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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53화 (35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53화

제353화

나는 죽은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음을 하늘에 감사했다.

또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기다려왔을 그녀의 노고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눈물을 쏟아내었다.

한참이나 아내를 끌어안은 채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유선영 또한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빙그레 웃음을 짓더니 나를 감싸 안고는 포근하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제야 나는 고향에 돌아온 것만 같은 안락함을 느꼈다.

무척이나 따뜻했고, 또 무척이나 그리웠던 안식이자, 또한 사랑이었다.

[남자는 늙어서도 애라더니. 당신도 예외는 아니네요?]

"크흡."

아마 지금 내 얼굴을 백무열이나 박막순이 봤다면 죽을 때까지 놀리지 않았을까.

그만큼 지금 나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꺼이꺼이 통곡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유선영 또한 웃음이 나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 또한 자신을 보고 싶었던 건 마찬가지였는지, 이내 살짝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그만 울어요. 나 어디 안 가요.]

그제야 나는 아내를 품에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당신은 왜 가이아가 아닌 플루토가 되어 있는 거고."

[설마 날 가이아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음, 사실 그게…."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 게임 속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줄여서 핵심만 얘기해 주었다.

유선영은 틈틈이 내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당신이 오해할 만했네요. 혜연이에게 당신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오해를 불러올 줄은 몰랐어요.]

"그 혜연… 아니. 가이아는 대체 이건명과 무슨 관계인 거야? 그리고 당신과 오래전부터 가까운 관계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녀를 병원에서 만났었다고?"

나는 의문을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유선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당신 정말 기억 안 나요? 내가 병원에서 아끼는 동생이라고 소개를 한 적 있었는데?]

"소개를 했었다고?"

나는 천천히 다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핏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녀와 그리 친분이 있는 관계도 아니었고, 그저 겉치레 인사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어쩐지 가이아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했더니, 진짜 내가 한 번 들어본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래. 기억나는 것 같군. 근데 어떻게 그녀도 이곳에…?"

[혜연이가 가이아가 되고 내가 플루토가 된 건….]

유선영이 살짝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혜연이를 가이아로 만들기 전, 먼저 안전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를 플루토로 만들어 실험을 했던 것이었어요. 내가 성공하자 혜연이 또한 가이아로 의식을 이식하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우리 두 사람, 아니. 이건명을 포함해 세 사람은 게임 속에서 오랜 세월 우정을 쌓아왔었어요.]

그제야 나는 아내가 플루토가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진 것이다.

[강재성 박사는 만났죠?]

"만났지. 이곳으로 가면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아! 그러고 보니 아틀란티스에 마왕들의 습격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무사할지 모르겠어. 걱정이군."

[괜찮을 거예요. 그 또한 태초의 3신 중 하나이니까요. 바다에서라면 이건명이나 나도 그를 당해낼 수 없어요.]

"하긴 그렇긴 하지."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그 뒤 계속해서 강재성 박사와의 인연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그것은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고 한다.

당시 강재성은 명계로 찾아와 이건명에게 쫓겼고, 아내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이아가 된 한혜연이 언젠가 찾아올 알렉서스의 후인을 위해 두 가지 안배를 해두었다.

알렉서스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게임에 접속하거나, 알렉서스의 정통성을 잇는 또 다른 날씨 요리사가 나타난다면 곧장 일곱 별이 뜬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강재성은 그렇게 당시 마스터키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아내에게 말해주었고, 두 사람은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해 대륙 곳곳에 다양한 약속의 비석을 세워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그 안배는 모두 내가 누리게 되었고 말이다.

"복잡해서 뭐가 뭔지 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그저….]

드드드드-!

바로 그때. 유선영의 낯빛이 굳었다.

나는 명계를 뒤흔드는 지진의 정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Wolrd. 창조와 파괴의 신, '가이아'의 부활까지 앞으로 15일 남았습니다.]

나도, 그리고 아내인 유선영도, 메시지를 접하는 순간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바였는지 태연하게 냉정을 되찾고 내게 말했다.

[혜연이가 부활하기 전에 꼭 그 남자를 막아야 해요. 아니면 정말 큰일이 나고 말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꼭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하지만 난 힘의 일부를 이건명에게 빼앗기고 말았는데 어떻게…."

"그건 내가 도와주겠소."

내 말을 중간에 가로챈 것은 아까 함께 이곳에 왔었던 정체불명의 남자였다.

그는 아내의 옆에서 잠자코 있다가 앞으로 나서더니, 덮어쓰고 있던 로브를 뒤로 젖히며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놀라며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하마터면 다리가 풀리며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당신은…?"

* * *

그때쯤 아틀란의 수도 메테우스의 상공엔 거대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먹구름은 천둥 번개를 동반하였다.

우르르 쾅쾅-!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고, 아까 전 가이아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받은 직후였기에, 혼비백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저기 좀 봐!"

"구름 뒤에 커다란 그림자가 있어!"

"대체 저게 뭐야!"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헤스페리데스에서 권능을 이용해 하늘을 조종하고 있던 이건명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빛과 하늘의 신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그에게 이런 것쯤은 무척이나 손쉬운 것이었다.

[인간들은 들어라. 나는 빛과 하늘의 신이자 태초의 3신 중 하나인 유피테르다.]

"시, 신이다! 유피테르께서 노하셨어!"

그 말과 동시에 아틀란은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누군가는 경외를, 또 누군가는 공포에 잠긴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런 인간들을 무시하듯 유피테르의 노기 띤 음성이 이어졌다.

그것은 먹구름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너희들에게 항복할 기회를 주겠다. 앞으로 일주일 뒤, 마왕들과 마족들이 그리로 가게 될 것이다. 반항하지 않고 투항한다면 목숨을 살려줄 것이나, 반항한다면 가차 없이 너희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겠다. 나 유피테르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살고 싶다면 조용히 투항하라.]

때마침 인간들을 향해 연설 중이었던 헤카티아나의 얼굴에도 작은 긴장이 어렸다.

다행히 유피테르가 직접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후에라와 카디야의 얼굴이 스쳤다.

헤카티아나는 이를 악물며 그녀들의 복수를 하리라 다짐했다.

유피테르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딱 일주일이다. 그때 항복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유피테르의 선언은 많은 이들의 공포심을 유발 시켰다.

동시에 헤카티아나의 마음속에서도 잠시지만 두려움이 일었다.

유피테르는 이어서 말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도망치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나의 벼락을 맞고 반드시 죽음에 이르고 말리라. 믿기지 않는다면 도망쳐도 좋다.]

쿠구구구!

그와 함께 유피테르로 추정되는 먹구름의 그림자가 번쩍이며 물러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메테우스는 정적에 휩싸였고, 그때. 누군가가 겁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도, 도망쳐야해! 여기서 얼른 도망쳐야 한다고!"

그는 메테우스의 성문을 지키던 평범한 젊은 병사 중 한명이었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는 무척이나 겁에 질려 있었다.

아직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헤카티아나는 신의 반열에 올랐기에, 그런 작은 외침조차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놀란 헤카티아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 그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병사는 메테우스의 밖을 나서고 있었고, 그것은 그가 외성을 지키는 경비병인 탓에 차마 말릴 틈이 없던 탓이었다.

그때 함께 입구를 지키던 병사가 그에게 소리쳤다.

"이, 이봐! 도망치지 말란 말 못 들었…!"

콰릉-!

바로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메테우스의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문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도망치던 병사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죽었고, 어느 누구도 방금 전 그것이 신의 힘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병사들이 겁에 떨자, 헤카티아나는 이를 악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이곳을 보호하며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 * *

헤스페리데스, 황금 사과나무 정원.

같은 시각.

이건명은 검게 물들어가는 황금 사과나무 앞에서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도망치는 인간 병사 하나에게 벼락을 내리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내렸다.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공포감을 심어주며, 그들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음?]

그러던 바로 그때.

눈을 감고 하늘에서 메테우스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건명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어렸다.

그것은 갑자기 발동된 보호막이 메테우스를 둘러싼 탓이었다.

고고한 달의 마력이 흐르는 것을 보면 아마도 헤카티아나의 짓인 듯했다.

[어디로 도망갔다 했더니 이런 곳에 있었구나. 요망한 계집.]

이건명은 그녀의 보호막을 부술 수는 있었으나, 현재 가진 신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직 제 힘을 다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두 여신들과 밤낮으로 치열하게 싸웠으니,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는 탓이었다.

나중에 가이아의 힘을 흡수할 때 그것은 어떤 변수가 될지도 몰랐다.

어차피 인간들에게 항복을 권유했으니, 가벼운 경고 정도만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콰쾅! 콰콰쾅!

이건명은 보호막에 닿지 않는 선에서 위협 사격을 가하는 군인처럼 수십 개의 벼락을 메테우스의 주변으로 동시에 내리쳤다.

메테우스의 주변은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 요동쳤다.

이건명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의식을 거두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그들에게 경고가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이미 보호막도 있으니, 도망치는 인간 또한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일주일 뒤에 마왕군을 보내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메테우스에 있는 유저들을 꼭 생포해야 한다는 것.

그들은 지금의 이건명에게 든든한 방패막이이자,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인질들이었다.

더불어 그들이 있어야 플루토의 힘을 가진 그녀가 쉽게 인간계로 올라오지 못하리라.

'유선영.'

이건명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루시퍼.]

[예. 주군.]

[일주일 뒤에 메테우스로 마족들을 이끌고 진격한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불사의 인간들은 가급적 생포해야 한다. 그래야만 플루토가 함부로 인간계로 넘어오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항한다면….]

[…그땐 희생이 조금 따르더라도 상관없다. 그래도 다 죽이진 않고 일부는 생포할 순 있겠지?]

[그 정도는 충분합니다.]

이건명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에 있던 루시퍼가 연기처럼 사라지자, 이건명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다시 시선을 내려 뒤편에 자리한 황금 사과나무를 보았다.

황금 사과나무는 아까보다 훨씬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는데, 아까 떴던 메시지에 따르면 15일이 걸린다고 했다.

정확히 15일 뒤면 뿌리 끝까지 내려가, 그 아래에 잠들어 있는 가이아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가 깨어나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웅.

이건명의 손끝에서 검붉은 기운이 아른거리며 0과 1의 숫자가 피어올랐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다양한 숫자가 용솟음치는 그것은 마치 이곳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죽은 장 박사가 만들어낸 것이 다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군.]

이건명의 검붉은 손끝이 천천히 나무 쪽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검붉은 스파크가 튀며 이건명의 팔을 옭아매었다.

동시에 손을 대었던 나무는 녹색의 데이터로 변해 온통 0과 1 투성이가 되었다.

[하하하. 장 박사가 저승에서 아주 좋아하겠구만. 전부는 아니지만 강재성의 마스터키를 일부 복제하는데 성공하다니 말이야.]

장 박사는 강재성과 더불어 함께 아크스타를 공동으로 개발했던 이였다.

이건명은 비밀리에 그에게 마스터키의 복제를 지시했고, 그는 전부는 아니지만, 가이아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스터키를 일부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라그나로크 전쟁 때 가이아가 플루토를 공격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건명은 만족스런 기색으로 천천히 의식으로 나무뿌리에 있을 가이아를 훑었다.

검붉은 기운은 그런 가이아를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했고, 다행히 이건명이 느끼기에도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는 다시금 희색을 드러내며 웃었다.

가이아를 부활시키더라도 통제할 수 없다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계획에는 차질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건명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천천히 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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