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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26화 (32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26화

제326화

나와 박막순은 함께 지니를 타고 빠르게 오르카 왕국으로 향했다.

지니가 지나간 길은 옅은 구름이 발자국처럼 잔상을 남겼다.

큰일을 겪은 뒤라 그런지 노곤함이 몰려왔고, 나는 지니의 구름에 몸을 맡긴 채 박막순에게 춘자를 얻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흐미. 그러니까 오라버니 말은 그 뭐시냐. 포트렌인지 뭔지 하는 곳에 갔다가 우연히 구한 부엉이가 알고 보니 특별한 능력을 지닌 부엉이였고, 그게 알아보니 레추자였다?"

"그런 셈이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박막순의 말에 긍정했다.

"시방. 운도 좋아라. 횡재혔네. 횡재혔어."

박막순이 특유의 낄낄거리는 늙수그레한 웃음을 지으며 웃자, 나 또한 함께 껄껄 웃었다.

박막순에게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하려면 할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많았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그저 쉬고 싶었다.

"에혀. 난 좀 자련다."

"에구구. 시방. 나도 좀 앉아서 쉴라요."

박막순이 다리를 쭉 핀 채 허리를 두들기며 주저앉았고, 나는 지니의 구름을 손으로 뭉쳐 작은 베개를 만든 뒤,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

코 고는 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박막순이었다.

"드러러러렁!"

"……."

안 잘 것처럼 하더니, 코 한번 더럽게 크게 고네.

"끙."

나는 곧장 상체를 일으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내려 땅을 보았다.

내려다본 대륙의 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던 바로 그때.

"저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성좌들의 기운을 감지합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다수의 성좌들을 느낍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의 말대로 지금 내가 시선을 둔 곳은 오르카 왕국의 입구에 서성이는 다수의 인영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떤 결계에 가로막힌 채 안으로 진입하지 못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곳에서 느껴지는 힘이 강대한 것이 메테우스에서 출발한 성좌들이 분명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네. 에구구."

나는 간신히 무릎을 일으켜 세운 뒤, 박막순을 흔들어 깨웠다.

"막순아."

"드러러러렁!"

"막순아!!"

"컥! 무, 무슨 일이야? 뭐야. 응?"

잘 자다가 무안했는지 박막순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연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

"어여 일어나. 내려야 되니까."

"오오미. 벌써? 아따 겁나게 빠르네잉. 5G 시대라더니."

박막순이 눈을 비비고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뒤, 나와 박막순은 아리에스가 이끄는 성좌들과 메테우스의 병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메테우스의 병사들은 내가 하늘에서 나타나자, 무기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그들의 환호 소리를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 시켰다.

김수정과 마석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오셨어요. 아버님."

"왔수. 형님."

"둘 다 고생이 많구나."

나는 가볍게 두 사람을 위로한 뒤, 바로 뒤편에 있는 아리에스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전에 봤을 때보다 한층 머릿결이 더 꼬불거리는 것 같았다.

[온다는 얘기는 앞의 두 사람에게 들었다. 그런데 좀 뜻밖의 문제가 생겼군. 우리 생각보다 왕국을 둘러싼 결계가 무척이나 강하다. 우리 모두의 공격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아리에스의 말에 나는 다시 시선을 눈앞의 결계로 가져갔다.

옅은 보랏빛과 분홍빛이 어린 결계는 마치 어느 누구의 출입도 불허하겠다는 것처럼 선명하게 빛을 뿜어내었다.

여기 있는 성좌들이 모두 힘을 합쳤는데도 안 될 정도라면, 아마 나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하지만.

"방법이라면 있다."

[…방법이 있다고?]

"그래."

나는 다시 아리에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밖에서 안 된다면 안에서 하면 된다.

"지금 저 안에 내 동생이 들어가 있다."

좀 못 미덥지만 일단은 믿어보자.

* * *

다크문, 도깨비 왕의 거처.

그때쯤, 미도와 일행들은 도깨비 왕 쇠꼬비를 맞아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도깨비 왕 쇠꼬비는 무척이나 강했다.

애초에 상성에서 밀리는 것도 컸고, 태초의 오크였던 무두르와 함께 쇠꼬비 또한 태초의 도깨비였기에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그 힘은 이젠 궁좌들마저도 뛰어넘을 지경이었다.

어쨌든 일행들은 가공할 쇠꼬비의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윽, 도깨비 왕의 힘이 이 정도였던가…!]

인마궁 키론이 간신히 방망이를 피해내 활시위를 걸며 말했다.

그런 키론의 뒤편에서 말벌 성좌 무스카가 날아올라 손등에 있는 기다란 독침을 쇠꼬비의 다리로 연신 찔러 넣었다.

[하아아앗!]

티티티팅-!

그러나 무스카의 독침은 쇠꼬비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무스카는 무척이나 놀랐다.

강철마저도 찌를 수 있는 자신의 독침을 아무렇지 않게 튕겨낸다는 건, 쇠꼬비의 피부가 강철의 강도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는 뜻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슈우웅!

그때. 무스카의 옆을 바람처럼 지나간 토끼 성좌 레푸스가 뒷다리의 힘을 개방하며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레푸스는 옅은 잔상을 남기며 쇠꼬비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 틈에 키론의 화살이 목표물을 찾았고, '동쪽의 현자'라는 별명을 가진 키론은 현자의 눈으로 적의 허점을 찾기 시작했다.

키론은 한때 이 현자의 눈으로 세상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기에 웨폰 마스터라 불리기도 했었다.

현재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활이었다.

[저기다!]

키론이 활시위를 놓았고, 그의 화살이 떠난 곳은 쇠꼬비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푸욱!

처음으로 쇠꼬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 이놈들아! 아프다!"

쇠꼬비는 벌게진 눈으로 자신에게 화살을 쏜 키론을 노려보았다.

"크으윽. 한낱 성좌 따위가 태초의 존재를 우습게 보는구나!"

바로 그때.

쇠꼬비의 몸 주변이 불타는 듯한 기운이 들끓더니, 휘두르던 방망이를 높이 치켜들고는 아래로 내리찍듯 휘두르려고 자세를 잡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세인 것은 분명했다.

"오빠들.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아씨. 피해야 할 거 같은데!"

"야! 김현우. 무슨 방법 없어? 너 탱커잖아!"

"난 뭐 고통도 없는 줄 알아? 저거 맞으면 즉사라고 즉사!"

미도를 포함한 은정혁, 박태현, 김현우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카루스 길드원들 중 절반은 이미 저 방망이 공격에 힘도 쓰지 못하고 당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공격 또한 당연히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을 터였다.

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구룩!"

바로 그때. 미도가 위험하다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채 잠자코 있던 춘자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쇠꼬비를 향해 날아올랐다.

미도 또한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엇, 춘자야!"

그러나 춘자는 아랑곳 앉은 채, 거대한 기를 모으고 있는 쇠꼬비의 눈앞에 나타났다.

춘자는 각종 마법을 쏟아내기 위해 고고한 달의 마력을 끌어올렸고, 샛노란 달의 마력이 춘자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쇠꼬비의 망막에 자그마한 부엉이가 맺힌 바로 그 순간.

"크레센트 님…?"

쇠꼬비가 모으고 있던 기를 다시 거두어들였다.

* * *

오르카 왕국, 듀크 공작의 저택.

그때쯤 드레인은 혹시나 자신처럼 정신계 마법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찾기 위해 저택 내를 여기저기 뒤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당연히 듀크 공작이었다.

하인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갔는지 저택은 텅텅 비어 있었고, 듀크 공작의 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끼이익-.

드레인이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공작님 계십…."

"크어어어."

"니까…. 이런 쉣!"

드레인은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듀크 공작을 발견하긴 했는데, 정신계 마법에 걸려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눈이 뒤집힌 듀크 공작은 마치 한 마리 굶주린 짐승처럼 이를 딱딱거렸다.

드레인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 깨어있는 건 나뿐인가?'

아까 전 커텐을 걷었을 때 보인 광경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풍경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종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고, 또 몇몇은 저택에 불을 지르며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사탄의 동상을 세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또 서로 싸우기도 했다.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워어어우어?"

눈앞의 듀크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워어어억!"

"쉣! 쉣!"

드레인은 재빨리 다시 들어왔던 문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갔다.

텅! 터엉!

문 너머로 괴성을 지르며 몸통을 부딪히는 듀크 공작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행히 문은 단단했고, 잠시 뒤. 다시 잠잠해지자, 드레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좀비. 저기도 좀비. 정말이지 게임 할 맛이 안 나는군. 갓뎀."

드레인은 잠깐이지만, 게임을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준 아크스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는 바로 그때.

[유저, '잭슨' 님에게 귓속말이 도착했습니다.]

브라더 최춘택 형님에게 귓속말이 도착했다.

드레인은 지체하지 않고, 귓속말 창을 열었다.

- 잭슨: 지금 뭐하고 있냐.

- 드레인: 오우, 뭐하긴요. 그냥 저택에 콕 박혀 있지요. 밖은 완전히 아수라장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 잭슨: 흠. 그래? 아무튼, 지금 너만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얘기지?

- 드레인: 예? 뭐, 그런 것 같네요. 밖을 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 잭슨: 잠시만 기다려봐라.

"……?"

드레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잠시 기다리라는 건지 이유를 몰라서였다.

어쨌든 일단 기다리라고 했으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최춘택에게서 답장이 왔다.

- 잭슨: 옥상으로 갈 수 있냐?

- 드레인: 옥상이요? 잠시만요.

드레인은 곧장 저택의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

다행히 나타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드레인은 옥상에 도착해서 다시 귓속말을 했다.

- 드레인: 도착했어요.

- 잭슨: 혹시 기둥 같은 거 안 보이냐? 빛 같은 거.

드레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빛으로 이루어진 기둥을 찾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남서쪽 부근에 가까운 빛의 기둥이 올라온 것이 보였다.

아마 저것을 말하는 것일까?

- 드레인: 찾았어요. 여기서 남서쪽에 가장 가까운 빛이 솟구치고 있군요!

- 잭슨: 오, 잘했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움직여라. 그리고 가면 무슨 마법진 같은 것이 있을 게야. 마법진을 흩트려 놓으면 된다네?

- 드레인: 왓? 지금 그게 무슨….

- 잭슨: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해줄 테니, 일단 움직여라.

- 드레인: 왓 더….

- 잭슨: 어허.

- 드레인: …알았어요.

하는 수 없이 드레인은 옥상을 내려왔다.

그리고 바깥을 나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 1층으로 향하려….

"…오 마이 가쉬."

했지만 실패했다.

"하인들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에 모여 있었네."

하긴 듀크 공작은 원체 누군가의 간섭을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일할 때도 그렇고, 쉴 때도 그렇고, 항상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성격이었기에 하인들은 모두 1층으로 보낼 때가 많았다.

그나마 드레인은 조용한 편이었고, 가끔 공작의 말벗을 하기도 했었기에 2층에 남을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길 어떻게 뚫으란 거야…!'

- 드레인: 저기 브, 브라더…?

- 잭슨: 왜?

- 드레인: 1층에 좀비들이 깔려서 못 나가겠는데요?

- 잭슨: 좀비? 혹시 물리면 감염되고 그런 거냐?

드레인은 잠시 아까 전 보았던 바깥 풍경을 떠올렸다.

분명 싸우기는 했지만, 물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리고 감염되고 그런 것 또한 없었다.

- 드레인: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 잭슨: 그럼 뭐가 문제냐. 좀비인 척해.

- 드레인: 왓? 유 키딩 미? 지금 장난해요?

- 잭슨: 농담 아니다. 빨리 움직여라. 도착하면 귓속말하고.

[유저 '잭슨' 님과의 귓속말이 끊겼습니다.]

"왓 더…."

드레인은 하는 수 없이 깊게 숨을 골랐다.

심호흡을 했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렇게 드레인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섰다.

카펫이 깔려 있었기에 다행히 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대로만 가면 조용히 나갈 수 있을 것도 같….

틱!

제길. 역시 그럴 리 없나.

쉣! 쉣!!

"크우으윽?!"

"우워우어."

"와아악?"

듀크 공작의 하인들이 눈을 뒤집은 채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중엔 꽤 친했던 하인들도 몇몇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드레인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드레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워어어우어?"

그리고는 태연히 좀비처럼 눈을 까뒤집고, 몸을 비틀거리며 활짝 열린 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움직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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