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13화
제313화
다음 날.
나와 에드워드는 병력을 이끌고 윈디아에 도착했다.
좌우로 케레노스가 이끄는 실피드 기사단이 늠름하게 호위하고 있었고, 그 뒤로 각종 마차와 우리가 잡았던 벨페고르의 검은 뼈와 가죽, 그리고 뿔이 실려 오고 있었다.
참고로 벨페고르가 남긴 것들은 내가 모두 갖기로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솔라 피닉스가 아니었다면 벨페고르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함께 싸웠던 이들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이건 드레인한테 갖다 주면 아마 무척 좋아할 거다.
"고생 많았어. 잭슨."
"백작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메테우스로 바로 갈 거야?"
"음,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럼 조금 머물다 가. 오랜만에 온 거잖아."
"흠."
뭐 그래도 좋으려나.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마차에서 내리는 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거기서 내리는 것은 두 명의 성좌들이었다.
함께 내리는 것은 하얀 머리칼에 앳된 피부를 자랑하는 풍희.
"……."
캣 베이커는 오는 내내 말수가 적은 티아루도에게 불평을 쏟아내며 쫑알거렸는데, 그런 모습이 짜증 났던 나는 마차에 풍희를 넣어주었다.
다행히 풍희와 함께 수다를 떨며 캣 베이커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하는 듯했다.
"자네들은 어쩔 건가. 어차피 바로 오르카 왕국으로 가진 않을 테지? 며칠 여기서 머무르면서 쉬는 게 어떻겠나."
[흐음. 어차피 열흘 뒤에 다들 모여서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 너네들도 병력을 준비해야 된다면서. 냥.]
하여튼 저 싸가지 없는 고양이가.
"그렇긴 하지."
참고로 데스페라도와 레이트라는 화산지대에 남았다.
그곳에서 둘이서 내려오는 마족들과 두 명의 마왕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견소룡이 자금성의 병력을 이끌고 도울 것이라 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박막순은 마법사들과 마녀들을 이끌고 오즈로 돌아갔는데,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었다.
반면 카미유와 이누무시키는 동대륙으로 떠났다.
그리고 의외로 제우스 길드가 그들을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이클이 따라가니 백무열은 좋다고 함께 따라나섰다.
어쨌든 그들은 함께 동대륙으로 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각자 열흘 뒤 동시에 마왕들에게 선제공격을 하기로 약속을 한 채 헤어졌다.
[흠, 그래도 빨리 메테우스란 곳을 가보고 싶은데….]
그러던 바로 그때.
[킁킁. 이거 무슨 냄…새…?]
갑자기 캣 베이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윈디아의 성벽을 네발로 타고 넘어가 안쪽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 마치 바람과 같았다.
잠시 뒤, 캣 베이커의 뒤를 쫓았던 케레노스가 나타나 보고했다.
"누군가 생선을 굽는 냄새를 맡았나 봅니다. 돈도 안 내고 강제로 먹으려고 하길래, 그냥 제 돈으로 사주고 왔습니다."
"…자, 잘했어. 케레노스."
에드워드가 허허 웃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때 케레노스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지금 돈이 없습니다. 월급 인상 좀 해주십시오. 영주님."
"그건 안 돼."
"쳇."
월급 인상을 위한 케레노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
에드워드는 곧장 말에서 내려,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채 다소곳하게 있던 풍희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풍희의 손목을 낚아채 영주성으로 달렸다.
아니 저것들이…?
"난 풍희랑 꽃밭에서 좀 놀고 있을게-!"
"……."
그렇게 덩그러니 남은 것은 케레노스와 나.
그리고 실피드 기사단을 비롯한 병력들과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방패 성좌 티아루도였다.
"흐아암~ 형님 생각보다 오셨수."
때마침 성문 앞에서 하품을 한 채 나타난 것은 선발대로 다친 병사들을 실어 날랐던 마석두였다.
그런 그의 뒤로 자경단의 일원들이 함께 있었다.
"병사들이 지쳐서 조금 늦게 왔다. 별 일은 없었지?"
"뭐, 큰일은 없습디다. 그나저나 여기 형님들 말씀대로 멜론 슬라임 국수가 기가 막히던데요? 푸흐흐. 아주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마석두가 두툼한 뱃살을 툭툭 치며 웃었다.
나와 백무열은 녀석에게 윈디아에 명물인 멜론 슬라임 국수를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새 먹어본 모양이었다.
"근데 형님. 수정인 어딨습니까?"
"떠났다."
"떠나요? 말도 없이 어디로요?"
"그런 곳이 있다. 네놈한텐 안 가르쳐줘."
사실 거짓말이다.
김수정은 바로 뒤에 마차에 숨어 있었다.
"아니, 얘는 내 성좌 골라주기로 해놓고 왜 말도 없이…."
뭐야. 이 자식 아직도 성좌를 못 고른 건가?
마석두는 연신 내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쫑알거렸다.
하여튼 이름처럼 돌대가리 같기는.
"우리 돌대가리 석두야."
"아, 거 형님. 이름 가지고 놀리지 맙시다. 내 이름은 밝을 석(晳), 머리 두(頭). 밝은 머리란 뜻이요. 돌 석(石)에 머리 두(頭)를 쓰는 돌머리가 아니란 말이요."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석두야."
"왜 그러쇼."
나는 뒤편에 있는 티아루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네 성좌다."
"예?"
[……?]
마석두와 티아루도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3일이 지났다.
우린 여전히 윈디아에 머물러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고, 메테우스는 그 사이 대도시로 등급이 격상되어 새로운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포트렌과 맺은 동맹으로 인해 교역이 활발하게 되었는데,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사이 괄목할만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석두는 티아루도의 성애자(星愛者)가 되었다.
나는 녀석에게 스타피스를 넘겨주었고, 내가 스타피스를 썼을 때 한쪽 팔만 얼음이 되었다면, 마석두는 두 팔 모두 얼음이 되어 양팔에 하나씩 커다란 얼음 방패를 차게 되었다.
얼음 방패는 부메랑처럼 던지며 적들 사이를 튕길 수도 있어서, 원래 탱커 겸 전사였던 마석두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인생이 늘 그렇듯,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곳은 윈디아의 영주성.
나는 지금 에드워드가 마련해 준 거처를 온통 구름으로 도배한 방에서 한 남자와 차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그래. 넌 요즘 무척 바쁘게 사는 것 같구나. 얼굴이 말이 아니야."
"하하. 바쁘게 살면 좋은 거죠. 뭐."
"그래도 젊을 때 몸 챙겨야지. 그러다 네가 쓰러지면 애들은 어떡하냐."
"명심하겠습니다."
"차 들어라."
"예."
찾아온 손님은 조셉이었다.
그는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는데, 그가 운영하는 아르고스는 유민석과 공조를 하며 더욱 넓은 정보망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다는 소식을 얼마 전 내게 전해왔었다.
"직접 찾아오다니. 급한 일인 모양이구나."
차를 두어 번 홀짝이던 조셉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구름의 찻잔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잔이 참 예쁩니다."
"말 돌리지 마라."
"말 돌린 거 아닙니다. 정말 잔이 예뻐서 그랬습니다. 하하."
"…하여간 능구렁이 같은 놈."
조셉은 갑자기 스읍- 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그때 좌표가 바다에 있다고 했던 것 기억나십니까?"
"좌표? 아, 그래. 기억나지. 아틀란 해 한복판에 있다고 했나?"
"예. 맞습니다. 얼마 전 저희 아르고스의 일원 하나를 그곳에 파견했었죠."
"그런데?"
"음, 아무래도 일이 좀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조셉이 한껏 미간을 좁혔다.
나는 똑같이 그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조셉은 다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처럼 차를 한 번 홀짝였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거기에도 마왕이 있습니다."
"……!"
* * *
마계족 근거지, 마왕의 성.
넓은 대전에 작게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뻗어 나갔다.
그곳은 이제 지도에서 없어져 버린 멸망한 파르타 공국의 대신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
가장 상석의 꼭대기에 의장이 앉아야 할 자리는 없어지고, 이젠 뼈로 만들어진 옥좌만이 그 상징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옥좌에 앉은 루시퍼는 무심한 듯 턱을 괴더니, 연신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탁. 탁.
또 한 번 루시퍼의 손가락이 텅 빈 대전을 울렸다.
[루시퍼! 계속 이러고만 있을 건가!]
[…내 손을 앗아간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싶다.]
전혀 상반된 성격의 두 머리를 가진 아슈타르가 분노와 냉정을 동시에 보였다.
루시퍼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런 아슈타르를 힐끔 보았다.
과거 쌍아궁의 주인이었던 카스트로와 폴룩스는 마계에 들어서며 강력한 마기로 인해 오염되어 한 몸이 되어버렸는데, 네 개의 팔과 두 개의 머리, 하나의 몸에 두 다리로 걷는 그들이 루시퍼는 언제나 신기했다.
[아슈타르.]
[왜!]
[무슨 용건인가.]
하여튼 대답하는 방식도 완전 다른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다.
루시퍼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트렸다.
하긴 신성한 사자였던 자신이 마기에 물들어 흑사자가 되었는데 비웃을 처지는 아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런 루시퍼의 말에 아슈타르가 들고 있는 커다란 검으로 땅을 내리쳤다.
쿠웅!
이어진 자그마한 진동이 대전을 부르르 떨었다.
지지지징-!
과연 마계에서 투신이라 불리던 아슈타르는 그 한 번의 동작에도 마왕으로의 위엄이 서려 있는 존재였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묻지 않는가. 대답하라. 루시퍼.]
루시퍼의 입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하여튼 저놈의 성급한 성격만 고치면 참 좋을 텐데.
아니, 불가능한 일인가…?
아슈타르는 탐욕이라는 권능을 마계에서 얻었다.
그것은 본디 타고난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오늘이니 살짝 귀띔을 해주어도 괜찮으려나?'
루시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며 특유의 오만한 시선으로 아슈타르를 보았다.
[아슈타르. 오늘이다.]
[뭐가 오늘이냐!]
[…알아듣기 쉽게 말해라.]
바로 그때.
어디선가 따각따각 거리는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그것은 자그마한 흑전갈이었다.
루시퍼는 익숙하게 그 전갈을 들어올렸고, 마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씩 웃으며 전갈을 손아귀에서 부숴버렸다.
퍼걱!
[…….]
[…….]
아슈타르의 두 머리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루시퍼가 말했다.
[북극으로 가자. 아슈타르.]
[북극? 거긴 왜!]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루시퍼.]
후후후. 루시퍼가 낮게 웃었다.
[성유계에서 내란이 일어날 거다.]
[……!]
[……!]
아슈타르가 처음으로 당혹감을 내비쳤다.
또 한 번 두 머리가 번갈아가며 말했다.
[그, 그럼 우린 왜 북극으로 가는 거지?]
[내란을 일으킨다고 저들이 쉽게 무너지겠나? 저쪽엔 성좌들의 왕인 루페온이 있다. 우리 마족들은 그에게 상성이 무척이나 좋지 않아.]
루시퍼가 씩 웃었다.
[아주 좋은 지적이야.]
확실히 아슈타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별과 자비의 신 루페온은 모든 성좌들의 왕.
궁좌들조차도 넘보기 힘든 격을 가진 이가 바로 그였다.
아무튼 루시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특유의 오만이 담긴 웃음을 길게 늘어트리며 노란 눈을 희번득 치켜떴다.
부서진 천장 너머로 보름달이 푸르스름한 달빛을 내리쬐는 것이 보였다.
루시퍼는 보름달을 움켜쥐듯 자신의 손을 뻗었고, 그런 보름달 사이로 비친 발톱 중 하나가 부서진 것이 유독 눈에 띄었다.
루시퍼는 부러진 발톱을 보며 길게 입꼬리를 늘어트렸다.
[…루페온은 죽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