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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43화 (34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43화

제343화

신들의 거처인 천궁이 자리한 곳은 무척이나 드높았다.

최춘택은 아틀란 해 한복판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유피테르가 옭아맸던 벼락이 아직 몸 곳곳을 찌릿하게 만들었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마치 그것은 마비와도 같은 효과여서, 최춘택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그곳은 소용돌이 해협이라고 불리는 아틀란 해 3대 금역 중 한 곳이었다.

[아틀란 해의 3대 위험지대 '소용돌이 해협'에 들어오셨습니다.]

[이곳은 빠른 물살과 격류가 휘몰아치며 시공을 비트는 곳입니다.]

[해당 지역은 귓속말이 불가합니다.]

[현재 당신은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합니다.]

[1분 안에 숨을 쉬지 못하면 당신은 이곳에서 사망합니다.]

물에 들어옴과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기겁했다.

나는 황급히 헤엄을 쳐서 빠져나가려 해보았지만, 문제는 이곳이 3대 금역인 소용돌이 해협이라는 것에 있었다.

쿠오오오-!

거센 물살과 하얀 거품이 눈앞의 시야를 가렸다.

동시에 마치 납덩어리를 발목에 찬 것처럼 무언가가 자신을 바다 깊은 곳으로 끌고 가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몸이 너무 무거워.'

마치 물귀신에 잡혀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임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최춘택은 아까 전 이건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를 막아야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강재성 박사가 경고했던 것처럼 재앙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과 인연을 맺어왔던 모든 이들이, 가족이, 그리고 손녀가 위험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너무 안일했다.

"끄륵."

하지만 안타깝게도 행운은 자신의 편이 아닌 것 같았다.

최춘택은 숨을 쉬지 못한 채 갑갑함을 느끼며 입으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냈고, 동시에 눈이 뒤집히며 시야가 흐릿해져 왔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아니, 영감님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어떡합니까. 입 돌아가요."

갑자기 입에 무언가 물려 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한기가 가시며 목 주변에 무언가 생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최춘택은 천천히 숨이 쉬어지는 것을 느끼며 목을 더듬고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여긴…?"

"일어나자마자 죄송한 데 꽉 잡으쇼. 지금 쫓기는 중이거든."

"뭐? 넌 누구… 흐읍!"

갑자기 느껴지는 관성작용에 몸이 쏠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짜고짜 밑에 있는 무언가를 붙잡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언젠가 본적이 있는 것이었다.

"블라쉬?"

나는 천천히 내게 말을 걸었던 이를 돌아보았다.

토레즈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더니, 누런 금니를 하나 보이며 씩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금세 굳어졌다.

"…제길, 꽉 잡으쇼. 영감!"

콰아아아!

그 순간.

머리 위로 무언가 섬뜩한 격류가 일직선으로 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그것이 날아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기괴하게 생긴 개구리 떼 수백 마리와 문어와 악어를 합쳐놓은 것 마냥, 징그러운 괴생명체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쫓아오고 있었다.

"네 친구들이냐?"

"지금 농이 나오쇼! 쟤들이 친구로 보입니까?! 그리고 말 걸지 마쇼. 나 지금 음주운전이라 무쟈게 집중해야 하니까."

토레즈가 말 걸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적거리며, 다시 블라쉬를 조종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는 천천히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그리고는 얼마지 않아 생각이 정리되었다.

'쫓기는 중이로군.'

간단한 것이었다.

토레즈가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고, 녀석은 쫓기고 있었다.

일단은 저기 이빨 딱딱거리는 망할 물고기 놈들부터 따돌리는 것이 순서였다.

'이곳은 바다라서 태양의 힘은 쓸 수 없으니….'

나는 곧장 여의초를 꺼내 블라쉬의 꼬리 부근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뒤편에서 열심히 운전 중인 토레즈에게 소리쳤다.

"정지!"

"아니, 영감님. 언제 거기로 가셨소! 빨리 이리오쇼! 거기 있으면 죽어요!"

"멈추라고 이 녀석아!"

"……?"

토레즈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영감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하며 블라쉬를 멈추었다.

블라쉬가 투레질을 함과 동시에 토레즈가 꼬리 쪽으로 달려왔다.

"아니, 대체 어쩌려고…."

"커져라. 여의초."

쿠아아아!

손끝에서 뻗어 나간 거대한 여의초가 저 멀리 있는 가장 거대한 놈에게 닿았다.

레비아탄은 무심한 표정으로 "흥."하며 한 손으로 그것을 막았다.

[네가 바다에 떨어졌다던 그 알렉서스의 후인이구나. 바닷속에서 용케 살아남았군. 순순히 잡혀줘야겠다.]

그러면서 레비아탄이 양손으로 여의초를 움켜쥐더니, 우그러트리기 시작했다.

마치 알루미늄을 찌그러트리는 것 마냥 손쉽게 일그러진 여의초였다.

하지만 그것은 최춘택이 의도한 것이었다.

일부러 여의초를 단단하게 만들어 보내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푸화하학!

그 순간. 마치 푸딩이 터지는 것처럼 터져버린 여의초가 그대로 뭉게구름이 되어 바닷속에 녹아들었다.

그것은 마치 연막탄과 같은 효과를 일으켰고, 최춘택은 다시 토레즈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하냐. 운전대 안 잡고. 이 틈에 얼른 도망쳐야지."

* * *

그렇게 나와 토레즈는 가까스로 아틀란티스에 도착했다.

토레즈는 도착하자마자 수비를 책임지는 인어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결계를 가동해! 헤커트들이 몰려온다!"

이곳에선 꽤 힘을 쓰는 모양인지 인어들은 군말 없이 토레즈의 말에 따라 결계를 가동시켰다.

우우웅!

아틀란티스 주변을 옅은 분홍빛 반구 형태의 기운이 덧씌워졌다.

문자 그대로 보호막이었다.

"마력 살수포를 준비하라!"

수비 대장급으로 보이는 인어가 소리치자, 곧장 아틀란티스를 지키는 성벽 곳곳에서 대포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대포가 아니었고, 마력 살수포라는 이름의 거대한 레이저 총과 같은 것이었다.

지이이잉-!

대여섯 개의 마력 살수포의 끝에서 물과 마력이 뒤섞이며 모여들더니, 보호막 바깥에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마왕 레비아탄과 마기에 오염된 헤커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삐융! 삐융!

레비아탄은 분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고, 쫓아오던 헤커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축 늘어진 채 피 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연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대단하군."

레비아탄은 이를 드러내 으르렁거리더니 퇴각신호를 보냈다.

당연히 헤커트들도 함께였다.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했다. 토레즈. 여기 네가 부탁한 거.]

다가온 남자가 토레즈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은 술병이었다.

토레즈는 무척이나 귀한 보물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물었다.

"…몇 년 산?"

[30년.]

"캬, 역시 네가 뭘 좀 안다니까!"

그렇게 말한 토레즈가 신이난다는 듯 룰루랄라 거리며 뽕! 하고 마개를 따더니, 곧장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섯 모금쯤 들이키고 나서 토레즈는 "캬!" 한 마디와 함께 벌건 얼굴로 딸꾹질을 했다.

"끅! 어후, 죽인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토레즈를 힐끔 보고는 그런 토레즈에게 술병을 던진 남자를 보았다.

그는 바로 토레즈의 궁좌.

수병궁의 주인이라 불리는 데우칼리온이었다.

"오셨습니까. 왕자님."

[수비를 강화하고 만전을 기하라는 여왕님의 명이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수비대장쯤으로 보이는 인어가 고개를 숙이며 "수비를 강화하라!"하고 소리치자, 이곳엔 마치 전쟁을 방불케하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런 긴장을 깨트린 건 프로메테우스의 메시지였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헛기침을 합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기운을 느꼈는지, 데우칼리온의 시선이 나를 향해 찌릿하며 무척이나 기분 나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물론, 내가 아니라 프로메테우스에게 지은 표정일 것이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또 한 번 헛기침을 합니다.]

데우칼리온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정말이지 뻔뻔한 낯짝이로군.]

데우칼리온이 하늘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흥."하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턱짓으로 따라오라는 듯 말했다.

[여왕님께서 찾으신다. 따르도록.]

나는 천천히 그런 데우칼리온의 뒤를 따랐다.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어린놈이었지만, 문제는 데우칼리온이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라는 것에 있었다.

정작 혈육이자 아비인 프로메테우스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토레즈는 내 옆을 따라오면서도 연신 술병을 들어 홀짝거렸다.

술병의 정보를 확인해보니 [아틀란티스 산 30년 명주]라고 적혀 있었다.

하여간 이놈이 몬스터가 된다면 술고래가 될 게 틀림없을 거다.

얼마 뒤, 우리들은 아틀란티스의 왕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잘 걸어가던 데우칼리온이 호화스러운 문 앞에 멈추더니 말했다.

[토레즈는 잠시 기다려라.]

"흐끅! 아아, 그래. 난 그럼 밖에서 술이나 마시련다. 수고하십쇼. 영감님."

어후, 술 냄새야.

완전 독주로구만.

"그래. 술 좀 깨고 있어라."

"푸흐흐, 알았쇼."

토레즈는 그렇게 말하더니 벽에 어깨를 기대고는 비틀거리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뒷모습이 딱 주정뱅이가 따로 없었다.

데우칼리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지.]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데우칼리온이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드넓은 내실과 높은 곳에 자리해 있는 옥좌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당연히 여왕이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로 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츠츠츳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메시지가 눈앞에 뜨기 시작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식은땀을 흘립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진정시킵니다.]

하긴 프로메테우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왜냐하면 눈앞의 여왕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이름이 아마 '클리메네'였던가?

하여간 이놈도 상종 못 할 놈이지.

처와 자식까지 있는데도 나 몰라라 집을 나가더니, 카미유를 쫓아다니다니.

나는 혀를 끌끌 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가 바로 알렉서스의 후인이군요.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여왕 클리메네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내 머리 위에 있는 허공을 향해 찌릿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다.

그만큼 클리메네의 얼굴은 혐오스럽다는 얼굴이었으니까.

[절대 상종해서는 안 되는 종자도 함께 있군요….]

클리메네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주먹을 꽉 쥐었다.

프로메테우스 넌 이제 죽었다.

미안하다.

이건 내가 도저히 지켜주진 못하겠다.

이건 네가 백 프로 잘못한 거거든.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클리메네의 시선을 피합니다.]

[꼴에 자기가 잘못한 건 아나 보죠? 정말이지 뻔뻔스러운 낯짝이군요. 남편 씨.]

누가 모자 사이 아니랄까봐 데우칼리온과 똑같은 소릴 해대는 클리메네였다.

나는 일단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큼. 절 부르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만."

클리메네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눈을 감더니, 다시 냉정을 되찾은 눈으로 나를 향해 얘기했다.

[당신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를… 말입니까?"

대체 누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것도 연고도 없는 이곳 아틀란티스에서 말이다.

거기다가 여왕이 존칭을 쓸 정도라면 더더욱 그랬다.

대체 누구이기에?

"누구…."

[마침 오셨군요.]

슈와아악!

마침 클리메네의 눈앞에 물보라가 휘몰아치더니, 갑자기 일어선 클리메네가 공손하게 양손을 모아 옥좌의 옆으로 자릴 비켰다.

그리고 그런 옥좌엔 물보라에서 나타난 존재가 다리를 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편엔 유피테르와는 또 다른 격을 자랑하는 푸른 위엄의 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제 아버지십니다.]

마침내 흩어진 물보라와 함께 나타난 것은 유피테르와 같은 태초의 3신 중 한 명이자, 클리메네의 아버지.

아틀란티스를 수호하는 땅과 바다의 신 '넵튠'이었다.

그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내 머리 위를 지긋이 응시하였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풀립니다.]

참고로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장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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