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21화
제321화
아크 대륙의 동쪽 변방에 자리한 동대륙.
그곳은 무림(武林)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왔다.
무(武)를 숭상하는 동대륙 인들은 그 무(武)가 드넓은 동대륙의 숲에 널리 떨치길 바랐고, 무림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세워졌다.
폐쇄적인 쇄국정책 탓에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동대륙인들은 자기들만의 무(武)를 겨루며 그렇게 문화를 꽃피워왔다.
그러나 바로 지금.
그 폐쇄적인 쇄국정책 탓에 무림이라는 나라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검성께서 떠나신 지 오늘로 열흘이 가까이 되었소."
"이대로 가다간 오히려 우리가 죽을 것이오!"
"당장 나가서 싸웁시다!"
현재 각 문파의 수장들은 모여서 무림의 존망을 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 문파의 수장들을 이끄는 것은 현 무림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는 무림 맹주 남궁 운.
약육강식의 세계인 이곳 무림에서 남궁 운은 그들을 모두 꺾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 그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듣고만 있었다.
"……."
"그러다 저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에게 물리면 끝장이오."
"그렇소. 얼마 전 태극 선인께서 저들에게 물려 강시가 된 것을 잊었소?"
"강시가 아니라 좀비라고 합디다."
"누가 그러오?"
"그 죽지 않는 불사의 인간들이 그럽디다."
"허 참."
회의는 끝날 줄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딱 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밖으로 나가 저 좀비 떼들을 모두 쓸어버리자는 강경파와 그래도 검성께서 지원군을 데려올 것이니 기다려보자는 온건파.
그들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말싸움으로 이어졌다.
"아니, 그럼 어쩌자는 게요? 저렇게 시체들이 들끓는 꼴을 보고만 있으란 거요?"
"아니, 그 말이 아니지 않소! 그저 검성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으니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만."
남궁 운의 나직한 목소리에 말싸움을 하던 두 사람이 꾹 입을 다물었다.
맹주의 권위는 그만큼이나 높은 것이었다.
"나도 좀 더 기다려보아야 한다 생각하오."
"맹주!"
남궁 운이 마시던 차를 한 입 머금고 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부른 화산파의 수장을 보았다.
붉은 머리가 산발처럼 뻗친 것이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외양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폭발하는 매화 검법을 쓴다하여 폭매검(爆梅劍)이라 불리었던 사내였다.
"폭매검. 검성께서는 오랜 시간 세상을 주유하다 오랜만에 이곳으로 돌아오시었소. 그리고 돌아오시자마자 이곳이 위험에 처한 걸 알리려고 곧장 도움을 청하러 떠나셨지. 마땅히 검성을 믿고 기다리는 것의 도리일 것이오."
남궁운의 말에 다른 문파의 수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폭매검은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 망할 좀비떼들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 화산파였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맹주! 난 이번 일로 인해 수많은 제자들을 잃었소. 지금 그딴 개가 하는 말을 믿고…."
바로 그 순간.
폭매검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남궁 운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앞에서 검성을 욕하는 건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남궁 운이 어렸을 적 검성을 잠시지만, 스승으로 모셨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드드드-!
남궁 운이 뿜어낸 기운 탓에 앉아있던 탁자가 지진이 일어난 듯이 요동쳤다.
탁자 위에 있던 찻잔 위로 찻물이 튀어 오르며 흘러내렸다.
"미, 미안하오. 내가 잠시 말실수를…."
"폭매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그렇소. 내가 큰 실수를 했구려. 다시 한번 사과드리리다."
그제야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풀리는 것처럼 사위가 밝아졌다.
폭매검이 숨을 헐떡거리며 목을 매만졌고, 남궁 운이 다시금 차를 한 잔 머금을 때였다.
멍! 멍멍!
난데없이 창가에서 웬 강아지 하나가 귀엽게 짖고 있었다.
남궁 운이 그런 강아지를 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검성께서 오셨나보오."
* * *
같은 시각.
마이클과 백무열.
카미유와 이누무시키는 동대륙이라 불리는 무림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누무시키는 무림에 들어서기 전, 웬 강아지 한 마리를 소환해 먼저 보내었고, 얼마지 않아 돌아온 강아지는 이누무시키에게 무언가를 말하더니,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멍! 멍!"
[음, 다행히 아직 무림은 괜찮은 것 같소.]
이누무시키가 강아지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세 사람에게 전하였다.
백무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장 가보도록 하지. 어떤 곳인지 나도 궁금하구만."
백무열이 거머쥔 목검을 꽉 쥐며 반드시 가고 싶다는 눈으로 말했다.
옆에 있던 마이클도 가만히 서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카미유는 입구로 들어섰을 때부터 계속 미간만을 찌푸리고 있었다.
[카미유 자넨 아까부터 왜 그러나.]
[이 역한 냄새…. 이건 시체에서 풍기는 것이에요. 이 정도로 진하다는 건, 아무래도 앞에 엄청난 시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자네도 개코로군. 사실 나도 아까부터 맡고 있었다네.]
바로 그때.
이누무시키가 소환한 강아지가 또 한 번 짖었다.
멍! 멍!
이누무시키의 눈이 살짝 뜨여졌다.
[…음, 아무래도 카미유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구려. 이 아이 말이 오는 길에 시체를 다수 봤다는군. 그런데….]
말끝을 흩트리는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해보게."
[말해보세요.]
백무열과 카미유의 재촉에 이누무시키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이 아이 말이, 오는 길에 그 시체들이 쫓아왔다는구만. 간신히 따돌렸는데, 아마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라고…."
드드드드!
그 순간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땅을 타고 느껴졌다.
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은 강아지가 말했던 시체.
즉, 좀비 떼들이었다.
이누무시키가 급하게 사과했다.
[크흠. 미안하네. 무림에 소식을 전한다는 게 그만 이렇게 되었군.]
[됐어요. 잠깐 몸부터 푼다고 생각하죠 뭐.]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 됐군."
"저도 검법을 수련할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제가 선제공격을 하도록 하죠."
마이클이 검 손잡이를 움켜쥐며 몸을 비틀어 발도 자세를 취했다.
사아아아.
마이클의 전신에서 벚꽃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누무시키는 새롭게 들인 제자를 무척이나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이곳으로 오면서 마이클은 마침 갖고 있던 3등성의 스타 프루츠를 새롭게 먹으며 이누무시키의 성애자(星愛者)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마이클은 적성을 찾은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이누무시키의 검법을 흡수하였다.
"사쿠라 검법. 제2장."
마이클이 검 손잡이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일섬(一殲)."
그리고는 곧장 세상을 베어내는 듯한 정확한 가로베기가 전방의 좀비들을 향해 넓게 그어졌다.
달려오던 좀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고, 수십의 벚꽃잎들이 그런 좀비들 사이에서 날아올랐다.
* * *
그 시각.
나와 박막순, 산타클로스는 함께 툰드라 드래곤이 있다는 얼음성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산타클로스는 자신의 썰매를 타고 가자고 했고, 나와 박막순은 마나도 아낄 겸 그것을 허락했다.
현재 우리는 아이스 실크로드를 타고 북극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래로는 마을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위로는 색색의 오로라가 우리를 반기며 인사했다.
휘오오오-!
그러나 북극의 매서운 찬바람은 여전히 무서웠다.
나는 박막순의 곁에 솔라 피닉스를 붙여주었고, 어차피 나는 추위에 대한 내성이 있었기에 상관은 없었다.
그 사이 나는 알렉서스의 눈의 비기들을 습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눈의 레시피를 습득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날씨 요리술에 눈의 요리가 추가됩니다.]
가장 먼저 얻은 것은 눈의 레시피를 통해 날씨 요리술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눈의 레시피를 활용해 요리를 만들어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주워 담아서 만든 빙수였다.
나는 그것을 곧장 소환한 지니에게 먹였다.
"오오, 이게 무슨 맛이구름! 완전 맛있구름! 으으, 근데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구름!"
지니는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고, 그리하여 지니는 새로이 눈의 힘을 각성하게 되었다.
[구름의 정령, '지니'가 눈의 힘을 각성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식재료를 비롯한 각종 요리들을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할 있습니다.]
[지니는 눈의 힘으로 대상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눈의 비각술인가.
"아, 이런."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눈의 비각술을 익히기엔 썰매가 무척이나 좁았던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눈의 비각술을 익히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산타클로스가 선물 꾸러미 속으로 손을 쏙 집어넣더니 말했다.
[과연 알렉서스의 후인답구만. 그럼 이것도 잘 쓸 수 있겠지?]
"……?"
휙!
"……!"
산타클로스가 던진 것은 웬 칼이었다.
하지만 그건 보통 칼이 아니었고, 온통 흑색으로 이루어진 무척이나 예리한…. 잠깐만 이거 혹시…?
"이건!"
[홀홀홀! 알아보는 모양이구만.]
산타클로스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웃었다.
그는 내게 무척이나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알렉서스의 요리 무구 중 하나.
'식독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것은 포크 창과 함께 알렉서스가 즐겨 쓰던 무구로 알려져 있었다.
[예전에 아틀란 왕국이 멸망했을 때 하나 훔쳐온 거라네. 홀홀!]
이런 미친 영감탱이를 보았나.
훔칠 게 없어서 어디 아틀란 제국의 보물인 요리 무구를 훔쳐?
나도 영감탱이긴 하지만, 눈앞의 산타클로스는 정말로 미친 영감탱이였다.
"…들키면 어쩌시려고 그랬습니까."
[안 들키는 게 내 전문이라네~ 홀홀홀!]
어쨌든 나는 품속에 식칼을 갈무리해 넣었다.
지금 당장 능력치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이미 저 멀리 얼음성이 보이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얼마지 않아 도착할 것이었다.
[다 와 가니까 준비들 하게나!]
산타클로스의 외침에 나와 박막순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전투태세에 임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천천히 얼음성 내부에 썰매를 정박시키며 내려앉았다.
쿠구구궁-!
마침 우리가 발에 땅을 내딛었을 때, 자그마한 진동이 얼음성 내부에서 연이어 들려왔다.
나와 박막순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산타클로스도 그런 우리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너무 늦은 것이었을까.
[크흑….]
대전에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툰드라 드래곤의 등껍질이 모두 박살난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침 루시퍼가 우리를 힐끔 보더니, 눈을 반달로 만들어 웃었다.
[조금 늦었군. 그래도 다행이야. 가장 재밌는 장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루시퍼가 커다란 손으로 축 늘어진 툰드라 드래곤의 심장을 꿰뚫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