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31화
제331화
"후우. 허억…."
남궁 운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칼에 난자되어 찢긴 시체 한 구가 너덜너덜한 옷자락을 펄럭거리고 있었다.
남궁 운은 정면으로 오는 바람을 맞으며 쓰러진 태극 선인의 시신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았다.
동시에 후회라는 감정이 교차하며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이 목 너머로 치미는 것 같았다.
"……."
남궁 운은 천천히 태극 선인의 시신 곁으로 다가가서는 눈을 감으며 짧은 묵념을 한 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일행들은 산을 넘은 건가."
저 멀리 있는 산 너머로 짙은 마기의 흐름과 병장기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 저쪽이 마왕 베르제브가 있는 곳일 테지.
'빨리 도우러 가야겠군.'
남궁 운은 딱딱하게 변한 자신의 손등과 얼굴을 매만졌다.
마치 나무의 껍질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신에게 물려주신 이 힘은 남궁 가문의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도 같은 힘이었다.
이것은 저주이자, 보물이자, 지켜야만 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남궁 운이 다리에 힘을 주며 튀어나가려는 바로 그때.
쿠우우웅-!
커다란 진동음과 함께 전신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궁 운은 고개를 홱 돌려 커다란 진동의 근원지를 찾았다.
"무림맹이…!"
지금 하늘에선 커다란 운석 무리가 무림맹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무림맹은 화마에 휩싸여 불타올랐다.
'저곳엔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있는데…!'
남궁 운의 신형이 활처럼 휘며 허공을 박차고 달렸다.
이 모습으로 변한 남궁 운은 허공답보의 경지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남궁 운은 순식간에 무림맹에 도달할 수 있었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다행히 운석을 피해 달아나는 주민들을 발견하였다.
아마 병사들이 미리 떨어지는 운석을 보고는 대피를 시킨 모양이었다.
"……!"
그때. 또 다른 운석이 모여 있는 이들을 향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남궁 운이 쾌속의 움직임을 선보이며 운석의 앞에 나타나 일검을 내질렀다.
콰르릉!
정갈하게 갈무리 된 벼락이 운석의 중심을 꿰뚫으며 폭사시켰다.
이어서 남궁 운은 하늘로 검을 치켜들었고, 동시에 먹구름이 하늘에 몰려들었다.
'비야. 내려라…!'
쏴아아아-!
난데없는 장대비가 무림맹에 쏟아져 내렸다.
타오르던 화마가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그 순간 공간이 갈라지더니 눈앞에 커다란 형체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존재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남궁 운은 눈앞의 흑사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은 누구냐?"
[놀랍군. 놀라워. 설마하니 이렇게 꽁꽁 숨겨 뒀을 줄이야. 하하하하!]
루시퍼의 웃음소리가 무림맹 전역에 떨쳐지며 울렸다.
웃음소리에도 짙은 마기가 강하게 서려 있는 것이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네놈이 누구냐 물었다."
[후후후.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무슨 소리지?"
[…어차피 죽을 텐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오만하군."
[하하하! 오만의 마왕에게 오만하다니. 재밌구나.]
루시퍼가 짙은 마기를 끌어 올렸다.
신살의 기운이 서린 발톱이 날카롭게 빛났다.
남궁 운 또한 더욱 강한 힘을 끌어올렸다.
눈앞의 존재는 쉬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고오오오-!
남궁 운의 머리 위로 어떤 형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의 등엔 푸른 용이 그려진 채 빛나고 있었다.
마침내 허공엔 푸른 용의 형상이 맺히며 울부짖었다.
[자아, 창천의 용이여. 어디 그 힘을 내보여 보아라.]
* * *
한편, 베르제브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일행들은 모두 거대한 지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심상치 않은 진동이었기에, 그들은 싸우면서도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마왕이 맹을 습격을 했다고 하오! 다친 이들만 조금 있을 뿐. 인명피해는 없다고 하니 다들 안심하고 싸움에 집중하라는 맹주님의 전언이오!"
무당의 임시 수장을 맡은 노장로의 외침이 이어졌다.
화산파의 수장 폭매검이 투덜거렸다.
"제기랄! 여기도 마왕 저기도 마왕! 아주 지겹다 지겨워!"
"어서 서두릅시다! 이곳의 마왕을 정리하고, 서둘러 맹주를 도와야 하오!"
"망할 언데드 놈들!"
그렇게 가라앉았던 전장이 다시금 활기를 띠던 그때.
사아아아-.
언데드들과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던 이들의 머리위로 물음표가 띄워졌다.
갑자기 언데드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며 땅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벚꽃잎 한 자락이 휘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누군가 소리쳤다.
"검성의 제자가 이 요물들을 소환한 자를 쓰러트린 모양이오!"
"오오! 과연 검성의 제자로군."
"이제 남은 것은 마왕뿐이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마왕 베르제브에게로 모여들었다.
베르제브는 최후방에서 커다란 몸을 주저앉힌 채 일행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던 중이었다.
베르제브는 사라지는 언데드를 보며 네크론이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한 존재들이구나….]
어차피 다시 네크론이 살아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심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베르제브는 불러냈던 역병의 군단을 다시 불러 모았고, 그것은 자신의 질병 또한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큰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이유에서였다.
우우우웅-!
역병을 운반하는 파리들이 베르제브의 몸 곳곳에 들러붙었다.
숫자는 점차 늘어나더니, 마침내 몸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곤충의 모습으로 변모를 마친 베르제브였다.
벌의 날개와 몸 곳곳에서 뿜어내는 맹독.
사마귀의 턱과 날카로운 손을 자랑하는 그의 왼손엔 피에 절은 천칭이 들려져 있었다.
그때. 베르제브가 커다란 공명음을 내며 울었다.
찌르르르-!
그것은 매미의 울음소리와 닮아있었다.
"크윽!"
"크아악!"
"귀가…!"
베르제브의 울음소리는 잠깐의 청각 마비를 일으키며 두통과 이명을 수반하였다.
[하찮은 너희들의 심장은 이곳에 걸려질 운명이거늘…. 참으로 가소롭구나. 나 폭식의 마왕이 너희들의 죽음을 폭식하겠다.]
그 순간.
베르제브의 천칭이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철컹!
동시에 모든 이들의 무릎이 주저앉았다.
"이, 이건…!"
"이런 힘이 있다니!"
"큭! 일어설 수가 없잖아!"
각 문파의 수장들이 무릎을 꿇은 채 분통을 터트렸고, 이누무시키 또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억지로 힘을 주어 일어섰다.
현재 간신히 일어서 있는 것은 백무열과 견소룡. 그리고 이누무시키 뿐이었다.
카미유는 땅을 짚은 채 간신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때. 카미유가 소리쳤다.
[이게 그의 진짜 힘이에요! 다들 조심하세요! 그는 중력을 다룰 수 있어요!]
그와 동시에 이누무시키가 눈앞의 베르제브에게 정면으로 날아올랐다.
왼쪽엔 견소룡이 있었고, 오른쪽이 백무열이 있었다.
이누무시키의 검에 벚꽃이 넘실거리는 순간.
철컹!
천칭이 반대로 기울었다.
[…음!]
"……!"
"……!"
세 사람이 동시에 당황하였다.
위에서 힘을 가하던 중력이 반대로 이번엔 몸을 너무 가볍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베르제브의 신형이 벌처럼 사라지며, 사마귀를 닮은 날카로운 손등의 날을 이용해 그들을 베었다.
촤촤촤촥!
하지만 가만히 있을 카미유가 아니었다.
카미유는 즉시 반딧불을 조종해 세 사람에게 보호막을 둘러쳤고, 동시에 치유의 반딧불을 보내 그들 셋은 간신히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빚을 졌구려.]
[인사는 나중에 해요.]
[그럽시다.]
백무열과 마이클이 동시에 카미유에게 감사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자, 뒤편에서 네크론을 정리하고 온 마이클이 합류했다.
그런 그들의 앞에서 베르제브가 위협적인 맹독을 뿜어내었다.
[카미유…. 난 언제나 네가 싫었지. 이번 기회에 기필코 너를 죽이고 말겠다.]
베르제브의 눈빛이 빛났고, 이누무시키. 견소룡. 마이클. 백무열이 동시에 베르제브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견소룡은 천천히 품속에서 ['사랑의 처형자'의 차원 가위]를 꺼내고 있었다.
* * *
오르카 왕국, 부유성.
사탄은 옥좌에 앉은 채 손목으로 와인잔을 돌리며, 몽환의 미궁에 빠진 이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저 인간은 대체 뭐지…?]
사실 몽환의 미궁은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정신계 마법과 환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공간 마법이었고, 환상의 미로를 만들어내 그들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정신 감옥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그동안 자신이 길러온 마수들을 저곳으로 보내지 않았던가.
[마계에 있을 때도 저곳을 통과한 건 루시퍼 말곤 없었는데….]
한번은 다른 마왕들에게도 저것을 쓰며 장난을 친 적이 있던 사탄이었다.
다른 마왕들은 헤맸던 반면 루시퍼는 너무나 손쉽게 자신의 미로를 파훼하였다.
어쨌든 그 뒤로 사탄은 루시퍼를 온전히 따르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그동안 그의 명을 충실히 따라왔다.
[그런데 저 인간은 어찌 저리 쉽게 통과한단 말인가….]
눈앞의 늙은 인간은 무척이나 손쉽게 미궁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함정은 모조리 피해내었고, 마수가 적은 지름길만 골라서 움직이는 것이 마치 처음부터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저 속도라면 머지않아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크르르륵."
사탄의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애완 마수 키메라가 으르렁거렸다.
[후후. 너도 가고 싶은 모양이구나.]
키메라는 그동안 기른 마수들 중 사탄이 가장 아끼는 마수였다.
사탄은 그런 키메라를 진정시키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동시에 와인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그는 뻥 뚫린 천장의 하늘을 올려보며 커다란 보름달을 보았다.
붉게 물든 것이 오늘은 블러드 문이 뜨는 날인 모양이었다.
[마계에서 매일 보던 달이었거늘. 오늘은 무척이나 감명 깊구나. 후후후후. 하하하하-!]
사탄의 웃음소리가 텅 빈 대전에 메아리쳤다.
그는 붉은 달에서 시선을 떼 다시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눈앞에 띄워진 화면엔 캣 베이커가 피리를 불며, 자신의 정신계 마법을 부수며 인간들을 돕고 있었다.
하찮은 고양이 성좌가 자신의 원대한 꿈을 부수다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하찮은 고양이 따위가….]
콰드드득!
사탄의 머리 위로 뿔이 두 개 더 솟았다.
분노의 마왕인 자신은 깊은 분노를 느낄수록 뿔의 개수가 늘어나곤 했다.
물론, 힘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건 당연하다.
- 고맙습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고양이 신이시여!
콰득!
또 한 번 머리 위로 새로운 뿔이 솟아났다.
사탄은 옥좌의 팔걸이 부분을 힘껏 거머쥐었다.
퍼억!
너무나 힘을 준 나머지 양쪽의 팔걸이가 모두 부서져 버렸다.
[내 너희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었거늘. 어찌하여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냐.]
사탄은 또 한 번 뿔이 자라났다.
이제 그의 뿔은 총 여덟 개.
촤아악!
사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날개를 활짝 펼쳤고, 두 장이었던 날개 밑이 찢어지며 네 장의 날개가 더 펼쳐졌다.
붉은빛의 적안이 블러드 문을 닮은 것처럼 번들거렸다.
키메라 또한 뛰어오는 발소리를 감지했는지, 으르렁거리며 몸집을 키워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마침내 기다리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탄은 붉게 충혈된 눈을 번들거렸다.
[너희 같은 벌레들은 살 가치가 없노라.]
콰드득!
사탄의 머리 위로 마지막 뿔 두 개가 자라나며, 등 뒤로 분노와 뒤섞인 적색의 마기가 넘실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