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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49화 (34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49화

제349화

"당신은…."

나는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바로 앞에 있는 노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분명 이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튜토리얼에서 만난 노인이었다.

가이아의 명도에 살고 있던 그 기괴한 목소리의 주인.

나를 일곱별의 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들뿐이었다.

"살아 있었…."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뵙게 되는군요."

눈앞의 노인이 또 다시 자신에게 부복하려 하자, 나는 재빨리 그의 어깨를 붙잡고 그러지 말기를 간청했다.

노인은 살짝 눈웃음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다른 이의 소식을 물었다.

"프시케라는 아이는 어찌 되었나."

"그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때 시공의 결계가 무너질 때 저는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그 아이는 나오지 못했지요. 제가 이렇게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실은 그 아이 덕분입니다. 제가 빠져나갈 때 프시케가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오지 못 했을 겁니다."

"…그랬구만."

나는 살짝 그녀를 떠올리며 속으로 애도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냉정을 되찾으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이 시간의 바다란 곳인가?"

"그렇습니다. 이곳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드리자면…."

눈앞의 노인이 다시금 장황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우선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강재성이 말한 것처럼 그와 플루토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약속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이곳은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고 했으니, 지금의 나는 선택받은 자가 맞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을 가이아가 예상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분은 모든 존재의 가장 위에 계신 분. 지고한 존재인 그분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시어 지금의 상황을 예측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안배를 남기셨지요. 이젠 성좌도 아닌 제게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기신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 그의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좌였다고? 자네가 말인가?"

내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전해 받은 기억에 눈앞의 존재와 같은 성좌는 없었다.

그런 그가 성좌였다고 하니 당연히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인사가 늦었군요. 전 '시간의 파수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시계 성좌. 이제는 잊혀져 버린 과거의 이름은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 * *

아틀란 해, 한복판.

이건명과 네 여신의 싸움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신들의 싸움은 어마어마한 파장과 굉음을 낳았다.

후에라가 만들어낸 바람은 태풍이 되어 바닷물을 머금었고, 쓰나미를 만들어내 사방을 떨게 만들었다.

카디야가 불러낸 차가운 혹한은 바다를 빙하로 만들어낼 지경에 이르렀다.

마야가 그런 두 여신을 보조하였고, 헤카티아나는 마법을 관장하는 여신답게 각종 속성 마법들과 고위 마법들로 유피테르를 몰아붙였다.

헤카티아나는 네 여신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기에 주로 한 방을 노리며 유피테르의 빈틈을 노리는 중이었다.

[제법이다만 이것도 버틸 수 있을까?]

이건명이 양손에 벼락의 힘을 끌어모아 눈앞의 여신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다수의 벼락들이 산개하여 여신들에게 달려들었다.

[다들 피해!]

카디야의 외침과 동시에 다른 여신들이 재빨리 벼락을 피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건명이 노리는 건 딱 한 명이었다.

애초부터 이 공격은 그녀를 노리기 위한 것이었다.

[마야!]

후에라의 외침에 다른 여신들도 그제야 마야가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꺄아악!]

번쩍이는 백광과 함께 마야가 비명을 지르며 까맣게 피부를 태운 채로 아틀란 해 바닷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다.

이로써 그녀의 생사는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당장 그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려 했던 헤카티아나의 앞을 유피테르의 벼락이 막았다.

[어딜 도망가느냐.]

[어찌 이리 변하셨나요.]

[난 원래 이랬었다. 헤카티아나. 너희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지.]

[그런….]

이건명이 이죽거리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벼락을 치웠다.

그리고는 눈웃음을 머금은 채로 살벌한 말을 그대로 토해냈다.

[갈 테면 가보아라. 대신 내 벼락이 바닷가에 떨어진다면 너희들이 무사할진 나도 장담 못하겠구나.]

그런 유피테르의 말에 여신들은 이를 악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바닷가에 벼락이 떨어진다면 어마어마한 감전과 마비가 이루어져 그대로 안에서 익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헤카티아나의 머릿속으로 카디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긴 나와 후에라가 맡을 게. 넌 여기서 도망가.

그것은 유피테르도 듣지 못하는 오직 헤카티아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헤카티아나 또한 카디야의 머릿속으로 말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나보고 너희들을 두고 도망치라는 말이야?

- 여기 있는 우리 넷 중 네가 가장 인간들을 지키기에 적합해. 너는 마법의 여신이니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전멸이야. 너라도 살아 있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 그렇게는 못 해!

헤카티아나가 떼를 쓰는 아이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시선이 후에라에게 닿았다.

후에라 또한 이미 체념했다는 듯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헤카티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기만 했다.

그때, 다시 카디야의 말이 이어졌다.

-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지금 우리가 길을 열겠다. 어서 도망쳐. 그리고 인간들을 부탁해. 북극에 있는 아이들도 가능하다면 부탁하지. 유피테르가 강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힘을 되찾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서둘러.

그렇게 말한 카디야가 허공으로 떠올라 후에라와 함께 손을 잡으며 합동 공격을 준비했다.

바람과 눈이 만나 날카로운 눈폭풍이 이건명의 시야를 가렸다.

이견명이 그것을 흩어보려 하였지만, 생각보다 그들의 힘이 강해서 이건명의 힘만으로도 그것을 풀 수 없었다.

[재밌구나. 이것도 막을 수 있나 볼까.]

이건명의 날카로운 벼락 창이 거대한 눈폭풍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벼락의 창은 눈폭풍에 휘말려 하나로 합쳐져버렸다.

[……!]

이건명이 놀라는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가진 신력을 몽땅 소모해서 만든 것인가. 최후의 발악인가보군. 좋다. 너희들의 장단에 놀아주마.]

이건명 또한 가진 신력을 천천히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과연 태초 신의 신력은 그 양과 질이 남달랐다.

후에라와 카디야도 지금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 예상하였다.

아마 버티어 살아남더라도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버는 것이 고작일 터.

[어서 가야 한단다! 헤카티아나!]

[가! 가서 인간들을 지켜! 네 힘이라면 할 수 있을 거다!]

[난, 난….]

헤카티아나가 떨리는 눈동자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마침내 카디야와 후에라의 합동 공격이 유피테르를 향해 뻗어 나갔다.

강대한 바람과 거센 눈발을 동반한 날카로운 고드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헤카티아나는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

[반드시, 반드시 너희들의 복수를 해줄게. 미안해. 얘들아…. 미안해….]

그리고는 헤카티아나가 손을 튕기더니 마침내 신형을 감추었다.

그녀는 공간이동을 이용해 알 수 없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었다.

물론, 이건명도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잠자코 볼 수밖에 없었다.

헤카티아나에게 손을 쓰기엔 지금 다가오는 공격이 제법 매서웠다.

[고얀 계집들 같으니. 내 너희들을 당장 명계로 보내주겠다. 죽어라!]

이건명의 벼락과 두 여신의 눈 폭풍이 다시금 서로 맞부딪혔다.

그 처절한 싸움에 잠시지만 바다가 갈라지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 * *

한편, 그때쯤 나는 크로노스의 안내를 받으며 눈앞에 있는 검은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당연히 배를 타는 것이었고, 배는 크로노스가 마법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마법으로 만든 배라 그런지 배는 노를 젓지 않음에도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적적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것은 그가 과거 성좌였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겁니다."

"그랬었구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크로노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는 과거 라그나로크에서 성혼에 커다란 타격을 입어 죽음 직전까지 갔었던 성좌 중 한 명이었다.

그가 가진 시간의 힘은 무척이나 강력했기에 플루토 또한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힘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놀라운 건 크로노스 또한 플루토를 적이 아닌 아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가이아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대신 젊었던 외모는 보다시피 부작용으로 폭삭 늙어버렸다고 한다.

"자네도 플루토를 적이 아닌 아군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저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까지 그분을 적으로 생각하고 죽었을 겁니다."

"으음…."

그의 말에 나는 더욱 복잡한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진실이 무엇이기에 그조차 플루토를 감싼단 말인가.

"자, 이제 도착했습니다."

문득 잘 가고 있던 배가 멈추자, 크로노스는 뒤를 돌아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짓고는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더 꺼내었다.

"성혼이 파괴되기 직전이었던 제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건 부서진 스타피스 덕분이었습니다."

"부서진 스타피스라고?"

"그리고 마침 부서진 제 스타피스의 또 다른 조각을 당신께서 가지고 계시군요. 라그나로크 때 잃어버렸는데, 아마도 가이아 님이 도우시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인벤토리가 열리더니, 웬 화살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언젠가 비스트 마스터 녀석과의 일전에서 얻었던 [시간의 화살]이라는 것이었다.

"이제야 제게 시간이 허락된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이제 저는 안식에 들 수 있겠군요. 부디 가이아 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길…."

그 말과 동시에 크로노스의 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작은 회중시계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때, [시간의 화살]의 날카로운 화살촉이 뚝!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런 회중시계에 자석처럼 착 달라붙었다.

알고 보니 화살촉인줄 알았던 그것은 시침이었고, 마침내 멈춰있던 회중시계가 째깍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던 크로노스의 시간이 마침내 움직이는 것이다.

째깍! 째깍!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는 마치 자신을 부탁한다는 것처럼 내 앞에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런 회중시계를 허공에서 붙잡았다.

[★스타피스,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머쥠과 동시에 눈앞에 있던 검은 바다가 솟구쳐 오르더니, 거대한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검은 파도의 정면엔 황금색 회중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쓰나미에 몸을 맡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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