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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36화 (33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36화

제336화

다크문 수도, 베아트리체.

미도와 제임스는 수도 베아트리체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그 방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제임스가 수도로 먼저 잠입해 뱀파이어로 변신할 수 있는 장신구를 사왔고, 인간 고유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품속에는 항시 마늘을 품고 다녔다.

그러자 두 사람은 손쉽게 수도를 활보할 수 있게 되며, 손쉽게 성채 부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곳 베아트리체는 지금 축제 분위기에 한창 젖어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마왕 릴리스가 결혼을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그 상대는 마왕 아스모데우스.

현재 베아트리체 내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내일 치러질 여왕 릴리스의 결혼식 때문에 무척이나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어째 우리가 결혼식 훼방꾼이 된 기분이네."

미도가 약간은 미안한 기색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런 미도에게 단호하게 얘기했다.

"정신 차려. 네 성좌를 붙잡아 놓은 장본인들이야."

"나도 알거든?"

"일단 들어가 보자. 내 손 잡아."

전 남자친구와 다시 손을 잡는 게 썩 내키진 않지만, 미도는 일단 제임스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야만 그림자 속으로 같이 사라질 수 있었다.

"크흠."

제임스는 미도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채고 새끼손가락 하나만 내밀었다.

미도는 그런 제임스의 새끼손가락을 검지와 엄지로 살짝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을 땐 온통 어두컴컴한 고성 안이었다.

"와, 무슨 중세시대에 와 있는 것 같아."

"감탄할 시간 없어. 빨리 움직여야 돼."

"이그, 저 잔소리꾼."

미도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제임스는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함정 '몽환의 유혹'에 걸렸습니다.]

[이 함정은 남자에게만 효능이 있습니다.]

[잠시 동안 마력이 봉인 당합니다.]

제임스의 눈앞에 한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엄청난 두통이 밀려왔다.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감각이 전신을 감싸는 것 같았다.

"크읏…!"

제임스가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을 호소하자, 놀란 미도가 제임스를 부축했다.

"야! 괜찮아?"

"크윽…."

제임스는 여전히 고통을 호소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함정을 파놨었다면, 아마 곧 함정을 설치한 당사자가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아마 마왕이겠지. 릴리스인가.'

다행인 것은 함정이 남자에게만 효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미도는 도망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도망…가."

"뭐? 널 두고 어떻게 도망가라고!"

"남자한테만 효능이 있는 함정… 시간이 없어. 빨리 가!"

제임스가 부축하고 있는 미도를 거세게 뿌리쳤다.

미도는 그런 제임스가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때였다.

정말 함정이 맞다면 당장 마왕이 이곳에 나타날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미도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난 괜찮아. 방법이 있어. 너도 봤잖아? 뱀파이어들 한 방에 죽이는 거. 릴리스도 뱀파이어 여왕이니까 분명히 통할 거야. 큭. 그리고 이거 갖고 가."

제임스가 고통을 참으며 미도에게 한 자루 권총을 내밀었다.

그것은 꽤 낡은 것이었다.

안에는 여섯 발의 빛속성 은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는데, 아마 자신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것 같았다.

"전에 쓰던 건데, 혹시 위험하면 그걸로 쏴버려…."

간신히 말하는 제임스의 말에 미도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긴, 뱀파이어들을 빛의 총알로 한 방에 죽였던 제임스였다.

뱀파이어 여왕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조금 위험할 순 있어도 쉽게 죽진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내가 다빈치 찾아서 구하러 올 테니까. 조금만 버티라고!"

"그…래. 어서 가."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미도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 위층으로 달렸다.

제임스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멀어지는 미도의 그림자를 보며 살짝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 * *

베아트리체, 릴리스의 성.

[어? 정말 누가 침입을 한 모양인데?]

릴리스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뒤편에 자리한 아스모데우스를 보았다.

아스모데우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대단한데? 어떻게 예상한 거야?]

[후후. 뱀파이어 헌터의 목적은 분명 귀족들의 말살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릴리스 너 또한 노릴 것이라 생각했지. 보고 받은 인상착의가 남자인 것이 확실했으니, 네 능력을 이용해 함정을 판 것이 우연히 맞아 떨어진 셈이다.]

[어머, 어쩜. 1등 신랑감이네?]

릴리스가 아스모데우스의 무릎에 살포시 앉았다.

아스모데우스는 그런 릴리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그녀를 옆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둘 다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누가 본다면 그저 조금 특이한 인간으로 보일 외형이었다.

[어디 가려고?]

[내 신부를 노리는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지.]

[그럼 내가 갈게!]

릴리스가 아스모데우스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넌 여기 있어라. 그놈이 뱀파이어 귀족들을 노리는데 혈안이 된 놈이라면 분명 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단 또한 갖고 있을 거야. 내가 가는 게 맞다.]

[후훗, 너무 늦지 마. 결혼식이 코앞인 건 알지?]

[당연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역시 듬직해.]

교태가 섞인 릴리스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피식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총 5층으로 이루어진 이 고성은 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했는데, 자신과 릴리스의 성대한 결혼식은 모두의 축복 속에 이곳에서 이루어질 터였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건드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아스모데우스에게 릴리스는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그 긴 세월을 참고 버틸 수 있었고, 신들을 배신하여 마왕이 될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질할 테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녀만 곁에 있어 준다면 그곳이 곧 자신의 보금자리였으니까.

아스모데우스가 마침내 1층에 도착했다.

[…너인가. 릴리스를 노리는 뱀파이어 헌터란 놈이.]

아스모데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비틀거리는 제임스를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존재였다.

귀가 뾰족하고 송곳니가 드러난 걸 보면 뱀파이어인 것처럼 보였다.

[설마하니 뱀파이어 헌터가 같은 동족이었을 줄이야.]

"제기랄. 지지리 운도 없네. 릴리스가 아니라 다른 놈이잖아."

[역시 릴리스를 노리고 있었나? 괘씸하기 그지없군. 너의 사지를 모두 찢어주겠다.]

아스모데우스의 몸이 커지며 변하기 시작했다.

쿠득. 쿠드득.

헐벗은 아스모데우스의 상반신과 머리는 그대로였지만, 흑색 전갈의 꼬리와 다리가 생겨나며, 양손엔 날카로운 집게가 나타났다.

주변은 온통 흑색의 모래가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어지러움 속에서 제임스는 간신히 눈앞의 존재가 누군지 깨달았다.

아스모데우스가 마침내 변신을 마쳤고, 그런 제임스에게 집게를 들이밀려는 순간이었다.

"안타라스…?"

그 순간 아스모데우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누구냐. 넌.]

***

한편, 미도는 성의 내부를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다행히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없는 듯했다.

하긴 뱀파이어들은 원체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에, 하인 같은 것을 잘 두지 않는다는 얘기를 제임스에게 들었다.

'…괜찮으려나.'

미도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난간을 내려다보았다.

제임스가 있는 1층이었다.

방금 전 한 남자가 내려갔는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마왕이라는 존재였고, 현재 미도는 3층을 뒤지는 중이었다.

아직 다빈치가 있는 곳은 발견하지 못한 상황.

이대로라면 그가 위험에 처할 것은 당연지사였다.

'빨리 다빈치를 찾아야겠어.'

미도는 좀 더 빠른 속도로 다빈치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3층을 뒤졌으나 나오는 것은 그저 낡아 버린 빈방들뿐.

미도는 이어서 4층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좀 더 선명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옅지만 그것은 분명 다빈치의 기운이었다.

미도는 그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잘 알 수 있었다.

미도는 화색을 띠며 그곳으로 달려갔고, 마침내. 다빈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빈치…?"

[…….]

다빈치는 작은 화실 안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도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혹여나 공격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미도는 마침내 다빈치의 앞에 다가섰고, 그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보았다.

눈이 몽롱한 것이 다빈치는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도는 다빈치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역시 아까 내려간 건 아스모데우스가 맞았구나."

그림은 마왕 릴리스와 아스모데우스가 함께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

미도는 다시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많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모두 릴리스와 아스모데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것들이었다.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

미도가 대놓고 릴리스를 욕했다.

하지만 분명 정신 지배를 걸어놓고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건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를 성좌로 두고 있는 미도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와씨, 만나면 따귀라도 한 대 갈겨야지."

미도는 분통을 터트리며 다빈치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었다.

"다빈치. 야! 나 왔어! 정신 좀 차려봐!"

뺨을 치며 연신 흔들어 보았지만 다빈치는 깨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신 지배가 꽤 강한 듯 보였다.

"후우, 어쩌지…."

미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이대로라면 제임스를 구하는 것도, 다빈치를 구하는 것도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바로 그때.

"이게 뭐지?"

미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시선이 간 곳은 다빈치의 곁에 있는 작은 쪽지.

미도는 곧장 쪽지를 펼쳐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네가 날 발견한 것이겠지. 하지만 난 점점 강해지는 정신 지배로 인해 제정신을 찾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네가 날 발견했을 때쯤이면 난 이미 제정신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야. 하지만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이여. 그대가 진정 나의 성애자(星愛者)라면 그림 실력이 출중하리라 믿는다. 물론, 조금도 믿음이 가진 않지만 말이야.

"아, 뭐야. 또 내 그림 욕하네. 이 자식이."

미도가 잠깐 다빈치를 향해 눈깔을 부라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이성을 되찾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발밑을 보면 숨겨둔 초상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릴리스의 초상화지.

"초상화?"

미도가 다빈치의 밑에 있는 릴리스의 초상화를 찾았다.

"이건가?"

그리곤 다시 편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 초상화엔 봉인의 힘이 담겨있다. 대상과 똑같이 그려야만 그림 속에 봉인을 할 수 있지. 하지만 초상화는 아직 미완성인 상태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나의 성애자(星愛者)여. 그대가 그림을 완성을 해야만 릴리스를 봉인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릴리스를 그려라. 그리고 나를 구해다오.

미도가 읽고 있던 편지를 밑으로 내림과 동시에 팔을 늘어트렸다.

그리곤 다시 한번 다빈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미친놈이 미친년을 그리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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