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324화 (32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24화

제324화

오르카 왕국, 듀크 공작의 저택.

"…으음."

드레인이 짧은 신음을 흘리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바로 자신의 개인 디자인실이었다.

주변은 온통 깜깜했고, 켜져 있는 촛불도, 사람의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덩그러니 세상에 혼자 놓여진 것처럼 짙은 고독함만이 이 저택에 남겨진 전부였다.

드레인은 헝클어진 머리와 정신을 가다듬고, 눈앞에 띄워진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대단위 정신계 마법, '꿈의 궁전'이 오르카 왕국 전역을 집어삼킵니다!]

[꿈의 궁전이 풀리지 않는 한 유저는 해당 캐릭터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강력한 마기와 정신적인 죽음을 일으키는 마법이 당신을 집어삼킵니다. 주의하십시오!]

[저항하셨습니다.]

"……."

드레인은 메시지를 들여다보며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분명히 옷과 구두를 완성했을 때였는데…."

얼마 전 드레인은 브라더가 비밀리에 보내준 벨페고르의 뿔과 뼈.

그리고 가죽들을 이용해 선물할 요리 정장을 한 벌 만드는 중이었다.

그러나 갖고 온 재료가 무척이나 귀한 것이었고, 또한 심혈을 기울여야 했기에 드레인은 밤낮을 꼬박 새면서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요리 정장의 완성을 기뻐하던 바로 그때.

갑자기 탁한 빛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들이닥쳤다.

문자 그대로 빛의 속도였기에 당한 것은 찰나였다.

드레인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은 채 기절했고, 깨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저항했다고? 내가 어떻게…."

그 의문은 바로 밑의 메시지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높은 정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마기와 죽음에 저항력을 지닌 물건이 당신 손에 있습니다.]

[몇 시간 뒤에 당신은 깨어납니다.]

"아…."

드레인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정신력은 그동안 수없이 옷을 만들며 높아진 능력치 중 하나였다.

디자이너란 직업은 높은 솜씨 능력치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기에 정신력 능력치가 높은 편이었다.

드레인은 아크스타를 시작하며 단 하루도 옷을 만드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고, 높은 정신력과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오르카 왕국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장인이라고 부를 정도였을까.

"그렇다면 마기와 죽음에 저항력을 지닌 물건은 설마…?"

그제야 드레인은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 쥐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애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었던 요리 정장.

그리고 그런 자신의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의 요리 정장 상의 – 세트]

등급: 신화

내구력: 5000/5000 방어력 890

모든 능력치 + 30

마왕 벨페고르는 본디 금우(金牛)의 자리에 있었던 존재였다. 그는 금처럼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어떤 존재도 그만큼 강인한 방어력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마기와 죽음에 타락해버린 그의 가죽은 이제 무척이나 높은 마기와 죽음에 저항력을 가지게 되었다.

-매우 높은 확률로 마기와 죽음에 저항합니다.

-각종 화염계 마법 공격을 무효화합니다.

*세트 효과가 있는 장비입니다.

모든 세트를 장착할 경우. 특별 효과가 발동합니다.

-각종 물리, 마법 공격 90% 감소시키는 '금우의 의지' 발동.

"후후후, 쏘 판타스틱…."

드레인이 다시 한번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본인이 만들었던 옷 중 처음으로 신화 등급을 가진 옷이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드레인은 이어서 구두를 살펴보았다.

참고로 구두는 가죽으로 만들었지만 구두의 굽만큼은 벨페고르의 뿔과 뼈.

그리고 발굽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의 요리 구두 – 세트]

등급: 신화

내구력: 5000/5000 방어력 460

공격력 1280~2270

모든 능력치 +20

금우(金牛)의 존재였던 마왕 벨페고르의 뿔과 뼈. 그리고 단단한 그의 발굽을 갈아 새로운 광물로 뒷굽을 만든 구두다. 오르카 왕국의 대장장이들은 마왕 벨페고르의 과거 이름인 알데바란을 본 따, 이 광물의 이름을 '알데바라늄'이라고 지었다.

-스킬: '나태한 발 구름' 발동 가능.

*세트 효과가 있는 장비입니다.

"오 마이 가쉬…."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구두의 능력은 정말이지 무지막지했다.

특히 구두에 붙은 스킬인 '나태한 발 구름'은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드레인은 브라더가 이것을 신으며 싸울 모습을 상상하니 엄청난 뿌듯함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드레인은 구두를 보자 마침 생각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르카 왕국의 대장장이들이 '알데바라늄'이라 명명한 광물로 검을 만드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브라더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이었고, 선물할 사람들이 있다고 했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바깥은…."

촤악!

드레인이 가려진 커튼을 젖히며 밖을 보았다.

"왓 더…."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 * *

그 시각.

나는 산타클로스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함께 가지 않을 겁니까?"

[음, 난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 그동안 이곳 북극에 정이 너무나 많이 들어버렸어. 태초 신이신 가이아 님이 돌아가신 직후. 그분의 뜻을 좇아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물을 나누어주며 베풀며 살았지. 난 지금 현재 삶에 무척이나 만족한다네. 홀홀홀!]

"…어쩔 수 없군요."

[허허.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나. 툰드라 드래곤께서 돌아가신 지금 북극을 지키려면 나도 어쩔 수 없다네. 나라도 여길 지켜야지. 끙. 하필이면 마계화가 시작되었으니, 서둘러야 할 게야.]

"음, 그렇긴 하지요."

내가 스타 프루츠를 찾고 나서부터 얼마 뒤, 얼음 성 인근부터 조금씩 강력한 마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며 마계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생긴 마족들이 수 없이 많이 넘어왔고, 현재 우리들은 썰매를 타고 도망쳐, 얼음 성에서 많이 떨어진 허허벌판에 서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산타클로스의 뜻을 이해합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산타클로스가 하늘을 보았다.

[제4사도, '산타클로스'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산타클로스는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 내게 자그마한 얼음 보석을 하나 주었는데, 지니고 있으면 언제든 자신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니 소중히 간직하라고 하였다.

어쨌든 그렇게 나와 박막순.

그리고 제임스가 덩그러니 설원의 한복판에 남았다.

"저흰 이제 어쩌죠?"

제임스의 물음에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며 머리끈을 꺼내 뒤로 묶었다.

"일단 메테우스로 돌아가야…."

[드레인 님께 귓속말이 도착했습니다.]

"잠시만."

나는 제임스에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한 뒤 귓속말 창을 열었다.

- 드레인: 브라더. 나 좀 도와줘요.

- 잭슨: 음? 알아듣게 얘기해.

드레인은 귓속말로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 레오나르도 왕이 불사의 인간 추방령을 내렸을 때, 공작의 인맥으로 간신히 추방되지 않은 채 그의 저택에서 옷을 만드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꿈의 궁전'이라는 정신계 대 마법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쓴 장본인은 바로….

- 잭슨: 사탄이 그 짓거릴 했다고?

- 드레인: 예쓰! 여기 완전 크레이지! 지금 바깥의 NPC들이 사탄을 숭배하면서 절을 하고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있다구요! 곧 여기로도 들이닥칠 것 같아요. 괴성을 지르면서 사람들이 달리는데, 쉣! 무슨 좀비도 아니고!

드레인이 연일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며 화를 냈다.

한편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탄클로스가 가더니, 이젠 진짜 사탄이 나타나네.

- 잭슨: 잠깐만. 손녀가 지금 그리로 가고 있다고 들었다. 연락 한 번 해보마.

- 드레인: 오,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그렇게 이어서 나는 미도에게 귓속말을 해 드레인의 사정을 설명했다.

- 미도: 헉, 어떡하죠? 저 지금 다빈치를 구하러 왔어요. 여긴 지금 다크문이라는 곳이에요. 오르카 왕국으로 가는 중에 다빈치가 살려달라고 구조 요청을 보내왔거든요. 그래서 몇몇 성좌들이랑 이카루스 오빠들이랑 함께 와있는 상황이에요. 마침 숨겨진 비밀통로가 있더라구요?

제길. 낭패로군.

그나저나 오르카 왕국으로 가는 길목에 다크문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었나?

이건 처음 알았네.

아차, 이럴 때가 아니구나.

- 잭슨: 알겠다. 조심하거라. 듣자 하니 거기에도 마왕이 있다고 들었다.

- 미도: 네, 그럴게요. 아 참. 혹시 죄송한데 '춘자'좀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돌아다니다 보니 곳곳에 춘자를 닮은 동상이 많더라구요?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그러고 보니 지금 미도가 있는 다크문은 항상 달이 떠 있는 곳이었다.

뱀파이어와 도깨비들이 서로 세력다툼을 하고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은 달을 숭배하기에 헤카티아나와 달의 신수인 레추자를 동경하는 건 당연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도의 말대로 춘자가 있다면 도움이 될 지도 모를 일.

그리고 텔레포트 기능이 있으니, 언제든 미도가 위험에 처하면 도우러 갈 수 있는 건 덤이었다.

- 잭슨: 곧 보내주마.

- 미도: 고마워요. 할아버지! 드레인 할아버지한텐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아, 석두 아저씨랑 수정 언니한테 한번 연락해보시겠어요? 지금 거기로 가는 중이거든요. 아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 잭슨: 그래야겠구나. 고맙다.

- 미도: 아니에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 잭슨: 허허허. 나도 사랑한다~♡

그렇게 난데없는 사랑 고백으로 우리들은 귓속말을 마쳤다.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손녀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다 우리 미도처럼 싹싹하고 어른들한테 잘하냐고 묻는다면, 아니. 우리 미도가 단연 최고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할아버지랑 친하게 지내려고 그러진 않거든.

"흠흠."

나는 곧장 헛기침을 몇 번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춘자야~"

잠시 뒤, 내가 바라보는 하늘의 공간이 나선형으로 점차 일그러지더니, 이제는 다 자란 독수리보다도 거대해진 춘자가 멋지게 공간을 가로질러 북극의 하늘에 나타났다.

"구루루룩-!"

춘자는 나타나자마자 멋있게 공중을 몇 바퀴 돌더니, 이곳으로 멋있게 낙하하고 있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로 그런 춘자를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

퍼억-!

"……."

바라볼 뻔했다.

북극의 추위에 그대로 꽁꽁 얼어버린 춘자가 냉동된 상태로 내 앞에 떨어져 내렸다.

춘자가 몸을 파들파들 떨며 애처롭게 나를 보았다.

"구, 구룩…."

"……."

얘를 믿어도 되는 걸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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