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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46화 (34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46화

제346화

"그게 무슨…?"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아내분은 가이아가 아닙니다.]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함과 동시에 모든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홀로 동떨어진 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훑는 것 같았다.

흐르는 정적을 깨트린 것은 함께 있던 조셉이었다.

"형님. 정말 어르신의 아내분이 가이아가 아닙니까?"

[그래.]

"그럼 어르신의 아내분은 대체…."

이어지려던 조셉의 말은 오래지 않아 끊기고 말았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클리메네가 분주하게 헤엄쳐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해 보였고, 강재성은 곧장 주변을 둘러싼 보호막을 해제했다.

[무슨 일이냐.]

[헤커트들이 아틀란티스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어요.]

[헤커트들이 결계를 뚫었단 말이냐?]

[네. 그들에겐 강력한 헤커트들의 여왕이 있었어요. 그리고 헤커트들의 힘도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구요. 그리고 아까 함께 있던 하스트랑… 아니, 레비아탄까지 가세하니 막을 수 없었어요. 지금 데우칼리온이 병사들을 독려해 막고는 있지만 역부족이에요.]

[알았다. 곧 뒤따르마. 먼저 가 있어라.]

[네.]

그렇게 클리메네가 다급하게 헤엄쳐 사라졌다.

강재성은 다시금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프로메테우스를 보았다.

프로메테우스가 움찔거렸는데, 녀석이 저렇게 긴장한 모습은 나도 처음 보았다.

[네 녀석이 못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력에 도움은 줄 수 있을 테지. 가서 클리메네를 도와라.]

[예? 전 불의 신이라, 바다에서 힘을 못 쓰는….]

[그래서 못 하겠다고? 반항하는 거냐?]

[아, 아니, 그게…. 다녀오겠습니다. 장인어른!]

프로메테우스가 부리나케 도망치듯 밖으로 향했다.

강재성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하여간 저 놈팡이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니까.]

"하하하…."

조셉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아까 들었던 강재성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 내 머릿속엔 온통 그 말밖엔 없었다.

'아내는 가이아가 아니다'라는 말.

그렇다면 아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고 강재성이 말하지 않은 진실엔 어떤 것이 있는 걸까.

이쯤 되니 두려움이 덜컥 들었다.

강재성의 입에서 감당하지 못할 진실을 들을까 두려워서였다.

"…여보."

그런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강재성이 재빨리 나와 조셉에게 말했다.

[우선 전 아틀란티스를 구하러 가야겠습니다. 그 전에….]

강재성이 손짓을 하자 거센 물보라가 시계방향으로 돌더니, 기다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두 사람 크기의 소용돌이가 궁전의 천장을 뚫고 이어졌다.

후두둑 떨어지는 천장의 잔재가 땅으로 떨어졌고, 뻥 뚫린 천장을 올려다보던 나와 조셉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클리메네한테 또 혼나겠지만, 사안이 사안이니 어쩔 수 없겠죠.]

강재성이 천천히 심호흡하며 말을 이었다.

[이걸 타고 밖으로 나가십시오. 뒷문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동생아.]

"네."

[네가 갔었던 그 비석은 나와 플루토의 약속을 담은 비석이다. 비석은 그 징표라고 할 수 있지. 그곳으로 어르신을 데려가라. 그리고 어르신.]

"……?"

[모든 진실은 그곳에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말에 내 얼굴엔 작은 결기가 어렸다.

나는 강재성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나는 곧장 강재성이 만들어준 소용돌이 통로의 입구에 올라섰다.

소용돌이는 작은 터널처럼 끝을 모를 정도로 이어져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그래. 미성이는… 잘 지내냐?]

어느새 강재성의 얼굴은 여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신으로 살아왔음에도 그는 현실 세계에 두고 온 여동생을 먼저 걱정했다.

그는 넵튠이라는 신이기 이전에 인간 강재성이자, 한 여동생의 오빠였다.

"잘 있고 말구요. 그리고 저 쌍둥이 낳았어요."

[오, 그래? 널 닮으면 안 되는데 말이야. 하하하!]

"당연히 미성이 닮았죠. 얼마나 귀여운데요. 다녀와서 사진 보여드릴게요."

[그래. 얼른 다녀와라.]

"네."

[아, 어르신.]

"……?"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을 제게 잠시 빌려주시겠습니까?]

"포크 숟가락을?"

나는 묻지도 따지지 않고 그에게 포크 숟가락을 건네주었다.

애초에 그가 나쁜 사람도 아닐뿐더러, 아군이라면 이상한 곳에 쓰지 않을 거라는 두터운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마 어딘가에 쓸 곳이 있는 거겠지.

[감사합니다. 나중에 돌려드리지요. 그럼.]

강재성이 합장하듯 박수를 침과 동시에, 물살이 내려앉으며 입구가 가려지더니, 순식간에 나와 조셉을 공중으로 데려갔다.

우리들은 소용돌이 터널 속을 회전하듯 미끄러지며 빠른 속도로 비석이 있다는 곳으로 날아올랐다.

* * *

유피테르를 비롯한 네 여신들이 이동한 곳은 드넓은 망망대해의 한복판이었다.

그들은 신이었기에 허공에 뜨는 것쯤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쉬운 것이었고, 유피테르는 주변을 슥 둘러보며 뒷짐을 지며 말했다.

[괜한 짓을 했구나. 헤카티아나.]

유피테르의 모습을 한 이건명의 말에 헤카티아나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가요. 당신의 목적은 뭐죠?]

[글쎄. 내가 그걸 이야기해준다고 해서 너희가 그것을 이해할 것 같진 않군.]

후에라, 카디야, 마야, 헤카티아나.

네 명의 여신들이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유피테르의 말을 들었다.

이건명은 그런 네 여신들을 한 명씩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인간을 믿나?]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다. 인간을 믿느냐는 말이다.]

[당연히 믿죠. 그건 신으로서 당연한 책무….]

[뭐가 그리 당연하다는 거냐.]

[…….]

갑작스러운 유피테르의 말에 헤카티아나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것은 다른 여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헐벗고 굶주린 인간들이 기도를 하며 신을 찾을 때, 도와달라며 소리를 칠 때 너희들은 뭘 했지? 너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유피테르의 말을 듣던 카디야가 말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우리들이야 그렇다 쳐도 당신이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닐 텐데요.]

[…….]

[왜냐면 당신도 우리와 같은 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라고 인간계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안 한 게 아니라 하지 못한 겁니다. 그건 당신도 잘 알 텐데요.]

날카로운 카디야의 말에 느닷없이 말을 듣던 이건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우습죠?]

미간을 찌푸리는 카디야의 물음에 이건명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한때. 난 인간이었다.]

네 여신들이 동시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건명의 말이 이어졌다.

[얼마 전까지 난 너희들이 불사의 인간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살았지. 그곳은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네 말대로 이곳 세상은 신이 있지만, 그곳은 없었지.]

이어지는 충격적인 대답에 네 여신들이 모두 입을 살짝 벌렸다.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들어주는 이 하나 없었다. 구원을 바라고 기도해도 듣는 이 하나 없었다. 어떤 곳은 생과 사의 경계를 이웃집처럼 넘나드는 곳도 있었다.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모종의 정치는 선량한 이들을 전쟁터에서 희생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신 따윈 없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불치의 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를 봐야만 하는 한 인간의 슬픔을 너희들이 아느냐?]

네 여신들은 숨죽인 듯 유피테르의 말을 들었다.

회한에 젖은 이건명의 눈가엔 약간의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척이나 하얀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했다.

그는 천천히 다시 눈을 뜨며 네 여신을 바라봤다.

[나는 결심했다. 그렇다면 이 모순 가득한 현실을 부숴버리고, 내가 만든 이 세상의 신이 되기로 말이다. 모든 인간들을 발아래 무릎 꿇리고 내가 그들의 신이 되는 것이다. 강한 힘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질서요. 곧 평화다.]

그 순간. 이건명의 눈앞에 메시지 한 줄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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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의 첫걸음은 너희들의 피로 시작될 것이다.]

이건명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후에라, 카디야, 마야, 헤카티아나가 동시에 흠칫거리며 전투태세에 임한 듯 눈을 빛냈다.

눈앞의 유피테르에게서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힘이 뿜어져 나온 탓이었다.

* * *

헤스페리데스, 황금 사과나무의 정원.

"안…돼…."

라레투사가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황금 사과나무를 향해 손을 뻗으며 안타까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그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황금 사과나무는 아예 까맣게 변색 되어 천천히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라레투사는 허망한 눈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신성한 나무가…."

그런 그녀의 곁엔 아이글레와 에리테리아가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죽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피를 많이 흘려 기절을 한 것이었다.

저 너머에는 이미 죽은 라돈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이글레와 에리테리아는 지금 당장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크흑, 얘들아…."

라레투사가 절망 어린 시선으로 자매들을 바라볼 무렵.

사라진 황금 사과나무의 앞엔 루시퍼와 네크론이 함께 서 있었다.

둘은 메테우스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공간 이동을 통해 이곳 헤스페리데스로 넘어와 습격을 했는데, 처음엔 제법 저항도 거세고 결계도 단단해 애를 먹었지만 역시나 세 자매는 루시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루시퍼는 곧장 네크론에게 황금 사과나무를 찾으라고 지시하였고, 네크론은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찾아내는데 열을 올렸다.

루시퍼는 그런 네크론에게 판도라의 힘을 이용해 나무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하였는데, 네크론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황금 사과나무를 천천히 검게 물들였다.

이 나무를 검게 물들임으로써 죽음의 신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루시퍼가 말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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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는 네크론을 무척이나 당황케 했다.

네크론은 지금 나타난 이 메시지가 자신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네크론은 덜컥 겁이 나는 것을 느꼈다.

"뭐야. 아까 이런 말은 없었잖아!"

네크론이 옆에 서 웃고 있던 루시퍼를 돌아보았다.

루시퍼는 허공을 향해 크게 웃을 뿐이었다.

[어, 어이.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니….]

퍼걱!

네크론의 머리통이 터져버린 것은 그때였다.

"……."

이미 리치화를 마친 상태였기에 그의 머리는 온통 뼈밖에 없었다.

지금 루시퍼의 발밑에 나뒹구는 것은 그의 뼛조각들이었다.

루시퍼는 무심한 눈으로 자신의 주먹 아래에서 산산히 부서진 네크론의 잔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역할은 이제 끝이다.]

죽음의 신이 되겠다는 탐욕이 부른 네크론의 허망한 최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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