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07화
제307화
잠시 뒤, 나는 개인 막사에서 웬 할머니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녀는 놀랍게도 마법 도시 오즈의 대표로 온 '유저'.
NPC가 아니라는 사실이 처음엔 놀라웠지만, 하긴 나도 할아버지였기에 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녀를 막사로 데려와 독대를 했고, 우리 둘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대체 절 어떻게 아시는지…."
사실 처음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지난 월드 대항전에서 백무열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팬 사인회를 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나를 오라버니라고 불렀으니, 그런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혹시 그때 사인받았던 사람 중 한 명인 걸까…?
"끌끌끌. 하긴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눈앞의 이름 모를 노파는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끌끌거리며 웃었다.
나는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오래 흘렀다고?
대체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죄송합니다만, 제가 나이가 나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하긴 오라버니는 언제나 사람 이름은 잘 기억 못 혔어. 시방. 그래도 나를 잊어먹다니 섭섭하네.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내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대체 지금 눈앞의 노파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옛날에 사랑했던 여자분이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내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혹시 술 먹다가 실수해서…?
아니, 아니야.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마족들이 몰려온다-!"
그때. 멀거니 들려오는 병사의 외침이 진영 곳곳에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곧이어 비상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둥-! 둥-!
나와 이름 모를 노파는 막사 밖으로 뛰쳐나왔고, 밖은 예상대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각종 병장기를 들고 갑옷을 입으며 적을 맞기 위해 도열했다.
다른 막사에서 데미안이 뛰쳐나왔고, 나와 함께 온 케레노스와 에드워드.
김수정과 마석두도 함께였다.
우리들은 빠르게 성벽에 올라 다가오는 적들을 맞았다.
나는 초감각으로 시야를 확장해 적들의 면면을 살폈다.
…과연, 벨페고르가 이끄는 소들인가.
다가오는 마족들의 생김새는 주변의 지형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데미안의 말에 의하면 벨페고르는 아들인 미노타의 복수를 하기 위해 강림했노라고 떠벌렸다 한다.
어쨌든 저 너머에 있는 것이 마왕 벨페고르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피닉스를 죽인 놈 또한….
"시방. 저 썩을 놈의 소새끼들이 우째 여기까지 왔디야."
"……?"
바로 뒤에서 아까 독대를 했었던 이름 모를 노파가 튀어나왔다.
그녀의 머리 위로 각종 마법사와 마녀들이 빗자루를 탄 채 다가오는 적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노파가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삼각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순식간에 완성된 삼각 형태의 마법진은 노파의 앞으로 떠올랐고, 노파는 지팡이를 삼각형 안으로 찔러 넣었다.
노파가 다시 끌끌거리며 웃었다.
"…오늘 소고기 엄청 먹겠네. 선빵이나 처먹어라. 옘병할."
푸슈우웅-! 콰콰콰쾅!
삼각형에서 뻗어 나간 하얀 광선이 횡으로 그어지더니 전방의 적들을 초토화 시켰다.
이어서 머리 위의 마법사와 마녀들이 각자 주문을 외우더니, 각종 빙결 마법과 물 마법을 전개해 날리기 시작했다.
한바탕 눈과 비가 내리는 것만 같은 장관이 연이어 펼쳐졌다.
* * *
마이클과 견소룡은 치열한 싸움을 펼쳤다.
탐욕의 투신이라 불리는 마왕 아슈타르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무(武)와 마법(魔法)이 하나가 된 그는 무척이나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제우스 길드와 무협 길드는 서로 나쁘지 않은 호흡을 자랑하며,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싸움을 이어갔다.
[크윽. 이건…!]
[으아아악-!]
그리고 마침내 첫 성과가 찾아왔다.
두 개의 머리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노호성을 터트렸고, 아슈타르는 잘려나간 한쪽 팔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잘려나간 팔을 붙잡으며 아슈타르는 자신의 팔을 잘라낸 인간을 보았다.
[네놈…!]
콰아앙-!
무협 길드의 부길드장 주양천이 차원 가위를 손에 꼭 쥔 채, 아슈타르가 내지르는 주먹을 피해냈다.
그는 몰래 뒤에서 기습하여 아슈타르의 한쪽 팔을 자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아슈타르는 그럼에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까짓 팔 하나쯤 금세 재생을 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는 그만한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마왕이었고, 이제 잘려나간 팔은 금세 자라난 다음 눈앞의 적에게 각종 지옥 마법을 쏟아낼 것이었다.
[…아니!]
[안 자라나…?]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당혹감을 표출했다.
이번엔 진짜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슈타르는 잘려나간 팔이 땅에 떨어진 것을 보았다가 다시 팔을 잘라낸 그 흉측한 물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흉신악살의 도깨비와 같은 형상이 아슈타르의 얼굴에 새겨졌다.
[사랑의 처형자의 차원 가위! 네놈들이 그걸 어떻게…!]
[으윽! 내 팔…!]
아슈타르의 하나 남은 팔이 지옥 마법을 쏟아냈고, 나머지 두 팔은 투신으로서의 힘을 고스란히 담아낸 '파천무(破天武)'를 펼쳐 눈앞의 적들을 유린했다.
콰콰콰쾅-! 아슈타르의 두 주먹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악!"
"으아악!"
마이클이 모래로 가까스로 방어를 하긴 했지만,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지옥 마법의 위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견소룡은 애초에 방어보다는 공격에 치중되어 있었기에 치명상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거신의 후예. 그 어느 종족보다도 단단하고, 회복력이 뛰어난 내게 이런 치욕을 안겨 주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일행들은 형용할 수 없는 아슈타르의 힘 앞에 처음으로 무력함을 느꼈다.
그동안 봐주었다는 말이 알맞을 정도로 아슈타르의 힘은 끝을 모를 정도로 치솟았다.
더불어 거신의 후예라는 말처럼 아슈타르는 몸집이 무척이나 커지기 시작하더니, 그 크기가 에레보스의 성벽보다 커졌다.
"…제기랄. 이건 뭐 답이 없는데."
무식하기 짝이 없는 라인하르트가 처음으로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 것이었다.
레이나도 마찬가지였고, 열심히 빙결 마법으로 아슈타르의 움직임을 봉쇄하던 카푸치노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클은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견소룡을 보았다.
그가 자랑하던 십이지들은 이미 파훼된 지 오래.
남은 것은 다섯 마리의 십이지와 그의 등 뒤로 펼쳐진 2개의 뇌전으로 이루어진 팔이었다.
마침내 몸집을 불리는 것을 멈춘 아슈타르가 말했다.
[크흐흐. 네놈은 유피테르의 힘을 흉내낸 것 같다만 가소로운 수준이구나.]
[저 인간은 안타라스의 힘을 쓰는 것 같은데?]
[흐음. 그 녀석은 꿍꿍이를 알 수가 없군.]
거대한 두 개의 머리는 서로 만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언제 저 거대한 존재가 이곳으로 공격을 쏟아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다들 피해!"
마이클이 당황하고, 견소룡이 목청껏 소릴 높였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슈타르의 눈빛이 변하던 바로 그 순간. 파천무의 힘이 실린 두 주먹이 뒤편의 길드원들에게로 쏟아졌고, 마이클과 견소룡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마 저들은 금세 가루가 되어 로그아웃 되고 말리라.
바로 그때.
[…석양이 뜨는군.]
타아아앙-!
뒤에서 들려온 총성과 동시에 이곳을 향해 내질러지던 아슈타르의 공격이 옆으로 빗겨나가며 커다란 지진이 일었다.
쿠구구궁!
흙먼지가 일어났고, 그 사이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인영이 뒤편에 있었다.
저벅저벅.
그것은 두 명이었다.
[사쿠라 검법 제1장 쾌도.]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인영이 움직이더니, 무수한 벚꽃들이 허공을 수놓으며 아슈타르를 향해 날았다.
쉬쉬쉬쉭-!
그것은 한편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검의 궤적이었다.
[으음…!]
거인이 된 아슈타르가 놀랄 만큼 강력한 공격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흙먼지를 뚫고 두 인영이 정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체를 확인한 모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뭘 그리 놀라고 그러나. 스켈레톤 처음 보나?]
[음, 이보게 '황야의 무법자'. 스켈레톤이 이렇게 강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야. 이들은 인간이지 않나.]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렇게 치자면 '벚꽃을 베는 자'인 자네도 만만치 않아. 강아지가 두 발로 걸으면서 이렇게 훌륭한 검법을 쓸 거라곤 누가 생각했겠나.]
[강아지가 아니고 견족이라네.]
[그거나 그거나.]
마이클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신지."
개의 형상을 한 강아지. 아니, 어쨌든 개가 말했다.
[지원군일세.]
* * *
한편,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그만큼 노파가 보여준 선빵…. 아니, 선제공격은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크워어억-!
저 멀리 화가 난 소들의 울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지만, 계속해서 이어지진 못했다.
각종 얼음과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며 그들의 진군을 막았기 때문이다.
쿠콰콰쾅-!
"……."
그 파괴적인 모습에 나를 비롯한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만큼 지금 모두가 놀라움이 뒤섞인 얼굴로 노파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지금 노파가 NPC가 아닌 유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와아아아-!
동시에 토벌군 병사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사기가 모두 하늘을 찌를 것처럼 치솟았다.
그만큼 노파는 굉장한 마법으로 적들을 유린한 것이었다.
"아, 시끄러! 귀청 떨어지겠다! 시방."
그러나 노파는 그런 사기를 다시 떨어트려 버렸다.
"……."
나는 다시금 할 말을 잃었다.
사기를 떨어트려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스타 프루츠 능력자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저건 분명 삼각성, 대마법사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본디 이 세계에서 철학자이자, 수학자이자, 종교가였다.
그런 그는 오즈의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는 죽기 전 모든 만물과 마법의 근원이 삼각형에 있음을 알아차렸고, 모든 마법의 수식과 마법진을 각종 삼각형으로 단순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라그나로크에서 활약하였고, 성좌가 된 인간 중 한 명이었다.
죽기 전 유명한 말을 하나 남겼었는데….
"흥, 그렇다고 조용히 하는 꼬라지 하고는."
그래. 분명 '네 꼬라지를 알라.'였던 것 같다.
"그쪽 정체가 뭐요? 대체 누군데 날 아는 거요?"
그런 내 물음에 노파가 씩 웃었다.
"아니, 오라비. 나 진짜 모르겠수?"
아니, 그러니까 대체 누구세요.
누구냐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