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20화
제320화
[사도, '12월의 침략자'가 당신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나는 눈앞에 뜨는 메시지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잠깐 바라만 봤을 뿐인데 벌써 내 존재를 눈치채다니, 과연 네 번째 사도라 이건가?
[홀홀홀, 이거 손님이 오셨었구만.]
수인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클로스가 갑자기 내게로 선물 꾸러미를 어깨에 들쳐 멘 채 걸어왔다.
그런데 그는 현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와는 외형이 조금 달랐다.
그는 무척이나 날렵하고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하긴 그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뚱뚱한 건 상상이 안 가긴 한다.
[자네가 바로 티아루도가 말했던 알렉서스의 후예로구만. 홀홀. 근데 좀 어려 보이는걸?]
"……."
어려 보인다는 말에 나는 얼 척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박막순도 마찬가지.
하긴 수염 길이로만 따지면 눈앞의 산타클로스가 훨씬 연배가 많아 보이긴 한다.
아니 근데 똑같은 할배 주제에 무슨.
"제가 왜 찾아왔는지는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흐음. 알고 있지. 알렉서스가 내게 남긴 눈의 비기들을 찾으러 온 거 아닌감?]
"맞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산타클로스도 그런 내게 마주 끄덕여주고는 곧장 뒤를 돌았다.
[따라 오게.]
그렇게 나와 박막순이 산타클로스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걸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을의 구석에 마련된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오두막.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가 말하길 이곳에 머무르며 마을의 통합을 위한 축제가 열리는 동안 수인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크리스마스를 한 번 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이 양반도 참 피곤하게 산다.
[자,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오게. 홀홀홀.]
그렇게 우리들은 산타클로스의 오두막에 들어섰다.
추위가 차단되며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우리를 의자로 안내하고는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마시게. 몸이 좀 녹을 거야.]
후르릅.
나와 박막순이 동시에 차를 머금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홀홀홀-! 어떤가. 맛이 아주 기가 막히지?]
산타클로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호쾌하게 웃어 젖혔다.
그런데 그럴 만했다. 그가 건네준 차는 우리 두 사람이 절로 미소를 머금을 정도로 맛있었다.
"오메, 이게 무슨 맛이여. 시방."
"맛있군요. 어떻게 만든 겁니까?"
[끌끌. 그건 영업 비밀일세!]
쳇. 까탈스러운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전 알렉서스가 남긴 눈의 비기들을 얻으러 왔습니다. 주시겠습니까?"
[뭘 그렇게 급하신가. 다 때가 있는 법이거늘. 일단 차부터 마시게나.]
"아, 예."
차를 모두 마신 우리들은 산타클로스가 이끄는 곳으로 다시 움직였다.
그곳은 웬 창고였다.
그곳엔 엄청난 선물 꾸러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는 나를 힐끔 거리며 말했다.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의 비기는 내가 갖고 있다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뭐지. 이 영감탱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오늘 밤. 나와 함께 일이나 좀 하세나. 홀홀홀!]
산타클로스가 늙수그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엔 천년 묵은 능구렁이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 * *
북극, 툰드라 드래곤의 얼음성.
마왕 루시퍼와 툰드라 드래곤의 싸움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둘의 싸움은 호각지세를 이루었고, 루시퍼가 가진 오만의 권능은 툰드라 드래곤에겐 통하지 않았다.
루시퍼는 오로지 상상의 실체화라는 힘을 이용해 툰드라 드래곤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나 북극에서 상대하는 툰드라 드래곤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흐음, 과연 전 황도 12궁의 대장인가. 제법이로군.]
[그대도 겨울의 균형자의 별명을 짊어질 만해. 하지만….]
고오오오!
루시퍼가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판도라의 힘을 끌어올렸다.
짙은 죽음의 마기가 루시퍼의 몸을 감싸 안았다.
[……!]
오래지 않아 루시퍼의 외형이 더욱 흉측하게 바뀌었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죽음의 마기에 툰드라 드래곤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네놈, 그 힘은 금지된…!]
우드득!
[……!]
툰드라 드래곤이 뜯겨나간 자신의 팔을 보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쏜살같이 움직인 루시퍼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팔을 뜯어낸 것이었다.
툰드라 드래곤은 어깨를 붙잡으며 다시 재생되는 자신의 팔을 보았다.
그러나 죽음의 마기 때문인지 재생력이 무척이나 느렸다.
툰드라 드래곤은 이를 악물며 뜯겨나간 자신의 팔을 가지고 노는 루시퍼를 노려보았다.
루시퍼는 그런 툰드라 드래곤의 팔을 등 뒤로 던져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왜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지?]
[…….]
툰드라 드래곤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아까부터 본 모습을 드러낼 순 있었지만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그것은 하나의 콤플렉스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자신의 본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가.'
눈앞의 상대는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상대였다.
툰드라 드래곤은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고오오오-!
넘실거리는 푸른 마력이 툰드라 드래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의 본 모습인 거북 성좌.
터틀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그 과정을 지켜보며 루시퍼가 오만하게 웃었다.
[후후후. 좋아. 이래야 재미가 있지. 하하하하-!]
광기가 담긴 루시퍼의 웃음 너머로 커져만 가는 그림자가 넘실거렸다.
한편,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뭐야.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는 툰드라 드래곤에게 덤볐다가 얼음 동상이 되어버린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혹시나 툰드라 드래곤이 마법을 풀지 않았을까 하여 우연히 접속한 상황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제임스가 곧바로 녹화기능을 켰고, 툰드라 드래곤은 변신을 모두 마쳤다.
거대한 흑색의 등껍질과 시퍼렇고 날렵한 네 다리.
머리는 용을 닮아 기다랬으며, 꼬리 또한 머리가 달려 뒤엉킨 채 무시무시한 위용을 뽐내었다.
마침내 툰드라 드래곤이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거북성, '툰드라 드래곤'이 포효합니다!]
크허어엉-!
옅은 진동이 북극을 뒤흔들었다.
* * *
한편, 그 무렵.
나는 산타클로스의 성실한 노예….
아니, 보조 일꾼이 되어 그의 일을 돕는 중이었다.
날렵한 산타클로스가 한 이글루의 굴뚝으로 쏙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온몸에 검은 먼지를 잔뜩 묻혀서 나왔다.
하여튼 저 양반도 곱게 미친 게 틀림없다.
[자넨 대체 뭐하고 있나.]
"예?"
[여기서 선물이나 지키지 말고 자네도 빨리 움직여서 배달해야지. 지키는 건 이 처자한테 시키면 될 일 아닌가.]
산타클로스가 턱짓으로 박막순을 가리켰다.
아니, 근데 보자보자하니까 이 영감탱이가….
"그려. 오라버니. 갔다 와. 난 잠깐 쉴 테니께. 끙차."
"……."
악덕 산타클로스한테 한 소리하려고 했는데, 그만 박막순이 썰매에 털썩 주저앉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결국, 난 울상을 지으며 산타클로스의 일을 거들었다.
원치도 않았는데, 아르바이트생에서 정직원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어후. 냄새."
나는 코를 틀어막으며 또 다른 이글루의 굴뚝을 올랐다.
산타클로스는 내게 노하우를 알려주었는데, 조용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면 분명 양말이 걸려있을 거라고 그랬는데, 나는 곧장 굴뚝으로 뛰어들어 가볍게 착지했다.
음, 이건가?
나는 살금살금 걸어가 양말에 선물을 챙겨놓고는 다시 굴뚝으로 끙끙거리며 올라왔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아니, 대체 그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나왔던 거지?
[홀홀홀. 뭐가 이리 굼뜬가. 우리 루루보다 못하구만!]
참고로 루루는 썰매를 끄는 루돌프를 뜻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빠져나와 있던 산타클로스는 그런 루루의 뿔을 쓰다듬으며 나를 놀려 먹었다.
루루가 "푸르릉!" 하며 좋아했다.
"전 초짜니까 느린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너무 그러지 마시죠."
[흐음. 그런가?]
산타클로스가 기다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다시 말했다.
[그럼 이러면 좀 달라지려나?]
그렇게 말한 산타클로스는 품속에서 새하얀 눈 뭉치 같은 것을 꺼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정구슬이었다.
[이건 자네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것이라네.]
"……!"
[어디 열심히 움직여 보게나.]
휙!
산타클로스가 수정구슬을 산처럼 쌓인 선물 꾸러미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수정구슬은 데굴데굴 굴러가며 안쪽 깊숙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당연히 수정구슬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
이거 완전 악덕 산타클로스였네.
마왕 중에 사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 있다는데, 어쩌면 눈앞의 존재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사탄클로스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빨리 빨리 움직이게나. 오늘 안에 모두 해치워야 하니 서둘러야 해! 껄껄!]
그렇게 산타클로스가 웃으며 도망치듯 또 다른 굴뚝으로 사라졌다.
박막순은 그런 나를 모른 척하며 루루와 놀았다.
"아따, 시방. 루루야. 니 뿔 이거 녹용 아니냐? 몸에 겁나게 좋을 것 같은디야. 하나만 주면 안 되겄냐?"
"이런 시부럴…."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 *
두 시간 뒤.
나는 간신히 산더미 같았던 선물 꾸러미들을 모두 없애 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수정구슬은 알렉서스의 눈의 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수정구슬이었고, 악마 같은 사탄클로스는 내게 거짓부렁을 씨불인 것이었다.
[홀홀홀!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원래 땀 흘려 얻은 것이 보람된 법아니겠나! 자, 받게. 자네가 그토록 원하던 알렉서스의 눈의 비기라네. 메리 크리스마스라네!]
메리 크리스마스는 얼어 죽을.
사탄클로스가 하는 말 따위 하나도 반갑지 않다.
나는 가까스로 분을 삭이며, 그의 손에 쥐어진 한 장의 고문서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그렇게 그것을 펼치려는 찰나.
"뀨우우우~!"
난데없이 귀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박막순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 혹시 쟤?
"뽀노?"
"뀨우? 뀨뀨!"
뽀노는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폭 안겼다.
그때 봤을 때는 다리에 안길 정도로 작았는데, 지금은 꽤 커서 그런지 내 몸을 다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 있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눈앞의 뽀노는 무척이나 다급한 것처럼 산타클로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뀨! 뀨뀨! 뀨뀨뀨뀨!"
[음, 그래. 음음. 얼음성에 놀러 갔었는데.]
산타클로스가 뽀노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뭐시라고라!]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화들짝 놀란 산타클로스의 목청이 오두막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만한 일이었다.
[툰드라 드래곤 님께서 위험하시다고!!]
"……!"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