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305화
제305화
메테우스의 성벽 앞.
공성전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나는 시간의 화살로 적들 사이를 누비며 가뿐한 발차기로 적들을 유린했다.
솔직히 말하면 흑야의 화살이나 여의초를 이용하면 금방 끝낼 수 있었지만, 가볍게 몸을 푼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이렇게 발차기로 그들을 때려눕힌 것이었다.
- 와, 발차기 지렸다.
- 이젠 허공답보까지 하시네.
- 할간지 개쩐다….
그리고 실시간 라이브 방송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니까 생각보다 반응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멋있긴 했지.
"흐음."
현실에선 이렇게 허공답보 하듯 구름을 밟으며 싸울 수는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재 구름 밟기를 쓸 수 있는 나의 발차기는 한층 발전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었다.
"크윽. 내가 졌다."
다리우스가 분한 표정으로 내 앞에 무릎을 꿇자 주변의 병사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벼운 상처만 입혔고, 일부러 급소를 공격해 죽이는 일은 없었기에 모두 살아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전투 의지를 상실한 것처럼 처량한 얼굴이었다.
[공성전이 끝났습니다.]
[당신은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리우 성의 영주에게 조공을 요구할 수 있으며, 병사를 이끌고 리우 성을 점령한다면 성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음. 대강 이런 시스템이었나?
나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눈앞에 뜬 리우 성의 상태창을 보았다.
리우 성은 이곳 메테우스와 꽤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 현재 높은 세금으로 인해 백성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이것 봐라?
"이놈아."
"아, 예!"
다리우스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어깨를 쭈뼛 세우더니 칼 대답을 했다.
마치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금이 왜 이 모양이냐."
리우 성의 세금은 백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현재 성내의 수입도 높은 편이 아니었고, 백성들은 삶은 피폐해져서 떠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내버려 뒀어도 리우 성은 망했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었다.
"예? 다른 성들도 다들 이 정도씩…."
"이놈아. 백성들이 없으면 가진 성이 무슨 소용이냐. 쯧쯧. 백성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으면 누군가의 위에 설 자격조차 없거늘…."
이어진 내 말에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던 유저들이 반응했다.
- 이야, 저건 명언이다.
- 크으. 저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지.
- 그래. 인간적으로 세금 좀 줄이자. 요즘 영주들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니냐! 우리도 좀 살자!
대부분 높은 세금으로 먹고사는 영주들을 비판하는 말이었다.
아마 이런 일들이 유저들 사이에선 팽배한 모양이다.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은 인정이란 걸 모른다니까.
"케레노스!"
내가 메테우스의 성벽을 향해 소리치자, 성벽 위에 있던 케레노스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바람처럼 내 옆으로 나타났다.
방송을 보던 유저들은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리우 성 알지?"
"예. 압니다."
"가서 점령해라. 보니까 여기 데리고 온 병사들이 정예병 같으니까, 너희들만으로 점령할 수 있을 게야."
케레노스는 무릎 꿇은 다리우스를 슥 쳐다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잠깐만…!"
슈와아악-!
그러나 다리우스의 외침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버린 케레노스를 붙잡지 못했다.
케레노스가 있던 자리엔 옅은 바람의 잔상만이 내려앉았다.
다리우스는 그저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다시 분한 듯 얼굴을 붉히며 내게 소리쳤다.
"많이 벌고 싶은 게 죕니까!"
"에잉. 시끄러. 이 녀석아! 뭘 잘 했다고 까불어 까불긴!"
퍼억!
나는 돌려차기로 다리우스의 얼굴을 까버렸다.
다리우스는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 * *
다시 이틀이 흘렀다.
그 사이 리우 성은 순조롭게 메테우스로 편입되었고, 높았던 세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메테우스의 세금을 '4달러'로 고정을 했으니, 당연히 리우도 '4달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리우의 백성들은 기뻐하며 춤을 췄다.
[리우의 백성들이 당신을 칭송합니다.]
[반란의 조짐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어쨌든 새로 얻은 리우의 백성들이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을 기쁜 일이었다.
메테우스의 주민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지난번 내가 요리 사절단을 포트렌에 보낸 것이 화제가 되었는지, 아크 스타를 하는 모든 요리사들이 이곳을 요리사의 성지라며 몰려든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수많은 맛집들이 메테우스에 문을 열며, 메테우스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그 사이 헬레나도 돌아왔다.
"걱정시켜드려서 죄송해요."
"아니다. 괜히 속인 것 같아 미안하구나."
"에이, 뭐 그런 걸 가지고요. 아마 저보다 더 힘드셨을 거예요."
헬레나는 넓은 아량으로 그런 나를 용서해주었다.
어쨌든 다시 모든 일이 순조로워졌고, 헬레나도 돌아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오르카 왕국에서 내려온 토벌군에 합류하는 것뿐이었다.
케레노스를 비롯한 실피드 기사단.
칼슈타인 저항군.
그리고 메테우스에 머무르고 있는 마석두를 비롯한 자경단의 일부가 따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메테우스의 시민권을 취득한 유저들과 병사들을 끌어모으니, 5천이라는 숫자의 군대가 조직되었다.
"다 모였습니다."
케레노스가 5천 명의 대표로 내 앞에서 말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레노스는 다시 뒤로 돌더니, 눈앞의 병사들을 향해 높이 소리쳤다.
"출정한다!"
부우우우-!
각종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메테우스의 진군을 알렸고, 나는 곧장 말에 올라탔다.
다른 이들도 말에 올라탔는데, 그중엔 김수정도 있었다.
메테우스의 성녀가 함께 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병사들의 사기는 끝없이 솟구쳤다.
그렇게 메테우스의 서쪽으로 나온 우리들은 윈디아를 향해 말을 몰았다.
그곳에서 윈디아의 병사들과 합류해,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우리는 윈디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잭슨!"
"백작님."
공적인 자리였기에 나는 에드워드를 백작으로 높여 불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나를 반갑게 맞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바로 옆인데요. 허허."
그가 올라탄 백마의 뒤로 윈디아의 병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확실히 백작이란 지위가 괜히 있는 건 아닌지, 병사의 숫자가 많았다.
케레노스에게 듣기론 그동안 강한 군대를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썼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런 것처럼 보였다.
"와, 이게 다 잭슨의 병사들이야?"
"아, 예. 그렇습니다. 하하."
안 본 사이에 에드워드의 키는 제법 자라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볍게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군대를 몰아 토벌군이 있는 전장으로 향했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워워. 이놈아. 워!"
하지만 내 승마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히히히힝-!"
"이놈이…!"
하마터면 열 받아서 타고 있는 말의 머리통을 때릴 뻔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말에서 내렸고, 곧장 지니를 불렀다.
"나 불렀구름!"
"그래. 좀 올라타자."
"알았구름! 올라타!"
그렇게 나는 지니의 등에 올라탔다.
병사들이 신기한 눈으로 날 보았고, 에드워드는 또 한 번 눈을 빛내며 마치 굉장한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날 보았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니야. 혹시 외형을 좀 바꿀 수 있냐?"
"어떻게 말이구름?"
나는 에드워드가 타고 있는 백마를 가리켰다.
"저렇게."
"저 정돈 쉽다. 기다리구름!"
뭉게뭉게-!
지니가 신기한 소리를 내며 외형을 변화시켰다.
나는 지니에 올라탄 채로 그것을 겪었고, 또 한 번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지더니, 어느새 지니의 모습은 구름으로 이루어진 말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참에 날개도 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니야. 춘자 날개 봤지? 그런 거도 좀 달아봐라."
"알겠구름!"
잠시 뒤. 나는 구름으로 이루어진 날개 달린 말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병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폐, 페가수스다!"
"페가수스가 우리와 함께한다!"
"신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와아아아-!
난데없이 병사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 순간 에드워드가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우워어어어억-!"
에드워드의 눈은 한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불칸 화산지대, 토벌군 진영.
"…또 패배했습니다."
"……."
이번 토벌군의 지휘관인 데미안은 연신 미간이 찌푸려졌다.
토벌군은 그동안 계속 연전연패를 거듭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저히 전략 따윈 먹히지 않는 적들이었다.
이곳은 갑작스러운 마계화가 진행되는 바람에 마족들의 능력치가 30% 증가하고 말았다.
반면, 토벌군은 오히려 마계화가 진행된 땅에서 능력치가 감소하는 페널티를 갖게 되었기에, 적들을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벅찼다.
솔직히 말하면 데미안은 이번 전쟁은 승산이 없다고 여겼다.
'마족들은 그렇다 쳐도 마왕들은 도저히….'
그들은 그야말로 성좌들을 뛰어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토벌군에도 스타 프루츠 능력자들이 몇 있지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현재 마이클과 견소룡은 에레보스 성 부근으로 진군하는 또 다른 마왕을 상대하러 갔기에, 이곳에 있는 것은 그리 강하지 않은 능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후우. 이제 기댈 건 제임스가 가져올 스타 프루츠 뿐인가.'
제임스는 북극에서 다섯 개의 스타 프루츠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몇 등성인지는 못 들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전력에 보탬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추가 전력이 오고 있다는 보고도 받았다.
설마하니 영감님과 다시 합을 맞춰볼 날이 올 줄이야.
'예전에 미노타를 잡았을 때 참 호흡이 좋았었지.'
데미안은 당시 다크 울프로 불렸던 최춘택을 떠올리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쩌면 또 한 번 그때의 호흡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과연 영원한 적은 없는 건가.'
데미안은 다시금 얻은 깨달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눈앞의 부관의 뒤로 병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부관이 병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도, 동맹군이 왔습니다!"
그 순간. 데미안의 눈이 살짝 뜨여졌다.
'동맹군이 왔다고? 설마 오즈에서 정말 마법사들을 보낸 건가?'
자신을 토벌군의 지휘관으로 임명한 듀크 공작의 말에 따르면, 마법 도시라 불리는 오즈에 마법사와 마녀들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그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왔다고?'
데미안은 주저하지 않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데미안의 머리 위로 수백의 마법사와 마녀들이 빗자루에 올라탄 채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이끌고 온 최고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이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데미안은 또 한 번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하, 할머니…?'
NPC가 아니었다.
눈앞의 할머니는 분명 유저였다.
자신의 눈에 비친 그녀의 머리 위엔 분명 NPC를 상징하는 화살표가 없었다.
"달과 마법의 여신, 헤카티…. 그 뭐시냐. 아무튼 도우러 왔다. 시방."
(다음 편에서 계속)