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06화
제306화
여행자들의 쉼터, 오르비스.
이곳은 다양한 여행자들이 오르카 왕국으로 들어서기 전, 말과 마차를 대여하는 중간 지점으로 유명했다.
오르카 왕국은 불사의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해 오르비스를 평화지대로 정했고, 그곳에서 각종 분쟁들을 해결하도록 하였다.
오르비스의 주변엔 불사의 인간들에게 하사한 성들이 즐비했기에, 그들 사이엔 끊임없이 공성전이 일어났다.
그렇기에 이곳은 유저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오르카 왕국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폐하의 명령이다. 모두 죽여라!"
들이닥친 오르카 왕국의 병사들은 끊임없는 학살을 자행했다.
주변에선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다들 도망쳐!"
"꺄아아악-!"
모두 불사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들에겐 불사의 인간을 구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기존에 있던 NPC와 오르카 왕국의 선량한 백성들이 희생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
그리고 그런 명령을 받은 오르카 왕국의 기사단장.
케아스의 표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그의 속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난 기사다. 기사는 언제나 주인의 명을 따라야 하는 법….'
언제나 강직한 그는 원칙만을 고집하는 원칙주의자였다.
자신은 충직한 기사였고, 기사는 언제나 주인의 명을 망설임 없이 이행하는 것이 본분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케아스가 이행하는 주인의 명령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꺄악-!"
"……!"
방금 또 한 명의 가녀린 여인이 죽었다.
본디 불사의 인간들은 죽으면 구별할 수 있었다.
몸이 흩어지듯 사라진다면 불사의 인간이었고, 방금 같이 피를 흘리며 죽은 가녀린 여인 같은 경우는….
"…큭."
케아스가 이를 꽉 깨물었다.
저 병사는 방금 불사의 인간이 아닌 선량한 오르카의 백성을 죽인 것이었다.
케아스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선량한 백성을 죽인 병사의 목을 망설임 없이 내려쳤다.
"케, 케아스 님…!"
스칵-!
병사는 놀란 표정 그대로 목이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케아스는 눈빛을 번들거리며 병사들을 향해 목소릴 높였다.
"불사의 인간들만 없애라! 오르카의 선량한 백성들을 죽이는 자는 내가 즉각 처형토록 하겠다! 기사들은 횃불을 들고 불을 질러라! 이제 이곳에 불사의 인간들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폐하의 명이시다!"
화르륵-!
오르비스의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 * *
에레보스 성, 제우스 길드 근거지.
기다란 직사각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마이클이 먼저 눈앞의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함께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오.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군."
마이클의 건너편에 앉은 남자.
견소룡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강자는 지금 독대를 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견소룡이었지만, 지난 월드 대항전 이후로 많은 변화를 겪은 견소룡은 세력을 만들기로 했다.
길드의 이름은 무협(武俠).
말 그대로 '무술이 뛰어난 협객들.'이라는 뜻이었다.
"길드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무협 길드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음, 고맙구려. 그나저나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소. 지금도 그 아슈타르라는 마왕이 혼자서 밀고 내려오고 있다고 들었소만."
"그렇습니다. 지금 이곳 에레보스로 오고 있다더군요. 아마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우선 말씀하신 물건을 보아도 되겠습니까?"
마이클의 말에 견소룡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큰 가위였다.
마이클은 눈앞의 가위의 정보를 살폈다.
[☆스타피스, '사랑의 처형자'의 차원 가위]
등급: 성유물
사용 제한: 가련한 사랑의 군주
힘+10 민첩+20 지식+20
*만물의 가위질(패시브) - 어떤 대상이라도 차원의 가위로 자르지 못하는 것은 없다. 돌도, 물건도, 물도, 길도, 만물을 자를 수 있는 이것은 신의 몸도 자를 수 있다. '사랑의 처형자'는 모시는 신에게 해가 되는 물건이라는 죄목으로 이것을 인간계에 버리게 되었다.
눈앞의 스타피스의 정보를 본 마이클의 눈이 살짝 뜨였다.
견소룡에게 마왕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말 그대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스타피스였다.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마이클이 고개를 들어 견소룡을 보았다.
견소룡은 함께 아슈타르와 싸우는 조건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고 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회담까지 마련한 것.
"에레보스와 동맹을 맺고 싶소."
"…동맹이라면 혹, 얼마 전 얻으셨다던 자금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견소룡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견소룡은 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름은 '자금성'.
정부에서 지은 이름이라, 사실 견소룡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제 자신이 이끌어야 할 성이었다.
"동맹이라면 정확히 어떤 식의 동맹을 원하십니까."
"솔직히 경제적으로는 불편하지 않소. 다만, 자금성과 에레보스성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서로 침략을 하지 않는 조건이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서로 위험하면 도와주는 거면 더 좋을 것 같고."
마이클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이런 건 데미안이 전문이었지만, 이 정도는 마이클도 충분히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서로에게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미안은 언제나 그런 선택을 해왔다.
"좋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좋소. 잘 부탁하오. 마 공자."
마이클은 곧장 견소룡이 다가와 악수를 내밀자, 공손하게 맞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제우스 길드의 간부인 레이나가 들어왔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놈이 왔어!"
"……!"
"……!"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빠르게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리고 성벽 위에 빠르게 올라 시선을 멀리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걸어오는 인영이 하나 보였다.
저벅저벅.
불타오르는 노을을 배경으로 한 채, 걸어오는 것은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을 가진 거한.
이곳에 오기 전 다섯 개의 성을 단신의 몸으로 함락시킨 마왕 아슈타르였다.
콰아아아-!
[마왕, '탐욕의 투신'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 * *
그 무렵.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토벌군 진영이 자리한 불칸 화산지대에 들어설 수 있었다.
나는 불에 대한 내성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케레노스와 에드워드는 미리 준비해둔 화 속성 내성을 올려주는 포션을 병사들에게 배급했다.
나는 풍희를 소환해 주변의 뜨거운 바람을 없애는 한편, 차가운 바람을 돌게 만들어 주변에 불도록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잠깐 앉아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쟤, 쟤가 그 하얀 족제비라고?"
"예. 그 아이 맞습니다. 풍희라고 합니다."
"풍희…."
에드워드가 풍희를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에드워드의 뺨이 붉게 상기된 것은 그때였다.
"어디 아프십니까?"
"아, 아, 아냐…! 아프긴! 크흠. 나 잠깐 풍희한테 갔다 올게!"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며 총총 뛰어갔다.
에드워드는 풍희와 곧 잘 친해졌는데, 풍희도 에드워드를 기억하는지 둘은 금방 친해졌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김수정이 나타났다.
그녀의 옆엔 케레노스가 함께 있었다.
둘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딱 봐도 그거네. 그렇지?"
"나도 저런 영주님의 모습은 처음 보는데, 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얘네는 뭐라는 거야?
김수정과 케레노스는 서로 알쏭달쏭한 말을 주고받더니,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나는 곧장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을 보았다.
마석두가 있는 자경단이 있는 곳이었다.
"아씨, 어떤 거로 해야 되는 거야…."
"형님. 그냥 아무거나 하세요."
"콱씨, 너 정직의 방으로 끌려갈래?"
"제가 왜 거기로 갑니까."
"야, 이 자식 잡아. 정직의 방으로 가게."
"알겠습니다. 형님."
"악! 이거 놔 이 미친 새끼들아-!"
마석두는 여전히 성좌 고르는 문제로 고민 중인 것 같았다.
내가 좋은 녀석을 골라주겠다고 해도 자기가 고르겠다나 뭐라나.
어쨌든 내버려 두기로 했다.
녀석도 어른인데 내가 괜히 관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출발하겠습니다! 10분만 더 걸으면 도착입니다!"
그때. 어떤 기사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드워드를 비롯한 케레노스가 말에 올랐고, 나도 곧장 근처를 서성이던 페가수스…. 아니, 지니의 등에 올라탔다.
푸르르-!
지니가 괜스레 투레질을 했다.
이러고 있으니 진짜 말 같네.
"우오오-!"
"과연 아무나 탈 수 없는 것에 저렇게 쉽게 올라타다니."
"잭슨님은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또 한 번 메테우스의 병사들이 웅성거리며 되도 않는 말들을 쏟아냈다.
사실 아까 에드워드가 지니를 타고 싶다고 해서 타보라고 했는데, 지니는 에드워드가 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몸이 통과하였고, 케레노스도 시도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지니에 탈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크흠."
어쨌든 위풍당당하게 지니의 등에 올라탄 나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거렸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당신을 보며 낄낄거립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마찬가지로 낄낄거립니다.]
"아, 시끄러! 이 두 형제 놈들이 동시에 미쳤나."
참고로 아틀라스는 골초라는 별명을 버리고 진명을 드러냈다.
내가 녀석에게 '골초'란 무척이나 나쁜 단어란 걸 되새겨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을 안 듣더니 결국 프로메테우스가 바꾸라고 하니까 바꾸었다.
이걸 형제간의 우애가 좋다고 해야 할지, 내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부분이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에게 코딱지를 튕깁니다.]
[제3사도, 아틀라스가 당신에게 귓밥을 던집니다.]
"…더럽게 재수 없는 놈들."
하여튼 형제가 저렇게 똑같이 더럽기도 쉽지 않은데 놀라울 따름이다.
원래 사도라는 놈들은 다 그런가 묻는다면….
아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참고로 아틀라스는 세 번째 사도인데, 두 번째 사도는 바로….
"풍희야. 자, 선물! 너 주려고 아이올리아로 화관을 만들어 왔어!"
"와, 고마워. 에드워드야! 잘 먹을게. 냠-♡"
"허억!"
화관을 선물한 에드워드의 표정이 삽시간에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아."
나중에 풍희한테 선물은 먹는 게 아니라고 단단히 가르쳐줘야겠군.
"도착했습니다!"
"토벌군 진영이 보입니다!"
때마침 전방에 앞서가던 정찰병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토벌군의 진영은 마치 성과 같은 모양새였는데, 모두 돌로 지은 것 같았다.
하긴, 나무로 지으면 다 불타버렸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토벌군의 진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성문을 통과해 말에서 내려서자 익숙한 얼굴이 먼저 다가왔다.
제우스 길드의 길드장이자, 월드 대항전에서 미국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데미안.
나도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만. 잘 지냈나?"
"예. 저야 늘 잘 지냅니다. 그나저나 오느라 고생 많으셨…. 근데 저건…?"
데미안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내가 내린 페가수스….
아니, 구름 말로 변신한 지니를 보았다.
딱히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냥 내 소환수야."
"아, 그렇군요. 참 신기한 소환수가 많으십니다."
"뭘 새삼스럽게."
"하하, 그렇지요. 막사로 들어가시죠. 마침 회의를 하고 있던 참입니다. 마법 도시 오즈에서 지원군이 도착했거든요. 전부 마법사들과 마녀들입니다."
"호오, 그래…?"
마법 도시 오즈라면 나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마법사 유저들은 시작 마을을 그곳으로 한다지 아마.
내겐 뮬란이 시작의 마을인 것처럼, 그들도 오즈를 시작의 마을로 한 것이었다.
어쨌든 귀한 마법사와 마녀들이 왔다니, 앞으로 토벌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크흠. 그럼 어디 들어가 볼까."
그렇게 뒷짐을 진 채 막사로 들어간 나는 곧장 회의를 시작했다.
별다른 내용은 아니었고, 적들의 특징에 대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이곳은 벨페고르라는 녀석이 자리를 잡은 상태.
이렇듯 내가 미리 알고 있는 이유는 풍희가 피닉스의 알이 하는 말을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피닉스는 벨페고르에게 당해 알이 되었다고 한다.
오즈의 대표는 검은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알 수 없었는데, 뭐, 신경은 안 쓰기로 했다.
괜히 토벌을 앞두고 기 싸움을 할 필요는 없는 거다.
어쨌든 회의는 성황리에 끝났고, 그렇게 잠깐 구름 과자를 피기 위해 막사를 빠져나오던 바로 그때.
"춘택이 오라버니?"
"……?"
누군가 나를 불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