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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56화 (35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56화

제356화

한편, 나는 아이올로스와 함께 밀려드는 죽음의 군단을 피해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었지만, 아이올로스는 내 옆에서 유유히 바람을 운용해 따라붙을 뿐이었다.

바로 뒤에서는 거대한 소의 몸체에 커다란 박쥐 날개를 가진 2군단장 '발라크'가 뜨거운 청염을 주변으로 불사 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허허, 잘못하면 구이가 되겠구나. 근데 어째 처음 보는 놈인데."

그것은 마치 언젠가 보았던 나태의 마왕 옥염의 벨페고르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참고로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여러 화염에 대해 내성이 있다고 해도 일부러 맞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유선영의 말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발라크는 군단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지난 라그나로크 전쟁에서는 없었으니 처음 보는 것일 수밖에요. 아무래도 좀 호전적인 성격이다 보니 난폭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해요. 괜찮으면 한번 싸워보는 게 어때요?]

"끙. 말이 쉽지. 바람은 화염에 상극이라서 덤볐다가는 죽고 말 거요. 난 지금 바람의 힘을 대부분 잃은 상태인데 어떻게 싸우겠어. 난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다짜고짜 아이올로스가 찾아와서는 이번엔 바람의 비각술을 수련하자고, 그것만 써서 싸우라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어이없는 건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2군단장 발라크가 냅다 솟구쳐서는 "네가 가진 화염의 힘이 남다르니 나와 한 번 붙어보면 좋겠구나!"라는 개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난 바람으로 싸워야 하는데, 다짜고짜 화염 대결을 해보자고 덤벼드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발라크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있다.

"어서 네놈의 화염을 꺼내지 않고 뭐하느냐!"

발라크가 냅다 입에서 진득한 청염을 뿜어댔다.

"윽, 이런 미친놈을 봤나."

나는 더 이상 도망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녀석에게 공격을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는 깊은 곳에 자리한 심장에 녹아든 바람의 마력을 천천히 끌어올….

[가지고 있는 바람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바람을 운용할 수 없습니다.]

…리지 못했다.

"끙."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아이올로스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뜸 물었다.

[호오, 그대는 심장에 바람을 담아두고 운용을 하는 건가? 신기하게 바람을 쓰는구만? 바람의 레시피를 이용해 요리를 먹었다면 아예 체질적으로 바람을 만질 수 있게 될 텐데, 굳이 왜 그랬지? 심장에 바람을 담아두면 제한이 많을 텐데 말이야. 알렉서스가 500년 산 아이올리아를 남겨두었다던데 그걸 먹지 않은 건가?]

그렇게 말한 아이올로스가 대뜸 저 멀리 있는 알렉서스를 힐끔 바라보았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

그리고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당장 뒤에서 발라크가 날아오고 있기도 했고, 당신 딸이 훔쳐 먹었으니까 책임지라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놈! 도망만 칠 것이냐!"

갑자기 공중에 떠오른 발라크가 입에서 여러 개의 푸른 불 구슬을 만들어내더니, 날갯짓과 동시에 불 구슬이 퍼져나가며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다시 혼비백산하면서 피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이올로스에게 소리쳤다.

"…렸어!"

[뭐라고?]

"당신 딸이 먹어버렸다고!"

[허어, 그래? 내 딸이 그 귀한 500년 된 아이올리아를 먹었단 말이지.]

그런데 아이올로스는 예상 외로 침착한 얼굴이었다.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바람의 신수라서 그런지 바람처럼 자유로운 인물 같았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아직 아이올리아를 다 소화시키지도 못 했겠구만. 성장 속도가 내 예상보다 무척 빠를 것 같은데….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 한 번이면 갑자기 내 자릴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어. 허허, 이것 참….]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눈앞에서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뭐하는 거야.

"그러고 있지 말고 뭐라도 방법을 좀 찾아봐! 나 지금 바람의 힘을 못 쓴다고!"

[허어, 속에 쌓인 화가 많은 인간이로군. 쯧쯧. 저래서야 바람을 다뤄봤자 난폭해질 뿐인데.]

"끙, 잔소리만 할 거면 저리 꺼져!"

[허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좋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그대의 심장에 비어 있는 바람의 마력을 채워주면 될 뿐이지.]

다음 순간. 아이올로스가 갑자기 내 등에 손바닥을 살짝 대더니, 가공할만한 바람의 마력이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슈슈슈슛!

"……!"

[힘을 빼라.]

나는 잠깐 놀랐지만, 가만히 아이올로스의 말처럼 온몸의 힘을 뺐다.

그리고 잠시 후. 순식간에 그에게서 바람의 마력을 전해 받은 나는 곧장 온몸에서 연녹색의 바람의 마력을 터트리며, 다가오는 발라크를 향해 손을 휘둘러 날카로운 바람들을 연신 쏘아 보냈다.

쉬쉬쉬쉭!

"헛!"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광풍의 속도에 당황한 발라크가 날개 곳곳이 찢겨진 채 땅으로 추락했다.

콰아앙!

검은 먼지가 자욱하게 휘날리며 작은 지진이 일었다.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은 나는 순식간에 두 다리에 '칼바람'을 운용해 발라크를 향해 날았다.

***

유니온 본사, 모니터링 실.

유민석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갑자기 연달아 터져버린 사건 사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사건이었고, 대처하기가 무척이나 곤란했다.

갑자기 침입한 의문의 바이러스가 유저들을 로그아웃시키려 시도할 때마다 강제로 막아섰기 때문이다.

회사 내의 최고의 자질을 갖춘 차진철이 말하길, 침투한 바이러스는 마치 의지를 가진 존재 같다고 하였다.

살아 있는 것 같은 이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유니온의 게임 프로그램들을 모조리 알고 덤비는 듯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이걸 해결하기 위해선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강재성 박사가 가진 '마스터키'뿐이라는 것이었다.

유민석은 곧장 이석준의 지시로 강재성 박사가 있다는 재성 병원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부드럽게 미끄러진 세단이 붉은 노을을 등지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현재 도로는 엄청나게 막혔는데, 이것 또한 갑작스레 발생되어 버린 오류 탓이었다.

아크스타를 하던 대부분의 유저들이 모두 캡슐에 갇혀서 나올 수가 없으니, 가족과 친척들이 몽땅 그 소식을 듣고는 지방에서 올라오느라 교통체증이 추석 귀성길을 방불케 하였기 때문이다.

"4시간이라…."

유민석이 내비게이션에 찍혀 있는 도착 시간을 보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핸들을 양손으로 붙잡은 채 얼굴을 기대듯 파묻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유민석은 시간을 보낼 겸 라디오를 틀었다.

-현재 아크스타에서 이뤄진 사상 최대의 인질극에 전 세계의 정부가….

치지직.

곧장 다른 채널로 돌렸다.

-얼마 전, 프랑스의 흑장미라 불렸던 루이 카셀이 캡슐 내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이번 사상 최대의 인질극을 벌인 유력한 공범 중 한 명으로서, 프랑스 당국은 사망한 루이 카셀의 죄를 물어 전 재산을 환수할 것이라는 강고한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탁.

유민석이 그냥 라디오를 꺼버렸다.

다른 생각이나 좀 하려고 했다가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이럴 거면 틀지 말 걸.

"사상 최대의 인질극이라…."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왜 유피테르가 마왕과 손을 잡은 것인지, 갑작스레 침투한 바이러스가 유니온의 전산망을 마비시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원인 또한 불명이었다.

유니온은 지금 벌어지는 사상 최대의 인질극에 절대로 책임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이건명 때문이 아닐까 추측은 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에 죄를 물을 수조차 없었다.

이미 사망한 유저들의 가족에겐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아."

유민석은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신랑이었다.

이럴 때 아내인 차애리의 목소리라도 들으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것만 같았다.

잠깐의 신호음이 이어지고, 약간의 걱정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그 목소릴 듣는 순간. 유민석은 하마터면 눈물을 쏟아낼 뻔했다.

"별일 없지?"

유민석은 목이 메었지만, 일부러 아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래야만 했다.

***

최강현의 집.

최춘택의 첫째 아들 최강현은 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가장 먼저 병원을 닫고 달려온 장본인이었다.

이어서 장 보러 나갔던 아내인 김미경이 왔고,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대통령령이 선포되어 잠정적으로 휴교를 하게 되었다는 최정도가 다음으로 집에 도착하였다.

세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안방으로 향했고, 그곳에 있는 두 캡슐에 들어와 있는 불빛을 보고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멍한 표정의 최강현은 곧장 둘째 최정현에게 전화했고, 다행히 그는 서희를 유치원으로 등원시키느라 천만다행으로 게임에 접속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최강현은 곧장 사정을 설명하고 최정현을 집으로 불렀고, 이어서 전화한 곳은 막내인 최서현의 집이었다.

최서현은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곧장 온다고 하였다.

그렇게 잠시 뒤, 이곳은 초상집이 된 것 마냥 침울하기 그지없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그곳엔 최춘택의 두 아들과 막내딸.

그리고 손주와 사위가 몽땅 모여 있었다.

갑작스레 모여든 그들 중 최서현은 서럽게 흐느끼며 울기 바빴다.

"으흑, 아빠, 어떡해. 아빠!"

그리고 최강현의 아내 김미경은 딸과 시아버지를 동시에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통곡을 하다가 갑자기 진이 빠져서는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최강현이 의사였기에, 가벼운 탈진 상태임을 알아보고는 아내의 머리에 차가운 물수건을 짜내 그녀를 보살피는 중이었다.

구석현은 최서현을 품에 안은 채 연신 등을 두드려주었고, 그런 그의 반대 손엔 잠든 민찬이가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최정현은 눈물기가 메마른 사람처럼 멍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

최강현은 그런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해진 뉴스에 따르면 유니온의 캡슐은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의 생명 보호를 위해 냉동 인간에 준하는 응급 상황 대처 매뉴얼이 자동으로 작동하여 사용자의 체온을 서서히 낮춘 뒤, 최대한 죽지 않는 선에서 자동으로 생명 보존을 실시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캡슐 두 개는 그 생명 연장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다.

하나는 아버지인 최춘택의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최미도의 것이었다.

"미도야, 아버지…."

최강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생명 보존 시스템은 최대 15일까지 유지되었는데, 그 안에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유니온은 발표했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말만 할 뿐.

당장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후우."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현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최강현은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제발 15일 안에 미도와 아버지가 캡슐 안에서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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