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11화
제311화
코앞에서 마주한 피닉스 이그누르의 몸집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크기의 닭이 존재한다면 평생 내가 좋아하는 찜닭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그누르가 보여주는 위용과 위엄은 그 크기가 남달랐다.
[…예언의 인간이여. 그대는 불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가. 내가 무섭지 아니한가.]
이그누르가 접고 있던 날개를 활짝 펼치며 피닉스로의 위용을 뽐냈다.
과연 피닉스라 불리는 이그누르의 진홍빛 화염은 대단했다.
그러나 내게 불이란 무척이나 익숙한 것.
요리사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불이란 것이었다.
"글쎄. 두렵다기보단 친숙하구만. 난 언제나 불과 함께 살았지. 거기 그 친구랑 함께 말이야."
내 손가락이 이그누르 옆에 있는 솔라를 가리키자, 이그누르가 잠시 말없이 솔라를 슥 보더니,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그누르의 눈매는 무척이나 깊었다.
[친구…. 인가.]
"그래. 친구 같은 녀석이지."
물론, 솔라의 말본새가 좀 그렇긴 하지만, 우선 그건 여기서 접어두도록 하자.
[그대는 예전에 내가 알던 한 인간을 떠올리게 만드는군.]
나는 이그누르가 말한 그 인간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알렉서스 또한 불과 친근한 자였지. 그는 내게 친구로서 함께 하자고 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알량한 내 자존심 때문이었지. 성좌가 인간과 함께 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여겼다.]
회한에 젖은 듯한 이그누르의 말투가 신경 쓰였다.
그러다 나는 문득, 이그누르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상처는…?"
[…판도라에 당한 상처다. 재생이 되지 않더군.]
"그댄 불사가 아니었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판도라에 담긴 죽음의 힘이 너무나 강대했다. 이대로 가면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그누르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보았다.
그것은 너무도 깊어서 심장이 다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심장은 이미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린 상태.
지금은 간신히 뛰고 있지만, 언제 멈추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곳으로 찾아온 용건이 뭐야?]
어느새 다가온 프로메테우스가 하나 있는 손으로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걸어왔다.
이그누르는 그런 프로메테우스에게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과 예언의 신이여, 그대와 우리 사계절 성좌들은 함께 가이아 님을 모셨다.]
[응, 그랬지.]
프로메테우스가 여전히 콧구멍을 후비적거린 채 말했다.
[난 이제 곧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좀 진지하게 해줄 순 없겠나.]
[아, 미안.]
틱.
프로메테우스가 코딱지를 튕기며 다시 이그누르를 올려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윽, 하여튼 드러운 자식.
[…솔라라고 했었나? 불과 예언의 신이여, 이 아이에겐 그대의 힘이 느껴진다. 그대의 권속이 맞는가?]
[맞아. 내 한쪽 팔로 만든 아이지.]
프로메테우스가 왼쪽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그랬군. 과연 내가 제대로 찾아왔던 것이었어.]
이그누르의 고개가 마치 이해했다는 것처럼 끄덕여졌다.
나는 여전히 이그누르가 이러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머물던 시선은 다시 내게로 옮겨왔다.
[예언의 인간이여.]
"……?"
[날 친구로 받아줄 수 있겠나…?]
* * *
"……."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아까 그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멈춰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제일 먼저 주변의 고성이 들려왔고, 각종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인간과 타우루스 마족이 뒤섞여 싸우는 소리가 뒤엉켜 들려왔다.
시간은 멈췄다가 다시 흐르는 것처럼 거침없이 내달렸다.
"다 죽여-!"
"궁수! 지원!"
"냉기 마법을 쏟아부어!"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처절한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고, 내가 딛고 선 땅은 마치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
콰아앙-!
거대한 도끼가 푸른 옥염을 발산하며 내리쳐졌다.
나는 가까스로 그것을 피해낼 수 있었다.
곧장 바람을 움직여 벨페고르와의 거리를 벌렸고, 벨페고르는 마치 그런 나만을 노리듯 눈에 불을 켰다.
[쥐새끼 같은…!]
내가 도끼질을 계속 피해내자, 벨페고르가 무척이나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아예 피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마!]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벨페고르가 푸른 옥염을 한데 모아 커다란 크기의 꽃을 만들어내더니, 주변의 옥염을 끝없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것처럼 깜빡거리듯 빛을 내었다.
[옥염화가 모두 피었을 때, 너희들 중 살아남는 이들은 없으리라!]
벨페고르가 광소를 터트리며 웃었고, 옥염화의 꽃잎이 하나 둘씩 피어나며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태양의 정령, '솔라'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합니다.]
"……!"
나는 마침내 기다리던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태양의 정령, '솔라'와 피닉스 '이그누르'의 알이 하나가 됩니다.]
[태양과 피닉스가 만나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쿠구구구-!
하늘에 거대한 피닉스의 형상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피닉스 이그누르를 닮은 진홍빛 화염이 아닌 무척이나 하얀 백염.
모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비백산하듯 소스라쳤다.
당황한 것은 벨페고르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찌 저 존재가 멸마의 힘을! 내, 내 옥염화가!]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며 뿜어진 백염으로 인해 옥염화는 마치 눈이 녹듯 사라졌다.
끼오오오-!
[태양의 신수, '솔라 피닉스'가 포효합니다!]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물들며 솔라 피닉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유니온 본사, 기획전략실.
유민석은 현재 실시간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최춘택이 아크스타그램의 실시간 방송을 켜놓은 채, 전장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시청률은 미쳤다고 할 정도로 많이 나왔다.
이 정도라면 곧 팔로워 숫자도 10만을 넘길 수 있을 테지.
"오오오!"
"와, 타이밍…."
"저기서 솔라가 진화를 하네."
다른 부서의 직원과 과장들이 이곳으로 와서 실시간 방송을 감상했다.
하긴 기획전략실의 화면이 FHD에 TV의 크기도 가장 큰 것이라, 이런 일은 언제나 다반사였다.
어쨌든 그들은 방금 일어난 상황에 대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 끼오오오!
솔라 피닉스가 울부짖는 소리가 기획전략실을 울렸다.
유민석은 그런 피닉스를 보았다.
어르신의 '솔라'는 태양의 정령으로 알려지며 무척이나 유명세를 탔는데, 방금 전 그 솔라가 피닉스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진화를 이루어냈다.
그 이름하야 '솔라 피닉스'.
태양의 신수라 불리는 그것은 하얀 백염을 마왕 벨페고르에게 쏟아내었다.
- 끄윽. 이런 말도 안 되는…!
벨페고르라 불리는 마왕이 이를 으득 가는 것이 화면에 잡혔다.
그만큼 벨페고르가 당황했다는 것이리라.
현재 유민석을 비롯한 1팀 전원은 마왕이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유민석과 아크스타 개발진들이 모르는 NPC가 마왕이 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저들이 바로 강재성 박사가 말한 재앙의 징조이자, 버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의 심중에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유민석은 모든 총력을 기울여 저들의 행적을 쫓았다.
그래야만 재앙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지금은 응원하는 수밖에 없어. 어르신이 저 마왕들을 모두 쓰러트린다면, 그 재앙의 징조 또한 사라질지도 모르지.'
우우우웅-!
바로 그때.
유민석의 양복 안쪽에 넣어둔 핸드폰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유민석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무엇인지 확인했다.
[이건명 회장님께서 숙환으로 타계하셨습니다.]
"……!"
* * *
1시간 전, 이건명 소유의 개인 별장.
이건명은 생이 꺼져가는 느낌과 함께 몸이 점차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오래된 노환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무언가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하나 남은 양초마저 녹여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
그것은 어째선지 무척이나 홀가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명은 꺼져가는 생명의 시계가 째깍거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은 고령의 나이였고, 죽을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노인이었다.
'…오늘인가. 그런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깨달았다.
오늘이 바로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될 것이라는 걸.
언젠가 찾아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란 단어 앞에 이건명은 숙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억울하기도 했다.
'참으로 고된 나날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자라온 이건명은 세상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의 인생은 언제나 고생길이었다.
처음 태어났을 땐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고, 가난한 유년시절은 사실 무엇이 힘든지를 잘 몰랐다.
아직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가 중학생이 되던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깎아놓은 사과껍질과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항상 부부싸움을 일삼는 그의 부모님은 그런 자신을 내팽개친 채 번갈아 가며 집을 나갔다.
이건명의 청년 시절은 무척이나 암울했고 또한 고독했다.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놓여진 것만 같은 공허함이 그를 언제나 감싸 안았다.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이건명은 어렵게 막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명은 불굴의 기지를 이용해 난관을 헤쳐 나갔다.
원체 잡초 같은 근성의 그는 수많은 모욕을 견뎌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건명은 세상이란 살아내는 것이 아닌 버텨내는 것이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물여덟의 이건명은 마침내 아내를 만났다.
약 2년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했고, 아내는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나무의 그늘처럼 쉼터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한혜연'. 모든 것을 증오했었던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했었던 여자였다.
그런 아내는 이건명의 모든 것이었고, 세상의 전부였다.
그녀만 있다면 세상에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여보….'
이건명이 액자 속 아내의 사진을 보며 억지로 웃음 지었다.
꺼져가는 그의 생기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이건명은 곧장 방을 나서, 자신의 수발을 들어주는 가정부를 만났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건명이 지갑에서 두툼한 5만 원권 지폐 여러 장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가정부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손사래 쳤다.
"호, 호의는 감사하지만…."
"넣어두게. 부탁 하나 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부탁이요?"
"그래. 이건 그 수고비 같은 걸세."
가정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돈을 받았다.
그리고 이건명은 그런 가정부를 보며 말했다.
"별건 아니네. 그냥 30분 뒤에 내 방으로 들어와주면 돼."
가정부는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큰 의심은 하지 않았다.
이건명 회장이 꽤 큰돈까지 두둑하게 쥐여주며 한 부탁이었기 때문이다.
이 돈이면 1학기 아들의 학비는 걱정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이건명은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
그리고는 곧장 이 순간을 위해 남겨놓은 자그마한 주사기를 서랍에서 꺼내 들었다.
그것은 초창기 아크스타를 개발할 적, 강재성 박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몰래 개발한 신약이었다.
나노 입자로 된 특정 성분이 뇌를 강하게 활성화시키는 효능이 있는 신약.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죽었던 사람의 뇌마저도 잠깐이지만, 다시 활성화시킬 수도 있었다.
이건명은 이것으로 불법적인 실험들을 자행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죽은 아내.
'한혜연'을 되살리기 위한 것들이었다.
"…음."
이건명은 곧장 이것을 자신의 팔에 주사했고, 혈액을 타고 시원한 감각이 느껴지자, 곧장 방에 있는 특수한 캡슐에 몸을 뉘었다.
이 캡슐엔 사용자의 기억을 특정 NPC에게 강제로 종속시킬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가상의 사후세계를 만들어내 죽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이건명의 야망이 고스란히 깃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새로운 삶이 시작 되는 것이다.
"…흐음."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건명은 천천히 눈을 감고,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죽음이란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