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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42화 (34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42화

제342화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어째서 눈앞의 유피테르가 이건명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였다.

이건명은 분명 얼마 전 오래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각 신문사를 비롯한 방송국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아니, 애초에 유피테르가 왜 이건명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 그가 지금 날 공격하며 힘을 빼앗아가는 것인지도.

[많이 혼란스러운가 보군.]

"…큭"

나는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피테르의 벼락은 내 몸을 올가미처럼 옭아맨 채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많이 혼란스럽겠지. 당장에 죽었다고 알려진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으니 말이야. 그것도 유피테르라니. 허허. 놀랄 만도 해.]

역시 예상대로 그는 이건명이 맞는 듯했다.

"어째서 내게 이러는 거지? 도대체 꿍꿍이가 뭐냐."

[아아,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어차피 알게 차차 알게 될 텐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아나? 가이아에게 빼앗겼던 날씨의 힘을 되찾는 이 순간을 말이야.]

콰르릉!

이건명의 손끝에서 벼락이 뿜어져 나오며 내 전신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이건명의 눈이 살짝 커졌다.

[벼락에 내성이 있었나? 이건 좀 놀랍군.]

"커헉!"

하지만 전혀 데미지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아내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눈앞이 벌겋게 물들었다.

치명상이라는 뜻.

예전에 견소룡의 푸른 번개의 힘을 빌리며 벼락에 대한 내성을 얻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아마 가루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헉, 허억…."

[흐음, 뭐 이렇게 산 채로 힘을 빼앗는 것도 괜찮겠지.]

눈앞의 유피테르가 몸집을 작게 만들더니 나와 같은 인간의 크기가 되었다.

그는 뒷짐을 지며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영락없는 이건명의 모습이었다. 이건명이 내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츠츠츳!

하지만 이건명의 손이 내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

금빛 스파크가 한바탕 몰아쳤다.

[무의미한 발악을 하는구나. 너희는 그때도 가이아의 편을 들었지. 나의 힘을 나누어 담기 위한 한낱 그릇들인 너희가 감히 날 이길 수 있으리라 보느냐?]

이건명이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자, 스파크는 더욱 심하게 날뛰었다.

그것은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가 저항을 하는 것이었다.

이건명의 손이 점차 내 가슴에 닿으려 했고, 동시에 메시지가 빗발쳤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정신 차리라고 말합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이를 악물며 유피테르를 막습니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들려오는 메시지 덕분에 간신히 깼다.

우선은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흐읍!"

나는 두 다리에 태양을 둘러 해오름을 일으켰다.

해오름 최종 비기 태양룡이 발끝에서 펼쳐졌다.

다섯 마리의 용이 눈앞의 이건명을 향해 승냥이처럼 달려들었다.

[가소롭군.]

이건명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던 벼락이 살짝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지자, 나는 곧장 벼락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천궁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편에 있던 이건명이 태양룡을 한 손으로 손쉽게 제압하는 것이 보였다.

저걸 저리 쉽게 파훼한다고?

[아직 금제가 풀린 지 얼마 안 돼서 힘이 덜 돌아왔군.]

이건명이 손목을 돌리더니 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그리고는 벼락의 창을 만들어내더니, 구름 위를 달리는 내게 힘차게 내던졌다.

쿠르릉!

벼락의 창은 쏜살같이 날아와서는 내 뒤편 바로 아래에 천둥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이런 망할!"

하지만 힘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유피테르가 던진 벼락의 창은 내가 딛고 선 구름을 무너트렸고, 나는 그대로 뻥 뚫린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져 추락했다.

내가 떨어지는 곳은 드넓은 아틀란 해 한복판.

그런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낭패감이 서린 얼굴을 한 이건명의 모습이었다.

* * *

[이번엔 힘이 너무 강했나.]

유피테르. 아니, 이건명이 또 한 번 손목을 돌리며 뻥 뚫린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쯧, 하는 수 없지. 태양과 구름의 회수는 건 천천히 해도 되겠지. 그나저나….]

이건명이 주먹을 쥐었다 피더니 아까보다 더 많은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제약하던 가이아의 금제 또한 거의 다 풀렸음이 느껴졌다.

[이 정도라면 슬슬 인간계로 가도 되겠지.]

이건명은 다시금 등 뒤로 위엄의 빛을 발산하며,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천궁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기거하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것은 누군가와의 연락이었다.

눈앞의 구름이 마치 TV와 같은 모습으로 화면을 띄워놓았다.

- 주군을 뵙습니다.

눈앞에는 인간계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오고 있었다.

빛과 하늘의 신인 지금의 그에게 이 정도쯤은 무척이나 손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앞에 누군가 엎드려 조아리고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마왕 루시퍼였다.

[알렉서스의 후인이 바다로 떨어졌다. 레비아탄에게 그를 생포하라고 일러라.]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인간계로 내려가는 즉시 시작하겠다. 너는 때릴 기다리며 내가 말한 그곳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도록.]

- 명을 받듭니다.

이건명은 무심한 눈으로 연락을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다시 어딘가로 움직였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천궁 내에서도 오직 유피테르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

태초 신 가이아의 영혼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사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

하얀 불꽃으로 화하여 흔들리는 가이아의 혼백을 보며 이건명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천천히 상념에 빠졌다.

그것은 꽤 오래전 일이었다.

자신의 계획을 알게 된 가이아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스스로를 인간계에 봉인하였던 일.

그 장소가 어딘지는 이미 이건명은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에게 금제를 건 것도, 인간계로 내려오지 못하게 할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렇게 다시 인간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너를 꼭 다시 부활시켜 힘을 되찾고 말겠다. 그리고 네가 가진 힘도 이젠 내가 가져야겠다.]

이건명이 천천히 손을 움직여 백색의 불꽃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봉인된 가이아를 깨울 소중한 영혼이었기에 무척이나 귀하게 다루어야 했다.

유피테르는 백색의 불꽃을 성배에 담았고, 성배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가이아의 영혼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안으로 감싸 안았다.

백색 아지랑이가 성배에 아른거리며 피어오르는 것이 촛불처럼 아늑한 기운이 사방에 퍼졌다.

[…당신은 나를 경멸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이건명이 성배를 들고 쓸쓸하게 천궁 밖을 나섰다.

* * *

아틀란 해, 어느 바다 한가운데.

토레즈는 곧장 심해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쉬운 것은 아니었다.

붉은 눈을 가진 것은 바다 깊숙한 곳에 숨어 살던 헤커트들이었다.

그들은 바다의 생태계를 해친다는 명목으로 오래 전 아틀란티스에서 쫓겨난 종족이었는데, 생김새는 팔과 다리에 물갈퀴와 아가미는 물론, 지느러미까지 생성되어 있었다.

딱!

피라냐를 닮은 헤커트의 날카로운 이빨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토레즈의 발목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내며 이를 부딪쳤다.

그냥 헤커트였으면 문제가 아닐 거다. 다시 쫓아내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토레즈를 쫓아오는 헤커트들은 마기에 오염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마기를 가진 물고기.

마어(魔魚)라고 부르는 편이 옳을지도 몰랐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콰아아아!

뒤에서 뻗어 나온 검은 아쿠아 브레스가 토레즈의 빈틈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토레즈는 간신히 수룡 블라쉬를 움직여 그것을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선 여전히 마기에 찌든 헤커트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토레즈는 그들을 연신 떨쳐내었지만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제길. 하필이면 마왕이 여기 있다니."

토레즈의 눈이 뒤에서 쫓아오는 거대한 괴물을 훑었다.

용과 악어를 합친 것 같은 얼굴에 문어와 같은 여덟 개의 다리.

날카로운 발톱과 물갈퀴가 있으며, 꼬리는 상어를 닮은 괴기한 생명체는 스스로를 마왕이라 칭하는 '레비아탄'이었다.

[나 심연의 질투. 레비아탄과 바닷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려 하다니. 어리석은 인간이구나. 미꾸라지를 타고 있는 것을 보면, 너는 분명 데우칼리온과 관계가 있는 놈이렸다!]

질투의 마왕 레비아탄이 정확히 토레즈의 정체를 간파하였다.

토레즈는 레비아탄이 휘두르는 발톱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내면서도 간신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네놈도 사실 미꾸라지 아니었나?"

레비아탄은 과거 어성궁의 주인이었던 '하스트랑'이었다.

하스트랑은 바다의 포식자로써 최상위에 군림하던 존재였다.

거대한 상어의 외형을 하고 있던 하스트랑은 라그나로크 전쟁 때 배신을 하였고, 마왕이 되었다.

물론, 이건 다 데우칼리온이 알려준 이야기였다.

[후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나는 바다의 포식자로서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너희 아틀란티스는 그런 내게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비난했다. 난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야.]

레비아탄의 입에서 다시금 흑색 아쿠아 브레스가 쏘아졌다.

이번엔 토레즈도 등을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크헉!"

피가 흐르자 헤커트들이 더욱 날뛰며 달려들었다.

토레즈는 그런 헤커트들을 무차별 적으로 쓰러트리며 생각했다.

'우선 여기를 벗어나야 해. 수면 위로 올라간다. 그럼 공격하지 못할 거야.'

토레즈는 곧장 블라쉬를 타고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올라갔다.

역시나 레비아탄과 헤커트들이 쫓아왔지만, 토레즈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수경 보르도."

우우웅! 토레즈의 손끝에서 물로 만들어진 거울이 생성되었다.

하루에 두 번밖에 쓰지 못하고, 쿨타임도 제법 길지만, 지금은 시간을 벌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궁좌 스킬, '수경 보르도'를 사용합니다.]

[마왕 레비아탄의 능력치가 너무 높습니다.]

[분신의 능력치가 30%로 감소합니다.]

'마왕은 마왕이라는 건가.'

수경 보르도는 본체의 70%에 해당하는 능력을 그대로 갖고 와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레비아탄의 능력치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수경 보르도는 30%의 능력만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크아아아-!

보르도에서 생성된 마왕 레비아탄의 분신이 크게 울부짖었다.

동시에 검은 아쿠아 브레스를 전방의 헤커트들에게 쏟아내었다.

30%의 능력이었지만 그래도 헤커트들을 쓸어버리는 데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레비아탄과 헤커트들이 살짝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좋아. 이 틈에 빨리 수면 위로…!'

빠르게 다시 블라쉬를 타고 수면으로 향하던 토레즈가 뒤를 힐끔 보았다.

당연하겠지만, 분신은 본체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레비아탄이 분신의 목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장난을 치는구나. 데우칼리온, 넌 언제나 그랬었지.]

레비아탄이 순식간에 분신을 처리하더니, 빠른 속도로 토레즈를 뒤쫓아왔다.

하지만 이미 토레즈는 수면 위를 오르기 직전이었다.

푸화아악-!

눈부신 햇살과 함께 토레즈가 블라쉬와 더불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제 헤커트들은 수면 위를 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저들이 아무리 수륙양용의 종족이라도 날 수는 없으니 더 이상 쫓아오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고작 생각한 것이 물 위로 벗어나는 것이었나?]

레비아탄이 등 뒤로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토레즈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이건 반칙 아니냐…. 무슨 물고기가 날고 그래."

[너에겐 흥미가 식었다. 데우칼리온이 직접 오는 것이 아니면 날 상대할 수 없을 터. 어차피 주군이 내린 명령을 수행해야 하니. 너를 빨리 잡아먹고 가야겠구나.]

"거, 물고기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놈…!]

레비아탄이 거대한 발톱을 할퀴었다.

확실히 물고기라 그런지 물속에서와는 속도가 확연하게 달랐다.

반면, 토레즈는 육지와 물속이나 크게 상관이 없었기에 레비아탄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내었다.

하지만 파괴력이 낮아진 것은 아니었다.

콰아아아-!

내리쳐진 레비아탄의 손바닥 아래에서 솟구친 물기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만약 저기에 맞았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어후, 술 어딨냐. 술…. 응?"

씁쓸함에 술을 찾던 토레즈의 눈에 이채가 어린 것은 그때였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누군가를 보았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아틀란 왕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풍덩!

그런데 힘없이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에이씨…."

술 한 모금 마시려 했던 토레즈가 다시금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아까 바다에 풍덩 빠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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