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28화
제328화
몇 시간 전.
반딧불 성좌 카미유는 마침내 해독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당장 실험도 하지 않고, 쓸 수 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마침 이누무시키와 함께 정원에서 합을 주고받으며 수련을 하고 있던 백무열이 카미유의 눈에 들어왔다.
"……."
잠시 뒤, 졸지에 실험체가 되어버린 백무열이 멍한 표정으로 눈앞의 좀비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륵. 딱딱."
양팔과 양다리에 쇠사슬이 묶인 좀비가 백무열을 향해 이를 부딪히며 쇠사슬을 찰랑거렸다.
백무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좀비의 머리 위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주의! 물리면 좀비로 변하게 되고, 좀비로 일정 시간 플레이 합니다. 특정 시간 동안 좀비화를 풀지 못하면 캐릭터가 삭제됩니다.]
'이거야 원.'
백무열이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렸다.
단 한 번이라도 물리면 정말 끝장이었다.
그러나 카미유는 그런 백무열의 속도 모른 채, 태연하게 물약 하나를 내밀었다.
[드세요.]
"정말 이걸로 저 좀비를 치료할 수 있다고?"
[네.]
"근데 왜 해독약을 좀비가 아니라 나에게 주는 겐가. 혹시 물리거나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 그런 모험은 좀…."
[그런 건 아니니까 일단 드세요. 먹어보면 아실 거예요.]
"크흠."
백무열은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으로 순식간에 카미유의 해독약을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뒤.
"음?"
백무열의 몸에서 카미유의 반딧불과 같은 오오라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사방을 날아다녔다.
우웅. 우우웅.
"이건…."
백무열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반딧불을 보았다.
그리고 반딧불은 좀비에게 달라붙더니, 순식간에 흉측한 몰골을 지우고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내기 시작했다.
좀비는 마침내 완전히 사람이 되었다.
"여, 여긴…?"
[다행히 효과가 있네요. 전 바로 맹주에게 해독약을 완성했다고 말하고 오겠습니다. 아마 곧 전투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카미유는 그 말만을 남기고 흩어지며 사라졌다.
남은 것은 백무열과 좀비에서 사람으로 돌아온 이름 모를 남자 NPC뿐.
그런데 놀라운 건 사람으로 변한 그 남자의 몸에서도 자신과 같은 반딧불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긴 어디죠? 제가 왜 여기 묶여 있습니까? 그리고 몸에서 올라오는 이건 대체…."
"……."
백무열은 말없이 목검으로 남자의 손에 묶여 있는 쇠사슬을 잘라냈다.
촤라락.
손목을 주무르는 남자에게 백무열이 말했다.
"그건 차차 설명해주겠네. 일단 따라오게."
* * *
1시간 뒤, 무림의 모든 핵심 전력들이 성문 앞에 집합했다.
그들의 손엔 카미유가 준 해독약이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가장 먼저 무림맹주 남궁 운이 해독약을 들이켰고, 이어서 각 문파의 수장들과 병사들 또한 똑같이 따라 마셨다.
곧이어 그들의 몸에서 해독의 기운이 반딧불처럼 넘실거렸다.
"성문을 열어라!"
무림 맹주 남궁 운의 굳센 외침에 닫혀있던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처럼 뛰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좀비의 재앙 이후.
처음으로 활짝 열어보는 성문이었다.
쿠웅!
그렇게 마침내 처음으로 성문이 활짝 열렸고, 가장 먼저 튀어 나간 것은 백무열이었다.
역시나 열자마자 움직임을 감지한 좀비들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그워어억!"
"웨에엑!"
"우에엑!"
그러나 그 많은 좀비들은 백무열에게 닿지도 못한 채 바로 앞에서 하나둘씩 무릎을 꿇으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몇몇은 사람으로 돌아갔고, 이미 많은 상처를 입어 회복이 어려운 이들은 그저 평범한 시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 또한 탄성을 내뱉으며 소리쳤다.
"저, 정말이다! 해독약이 효과가 있어!"
"좋아. 우리도 질 수 없지. 가자-!"
"화산의 제자들은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일제히 터진 함성이 신호탄이 되어 해독약을 먹은 이들이 좀비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를 쥐고 죽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좀비들은 사람으로 돌아왔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렇게 사람으로 돌아온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해독약의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카미유로군. 정말이지 놀라운 효과요.]
[과찬이에요.]
이누무시키의 말을 남궁 운이 받았다.
"죄송하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합니다. 병사들은 이 상태로 동대륙 각지로 흩어지면 되지만, 저희 핵심 전력들은 마왕을 죽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습니다."
[음, 옳은 말이다.]
이누무시키, 카미유, 백무열, 견소룡과 무림맹의 인물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동대륙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악의 근원을 죽이는 것.
하지만 얼마지 않아 그들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지!"
남궁 운의 외침에 빠르게 움직이던 모든 이들의 발길이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익숙한 도포를 입은 좀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태극선인…."
* * *
메테우스, 오크 고르바의 부락.
[흐음. 여기에도 없는 건가….]
같은 시각.
루시퍼가 바위에 앉아 턱을 괸 채, 불타는 오크 부락을 보며 무심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발아래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오크 족장 고르바가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허억. 허어억…."
[아직 숨이 붙어있나? 꽤 튼튼한 녀석이군.]
루시퍼가 특유의 오만한 웃음을 흘리며 그런 고르바를 기특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후후. 처음에 나를 이길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간 거지?]
"취이익…. 넌…. 강하다…. 고르바…. 인정한다…. 허억…."
고르바가 엎드린 채 불타버린 마을을 보며, 낮은 탄식과 함께 점차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오크들을 살린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현재 어른 오크들은 메테우스의 확장 공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전부 나가있는 상황이었고, 남아있는 것은 고르바를 비롯한 어린 오크들과 여자 오크들 뿐이었다.
그는 어린 오크를 대피시키기 위해 남자답게 1대 1로 붙을 것을 청했는데, 다행히 눈앞의 존재는 그것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고르바는 간신히 어린 오크들과 여자 오크들을 살릴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빠직!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
그것은 자신의 친구인 잭슨이 만들어 준 [거미 다리 10층 석탑 구이]였다.
고르바는 그가 가르쳐 준 것을 잊지 않고 다른 오크들에게 널리 전파하였는데, 오크들 사이에서 그것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얼마 전 북극의 서리 오크들을 찾아가 이것을 전해주기도 했고, 다른 부족의 오크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주었다.
그렇게 오크들의 사이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인가….'
점차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눈앞의 존재는 이제 자신을 죽일 것이 분명했다.
처음이었다.
사나이 고르바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진 것은.
'아니, 처음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한 번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였던 잭슨에게 당했을 때였다.
그때의 그는 정말 강했었다.
'훗.'
고르바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 괜스레 웃음이 나는 것 같았다.
안 본 지 꽤 오래됐는데, 문득 그 친구가 보고 싶어서였다.
[그래도 꽤 재밌는 유흥이었다. 다시 한번 묻지. 가을의 균형자는 어디 있지?]
루시퍼가 고르바에게 물었다.
루시퍼가 지금 이곳으로 온 것은 아크 대륙의 남쪽에 있는 '가을의 균형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느 곳을 뒤져봐도 가을의 균형자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남쪽의 금제가 풀린 지는 오래였지만 혹시나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 오크의 부락을 찾았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이었다.
"…취익. 난 그딴 거 모른다니까."
[흠. 어쩔 수 없군. 하긴 네놈이 알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지. 이만 곱게 보내주마. 잘 가라.]
루시퍼의 손끝에 흑색의 빛이 살짝 모여들었다.
고르바는 처음으로 죽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당장 불을 꺼! 오크들을 구해!"
갑자기 나타난 메테우스의 병사들이 물동이를 가져와 오크 부락 곳곳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루시퍼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운이 좋군. 그분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저들도 몽땅 죽이고 메테우스도 부수었을 테지만….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그 말을 남긴 루시퍼가 손을 딱! 튕겼다.
그리고는 공간이 갈라지더니 포탈이 생성되었다.
그가 지금 향하는 곳은 동대륙.
이곳에서 가을의 균형자를 찾아 조용히 처리하려 했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으니 봄의 균형자라 불리는 '창천의 용'을 먼저 찾아 죽일 셈이었다.
'순서야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루시퍼가 포탈로 발을 올렸고, 이내 자취를 감춰버렸다.
고르바는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눈을 감았다.
깜깜한 어둠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다! 여기에 고르바가 있다!"
* * *
그 무렵. 나는 깨지는 오르카 왕국의 결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계가 사라진다!"
"다들 들어갈 준비해!"
"곧장 마왕을 잡으러 간다!"
바로 옆에 있던 아리에스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성공한 모양이군. 설마, 안에 있는 자를 키르키노스의 권속으로 삼을 줄이야.]
그런 아리에스와 마찬가지로 나도 팔짱을 낀 채 사라지는 결계를 보았다.
결계는 벌써 2/3까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지니의 위에 올라탔고, 드레인에게 향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모든 결계가 사라질 때 즈음.
스윽-!
아리에스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전군! 돌격하라!]
와아아!
일제히 함성과 함께 성좌들이 날아올랐다.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고양이 성좌 캣 베이커의 피리 소리.
삐리리-!
최고의 서포터 성좌 중 하나인 그녀는 아군을 북돋우고 능력을 상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천상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3배 상승합니다.]
[각종 정신계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이만큼 광활한 범위를 책임지는 능력치의 상승과 상태 이상 해제는 처음 보았다.
과연 그녀는 칠성협의 일원다웠다.
캣 베이커의 주위에 있던 오르카 왕국의 NPC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엇, 여긴 어디지?"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여기에?"
착실하게 진행되는 계획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장 지니를 타고 하늘을 날아 드레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드레인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야, 타!"
"브라더!"
덥석!
아슬아슬하게 드레인의 손을 낚아챈 밑으로 아직 마법이 풀리지 않은 이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드레인을 들어 올려 지니에 안착시켰다.
"괜찮냐?"
"휴. 진짜 죽는 줄 알았다구요."
드레인의 한쪽 손엔 마력으로 만들어진 집게발이 있었다.
드레인이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말했다.
"후후. 이거 정말 굉장하다구요. 마법진이 아주 싹둑 잘리던데요?"
"주먹 들어봐."
"이렇게요?"
"그래."
나는 드레인의 주먹에 맞대는 것처럼 툭 갖다 댔다.
그러자 츠츠츳. 하는 소리와 함께 키르키노스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거해궁, '키르키노스'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키르키노스. 대충 사정은 알고 있겠지?"
[거해궁, '키르키노스'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좋아. 이 녀석에게 네 능력에 대해 빠르게 가르쳐라. 이대로 사탄이 있는 곳으로 갈 거니까."
"왓? 브라더. 그 무지막지한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간다구요? 오우, 미친…."
"꽉 잡아!"
"갸아아악!"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