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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12화 (31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12화

제312화

[이런 말도 안 되는…. 으윽….]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문자 그대로 벨페고르의 옥염은 솔라 피닉스가 일으키는 불꽃에 삼켜지며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벨페고르의 몸이 천천히 까맣게 물들더니, 시커먼 잿가루를 흩날리며 사라졌다.

[분통하다….]

사아아악.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달구어져 쓸모없어진 숯처럼 무척이나 하얗게 바래었다.

그리고 마침내 벨페고르가 흑색의 마기가 가득 담긴 뼈와 가죽, 뿔, 그리고 판도라의 조각을 몇 개 남긴 채 완전히 사라졌을 때 커다란 함성이 뒤에서 쏟아져 나왔다.

"우와아아-!"

"이겼다!"

"우리가 마왕을 무찔렀다!"

"오르카 왕국 만세-!"

"오즈여 영원하라-!"

그렇게 마왕 토벌군이 믿을 수 없는 승리를 한창 만끽하고 있을 무렵.

나는 여전히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 있는 솔라 피닉스를 보았다.

동시에 아까 전 피닉스 이그누르가 내게 했던 말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들은 판도라를 이용해 진한 죽음의 마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솔라와 하나가 되어 멸마(滅魔)의 힘을 각성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솔라 피닉스는 더욱 강대한 격을 갖추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솔라와 하나가 된 이그누르는 더 이상 이그누르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말이란 즉.

"…편히 잠들게. 이그누르."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끼오오오-!

솔라 피닉스가 다시 한번 울었고, 허공을 박차며 날갯짓을 하던 새의 몸집은 한 마리의 매처럼 작아졌다.

그렇게 작아진 솔라 피닉스의 등 뒤에선 뜨거운 태양이 두둥실 뜬 채 이글거리는 아우라가 연신 피어올랐다.

아까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처럼 태양의 신수로서 완벽히 각성한 모습이었다.

"뭘 그렇게 보냐. 주인 놈아. 해햇-♬"

…싸가지 없는 저 말투는 전혀 변한 게 없군.

"…고생했다."

"당연히 내가 고생했다. 주인이 고생한 게 아니다. 해해햇-♬"

아니, 어째 왜 더 싸가지가 없어진 것 같지.

외양만 바뀌었지, 속은 완전히 사춘기에 들어선 솔라나 다름없었다.

그때. 뒤에서 백무열이 걸어왔다.

"강아지가 새가 돼버렸네."

"거 참. 원래 강아지 아니었다니까."

"흥, 내가 강아지라면 강아지 인 게야."

백무열이 코웃음을 쳤고, 그런 백무열의 뒤에선 까만 머리에 파마를 한 박막순이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어왔다.

"아따, 오라버니. 그 닭은 또 뭐시여? 허벌나게 강하당께. 소새끼가 아주 맥을 못추드만."

"아니, 이 할망구는 또 누구야?"

"댁은 뉘신데 나한테 할망구라 그려? 다 늙어빠진 할배 주제에."

"뭐라고?"

"콱씨. 맞아볼텨?"

백무열과 박막순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으르렁거렸다.

설마하니 박막순이 백무열에게 맞서는 깡을 가졌을 줄은 몰랐다.

하긴 어린 시절에 봤을 때도 무척이나 근성이 강한 아이였긴 했다.

지금 보니 아직 눈빛이 살아 있네.

"다 큰 노인들이 무슨 추태야."

그런 내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흥." 하며 각자 반대편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화해할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엇? 저, 저기!"

그때 누군가 말을 더듬으며 외치는 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모래 구름을 타고 내려앉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린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

아니, 성좌들이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냥?]

[음, 마기의 냄새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저 인간들이 해치웠나보오.]

[아, 너 견족이라 마기도 냄새로 알아차리지? 하여간 개코네.]

[칭찬 고맙소. 레이트라.]

[…칭찬 아닌데.]

저들이 여긴 어떻게…?

* * *

불칸 화산지대, 토벌군 진영 막사 안.

잠시 후. 우리들은 전장을 정리하고 막사에 모여 앉았다.

그곳엔 나와 데미안을 비롯해, 박막순과 백무열.

그리고 에드워드와 케레노스.

여섯 성좌들과 함께 온 마이클과 견소룡이 함께 자리해 있었다.

막사의 밖은 한창 마왕 토벌로 인한 축제가 벌어진 반면, 이곳은 무척이나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짜고짜 안 좋은 소식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당했다구요?"

마이클과 데스페라도에게 모든 것을 전해 들은 데미안의 이마가 깊게 패었다.

역시 예상대로 제우스 길드 또한 스타 프루츠를 얻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다 북극까지 가버렸누. 쯧쯧.

하필 그 괴팍한 녀석한테 걸리다니.

[우선 우리가 먼저 이곳으로 온 건 위대하신 유피테르 님과 별들의 왕이신 루페온 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야. 우리 칠성협은 이제 각지로 흩어져 인간계를 죽음으로 물들이는 마왕들을 맡을 예정이지. 선발대라고 보면 될 거야.]

고양이의 모습을 한 여인이 말을 마쳤다.

데미안이 다시 물었다.

"다른 성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현재 등성이 낮거나, 전투력이 약한 성좌들은 성유계에서 마족들과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 중이다. 그곳도 이곳 인간계만큼 치열한 싸움이 될 테지.]

대답을 한 것은 스켈레톤의 모습을 한 카우보이.

권총 성좌 데스페라도였다.

그런 그의 말에 모두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레 돌아가는 상황에 다들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깊게 생각할 것 없어. 냥~ 그냥 우리는 도와주러 온 거니까. 냥~]

"도와주러 왔다는 건 마왕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뜻입니까?"

데미안의 물음에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려고 온 거니까. 냥.]

나는 계속 냥냥거리며 말하는 고양이를 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암컷인 그녀는 고양이 성좌 '캣 베이커'였다.

별명은 '천상을 연주한 악마.'

언젠가 포트렌에서 그녀의 스타피스를 본 기억이 있었다.

[다행히 이곳의 마왕은 잘 해치운 것 같소만. 다른 곳은 상황이 다르오. 나의 고향 동대륙은 지금 질병으로 물들고 있다고 들었소. 소인이 이곳으로 온 것은 그대들에게 함께 동대륙으로 가줄 지원 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요.]

다부지고 딱딱한 말투에 의기가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개.

나는 그 또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면 원래 내가 미도와 연결시켜주려 했던 성좌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검성 이누무시키.

얼핏 들으면 욕같이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건 그의 이름이 맞다.

그는 저 먼 동대륙에서 벚꽃을 베며 수련을 하다 마침내 검성의 경지에 들어선 성좌.

검의 성인이 오로지 검으로 별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성좌였다.

중요한 건 그가 인간이 아닌 견족이라는 것이다.

[난 그곳으로 가서 고향을 구하고 싶소. 누가 함께 해주시겠소?]

이누무시키가 다부진 주먹을 들어 보이자, 바로 옆에 있던 성녀 카미유가 나섰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눈에서 하트를 발사합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낄낄거립니다.]

째릿-!

메시지를 본 카미유가 하늘을 째려봤다.

어째 이 자식은 여기서도 애정행각이냐.

하여튼 요즘 젊은 것들은….

나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

[…큼. 전 이미 이누무시키와 함께 동대륙으로 가기로 했어요. 질병이라면 내 전문분야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한번 고맙소. 카미유.]

[뭘요. 별 것 아닌걸요.]

카미유는 이미 이누무시키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남은 것은 이제 캣 베이커, 데스페라도, 레이트라.

그리고 저기 말없이 팔짱을 끼고 있는 백색의 거한.

방패 성좌 '티아루도' 뿐이었다.

[티아루도는 어쩔 거냥?]

[…모르겠다.]

[데스페라도와 레이트라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어. 여긴 마왕의 기운이 두 개가 느껴지니까 말이야.]

[…모르겠군.]

[아는 게 뭐냥?]

[…모르겠다.]

캣 베이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듣고 있던 나도 한숨이 쉬어질 정도의 답답함이었다.

정말이지 '얼음 땡 요정'이라는 별명이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사실 저래 보여도 빙설계 중에선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성좌였다.

캣 베이커는 최고의 서포터를 자랑했고, 카미유는 최고의 힐러를 자랑했으며, 레이트라는 최고의 격투술을, 데스페라도는 최고의 원거리 공격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누무시키는 검성답게 역시 최고의 검술을 자랑했다.

지금 모인 칠성협은 각 분야에서 최고를 다투는 성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배신한 레굴루스가 칠성협의 대장이었을 텐데 현 대장은 누구지…?

[에효, 기대한 내가 바보지. 넌 나랑 오르카 왕국에 가서 나타스나 잡자. 걔 나랑 상성이 안 좋잖아? 거기 지금 완전 난리라던데.]

[알겠다.]

티아루도가 고개를 끄덕인 동시였다.

순간 캣 베이커의 말에 이상한 점이 있었는지, 데미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르카 왕국이 난리가 나요?"

[아, 너희 모르냥? 거기 왕이 지금 조종당하는 중이라 불사의 인간들 학살하면서 죽이고 다닌다던데? 걔 지금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있을걸?]

"……!"

* * *

오르카 왕국, 레오나르도의 침실.

내리쬐던 노을이 지고, 차가운 밤공기가 별을 몰고 와 시원한 바람이 감돌았다.

고개를 든 보름달을 보며 웃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침실에서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흐흐흐흐. 아아, 과연 좋구나. 이토록 아름다운 꼭두각시의 말로는 오랜만이로다.]

붉은 피부에 커다란 염소의 뿔.

끝이 양 갈래로 갈라진 뾰족한 꼬리와 갈라져 흐느끼는 목소리가, 지금 웃는 대상이 무척이나 흥분하였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사탄이라는 이름의 마왕이었다.

"으아아아! 이, 이게 뭐야!"

그리고 그런 사탄의 바로 앞.

오르카의 왕 레오나르도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피가 흥건하게 묻은 자신의 손을 내려보고 있었다.

레오나르도의 앞에는 검에 난자당한 시체 3구가 함께 있었다.

"아아아…!"

레오나르도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차갑게 식은 가족들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내와 자신의 두 아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아무리 흔들어도, 아무리 주물러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레오나르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탄이 웃었다.

[후후후. 레오나르도여. 내 꿈의 꼭두각시여. 네가 스스로 가족들을 죽여놓고 이 무슨 괴상망측한 행동이냐.]

"닥쳐! 넌 대체 누구냐!"

[나를 모르느냐. 레오나르도야. 언제나 너의 꿈에 나타난 천사였거늘.]

"처, 천사라면…."

레오나르도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매일 밤 꿈을 꾸곤 했었는데, 천사가 나타나 늘 자신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그런 꿈이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 자고 일어나면 이상하게 몸이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레오나르도는 매일 밤 찾아주는 천사에게서 위안을 얻었고, 마침내 천사는 자신이 선택받은 자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천사는 자신의 안에 내재된 분노를 거울삼아 강한 왕이 되게 하였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자신의 정적인 시리야를 제거하였고, 이어서 불안한 왕국의 치안을 해결하기 위해 불사의 인간들의 학살을 명했다.

일각에선 잔인하다는 얘기도 돌았지만, 그럴 때마다 꿈에서 나타난 천사는 오히려 칭찬하며, 이 모든 것이 오르카 왕국을 위한 것임을 되새겨주었다.

그런데 그 천사의 정체가 악마였다고…?

"너, 너를 죽이고 말겠다!"

까앙-!

레오나르도가 휘두른 검이 너무나 손쉽게 사탄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사탄은 아예 검을 움켜쥔 채 어둠 속에서 웃었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어 그런 레오나르도의 검을 산산조각 내었다.

째앵-!

사탄은 또 한 번 웃었다.

[주인에게 덤비는 꼭두각시라니, 참으로 웃기구나.]

"닥쳐-!"

부서진 검을 내팽개친 레오나르도가 아예 이성을 잃은 듯 사탄의 목을 두 손으로 졸랐다.

하지만 사탄은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푸욱-!

사탄의 손이 레오나르도의 가슴을 꿰뚫었다.

"으풉!"

레오나르도의 입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사탄은 그런 피 냄새에 도취한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곤 얼굴 주변에 묻은 피를 기다란 혓바닥을 꺼내 핥았다.

[아아, 좋구나. 좋아. 흐흐흐. 흐하하하-!]

그리고 동시에 레오나르도의 몸을 관통한 손을 빼내었다.

"안…돼…."

레오나르도가 앞으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

사탄은 마침내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레오나르도를 꼭두각시처럼 가지고 놀며 대단위 정신계 마법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바로 쓸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오르카 왕국이 무척이나 넓은 것도 한몫했다.

사탄은 마침내 접고 있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열린 창 너머로 날았다.

거대한 보름달을 배경 삼아 허공에 멈춘 사탄은 대단위 정신계 마법을 시전했다.

불길한 마력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너희들을 내가 만든 천국으로 인도하겠노라.]

그와 동시에 오르카 왕국 동서남북에서 불길한 기운이 치솟았다.

그것은 더욱 강력한 마법을 쓰기 위해 사탄이 미리 설치해둔 마법진들이었다.

오르카 왕국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지며 종이 울렸다.

병사들과 기사들은 바삐 움직이며 뛰어다녔다.

고오오오-!

마법진에서 솟은 불길한 마력이 사탄에게 끝없는 마력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사탄은 마침내 마지막 의식으로 손가락을 튕기었다.

따악-!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바삐 움직이던 오르카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에 멈추었다.

특정 영역의 대상을 꿈속에서 헤메게 만드는 대단위 정신계 마법.

'꿈의 궁전'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었다.

[끄흐흐흐. 흐흐흐흐. 흐하하하-!]

보름달 속 악마가 광소를 터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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