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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35화 (33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35화

제335화

도깨비 부락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미도는 마침내 뱀파이어의 영지로 들어서게 됐지만, 기다리는 건 고난의 연속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무기인 피의 도살자에서 나는 짙은 피 냄새를 하염없이 쫓아왔고, 미도는 여러 성을 전전하며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사흘째.

이른 아침부터 미도는 역시나 뱀파이어들을 사냥하고 피해 다니길 반복하며 검은 숲을 헤맸다.

뱀파이어들은 여전히 끈질기게 쫓아왔다.

어떨 때는 박쥐로 변해 날아서 쫓아오기도 하였고, 또 어떨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무섭게 쫓아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바로 지금.

온통 가시가 가득한 숲에서 미도는 뱀파이어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흐흐흐. 드디어 잡았다. 인간 계집."

"요즘 뱀파이어들을 사냥하는 헌터가 있다던데, 그게 바로 네년이렸다!"

"뭔 헛소리야! 저리 안 꺼져?"

미도가 들고 있는 피의 도살자로 다가오는 뱀파이어들을 위협했지만, 뱀파이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다가왔다.

"그냥 순순히 잡히시지. 넌 이대로 릴리스님께 바쳐질 것이다. 산채로 잡아오라고 하셨으니,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아, 저리 꺼지라고! 내 말 안 들려!"

미도가 빼액 소리를 지르면서 남아있는 마력을 확인했다.

이미 불러낸 그림자 잉크 병사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뱀파이어들은 레벨 또한 무척 높았기에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강한 것은 물론이고,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었기에 한 마리씩 잡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도는 검은 숲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고성을 보았다.

저곳에서 다빈치의 기운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아마 저곳에 다빈치가 갇혀 있는 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당장 여길 정리하지 못한다면 갈 방법이 없었다.

"으으,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다 덤벼! 너희쯤은 내 힘으로 극복해주겠어!"

미도가 제법 허세를 부려가며 기세를 끌어올렸지만, 뱀파이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적어도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미도 또한 자신이 이길 것이란 생각은 1도 들지 않은 참이었다.

'바로 코앞인데…!'

미도는 들고 있는 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등 뒤로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등줄기가 서늘히 내려앉았다.

뱀파이어들은 마침내 자신의 근처까지 왔고, 바로 그 순간.

푸슝! 푸슝!

검을 휘두르기 위해 높이 손을 올렸던 미도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빛의 궤적이 나타나 번쩍하더니 뱀파이어들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산화해버린 것이었다.

그때. 옆에 있는 풀숲에서 푸스슥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타났다.

"어…. 안녕?"

그것은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자신의 전 남자친구였다.

* * *

잠시 후. 미도는 제임스를 따라 그의 비밀 은거지로 올 수 있었다.

사실 은거지는 바로 뒤편에 자리해 있었다.

아까 길이 막혀 가지 못했던 가시넝쿨의 뒤편이 바로 은거지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가시넝쿨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도 올 수 없었고, 그렇기에 오직 제임스만이 올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재 그녀가 이곳에 올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그림자 능력 덕분이었다.

안은 무척이나 아늑한 나무집이 한 채 지어져 있었는데, 꽤 오래된 낡은 집이었다.

"와, 이은성 출세했네. 출세했어. 아주 여기에 살림을 차렸구만?"

"조금 누추하지만 들어와. 뭐라도 좀 마실래?"

"헉, 마실 게 있어?"

미도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살짝 벌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기실 그녀는 도깨비 부락을 떠나고 나서 제대로 먹지 못한 지 오래였다.

가진 전투식량도 거의 바닥나 건빵만 먹곤 했는데, 때마침 제임스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준 것이었다.

"마, 많이 배고팠구나. 하하…."

제임스는 군침을 흘리며 위아래로 격하게 고개를 흔드는 미도가 그저 귀여웠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건 엄청 좋아하는구나. 하긴,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가자고 조를 정도였으니 당연한가.'

제임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부엌으로 간 제임스가 뚝딱뚝딱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만큼은 아니겠지만, 괜찮은 요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나름 이곳에 먼저 온 선배로서 무언가 해주고 싶은 것도 있었다.

요리는 금세 만들어졌다.

그저 간단한 굽기였다.

"자, 먹어봐. 할아버지만큼 요리 스킬이 높진 않지만, 이건 간단히 굽기만 해도 맛있더라고. 괜찮을 거야."

"와. 이 멧돼지 고기는 다 어디서 난 거야?"

"바로 옆에 있는 수도 베아트리체에서 갖고 왔어. 뱀파이어들이라고 늘 인간들의 피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동물의 고기를 먹곤 한다더라고? 물론, 쟤네들은 피를 보충하려고 완전히 생으로 먹는 거지만 말이야."

"으. 비리겠다."

생으로 먹는다는 말에 미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임스는 그것마저도 귀여웠다.

미도는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근데 어떻게 고기를 산 거야? 저기도 화폐 개념이 있어?"

"당연히 몰래 훔쳐왔지."

"아. 하긴."

미도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먹었다.

간단한 굽기와 소금 간을 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당연히 요리 스킬을 가진 할아버지보다는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맛이었지만, 딱딱한 건빵보다는 충분히 맛있었다.

그렇게 정확히 10분 만에 미도는 모든 고기를 먹어 치웠다.

"흐아, 살 것 같다."

"맛있게 먹었어?"

"응. 고마워."

미도가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제임스에게 내밀었다.

제임스는 익숙하게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미도는 그런 제임스의 뒷모습을 보았다.

생각보다 가정적인 남자였구나, 하는. 뭐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때 제임스가 설거지를 하면서 물었다.

"근데 왜 혼자야? 일행들은?"

"아, 그게…."

민망한지 미도가 볼을 긁적였다.

때마침 제임스의 설거지가 끝났고, 그는 뒤를 돌았다.

"……?"

"나 혼자 왔어…."

"뭐? 이 위험한 곳을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

"응. 그렇게 됐네? 하하하…."

멋쩍어진 미도가 헛웃음을 지었다.

제임스는 그런 미도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길 찾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나 지도 스킬 있잖아."

"아, 맞다. 너 화가였었지?"

미도가 뾰로퉁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뭐야. 그 말투는?"

"아냐. 하도 검을 쓰길래. 잠깐 착각해서 그래. 그럼 다 알고 온 거겠네?"

"응? 뭐가?"

제임스의 눈이 살짝 뜨여졌다.

"뭐야.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였어?"

"뭔데. 뭐 말하는 건데?"

"네 성좌 저기 성에 갇혀 있잖아. 이름이 다빈치였던가…?"

"……!"

"나랑 같이 구하러 가자."

* * *

다크문을 샅샅이 뒤진 지 3일이 지났다.

그날 백무열을 비롯한 동대륙의 사람들을 춘자를 통해 소환한 직후.

나는 곧장 미도를 찾아 나섰지만, 미도는 다크문에 없었다.

귓속말을 해보니 현재 그녀는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 닿아 있었다.

크레센트의 말에 따르면, 다크문의 검은 안개는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크레센트와 춘자도 지금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것은 사실이었고, 설상가상으로 검은 안개가 태양을 가리고 있었기에 프로메테우스를 내비게이션으로 쓰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캡슐을 나와 미도를 찾았지만, 며느리는 미도가 오늘 약속이 있다고 했다며 캡슐방에서 며칠 접속할 거라 했다.

하여튼 여러 가지로 꼬여버린 것이다.

"여기도 없는 것 같지?"

"그런 것 같은데."

"이놈들은 어쩔 거야?"

"어쩌긴 당연히 재워둬야지."

나는 눈앞에 사로 잡혀있는 수백의 뱀파이어들을 힐끗 보고는 뒤편에 있던 박막순에게 턱짓했다.

박막순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마법사와 마녀들이 뱀파이어들에게 수면 마법을 썼다.

뱀파이어들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흐음."

나는 팔짱을 낀 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다른 일행들은 성좌들과 함께 각지로 흩어져 다른 뱀파이어의 성을 점거하는 중이었는데, 뱀파이어들은 달과 마법의 여신인 헤카티아나를 모시고 있었기에 헤카티아나는 그들이 최대한 다치질 않길 바랐다.

그렇기에 그들을 재워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택했고, 마법사와 마녀들은 그런 이유로 보내진 것이었다.

"너무 쉬운 거 같지 않냐?"

백무열이 이상하다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아니, 크레센트 녀석의 말에 따르면 성마다 영주처럼 군림하는 귀족들이 있을 거랬는데, 무척 강하니 조심하라고 했잖아. 말도 안 들을 거니까 조심하라고도 했었고, 근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흠, 그렇긴 하네."

나는 슬며시 하늘을 올려보았다.

위에선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춘자가 있었다.

다시금 부엉이 레추자로 돌아온 모습이었지만, 그 크기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해져 있었다.

현재 춘자는 지금 내 머리 위에서 X자를 그리며 날고 있었다.

역시 이곳에도 뱀파이어 귀족이 없는 건가.

"이건 마치 누군가 귀족만 노리고 죽인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누굴 거 같아?"

"물어보면 알겠지."

백무열이 다짜고짜 수면 마법이 걸린 뱀파이어 중 하나의 뺨을 찰싹 때리며 깨웠다.

뱀파이어는 몽롱한 표정을 짓다가 눈앞의 백무열을 발견하고는 다시 으르렁거렸다.

"으으,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군진 모르겠고. 일단 맞고 시작하자."

백무열의 몽둥이가 참교육을 갖는 시간이 있었다.

잠시 뒤, 고분고분해진 뱀파이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귀족이 안 보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뱀파이어 헌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분명 인간이라고 했다.

혹시 미도인가?

"그 뱀파이어 헌터는 어디로 갔지?"

"그, 그건 우리도 모른다. 워낙 신출귀몰해서…."

또 한 번 백무열이 몽둥이를 거머쥐는 시간이 있었다.

"…아마 수, 수도로 갔을 겁니다. 놈은 귀족분들만 노리니까요. 다른 성들은 이미 다 털렸고, 수도에 있는 여왕님만 남았습죠. 예…."

뱀파이어는 피떡이 된 얼굴로 겁을 먹었는지 말을 더듬었다.

어쨌든 이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둘러 그 수도라는 곳으로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여긴 뱀파이어들과 오랫동안 앙숙으로 지내왔던 도깨비들이 알아서 잘 할 테지.

"우가! 도깨비 왕으로 살면서 오늘처럼 보람된 순간이 없었다. 뱀파이어 놈들의 성을 짓밟는 날이 오다니. 우하하하! 다들 춤춰라!"

"우가우가!"

"……."

도깨비 왕 쇠꼬비가 동료 도깨비들과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진짜 저 녀석들을 믿어도 되려나 모르겠네.

"저희도 있으니 먼저 가십시오."

그때. 견소룡이 마이클과 함께 걸어왔다.

나는 견소룡을 보았다가 옆에 있는 마이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마이클은 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듣자하니 안타라스에게 배신을 당했다지.

원래 이누무시키는 미도와 짝을 지어주려 했었던 성좌였다.

어쩌다보니 마이클과 짝꿍이 되었는데, 뭐, 제 주인을 찾아간 건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나는 다시 견소룡을 돌아보았다.

"먼저 수도로 가 있으마."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백무열을 보았다.

"같이 갈 거지?"

"흠, 당연한 소리를."

박막순이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온 건 그때였다.

"시방. 어딜 도망가려고?"

"할망구가 말본새하고는."

"뭬야?!"

박막순이 백무열에게 연신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백무열은 무척이나 간단하게 목검으로 쳐낼 뿐이었다.

딱! 따악!

얼핏 보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저 진상들.

"아, 노망들었어? 빨랑 타!"

나는 어느새 내려앉은 춘자의 등에 올라탔다.

백무열이 오른쪽 날개 부근에 앉았고, 박막순이 왼쪽 날개 근처에 앉았다.

"흥!"

"흥!"

백무열과 박막순이 동시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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