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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23화 (32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23화

제323화

마왕을 공격하기 위한 날짜까지 앞으로 이틀.

아리에스가 이끄는 성좌들과 곳곳에서 모집된 병사들은 오르카 왕국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메테우스와 윈디아의 병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미도가 SNS 홍보를 통해 다른 성의 성주들에게 지원을 받았는데, 도움에 대한 대가는 간단했다.

일명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

오르카 왕국에 있는 마왕을 잡으러 갈 것이라는 공고는 불티나게 문의가 들어오며 수만에 이르는 병력들이 순식간에 모집되었다.

그렇게 현재 그들이 도달한 곳은 여행자들의 쉼터라 불렸던 '오르비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그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

부서진 성벽과 불에 타 사라진 잔재들을 보며 미도는 깊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르비스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다니…."

오르카의 왕인 레오나르도가 오르비스의 급습을 지시했다는 건 무척이나 유명한 사실이었다.

당시 급습을 당했던 유저들의 동영상이 아크스타그램을 통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때문에 성을 잃어버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 모여든 병력들 사이에는 과거 성주의 자리에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빼앗겼던 성의 재탈환.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성의 탈환을 위해 병력을 나누어야 할 때였다.

"우린 이대로 서쪽에 있는 닉스성을 향해 가겠소."

"그럼 우리도 이만 북동쪽에 레그성으로 가지."

"남서쪽에 있는 실리카성…."

그렇게 수만에 이르렀던 병력 중 절반가량이 각자의 성들을 되찾기 위해 빠져나갔다.

그들을 돕기 위해 성좌들이 한 명씩 따라갔고, 그렇게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후.

모두 최종 목적지인 오르카의 왕성으로 올 것이었다.

애초에 그것을 약속하고 성좌들을 빌려주는 것이었으니까.

[다시 움직인다!]

아리에스의 고함과 함께 일행들이 다시 오르카 왕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병장기 소리가 뒤섞이어 한참이나 들려왔다.

그러던 바로 그때였다.

[구해줘….]

"……?"

말 안장에 오른 채 말을 타고 가던 미도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잘못 들은 건가…?"

그렇게 미도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말 고삐를 거머쥔 채 앞으로 향할 때였다.

[제발 구해줘….]

다시 한번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선명해진 목소리.

자신을 부른 존재는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츠츠츳!

미도의 머리 위로 스파크가 튀었다.

[화가성, '모네트 다빈치'가 당신에게 구조를 요청합니다.]

"다빈치…?"

미도는 그제야 자신을 부른 것이 다빈치였음을 깨달았다.

미도는 재빨리 말을 앞으로 몰아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랴!"

"미도?"

"쟤 왜 저래."

김수정과 마석두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카루스 길드원들 또한 마찬가지.

미도는 다시 말을 멈춰 세워 천천히 다빈치가 부르는 구조 신호를 들었다.

정확히는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었다.

눈을 감자 아지랑이처럼 느껴지는 희미한 기운이 있었다.

미도는 곧장 말을 돌려 아리에스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전 여기서 빠져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지?]

"제 성좌가 구조요청을 보내왔어요."

[다빈치? 그림쟁이가 말인가?]

"네. 방금 제게 구조요청을 보내왔어요."

[음, 그러고 보니 분명 다빈치는 천궁에 없었지. 워낙 성격이 음침한 녀석이라 또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서 그림이나 그리겠거니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아리에스가 턱을 매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그녀의 황금 머릿결은 어느새 더욱 꼬불거리고 있었다.

바로 뒤편에서 김현우, 박태현, 은정혁이 다가왔다.

"미도야 방금 네 성좌가 위험하다고 했어?"

"이거 일이 복잡해지는데."

"구조 신호를 보냈다라…."

세 사람이 일제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미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선택은 총 지휘자인 아리에스의 결정에 따라야 했으니까.

아리에스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결단을 내렸다.

[마왕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성좌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 가라. 가서 다빈치를 구해. 여긴 우리로도 충분하다.]

아리에스의 말에 이어 뒤편의 캣 베이커가 다가왔다.

[갔다 와. 냥~ 어차피 오르카 왕국에 있는 사탄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해. 내가 녀석보다 상성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이지. 냥~]

캣 베이커는 먹던 생선 뼈를 뒤로 던지며 말했다. 김수정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미도야. 나도 따라가고 싶은데, 내 능력은 여기 많은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해."

"알아요. 이해해요."

"대신에 이 미련한 곰탱이를 데리고 갈래?"

"뭐?"

난데없는 김수정의 말에 마석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대신 좀 가줘. 얘네 좀 도와주고."

"아니, 난 네 옆에…."

"아오. 좀 가!"

찰싹!

허벅지만 한 마석두의 팔뚝에 김수정의 손도장이 선명하게 찍혔다.

마석두는 차마 팔이 닿지 않아서 긁지도 못한 채 인상을 팍 썼다.

맞은 곳이 무척이나 쓰라렸다.

무슨 여자 손맛이 이리도 찰진지.

[아닙니다.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무스카…?]

아리에스가 말벌 성좌 무스카를 향해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무스카가 다빈치에게 출중한 능력을 썩히는 게으름뱅이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무스카가 나서겠다고 하니 아리에스로서는 의문이었다.

[그 게으름뱅이가 출중한 능력을 썩혔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거겠죠. 이참에 가서 쓴 소리를 해줄 생각입니다.]

우우웅!

두 쌍의 말벌 날개가 진동을 일으키며 무스카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반드시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아리에스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나섰다.

이번엔 둘이었다.

[나도 가지.]

[저도 가겠습니다.]

[키론? 너도 간다고? 레푸스. 너도?]

인마궁의 주인, 키론이 말발굽을 다그닥거리며 다가왔다.

그런 그의 뒤로는 토끼 성좌 레푸스가 함께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레푸스는 본디 헤카티아나님을 모시는 성좌 중 한 명이었다.

그것은 다빈치도 마찬가지였기에 아마 나선 것일 터였다.

[…흠, 대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냥 돌아오도록.]

무스카, 미도, 키론, 레푸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편, 나와 박막순과 산타클로스는 간신히 얼음성 내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우.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우리 앞에서 손을 터는 것은 바로 제임스였다.

이 호랑 말코 같은 녀석이 왜 여기 있었던 거지?

나는 눈을 좁힌 채 못마땅한 눈으로 제임스를 보았다.

내게 제임스는 여전히 미도를 울린 나쁜 늑대 놈 중 하나였다.

"하하. 왜, 왜 그렇게 보시는지…."

"알 거 없다."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제임스는 여전히 웃는 낯짝으로 허허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우리가 녀석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네놈은 왜 여기서 나타나?"

"아, 그게 말이죠~"

제임스가 반색하며 검지 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지금까지 자신이 이곳에 있던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설명이 끝난 직후.

나는 왜 이곳에 제임스가 있었던 건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분명 얼마 전 벨페고르와의 일전에 들어가기 전 데미안이라는 녀석이 그런 얘기를 했었다.

제임스가 툰드라 드래곤에게 당해 갇혀버렸고, 가지고 있던 스타 프루츠를 모두 빼앗겨 버렸노라고.

나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끙."

"음? 또 어딜 싸돌아다니려고 그랴!"

뒤에서 박막순의 고성이 들려왔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무너진 얼음성으로 향했다.

우리를 빨아들였던 그 검은 구슬은 얼음성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나서야 멈추고 말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음성을 뒤적거리며 무너진 파편들을 치워냈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아."

나는 마침내 목표했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혹시나 안 남아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도 그것은 남아있었다.

나는 부서진 보석함 사이로 보이는 스타 프루츠를 꺼내 들었다.

영롱한 그 빛깔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좋구만."

그러던 바로 그때.

"할아버지~?"

"……!"

나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뒤를 보았다.

뒤편에서 제임스가 얼음성의 잔재들을 피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눈앞에 있는 스타 프루츠를 챙겨 인벤토리로 숨겼다.

그렇게 간신히 마지막 스타 프루츠까지 인벤토리에 넣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제임스가 내 곁에 도달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뭐하긴 이놈아. 쓸 만한 아이템 있나 뒤지고 있었지. 그래도 툰드라 드래곤의 얼음성인데, 뭐라도 있을 거 아니냐. 그리고 내가 왜 니 할아버지야!"

"에이, 할아버지도 참. 그러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아, 그렇지! 내 스타 프루츠!"

제임스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것처럼 얼음성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녀석의 스타 프루츠는 내가 몽땅 챙긴 뒤였으니까.

"아씨, 어디갔지?"

나는 몰래 뒤에서 고소를 삼키며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바로 그때.

박막순이 텔레포트를 써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왜 애한테 헛짓거리를 시키고 그려? 그 스타 뭐시기는 오라버니가 다 챙겼잖…. 읍읍."

"쉿."

나는 황급히 박막순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 알았어?"

"대마법사 무시하는 거여?"

아, 맞다. 그랬지.

너무 강한 적을 만나와서 그런지 한순간이지만, 그녀가 마법 도시 오즈를 이끌고 있는 대마법사들 중 한 명임을 까먹고 있었다.

그녀라면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날 관찰하는 것쯤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제임스를 미워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박막순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시방, 그럼 저놈이 오라버니 손녀랑 옛날에 이거였단 말이여?"

박막순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미, 세상에 이런 천인공노할 놈이 다 있냐. 저거 완전 몹쓸 놈이었구만. 으휴."

그 말과 동시에 박막순이 허공에 삼각형을 그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마법진이 재빨리 흩어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작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세하게 지치고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마법이여. 아마 곧 눈이 침침해지고, 다리가 느려질 것이여. 아직 어떤 놈도 눈치챈 적이 없지. 끌끌끌."

박막순이 개구쟁이처럼 웃었고, 그런 그녀를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런 마법은 대체 왜 배운 거야?"

"아, 다 쓸 데가 있는 거여.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날 무시하는 개잡놈들이 있었거든. 그런 놈들한테 썼었지."

"음, 잘했네."

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 멀리서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제임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시 스타 프루츠 보신 적 없으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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