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41화
제341화
천궁, 우라노스.
[우릴 위해 꽤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은데?]
[저 요리는 무척이나 맛있을 것 같단다.]
[흥. 그래도 알렉서스의 후인이긴 하다는 건가.]
비와 풍요의 여신 마야.
바람과 소생의 여신 후에라.
눈과 시련의 여신 카디야가 각각 감탄 어린 기색으로 말했다.
그녀들은 아래에 있는 인간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각기 다른 감상을 내뱉는 중이었다.
특히 그녀들이 주목하는 것은 알렉서스의 후인이라 불리는 인간이 만드는 날씨 요리에 대한 것.
그가 만든 날씨 요리는 세 여신 중 두 여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산들바람에서 불어오는 음식 냄새가 무척이나 좋구나.]
[혹독한 눈 폭풍 위에 올린 팥이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군.]
두 여신은 바로 후에라와 카디야였다.
하지만 반대로 마야는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저 인간이 비의 레시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야는 곧장 내려가면 저 인간에게 알렉서스가 자신에게 맡겼던 힘을 전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 인간은 다시금 아크 대륙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성군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풍요를 관장하는 그녀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다.
[어머~ 뭘 그렇게 보면서 웃고 있어?]
바로 그때.
뒤에서 달과 마법의 여신 헤카티아나가 걸어왔다.
그녀는 인간계에 강림해 자신의 미모를 뽐내기 위해, 무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드레스를 고르느라 늦은 것이었다.
그런 헤카티아나에게 생긋 웃는 것은 후에라였다.
[헤카티아나. 너도 보면 재밌을 거란다.]
[흐음, 뭔데~?]
헤카티아나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인간계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그녀에게 요리를 먹는 취미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아름다운 것.
자신의 미모를 더욱 화려하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였다.
[뭐야, 요리였어? 난 관심 없어~ 그나저나 나 어때? 이쁘지 않아~?]
헤카티아나가 자신의 드레스를 자화자찬하며 양팔을 활짝 펴고는 옆으로 뱅글 돌았다.
나풀거리는 드레스는 무척이나 호화스러웠다.
후에라는 역시나 생긋 웃었다.
[헤카티아나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린단다.]
[오호호! 마야, 카디야. 너희들은 어때 보여?]
그러자 마야가 대답했다.
[속살이 너무 드러나는 거 같은데….]
[어머~ 뭘 모르네. 이게 요즘 인간계에 유행하는 옷이라고.]
카디야는 시큰둥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거적떼기만 걸칠 거면 그냥 입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헤카티아나.]
[흥.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어휴, 격 떨어져.]
헤카티아나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는 손을 휘적거리며 멀어져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인간계로 내려가는 구름 위였다.
[다들 안 갈 거야~? 이제 1분 남았다구. 아, 다들 유피테르 님의 말씀은 잊지 않았지?]
[당연하다.]
[응. 알고 있단다.]
[알고 있어요.]
세 여신이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카티아나를 비롯한 세 여신들은 루페온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를 대신해 위대한 유피테르를 만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유피테르 님은 그 알렉서스의 후인이라는 자를 천궁으로 올려보내라고 했었다.
독대하고 싶으니 혼자 올려보내라는 명이었다.
하긴 500년 전에도 그렇고, 유피테르님께서는 당시 알렉서스를 무척이나 총애하셨으니, 그의 후인 또한 당연히 총애하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혹시 또 한 번 그를 궁좌로 만드시려는 걸까?'
헤카티아나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털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차피 천궁의 왕이신 유피테르 님께서 결정할 일.
하위 신인 자신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때.
네 여신의 몸을 오색 빛깔의 찬란한 빛이 휘감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 금제가 완전히 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천천히 구름이 움직이며 인간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초 신 가이아의 금제가 풀린 이후.
500년 만의 일이었다.
* * *
아크 대륙의 중앙을 드넓게 차지하고 있는 바다.
아틀란 해의 가장 깊은 바닥엔 커다란 구멍이 존재한다.
그곳은 무척이나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기에 어떤 몬스터라도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그곳은 금지구역이었다.
그것은 아틀란티스를 살아가는 인어와 어인들 또한 마찬가지.
심해(深海)라 이름 붙여진 그곳에 나타난 것은 수병궁의 주인 데우칼리온을 성좌로 둔 토레즈였다.
현재 그는 인어의 비늘을 입에 문 채, 수룡 블라쉬의 머리 위에서 깊은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
토레즈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이거 계속 들여다보다간 잡아먹힐 것 같은데."
확실히 금역은 금역이었다.
심해를 들여다보자마자 느낀 것은 공포였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
그것에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감.
소름끼치는 기운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 같은 것이 오싹한 소름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토레즈는 오금이 저려왔다.
그의 눈에 이채가 어린 것은 그때였다.
"저건…?"
토레즈는 재빨리 수룡 블라쉬를 몰아 구덩이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마기…? 정말 이곳에 마왕이 있었단 말인가?"
현재 토레즈가 이곳에 있는 것은 성좌인 데우칼리온의 부탁 때문이었다.
데우칼리온은 아틀란티스와 그의 어머니를 지켜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대신 토레즈가 이곳을 조사하기 위해 왔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조금 더 조사를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흐음, 이거야 원."
토레즈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술병을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이곳은 바닷속이었지만, 수병궁 데우칼리온은 물을 다스리는 성좌인 바.
그의 능력은 바닷속에서 술을 마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토레즈 또한 마찬가지다.
"크하. 나 귀신 엄청 싫어하는데."
스페인 출신인 토레즈였다.
그곳이라고 귀신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귀신 붙은 사자상이나,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인한 난로 귀신은 TV에서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어쨌든 그냥 싫었다.
"크흠, 아틀란티스의 좋은 술이나 좀 챙겨달라고."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알았다고 말합니다.]
"크흐흐. 그럼 어디 들어가 보실까."
그렇게 토레즈가 수룡 블라쉬를 몰아 천천히 심연 속으로 들어섰다.
확실히 연했던 마기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주변은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찬 채 들어왔던 입구는 무척이나 조그맣게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갑작스런 오한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
놀란 토레즈가 몸을 흠칫거렸다.
'수온이 변했다. 아니, 이건….'
수온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토레즈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런 젠장."
한없이 어두운 심연 속에서 수천 개의 붉은 눈이 살기를 뿜어내며 빛을 내었다.
"재수 옴 붙었네."
***
같은 시각.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신들의 강림이 시작된다는 메시지 이후.
구름이 갈라지며 오색찬란한 빛이 내려왔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 끝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저기 좀 봐!"
"뭐지?"
"구름이야!"
"신들이다. 신들께서 내려오신다!"
처음엔 무엇인지 몰라 당황해하던 군중들은 누군가 신이라고 외치자,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며 하늘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것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여신들이었다.
그중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후에라, 카디야. 그리고 옆엔 마야인가? 저 여인은 분명 헤카티아나겠군.
한눈에 보아도 저 화려한 복장의 여인이 헤카티아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레센트의 말처럼 그녀는 정말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천천히 내려앉았고, 마침내 여신들이 인간계에 밟을 내딛자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인간들을 천천히 굽어보며 여신들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내게 헤카티아나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흐음~ 네가 그 알렉서스의 후인이구나?]
헤카타이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유피테르 님이 좀 뵙고 싶다네?]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넌 천궁으로 가야 해. 지금 당장 말이야.]
"네?"
나도 모르게 그만 입을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유피테르와의 만남이라니, 언젠가 만나게 될 것 같았지만,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었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진짜 몰랐는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어머~ 프로메테우스랑 아틀라스도 있었네? 잘 지내지?]
그런 헤카티아나의 말에 후에라가 다가왔다.
[프로메테우스로구나. 무척이나 보고 싶었단다. 아직도 콧구멍은 넓은 것이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콧구멍을 벌렁거립니다.]
[후훗, 프로메테우스는 언제나 재밌는 신이란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자신은 보고 싶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당연히 너도 보고 싶었단다. 아틀라스야.]
[제3사도, '아틀라스'가 콧김을 뿜어냅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는 의외로 여신들과 친한 듯 보였다.
하긴 그들이 원한을 가지며 미워하고 있는 것은 유피테르이지, 저들이 아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저 인간의 몸속에 봉인되어 있겠고, 아틀라스는 여전히 하늘을 들고 있는 건가?]
카디야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하늘을 향해 얘기했다.
그러자 마야가 다가왔다.
가을의 곡식을 닮은 자애로운 미소였다.
[오랜만이에요.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아틀라스. 그동안 잘 지냈나요?]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가 한참이나 마야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헤카티아나가 나를 재촉했다.
[그쯤 해. 유피테르 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말이야. 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면 금세 유피테르님께 닿을 거야.]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 구름 위에 올라섰다.
지니 위에 올라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내 돌발행동에 밑에 있던 기자들이 또 냄새를 맡은 것처럼 눈부신 플래시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터진 빛 때문에 땅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무엄하구나. 감히 여신들의 눈을 부시게 만들다니.]
카디야가 손짓 한번을 하자, 허공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만들어지며 빛을 내는 것들을 모조리 터트렸다.
기자들 사이에서 당황 어린 기색이 만연했다.
다행히 녹화 중인 카메라는 빛이 나지 않아서 터지지 않은 듯 보였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소를 삼켰다.
…쯧쯧, 저놈들도 앞으로 고생길이겠구만.
나는 곧장 뒤편에 있는 백무열과 박막순에게 천궁에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마침내 천궁에 도달했다.
끼이이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절로 문이 열렸다.
"들어오라는 건가?"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침내 유피테르의 중후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어서 오라. 알렉서스의 후인이여.]
나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째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위엄이 머리 위로 느껴졌다.
[고개를 들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피테르를 바라보았다.
하늘하늘한 흰색 천을 휘감은 몸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은 알 수 없었다.
빛과 하늘의 신 유피테르는 위엄의 빛에 가려져 있었다.
언젠가 프로메테우스가 말한 것처럼 태초의 3신들은 새하얀 빛 뒤에 숨어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군. 최춘택.]
"……!"
내가 몸을 흠칫거림과 동시에 유피테르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하얀 빛이 순식간에 나에게 닿았다.
나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당신이 가진 눈의 힘을 빼앗기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가진 바람의 힘을 빼앗기기 시작합니다.]
"뭣이?!"
내 몸에서 어떤 것이 아지랑이처럼 빠져나가더니, 순식간에 눈과 바람의 힘을 빠져나왔다.
아니, 그것보다 내 이름을 안다고?
나는 놀란 표정으로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너 누구냐?"
하지만 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유피테르는 계속해서 웃기만 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천천히 유피테르의 얼굴을 가리던 위엄의 빛이 사그라들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동시에 믿을 수가 없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어째서 죽었다고 알려진 그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이건명."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