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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33화 (33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33화

제333화

식독검(食毒劍).

그 이름의 뜻처럼 식독검은 본디 독을 먹는 검이란 뜻이었다.

원래는 생전 알렉서스가 독이 있는 몬스터를 요리 재료로 쓰기 위해 독을 빼는 용도로 쓰던 식칼이었다.

독을 먹고 점점 자라나는 이 식칼의 특성은 많은 독을 흡수하면 검에 더 가까운 외형이 되었다.

어쨌든 식독검은 그런 알렉서스와 함께 싸워오며 꽤 많은 목숨을 구해준 무구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식칼의 크기를 하고 있지만, 독을 가진 몬스터에게 박혀 독을 빨아들일수록 크기가 점점 커지며 고통을 증가시키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푸욱!

"크와아악!"

펜릴이 마수 키메라의 그림자에서 솟아올라 식독검을 옆구리에 꽂는데 성공했다.

키메라가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식독검이 마수 키메라의 독을 빨아들입니다.]

"성공했구만."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심할 때는 아니었다.

키메라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사탄이 미간을 한껏 찌푸리더니 펜릴을 공격한 것이다.

[감히 내가 아끼는 마수를…. 죽어라!]

사탄의 입이 쩍 벌어지며 강렬한 죽음의 마기가 담긴 광선이 쏘아졌다.

새카만 칠흑이 성내를 뒤덮었다.

다행스럽게도 펜릴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이동해 그것을 피해내었다.

쏘아진 광선은 그대로 키메라의 정면으로 날아들어 그것을 정통으로 맞았다.

[저런…!]

불시의 기습을 당한 키메라가 쓰러진 채 죽음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마침내 사탄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아리에스와 성좌들. 그리고 나와 마석두가 뒤섞여 다시 한 번 사탄과의 일전을 시작했다.

김수정은 뒤에서 치유의 반딧불을 날리며 우리를 보조했고, 싸움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사탄은 분노에 이성을 잃은 채 더 이상 정신계 마법을 쓰진 않았지만, 그만큼 더욱 강대해진 힘으로 우리를 압도하였다.

하지만 사탄이라고 우리 전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키메라와 싸웠던 솔라 피닉스와 펜릴이 가세하자 기세는 우리 쪽으로 천천히 기울었고, 멸마의 불꽃이 또 한 번 크게 한몫하며 사탄을 잡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쩌엉!

나는 그대로 구름을 박차고 날아올라 사탄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벨페고르의 뿔과 뼈로 만든 구두의 위력이 엄청났다.

광물의 이름이 알데바라늄이었던가?

상반신이 뒤로 젖힌 사탄은 그대로 주먹을 내게 뻗었지만, 나는 그대로 놈의 품을 파고들어, 구두의 뒷굽을 서로 맞부딪혔다.

그러자 구두에 있던 고유 스킬이 발동되었다.

[스킬: '나태한 발 구름'이 발동합니다.]

[발을 크게 구를 때마다 지진 충격파가 일어납니다.]

나는 그대로 거미줄을 사탄의 몸에 걸어 그대로 두 발을 빠르게 번갈아가며 연타를 날렸다.

콰콰콰쾅!

현재 나는 태양과 바람의 힘을 동시에 쓰고 있었다.

사탄이 저항하기 위해 손아귀로 나를 잡으려 했지만.

휙-!

[크윽.]

나는 그대로 포크 창을 던져 놈의 손을 벽에다 박제된 나비처럼 메다꽂아버렸다.

마무리는 마수 키메라의 독을 한껏 흡수해 대검의 크기로 자라난 식독검을 사탄의 심장에 박아넣는 것이었다.

푸확-!

[……!]

사탄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사나운 눈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식독검은 독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그 독을 방출할 수도 있었다.

바로 이렇게.

[끄아아악!]

마력을 불어넣자 식독검에 있던 무수한 독들이 사탄의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심장에서 퍼져나간 독들은 순식간에 몸 곳곳을 썩게 만들었고, 마침내 사탄의 모든 신체 기능을 억제하는데 이르렀다.

[…분하구나. 어째서 내가 졌는가. 나는 완전무결한 존재이거늘. 너희 같은 벌레들에게 질 리가 없는 싸움이었다….]

바로 그때.

고양이 성좌 캣 베이커를 비롯한 다른 성좌들이 이곳 부유성으로 뛰어 들어왔다.

캣 베이커는 들어오자마자 사탄에게 하악질을 해대더니 빼액 소릴 질렀다.

[우리가 왜 벌레야! 이 멍청아!]

[캣 베이커….]

[넌 왜 그렇게 인간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알고 보면 인간들도 엄청 착하다고!]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인간들은 언제나 분노에 사로잡힌 존재들이었다. 굶주림에서 탈출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동물들에게도 가혹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인간들이 벌레보다 못한 족속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그건….]

[되었다. 이젠 모든 것이 의미가 없구나.]

그 순간. 사탄의 이마 위로 마법진이 생성되며 하늘로 빛이 쏘아졌다.

이어진 것은 어두운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탄의 몸을 뒤덮는 것이었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 1분 후에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이 폭발은 오르카 왕국 전체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되도록 멀리 대피하십시오.]

이런 미친?

[00:59]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 * *

오르카 왕국, 왕성 남부.

박막순은 성좌들과 함께 왕성 내에 있는 백성들을 모두 바깥의 수도로 이주시켰다.

그녀는 순간이동 마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고, 캣 베이커가 피리를 불 때마다 정신을 차린 이들을 이주시키는 것은 오로지 박막순의 몫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왕성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진정되자 캣 베이커는 성좌들을 이끌고 곧장 사탄이 있다는 부유성으로 향했다.

박막순도 지금 눈앞의 이들을 보내고 나면 곧장 따라갈 예정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할머니!"

"나중에 놀러 오면 엄마가 쿠키를 해줄 거예요!"

30대로 보이는 처자가 박막순에게 고개를 숙였고, 4살 꼬마 둘이 박막순의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리며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냈다.

박막순은 그런 그들을 손주 보듯 눈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왼손을 살짝 들어 자그마한 삼각형을 그렸다.

"…흘흘. 인연이 있으면 또 보자."

눈앞의 이들이 하얀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이걸로 이제 왕성에 남은 이들은 더 이상 없을 터였다.

"에구구. 허리야."

박막순이 지팡이를 짚은 반대 손으로 허리를 연신 두들기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이놈의 디스크는 현실에서나 이곳에서나 똑같은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캐릭터의 나이를 조금 어리게 하는 거였는데.

"시방. 옆집 순이네 할망구는 파릇파릇한 20대 시절로 돌아갔다면서 좋아하더만, 에휴…."

박막순이 신세 한탄을 하던 바로 그때.

[삼각성, '피타고라스'가 오즈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끄응. 꼭 내가 돌아가야 하는 거여?"

[삼각성, '피타고라스'가 그렇다고 말합니다.]

"아따, 여기도 시방 중요헌디. 저기에 마왕이 있잖여~?"

[삼각성, '피타고라스'가 헤카티아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에이, 지랄."

박막순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현재 자신의 성좌인 피타고라스는 마법 도시 오즈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에게 돌아와 헤카티아나의 명령을 받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단 박막순은 최춘택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자신은 아무래도 오즈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뭐 그런 메시지였다.

그런데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바쁜가?"

[삼각성, '피타고라스'가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삼각성, '피타고라스'가 이미 많은 마법사와 마녀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아, 네가 이끌고 가면 되잖어!"

박막순이 성질을 부리듯 하늘을 향해 소릴 질렀다.

[삼각성, '피타고라스'가 자신은 오즈를 떠날 수 없음을 알지 않냐고 말합니다.]

"…에이."

말 그대로 피타고라스는 오즈를 떠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 오즈를 지키기 위한 수호 성좌가 되었기에 떠날 수 없었다.

오즈를 지탱하는 태고의 마력석을 다룰 수 있는 것은 피타고라스뿐이었고, 그가 떠난다면 오즈는 혼란에 빠질 게 자명했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지박령 같은 것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박막순은 하는 수 없이 피타고라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간다. 가! 에이, 염병할 거."

박막순은 궁시렁거리며 곧장 마법진을 그려내 오즈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자신은 순식간에 오즈로 향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찌이이잉-!

갑자기 동서남북을 점하고 있던 마법진에서 강력한 마력이 치솟더니 부유성 쪽으로 쏟아졌다.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분명 저 마법진은 사탄의 것이었다.

"흠…."

박막순은 이마의 주름을 한껏 만들어내며 마법진에서 쏟아지는 빛을 계속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그대로 두고 간다면, 오즈로 갔을 때 계속 생각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껄끄러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박막순은 곧장 짚고 있던 지팡이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두 다리로 일어선 채 양손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세 개의 삼각형 마법진이 박막순의 눈앞에 동시에 떠올랐다.

마법진은 겹쳐지며 구망성이 되었다.

이른바 트리플 캐스팅이라는 거다.

"흐음, 메인은 어둠의 상성인 빛. 그리고 번개와 약간의 얼음이 좋겠지…. 흐읍!"

양손을 기도하는 것처럼 끌어모은 박막순이 그대로 다시 양팔을 크게 벌리더니 고도의 대마법을 전개했다.

고오오오!

그녀의 주변으로 중력이 거꾸로 치솟는 것처럼 자갈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막순이 팔을 활짝 펼쳤다.

이어진 것은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성 마법이라고 이름 지은 고도의 대마법 중 하나.

대마법사를 성좌로 둔 박막순의 장기 중 하나였다.

"떠나기 전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섀틀라이트 메테오."

유성의 궤적과 함께 사탄의 마법진이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자 박막순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포탈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르카 왕국, 부유성 내부.

사탄은 자신이 왕국 곳곳에 설치한 마법진과 판도라의 힘을 이용해 대폭발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아마 자신 또한 죽을 것이었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마법진에 있는 마력과 함께라면 도망친 인간들과 함께 죽을 수 있을 것이니까.

죽음을 목전에 둔 사탄에게 그것은 크나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

이마 위로 쏟아져 내리던 거대한 힘이 점차 소멸되는 것을 느낀 사탄이 보기 드문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아리에스와 최춘택을 비롯한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춘택은 곧장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대폭발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오르카 왕국의 멸망을 막았습니다.]

"…휴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뭐야. 왜 카운트다운이 안 멈추는 거지?"

김수정의 말에 나도 모르게 다시 시선을 옮겼다.

정말 그녀의 말처럼 아직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0초가량.

그때. 사탄이 입을 열었다.

[…벌레들을 데려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이렇게 된 이상 너희들과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부유성과 함께 침몰하는 것이다. 후후후후….]

나지막한 사탄의 웃음이 부유성 내부에 흘렀고, 아리에스가 그런 사탄을 죽이기 위해 재빨리 달려들려고 했지만, 사탄은 그런 아리에스를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명을 재촉하는 건가? 지금 날 건드렸다간 금세 폭발하고 말 텐데.]

[큭….]

아리에스가 분함을 삼키며 검을 거두었다.

우리들은 모두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춘택과 유저들이야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지만 성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NPC이기에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죽음 말이다.

"……."

째깍.

10초.

죽음이 다가와 목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서늘한 긴장감이 우리 사이를 흘렀다.

이미 밖으로 도망갈 시간 따윈 놓친 지 오래였다.

몇몇은 체념한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5, 4, 3, 2, 1….

[…작별이다. 하찮은 성좌들, 벌레들, 그리고 세상이여.]

찌이이잉-!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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