

"저 아래에 내 40년 지기 친우의 목이 잘려서 죽어있다. 네가 저렇게 만들었냐고 묻는 거다."

[아아, 그 녀석이라면 내가 그런 게 맞다. 근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큭큭. 네가 대신 복수라도 하겠다는 거냐?]

아슈타르의 첫 번째 얼굴이 거들먹거리며 말하자, 순간 이마에 힘줄이 크게 치솟았다.

그 순간 내 신형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천둥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아슈타르의 뒤를 점하며 그의 등을 뒤돌려차기로 후려쳤다.

쩌엉!

[크윽!]

또 한 번 천둥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이며 나타난 나는 이번엔 비, 벼락, 바람을 차례대로 부리며 그를 사방에서 난도질했다.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 앞에 아슈타르는 신음 한번 내지 못하고 곳곳에서 들이닥치는 공격을 막기 바빴다.

잠시 뒤 아슈타르의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공격이 멈추었다.

"흥."

[감히 이 몸을 비웃는 것이더냐…!]

아슈타르의 신형이 사라지며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재빨리 등 뒤에 메고 있던 검은 식독검을 꺼내 교차해 내리 꽂히는 그의 쌍검을 막았다.

쿠웅!

어마어마한 거력이 검 너머로 느껴지며 주변으로 파동을 퍼트렸다.

그러나 아슈타르는 내가 너무도 손쉽게 공격을 막자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는 찢어진 검은 망토와 검에서 흘러나오는 귀기 어린 기운을 꿰뚫어 보고는 크게 기함했다.

[너, 너는…!]

"네놈은 오늘 내 손에 죽는다."

나는 천천히 아래를 훑고, 다시 눈앞의 아슈타르에게 말했다.

"우선 그전에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

그 말과 동시에 목에 건 크로노스의 회중시계가 하얀빛을 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